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100위~9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공격형 미드필더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100위~91위

토르난테 2024. 2. 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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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100위 안드레아스 헤어초크

 


생년월일: 1968년 9월 10일
국적: 오스트리아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베르더 브레멘

1990년대 오스트리아 최고의 축구 선수이자 분데스리가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로 마치 자국 역사상 최고의 음악가인 모차르트를 연상시키는 우아한 패스와 깔끔한 드리블로 공격을 이끌었으며 정교한 왼발 프리킥과 코너킥으로도 명성을 떨쳤다.

라피트 빈에서 데뷔해 주목받았던 헤어초크는 베르더 브레멘에 입단한 첫 시즌에 공격수 윈톤 루퍼와 합을 맞추며 팀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견인했고 이듬해에는 1993-94 시즌 DFB포칼 우승을 이뤄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다가 1995-96 시즌에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으나 부진했고 다시 베르더 브레멘으로 돌아와 여섯 시즌을 더 보내며 1997-98 시즌 인터토토컵 우승 및 1998-99 시즌 DFB 포칼 우승을 이끌었고 헤어초크 개인도 1994-95 시즌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오스트리아 대표팀에서도 A매치 103경기에 출전하며 핵심으로 군림한 헤어초크는 1992년 오스트리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과 1998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 참가했다.



99위 루이스 아라고네스

 


생년월일: 1938년 7월 28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최고의 인물로 평가받는 선수로 팬들로부터 Zapatones 즉 커다란 신발로 불렸을 정도로 발이 컸던 그는 큰 발로 정교함과 강력함을 겸비한 패스와 슈팅을 날렸고 넓은 시야를 겸비해 중장거리 패스에도 능했던 훌륭한 선수였으며 피지컬도 우수해 상대의 압박이 잘 통하지 않았으며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이 가능했을 정도로 높은 축구 지능도 가지고 있었으며 프리킥에도 능했다.

초년에는 여러 팀을 떠돌았으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정착한 뒤에는 기량을 만개했는데 알레띠의 공격을 이끌며 라리가 3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73-7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바이에른 뮌헨과의 재경기에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클럽에서는 큰 족적을 남겼지만 아르마다 군단에서는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벤치에서 대기하는 일이 잦았으나 선수 은퇴 후 감독으로는 아르마다 군단의 UEFA 유로 2008 우승을 이뤄냈며 대표팀에서 이룬 족적이 부족하다는 한을 풀어냈다.

 


98위 아베디 펠레

 


생년월일: 1964년 11월 5일
국적: 가나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올림피크 마르세유

본명은 아베디 아이유였으나 가나 팬들은 그의 플레이가 마치 펠레와 같다고 아베디 펠레라 불렀으며 벼락같은 스피드는 물론 펠레라는 별명이 부끄럽지 않았을 정도로 우수한 볼 컨트롤과 드리블을 보여줬으며 우수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으로 팀의 공격을 지휘했다.

1987-88 시즌에 2부 리그에서의 잠재력을 인정받아 마르세유에 합류한 펠레는 2년 동안 릴로 임대를 다녀온 뒤 경기력이 급성장했으며 이후 마르세유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리그앙 2회 우승과 1990-91 시즌 유러피언컵 준우승, 그리고1992-9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아베디 펠레 개인도 1991년부터 1993년까지 3년 연속으로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1992년에는 피파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9위에 올랐다.

가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도 평가받는데 가나 대표팀에서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다섯 번 출전해 1982년에는 우승에 기여했으며 1992년에는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코트디부아르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아베디 펠레 개인은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줬기에 대회 골든볼을 수상했다. 그리고 IFFHS는 그를 20세기 최고의 아프리카 선수 3위로 평가했으며 2021년에는 아프리카 남자 축구 올타임 드림팀에 선정했다.

 


97위 로베르트 프로시네치키

 


생년월일: 1969년 1월 12일
국적: 크로아티아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1980년대 청소년 무대를 평정했으며 1990년대의 세계 축구를 이끌 것으로 예상받았던 천재로 실제로 엄청난 볼 키핑 능력과 화려한 개인기, 그리고 위협적인 양발 슈팅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으나 다혈질적인 성격과 불성실한 성격으로 인해 롱런하지는 못했다.

