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역대 올스타 팀

클럽 올스타 짜보기/독일 분데스리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역대 올스타 팀

토르난테 2023. 1. 1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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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Eintracht Frankfurt)

 

창단: 1899년 3월 8일

소속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연고지: 독일 헤센주 다름슈타트 현 프랑크푸르트암마인

홈구장: 발트 슈타디온 → 도이체 방크 파르크

독일 분데스리가: 3위 5회: (1963-64, 1974-75, 1989-90, 1991-92, 1992-93)

독일 챔피언쉽: 1회 우승 (1958-59)

DFB 포칼: 5회 우승 (1973-74, 1974-75, 1980-81, 1987-88, 2017-18)

노르트크라이스리가: 3회 우승 (1911-12, 1912-13, 1913-14)

크레이스리가 노르트메인: 2회 우승 (1919–20, 1920–21)

베지르크스리가 마인헤센; 5회 우승 (1927–28, 1928–29, 1929–30, 1930–31, 1931–32)

가울리가 주드베스트: 1회 우승 (1937-38)

2.분데스리가: 1회 우승 (1997-98)

오베리가 주트: 2회 우승 (1952–53, 1958–59)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준우승 (1959-60)

UEFA컵 / UEFA 유로파리그: 2회 우승 (1979-80, 2021-22)

UEFA 인터토토컵: 1회 우승 (1966-67)

 


베스트 11

 

골키퍼

 

 

이름: 울리 슈타인
출생년도: 1954년 10월 23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6kg

활약 기간: 1987~1994
분데스리가 기록: 224경기 271실점 / 57클린시트
통산 기록: 276경기 329실점 / 78클린시트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분데스리가를 풍미한 골키퍼로 20년간 프로 생활을 유지할 정도로 우수한 자기 관리 능력과 뛰어난 반사신경 능력을 바탕으로 활약했다.

이미 함부르크에서 분데스리가와 유럽 무대를 정복한 슈타인은 프랑크푸르트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1987-88 시즌 DFB포칼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1-92 시즌에는 뛰어난 퍼포먼스로 독수리 군단을 리가 4위에 올려놓으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자국 최고의 축구 영웅이자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베켄바우어를 조롱한 사건으로 디 만샤프트에는 거의 뽑히지 못했던 슈타인은 프랑크푸르트에 머무는 동안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9회 선정되었으며 1992-93 시즌에는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다.

 

 

리베로

 

 

이름: 브루노 페차이
출생년도: 1955년 2월 3일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1978~1983
분데스리가 기록: 141경기 27골
통산 기록: 180경기 37골

 

'보덴호의 베켄바우어'라 불렸던 당대 최고의 리베로로 큰 키와 탁월한 수비 능력은 물론 공격을 전개하는 빌드업과 수비 라인 조율에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 만능 수비수였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전성기를 누린 페차이는 쾨벨, 차범근, 횔첸바인 등과 함께 1979-80 시즌 UEFA컵 결승에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상대로 1차전에 3-2로 패했으나 2차전에 홈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두며 원정 다득점 룰에 의해 UEFA컵 우승을 차지했으며 1980-81 시즌에는 분데스리가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DFB포칼에서도 카이저슬라우테른을 상대로 우승을 이뤄냈다.

2013년 1월에 팬투표로 선정한 프랑크푸르트 역대 베스트 일레븐인 아인트라흐트의 기둥들에 선정된 페차이는 프랑크푸르트에 머무는 동안 1979년부터 1982년까지 4회 연속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선정되며 1981년에는 11위를 기록해 당대 유럽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평가받았으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월드클래스 등급과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각각 3회 선정되었다.

 

 

센터백

 

 

이름: 칼하인츠 쾨벨
출생년도: 1954년 12월 1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리베로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1972~1991
분데스리가 기록: 602경기 45골
통산 기록: 728경기 51골

 

분데스리가 통산 최다 출전 기록을 보유한 주인공으로 찰리라는 이명으로도 불렸는데 우수한 점프 능력에서 나오는 제공권 경합 능력과 강력한 완력을 앞세운 대인 수비는 물론 기술적으로 높은 수준의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의 흐름을 끊어냈으며 때때로 공격에도 가담했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만 클럽 커리어의 전부를 보낸 원 클럽맨이자 통산 최다 출전자에 랭크된 쾨벨은 DFB포칼 4회 우승을 이뤄냈고 그중 1974-75 시즌에는 결승전에서 선제 결승골을 득점하며 우승에 크게 기여했고 1979-80 시즌에는 UEFA컵 우승을 이뤄내며 총 다섯 개의 트로피를 들며 프랑크푸르트 내에서는 최다 우승 타이틀을 보유했으며 횔첸바인이 팀을 떠난 1981년부터는 10년간 주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2013년 1월에 팬투표로 선정한 프랑크푸르트 역대 베스트 일레븐인 아인트라흐트의 기둥들에 선정된 쾨어벨은 선수 은퇴 이후에도 수석 스카우터와 이사직을 수행하며 구단을 위해 헌신했다.

