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윙 Top 10

포지션별 역대 TOP 100/레프트윙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윙 Top 10

토르난테 2024. 3. 9. 15:50
728x90
728x90

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10위 프란시스코 헨토

 


생년월일: 1933년 10월 21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칸타브리아의 광풍'

1950년대 하반기를 대표하는 아웃사이드 레프트 중 하나로 공을 달고도 100m를 11초에 질주하는 빠른 스피드와 탄탄한 기본기, 그리고 중거리 슈팅 능력까지 겸해 사람들을 그를 두고 칸타브리아의 광풍이라 불렸다.

레알 마드리드 역대 최고의 레전드 중 하나로 추앙받는 헨토는 저승사자 군단 시대와 Yeye 마드리드 시대를 모두 거치며 라리가 12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3회 우승과 라틴 컵 2회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 6회 우승을 이뤄내며 호날두와 디 스테파노를 제치고 개인 통산 최다 빅이어 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스페인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다소 아쉬웠지만 클럽에서의 활약만큼은 대단했던 헨토 개인도 마르카 평점 기반 라리가 베스트 일레븐 4회 선정되었고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 3회 연속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5회 선정되어 1959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8위에 오르는 등 클럽에서 오랫동안 높은 고점에서 활약해 20세기 최고의 레프트윙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9위 롭 렌센블링크

 


생년월일: 1947년 7월 3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RSC 안더레흐트

'뱀 인간'

1970년대 하반기 유럽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뱀 인간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려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벗겨냈으며 교묘한 탈압박 스킬과 좌우로 길게 벌려주는 패스에도 능했으며 득점력도 준수한 완성형 윙어였다.

오랑예 군단의 에이스지만 에레데비시보다는 벨기에 무대에서 더 이름을 날렸던 선수로 특히 파트비스 군단에서의 그의 활약은 발군이었는데 주필러리가 2회 우승과 벨기에컵 4회 우승과 리그컵 2회 우승은 물론 유럽 무대에서도 UEFA 컵 위너스컵에서 3회 연속 결승에 진출해 그중 두 번 우승했으며 UEFA 슈퍼컵에서도 당대 최강이라 불리는 바이에른 뮌헨과 리버풀을 모두 꺾었고 그 과정에서 렌센블링크는 1975-76 시즌 컵 위너스컵 결승전에 웨스트햄을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해 4-2 대승을 이끌었으며 1976 슈퍼컵에서는 유러피언 컵 챔피언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했으며 1977-78 시즌에도 오스트리아 빈을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했고 UEFA 슈퍼컵에서 리버풀을 상대로도 득점하며 유럽 무대 우승이 걸린 결승전에서는 그가 득점하면 안더레흐트는 우승했다.

안더레흐트 소속으로 개인적으로도 많은 영광을 누렸던 렌센블링크는 1972-73 시즌 주필러리가 득점왕에 올랐으며 1975-76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 올랐고 벨기에 주필러리가 MVP를 수상했다. 국제적으로도 옹즈 몽디알에서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1976년부터 1979년까지 4년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1976년 옹즈도르를 수상했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976년 2위, 1977년 7위, 1978년 3위에 오르며 유럽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군림했다.

오랑예 군단에서도 렌센블링크의 활약상은 절정에 달했는데 오랑예 군단의 유니폼을 입고 1974 서독 월드컵과 유로 1976, 그리고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활약했으며 서독 월드컵에서는 크루이프를 보좌하며 결승 진출에 공헌했고 크루이프가 빠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주최 측의 편파판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힘으로 직접 네덜란드를 결승에 올려놓는 맹활약을 펼쳤다.

 


8위 파벨 네드베드

 


생년월일: 1972년 8월 30일
국적: 체코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2개의 심장, 3개의 폐'

2000년대 상반기 최고의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강력한 체력으로 공수 양면에 걸쳐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며 경기장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창의적이진 않았지만 정확한 패스를 통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우수한 킥력도 겸비했으며 "나는 하루 12시간을 연습했다, 두 다리 모두 우월하다고 느낄 때 희열을 느꼈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양발을 잘 썼던 만능 미드필더 자원이었다.