1987년에 열린 U-20 월드컵에서 유고슬라비아의 우승을 이끌며 골든볼을 타낸 프로시네치키에게 츠르베나 즈베즈다가 손을 건내며 그를 품었고 그는 붉은 별 군단에 머무는 동안 리그 1989-90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리그 3회 우승을 이뤄내며 유고슬라비아 무대를 평정했고 1990-91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에서 4골을 득점하며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프로시네치키 개인도 1991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5위에 올랐다. 1991년 대회의 활약을 바탕으로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했으나 그곳에서는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오비에도에서 반등하나 싶었지만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뒤에는 재차 백업 멤버로 밀려났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 소속으로도 상술한 청소년 대회 활약 이외에도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스토이코비치와 함께 팀의 에이스로 조국의 8강행을 이끌며 대회 신인상을 수상했고 크로아티아 분리 독립 이후에는 UEFA 유로 1996에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팀의 8강 진출에 공헌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로 바트레니의 준결승 진출에 공헌했고 2002 한일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96위 주제 트라바수스

 


생년월일: 1926년 2월 22일
국적: 포르투갈
신체조건: 키 171cm
주 소속팀: 스포르팅 리스본

1940년대 하반기와 50년대에 초중반에 걸쳐 포르투갈 무대의 왕으로 군림했던 위대한 스포르팅 팀의 핵심 선수로 유려한 패스와 넓은 시야를 앞세워 팀의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아 활약했는데 그 활약상이 대단해 실제로 1951년 영국 언론은 그를 두고 "포르투갈은 유럽의 상위 6개 축구 강국에 속하지 않지만 대륙 최고의 아웃사이드 라이트인 트라바수스를 데리고 있다. 흠잡을 데 없는 헤어스타일을 지닌 트라바수스는 변하지 않는 머리스타일만큼 그의 발도 눈부시게 빛난다."라고 호평하기도 했다.

페르난도 페이로테우, 알바누, 제주스 코헤이아, 마누에우 바스케스와 함께 다섯 개의 바이올린이라 불린 공격 편대로 유명했던 트라바수스는 팀의 플레이메이커로 그들을 완벽하게 지휘해 내며 스포르팅 리스본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그 결과 스포르팅은 정규리그 8회 우승 및 포르투갈 컵 2회 우승을 이뤄내며 포르투갈의 절대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트라바수스는  포르투갈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는 못했음에도 1999년 포르투갈의 푸블리쿠가 뽑은 포르투갈 축구 세기의 팀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음은 물론 1955년에는 FIFA 세계 올스타 팀에 선정되어 잉글랜드 대표팀과 벨파스트에서 경기를 치렀다.



95위 브루노 페르난데스

 


생년월일: 1994년 9월 8일
국적: 포르투갈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현세대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공격형 미드필더 본연의 임무인 빠른 전진패스로 득점찬스를 만들거나 박스 안으로 빠르게 침투해 득점하는 부분은 물론 왕성한 활동량과 강력한 지구력까지 겸비했다.

포르투갈 선수임에도 이탈리아 무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브루노 페르난데스는 비록 이탈리아 무대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스포르팅 리스본으로 이적해 프리메이라 리가 MVP를 두 시즌 연속으로 수상하며 주목받았고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뒤에도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와 리버풀의 강세에 밀려 2022-23 시즌 리그컵 우승 외에는 어떠한 트로피도 들지 못했지만 브루노 페르난데스 개인은 2020-21 시즌 PFA 올해의 팀과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선정되지 못한 시즌에도 찬스 메이킹은 케빈 더 브라위너와 함께 리그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UEFA 유로파 리그 시즌의 스쿼드에 3회 선정된 브루노 페르난데스는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2018-19 UEFA 네이션스 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조국 포르투갈을 8강에 올리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94위 라파엘 마르틴 바스케스

 


