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사 최고의 명장 박종환 옹 별세

박수용의 토르난테/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국 축구사 최고의 명장 박종환 옹 별세

토르난테 2023. 10. 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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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2월 9일 ~  2023년 10월 7일

향년 85세

 


클럽 및 대표팀 커리어

서울시청 축구단

1978 춘계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1980 춘계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1980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982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985 추계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1986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988 춘계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20 감독

 


1980 AFC 유스 챔피언십 우승
1982 AFC 유스 챔피언십 우승
1983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4위

 

일화 천마

 


1992 리그컵 우승
1993 K리그 우승
1994 K리그 우승
1995 K리그 우승

1995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


개인 커리어

 

1978 춘계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최우수 감독상
1980 춘계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최우수 감독상
1980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최우수 감독상
1982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최우수 감독상
1993 K리그 올해의 감독상
1994 K리그 올해의 감독상
1995 K리그 올해의 감독상
1995 AFC 올해의 감독상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첫 4강 신화를 이끈 1983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U-20 대표팀의 4강 신화를 이끈 한국 축구계의 명장 박종환이 2023년 10월 7일, 코로나 감염의 후유증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팀의 4강 신화를 이끈 한국 축구 역대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으로 불 같은 성격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심판과 갈등을 자주 빚었으며 신태용, 이상윤, 박남열의 말에 따르면 선수들에게는 맨 마킹 위주의 수비를 지시해 자신의 마킹 대상을 놓치면 불호령을 냈으며 전반전에 지고 있으면 눈에 보이는 물건들을 모두 걷어차 빠르게 물통부터 치웠다고 회고했지만 항상 훌륭한 성과를 내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선수 시절에 스타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단국공고, 성남고, 유신고, 전남기계공고 등 고교축구판에서 활약하며 커리어를 쌓았고 이후 실업리그의 서울시청 축구단 감독으로 부임하며 13년간 지도하며 7회 우승을 이뤄냈고 이 시절에는 중간중간에 대한민국 연령별 대표팀 및 성인 대표팀 감독을 겸직하기도 했다.

1980년에 U-20 감독직을 겸직하며 1983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 본선에 진출했음은 물론 본선 대비 과정에서는 당시 산소가 희박한 멕시코 고지대에 적응해야 한다면서 마스크를 씌우고 풀타임 연습 경기를 시켰다는 전설 같은 일화가 전해졌음은 물론 당시 실업 강자인 기업은행 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9-2로 승리했는데 프로선수들한테 2골 실점에 대한 벌로 경기 후 운동장 20바퀴를 돌게 하는 등 지옥훈련으로 이름이 높았다.

본선에서도 A조에서 첫 경기 스코틀랜드 전에서는 2-0으로 패했지만 홈팀 멕시코를 2-1로 이겼으며 호주와의 경기에서도 2-1로 이기며 2승 1패, 조 2위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전에는 카를로스 아길레라와 루벤 소사라는 세계구급 유망주 공격진을 앞세운 우루과이를 연장 혈투 끝에 신연호의 멀티골로 제압하기도 했으며 4강에서는 축구제국 브라질에게 패하긴 했지만 2-1로 좋은 경기력을 보였고 결국 대회를 4위로 마쳤다. 이때의 활약으로 비 엘리트 출신의 지도자였던 박종환은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가끔 A 대표팀 감독을 임시로 맡긴 했지만 엘리트 출신도 아니고 인맥도 따로 없었기에 메이저 대표팀 담독을 맡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1988년 일화 천마의 창단 감독으로 활약하며 신인 위주의 신생팀을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지도하며 창단 4년 만인 1993년에 K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1995년까지 우승하며 K리그 3연패를 이뤄내며 K리그 역사상 첫 3연패를 이뤄냈음은 물론 1995년에는 한국 챔피언에 이어 아시아 챔피언에 올랐으나 구단이 박종환 감독과 상의하지 않고 수비의 핵심 안익수를 포항으로 이적시키는 일이 일어나자 사임했다.

사임 이후 잦은 감독 교체로 혼란에 빠진 대표팀 감독을 맡았지만 1996년 초반에 재선임되어 AC 밀란,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각각 3-2, 4-0 승리를 거두며 기대감을 증폭시켰으나 아시안컵에서 선수단과의 불화 및 이란전 6-2 패배로 내리막을 걸었다. 이후 창단한 지 얼마 안 된 대구 FC의 감독을 맡아 팀을 13팀 중 8위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2006년 감독 생활을 마무리한 박종환은 2013년에 일화가 해체하고 재창단한 성남 FC의 창단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현장에 너무 오래 떠나있었던 탓에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지도자 생활을 마무리짓는다.

K리그와 연령별 대표팀에서 한국 축구사의 큰 획을 그었으며 엘리트 출신이 아님에도 한국 축구 역사에 남을만한 업적을 세운 지도자인 故 박종환 감독.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사진출처: 분당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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