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15

국가의 영웅들/AFC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15

토르난테 2023. 9. 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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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현재 AFC에 가맹국을 대상으로 했기에 호주 추국 역사의 선수들은 모두 포함히며 반대로 이스라엘 및 카자흐스탄의 선수들은 명단에서 제외했습니다.
*대상자는 AFC 소속국 국가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3년 9월 7일 기준입니다.

 


15위 나카자와 유지

 

 

생년월일: 1978년 2월 25일
국적: 일본
A매치 기록: 110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요코하마 마리노스

 

2000년대 일본 정상급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특유의 폭탄머리의 헤어스타일로 인해 폭격기 또는 폭파범이라 불렸으며 큰 키와 우수한 수비 위치선정을 바탕으로 한 제공권 경합에 능했으며 리더십이 뛰어나 수비라인 조율에 능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흥분하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하며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줬지만 발이 다소 느린 단점도 있었다.

요코하마 마리노스에서 16년을 활약해 요코하마의 고목으로 불렸으며 J리그 2회 우승을 이뤄내며 J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6회 선정되었음은 물론 2004년에는 리그 2연패에 큰 공을 세우며 J리그 MVP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사무라이 블루에서도 핵심 수비수로 활약하며 2000년과 2004년에 아시안컵에서 우승하는 활약을 펼쳤으며 2004년과 2007년 아시안컵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되었으나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그 해에 부진하는 바람에 출전하지 못하다가 2006 독일 월드컵과 2010 남아공 월드컵에 나서 후자의 대회에서는 16강 진출을 이뤄냈다.

 

 

14위 판즈이

 

 

생년월일: 1969년 11월 6일
국적: 중국
A매치 기록: 106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크리스탈 펠리스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선정 20세기 최고의 중국 축구선수로 중국의 홍명보라 불렸을 정도로 우수한 수비력과 리더십을 겸비했음은 물론 스트라이커로 변칙 출장해 1995 시즌 중국 리그 득점왕에 오른 이력이 있었을 정도로 공격적인 재능 또한 뛰어난 리베로였다.

상하이 선화에서 활약하며 1995년 정규리그 우승을 이뤄낸 판즈이는 개인적으로도 중국 리그 올해의 팀에 3회 연속으로 선정된 판쯔이는 1998년 잉글랜드 챔피언십에 있던 크리스탈 펠리스로 이적했는데 마케팅 용으로 영입했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2001년에는 크리스탈 펠리스 올해의 선수 및 아시아 올해의 축구선수를 수상했다.

중국 올해의 선수에 3회 선정된 판즈이는 대표팀에서도 1992 아시안컵 3위, 2000 아시안컵 4위 및 2002 한일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업적을 이루며 자신들만의 작은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13위 조영증

 

 

생년월일: 1954년 8월 18일
국적: 대한민국
A매치 기록: 113경기 1득점 
신체조건: 키 183cm
주 소속팀: 럭키금성 황소 (現 FC 서울)

 

1980년대 대한민국 수비를 대표했던 선수로 코끼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몸싸움에 능했으며 드넓은 시야와 뛰어난 전술안과 판단력을 겸비했으며 패싱력과 득점력도 뛰어났다.

제일은행 축구단에서 경력을 시작해 훌륭한 활약을 펼쳐 1977 K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해군 축구단을 거쳐 미국의 포틀랜드 팀버스에서 활약하다 구단이 재정난으로 해체되며 시카고 스팅으로 이적하여 활약했는데 1982 북아메리카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며 북미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꼽혔다.

K리그로 돌아와서는 럭키금성 황소의 창단 멤버로 활약하며 스트라이커로도 뛰었고 1984년 6경기 연속골을 이뤄내기도 했다. 다만 멕시코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돼 장기 합숙에 들어갔기 때문에 럭키 금성에서 활약할 기간이 적어 1985년의 우승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대표팀에서도 두 번의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1980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도 참가했고 1987 아프로아시안 네이션스컵에서 우승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12위 김영권

 

 

생년월일: 1990년 2월 27일
국적: 대한민국
A매치 기록: 100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광저우 헝다

 

2010년대 대한민국의 간판 수비수로 적절한 위치 선정과 좋은 타이밍에 실행되는 수준 높은 커팅 능력은 물론 볼터치가 부드럽고 왼발 킥력이 우수했으며 전성기에는 주력도 빠른 선수였다.

