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 FC 역대 올스타 팀

클럽 올스타 짜보기/세리에 A

토리노 FC 역대 올스타 팀

토르난테 2023. 1. 1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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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 FC (Torino FC)

 

창단: 1906년 12월 3일

소속리그: 이탈리아 세리에 A

연고지: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 토리노 시

홈구장: 스타디오 올림피코 그란데 토리노

이탈리아 세리에 A: 7회 우승 (1927-28, 1942-43, 1945-46, 1946-47, 1947-48, 1948-49, 1975-76)

코파 이탈리아: 5회 우승 (1935-36, 1942-43, 1967-68, 1970-71, 1992-93)

이탈리아 세리에 B: 3회 우승 (1959-60, 1989-90, 2000-01)

UEFA컵: 1회 준우승 (1991-92)

미트로파컵: 1회 우승 (1990-91)

 


베스트 11

 

 

골키퍼

 

 

이름: 루치아노 카스텔리니
출생년도: 1945년 12월 12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0kg

활약 기간: 1970~1978
세리에 A 기록: 201경기 170실점 / 98클린시트
통산 기록: 262경기 223실점 / 108클린시트

 

1970년대 하반기와 1980년대 상반기 세리에 A 정상급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던 선수로 재규어라 불렸을 만큼 부드러운 유연성과 경이로운 반사신경으로 상대의 슈팅을 막아냈으며 열정적이고 감정적이어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골키퍼였다.

카스텔리니는 토리노의 골문을 지키며 197-7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끌었고 1975-76 시즌에는 그라나타 군단이 27년 만에 스쿠테토를 드는데 공헌했는데 이듬해에도 세리에 A 준우승을 이뤄내며 팀의 마지막 황금기를 이끈다.

상술한 활약을 펼친 카스텔리니는 은퇴한 뒤인 2016년에 토리노 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센터백

 

 

이름: 마리오 리가몬티
출생년도: 1922년 12월 17일
포지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1944~1949
세리에 A 기록: 140경기 1골
통산 기록: 140경기 1골

 

40년대 유럽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정상급 센터하프로 숨 쉴 틈을 주지 않는 타이트한 맨 마킹과 저돌적인 태클로 상대를 제압했으며 제공권 경합에도 강점을 보였다.

1940년대를 풍미하며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의 수비라인의 리더로 활약한 리가몬티는 세리에 A 4연패를 이뤄내며 명성을 날렸지만 1949년,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울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센터백

 

 

이름: 조르지오 푸이아
출생년도: 1938년 3월 8일
포지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63~1972
세리에 A 기록: 250경기 9골
통산 기록: 325경기 15골

 

1960년대 세리에 A 무대에서 활약했던 수비수로 초년에는 중앙 미드필더였지만 토리노 이적 이후로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해 활약했는데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에 빠르게 반응해 대처했으며 특히 제공권 경합에 능했으며 미드필더 출신이라 발밑도 제법 뛰어나 상대로부터 볼을 잘 지켰다.

과거의 명성을 잃고 2부 리그로 추락했다가 간신히 세리에 A로 올라온 상태의 토리노로 이적한 푸이아는 카테나치오로 밀란의 유럽 제패를 이끈 네레오 로코 감독 밑에서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하며 빠르게 성장해 1964-65 시즌에 팀을 세리에 A 3위로 올렸고 1967-68 시즌과 1970-71 시즌에는 그라나타 군단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끌었다.

 

 

라이트백

 

 

이름: 알도 발라린
출생년도: 1922년 1월 10일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2kg

활약 기간: 1945~1959
세리에 A 기록: 109경기 2골
통산 기록: 148경기 4골

 

40년대 유럽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정상급 풀백으로 WM 시스템의 라이트 풀백으로 활약했으며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을 활용한 우수한 대인 수비와 적절한 수비커버로 이름을 날렸다.

1940년대를 풍미하며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에서 리가몬티, 마로소와 함께 탄탄한 수비라인을 구성해 활약하며 세리에 A 4연패를 이뤄내며 위대한 토리노의 신화를 써냈지만 1949년,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동생 디노 발라린도 토리노에서 백업 선수로 뛰었고 리스본행에도 동행했기에 알도 발라린과 같이 사망했다.

 

 

레프트백

 

 

이름: 비르지니오 마로소
출생년도: 1925년 6월 26일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1kg

활약 기간: 1944~1949
세리에 A 기록: 101경기 1골
통산 기록: 103경기 2골

 

40년대 유럽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정상급 풀백으로 WM 시스템의 레프트 풀백으로 활약했는데 비록 키는 작았지만 수비하기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거나 영리한 심리전을 바탕으로 상대의 속임수를 간파하는 영리한 수비 지능으로 명성을 날렸다.

