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30위~2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수비형 미드필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30위~21위

토르난테 2024. 1. 2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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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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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30위 요주아 키미히

 


생년월일: 1995년 2월 8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2020년대 독일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자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높은 전술 이해도는 물론이고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양질의 패스와 동료 활용 능력으로 팀의 원활한 볼 소유를 이끌며 왕성한 활동량과 강력한 저돌성에 우수한 포지셔닝까지 겸비한 완벽한 수비력은 물론 정교한 오른발 크로스와 탄탄한 기본기까지 겸비해 중원에서는 물론 라이트백에서도 정상급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2019-20 시즌 트레블을 이뤄낸 키미히는 분데스리가 8회 연속 우승과 포칼 3회 우승, 그리고 2019-20 시즌에는 수비형 미드필더와 라이트백을 번갈아 뛰며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이후에도 중원의 리더로 UEFA 슈퍼컵과 DFL 슈퍼컵, 그리고 클럽 월드컵까지 우승하며 6관왕을 이뤄냈다. 키미히 개인도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5회 선정 및 2018-19 시즌 ESM 올해의 팀, 2019-20 시즌 UEFA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함과 동시에 UEFA 올해의 선수에서 9위에 올랐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2회 선정되었고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2회 수상했다.

요하임 뢰브 시절에는 대표팀에서 고군분투했지만 팀원들의 부진으로 결과가 좋지 않았음에도 유로 2016에서 라이트백으로 출전해 팀의 준결승행에 기여하며 우수한 퍼포먼스를 보여줬고 이런 퍼포먼스를 인정받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월드컵에서는 잘 풀리지 않는게 아쉬운 부분이다.

 


29위 아리 한

 


생년월일: 1948년 11월 16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RSC 안더레흐트

1970년대에 이름을 날렸던 오렌지 군단의 피보테이자 리베로로 강철 같은 스테미너를 이용한 넓은 활동반경과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정교한 패싱력과 뛰어난 동료 활용 능력을 토대로 경기장 넓은 부분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수비적으로도 현란하고 파워풀한 플레이로 상대를 무너뜨린다고 해서 아수라장 어리라고 불렸으며 중거리 슈팅에도 능했다.

아약스와 안더레흐트에서 전성기를 보낸 아리 한은 아약스에서는 유러피언컵 3연패와 에레데비시 3회 우승을 이뤄내며 아약스를 유럽 최고의 팀으로 올려놓았고 이후 안더레흐트로 건너가서는 주필러 리가 1회 우승과 컵 위너스컵 2회 우승을 달성했으며 아리 한 개인도 옹즈 몽디알이 선정한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오랑예 군단에서도 그 명성은 어디가지 않아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주전 리베로 리누스 이스라엘이 부상으로 스쿼드에서 이탈하자 대신 리베로를 보며 맹활약했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다시 수비형 미드필더로 돌아와 렌센블링크, 크롤, 네스켄스와 함께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28위 울리 슈틸리케

 


생년월일: 1954년 11월 15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1970년대 하반기와 198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리베로로, 공수를 넘나드는 넓은 활동반경은 물론 신속 정확한 판단력과 드넓은 시야를 토대로 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으로 전방에 볼을 배급했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상대 공격형 미드필더를 막아내기도 하며 전차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를 누린 슈틸리케는 묀헨글라트바흐에서는 분데스리가 3연패와 UEFA컵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달성하며 황금기를 함께했고 이후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서는 라리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군림하며 라 리가 3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 그리고 UEFA컵 우승과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이라는 성적을 이뤄냈고 슈틸리케 개인도 돈 발롱이 선정한 리그 베스트에 6회 연속 선정되었으며 라리가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을 4년 연속 수상했고 문도 데포르티보 선정 라리가 MVP에 2회 선정되었다.

레알 마드리드로 간 사건 때문에 초년에는 디 만샤프트에서 배제되었으나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이후에 감독이 데어발로 교체되며 다시 콜업되었는데 팀 수비라인의 리더로 UEFA 유로 1980 우승과 1982 스페인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이뤄내며 베켄바우어의 후계자 역할을 했다.

