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90위~8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공격형 미드필더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90위~81위

토르난테 2024. 2. 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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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90위 주세페 지안니니

 


생년월일: 1964년 8월 20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AS 로마

토티보다 먼저 로마의 왕자라 불렸던 1980년대 후반 정상급의 트레콰르티스타로 양발을 모두 잘 썼으며 부드러운 패싱력과 유려한 오프 더 볼, 그리고 신속정확한 판단력에 근거한 원터치 플레이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AS 로마에서 보낸 지안니니는 로마에 머무는 동안 코파 이탈리아 3회 우승과, 1982-83 시즌 40년 만에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며 토티조차 경험하지 못한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하는 등 구단의 최전성기의 공격 진영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아주리 군단에서도 지안니니는 UEFA 유로 1988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팀의 왼쪽 측면에서 활약하며 대회 준결승행을 이끌었으며 특히 전자의 대회에서는 대회 올스타 팀으로 선정되었다.



89위 베르나르두 실바

 


생년월일: 1994년 8월 10일
국적: 포르투갈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4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2010년대 후반 프리미어리그를 풍미한 미드필더로 창의적인 패싱력과 우수한 볼 컨트롤은 물론 전술안도 우수해 다양한 위치에서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할 수 있었다.

AS 모나코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16강에서 꺾을 때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 블루문 군단으로 스카우트된 베르나르두 실바는 2018-19 시즌 도메스틱 트레블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5회 우승과 리그컵 4연패, 그리고 FA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2022-23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와 FA컵 우승에 이어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을 이뤄냈고 베르나르두 실바 개인도 PFA 올해의 팀 2회 선정 및 2021-22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2022-23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포르투갈 대표팀 소속으로도 2017 컨페드컵을 시작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했고 2018-19 시즌 UEFA 네이션스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워 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이때의 활약과 클럽의 활약이 겹쳐져 2019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9위에 올랐다.

 


88위 주니뉴 파울리스타

 


생년월일: 1973년 2월 22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59kg
주 소속팀: 미들즈브러

잉글랜드 무대에서 처음으로 명성을 떨친 브라질 출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작은 녀석으로 불렸을 정도로 체구가 왜소했지만 한혈마가 연상될 정도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지구력은 물론 경이로운 민첩성과 폭발적인 드리블, 그리고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에도 능했으며 당시 잉글랜드에서는 드문 유형의 선수라 많은 잉글랜드 팬들이 주니뉴 파울리스타에 환호했다.

상 파울루에서 데뷔해 로테이션 멤버로 1993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과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경험한 주니뉴 파울리스타는 이후 잉글랜드의 미들즈브러로 이적해 두 시즌 활약하며 1996-97 시즌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와 미들즈브러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가 다시 미들즈브러로 돌아와 활약했으며 이후 바스쿠 다 가마에서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낸 뒤 다시 미들즈브러로 돌아와 활약했으나 다시 미들즈브러로 이적해 활약했다.

셀레상에서도 지뉴를 밀어내고 주전으로 활약하며 199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과 1997 컨페드컵 우승을 이뤄냈으나 이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의 부진이 이어지며 셀레상에서도 멀어졌다가 2001년에 다시 합류해 2002 한일 월드컵 우승을 백업 멤버로 경험했다.

 


87위 주니뉴 페르남부카누

 


생년월일: 1975년 1월 30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올림피크 리옹

축구 역사상 최고의 프리키커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로 데드볼 상황에서 다채로운 슈팅을 자유자재로 구사했고 무회전 슈팅을 연구하고 완성시킨 것으로 유명했는데 우수한 킥력뿐만 아니라 왕성한 활동량으로 경기장 전역에 영향력을 끼쳤고 화려한 볼 컨트롤과 창의적인 숏패스와 롱패스를 적재적소에 찔러주며 플레이메이킹을 하는 부분에서도 당대 정상급 실력을 자랑했다.

바스쿠 다 가마와 올림피크 리옹에서 전성기를 보낸 주니뉴는 전자의 클럽에서는 1998 시즌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 및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내며 더블 우승과 브라질 세리 A 2회 우승을 이뤄냈고 2001-02 시즌 올림피크 리옹으로 이적한 이후에는 2001-02 시즌부터 2007-08 시즌까지 리그앙 7연패라는 전무후무한 성적을 이뤄내며 리옹의 리그앙 우승은 모두 주니뉴가 있을 때 이뤄냈을 정도로 구단 역사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선수였다. 주니뉴 개인도 ESM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으며 리그앙 올해의 팀에 3회 선정, 그리고 2005-06 시즌에는 리그앙 MVP를 수상했다.

셀레상에서도 2001 코파 아메리카에서 처음으로 발탁되었으나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했다. 하지만 2005 컨페드컵과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는데 전자의 대회에서는 우승컵을 차지했고 2006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는 일본을 상대로 무회전 프리킥 골로 일본의 대역전패의 서곡을 썼다.

 


86위 훌리우 세자르 우리베

 


생년월일: 1958년 5월 9일
국적: 페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스포르팅 크리스탈

페루 축구사를 빛낸 3대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능수능란한 바디페인팅과 매력적인 스텝오버 드리블과 플립 플랩에 모두 능해 상대 수비수를 교란하는데 능했던 화려한 테크니션이었다.

자국 리그의 스포르팅 크리스탈에서 데뷔해 정규리그 2연패를 이뤄냈고 이후 칼리아리의 레전드 루이지 리바가 직접 찾아가 그가 이탈리아의 칼리아리에 입단하게 설득했고 칼리아리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팀은 강등당해 다시 스포르팅 크리스탈로 돌아갔다가 여러 팀을 떠났음에도 다시 스포르팅 크리스탈로 돌아와 두 개의 리그 우승을 추가했다.