J리그에서 경력을 시작해 도쿄와 오미야 아르디자에서 활약하다가 광저우 헝다에서 전성기를 누렸는데 광저우 헝다에서 중국 슈퍼리그 6연패를 기록했고 두 번의 FA컵 우승을 거뒀으며 중국 슈퍼리그 올해의 팀에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 연속 선정되었다. 아시아 무대에서도 두 번의 AFC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했으며 2015년에는 AFC 챔피언스 리그 드림팀에 선정되었으며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2015년 K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대표팀에서는 홍정호, 장현수, 김민재 등과 호흡을 맞췄는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선 부진했고 이후에도 좋지 않았고 이란전 직후 인터뷰로도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서 파트너인 장현수와는 다르게 준수한 모습을 보였으며 특히 카잔에서 독일을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11위 김태영

 

 

생년월일: 1970년 11월 8일
국적: 대한민국
A매치 기록: 105경기 3득점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전남 드래곤즈

 

아파치라고 불렸던 거친 수비수로 한일 월드컵 당시 코뼈 부상으로 착용한 타이거 마스크로도 유명했다. 거친 플레이를 펼쳤음에도 현역 내내 퇴장 기록이 없을 정도로 지능적인 면모를 보였으며 축구화에 일부러 쇠로 된 징을 박아, 경기장 입장할 때부터 상대 선수에게 쇳소리를 들려줘 겁을 주는 등 심리전에도 능했다. 양발을 모두 잘 썼고 발이 빨라 측면 수비수로도 뛰었다.

K리그 드래프트에 대한 반감으로 실업 리그에서 뛰다가 고향팀인 전남 드래곤즈의 창단 멤버로 활약하며 프로리그에서는 전남 원 클럽맨으로 남으며 1997년에 FA컵 우승과 리그 준우승, 그리고 아디다스 컵 준우승이라는 대단한 성과를 이뤄냈으며 1999년에는 아시안 컵 위너스 컵 준우승을 거두기도 했으며 2002년과 2003년에는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음은 물론 은퇴한 뒤인 2013년에는 K리그 30주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대표팀에서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는 레프트백과 센터백을 번갈아가며 맡았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왼쪽 스토퍼로 4강 신화를 이뤄냈다. 타이거 마스크로 대변되는 투지는 한일 월드컵 이후 그의 상징이 되었다.

 

 

10위 최진철

 

 

생년월일: 1971년 3월 26일
국적: 대한민국
A매치 기록: 65경기 4득점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전북 현대 모터스

 

큰 키와 탄탄한 피지컬을 기반으로 한 압도적인 제공권 능력과 강력한 몸싸움을 바탕으로 플레이하던 수비수로 슬라이딩 태클에도 강점을 보여줬다.

25세라는 상당히 늦은 나이에 프로에 입단했으며 숭실대학교 졸업 이후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친 뒤 프로 무대에 뛰어들어 이후에는 전북 현대에서만 쭉 활약한다. 프로 데뷔 초반엔 공격수로 활약했다가 김도훈이 전북으로 돌아오자 수비수로 복귀한 뒤에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전북에서는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며 전북의 방패라는 별명을 얻었고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2006년에는 전북을 AFC 챔피언스리그 챔피언으로 올리고 대회 MVP에 올라섰다.

대표팀에서는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파울레타, 비에리, 모리엔테스를 그럭저럭 잘 막아내며 4강 신화에 공헌했으며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수비라인의 리더로 출전해 토고의 아데바요르를 완벽하게 막아내며 원정 첫 승을 거두는데 일조했다.

 

 

9위 라만 레자에이

 

 

생년월일: 1975년 2월 20일
국적: 이란
A매치 기록: 56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ACR 메시나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 성공한 최초의 아시아 수비수로 비록 스피드는 조금 느렸지만 견고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터프한 대인마크로 상대 공격수를 밀어냈으며 뛰어난 점프력과 우수한 헤더로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존재감을 보여줬다.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중소규모의 클럽인 페루자, 메시나, 리보르노에서 주로 활약한 레자에이는 터프하고 우직했으며 제공권에 능해 팬들로부터 국방장관, 날으는 양탄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신뢰받았다.

이란 대표팀에서도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2004년 아시안컵 3위 및 2007년 아시안컵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나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예선전에서 훌륭한 활약과는 다르게 본선에서는 다소 아쉬운 면을 보여줬다.

 

 

8위 이하라 마사미

 

 

생년월일: 1967년 9월 18일
국적: 일본
A매치 기록: 122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요코하마 마리노스

 

일본 축구를 대표하는 리베로로 뛰어난 수비력과 정밀도 높은 롱패스로 팀의 공격 전개를 이끌며 주목받았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홍명보와 라이벌리를 이뤘는데 홍명보가 독일식 리베로였다면 마사미는 상대적으로 수비적인 이탈리아식 리베로와 유사했다.

