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윙 30위~2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레프트윙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윙 30위~21위

토르난테 2024. 3. 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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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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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30위 보라 코스티치

 


생년월일: 1930년 6월 14일
국적: 세르비아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1960년대 초반 동유럽 축구계를 흔들었던 아웃사이드 레프트이자 스트라이커로 우수한 공간 이해와 신속정확한 상황 판단력을 토대로 한 지능적인 컷인 플레이와 높은 수준의 전술 이해도와 강력하면서도 정확한 슈팅력을 겸비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코스티치는 리그 7회 우승과 유고슬라비아 컵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코스티치 개인도 리그 득점왕 2회 수상 및 1958~1960 인터시티 페어스 컵 득점왕을 차지해 1960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12위에 올랐으며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에 한정해서는 드라간 자이치보다도 골을 많이 넣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주 득점원으로 이름을 날린 코스티치는 1955-1960 중유럽컵에서 데뷔했고 UEFA 유로 1960에서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1960 로마 올림픽에서도 6골을 득점하며 금메달을 차지하는데 공헌하는 등 두 대회에서 우수한 활약을 펼치며 1960년 발롱도르 12위에 올랐다.



29위 브란코 제베치

 


생년월일: 1929년 5월 17일
국적: 크로아티아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파르티잔 FK

1950년대 유고슬라비아 축구계의 스타 중 한 명으로 굉장히 다재다능해 아웃사이드 레프트가 주 포지션이지만 인사이드 포워드, 레프트 하프, 레프트백, 센터백을 모두 무리 없이 소화했으며 특히 레프트백을 맡았을 때에는 뛰어난 임기응변 능력을 바탕으로 한 오버래핑을 보여주기도 했다.

자그레브의 여러 팀을 떠돌다가 파르티잔에서 전성기를 누린 제베치는 해당 구단에서 유고슬라비아 컵 3회 우승을 이뤄냈고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는 1960-61 시즌 생애 첫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말년에는 독일의 알레마니아 아헨에서 4년간 활약했고 이 인연으로 지도자 생활을 주로 독일에서 했는데 바이에른 뮌헨과 함부르크의 황금기의 토대를 닦기도 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특유의 다재다능함을 뽐내며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와 득점력을 보여주며 팀을 결승에 올려놨지만 매직 마자르라는 강적을 만나 아쉽게 패해 은메달에 머물렀나 제베치 개인은 득점왕에 올랐고 1954 스위스 월드컵과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전자의 대회에선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후자의 대회에선 센터백으로 8강에 진출했고 UEFA 유로 1960에서는 백업 멤버로 팀의 결승 진출을 지켜봤다.

 


28위 피트 카이저

 


생년월일: 1943년 6월 14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유럽 정상급 레프트윙 중 한 명으로 센스 넘치는 드리블 돌파와 정밀도 높은 왼발 얼리크로스를 활용해 득점 찬스를 만드는데 능했으며 상대방의 눈을 속이는 페이팅에도 일가견이 있었음은 물론 상대의 예측을 불허하는 왼발 슈팅으로 이름을 날렸기에 유럽축구연맹 웹사이트에서는 그를 두고 '레프트윙의 천재, 기술적인 공격수, 요한 크루이프의 최고조력자'라고 묘사했다.

AFC 아약스에서 선수 생활 전부를 보낸 원 클럽맨 카이저는 상술한 대로 요한 크루이프의 최고조력자라는 말에 걸맞게 크루이프를 훌륭하게 보좌했는데 이 둘은 훌륭한 스위칭 플레이로 이름을 날리며 세간으로부터 로얄 페어라 불리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는데 에레데비시 6회 우승, KNVB컵 4회 우승 및 유러피언컵 3연패, UEDA 슈퍼컵 2회 우승 및 1972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이라는 찬란한 업적을 세우며 토털 풋볼의 시대를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카이저는 1970-71 시즌 유러피언컵에서 경이로운 클러치 능력을 보여줬는데 16강 바젤과의 1차전에서 선제 결승골, 8강 셀틱과의 1차전에서 쐐기골 및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준결승 2차전 경승골 및 결승전 파나티나이코스전에서 날카로운 크로스로 디르크 반 데이크의 선제 결승골을 도왔고 1972년에는 팀의 주장으로 트레블을 이뤄내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5위에 올랐다. 그리고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로 준우승을 경험했다.