두클라 프라하에서 데뷔해 스파르타 프라하를 거쳐 세리에 A의 라치오와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보낸 네드베드는 라치오에서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누리며 1997-98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UEFA컵 준우승, 1998-99 시즌 컵 위너스컵 우승과 1999-2000 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다. 2001-02 시즌에 유벤투스로 이적한 뒤에도 세리에 A 2연패를 이뤄냈고 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이뤄내며 2003년 발롱도르를 수상하기도 했다.

네드베드는 개인도 발롱도르 수상 이외에도 체코 골든볼 6회 선정, UEFA 올해의 팀 3회 선정 및 ESM 올해의 팀 2회 선정이라는 성과를 냈으며 2002-03 시즌에는 UEFA 클럽 베스트 미드필더와 2003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및 올해의 외국인 선수를 수상했으며 평점왕 구에린 도르도 수상했다.

체코 대표팀에서도 UEFA 유로 1996에서 조국의 결승 진출에 큰 역할을 하며 전 유럽의 주목을 받았고 UEFA 유로 2004에서도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4강에 올리며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으나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7위 라이문도 오르시

 

 

생년월일: 1901년 12월 2일
국적: 아르헨티나 →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Il Violinista'

1920년대와 30년대 당시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빠른 스피드와 교묘한 드리블을 겸비해 상대 수비수를 속이며 크로스를 올려 공격수를 지원하는 능력과 왼발 슈팅으로 직접 마무리하는 능력 모두 훌륭했으며 중요한 경기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아르헨티나의 인데펜디엔테에서 데뷔해 정규리그 우승 3회를 이뤄낸 라이문도 오르시는 이탈리아로 건너가서는 유벤투스의 공격진 핵심으로 세리에 A 5연패에 큰 공을 세워 구단을 전국구급 인기 구단으로 만들었고 다시 남미로 돌아가서는 페냐롤에서 우루과이 프리미어 디비시온 우승을 했으며 플라멩구에서 캄파오네투 카리오카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 시절에는 1927 코파 아메리카 우승컵을 들어냈고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오르시는 이탈리아로 귀화한 뒤에는 1927-30 중유럽컵과 1933-35 중유럽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1-0으로 뒤지던 와중 구아이타의 크로스를 받아 골대를 등진 채로 오른발로 공을 받았고 골대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바로 왼발로 터닝 슈팅을 날려 동점골을 기록하며 승부를 연장전까지 끌고 갔으며 결국 아주리의 우승에 기여했다.

 


6위 톰 피니

 


생년월일: 1922년 4월 5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프레스턴 노스 엔드

'프레스턴의 배관공'

1940년대 하반기와 1950년대 상반기, 메튜스와 함께 영국 축구 최고의 윙어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빠른 스피드와 정교한 양발 크로스, 그리고 강력한 슈팅을 왼발과 오른발을 가리지 않고 날렸으며 작은 채구와는 다르게 헤딩에도 능했다.

선수 생활 대부분을 약체인 프레스턴 노스 엔드에서 보낸 핀니는 여러 팀들이 그를 영입하기를 원했지만 그는 프레스턴이 좋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했는데 심지어는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당했을 때도 충성심을 보여주며 결국 승격시켰고 결국 약팀인 프레스턴 노스 앤드의 에이스로 팀을 1부 리그 준우승 2회와 1953-54 시즌 FA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팬들은 군계일학의 핀니와 다른 선수를 두고 과거 핀니의 직업이었던 배관공을 언급하며 열 명의 떨거지들을 이끄는 한 명의 배관공이라 불렸는데 실제로 피니는 PFA 올해의 선수에 2회 선정되며 명성을 떨쳤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핵심으로 활약한 피니는 브리티시 홈 챔피언쉽에서 10회 우승을 이뤄냈으나 정작 1950 미국 월드컵과 1954 스위스 월드컵과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기대 이하에 성적을 보여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0년대에 보여준 우수한 퍼포먼스를 인정받아 은퇴한 이후에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5위 드라간 자이치

 


생년월일: 1946년 5월 30일
국적: 세르비아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매직 드라간'