1940년대를 풍미하며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에서 리가몬티, 발라린과 손발을 맞춰 탄탄한 수비라인을 구성해 활약하며 세리에 A 4연패라는 기념비적인 업적을 세웠지만 1949년,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엘 그란데 토리노의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구단과 팬들은 이 시절의 영웅들의 활약을 대대로 기억했고 사고 이후 65년 뒤인 2014년에 마로소는 최초로 토리노 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레나토 자카렐리
출생년도: 1951년 1월 18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리베로,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0kg

활약 기간: 1969~1970, 1974~1987
세리에 A 기록: 316경기 17골
통산 기록: 411경기 21골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세리에 A 정상급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다재다능한 미드필더로 드넓은 시야와 양발 모두를 사용한 정확한 패싱력을 활용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우수한 볼 컨트롤과 강력한 킥력도 겸비했으며 축구 지능이 높고 다재다능해 중원의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으며 리베로에서도 우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토리노 구단 통산 출전 3위에 오른 자카렐리는 1970년대 그라나타의 약진을 이끌며 1975-76 세리에 A 우승과 1976-77 시즌 세리에 A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하는 등 꾸준하게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1985-86 시즌에는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다.

 

 

오른쪽 메짤라

 

 

이름: 발렌티노 마촐라
출생년도: 1919년 1월 26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1942~1949
세리에 A 기록: 135경기 81골
통산 기록: 175경기 102골

 

그의 아들 산드로 마촐라, 밀란의 전설 지안니 리베라와 함께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선수로 우수한 시야와 탄탄한 기본기를 앞세워 경기를 조립하고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하는 역할을 해 팀 동료 마리오 리가몬티로부터 "마촐라는 팀의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남은 우리 10명에 의해 이루어진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경기 영향력이 컸으며 득점력도 우수했다.

1940년대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의 전성시대를 이끈 마촐라는 엘 토로의 세리에 A 5연패와 1942-43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마촐라 개인도 1942-43 시즌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과 1946-47 시즌 세리에 A 득점왕을 수상하며 당대 유럽 축구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으나 1949년,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인 주세페 메아차는 후배 발렌티노 마촐라를 매우 아꼈는데 그가 죽자 그의 아들 산드로 마촐라를 후원하며 아버지 못지않은 축구선수를 만들었으며 페렌츠 푸스카스도 유러피언 컵 결승전이 끝나고 산드로 마촐라와 유니폼을 교환하면서 "난 네 아버지와 경기를 했었지. 너도 그 못지않구나."라고 산드로 마촐라를 칭찬함과 동시에 발렌티노 마촐라를 추억했으며 2015년에는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아 토리노 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왼쪽 메짤라

 

 

이름: 아돌포 발론치에리
출생년도: 1897년 7월 27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7kg

활약 기간: 1925~1932
세리에 A 기록: 192경기 97골
통산 기록: 194경기 101골

 

1920년대 이탈리아 무대를 평정한 인사이드 포워드로 드넓은 시야와 우수한 패스 센스를 바탕으로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했으며 우수한 득점력마저 겸비해 이탈리아의 명 축구기자 지안니 브레라는 발론치에리를 주세페 메아차, 발렌티노 마촐라 등과 동급의 플레이메이커로 평가했다.

알레산드리아에서 데뷔해 1925-26 시즌에 토리노로 이적한 발론치에리는 토리노로 이적한 첫 시즌부터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1926-27 시즌에는 아르헨티나 출신 오리운디였던 훌리오 리보나티와 함께 공격 듀오를 구성해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우승을 이뤄냈지만 이 우승은 알레만디 이적 스캔들로 인해 박탈당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다음 시즌인 1927-28 시즌에는 팀 역사상 최초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토리노가 명문으로 도약하는 길을 열었다.

 

 

라이트윙

 

 

이름: 클라우디오 살라
출생년도: 1947년 9월 8일
포지션: 라이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69~1980
세리에 A 기록: 285경기 25골
통산 기록: 366경기 33골

 

197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했던 윙어로 빠른 드리블 돌파와 민첩한 몸놀림으로 상대 수비를 뚫어낸 뒤 양발 모두를 사용한 적절하고 날카로운 크로스와 슈팅을 자랑해 팬들로부터 골의 시인이라 불렸다.

몬차와 나폴리를 거쳐 토리노에 입단한 살라는 풀리치, 그라지아니와 함께 공격 편대를 구성해 활약하며 1970년대 그라나타의 약진을 이끌며 1970-7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고 1975-76 시즌에는 엘 토로의 27년 만에 스쿠테토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다. 이듬해에도 세리에 A 준우승을 이끔과 동시에 구에린 도르를 재차 수상했다.

