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처진 공격수 Top 15

국가의 영웅들/AFC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처진 공격수 Top 15

토르난테 2023. 9. 1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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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현재 AFC에 가맹국을 대상으로 했기에 호주 추국 역사의 선수들은 모두 포함히며 반대로 이스라엘 및 카자흐스탄의 선수들은 명단에서 제외했습니다.
*대상자는 AFC 소속국 국가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3년 9월 16일 기준입니다.

 


15위 바히드 하세미안

 

 

생년월일: 1976년 7월 21일
국적: 이란
A매치 기록: 50경기 15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VfL 보쿰

 

분데스리가에서만큼은 선배 알리 다에이, 후배 사르다르 아즈문을 능가하는 활약을 보여줬던 공격수로 처진 공격수와 스트라이커를 모두 소화할 수 있었는데 특히 용수철 같은 점프력을 바탕으로 우수한 헤더를 자랑해 팬들로부터 페르시아의 헬리콥터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보쿰에서 전성기를 누린 하세미안은 두 시즌 연속으로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고 특히 2003-04 시즌에는 34경기에 출전해 18골을 기록하며 키커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이때의 활약으로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지만 마카이, 피사로, 산타크루즈와의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도태되었고 이후 하노버 96에서도 많은 득점을 하지 못했다.

이란 대표팀 소속으로는 두 번의 아시안컵과 2006 독일 월드컵에 참가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했다. 고점은 높았지만 전성기가 너무 짧은 부분이 아쉬웠다.

 

 

14위 정해원

 

 

생년월일: 1959년 7월 1일
국적: 대한민국
A매치 기록: 65경기 22득점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198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멀티플레이어로 주 포지션인 처진 공격수는 물론 좌우 윙어와 공격형 미드필더, 그리고 중앙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볼 수 있었으며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신체 밸런스를 지녀 상대의 압박을 튕겨냈으며 비단결 같은 패싱력과 원샷원킬의 슈팅으로 이름을 날렸다.

선수 생활을 전부 대우 로얄즈에서 보낸 부산의 반디에라로 K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6년에는 K리그에서 2경기 연속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활약을 펼치며 득점왕에 올랐으며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7년에는 K리그 MVP를 수상했고 K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대표팀에서는 기라성같은 공격수가 많아서 주로 중앙 미드필더나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활약하며 1980년과 1988년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출전해 대표팀의 중원을 책임졌다.

 

 

13위 아드난 알탈리아니

 

 

생년월일: 1964년 10월 30일
국적: 아랍에미리트
A매치 기록: 161경기 52골
신체조건: 키 176cm
주 소속팀: 알샤브 CSC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선정 20세기 아랍에미리트 최고의 축구선수로 상대 수비를 속이는 교활한 드리블과 우수한 헤딩 스킬로 이름을 날렸다.

아랍에메리트 대표팀 통산 A매치 최다 출전자이자 아랍에미리트의 유일한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냈으며 1996년에는 AFC 아시안컵 역대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자국 리그 알샤브의 원 클럽맨이자 레전드기도 한 알탈리아니는 20년간 팀에 머물며 공식전 563경기에 출전해 133골을 기록했다.

 

 

12위 조윤옥

 

 

생년월일: 1940년 2월 25일
국적: 대한민국
A매치 기록: 56경기 25득점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대한중석 축구단

 

1960년대 아시아 축구를 대표하던 스트라이커로 영리한 위치 선정과 타고난 골 감각으로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줬다.

현재로서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마지막 아시안컵 우승을 이뤄낸 대회인 1960 아시안컵에 참가해 베트남전과 이스라엘전에서 모두 멀티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에 올라 아시안컵 우승에 크게 기여했으며 1962년 아시안게임에서는 숙적 일본과의 조별 라운드 최종전에서 후반 80분에 결승골을 득점했고 결국 은메달까지 따내며 국가적 스타로 떠올랐다.