 

 

라이트백

 

 

이름: 프리델 루츠
출생년도: 1939년 1월 21일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활약 기간: 1957~1966, 1967~1973
분데스리가 기록: 200경기 4골 3도움
통산 기록: 390경기 9골 3도움

 

아마추어 리그 시절 말기와 분데스리가 초창기에 활약한 다재다능한 수비수로 WM 시스템의 라이트 풀백, 라이트 하프와 4백 시스템의 라이트백과 센터백에서 활약했던 루츠는 빠른 발과 강력한 지구력을 통해 우측면을 부지런하게 뛰어다녔는데 샬케의 한스 노박과 함께 독일 축구계에서는 최초로 공격형 풀백 역할을 맡아 우측면에서 오버래핑한 뒤 정교한 킬패스로 찬스를 만들었으며 볼을 뺏긴 상황에서는 상대 공격수를 따라다니며 수비에도 헌신적으로 가담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루츠는 1959년 클럽의 남부 오베리가 우승과 서독 챔피언십 우승을 동시에 이뤄냈으며 1959-60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준우승과 1963-64 시즌 DFB포칼 준우승에도 힘을 보탰으며 1965-66 시즌에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활약을 보여줬다. 1966-67 시즌에는 잠시 1860 뮌헨으로 이적했다가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서 팀의 베테랑 역할을 수행하며 말년을 보냈다.

 

 

레프트백

 

 

이름: 빌리 노이베어거
출생년도: 1946년 4월 15일
포지션: 레프트백, 리베로,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8kg

활약 기간: 1974~1983
분데스리가 기록: 267경기 18골
통산 기록: 349경기 29골

 

1970년대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수비수로 기본적으로 레프트백과 리베로에서 많이 뛰었지만 좌측면과 중앙의 모든 포지션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유틸리티 플레이어었으며 왕성한 활동량과 탄탄한 기본기, 그리고 높은 전술 이해도를 겸비했으며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오는 드리블 돌파를 통한 오버래핑으로 공격에 가담했다가도 팀이 볼 소유를 잃으면 곧바로 수비에 복귀했으며 양질의 패스를 통해 팀의 빌드업 작업을 돕는 역할도 능했으며 수비적으로도 대인 수비와 커버 플레이 모두 준수했다.

한때 독일 분데스리가 통산 최다 출장 기록을 보유했었으나 상술했던 찰리 쾨어벨에게 타이틀을 내준 노이베어거는 도르트문트와 베르더 브레멘을 거쳐 부퍼탈 SV에서 1973-74 시즌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어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해 활약하며 DFB포칼 2회 우승과 UEFA컵 우승을 이뤄냈다.

 

 

중앙 미드필더

 

 

이름: 루돌프 그람리히
출생년도: 1908년 6월 6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29~1939
분데스리가 기록: 출범 이전
통산 기록: 208경기 16골

 

1930년대 독일 축구계에서 이름을 날린 하프백이었으며 볼을 주고받기 좋은 위치를 선점해 안정적인 패싱력과 우수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했으며 높은 수준의 전술안을 토대로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했으며 유사시에는 인사이드 포워드 역할도 맡을 수 있었던 플레이메이커로 당시 축구계에서 매너 좋기로 소문난 선수였기에 악질적인 반칙을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디 만샤트프의 부름을 받기도 했던 그람리히는 아인트라흐트의 첫 전성기를 이끌며 1929-30 시즌과 1930-31 시즌 남부 독일 챔피언십 우승을 이뤄냈으며 1931-32 시즌에는 독일 챔피언십 결승전에 올랐으나 바이에른 뮌헨에게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으며 가우리가 체제에서도 남서부 팀들이 모인 가우리가 쥐스베스트 1938년에 우승을 이뤄냈다.

 

 

중앙 미드필더

 

 

이름: 우베 바인
출생년도: 1960년 9월 26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레프트윙,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67kg

활약 기간: 1989~1994
분데스리가 기록: 150경기 38골 61도움
통산 기록: 182경기 47골 63도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분데스리가에서 이름을 날렸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섬세한 볼 컨트롤과 유려한 테크닉, 그리고 정확한 숏패스와 모험적인 롱패스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며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했다.