상술한 활약을 펼친 살라는 은퇴한 뒤인 2016년에 토리노 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레프트윙

 

 

이름: 파울로 풀리치
출생년도: 1950년 4월 27일
포지션: 레프트윙, 포워드,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67~1982
세리에 A 기록: 333경기 134골
통산 기록: 431경기 170골

 

197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했던 다재다능한 윙포워드로 양발 모두를 사용해 날카로운 슈팅을 날렸으며 키가 큰 편이 아니었음에도 높은 점프력을 바탕으로 한 헤더로 득점에 능했기에 이탈리아의 축구 저널리스트계의 대부 지아니 브레라는 그에게 풀리치클론, 즉 싸이클론 풀리치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AC 레냐노에서 프로 데뷔를 이뤄냈고 1967-68 시즌에 토리노로 이적해 토리노 U-19 팀의 캄피오나토 프리마베라 2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우며 주목받았던 풀리치는 살라, 그라지아니와 함께 공격 편대를 구성해 활약하며 1970년대 그라나타의 약진을 이끌고 1970-7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5-76 시즌에는 엘 토로의 27년 만에 스쿠테토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그 과정에서 리그 21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에 올랐다.

토리노 FC 통산 출전 2위와 통산 최다 득점자에 랭크되었으며 세리에 A 득점왕을 3회 수상한 풀리치는 상술한 활약을 펼친 살라는 은퇴한 이후, 2014년에 구단 최초로 토리노 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네 명의 선수 중 하나였다.

 

 

스트라이커

 

 

이름: 구글리에모 가베토
출생년도: 1916년 2월 24일
포지션: 스트러이커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0kg

활약 기간: 1941~1949
세리에 A 기록: 219경기 122골
통산 기록: 225경기 127골 

 

1940년대 이탈리아 무대를 평정한 최고의 센터 포워드로 우수한 공간 지각력과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상대 수비수의 예측을 불허하는 공간 침투 이후 우수한 슈팅 스킬로 마무리를 이뤄냈는데 뛰어난 유연성으로 예술적인 바이시클 킥과 발리 슈팅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토리노의 두 구단 유벤투스와 토리노 FC에서 모두 활약한 이력이 있는 가베토는 유벤투스 소속이던 1937-38 시즌에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 토리노를 상대로 멀티골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는데 1941-42 시즌에는 토리노로 이적해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내는 대업적을 세우며 엘 그란데 토리노의 시대를 열었으나 1949년,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가베토는 짧은 시간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토리노 통산 득점 4위에 랭크되었다.

 

 

감독

 

 

이름: 루이지 페레로

출생년도: 1904년 12월 26일

부임기간: 1945~1947

 

1940년대 이탈리아 및 유럽 축구계 최고의 클럽 엘 그란데 토리노의 시대를 열었던 명장이다.

1939-40 시즌 토리노에서 은퇴한 뒤 바리와 페스카라를 거쳐 토리노에 입성해 뛰어난 전술 운용과 임기응변은 물론 선수단 관리에도 능숙했던 위대한 코치이자 매니저였던 페레로는 토리노에서 세리에 A 2회 우승을 이뤄냈다.

그는 모종의 이유로 1947년에 엘 토로의 감독직을 내려놓고 피오렌티나로 떠났는데 이로 인해 1949년에 벌어진 수페르가의 참사를 피했다.

 


토르난테 선정 토리노 FC 베스트 11

 


25인 스쿼드 / 서브 14인

 

 

 

이름: 리도 비에리
출생년도: 1939년 7월 16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0kg

활약 기간: 1957~1969
세리에 A 기록: 269경기 283실점 / 99클린시트
통산 기록: 353경기 368실점 / 128클린시트

 

1960년대 세리에 A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수비진을 훌륭하게 지휘했으며 넓은 커버 범위와 지능적인 위치 선정, 그리고 곡예사를 보는 듯한 아크로바틱한 선방을 보여줬다.

토리노 유스 팀 출신으로 구단 통산 출전 5위에 랭크된 비에리는 1957-58 시즌에 토리노에서 데뷔한 비에리는 1958-59 시즌에 팀이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나 1959-60 시즌 엘 토로의 세리에 B 우승을 이뤄내며 1960-61 시즌에 세리에 A로 돌아왔고 1964-65 시즌에는 세리에 A 3위에 올랐으며 1967-68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토리노의 부흥을 이끌었다.

 

 

 

이름: 발레리오 바치갈루포
출생년도: 1924년 2월 12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1945~1949
세리에 A 기록: 137경기 114실점 / 60클린시트
통산 기록: 137경기 114실점 / 60클린시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 무대 최고의 골키퍼이자 유망주로 명성을 떨쳤으며 엄청난 반사신경과 용수철과 같은 점프력을 바탕으로 지상과 공중으로 오는 슈팅들을 가리지 않고 잘 막아냈으며 특히 페널티 킥 선방에 강점을 보였다.

