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Top 10

포지션별 역대 TOP 100/수비형 미드필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Top 10

토르난테 2024. 1. 2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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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10위 토니뉴 세레주

 


생년월일: 1955년 4월 21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O Patrão da Bola'

198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왕성한 활동량과 강력하면서도 기술적인 완성도도 높은 명품 태클과 지능적인 인터셉트와 같은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물론 부드러운 볼 컨트롤과 넓은 시야를 활용한 창의적인 롱패스 실력과 기습적인 공격 가담까지 겸비한 완전체 미드필더로 공의 주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보통 고점은 높지만 전성기가 짧다는 이야기가 있는 브라질 국적 선수들과는 다르게 자기 관리 능력이 뛰어나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약 20년간 정상급 기량을 펼친 세레주는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는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7연패 및 두 번의 브라질 세리 A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세레주 개인도 전국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음은 물론 MVP에 2회 선정되는 활약을 펼쳤다.

유럽으로 건너간 뒤에는 AS 로마에서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올랐으며 삼프도리아에서는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과 1989-90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고 1990-91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첫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으며 이듬해에는 재차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다가 다시 브라질로 돌아가서는 상파울루에서 활약하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에서 우승하는 공을 세웠는데 특히 1993년에는 인터콘티넨탈컵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대표팀에서는 출중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음에도 다소 결과가 아쉬웠는데 지쿠, 파우캉, 소크라치스와 함께 중원 조합을 구성해 황금의 사중주라 불리며 기대를 모았으나 2차 리그에서 이탈리아에 패하며 탈락하는 아쉬움을 경험하기도 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8강에 진출했으나 승부차기에서 패하며 준결승전 진출에는 실패했다.

 

 

9위 로드리

 


생년월일: 1996년 6월 22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2kg
현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피보테의 이데아'

현세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선수로 힘과 기술을 겸비한 장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우수한 피지컬로 상대를 제압하며 안정적인 패싱력으로 팀의 빌드업 과정에도 크게 공헌하며 우수한 태클 실력과 유려한 탈압박을 겸했다.

비야레알에서 데뷔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두각을 나타낸 로드리는 펩 과르디올라 체제의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해 세계구급 수비형 미드필더로 성장해 프리미어리그 4회 연속 우승과 2020-21 시즌 리그컵 우승,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특히 2022-23 시즌에는 무려 56경기에 출전하며 블루문 군단의 트레블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FIFA 클럽 월드컵 우승에도 큰 공을 세워 우승은 물론 대회 MVP를 수상했다.

 

로드리 개인도 사실상 결승전이라 평가받은 8강 바이에른 뮌헨과의 1차전과 실제 결승전에서는 인테르 밀란을 상대로 모두 클러치 능력을 선보였고 그 활약을 인정받아 2022-2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대회 베스트 일레븐과 결승전 MVP와 대회 MVP에 모두 선정되었음은 물론 PFA 옿해의 팀에 2회 연속으로 선정되었다.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로드리는 UEFA 유로 2020에서는 부스케츠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며 부스케츠가 코로나로 결장한 조별리그 1,2차전에서만 선발로 뛰었고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부스케츠에게 밀려나 센터백으로 뛰었지만 피보테로 부스케츠를 선호하던 엔리케 감독이 물러난 이후에는 주전 피보테로 활약하며 2022-23 시즌 UEFA 네이션스리그 파이널 우승을 이뤄냈고 그 과정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치며 대회 MVP를 수상했다. 그리고 UEFA 유로 2024에서도 야말, 올모, 파비앙 루이스 등과 함께 조국의 우승을 이끌며 MVP를 수상했다.

 


8위 옵둘리오 바렐라

 


생년월일: 1917년 9월 20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어둠의 우두머리'

당대 최고의 센터하프이자 역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로 강건한 피지컬과 정밀도 높은 패싱력, 그리고 대포알과도 같은 중거리 슈팅을 모두 갖춘 선수였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정신력을 지녔으며 검은 우두머리라 불렸을 정도로 리더십이 뛰어나 동료들을 잘 지휘했음은 물론 수비수로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다.