닛산 자동차 시절부터 활약해 요코하마 마리노스에서 전성기를 보낸 이하라 마사미는 일왕배 컵 2연패 및 아시안 컵 위너스컵 2연패를 이뤄냈음은 물론 J리그 출범 이후에는 1993년부터 1997년까지 5년 연속으로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1995년에는 J리그 우승을 이끌며 아시아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사무라이 블루에서도 핵심 수비수로 활약하며 1992년 아시안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7위 정용환

 

 

생년월일: 1960년 2월 10일
국적: 대한민국
A매치 기록: 86경기 3득점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홍명보 이전 대한민국 최고의 수비수로 꼽히던 선수로 꾸준하고 성실한 몸관리로 만든 신체능력이 특히 우수했는데 키가 178cm에 불과했으나 꾸준히 연구하며 성실하게 연습한 결과 키가 197cm에 달하는 외국인 선수와의 공중경합에서 밀리지 않는 경악스러운 점프력을 지녔으며 대한민구에서는 대인 방어능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프로 생활 11년 동안 단 한차례의 레드카드와 자책골도 기록하지 않았던 안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프로팀 입단 이전인 고려대학교 시절부터 대표팀에 뽑혔으며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1986 멕시코 월드컵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활약했으며 1987 아프로아시안 네이션스컵 우승을 경험했고 1988 아시안컵에서는 준우승을 거두가도 했으며 1988 서울 올림픽에도 참가했고 1994 미국 월드컵 출전까지 노렸으나 부상으로 아쉽게 낙마했다.

K리그에서는 대우 로얄즈에서 활약하며 세 번의 K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우승한 해인 1984년, 1987년, 1991년 모두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1988년에는 KFA 올해의 선수와 아시안컵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1991년에는 K리그 MVP에 뽑히는 등 프로팀에서도 대단한 족적을 남겼다.

1994년 대우와의 계약이 종료되고 1995년 겨울 이적시장에서 풀럼 입단을 노렸으나 워크퍼밋 문제로 불발되고 선수로서 모든 것을 이뤘다는 판단에 은퇴했다고 전해진다.

 

 

6위 루카스 닐

 

 

생년월일: 1978년 3월 9일
국적: 호주
A매치 기록: 96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블랙번 로버스

 

2000년대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지역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전투적인 거친 플레이스타일로 상대 공격수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등 악명이 높았다. 이런 거친 부분과는 다르게 센터백과 라이트백을 모두 뛸 수 있는 영리한 부분도 있었다.

잉글랜드 2부 리그의 밀월에서 성인 커리어를 시작해 블랙번 로버스와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를 보낸 루카스 닐은 블랙번에서는 리그컵 우승을 이뤄냈다.

호주 대표팀에서도 1996년 10월 만 18세의 나이에 데뷔를 시작으로 2006 독일 월드컵 16강 진출,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 및 2011년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5위 요시다 마야

 

 

생년월일: 1988년 8월 24일
국적: 일본
A매치 기록: 125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7kg
주 소속팀: 사우스햄튼

 

2010년대 아시아 축구를 대표하는 수비수로 큰 키와 강력한 몸싸움을 바탕으로 우수한 제공권 경합 능력을 보여줬으며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헤더로 상대의 골문을 위협하나 순발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 그로 인해 종종 저지르는 수비 실책은 단점으로 평가받았다.

J리그의 나고야 그램퍼스에서 데뷔해 세 시즌을 보낸 마야는 네덜란드의 벤로에서 유럽 무대의 첫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감했으며 사우스햄튼에서는 전성기를 보내며 무려 여덟 시즌을 활약했고 2017-18 시즌에는 겨울 이적시장에 떠난 반 데이크 대신 부주장에 올랐으며 일본 선수로서는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통산 100경기에 출전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사무라이 블루에서도 2011 아시안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16강 진출에 공헌했으며 16강전에서도 자신보다 큰 로멜로 루카쿠와의 경합에서 압도하며 자신의 클래스를 보여줬으며 2019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이뤄내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4위 살레 뉘에이메흐

 

 

생년월일: 1960년 6월 24일
국적: 사우디아라비아
A매치 기록: 99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6cm
주 소속팀: 알힐랄

 

서아시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로 기본적으로 강력한 수비력은 물론 선수단을 아우르는 막강한 리더십과 얼음처럼 냉철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팬들에게 황제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선수생활의 전부를 알 힐랄에서만 보낸 뉘에이메흐는 정규리그 6회 우승, 국왕컵 4회 우승, 그리고 1986년에는 정규리그에 이어 걸프 클럽 챔피언스 컵에서 우승을 이뤄내며 알 힐랄이 중동의 패자로 올라서는데 큰 공을 세웠다.