유고슬라비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환상적인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진을 장판파의 조자룡처럼 휘저었으며 강력하면서도 정교한 슈팅은 물론 크로스도 우수해 20세기 최고의 왼발 크로서로 평가받앆고 여기에 수비 가담까지 완벽하게 하며 시대마저 앞서 나간 불세출의 윙어였기에 매직 드라간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츠르베나 즈베즈다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이자 최다 득점자인 자이치는 리그 5회 우승과 유고슬라비아 컵 4회 우승, 그리고 1968년 미트로파 컵 우승을 이뤄냈고 자이치 개인도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7회 선정되었으며 1968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3위에 올랐고 1969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올해의 스포츠 선수상을 수상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의 활약도 대단했는데 특히 UEFA 유로 1968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주며 토너먼트에 진출한 네 팀중 가장 약하다고 평가받았던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을 이끌어 준우승을 차지했고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8강2차 조별리그 진출에 큰 공을 세웠는데 그 과정에서 자이르를 9-0으로 대파하기도 했다. UEFA 유로 1976에서도 준결승에 오르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특히 1968년에 자이치가 보여준 활약은 거장들로부터 크게 호평받았는데 역대 최고의 공격수 펠레는 그에 대해 "자이치는 발칸 반도가 낳은 기적입니다. 진정한 마법사죠. 그가 브라질리안이 아니라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는 제가 이제껏 보아온 선수 중 가장 자연스럽게 축구하는 사나이예요."라고 평가했으며 역대 최고의 수비수 베켄바우어는 "1968년 발롱도르는 누가 뭐래도 드라간 자이치의 것이었습니다. 조지에게는 미안하지만, 1968년은 자이치의 해였어요. 그는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보여줬죠."라고 말했을 정도로 대단했다.



4위 프랑크 리베리

 


생년월일: 1983년 4월 7일
국적: 프랑스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페라리베리'

2010년대 바이에른 뮌헨이 자랑했던 측면 라인인 로베리 라인의 일원으로 창의적인 패싱 센스에서 나오는 플레이메이킹 능력과 찬스 메이킹 능력은 물론 감각적인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단숨에 붕괴시키는데 능했으며 피치 위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줘 분데스리가의 왕이라 불렸다.

올림피크 마르세유에서 2005-06 시즌 리그앙 올해의 영 플레이어상을 수상했으며 올해의 팀에 들었으며 발롱도르 13위에 올라 이름을 알렸으며 이후 바이에른 뮌헨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구단을 암흑기의 수렁에서 꺼내는데 성공해 2012-13 시즌 트레블을 포함해 분데스리가 9회 우승, DFB 포칼 6회 우승, 그리고 2012-13 시즌에는 분데스리가와 DFB포칼에 이어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이뤄내며 트레블을 달성했고 이어서 슈퍼컵과 클럽월드컵도 제페했다.

레 블뢰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만큼의 활약은 하지 못했지만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지단, 앙리와 함께 프랑스의 공격을 이끌며 늙은 수탉이라 조롱받던 프랑스를 월드컵 결승에 올려놓았으며 2014년 명예 회복의 기회를 잡았으나 월드컵을 앞두고 당한 부상 때문에 대표팀에서 하차했고 이후 대표팀을 은퇴했다.

리베리는 바이에른에 머무는 동안 수많은 개인상을 휩쓸었는데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으며 ESM 올해의 팀에도 2회 선정되었고 특히 트레블을 이뤄냈던 2012-13 시즌에는 발롱도르 유력 후보에 올랐으며 실제로 기존 방식인 기자단 투표에서는 1위를 했으나 재투표로 인해 억울하게 피파 발롱도르  3위에 그쳤다.



3위 네이마르

 


생년월일: 1992년 2월 5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Mr. Rainbow Flick'

2010년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당대 최고의 드리블 실력은 물론 볼 컨트롤 실력은 물론 득점력과 왕성한 활동량을 통해 3선까지 내려가서 팀의 경기를 풀어주는 역할에 능통한 완벽한 2선 자원인데 특히 고난이도의 개인기인 사포를 구사하는 능력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산투스에서 첫 전성기를 누린 네이마르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3회 우승과 2011 시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으며 개인적으로도 브라질 세리 A 올해의 팀 3회 선정과 2011 브라질 세리 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바르셀로나에서는 전성기를 누리며 2014-15 시즌 트레블을 이뤄냈고 2015년과 2017년에 발롱도르 3위에 올라 포디움에 올랐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에서는 메시가 있었기에 발롱도르를 원했던 네이마르는 역대 이적료 1위에 해당하는 2억 2200만 유로라는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기록하며 PSG로 이적하며 리그앙 4회 우승과 구단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하는데 공헌했으며 개인 통산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3회 선정되었다.