군소팀 몬테비데오 원더러스에서 첫 전성기를 보내다가 1942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하며 명문팀들의 주목을 받았고 결국 1943년에 페냐롤에 합류한 바렐라는 아우리네그로스에서 1949 시즌,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16승 2무의 성적으로 무패 우승을 이뤄낸 업적을 포함해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을 포함해 우루과이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20개의 트로피를 들며 맹활약했다.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동료들은 물론 감독도 브라질의 전력과 관중들의 기세에 눌려 수비축구를 지시하는 상황이었으며 브라질의 신문들은 모두 브라질의 우승을 점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바렐라는 그 신문들에 소변을 누는 퍼포먼스를 보여줘 팀을 진정시켰으며 수비 축구를 지시하는 감독을 진정시키며 본래의 페이스대로 경기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결국 용기를 얻은 동료들에 의해 우루과이는 브라질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했고 바렐라는 대회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활약 이외에도 그는 다섯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해 한 번 우승했으며 우승한 1942년 대회에서는 대회 MVP를 수상했다. 이후에는 1954 스위스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8강 잉글랜드전에서 부상당해 준결승전에 뛰지 못했고 결국 우루과이는 매직 마자르와 접전을 펼쳤지만 바렐라의 공백을 극복하지 못하고 연장전에서 패했다. 바렐라는 사후 1999년에 IFFHS 선정 20세기 남아메리카 최고의 축구선수 13위에 올랐다.

 


7위 카렐 페섹

 


생년월일: 1895년 9월 20일
국적: 체코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스파르타 프라하

'보헤미아의 자랑'

체코슬로바키아 역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선수로 강력한 운동 능력은 물론 볼을 다루는 테크닉과 정확한 패스, 그리고 강력한 수비력과 탄탄한 기본기를 모두 겸비해 당대 최고의 센터하프로 평가받았다.

남미와 유럽, 그리고 영국의 여러 강호들을 연파하며 아이언 스파르타라 불렸던 스파르타 프라하의 황금기를 이끈 알파이자 오메가로 구단의 중부 보하미안 카운티 5회 우승 및 체코슬로바키아 퍼스트 리그 3회 우승, 그리고 중앙 보에미안컵 6회 우승을 이뤄냈고 1927년에는 미트로파컵 루승을 이뤄냈다. 특히 1920년부터 1923년까지 4년 동안 총 50경기를 치르며 전승을 거뒀고 230득점 43실점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스파르타 프라하가 중유럽 최강의 반열에 오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페섹은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중추로 활약하며 두 번의 올림픽과 두 번의 중유럽 컵에 나서 팀의 중원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부업으로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6위 루이스 몬티

 


생년월일: 1901년 5월 15일
국적: 아르헨티나 →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두개의 날개를 단 도살자'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으로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며 팀원들로부터 두 개의 날개란 뜻의 도블레 안초라 불렸으며 잔혹한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무너트리는 거친 플레이를 앞세워 상대팀에게는 도살자라 불렸다. 아르헨티나에서 이탈리아로 선박으로 오는 기간에 살이 찌자 혹독한 수준으로 다이어트를 하며 폼을 빠르게 찾았을 정도로 프로의식이 대단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산 로렌초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이탈리아로 귀화한 뒤에는 유벤투스에서 활약했는데 전자의 구단에서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3회 우승을 이뤄냈고 후자의 구단에서는 세리에 A 4연패를 이뤄내며 유벤투스를 이탈리아의 국민 구단으로 올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대표팀에서도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양쪽에서 뛰었는데 아르헨티나에서는 센터 하프로 1927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은메달, 그리고 1930 우루과이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탈리아로 귀화한 뒤에는 아주리 군단의 1934 이탈리아 월드컵과 1933-1935 중유럽컵 우승을 이뤄내며 각기 다른 국적으로 월드컵 결승 무대를 밟는 진기록은 물론 각기 다른 국적으로 대회 올스타 팀에 드는 진기록도 세웠다.