실업축구에서도 1966년 추계실업축구연맹전과 1968 춘계실업축구연맹전에서 우승했으며 대통령배 전국 축구대회 2회 우승을 이뤄냈다.

 

 

11위 하산 로우샨

 

 

생년월일: 1955년 6월 2일
국적: 이란
A매치 기록: 48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3kg
주 소속팀: 에스테그랄

 

이란 축구의 전설적인 공격수로 주 포지션은 처진 공격수지만 스트라이커와 측면 공격수도 소화할 수 있었는데 우수한 득점력과 명민한 드리블, 그리고 날카로운 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장점을 보였다.

1970년대 이란 축구의 약진을 이끈 로우샨은 1976 AFC 아시안컵 우승 및 몬트리올 올림픽 축구종목 8강, 그리고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본선에 참가했다. 본선에서는 부상으로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페루를 상대로 득점포를 뽑아내기도 했다.

 

 

10위 호다다드 아지지

 

 

생년월일: 1971년 6월 22일
국적: 이란
A매치 기록: 45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69cm
주 소속팀: FC 쾰른

 

1990년대 하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처진 공격수 겸 공격형 미드필더로 좁은 지역에서의 세밀한 드리블과 박스 안에서의 침착한 득점은 물론 정확한 패싱력과 높은 축구지능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메이킹에도 능했다.

이란 대표팀에서는 알리 다에이, 카림 바게리와 함께 삼각 공격 편대를 구축해 활약했는데 1996 AFC 아시안컵 3위를 이끌었음은 물론 아지지 본인은 대회 MVP 및 아시아 올해의 축구선수를 석권했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숙적 미국을 상대로 2-1 신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독일의 쾰른에서 활약하며 2.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2000년에는 미국의 산 호세 어스퀘이크에서 활약하며 MLS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2003-04 시즌에는 파스의 이란 프로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9위 미우라 카즈요시

 

 

생년월일: 1967년 2월 26일
국적: 일본
A매치 기록: 89경기 55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베르디 가와사키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이 선정한 20세기 일본 최고의 축구선수이자 킹 카츠라 불리는 일본 축구의 리빙 레전드로 가즈 페인트라고 불렸던 기술적인 움직임과 골문 앞에서 정교한 슈팅으로 이름을 날렸다.

도쿄 베르디의 전신인 요미우리 FC/베르디 가와사키에서 활약했으며 빗셀 고베를 거쳐 요코하마 FC에서 20년 가까이 활약하고 있는 미우라는 1992년 아시안컵에서 조국의 우승을 이끌었지만 정작 오카다 감독과의 불화로 1998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는 나서지 못했다.

현재 55세의 나이에도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며 요코하마 FC의 플레잉 엠버서더로 활약하며 구단의 수입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8위 안정환

 

 

생년월일: 1976년 1월 27일
국적: 대한민국
A매치 기록: 71경기 17득점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부산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1970년대생 한국 축구 최고의 재능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던 공격수로 화려한 볼 컨트롤과 영리하고 실용적인 오프 더 볼 능력을 겸비했으며 날카로운 오른발 킥으로 득점에도 능했으며 이런 화려한 플레이 스타일과 잘생긴 외모로 테리우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K리그의 대우 로얄즈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1998년과 1999년에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특히 1999년에는 K리그 MVP를 수상하며 페루자로 이적했으나 집안 문제와 에이전트의 미숙한 일처리, 그리고 페루자의 괴짜 구단주에 의한 피해자였는데 이로 인해 세리에의 여러 클럽이 노렸음에도 J리그로 이적하며 페루자 입단 초기에 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마테라치가 인테르에 안정환의 영입을 추천했을 정도의 재능에 비해 클럽 커리어가 상당히 좋지 않게 풀렸다.

대표팀에서는 슈퍼 서브 역할을 맡아 경기를 뒤집는 역할에 능했던 안정환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슈퍼서브로 활약하며 조별 리그 미국전 동점골과 16강 이탈리아전 골든골을 득점했으며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토고전 역전 결승골을 득점하며 맹활약했다.

