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 40위~3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레프트백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 40위~31위

토르난테 2024. 1. 1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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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40위 후안 무히카

 


생년월일: 1943년 12월 22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60년대와 70년대 남미 무대 정상급 레프트백으로 한혈마를 연상시키는 강력한 지구력과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왼쪽 측면 전 지역을 아우르며 공수 양면에서 큰 영향력을 끼쳤는데 특히 공격적인 부분에서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주며 창의적인 드리블과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로 공격 찬스를 만들었으며 가끔은 중앙으로 침투해 직접 슈팅을 날리기도 했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전성기를 보낸 무히카는 동료 루이스 우비냐와 함께 정상급 측면 수비 라인을 구축하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을 이뤄냈고 1971년에는 리그 우승에 이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까지 제패하며 트레블을 이뤄냈고 나시오날을 떠난 이후에는 프랑스 리그의 릴 OSC와 RC 랑스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우루과이 대표팀 소속으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무히카는 196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파블로 포를란과 합을 맞춰 대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공격진의 에이스 로차의 부상이라는 큰 악재가 있었음에도 무히카를 비롯해 우비냐, 안체타, 마토사스가 구성한 철의 포백의 수비력을 바탕으로 준결승까지 진출했으며 이런 활약을 인정받은 무히카는 통계업체 캐스트롤 인덱스 선정 1970 멕시코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39위 세르지오 체르바토

 


생년월일: 1929년 10월 22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1950년대 WM 시스템의 정상급 레프트백 중 하나로 수비수임에도 간헐적으로 공격에 가담했으며 뛰어난 킥력을 바탕으로 세트피스를 도맡아 처리했다.

1950년대 피오렌티나의 약진을 이끈 수비수로 베르나르디니 감독이 이끌던 1955-56 시즌에는 팀의 첫 리그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이듬해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했고 그 뒤에도 4년 연속 준우승을 기록했다. 유벤투스 이적 이후에도 트리오 마지코의 뒤를 받쳐주며 세리에 A 2연패에 공헌한다. 다만 아주리 군단에서는 암흑기에 활약한 인물인지라 큰 활약상은 없었으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38위 브랑쿠

 


생년월일: 1964년 4월 4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제노아

1980년대 하반기와 199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공격형 레프트백으로 좌측면에서 과감하게 오버래핑하며 우수한 얼리 크로스 능력으로 골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당대에 유명한 프리킥 스페셜리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플루미넨세에서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차세대 주니오르로 주목받은 브랑쿠는 유럽 진출 이후에는 포르투와 제노아에서 활약하며 유럽 무대 정상급 레프트백으로 명성을 떨쳤다. 

셀레상 저지를 입고 72경기에 출전했는데 1989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199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끌어냈으며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우승을 이뤄냈는데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복수의 언론으로부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94년에는 남아메리카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37위 에릭 닐손

 


생년월일: 1916년 8월 6일
국적: 스웨덴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말뫼 FF

1950년대 이전 북유럽 최고의 풀백으로 강력한 피지컬로 상대 공격수를 위협해 상대방은 에릭 닐손이 있으면 친선 경기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로 신체 능력이 우수했으며 우수한 수비 포지셔닝과 훌륭한 전술안을 갖췄다.

선수생활을 모두 말뫼에서 보냈으며 2부 리그에 머물던 말뫼를 승격시킨 이후에 알스베스칸 5회 우승을 이끌어낸 에릭 닐손은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14년간 활약했는데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팀의 막내로 출전했으며 세계 대전 이후에 열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팀의 주장으로 출전해 후자의 대회에서는 주장으로 팀의 3위를 이끌어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1948 런던 올림픽에서는 그레놀리 삼총사의 뒤를 받혀주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상술한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인해 1950년에는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스웨덴 굴드불렌을 수상한 에릭 닐손은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아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36위 케니 샌섬

 


생년월일: 1958년 9월 26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1980년대 풋볼리그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공수를 오가는 왕성한 활동량과 간결한 드리블로 오버래핑한 뒤에 강력한 슈팅을 보여주며 팀의 왼쪽 공격을 주도했다.

크리스탈 펠리스와 아스날에서 전성기를 누린 샌섬은 비록 머지사이드의 두 구단의 황금기에 밀려 풋볼 리그 우승은 이뤄내지 못했고 컵대회에서도 1986-87 시즌 리그컵 우승 1회에 그쳤지만 샌섬 개인은 무려 8회 연속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맹활약을 보여줬다.

