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Top 15

국가의 영웅들/AFC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Top 15

토르난테 2023. 9. 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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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현재 AFC에 가맹국을 대상으로 했기에 호주 추국 역사의 선수들은 모두 포함히며 반대로 이스라엘 및 카자흐스탄의 선수들은 명단에서 제외했습니다.
*대상자는 AFC 소속국 국가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3년 9월 5일 기준입니다.

 


15위 나라자키 세이고

 

 

생년월일: 1976년 4월 15일
국적: 일본
A매치 기록: 77경기 76실점 / 36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나고야 그램퍼스

 

가와구치 요시카츠의 라이벌로 명성이 높았던 일본 제일의 골키퍼 중 하나로 재치있는 일대일 방어로 유명했으며 우수한 자기 관리 능력으로 J리그 통산 출전 2위를 기록할 정도로 롱런했다.

요코하마 플뤼겔스에서 활약하다가 팀이 마리노와 합병하자 나라자키는 나고야 그램퍼스로 이적해 활약하며 개인 통산 j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6회 선정되었으나 대표팀에서는 가와구치의 그림자에 가려지며 백업으로 밀려났으나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조국의 첫 월드컵 16강행을 견인했다.

2010년에는 나고야 그램퍼스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J리그 MVP에 선정되었지만 신성 가와시마 에이지와의 대표팀 주전 경쟁에서 패해 남아공 월드컵 직후에 은퇴했다.

 

 

14위 이세연

 

 

생년월일: 1945년 7월 11일
국적: 대한민국
A매치 기록: 81경기 55실점
신체조건: 키 175cm
주 소속팀: 서울신탁은행 축구단

 

K리그의 전신인 실업리그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대한민국의 레프 야신이라 불렸으며 심리전에서 강점을 보여 상대 공격수와 의도적인 신체접촉과 트래쉬토크를 즐겨해 아시아의 폭군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대표팀에서는 이회택, 김정남 등과 함께 스타로 군림하며 1970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을 거두는 성과를 보였으나 이스라엘, 호주에 각각 밀리며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럼에도 1970년대 대한민국 축구 최고의 인기 스타 중 하나로 군림했으며 2002년에는 여론 조사 전문 업체인 한국갤럽에서 투표한 대한민국 축구 역대 베스트 11 골키퍼 부분에 선정되기도 했다.

 

 

13위 압둘라 알데아예아

 

 

생년월일: 1961년 12월 1일
국적: 사우디아라비아
A매치 기록: 58경기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알타이

 

1980년대 아시아 축구 최고의 골키퍼이자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모하메드 알데아예아의 친형으로 동생과 유사하게 민첩한 몸놀림과 뛰어난 반사신경을 바탕으로 한 선방 및 전진수비로 이름을 날렸다.

알타이에서 1976-77 시즌 2부 리그 우승 및 1984-85 시즌 1부 리그 우승을 이뤄낸 압둘라 알데아예아는 말년에는 알 힐랄로 이적해 1995-96 시즌 사우디 프리미어리그 우승 및 1996-97 시즌 아시안 컵 위너스 컵 우승을 포함해 7개의 공식 대회에서 우승컵을 차지했다.

대표팀에서도 1980년대 조국의 대약진을 이끈 알데아예아는 1984 AFC 아시안컵과 1988 AFC 아시안컵에서 모두 우승하며 2연패를 이뤄냈는데 1984년에는 대회 최우수 골키퍼에 선정되었으며 1988년에도 조별리그 4경기 1실점 및 토너먼트에서 이란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무실점을 기록했음은 물론 결승전에서는 승부차기에서 승리하기도 했다.