 

 

7위 사미 알자베르

 

 

생년월일: 1972년 12월 11일
국적: 사우디아라비아
A매치 기록: 156경기 46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알힐랄

 

사우디아라비아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1990년대 중후반 아시아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이름을 날리며 상대의 허를 찌르는 패스와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영을 요리하며 득점 찬스를 만들었다.

울버햄튼으로 잠시 임대를 떠난 것을 제외하면 선수생활을 전부 알힐랄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알자베르는 알 힐랄에서만 공식전 452경기 180골을 기록했으며 사우디 프리미어리그 5회 우승과 아시안 컵 위너스컵 2회 우승 및 2000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포함해 24개의 크고 작은 공식전 우승을 이뤄냈고 정규리그 득점왕과 AFC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각각 2회 수상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음은 물론 사우다아라비아 국적 역대 월드컵 본선 최다 참가자이자 사우디아라비아 국적 역대 월드컵 예선 및 본선 통산 최다 득점자인 알자베르는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16강 진출을 이뤄냈다.

 

 

6위 자셈 야쿠브

 

 

생년월일: 1953년 10월 25일
국적: 쿠웨이트
A매치 기록: 49경기 36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1kg
주 소속팀: 카다시아 SC

 

쿠웨이트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마리우 자갈루로부터 찬사를 받았을 정도로 기본기와 볼 컨트롤 능력이 뛰어났다.

파이샬 알다킬과 함께 투톱을 이뤄 활약했던 쿠웨이트 대표팀의 짧은 전성기를 이끌며 1980 AFC 아시안컵 우승 및 모스크바 올림픽 8강, 그리고 걸프컵 4회 우승과 1982 스페인 월드컵 본신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다.

기량이 대단해 당시 유러피언 컵 2연패를 이뤄냈은 잉글랜드의 노팅엄 포레스트는 자셈 야쿠브의 영입을 원했다.

 

 

5위 최순호

 

 

생년월일: 1962년 1월 10일
국적: 대한민국
A매치 기록: 95경기 30득점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포항제철 축구단 (現 포항 스틸러스)

 

이탈리아 축구계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한국의 판타지스타형 공격수로 화려한 볼 컨트롤 능력과 슈팅과 동료를 적절하게 이용하고 날카로운 킬러 패스를 찔러주는 플레이메이킹에 모두 능했으며 큰 키와 강한 피지컬까지 겸비했다. 

청소년 대표팀과 병행하던 시절에 성인 대표팀에 데뷔해 1980 AFC 쿠웨이트 아시안컵에서 7골로 역대 최연소 득점왕에 오르며 준우승에 기여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프로 데뷔 이전인 1981년 호주 청소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와의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2골 2도움의 MOM급의 활약을 벌여 이탈리아를 4-1로 꺾었으며 이로 인해 이탈리아의 명문 유벤투스로부터 로베르트 베테가의 대체자로 거론되었으나 국내 리그를 활성화시키고 싶어 했던 정치권과 국내의 분위기로 인해 결국 이적은 불발되었는데 뛰어난 활약으로 2002년 한국갤럽에서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4위 이회택

 

 

생년월일: 1946년 10월 11일
국적: 대한민국
A매치 기록: 82경기 21득점
신체조건: 키 167cm
주 소속팀: 포항제철 축구단 (現 포항 스틸러스)

 

차범근이 대두하기 이전 한국 최고의 선수라고 평가받았으며 100m를 11초 8에 끊는 빠른 스피드와 낮은 무게중심에서 나오는 튼튼한 신체 밸런스를 겸비했으며 강력한 슈팅과 유려한 패스로 찬스를 만드는데 능했던 전천후 공격수였으며 당대 유럽 최고의 공격수 에우제비우와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로 인해 아시아의 표범이라 불렸던 선수다.