1940년대를 풍미하며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의 골문을 지킨 바치갈루포는 세리에 A 4연패의 전설적인 신화를 이뤄내며 명성을 떨쳤지만 1949년,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엘 그란데 토리노의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구단과 팬들은 이 시절의 영웅들의 활약을 대대로 기억했고 사고 이후 65년 뒤인 2014년에 바치갈루포는 최초로 토리노 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네 명의 선수 중 하나였다.

 

 

 

이름: 로베르토 모치니
출생년도: 1951년 10월 22일
포지션: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71~1979
세리에 A 기록: 179경기 5골
통산 기록: 235경기 11골

 

197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했던 양발잡이 스토퍼로 운동능력이 좋아 상대의 공격수의 움직임에 빠르게 반응해 막아냈으며 우수한 제공권 경합 능력과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로 지상과 공중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막아냈다.

1970년대 토리노의 약진을 이끌며 조나 미스타 시스템의 수비진의 한 축으로 활약하며 1975-76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1976-77 시즌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기여했다.

 

 

 

이름: 로베르토 로사토
출생년도: 1943년 8월 18일
포지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60~1966
세리에 A 기록: 130경기 4골
통산 기록: 153경기 8골

 

1960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수비수인 로사토는 수려한 외모와 동시에 거칠고 교활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상반된 성격의 선수라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라 불렸다.

AC 밀란의 전설적인 수비수이자 아주리 대표팀으로 유로 1968 결승전과 1970 멕시코 월드컵 결승전에 나선 것으로 유명한 로사토지만 1960년에 승격팀 토리노에서 프로무대에 데뷔해 활약하며 네레오 로코 감독의 지휘를 받아 세계적인 수비수로 성장하며 푸이아와 함께 수비라인을 조합해 엘 토로를 1964-65 시즌 세리에 A 3위로 올리는 활약을 펼쳤다.

 

 

 

이름: 파브리지오 폴레티
출생년도: 1943년 7월 13일
포지션: 라이트백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0kg

활약 기간: 1962~1971
세리에 A 기록: 224경기 17골
통산 기록: 281경기 22골

 

1960년대와 70년대 이탈리아 무대를 풍미했던 공격형 라이트백으로 왕성한 지구력과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쉴 새 없이 오버래핑해 상대 수비진을 공략하며 대포알 같은 슈팅으로 골문을 노렸으며 볼 소유권이 상대에게로 넘어간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내려가 수비에 가담했다.

과거의 명성을 잃고 2부 리그로 추락했다가 간신히 세리에 A로 올라온 상태의 토리노에 합류한 폴레티는 네레오 로코 감독의 지도를 받고 리가 정상급 풀백으로 성장하며 1964-65 시즌에 엘 토로 군단을 세리에 A 3위로 올렸으며 1967-68 시즌과 1970-7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기여했다.

 

 

 

이름: 나탈리노 포사티
출생년도: 1944년 6월 23일
포지션: 레프트백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1kg

활약 기간: 1964~1974
세리에 A 기록: 247경기 9골
통산 기록: 336경기 15골

 

1960년대와 70년대 이탈리아 무대를 풍미했던 레프트백으로 한혈마와 같은 지구력과 준수한 스피드, 잘 잡힌 공수 밸런스를 바탕으로 공수 양면에서 크게 기여했는데 공격 상황에서는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포문을 열었으며 수비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맨 마킹과 광범위한 수비라인 커버를 바탕으로 팀에 보탬이 되었다.

토리노 구단 통산 출전 8위에 오른 포사티는 제노아에서 데뷔해 좋은 모습을 보여 네레오 로코 감독의 주목을 받아 한 시즌 만에 토리노로 이적했으며 그라나타에서의 첫 시즌인 1964-65 시즌에 중위권에 머문 팀을 세리에 A 3위에 올리는데 공헌했으며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에 기여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1974-75 시즌에 보드진이 그를 삼프도리아의 수비수 넬로 산틴과 트레이드했고 이 결정에 많은 팬들이 분노했다.

상술한 활약을 펼친 포사티는 은퇴한 뒤인 2016년에 토리노 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쥐세페 그레자르
출생년도: 1918년 11월 25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7kg

활약 기간: 1942~1943, 1945~1949
세리에 A 기록: 154경기 20골
통산 기록: 159경기 20골

 

40년대 유럽 무대에서 이름을 떨친 하프백으로 지능적인 수비로 상대의 패스길을 정확하게 차단했으며 높은 수준의 기술과 다부진 체격을 바탕으로 상대로부터 볼을 잘 빼앗기지 않았으며 드넓은 시야와 높은 수준의 전술안, 그리고 정밀도 높으면서 창의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팀의 빌드업을 설계하며 이탈리아의 레지스타 계보를 이어나가기도 했다.