셀레상에서도 전체적인 활약상은 훌륭했지만 정작 메이저 대회 활약은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물론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성적이 2014 브라질 월드컵 4강과 202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이라는 성적이다. 이 대회에서 모두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2위 호나우지뉴

 


생년월일: 1980년 3월 21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외계인'

2005년, 단 1년은 펠레, 마라도나, 메시, 호나우두가 보여준 모습을 보여준 창의적인 윙어다. 외계인으로 불렸으며 다른 선수들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는 다양한 프리스타일 개인기를 경기 내내 실전에 맞게 구사하는 천재였으며 저 화려한 기술을 뛰어난 전술안과 결합해 절륜한 플레이메이킹을 구사했으며 프리킥 실력마저 역대급 레벨로 평가받았다.

그레미우에서 캄파오네투 가우초 우승을 이끌며 두각을 나타냈고 파리에서 정상급 선수로 올라서며 바르셀로나에 입단한 호나우지뉴는 FC 바르셀로나에서는 바르셀로나를 수렁에서 구하며 라리가 2연패를 이뤄냈으며 2005-06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대단한 성적을 거뒀는데 이때 호나우지뉴의 퍼포먼스가 대단해 2005년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2005-06 시즌에는 라리가와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도움왕을 수상하며 2005-06 시즌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무절제한 생활과 부실한 몸관리로 인해 고점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며 2007-08 시즌에 최악의 부진을 거두자 AC 밀란으로 떠난 호나유지뉴는 전성기 때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세리에 A 도움왕을 수상하며 클래스를 증명했고 이후 브라질 무대로 돌아가서는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는 2012년에 브라질 세리 A MVP와 팬선정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2013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내는데 크게 공헌하며 2013 남미 올해의 축구선수에 선정되며 커리어를 완성한다.

셀레상에서도 외계인이란 명성을 이어가며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호나우지뉴는 1999년 코파 아메리카에 처음으로 명단에 올렸으나 히바우두와 제 호베르투에 밀려 벤치 신세를 졌었다. 그러나 2002 월드컵에서 호나우두, 히바우두와 함께 3R이란 공격 삼각편대를 이뤄내 우승에 크게 공헌해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다. 이후 호나우두를 밀어내고 대표팀의 에이스로 군림해 2005 컨페드컵을 우승했으나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보이며 8강에서 탈락했다.



1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생년월일: 1985년 2월 5일
국적: 포르투갈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득점왕'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타성을 지난 스타이자 득점력만큼은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불렸는데 양 발과 머리로 모두 득점하는 데 능했고 상대적으로 플레이메이커로서의 능력은 부족했지만 괴물 같은 득점력과 우수한 피지컬로 이 단점을 덮어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의 반열에 올랐다.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데뷔해 어린 나이에도 에이스로 활약했고 이를 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 퍼거슨이 그를 영입했으며 지금은 맨유팬들과 사이가 틀어졌지만 2000년대 당시에는 팀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프리미어리그 3연패는 물론 2003-04 FA컵 우승, 리그컵 2회 우승, 그리고 2007-08 시즌에는 리그 우승에 이어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하며 맨유를 2000년대 하반기 최강의 클럽으로 올렸고 개인적으로도 PFA 올해의 팀에 4년 연속 선정되었으며 특히 2007-08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은 물론 유러피언 골든슈를 석권했으며 PFA 올해의 선수와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모두 수상했으며 챔피언스리그 득점왕도 수상했고 2008년에는 생애 첫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2009년 당시 역대 최고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호날두는 9년간 팀에 머물며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의 자리에 올랐음은 물론 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 각각 2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6회와 라리가 득점왕 및 유러피언 골든슈 4회 수상이라는 업적을 이뤄냈고 갈락티코스 소속으로 발롱도르 1위만 4회 수상했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도 득점행진은 어디 안 가 A매치 역대 최다 득점을 기록했으며 유로 2016 우승과 2004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2018-19 UEFA 네이션스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하지만 자신이 중심이 된 이후로 월드컵 토너먼트에서 극도록 부진했으며 이는 유로 토너먼트에서도 일부 이어져 토너먼트에 약하다는 부분으로 저평가를 받기도 하며 심지어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3차전 대한민국전에서 극도록 부진하며 결국 토너먼트에서는 벤치로 밀려났다.

 


이전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윙 20위~11위

처음으로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