 

 

12위 홍덕영

 

 

생년월일: 1926년 5월 5일
국적: 대한민국
A매치 기록: 17경기 56실점
신체조건: 키 170cm
주 소속팀: 조선방직 축구단

 

광복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주전 골키퍼로 1948년 대한민국의 첫 국제 대회인 런던 하계 올림픽 축구에서 나름 월드컵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낸 멕시코를 상대로 5-3으로 이기는 데 일조하며 팀을 8강으로 이끌었고 8강에서는 당대 최고의 팀 중 하나이자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스웨덴을 만나 48개의 슈팅을 기록하는 일방적인 경기 속에서 12-0으로 패했지만 홍덕영은 수많은 선방으로 대표팀 선수중에서는 유일하게 자존심을 지켰다.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열악한 환경으로 비행기를 제때 탑승하지 못해 미군 군용기를 타고 가서 경기 시작 20 시간 전에 도착했음에도 세계 최강 헝가리를 상대로 수많은 슈팅을 선방해 9-0으로 패했음에도 유럽의 축구 팬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당시 언론은 당대 세계 최고의 축구 강국 헝가리와 전쟁이 끝난 지 채 1년이 안된 조악한 상황에서의 대한민국이라 헝가리의 20-0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9 실점으로 막아낸 홍덕영의 대단한 활약에 감복해 스위스에 방문한 팬들은 그에게 사인을 받아 가거나 대한민국 대표팀 숙소에 선물을 두고 가는 등 그를 훌륭한 스포츠 스타로 대접했다.

 

 

11위 발레리 사리체프

 

 

생년월일: 1960년 1월 12일
국적: 타지키스탄 → 대한민국
A매치 기록: 1경기
신체조건: 키 193cm / 몸무게 87kg
주 소속팀: 일화 천마 (現 성남 FC)

 

본명은 발레리 사리체프로 타지키스탄 출신의 K리그 역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이며 포항의 전설적인 공격수이자 K리그 득점왕 이력까지 있었던 차상해의 말에 따르면 "느낌상 분명 '골이다' 싶어 세리머니를 펼치려는 순간 손을 뻗어 막아냈다. '이번에는 정말 들어갔다' 싶어 동료들에게 뛰어가려는 순간 발을 뻗어 막아냈다. 정말 밉더라"라고 했을 정도로 막기 힘든 슈팅마저도 막아냈다.

소련 탑 리그의 토르페도 모스크바에서 리그 정상급 골키퍼로 군림했으나 소련이 해체되는 혼란기에서 소련을 떠나 일화에 입단했으며 일화에서 1992년 리그컵 우승을 시작으로 1993년부터 1995년까지 K리그 3연패를 이뤄냈으며 1995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듬해에는 아시안 슈퍼컵과 아프로-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모두 우승하는 활약을 펼쳤으며 신의손 개인도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여섯 번 선정되었다.

신의손의 압도적인 활약에 의해 K리그 구단 사이에서는 외국인 골키퍼를 기용하는 게 유행이 되어버리자 한국인 골키퍼 육상을 명분으로 외국인 골키퍼 기용을 금지하며 1998년 이후로 팀을 떠나야 했지만 2년 뒤에 귀화자격을 갖춰 대한민국으로 귀화해 활약하며 이름을 자신의 별명인 신의손으로 짓고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해 2000년 K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신의손은 안양 LG 치타스에서 2도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며 개인 통산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6회 선정되었다.

 

 

10위 가와구치 요시카츠

 

 

생년월일: 1975년 8월 15일
국적: 일본
A매치 기록: 116경기 104실점 / 50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요코하마 마리노스

 

일본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골키퍼 치고 키는 작은 편이었지만 부드러운 유연성과 동물적인 반사신경을 바탕으로 엄청난 선방을 보여줬으며 대단한 승부근성을 발휘했다.