5위 에른스트 오크비르크

 


생년월일: 1926년 3월 7일
국적: 오스트리아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아우스트리아 빈

'시계태엽의 일관성'

1950년대 최고의 하프백 중 한 명으로 드넓은 시야와 정교한 롱패스를 활용한 우수한 볼 배급 능력, 그리고 원활한 수비력과 탄탄한 기본기를 겸비했음은 물론 축구지능까지 고차원적인 수준이라  인사이드 포워드나 풀백으로도 뛸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꾸준하고 일관적인 경기력을 유지해서 한 영국 언론사는 그를 두고 시계태엽이라 부르기도 했다.

아우스트리아 빈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커리어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는데 오크비르크 개인 통산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5회 우승 및 오스트리안컵 3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1952년에는 소규모 클럽 월드컵인 코파 히우에서 팀을 4강에 올리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53년에는 FIFA XI으로 선정되어 잉글랜드 FA 창립 90주년 기념 경기에 출전하며 창의적인 패스로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하며 4-4 무승부를 기록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오스트리아 대표팀에서도 라이트 하프 게르하르트 하나피, 레프트 하프 칼 콜러와 함께 화려한 중원라인을 형성해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팀이 3위라는 호성적을 거두는데 큰 공을 세워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말년에는 이탈리아 무대에 중견팀이었던 삼프도리아로 입단해 새로운 도전을 펼친 오크비르크는 비록 우승 트로피를 들지는 못했지만 개인은 뛰어난 활약을 펼쳐 1956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7위에 랭크되었으며 1960-61 시즌에는 그 당시 삼프도리아의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성적이었던 세리에 A 4위에 올리는데 공헌했다.



4위 보직 요제프

 


생년월일: 1925년 11월 28일
국적: 헝가리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부다페스트 혼베드

'마자르의 브레인'

당대는 물론이고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선수로 후방에서 정확한 패스 능력과 우수한 볼 컨트롤, 그리고 왕성한 활동량과 뛰어난 대인 수비 능력을 바탕으로 중원을 장악했으며 전술안도 우수해 그라운드에서 감독 대신 선수단을 지휘하기도 했으며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포문을 여는데에도 능했다.

부다페스트 혼베드의 황금기를 이끈 보직은 넴제티 버이녹샤그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2년에는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다른 에이스들과는 다르게 헝가리 혁명 이후에도 부다페스트 혼베드에서 뛰면서 원 클럽맨으로 은퇴했기에 헝가리 공산 정권 시절에는 푸스카스, 코츠시슈보다 보직의 인기가 더 많았던 시절도 있었다.

헝가리 대표팀 최초의 센추리 클럽 가입자이자 세계에서도 빌리 라이트에 이어 두 번째 센추리 클럽 가입자였던 보직은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 1953년에는 5년간 치러진 중유럽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는 등 4년간 31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기록하며 1954 스위스 월드컵까지 승승장구했으나 결승에서 서독에게 아쉽게 패했지만 보직은 우수한 활약을 인정받아 ESPN과 문도 에스포르티보가 선정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모두 선정되었다.



3위 안드레아 피를로

 


생년월일: 1979년 5월 19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AC 밀란

'그라운드의 예수'

레지스타의 대명사이자 현대적인 후방 플레이메이커의 시조로 불리던 선수로 전통적으로 포백 보호를 겸하던 후방 플레이메이커와는 다르게 수비 가담은 메짤라에게 맡기고 드넓은 시야와 마에스트로가 생각나는 템포 조절, 그리고 치명적인 롱패스 능력으로 그라운드를 자신의 뜻대로 쥐락펴락하는 천재였다.

