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윙 20위~1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레프트윙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윙 20위~11위

토르난테 2024. 3. 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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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20위 데얀 사비체비치

 


생년월일: 1966년 9월 15일
국적: 몬테네그로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유고슬라비아 축구계가 낳은 천재적인 판타지스타로 환상적인 드리블과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킬패스, 그리고 우수한 왼발 슈팅 스킬로 이름을 날렸다.

츠르베나 즈베즈다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에게 헌액한 여섯 별 중 하나로 추앙받은 사비체비치는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3연패를 이뤘고 1990-91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낸 활약을 인정받아 1991년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 선정 및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스포츠 선수에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2위를 차지했다.

AC 밀란으로 이적해서도 세리에 a 3회 우승과 1993-94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5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대표팀에서는 전성기 시절 일어난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인해 굵직한 활약을 하진 못했다.



19위 에당 아자르

 


생년월일: 1991년 1월 7일
국적: 벨기에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첼시 FC

2010년대를 풍미한 측면 플레이메이커 스타일의 윙어로 섬세한 볼 컨트롤과 우수한 스피드, 그리고 넓은 시야와 훌륭한 패스 실력에서 나오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겸비했는데 패스트푸드를 굉장히 좋아하고 남들에 비해 훈련에 투자하는 시간이 적었음에도 세계구급 선수로 군림했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유망주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가 2010-11 시즌, LOSC 릴의 리그앙과 쿠프 드 프랑스 더블 우승이라는 대업적을 이뤄내며 리그앙 올해의 선수상을 2회 연속 수상한 아자르는 첼시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프리미어리그 2회 우승과 UEFA 유로파 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아자르 개인도 2014-15 시즌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 FWA 올해의 선수, PFA 올해의 선수를 석권한 것을 포함해 PFA 올해의 팀에 4회 선정되었고 ESM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다.

벨기에 올해의 선수상을 3회 연속으로 수상한 아자르는 다년간 붉은 악마 군단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세 번의 월드컵과 두 번의 UEFA 유로에 출전했는데 특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대표팀 역사상 최고의 월드컵 성적인 3위에 올린 일등 공신이었음은 물론 본인도 실버볼을 수상하며 대회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는데 혹자는 모드리치보다도 우수한 활약상을 보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18위 마리우 자갈루

 


생년월일: 1931년 8월 9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1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 정상급 레프트윙으로 기술적으로 훌륭했을 뿐만 아니라 높은 수준의 전술안과 지치지 않는 지구력을 활용해 왕성한 활동량을 통해 넓은 범위에 영향을 끼쳤는데 중원 싸움에 가세하기도 했으며 소속팀 동료이자 대표팀 동료인 니우통 산투스의 오버래핑을 효과적으로 커버하기도 했던 미래형 윙어였다.

리우 데 자네이루의 클럽에서 주로 활약했던 자갈루는 플라멩구에서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3연패를 이뤄냈고 같은 주 라이벌이 보타포구로 이적해서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연패 및 1962년 6관왕을 이끌었다. 자갈루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에서만 개인 통산 5회 우승을 이뤄냈지먼 펠레의 산투스, 줄리뉴의 파우메이라스에 의해 막혀 전국리그에서는 우승을 이뤄내진 못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카누테이루, 주제 마리아 페페와의 치열한 주전 경쟁에서 플레이 스타일로 인한 전술적인 선호도 덕에 주전 자리를 차지했던 자갈루는 감독들의 기대에 부응해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에서 우승을 이뤄냈고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득점해 대회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되었다.

 

 

17위 주제 마시아 페페

 


생년월일: 1935년 2월 25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산투스 FC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 브라질 축구의 세 명의 스타 레프트윙 중 한 명으로 왼쪽 사이드에서 거침없는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돌파했으며 위치와 거리를 가리지 않는 기습적인 슈팅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에 사람들은 그를 두고 빌라의 대포라 불렸다. 