페루 대표팀에서도 선배 공격형 미드필더인 테오필로 쿠비야스 및 세사르 쿠에토의 후계자로 활약했는데 1982 스페인 월드컵과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의 주전으로 찹가했다. 우리베 개인도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 10위 안에 3회 선정되었는데 특히 1981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4위를 기록했다.



85위 다비드 키피아니

 


생년월일: 1951년 11월 18일
국적: 조지아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디나모 트빌리시

조지아 태생으로 소련 축구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플레이스타일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았는데 브라질 선수들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볼 트래핑과 다챠로우면서도 화려한 드리블과 트릭을 바탕으로 팬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 디나모 트빌리시의 전성기를 이끈 키피아니는 팀에게 1978 소비에트 탑 리그 우승 및 소비에트 컵 2회 우승, 그리고 1980-81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대표팀에서도 1976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키피아니 개인도 1977년과 1978년에 소련 탑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77년 소련 올해의 축구선수 선정되었으며 1981년 발롱도르 11위에 올랐다.



84위 레오니트 부르야크

 


생년월일: 1953년 7월 10일
국적: 우크라이나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디나모 키이우

1970년대 하반기 소련 축구를 빛낸 정통파 플레이메이커로 뛰어난 전술안과 절륜한 드리블, 그리고 창의적이면서도 정밀한 패싱력으로 공격을 지휘했으며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라 불릴 정도로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능했다.

디나모 키이우의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로 활약한 부르야크는 로바노프스키 체제에서 구단의 첫 황금기를 이끌며 소련 탑 리그 5회 우승과 소비에트 컵 3회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1974-75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은 물론 1975 UEFA 슈퍼컵에서도 바이에른 뮌헨을 대파하고 우승을 차지하는데 공헌했다.

개인으로도 소련 탑 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된 부르야크는 소련 대표팀 소속으로도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83위 마틴 피터스

 


생년월일: 1943년 11월 8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1960년대 잉글랜드의 다재다능한 멀티 자원으로 우수한 양발 패스와 유려한 볼 컨트롤을 겸비했으며 상대의 마크를 따돌리고 최적의 공간 침투로 득점을 이뤄내 유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이외에도 우수한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공격형 미드필더는 물론 중앙 미드필더와 윙어, 수비수, 골키퍼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바비 무어, 제프 허스트와 함께 1964-65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낸 피터스는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한 뒤에도 출중한 기량을 발휘해 리그컵 2회 우승과 1971-72 시즌 최초의 UEFA컵 우승을 이뤄냈다.

삼사자 군단에서는 윙 없는 4-4-2 다이아몬드 포지션에서 메짤라로 활약하며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는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8 유로에서도 3위에 오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당시 감독이었던 알프 램지로부터 10년 앞선 선수라 평가되었던 피터스는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아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82위 윌프 매니언

 


생년월일: 1918년 5월 16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미들즈브러

특유의 휘날리는 금발로 인해 골든 보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선수로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에 걸쳐 잉글랜드 풋볼 리그에서 이름을 날렸던 인사이드 포워드였으며 빠른 두뇌회전과 우수한 센스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메이킹에 능했다.

미들즈브러에서 전성기를 모두 보낸 매니언은 우승컵을 들지는 못했지만 18년간 팀에 머물며 공식전 368경기에 출전해 110골을 기록했으며 구단측은 이를 기리기 위해 홈구장인 리버사이드 스타디움 바깥에 매니언의 동상을 건립했으며 1998년에는 풋볼 리그 100인의 레전드로 선정되었다.

매니언은 40년대 하반기와 50년대 초반까지 삼사자 군단에서도 주전 멤버로 활약하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이변의 희생양이 되며 미국과 스페인에게 패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40년대 후반의 그의 우수한 퍼포먼스를 기려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81위 칼 아게 한센

 


생년월일: 1921년 7월 4일
국적: 덴마크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40년대와 50년대에 걸쳐 활약한 덴마크의 뤼트 굴리트로 대포알과 같이 강력한 슈팅을 활용한 준수한 득점력과 정확한 패싱력 및 창의적인 플레이메이킹을 바탕으로 하는 인사이드 포워드였는데 축구 지능과 신체 능력이 모두 우수해 하프백으로도 자주 활약했음은 물론 WM 시스템의 최후방 수비수인 센터 하프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덴마트의 아카데미스크 BK에서 데뷔해 정규리그 3회 우승을 이끈 칼 아게 한센은 덴마크 대표팀 소속으로도 욘 한센, 칼 아게 프라에스트와 함께 데니쉬 삼총사로 유명세를 떨치며 스웨덴의 그레노리 삼총사와 라이벌리를 구축했는데 칼 아게 한센의 멀티골로 이집트를 격파하고 이후 이탈리아도 격파하며 4강에 진출했으나 스웨덴에게 패하며 동메달 결정전으로 내려가 영국 연합팀과의 경기에서 5-3으로 승리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마추어 리그였던 덴마크를 떠나 프로였던 잉글랜드의 허더슨필드 타운에서 활약하다가 이탈리아의 아탈란타를 거쳐 다른 데니쉬 삼총사들이 머물던 유벤투스로 이적해 팀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1951-52 시즌에 그레노리 삼총사를 앞세운 디펜딩 챔피언 AC 밀란을 밀어내고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 시기에 칼 아게 한센은 토리노의 전설적인 플레이메이커 발렌티노 마촐라에 비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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