요코하마 마리노스와 주빌로 이와타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전자의 구단에서 리그 2회 우승을 이뤄내고 J리그 신인상을 탄 가와구치 요시카츠는 사무라이 블루에서도 오랜 기간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AFC 아시안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2004년에는 대회 우승과 더불어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었으며 일본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1998 프랑스 월드컵부터 2010 남아공 월드컵까지 출전했으며 특히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대다수의 선수들이 부진하는 와중에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사생활적으로 문제가 없었으며 몸 관리에도 많은 신경을 썼으며 한일전에서 양 팀 선수들이 격해져 몸싸움으로 번지려 하자 양 팀의 골키퍼인 이운재와 가와구치가 달려와 중재하자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되었을 정도로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9위 가와시마 에이지

 

 

생년월일: 1983년 3월 20일
국적: 일본
A매치 기록: 95경기 104실점 / 36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스탕다르 리에주

 

2010년대 일본 축구의 약진을 이끌었던 명 골키퍼로 냉정한 판단력과 민첩한 몸놀림을 겸비해 많은 선방을 보여주며 주장으로서 팀을 독려하는 리더십도 훌륭했음은 물론 자기관리에 철저해 항상 우수한 컨디션을 유지하려 노력했으며 예전부터 유럽 클럽으로의 이적을 준비해 모국어인 일본어를 제외하고도 다섯 개의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J리그의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서 첫 전성기를 누리며 2009년 J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오른 가와시마는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벨기에의 리에세르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2년 연속 팀의 1부 리그 잔류에 기여했음은 물론 팀 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하기도 했고 스탕다르 리에주로 이적한 뒤에도 우수한 활약을 펼쳤다.

사무라이 불루에서도 오랜 기간 주전 골키퍼로 활약한 가와시마는 오랜 기간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2010 남아공 월드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조국의 16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2011년 아시안컵에서는 조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8위 김병지

 

 

생년월일: 1970년 5월 12일
국적: 대한민국
A매치 기록: 61경기 72실점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울산 현대 호랑이

 

라이벌 이운재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골키퍼로 손꼽히며 뛰어난 선방 능력은 물론이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직접 공을 몰고 나와 빌드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스타일은 때때로 실점의 빌미가 되기도 해 호불호가 갈렸지만 김병지는 훌륭한 자기 관리 능력으로 대부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대한민국이 오랫동안 최인영과 김풍주의 대체자를 찾지 못했으나 혜성처럼 등장하며 아시아 예선전이자 한일전이었던 도쿄 대첩에서 활약했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주전 자리를 차지했는데 대다수의 대표팀 선수들이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였으나 김병지만큼은 훌륭한 활약을 보여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로부터 "우리는 더 많은 득점을 할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골키퍼가 너무 뛰어나서 더 많은 골을 넣지 못했다."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 히딩크 감독에 의해 이운재에게 대표팀 경쟁에서 밀리며 한일 월드컵을 벤치에서 지켜봤고 이후에는 대표팀에서는 백업으로 밀려났다.

K리그에서의 그의 족적은 대단한데 비록 리그 우승은 1996년에 울산에서 한 번 밖에 하지 못했지만 706경기에 출전해 K리그 통산 최다 출전을 기록했으며 229번의 클린 시트를 기록하며 K리그 통산 최다 클린 시트를 기록했고 153경기 연속 무교체 출전하며 이 부분에서도 K리그 최다 기록을 자랑하며 K리그 최고령 출전과 K리그 골키퍼 최다 득점이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도 4회 선정되었다.

 

 

7위 알리 알 합시

 

 

생년월일: 1981년 12월 30일
국적: 오만
A매치 기록: 135경기 124실점
신체조건: 키 194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위건 원더러스

 

오만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큰 키와 대단한 반사신경을 바탕으로 엄청난 선방을 보였으며 우수한 자기 관리 능력으로 오랜 기간 전성기를 유지했을 정도로 꾸준한 선수였다.

노르웨이 리그의 명문팀 FC 린 오슬로에서 노르웨이 리그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으며 이후 볼턴 원더러스와 위건 애슬리틱에서 활약하며 크리스 커클랜드 대신 주전자리를 차지해 활약했다.