포항 스틸러스의 전신 포항제철 축구단의 창단 멤버였던 이회택은 비록 월드컵에서 활약하진 못했지만 1970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으며 1972 AFC 아시안컵에서는 준우승을 이뤄냈다. 

한국 대표팀 소속으로 펠레의 산투스와 에우제비우의 벤피카와 친선경기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분데스리가의 묀헨글라트바흐와 포르투갈의 벤피카가 그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정보 부족으로 해외에서 축구하는것이 좋은 경험인지 몰랐던 이회택이 거부해서 이적이 불발되었고 훗날에 크게 후회했다고 전해진다.

 

 

3위 마제드 압둘라

 

 

생년월일: 1959년 1월 11일
국적: 사우디아라비아
A매치 기록: 117경기 72골
신체조건: 키 188cm
주 소속팀: 알나스르

 

서이시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큰 키를 활용한 파괴적인 플레이는 물론 서아시아의 펠레라 불렸을 만큼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기습적인 공간침투와 우수한 슛 테크닉, 그리고 상대 수비를 부수는 저돌적인 전진드리블로 이름을 날렸다.

알나스르의 원 클럽맨으로 활약하며 구단 통산 266경기 259골을 기록하며 정규리그와 국왕컵을 각각 4회 우승했으며 압둘라 개인도 정규리그 득점왕 6회 수상, 국왕컵 득점왕 4회 수상 및 걸프 클럽 챔피언스컵 득점왕 2회 수상이라는 업적을 쌓았다.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통산 A매치 최다 득점자인 마제드 압둘라는 1984년과 1988년 AFC 아시안컵 2연패를 이뤄냈으며 1986 아시안게임 축구 은메달 및 1994 미국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다.

 

 

2위 파울리노 알칸타라

 

 

생년월일: 1896년 10월 7일
국적: 필리핀 → 스페인
A매치 기록: 5경기 15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56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스페인과 필리핀의 혼혈 선수로 마른 체형과는 다르게 엄청난 슈팅 파워로 인해 1922년 4월 30일,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35 야드 거리에서 골을 넣었는데, 네트가 찢어지며 골네트 파괴자라는 별명이 생겼으며 두 번째는 1922년 5월 20일 경기에서 또 네트를 찢었으며 엄청난 슈팅 파워와 중거리 슈팅 능력 이외에도 드리블로 풀어나가는 능력도 능했다.

바르셀로나로 입단했다가 필리핀에서 잠시 머물다가 다시 돌아와 활약하며 카탈루냐 주립 리그에서 10회 우승했으며 399경기에 나서 395골을 기록했고 전국 대회인 코파 델 레이에서도 5회 우승을 기록하는 괴력을 펼쳐 바르셀로나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았었다.

스페인 국적으로 더 분류하는 편이지만 필리핀 국적도 보유했고 필리핀 혈통도 있기에 이번 순위에도 선정했다.

 

 

1위 차범근

 

 

생년월일: 1953년 5월 22일
국적: 대한민국
A매치 기록: 136경기 58득점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였으며 분데스리가에서도 통했던 우수한 피지컬과 파괴적인 슈팅으로 상대의 골문을 강타해 갈색 폭격기라 불렸으며 측면에서 찬스를 만들어내는 이타적인 플레이에도 능했다.

서독 분데스리가에서도 정상급 선수로 활약했던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전에서 각각 한 번씩 UEFA컵 우승 과정에서 핵심으로 활약했던 차범근은 이미 서독 분데스리가에 가기 전부터 대표팀에서 130경기를 뛰고 50골을 넘게 득점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나왔다. 

실제로 차범근은 1979-80 시즌 전반기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키커 랑리스테 외국인 항목에서 케빈 키건을 제치고 월드클래스 1위를 받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으며 당연하게도 IFFHS 선정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축구선수, 2002년 한국갤럽 선정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과 2010년 베스트 일레븐지 선정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을 모두 석권했으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A매치 통산 최다 출전과 최다 득점마저 기록한 명실상부 대한민국과 아시아 축구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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