 

 

27위 안토닌 푸치

 


생년월일: 1907년 5월 16일
국적: 체코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슬라비아 프라하

체코슬로바키아 역대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쾌속의 드리블과 정교함과 강력함을 겸비한 뛰어난 슈팅 감각으로 팀의 주포로 활약했다.

SK 스미호프에서 데뷔해 슬라비아 프라하에서 전성기를 보낸 안토닌 푸치는 슬라비아 프라하의 전성기를 이끌며 체코슬로바키아 1부 리그 7회 우승 및 중앙 보헤미안 컵 6회 우승을 이뤄냈고 푸치 개인도 1927년과 1928-29 시즌에는 리그 득점왕을 수상했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네예들리와 함께 팀 공격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중유랍컵에 네 번 참가해 1936~1938년 대회에서 준우승을 이뤄냈고 두 번의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우수한 활약을 펼치며 불리한 판정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26위 치쿠

 


생년월일: 1922년 1월 7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바스쿠 다 가마

1940년대 하반기 남미 정상급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뛰어난 운동능력과 테크니컬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의 맨 마킹을 뚫어내고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을 통해 득점 찬스를 만들었다.

일명 '승리의 급행열차'라 불렸던 바스쿠 다 가마의 전성시대를 이끌면서 캄페오나투 카리와 5회 우승을 이뤄냈고 1948년에는 남아메리카 클럽 챔피언십 우승을 포함해 공식 대회 및 친선 대회를 모두 포함해 43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데 큰 공을 세우며 아르헨티나로부터 남미 축구의 패권을 일시적으로 가져오는데 공헌했다.

셀레상에서도 팀 동료인 아데미르, 프라이사와 함께 1선 공격 진영을 구축해 1946 코파 아메리카와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조별리그에선 침묵했지만 결승리그 스페인전과 스웨덴전에서 멀티골을 득점하며 브라질의 우승 가능성을 높였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우루과이의 수비수 감베타에게 막히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5위 파울루 푸트레

 


생년월일: 1966년 2월 28일
국적: 포르투갈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FC 포르투

1980년대 후반 정상급 레프트윙으로 유럽의 마라도나라고 불렸을 정도로 교묘한 드리블과 우수한 센스에서 나오는 패싱력은 물론이고 바람과 같이 빠른 스피드와 창의적인 플레이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데 능했다. 이런 화려한 플레이스타일과 수려한 외모로 인기가 많아 은퇴한 이후엔 푸트레의 전기영화를 개봉할 정도로 스타성이 뛰어났다.

포르투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를 누린 푸트레는 포르투에서는 프리메이라 리가 2연패와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 올해의 선수 2연패를 이뤄냈으며 1986-87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격파하고 유럽 챔피언에 올린 일등 공신이었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1990-91 시즌에는 팀의 주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주장으로서 코파 델 레이 2연패를 이뤄냈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는 1986 멕시코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이후에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전성기를 일찍 마감하며 대표팀에서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상술한 클럽 활약 덕분에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3회 선정되어 1987년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



24위 사디오 마네

 


생년월일: 1992년 4월 10일
국적: 세네갈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세네갈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34.84km/h에 달하는 속도를 활용한 드리블로 상대방의 밀집 수비를 단번에 뚫어내는 것은 물론, 영리한 위치 선정 능력까지 겸비해 공을 받기 가장 좋은 위치를 미리 선점하는 능력도 뛰어나며 우수한 바디 밸런스를 활용한 몸싸움도 우수하며 3선까지 내려와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하는 능력도 뛰어난데 양발을 모두 잘 쓰며 큰 경기에서 클러치 능력이 빛나는 선수였다.