대표팀에서는 조국의 전력이 약했기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한창 상승세였던 대한민국을 상대로 3-1로 이긴 경기에서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6위 매튜 라이언

 

 

생년월일: 1992년 4월 8일
국적: 호주
A매치 기록: 81경기 78실점 / 33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2010년대 하반기 아시아축구연맹 소속국 최고의 골키퍼로 골키퍼치고는 단신이었지만 뛰어난 점프력과 적절한 위치선정으로 단신 골키퍼의 큰 약점인 공중볼 처리능력을 어느 정도 보완을 하고 있음은 물론 우수한 롱킥과 상대방의 압박에 당황하지 않으며 침착하게 짧은 패스로 하는 빌드업에 능했음은 물론 상대 공격수와의 일대일 상황에서 빠른 판단력에서 나오는 전진수비로 상대를 잘 막아냈다.

클뤼프 브뤼허 KV와 브라이튼 앤 호프 알비온에서 전성기를 누린 라이언은 전자의 클럽에서는 벨기에 컵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주필러리가 올해의 골키퍼에 2회 연속 선정되었으며 브라이튼에서도 전성기를 누렸으며 백업으로 아스날에 머무르기도 했다.

호주 대표팀 소속으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친 라이언은 2015 AFC 아시안컵에서 중국, UAE, 그리고 결승에서 대한민국을 모두 꺾어내며 우수한 활약을 선보여 대회 베스트 일레븐 및 최우수 골키퍼에 선정되었으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조국 호주가 대회 최약체로 분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6강 진출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5위 마크 보스니치

 

 

생년월일: 1972년 1월 13일
국적: 호주
A매치 기록: 17경기 1골 15실점 / 10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6kg
주 소속팀: 아스톤 빌라

 

20세기 호주 축구 최고의 골키퍼로 육중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반사신경에서 나오는 민첩한 몸놀림에서 나오는 선방 능력은 물론 우수한 수비라인 지휘능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전성기가 짧았지만 전성기를 보냈던 아스톤 빌라 시절에는 리그컵 2회 우승이라는 성과를 냈으며 슈마이켈의 후계자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기도 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이기도 했다.

호주가 아시아 축구연맹으로 이동하기 전에 활약했던 선수로 1997년 컨페드컵에서도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냈으나 결승전에서 호나우두와 호마리우 투톱에게 모두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6-0 대패하는 쓴맛을 보기도 했다. 그래도 오세아니아에서는 적수가 없었기에 1999년에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이 선정한 20세기 오세아니아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다.

 

 

4위 이운재

 

 

생년월일: 1973년 4월 26일
국적: 대한민국
A매치 기록: 133경기 115실점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

 

라이벌 김병지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골키퍼로 손꼽히며 번뜩이는 부분에서는 김병지에 밀렸다는 평가를 받지만 우수한 판단력과 흔들리지 않는 강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하는 차원이 다른 안정감을 자랑했으며 수비 조율 부분에서는 아시아에서도 적수가 없었으며 승부차기 방어에도 매우 능했다. 실제로 2004년 K리그 챔피언 결승전에서 승부차기에서 포항 측 마지막 키커 김병지의 페널티 킥을 막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런 안정적인 부분 덕분에 이운재는 이미 고려대학교 시절부터 대표팀에 소집되었으며 히딩크부터 핌 베어벡까지 모두 이운재를 중용했으며 이운재는 감독들의 신임에 보답해 2002 한일 월드컵 4위를 기록했으며 북중미 골드컵에서도 4위를 기록했다. 특히 한일 월드컵에서는 부폰, 카시야스와 같은 거물급 골키퍼와 선방 대결을 벌여 승리하기도 했다. 2007년 아시안컵에서도 3위를 기록했지만 이운재 개인의 활약은 인정받아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수원 삼성에서도 창단 멤버로 합류하며 K리그 4회 우승을 이끌었고 리그컵 4회 우승과 FA컵 3회 우승을 이끌었으며 AFC 챔피언스리그의 전신 대회인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했다. 네 번의 K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특히 2008년에는 수원 삼성의 우승에 크게 공헌하며 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2009년에는 FA컵 MVP를 수상하는 등 개인 단위나 팀 단위나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

상술한 활약을 바탕으로 2010년에는 여론 조사 업체인 한국갤럽이 선정한 대한민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축구 잡지사 베스트일레븐이 선정한 대한민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며 자타공인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군림하고 있다.