1940년대를 풍미하며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의 후방 플레이메이킹을 이끌며 발렌티노 마촐라를 보좌했던 그레자르는 세리에 A 5연패의 대업을 이뤄냈고 1942-43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마저 우승하며 승승장구했으나 1949년에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엘 그란데 토리노의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구단과 팬들은 이 시절의 영웅들의 활약을 대대로 기억했고 그 시절에 활약했던 그레자르는 사고 이후 68년 후인 2017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조르지오 페리니
출생년도: 1939년 8월 18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58~1975
세리에 A 기록: 405경기 39골
통산 기록: 556경기 54골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이탈리아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미드필더로 선수 초년에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한혈마와 같은 지구력과 전사와 같은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경기장 전역을 왕성하게 뛰어다니며 공수 양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네레오 로코 감독을 만난 뒤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했는데 광범위한 수비 커버와 적극적인 볼 경합과 거친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앞선에서 저지하며 포백 보호의 역할을 완벽에 가깝게 수행했다.

1958년 토리노에서 데뷔해 그 해에 바레세로 임대를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선수 경력 전부를 토리노에서 보낸 원 클럽맨이자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인 페리니는 1959-60 시즌에 바레세 임대에서 복귀해 세리에 B로 추락한 팀의 세리에 B 우승을 이끌며 세리에 A로 승격했으며 로코 체제에서는 1964-65 시즌 세리에 A 3위를 이뤄내며 다시 상위권에 도약했고 로코가 떠난 이후에도 팀의 상승세를 유지하며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제2의 전성기의 기틀을 닦았다.

토리노 FC 통산 최다 출전자에 랭크된 페리니는 상술한 활약을 펼친 살라는 은퇴한 이후, 2014년에 구단 최초로 토리노 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네 명의 선수 중 하나였다.

 

 

 

이름: 안토니오 잔니
출생년도: 1904년 9월 19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2kg

활약 기간: 1920~1937
세리에 A 기록: 322경기 48골
통산 기록: 330경기 48골

 

1920년대와 30년대에 중원에서 활약했던 선수로 2-3-5 시스템의 하프백과 인사이드 포워드를 소화할 수 있었는데 높은 수준의 테크닉과 광활한 시야, 그리고 적재적소에 들어가는 숏패스와 롱패스를 바탕으로 팀의 빌드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FC 토리노 통산 출전 9위에 랭크된 잔니는 1920년부터 토리노에서 활약했으며 20년대 중후반에 합류한 발론치에리와 리보나티의 뒤를 받쳐줬고 그 덕택에 두 선수는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우승을 이뤄냈지만 이 우승은 알레만디 이적 스캔들로 인해 박탈당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팀에 헌신했던 잔니는 이에 굴하지 않았고 다음 시즌인 1927-28 시즌에는 팀 역사상 최초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공을 세우며 토리노가 명문으로 도약하는 길을 열었다.

 

 

 

이름: 에지오 로이크
출생년도: 1919년 9월 26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1942~1949
세리에 A 기록: 160경기 60골
통산 기록: 165경기 61골

 

1940년대 유럽 정상급 플레이메이커 중 한 명으로 WM 시스템의 인사이드 포워드와 하프백을 모두 능숙하게 소화할 수 있었으며 양발 모두를 활용한 강력한 슈팅과 우수한 볼 컨트롤과 드넓은 시야를 활용한 우수한 볼 배급 능력은 물론 근육질의 몸을 활용한 몸싸움과 수비력을 겸비했다.

2선 라인에서 에이스 마촐라를 보좌하며 1940년대를 풍미하며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의 전성기를 이끌며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냈으며 1942-43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도 석권하며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내며 승승장구했으나 1949년,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이름: 로메오 멘티
출생년도: 1919년 9월 5일
포지션: 라이트윙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7kg

활약 기간: 1941~1949
세리에 A 기록: 131경기 54골
통산 기록: 133경기 54골

 

40년대 세리에 A 정상급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이름을 날렸으며 체구는 작았지만 민첩한 드리블로 자신보다 더 큰 상대 수비수를 따돌렸으며 우수한 킥력을 바탕으로 오른쪽 측면에서 크로스를 날리며 득점 찬스를 만들었으며 팀의 세트피스를 전담했다.

오솔라와 함께 1940년대를 풍미하며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의 측면 공격을 이끌었으며 중간에 몇 차례 임대를 다녀오긴 했지만 1942-43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세리에 A의 더블 우승을 포함해 세리에 A 4회 우승을 이뤄내며 신화를 쓰던 중에 1949년,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이름: 프랑코 오솔라
출생년도: 1921년 8월 23일,
포지션: 레프트윙, 라이트윙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39~1949
세리에 A 기록: 176경기 86골
통산 기록: 182경기 89골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이름을 날렸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민첩한 몸놀림과 높은 수준의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따돌리며 중앙으로 침투해 날카로운 왼발 슈팅으로 상대 골문을 노리는 플레이에 능했다.