선수 생활을 오직 산투스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으로 산투스 역대 최다 출전자이자 펠레에 이어 최다 득점 2위에 올라있는 윙어로 펠레, 지투와 함께 산투스의 황금기를 이끈 1등 공신으로 10번의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경험했으며 전국리그에서도 5연패를 포함한 6회 우승을 달성했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2연패를 기록하며 당대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다. 특히 1962년에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와 전국리그를 모두 석권함은 물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는 당대 남미 최강의 팀인 페냐롤을 꺾으며 트레블을 달성했고 추가로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유럽 최강의 팀인 에우제비우의 벤피카를 꺾는 기염을 토했다.

 


16위 라이언 긱스

 


생년월일: 1973년 11월 29일
국적: 웨일스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0년과 2000년대 잉글랜드 축구 무대를 풍미했던 레프트윙으로 조지 베스트의 재림이라 불렸을 정도로 화려한 드리블 돌파와 왼발의 마법사라 불렸을 정도로 왼발 크로스와 슈팅에 능했으며 베스트의 단점인 자기 관리 부분에서는 베스트와 완전히 다른 면모를 보이며 20년간 최정상 레벨의 무대에서 경쟁력을 유지했으며 적어도 그라운드 안에서는 깨끗하고 헌신적인 플레이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24년간 기복 없는 활약을 펼친 철강왕이었던 긱스는 프리미어리그 우승 13회와 FA컵 우승 4회, 그리고 1998-99 시즌과 2007-08 시즌에는 각각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는데 각각 트레블과 더블을 이뤄내며 퍼기의 아이들 중 가장 꾸준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퍼거슨을 도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 역대 최다 출전자인 긱스는 PFA 올해의 영 플레이어 2연속 수상했고  PFA 올해의 팀에 6회 선정되었는데 유망주였던 1992-93 시즌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발롱도르 9위에 올랐고 황혼기인 2008-09 시즌에는 팀동료 호날두와 FWA 올해의 선수 수상자 제라드를 제치고 P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15위 치보르 졸탄

 


생년월일: 1929년 8월 23일
국적: 헝가리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부다페스트 혼베드

1950년대를 대표하는 아웃사이드 레프트 중 한 명으로 인사이드 레프트와 효율적인 스위칭 플레이로 상대 수비진을 교란시키며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드리블과 슈팅, 그리고 킬패스에 모두 능했음은 물로 1955년에는 정규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을 정도로 득점력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매직 마자르와 부다페스트 혼베드에서 푸스카스와 파트너를 이루며 상대 수비수들을 괴롭힌 치보르는 헬싱키 올림픽 금메달과 1948~1953 중유럽컵 우승을 이뤄냈고 웸블리와 부다페스트에서는 잉글랜드 대표팀을 각각 6-3, 7-1이라는 경악적인 점수차로 침몰시켜 헝가리의 시대를 알렸다. 비록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우승후보 1순위라는 기대에 미치진 못하며 조국이 준우승에서 멈췄지만 치보르는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다.

페렌츠바로시와 혼베드에서 활약했으나 정부가 외세인 소련군을 불러 헝가리 민중 혁명을 진압하는 것을 보고 회의감을 느끼고 스페인에 망명한 치보르는 스페인 망명 이후에는 쿠발라의 도움을 받아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했는데 주로 유럽대항전 큰 경기에서 자주 기용되며 라리가 2연패와 유러피언 컵 결승을 이뤄냈다.



14위 즈비그니에프 보니엑

 


생년월일: 1956년 3월 3일
국적: 폴란드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80년대 동유럽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뛰어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돌파해 벼락같은 양발 슈팅력을 보여줬으며 축구 지능과 기본기가 모두 뛰어나 다양한 포지션을 뛸 수 있었으며 특히 저녁 경기에 강한 모습을 보여 아름다운 밤이라 불렸다.

비제프 우치와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보니엑은 전자의 클럽에서 폴란드 리그 2연패를 이뤄내며 리그 MVP에 2회 선정되었고 1982 스페인 월드컵 이후 유벤투스로 이적하며 1982-83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983-84 시즌 세리에 A와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1984-85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고 보니엑 개인도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6회 선정되었다.