 

 

3위 모하메드 알데아예아

 

 

생년월일: 1972년 8월 2일
국적: 사우디아라비아
A매치 기록: 178경기 197실점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알힐랄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큰 키와 긴 팔다리를 가지고 있었음은 물론 대단한 반사신경과 우수한 운동능력을 겸비해 엄청난 선방 능력을 선보였다.

알힐랄에서 전성기를 누린 알데아예아는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 4회 우승, 사우디 크라운프란스컵 7회 우승 및 1999-2000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2001-02 시즌 아시안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내는 등 구단이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클럽으로 올라서는데 큰 공을 세웠다.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에서도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강호 네덜란드와 벨기에, 그리고 아프리카의 신흥 강자 모로코가 포진한 조에서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으며 1996 AFC 아시안컵 우승 및 2000 AFC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이 두 대회에서 모두 아시안컵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음은 물론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이 선정한 20세기 아시아 최우수 골키퍼 및 2021년에 선정한 아시아 남자축구 드림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2위 나세르 헤이야지

 

 

생년월일: 1949년 12월 19일
국적: 이란
A매치 기록: 62경기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타지 테헤란 / 에스테그랄

 

1970년대 아시아 축구 최고의 골키퍼이자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큰 키와 긴 팔, 그리고 우수한 위치선정을 바탕으로 한 크로스 차단에 특히 능했다.

1970년대 이란 대표팀의 대약진을 이끈 헤이야지는 1972 AFC 아시안컵과 1976 AFC 아시안컵 2연패를 이뤄냈음은 물론 1974 아시안게임 축구 금메달 및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성과를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타지 테헤란에서 활약하다가 구단 이름이 에스테그랄로 바뀌었을 때 돌아온 헤이야지는 정규리그 4회 우승 및 1970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을 앞두고 있었으나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이라는 자국의 정세 문제로 인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에는 실패하게 된다.

 

 

1위 마크 슈워처

 

 

생년월일: 1972년 10월 6일
국적: 호주
A매치 기록: 109경기 99실점
신체조건: 키 194cm / 몸무게 95kg
주 소속팀: 미들즈브러

 

호주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거구의 피지컬과 우수한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꾸준하게 뛰어난 선방 능력을 보였음은 물론 날카로운 동체시력을 바탕으로 상대 키커의 슈팅 방향을 읽어내는 부분에도 탁월했으며 정밀도 높은 골킥 및 적절한 전진수비까지 겸비해 현대축구의 트렌드에도 잘 적응한 골키퍼로 평가받는다.

프리미어리그에서만 514경기를 출전하며 프리미어리그 비영국인 통산 최다 출전 및 통산 출전 8위라는 대기록을 세운 슈워처는 미들즈브러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97-98 시즌 챔피언십 및 리그컵 준우승을 시작으로 11시즌 연속으로 주전으로 활약하며 2003-04 시즌 리그컵 우승 및 2005-06 시즌 UEFA컵 준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웠으며 풀럼으로 이적한 뒤에도 2009-10 시즌 UEFA 유로파리그 준우승을 이뤄냈고 말년에는 첼시와 레스터 시티에서 백업으로 리그 우승을 경험했지만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호주 대표팀에서는 그야말로 언터처블이라 불릴 만 한데 호주 대표팀 통산 A매치 최다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보유했음은 물론 2001 컨페드컵 3위, 2004 OFC 네이션스컵 우승 및 2006 독일월드컵 16강과 2011 AFC 아시안컵 준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2021년에 호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예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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