토리노 구단 통산 득점 10위에 랭크된 오솔라는 멘티와 함께 1940년대를 풍미하며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의 측면 공격을 이끌며 엘 토로의 1942-43 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더블 우승을 포함해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내며 위대한 업적을 쌓았으나 1949년,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이름: 훌리오 리보나티
출생년도: 1901년 7월 5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신체조건: 미상

활약 기간: 1926~1934
세리에 A 기록: 238경기 150골 
통산 기록: 240경기 157골

 

아르헨티나 출신의 오리운디로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데뷔했으나 1926년 토리노로 이적한 뒤 이탈리아 국적을 취득해 활약했으며 효과적인 전진 드리블과 우수한 볼 컨트롤에서 나오는 효율적인 원터치 플레이로 무수한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직접 득점하는 부분에도 능한 만능 공격수였으며 실제로 주 포지션인 센터포워드 이외에도 인사이드 포워드에서도 활약할 수 있었다.

남미에서 이미 1921년 코파 아메리카 득점왕에 올랐던 로보나티는 1926-27 시즌 엘 토로에 합류하며 인사이드 포워드 발론치에리, 로제티와 함께 공격 듀오를 구성해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우승을 이뤄냈지만 이 우승은 알레만디 이적 스캔들로 인해 박탈당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다음 시즌인 1927-28 시즌에는 팀 역사상 최초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토리노가 명문으로 도약하는 길을 열었다.

토리노 구단 통산 득점 2위에 랭크된 리보나티는 1927-28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득점왕을 수상하는 활약을 펼쳤다.

 

 

 

이름: 프란체스코 그라지아니
출생년도: 1952년 12월 16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윙어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6kg

활약 기간: 1973~1981
세리에 A 기록: 221경기 97골
통산 기록: 288경기 122골

 

주 포지션인 스트라이커 이외에도 측면 공격수와 처진 공격수를 모두 막힘없이 소화할 수 있었던 다재다능한 공격수로 강력한 집중력과 이타적인 움직임으로 동료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능력은 물론 벼락같은 헤더로 직접 득점하는 부분에서도 대단했다.

1973-74 시즌을 앞두고 토리노에 입단한 그라지아니는 레프트윙 파올로 풀리치와 함께 골 쌍둥이라 불리며 뛰어난 콤비 플레이를 보여줬는데 1975-76 시즌에는 그라나타의  27년 만에 스쿠테토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이듬해에는 세리에 A 준우승을 이뤄냈고 그 과정에서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으며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1979-80 시즌 준우승과 1980-81 시즌에는 준우승과 더불어 득점왕에 오르며 맹활약했다.

 


25인 스쿼드 완성판

 

토르난테 선정 토리노 FC 올스타 스쿼드 25인

 


토리노 FC 역대 올스타 리저브 팀 11인

 

 

 

이름: 줄리아노 테라네오
출생년도: 1953년 10월 16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0kg

활약 기간: 1977~1984
세리에 A 기록: 193경기 162실점 / 84클린시트
통산 기록: 269경기 224실점 / 116클린시트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상반기에 세리에 A에서 활약했던 골키퍼로 개성 넘치는 패션과 콧수염으로 주목받았으며 적절한 위치 선정과 골에 대한 집념을 바탕으로 탄탄하게 골문을 방어했고 페널티 킥을 방어하는 상황에서는 장갑을 벗고 방어하는 습관으로 유명했다.

몬차에서 활약하다가 1977-78 시즌을 앞두고 토리노 FC로 이적한 테라네오는 1979-80 시즌부터 1981-82 시즌까지 코파 이탈리아 3회 연속 준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안젤로 체레세르
출생년도: 1944년 4월 6일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62~1975
세리에 A 기록: 226경기 5골
통산 기록: 302경기 5골

 

1960년대와 70년대 상반기에 세리에 A 무대에서 활약했던 리베로로 공격보다는 광범위한 수비지역 커버와 우수한 수비라인 조율을 바탕으로 한 수비적인 플레이 스타일의 리베로였다.

과거의 명성을 잃고 2부 리그로 추락했다가 간신히 세리에 A로 올라온 상태의 토리노로 이적한 체레세르는 카테나치오로 밀란의 유럽 제패를 이끈 네레오 로코 감독 밑에서 리베로 역할을 맡아 푸이아, 로사티 등과 함께 강력한 수비라인을 구성해 활약하며 엘 토로를 1964-65 시즌 세리에 A 3위를 이뤄내며 구단을 상위권으로 올렸고 로코 감독이 떠난 이후에도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을 이뤄내며 제2의 황금기의 초석을 다졌다.