 


27위 라이너 본호프

 


생년월일: 1952년 3월 29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70년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우수한 대인 수비 능력은 물론이고 날카로운 중거리 슈팅에도 능했으며 우수한 축구 지능의 소유자로 사이드백과 센터백도 소화할 수 있었다.

묀헨글라트바흐에서 구단의 황금기를 함께한 레전드로 분데스리가 4회 우승을 이뤄낸 본호프는 유럽 무대에서도 1974-75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냈고 1976-77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준우승이라는 호성적을 냈으며 본호프 개인도 1976-77 시즌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스페인의 발렌시아에서도 1978-79 시즌에는 코파 델 레이를 우승했으며 1979-80 시즌에는 UEFA 컵 위너스컵을 우승을 이뤄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UEFA 유로 1972부터 소집되어 백업 멤버로 우승을 경험한 본호프는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주전 멤버로 도약해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UEFA 유로 1976에서도 결승에 진출하는데 공헌하며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었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4회 선정되며 1976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성적인 9위에 올랐다.



26위 요제프 스미스틱

 


생년월일: 1905년 11월 28일
국적: 오스트리아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라피트 빈

1920년대 하반기와 30년대 상반기 유럽 대륙에서 이름을 날렸던 분더 팀의 센터 하프로 큰 키와 빠른 스피드를 겸비했으며 인내심이 강하고 전투적이면서 동시에 지능적인 수비로 상대 센터 포워드들을 집어삼켰다. 게다가 훌륭한 롱 패스를 앞세워 안정적인 볼 배급으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라피트 빈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오스트리아 리그 3연패 및 1930 미트로파컵 우승을 포함해 공식대회 5회 우승 및 7회 준우승을 이뤄낸 스미스틱은 1930년 미트로파 컵에서는 1926-27 시즌에 자신들을 2게임 동안 합계 3-7로 패하게 했던 스파르타 프라하를 상대로 복수에 성공하며 팀의 첫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193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국가대표팀이라 불렸던 분더 팀의 주장으로 활약한 스미스틱은 1931-32 시즌 중유럽컵에서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를 무찌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편파 판정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팀을 준결승으로 이끌어내는 공을 세웠다. 그리고 후배 에른스트 오크비르크의 포지션을 공격수에서 하프백으로 바꾸도록 설득했고 자신의 노하우를 상당히 전수해주며 세계 최고의 하프백으로 키워내기도 했다.



25위 네스트로 로시

 


생년월일: 1925년 5월 10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40년대와 5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던 선수로 당시로서는 굉장히 큰 키인 185cm라는 거대한 피지컬에서 나오는 태클과 몸싸움 능력으로 상대 공격수들을 무자비하게 찍어 눌렀다.

리버 플레이트와 미요나리오스에서 활약한 로시는 리버 플레이트에서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편대 중 하나인 라 마키나의 뒤를 받쳐주며 수비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볼 배급을 하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경험했고 미요나리오스에서는 콜롬비아 리그 우승 4회를 달성했다.

라 알비셀레스테의 유니폼을 입고도 우수한 성과를 냈는데 1947년에는 호세 마누엘 모레노,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노르베르트 멘데스의 뒤를 받히며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 콜롬비아로 떠나서는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하다가 리버 플레이트로 다시 돌아온 이후에는 195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더러운 얼굴의 천사들이라 불렸던 오마르 시보리, 오마르 코르바타, 움베르토 마스치오와 같은 후배 공격수들의 뒤를 받혀주며 재차 우승했으며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24위 에드가 다비즈

 


생년월일: 1973년 3월 13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녹내장이라는 눈 질환으로 인해 고글을 쓰고 경기를 했던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활약했던 수비형 미드필더로 싸움닭이라 불렸을 정도로 거친 플레이를 즐겼으며 왕성한 활동량으로 경기장 전역을 누볐으며 기습적인 공격 가담을 활용해 상대 선수들을 교란하는데도 능했다.