사우스햄튼에서 두각을 나타낸 뒤 클롭 체제의 리버풀에서 핵심멤버로 활약하며 2019-20 시즌, 프리미어리그 개편 이후 리버풀의 첫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는 세 번이나 진출해 2018-19 시즌에는 우승을 이뤄냈으며 2021-22 시즌에는 도메스틱 컵 더블을 이뤄냈으며 2018-19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수상한데 이어 옹즈도르도 수상했다. 그러나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세네갈 대표팀에서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는 우승을 이룸과 동시에 대회 MVP로 선정되었으며 2022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2위에 올랐으나 부상으로 인해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아쉽게 불참했다.



23위 유프 하인케스

 


생년월일: 1945년 5월 9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현세대의 축구 팬들한테는 바이에른 뮌헨의 트레블을 이끈 명장으로 더 유명하지만 현역 시절에는 스트라이커와 레프트윙 두 포지션에서 모두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던 공격수였으며 당대 유럽에서 가장 빠르다고 평가받았던 엄청난 순간 스피드와 뛰어난 공간지각 능력을 활용해 상대 수비라인 뒤로 침투해 날카로운 양발 슈팅으로 득점하는 전천후 공격수였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하노버에서 선수 생활을 보낸 하인케스는 특히 묀헨글라트바흐에서는 분데스리가 3연패를 포함해 분데스리가 4회 우승과 1972-73 DFB포칼 우승, 1974-75 UEFA컵 우승, 그리고 1976-77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ㅇ분데스리가 득점왕은 물론 3대 유럽 대항전에서 모두 득점왕에 오른 이력이 있었던 하인케스는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고 특히 1974-75 시즌의 활약이 대단해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7위에 랭크되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좋은 활약을 펼친 하인케스는 UEFA 유로 1972에서 게르트 뮐러와 함께 훌륭한 파트너십을 보여주며 팀을 우승시키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포함되었으나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로 우승을 경험했다.

 

 

22위 엔리코 가르시아

 


생년월일: 1912년 11월 20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왼발의 시인이라 불렸던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윙 중 한 명으로 현란한 볼 컨트롤 능력과 테크니컬한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를 벗겨낸 뒤 중거리 슈팅을 날려 득점하던 선수였다. 오른발을 잘 쓰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가르시아는 "만약 내가 두 다리를 모두 사용하는 법을 배우려고 했다면 왼쪽 다리로 그리 능숙하게 기술을 쓸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함나시아에서 데뷔해 로사리오 센트럴과 라싱 클루브에서 전성기를 보낸 가르시아는 소속팀에서는 우승 트로피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실력은 확실하게 인정받아 코파 아메리카에 3회 출전해서 1937년 대회와 1941년 대회에서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1942년 대회에서도 준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여러 친선 대회에서도 총 12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아르헨티나의 전성시대를 대표했다.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저널리스트 다니엘 판세리는그를 두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웃사이드 레프트였으며 펠릭스 로스타우가 팀에는 더 나았지만 엔리케 가르시아는 필드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라고 평가했으며 엔리케 가르시아 본인도 자신의 선수 시절에 자부심이 대단해 단골 카페에서 종종 스스로를 역대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21위 이사벨라노 그라딘

 


생년월일: 1897년 7월 8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10년대 세계 축구계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부업으로 대륙 단위 육상 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다섯 번이나 따냈을 정도로 엄청난 스피드를 활용해 상대 수비라인을 돌파해 득점하는 플레이를 선호했다.

 

페냐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7년간 활약한 그라딘은 클루브 나시오날의 전성시대에 밀려나 리그 2회 우승에 그쳤음에도 그라딘 개인의 활약은 대단했다고 전해졌으며 그의 활약 덕택에 동시대의 브라질, 아르헨티나와는 다르게 흑인 축구 선수가 활약하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 핵심 멤버로 활약한 그라딘은 1916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 MVP, 득점왕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괴력을 뽐냈으며 다음 대회인 191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우승하며 2연패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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