폴란드 대표팀에서도 데이나 시대 이후 에이스로 군림한 보니엑은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을 시작으로 세 번의 월드컵에 참여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폴란드의 공격 작업을 지휘하며 조국이 3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데 큰 공을 세워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에 올랐고 은퇴 이후에는 2019 폴란드 축구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 폴란드 베스트 일레븐에 헌액되었으며 같은 해에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되었다.



13위 앨런 모튼

 


생년월일: 1893년 4월 24일
국적: 스코틀랜드
신체조건: 키 162cm / 몸무게 57kg
주 소속팀: 레인저스 FC


1920년대 영국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이자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체구는 작았지만 탄탄한 바디 밸런스와 환상적인 드리블 솜씨로 상대 수비수의 맨 마킹을 손쉽게 따돌려 팬들로부터 '작은 푸른 악마'라고 불렸다.

퀸즈 파크에서 두각을 나타낸 뒤 레인저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모튼은 특히 레인저스에 머무는 동안에는 스코틀랜드 풋볼 리그 9회 우승 및 스코티시 컵 3회 우승을 이뤄내며 라이벌 셀틱을 밀어내고 레인저스를 명실상부한 스코틀랜드의 패자로 만들었기에 레인저스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다.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도 에이스로 활약한 모튼은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 7회 우승을 이뤄내 스코틀랜드 대표팀의 전성시대를 열었고 1928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친선 대회에서 스코틀랜드의 5-1 대승을 주도하며 사람들로부터 웸블리의 마법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12위 클리프 바스틴

 


생년월일: 1912년 3월 14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1930년대 영국을 풍미한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측면에서 중앙으로 침투한 후 강력한 슈팅으로 마무리하는 일명 컷인 플레이를 주로 보여줬던 시대를 앞서나갔던 아웃사이드 포워드였으며 기본기가 탄탄하고 플레이메이킹에도 일가견이 있었기에 종종 인사이드 레프트로도 기용되었다.

채프먼 체제 아스날의 황금기의 에이스로 군림한 바스틴은 잉글랜드 풋볼 리그 4연패를 포함해 총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커뮤니티 채리티 실드 5회 우승, 그리고 FA컵 2회 우승을 이뤄낸 활약을 인정받아 사후인 1998년에 풋볼 리그 100인의 레전드로 선정되었다.

삼사자 군단에서는 에릭 브룩과의 공존 문제로 인해 인사이드 레프트로 주로 나섰는데 1934년 하이버리에서 월드컵 우승팀 이탈리아를 상대로 출전해 3-2로 승리하는데 공헌했으며 이때의 활약을 인정받아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1위 후안 호야

 


생년월일: 1934년 2월 25일
국적: 페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60년대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 중 하나로 팬들로부터 검은 11번이라 불렸으며 흑인 특유의 탄력과 재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드리블로 상대의 맨 마킹을 따돌리고 왼발 크로스를 통해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직접 슈팅하는데도 능해 스트라이커로 기용되기도 했다.

알리안사 리마에서 페루 무대를 평정한 뒤 당대 남미 최고의 클럽 페냐롤에 입단한 호야는 페냐롤에서 '남미의 파코 헨토' 와 같은 모습을 보였는데 우루과이 프리미어 디비시온 6회 우승을 포함해 우루과이 무대에서 크고 작은 트로피를 13개를 들어올렸으며 1961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고 그 해에 열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에우제비우를 앞세운 벤피카를 꺾고 페냐롤이 우루과이, 남미, 세계 무대에서 모두 챔피언에 오르는 트레블을 이뤄냈다. 그리고 1966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및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고 1969년에는 역대 인터콘티넨탈 우승팀끼리 최강자를 가리는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스 슈퍼컵을 우승을 이뤄냈다.

팀 커리어뿐만이 아니라 개인으로도 빛났던 호야는 1961년 인터콘티넨탈컵 2차전, 홈경기에서는 벤피카를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하며 5-0 대승을 이뤄냈으며 1967년에는 로 스포르트 일루스트라로 선정 남미 베스트 일레븐과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69년에는 엘 그라피코지가 선정한 1960년대 포지션별 남미 최고의 선수 레프트윙 부문에서 페페, 자갈루, 레오넬 산체스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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