상술한 활약을 펼친 체레사르는 은퇴한 뒤인 2021년에 토리노 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체사레 마르틴
출생년도: 1901년 5월 14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레프트백
신체조건: 미상

활약 기간: 1919~1936
세리에 A 기록: 354경기 1골
통산 기록: 356경기 1골

 

1920년대와 30년대 토리노의 수비를 이끌었던 라이트 풀백과 레프트 풀백을 모두 소화했으며 뛰어난 대인 수비를 바탕으로 당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렌조 데 베키와 움베르투 칼리가리스, 그리고 비르지니오 로제타 다음으로 뛰어난 풀백으로 명성을 떨쳤다.

FC 토리노 통산 출전 6위에 랭크된 마르틴은 1919년부터 토리노에서 활약하며 팀의 수비를 이끌었고 그 덕택에 두 선수는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우승을 이뤄냈지만 이 우승은 알레만디 이적 스캔들로 인해 박탈당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팀에 헌신했던 마르틴은 이에 굴하지 않았고 다음 시즌인 1927-28 시즌에는 팀 역사상 최초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공을 세우며 토리노가 명문으로 도약하는 길을 열었다.

 

 

 

이름: 루이지 다노바
출생년도: 1952년 6월 5일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68kg

활약 기간: 1976~1985
세리에 A 기록: 244경기 0골
통산 기록: 340경기 0골

 

1970년대 하반기와 80년대 상반기에 세리에 A 무대에서 활약했던 라이트백 겸 스토퍼로 대표팀 선배 타르치시오 부르니치처럼 적절한 수비라인 커버와 우수한 맨 마킹을 바탕으로 활약했으며 카테나치오 및 그것을 개량한 조나 미스타 시스템에 적합한 수비수였으나 공격적인 재능은 없어 필드플레이어였음에도 토리노에서 단 한 골도 득점하지 못했다.

토리노 FC 구단 통산 출전 7위에 랭크된 다노바는 1976-77 시즌 디펜딩 챔피언 토리노로 입단해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으며 1979-80 시즌부터 1981-82 시즌까지 3회 연속으로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84-85 시즌 세리에 A 준우승을 이끄는 등 괜찮은 활약을 보였으나 계속 아쉽게 우승 문턱에서 좌절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이름: 로베르토 살바도리
출생년도: 1950년 7월 29일
포지션: 레프트백, 리베로,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69kg

활약 기간: 1973~1983
세리에 A 기록: 198경기 3골
통산 기록: 263경기 3골

 

1970년대와 80년대 초반, 이탈리아 무대를 풍미한 레프트백으로 우수한 지구력을 바탕으로 광범위한 수비커버를 자랑했으며 정밀도 높은 롱패스를 통해 빌드업을 이끌었기에 종종 리베로로 기용되기도 했다.

하부리그 알레산드리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뒤 토리노로 입단한 살바도리는 토리노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1975-76 시즌에 스쿠테토를 따내는데 기여했으며 1976-77 시즌 세리에 A 준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3회 연속 준우승에도 공헌했다.

상술한 활약을 펼친 살바도리는 은퇴한 뒤인 2015년에 토리노 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알도 아그로피
출생년도: 1944년 4월 14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2kg

활약 기간: 1963~1975
세리에 A 기록: 212경기 15골
통산 기록: 278경기 20골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중반, 이탈리아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수비형 미드필더로 빠른 반응속도와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 미드필더와의 볼 경합에서 우위를 점했으며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광범위한 수비라인을 커버하며 포백 보호에 힘썼다.

토리노에서 프로팀 데뷔를 했으나 하부리그로 임대를 다녀온 뒤 1967-68 시즌에야 주전을 차지했으며 해당 시즌을 포함해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을 이끌며 엘 토로의 황금기의 기반을 닦았다.

상술한 활약을 펼친 아그로피는 은퇴한 뒤인 2017년에 토리노 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에우세비오 카스틸리아노
출생년도: 1921년 2월 9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1kg

활약 기간: 1945~1949
세리에 A 기록: 116경기 35골
통산 기록: 116경기 35골

 

1940년대 유럽 정상급 하프백으로 왕성한 활동량과 우수한 전술안을 겸비해 지능적인 인터셉트를 통해 상대의 패스 흐름을 끊어냈고 정교한 패스로 앞선으로 볼을 배급했으며 떄로는 기습적으로 페널티 박스 근처로 침투해 중거리 슈팅을 날리며 공격을 이끌기도 했다.

1940년대를 풍미하며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의 중원에서 살림꾼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 카스틸리아노는 엘 토로의 세리에 A 4연패를 이끄는데 기여하며 명성을 떨쳤으나 1949년,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이름: 주세페 도세나
출생년도: 1958년 5월 2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76~1977, 1981~1987
세리에 A 기록: 177경기 20골
통산 기록: 241경기 29골

 

198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한 플레이메이커로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주는 원터치 패스와 세련된 볼 컨트롤은 물론 적절한 전진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허문 뒤 중거리 슈팅으로 마무리하는 플레이도 능했으며 중앙과 측면을 모두 막힘없이 소화했다.