1980년대 삼사자 군단이 출전했던 샌섬은 2회의 월드컵과 유로에 참가했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8강에 진출했지만 8강에서 디에고 마라도나에게 대회 역사상 최악의 골과 최고의 골을 연달아 맞고 탈락했다.



35위 스튜어트 피어스

 


생년월일: 1962년 4월 24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노팅엄 포레스트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폭발적인 오버래핑과 강력한 왼발 킥력을 자랑했으며 인성이 다소 괴팍해 사이코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전성기를 보낸 구단의 레전드 피어스는 구단의 리그컵 2회 우승을 이끌었고 PFA 올해의 팀에 다섯 시즌 연속으로 선정되며 리그 정상급 선수로 평가받으며 노팅엄 포레스트의 올해의 선수로 3회 선정되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좌측면의 공격 첨병으로 맹활약한 피어스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과 조국에서 열린 UEFA 유로 1996에서 준결승 진출을 달성하는데 큰 공을 세우며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34위 에리히 유스코비악

 


생년월일: 1926년 9월 7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1950년대 하반기 서독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거친 대인 수비 능력과 폭발적인 킥력을 활용해 볼을 전방으로 보내는 부분에도 능해 망치라 불렸다.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활약하며 리그 정상급 선수로 평가받아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에 3회 선정된 유스코비악은 디 먄샤프트에서는 1958 스웨덴 월드컵 4위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오마르 코르바타, 알렉산다르 페트코비치, 쿠르트 함린과 같은 정상급 아웃사이드 라이트들을 상대하며 명성을 떨쳤다.



33위 토미 게멜

 


생년월일: 1943년 10월 16일
국적: 스코틀랜드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7kg
주 소속팀: 셀틱 FC

전성기는 매우 짧았지만 한때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188cm의 큰 키를 바탕으로 한 견고한 수비력과 공격 상황에서 날카로운 오버래핑으로 상대의 우측면을 휘젓다가 대포알 같은 막강한 슈팅력으로 경기를 마무리지었던 공격형 레프트백이었다.

일명 리스본의 사자들이라 불린 셀틱의 1966-67 시즌 트레블을 이뤄낸 게멜은 정규리그와 리그컵 5연패를 이뤄냈으며 스코티시 컵 4회 우승을 이뤄냈고 두 번의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는 득점포를 가동했는데 그중 1966-67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뤄냈고 게멜 개인도 1967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6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개의 서로 다른 유러피언 컵/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득점한 유일한 스코틀랜드 선수인 게멜은 2006년 스코틀랜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32위 에릭 아비달

 


생년월일: 1979년 9월 11일
국적: 프랑스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2000년대 하반기 월드클래스 레프트백으로 풀백치고는 우수한 신체조건과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신체 능력에서 나오는 훌륭한 수비력과 간결한 볼터치를 겸비했으며 센터백도 볼 수 있었다.

올림피크 리옹과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낸 아비달은 리옹에서는 리그앙 3연패를 이끌며 리그앙 올해의 팀에 세 시즌 연속 선정되었고 펩의 바르셀로나에서도 황금기에 주전으로 활약하며 전설적인 6관왕을 포함해 라 리가 4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 그리고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을 달성하는데 기여했다.

레 블뢰에서도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늙은 수탉이라고 언론의 저평가를 받았던 프랑스 대표팀의 결승 진출에 공헌했다.

 

 

31위 마르코 안토니우

 


생년월일: 1951년 2월 6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플루미넨시

1970년대 브라질 무대를 풍미한 레프트백으로 공수 양면에서 모두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지능적인 수비 스타일로 상대 공격수를 괴롭혔으며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 것은 물론 직접 득점하는 부분에도 능했다.

플루미넨시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330경기에 출전해 172승을 거뒀고 28골을 득점했으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4회 우승을 이뤄낸 안토니우는 1970년에는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이후 바스쿠 다 가마로 이적한 뒤에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을 한 번 더 추가해 개인 통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5회 우승을 이뤄냈다.

셀레상 소속으로도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백업 멤버로 우승을 경험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도 백업 멤버로 나섰고 1979 코파 아메리카에도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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