아약스에서 데뷔해 에레데비시 3연패와 UEFA컵 우승,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무패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한 시즌에 리그에서도 무패 우승을 달성하며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무패 더블이라는 전무후무한 성적을 내며 커리어의 초반부를 화려하게 장식한 다비즈는 유벤투스에서 세리에 A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이름을 날리며 세리에 A 3회 우승을 이뤄냈고 2002-03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했으나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밀란에게 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다비즈 개인도 옹즈 몽디알이 선정한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오랑예 군단의 유니폼을 입고 세 번의 유로와 1998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특히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는 준결승에 진출하는데 공헌이 컸음을 인정받아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고 1998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8위에 오르기도 했다.

 


23위 네스토르 곤칼베스

 


생년월일: 1936년 4월 27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60년대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뛰어난 예측력을 바탕으로 한 인터셉트와 클리어링을 보였으며 우수한 태클 능력을 보여줬으며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과 정확한 패싱력을 앞세워 빌드업에도 크게 관여했으며 리베로로 플레이했을 때도 우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페냐롤 왕조를 재창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팀의 공수 밸런스를 탄탄하게 잡았던 곤칼베스의 활약으로 인해 그가 활약하는 동안 페냐롤은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9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에서 16개의 크고 작은 우승 트로피를 들었고 우루과이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그중 1961년과 1966년에는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벤피카와 레알 마드리드를 차례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CA 페냐롤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에 랭크된 곤칼베스는 1966년에는 남미 무대와 세계 무대를 평가한 공을 바탕으로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들었으며 1967년에는 로 스포르트 일루스트라토가 선정한 남미 베스트 일레븐과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동시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곤칼베스는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중원의 핵으로 활약하며 1957년과 1959년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1957년에 3위에 올랐으며 1962 칠레 월드컵과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 참가해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8강에 진출했다.

 

22위 던컨 에드워즈

 


생년월일: 1936년 10월 1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50년대 하반기 잉글랜드 축구의 아이콘이자 세계 최고의 레프트 하프로 튼튼한 어깨와 강력한 피지컬을 활용한 플레이로 탱크라 불렸다. 그렇다고 피지컬만 우수한 게 아니라 우수한 축구 지능과 신속정확한 판단력을 토대로 우수한 패싱력과 경기 조율 능력도 보여줬던 완벽한 선수였다.

버스비의 아이들의 필두로 활약했고 바비 찰튼조차 경외하던 에드워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풋볼 리그 2연패를 이뤄냈으며 1957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를 차지하는 등 맹활약했으나 1958년에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베오그라드에서 맨체스터로 급하게 돌아오는 와중에 일어난 사고인 뮌헨 비행기 참사에 휘말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으며 삼사자 군단도 월드컵을 앞두고 에드워즈와 바인을 비롯한 주축 선수들을 다수 잃었으며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탈락했다.

당시 잉글랜드 축구계는 굉장히 보수적이고 고립주의를 유지한 상태라 유러피언컵에 참가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했기에 일정 변경을 협의해주지 않아 이런 참사가 벌어졌으며 잉글랜드 축구계는 펠레나 디 스테파노에 견줄 수 있으며 못해도 후세대의 마테우스나 굴리트, 챠비 에르난데스가 보여준 활약을 보여줬을 선수를 무리한 일정 편성으로 인해 잃어버린 비극이었다.

 

 

21위 대니 블란치플라워

 


생년월일: 1926년 2월 10일
국적: 북아일랜드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1960년대 초반 영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드넓은 시야와 놀라운 패싱력을 바탕으로 우수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보여주던 레지스타였다.

토트넘 핫스퍼 명예의 전당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토트넘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블란치플라워는 맥카이와의 조합은 당대 유럽 최고의 중원 조합 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는데 그들은 스퍼스의 도메스틱 더블 우승을 이끌며 1961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62-63 시즌에는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개인으로도 FWA 올해의 선수에 2회 선정되었다.

북아일랜드 대표팀에서도 핵심으로 활약하며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조국의 토너먼트 진출에 공을 세우며 1958 프랑스 풋볼지 선정 스웨덴 월드컵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블란치플라워는 1970년에 선정한 월드 베스트 일레븐 역대 최고의 선수 하프백 부분 7위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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