1980년대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의 황금기를 이끌기도 했던 뉘에이메흐는 1984년과 1988년 AFC 아시안컵 2연패에 큰 공을 세웠음은 물론 두 대회에서 모두 대회 최우수 수비수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3위 조 마스턴

 

 

생년월일: 1926년 1월 7일
국적: 호주
A매치 기록: 1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0cm
주 소속팀: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1950년대 초중반 잉글랜드 무대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호주 출신의 선수로 뛰어난 수비라인 커버 능력과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했으며 제공권 경합에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톰 핀니가 에이스로 군림하던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에서 활약한 머스턴은 그와 함께 1952-53 시즌 잉글랜드 풋볼 리그 1부 준우승 및 1953-54 시즌 FA컵 준우승을 달성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잉글랜드에서 떠났을 때에는 호주 대표팀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호주 A리그 그랜드 파이널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의 이름이 조 머스턴 메달이라 불린다.

 

 

2위 김민재

 

 

생년월일: 1996년 11월 15일
국적: 대한민국
A매치 기록: 47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8kg
현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현세대 대한민국 최고의 수비수로 190cm의 큰 키와 빠른 스피드를 겸비한 완벽한 신체 능력을 활용해 일대일 경합과 제공권 경합에서 모두 우수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적절한 상황 판단과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오는 드리블로 전방으로 치고 올라와 상대 수비진의 균열을 이끌거나 롱패스를 활용해 찬스를 만드는 능력 모두 뛰어난 완벽한 수비수였다.

데뷔 시즌부터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전북의 K리그 2연패를 이끌었고 김민재 본인도 신인상은 물론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으며 베이징 궈안을 거쳐 페네르바체에서 유럽 무대에 진출했으며 페네르바체에서의 성공적인 활약으로 무려 2000만 유로라는 거액의 이적료로 나폴리로 이적했으며 나폴리에서도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 수상 및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이런 활약을 발판으로 2023-24 시즌을 앞두고 5000만 유로에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대표팀에서도 가장 호평받는 선수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뤄냈으며 월드컵 지역에서도 팀 내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기복 없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부상으로 놓쳤지만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부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활약을 펼치며 조국의 16강 진출에 기여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주전 경쟁에서 승리하고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조만간 1위로 올라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 김민재가 부족한 점은 오직 젊은 선수이기에 누적이 적다는 부분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1위 홍명보

 

 

생년월일: 1969년 2월 12일
국적: 대한민국
A매치 기록: 136경기 10득점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포항제철 아톰스 (現 포항 스틸러스)

 

"홍명보는 한국의 기형적인 시스템이 낳은 기형아이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저런 선수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1994 미국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 해설자

 

자타공인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대인 수비 능력은 부각되지 않았지만 뛰어난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두 스토퍼들을 커버하며 볼을 차단하고, 중앙에서 수비 라인을 리딩 하는 리베로로 활약했으며 뛰어난 판단력과 넓은 시야, 그리고 뛰어난 패싱력을 바탕으로 한 훌륭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앞세워 아시아의 베켄바우어라고 불렸다.

대표팀에서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2002 한일 월드컵까지 무려 네 번의 대회에 모든 경기에 풀타임으로 출전했으며 아시안컵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스페인을 상대로 프리킥 골을 득점하며 따라붙어 무승부에 공을 세웠고 독일전에서도 중거리 슈팅으로 만회골을 넣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팀의 리베로로 대한민국을 4강에 올리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이고 유럽과 남미 국적의 선수가 아닌 선수로는 최초로 월드컵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이후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상무에서 뛰었다가 포항에 입단해 입단 첫해인 1992년에 포항에게 K리그 우승을 선물하고 자신은 리그 MVP를 석권했으며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무려 다섯번이나 선정되었으며 1995년에는 AFC 선정 아시아 최고의 수비수로 선정되었으며 일본에 건너가서도 가시와 레이숄에서 활약하며 2001년 J리그 올스타 팀에 선정되는 맹활약을 펼쳤으며 말년에는 포항에 돌아왔다가 다시 떠난 LA 갤럭시에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은퇴 이후 2004년에는 펠레가 선정한 FIFA 100에 선정되었으며 2010년에는 베스트일레븐지에서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2013년에는 K리그 30주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2014년에는 아시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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