토리노의 유스 출신으로 1976-77 시즌 처음 데뷔했을 때에는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방출되었지만 여러 팀을 거치며 성장한 뒤 1981-82 시즌에 다시 돌아와 활약하며 1981-82 시즌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과 1984-85 시즌 세리에 A 준우승을 이뤄내며 리그 정상급 플레이메이커로 명성을 떨쳤다.

 

 

 

이름: 지안루이지 렌티니
출생년도: 1969년 3월 27일
포지션: 라이트윙,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82kg

활약 기간: 1986~1992, 1997~2001
세리에 A 기록: 113경기 10골
통산 기록: 248경기 30골

 

1990년대 이탈리아 무대를 강타한 유망주로 민첩한 몸놀림에서 나오는 매혹적인 드리블과 한 박자 빠른 양발 크로스로 이름을 날렸기에 명장 카펠로는 그를 두고 "거대한 재능이다. 빠르고 강하며 신체적으로도 훌륭하다."라고 호평했다.

렌티니는 토리노의 유스 출신으로 토리노에서 데뷔해 1989-90 시즌 팀의 세리에 B 우승을 이뤄내며 팀을 승격시켰고 1991-92 시즌에는 UEFA컵 준우승과 세리에 A 3위를 이끌며 중위권으로 떨어진 토리노를 다시 상위권으로 올려놓는 맹활약을 펼쳤고 이런 활약을 주목한 당대 세계 최고의 클럽 AC 밀란은 그 당시 역대 세계 최고의 이적료인 13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투자해 그를 영입했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렌티니는 이후 팀을 떠나 아탈란타를 거쳐 다시 친정팀 토리노로 돌아왔으나 팀은 강등당했고 이후 2부 리그를 전전했고 토리노가 2000-0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그는 팀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고 그 시즌 이후로 팀을 떠났다.

 

 

 

이름: 피에트로 페라리스
출생년도: 1912년 2월 15일
포지션: 레프트윙, 라이트윙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0kg

활약 기간: 1941~1948
세리에 A 기록: 168경기 55골
통산 기록: 173경기 57골

 

1930년대 하반기과 40년대에 이탈리아 무대를 누볐던 측면 공격수로 주 포지션은 아웃사이드 레프트였지만 아웃사이드 라이트에서도 활약할 수 있었던 페라리스는 민첩한 몸놀림과 우수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한 명쯤은 제쳐낼 수 있었으며 정확한 양발 슈팅을 바탕으로 상대의 골문을 노리는 플레이를 즐겼다,.

인테르에서 이름을 날린 뒤 토리노로 이적했으며 1940년대 엘 그란데 토리노에서 활약하던 페라리스는 주 포지션은 아웃사이드 레프트였지만 오솔라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아웃사이드 라이트에서 멘티와 주로 경쟁했으며 한때 그를 밀어내 임대 보내고 1942-43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포함해 세리에 A 4연패를 이뤄내는데 기여했지만 노쇠화로 인해 멘티와의 주전 경쟁에서 점점 밀려나며 1948-49 시즌에 노바라로 떠났는데 새옹지마라고 그 덕분에 1949년에 일어난 수페르가의 비극을 비껴갈 수 있었다.

 

 

 

이름: 지노 로제티
출생년도: 1904년 11월 7일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8kg

활약 기간: 1926~1933, 1937~1938
세리에 A 기록: 219경기 134골
통산 기록: 223경기 144골

 

1920년대 하반기에 이탈리아 무대에서 전성기를 누린 공격수로 주로 인사이드 레프트에서 활약했는데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직접 득점에 능했으며 엄청난 근육량에서 나오는 육중한 체구를 활용한 몸싸움과 창의적인 드리블 돌파를 혼용해 상대 수비를 돌파했으며 때로는 센터 포워드로도 출전했다.

토리노 통산 득점 3위에 랭크된 로제티는 발론치에리, 리보나티와 함께 공격 편대를 구성해 활약하며 1926-27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나 알레만디 스캔들로 인해 리그 우승이 취소되었다. 그러나 로제티는 이에 굴하지 않고 1927-28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을 세웠으며 1928-29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다.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기록은 주로 트렌스퍼마켓을 참조합니다. 잘못될 경우 다른 기록을 참조합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기록이 있으면 공식 홈페이지 우선

*스텟은 2023년 1월 17일 기준

*상술한 알레만디 스캔들은 토리노 FC 측이 당시 유벤투스의 수비수였던 알레만디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투서로 인해 이탈리아 축구 협회측은 이 사건을 조사했고 조사 결과 토리노의 리그 우승이 박탈되는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의 증거는 불명확하다는 이야기도 있는 미제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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