21세기 세리에 A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AC 밀란과 유벤투스에서 활약했으며 로쏘네리 군단에서는 세리에 A 2회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을, 비안코네리 군단에서는 2011-12 시즌 무패 우승을 포함한 세리에 A 4회 연속 우승은 물론 2014-15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우승해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으며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준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물리치고 결승에 진출했다.

아주리에서 피를로의 활약도 위대했는데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중원을 이끌며 대회 어시스트 1위를 달성해 팀의 우승에 크게 공헌해 월드컵 브론즈볼과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유로 2012 때는 전력이 약화된 이탈리아를 결승에 올려놓으며 맹활약했다. 비록 스페인에게 대패했지만 그의 활약은 인정받아 대회 베스트 일레븐과 MVP 선정에서 2위에 올랐다. 

피를로는 개인적으로도 세리에 A 올해의 팀 4회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연속으로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특히 2011-12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과 2012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4회 선정되어 네 번 모두 10위 안에 들었으며 밀란에 머물던 2007년에 5위에 오르며 개인 통산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2위 프랑크 레이카르트

 


생년월일: 1962년 9월 30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AC 밀란

'다크 허리케인'

허리케인이라 불렸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꼽히는 선수로 견고한 수비력과 정교한 패싱력, 왕성한 활동량을 모두 겸한 우수한 자원이었으며 리더십 또한 겸비했다.

아약스와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누린 레이카르트는 전자의 클럽에서는 에레데비시 5회 우승과 KNVB컵 3회 우승, 그리고 컵 위너스컵과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며 에레디비시 MVP에게 수상하는 네덜란드 골든슈를 2회 수상했으며 후자의 클럽에서는 사키의 밀란 제너레이션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 세리에 A 2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를 이뤄내며 클럽 축구 사상 최강의 팀 중 하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1992 시즌 세리에 A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다.

오랑예 군단의 유니폼을 입고도 두 차례의 월드컵과 유로에 참가했으며 특히 1988년에 열린 UEFA 유로에서 우승을 거뒀으며 레이카르트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3위를 기록하지만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그는 베켄바우어의 심리전에 넘어가 격앙된 상태에서 플레이를 하다 루디 푈러에게 침을 뱉었다가 퇴장당해 패배의 단초를 제공한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다.



1위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

 


생년월일: 1901년 11월 22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경이로운 안드라데'

당대 최고의 하프백이자 역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선수로 엄청난 운동능력과 넓은 시야, 그리고 탄탄한 기본기를 겸비했으며 이를 활용해 중원과 오른쪽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보여준 라이트 하프였다.

오늘날 다니 아우베스나 마르셀루, 주앙 칸셀루가 보여주는 플레이와 유사한 플레이를 이미 100년 전에 보여줬던 안드라데는 소속팀에서는 벨라 비스타에서 데뷔해 우루과이의 양대 클럽인 나시오날과 페냐롤을 거쳤으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이끌었다.

그의 활약은 대표팀에서 더 빛났는데 나사치, 스카로네와 함께 월드컵이 탄생하기 이전 세계 최고의 축구 권위 대회인 올림픽에서 주전 멤버로 두 번이나 금메달을 땄으며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를 우승했고 그중 1926년 대회에서는 대회 MVP를 수상했다. 그리고 초대 월드컵에서도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했는데 결승전에서 2-2 동점 상황에서 아르헨티나 측의 완벽한 골 찬스를 몸을 던져 블로킹해 무산시키며 4-2 역전승에 공헌하며 대회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는 1954년에 템포지에서 선정한 축구사 역대 베스트 일레븐 라이트 하프 부문에 선정되었으며 사후인 1988년에는 이탈리아 축구연맹 선정 축구사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99년에는  IFFHS 선정 20세기 남미 최고의 축구선수 8위 및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29위에 선정되었으며 2017년에는 독일의 베를린브리츠 선정 1920년대 최고의 선수 1위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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