생년월일: 1965년 9월 25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이름을 날렸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오는 양발 사용 능력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패스와 슈팅을 적절하게 구사했으며 우수한 몸놀림을 활용한 드리블과 방향전환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주 포지션인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이외에도 측면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퀸타 델 부이트레의 일원으로 라리가 5연패와 UEFA컵 2연패를 이뤄냈으며 1988-89 시즌에는 코파 델 레이도 우승하며 더블을 이뤄냈고 1989-80 시즌에는 돈 발롱 선정 라리가 올해의 스페인 선수상을 수상했음은 물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2위에 올랐다. 이탈리아 무대에도 도전해 토리노의 1991-92 시즌 UEFA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마르세유를 거쳐 레알 마드리드로 다시 돌아와 1992-93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과 1994-95 시즌 라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통산 라리가 6회 우승을 이뤄냈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을 3년 연속으로 수상했으며 아르마다 군단에서는 유로 1998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활약했으나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93위 글랜 호들

 


생년월일: 1957년 10월 27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토트넘의 유스 출신으로 1군에 데뷔해서 토트넘의 레전드가 된 인물로 드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뛰어난 패싱력과 강력한 킥력에서 나오는 치명적인 중거리 슈팅을 무기로 활약했으며 상대 공격형 미드필더를 직접 압박해 볼을 탈취하는 능력도 겸비했다.

토트넘에서 전성기를 누린 호들은 그가 차지한 시즌에 토트넘이 강등당하자 직접 2부 리그에서 팀을 승격시켰는데 이후에는 1979-80 시즌 PFA 올해의 영 플레이어를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FA컵 2회 우승과 1983-84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냈다. 호들 개인도 PFA 올해의 팀에 다섯 번이나 선정되었다. 토트넘을 떠나 프랑스의 AS 모나코에서도 활약해 1987-88 시즌 리그앙 우승을 이뤄냈고 리그앙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했다.

클럽에서의 활약과는 반대로 삼사자 군단에서는 인상적이지 못했는데 UEFA 유로 1980에서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한 경기도 뛰지 못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쭉 벤치에 있다가 8강 아르헨티나전에서 마라도나를 견제하는 임무를 맡았으나 마라도나에게 완벽하게 밀렸다. UEFA 유로 1988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팀의 조별리그 전패 탈락을 막지는 못했을 정도로 삼사자 군단과는 궁합이 영 좋지 않았는데 그래도 클럽에서의 활약이 대단해 은퇴한 뒤인 2007년에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92위 에르네스토 그리요

 


생년월일: 1929년 10월 1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남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공격형 미드필더로 양발을 모두 잘 써 정확한 슈팅과 뛰어난 전진드리블을 활용했으며 단신이었지만 신체 밸런스가 좋아 몸싸움을 잘해 상대방의 대인 마킹도 잘 떨어트렸다.

초년에는 인데펜디엔테에서 활약했는데 1956 시즌에는 득점왕에 오르는 등 뛰어난 활약에도 우승을 거두지 못해 AC 밀란으로 이적해 1958-59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며 아르헨티나로 돌아와서는 보카 주니어스에 입단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1955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1956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뤄냈으나 1957 코파 아메리카 및 월드컵에는 나서지 못했다.



91위 즈보니미르 보반

 


생년월일: 1968년 10월 8일
국적: 크로아티아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AC 밀란

1990년대를 수놓은 유럽 정상급 플레이메이커로 우수한 템포 조절과 드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적절한 킬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 능했다.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데뷔해 생애 첫 전성기를 누렸으나 그가 활약하던 시기는 안타깝게도 세르비아와 다른 민족의 대립이 극에 달해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등 여러 민족이 독립을 원하던 시기였다. 보반은 유고슬라비아 경찰들이 디나모 자그레브의 팬들을 탄압하자 보반은 경찰을 걷어차며 출장정지를 당했다. 그래서 AC 밀란으로 이적해 활약하며 세리에 A 4회 우승 및 1993-94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보반 개인도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선정되었다.

이미 유고슬라비아에서 활약하던 시절부터 청소년 대표팀의 핵심으로 1987 U-20 월드컵 우승과 1990 UEFA 유로 U-21 준우승을 차지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보반은 크로아티아가 독립전쟁을 거쳐 분리독립이 된 이후에 보반은 조국의 독립투사로 추앙받았음은 물론 대표팀에서도 슈케르, 스티마치 등과 함께 핵심으로 활약해 UEFA 유로 1996에서 8강에 진출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하며 바트레니 군단이 3위에 오르는데 공헌했다.

 


다음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90위~8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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