함부르크에서 본격적으로 리가 정상급 선수로 올라선 바인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였는데 1988-89 시즌 16위로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렀던 프랑크푸르트를 1989-90 시즌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구단 역사상 최고 성적 기록 타이인 3위에 올리며 암흑기에 빠진 팀을 다시 구했고 그가 머문 동안 팀은 다섯 시즌 모두 5위 안에 들어 상위권으로 도약했으나 바인이 J리그로 떠나자 독수리 군단은 다시 중하위권으로 내려앉았고 1995-96 시즌에는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바인 개인의 퍼포먼스는 당대 리가에서 인정받았는데 1990-91 시즌부터 1992-93 시즌까지 세 시즌 연속으로 분데스리가 도움왕에 올랐으며 1989-90 시즌부터 1992-93 시즌까지 4년 연속으로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프랑크푸르트에 머무는 동안 여덟 번의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7회 선정된 바인은 2013년 1월에 팬투표로 선정한 프랑크푸르트 역대 베스트 일레븐인 아인트라흐트의 기둥들에 선정되었다.

 

 

라이트윙

 

 

이름: 위르겐 그라보브스키
출생년도: 1944년 7월 7일
포지션: 라이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62kg

활약 기간: 1965~1980
분데스리가 기록: 441경기 109골 73도움
통산 기록: 536경기 140골 74도움

 

1970년대 상반기 유럽 최고의 라이트 윙 중 한 명으로 빠른 스피드와 지칠 줄 모르는 스테미너를 겸비했으며 상대 수비를 교란하는 드리블 돌파 능력은 물론 우수한 플레이메이킹 능력도 겸비해 공격형 미드필더로서도 우수한 모습을 보여주며 1977-78 시즌 전반기에는 해당 포지션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오르기도 했다.

클럽 커리어 전체를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이었던 그라보브스키는 비록 리가 우승은 이루지 못했지만 DFB 포칼 2회 우승을 이뤄냈고 개인적으로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8회 선정되었고 1979-80 시즌에는 로타어 마테우스에게 살인태클이라 불릴만한 거친 태클을 당해 은퇴했으나 잔여 시즌동안 그의 몫까지 활약해준 동료들 덕분에 UEFA컵 결승전에서 묀헨글라트바흐를 이기고 우승 트로피를 들고 은퇴할 수 있었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구단 통산 출전 2위와 통산 득점 4위에 랭크되었으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19회의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과 1회의 월드클래스 등급에 선정된 그라보브스키는 2013년 1월에 팬투표로 선정한 프랑크푸르트 역대 베스트 일레븐인 아인트라흐트의 기둥들에 선정되었다.

 

 

레프트윙

 

 

이름: 베른트 횔첸바인
출생년도: 1946년 3월 9일
포지션: 레프트윙,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4kg

활약 기간: 1967~1981
분데스리가 기록: 420경기 160골 36도움
통산 기록: 516경기 207골 37도움

 

그라보브스키와 함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황금 날개진을 구성한 윙어로 인사이드 커터 유형의 선수로 측면에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와 직접 슈팅을 하며 득점을 노리거나 교묘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의 반칙을 유도해 페널티킥을 유도하는 다이빙에 능했으며 실제로 월드컵 결승전에서도 그렇게 페널티킥을 유도하기도 했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구단 통산 출전 4위와 통산 득점 2위에 오른 횔첸바인은  비록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DFB포칼 3회 우승과 1979-80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1973-74 시즌 DFB포칼 득점왕과 1976-77 시즌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다.

2013년 1월에 팬투표로 선정한 프랑크푸르트 역대 베스트 일레븐인 아인트라흐트의 기둥들에 선정된 횔첸바인은 그라보브스키의 뒤를 이어 주장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포워드

 

 

이름: 차범근
출생년도: 1953년 5월 22일 
포지션: 포워드, 라이트윙,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7kg

활약 기간: 1979~1983
분데스리가 기록: 122경기 46골
통산 기록: 156경기 58골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였으며 분데스리가에서도 통했던 우수한 피지컬과 파괴적인 슈팅으로 상대의 골문을 강타해 갈색 폭격기라 불렸으며 측면에서 찬스를 만들어내는 이타적인 플레이에도 능했다.

군 제대 이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럽 무대에 도전장을 낸 차범근은 데뷔 시즌인 1979-80 시즌부터 적응기도 없이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12골을 기록했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발롱도르 2연패를 이뤄낸 당대 유럽 최고의 선수 케빈 키건을 제치고 외국인 부문 1위를 차지했고 시즌 말에는 UEFA컵 우승을 견인하며 여러 축구인들의 찬사를 들었고 1980-81 시즌에는 레버쿠젠의 수비수 겔스도르프의 거친 파울에 허리 부상을 당했음에도 DFB 포칼 결승에서 득점하며 우승에 기여했다.

2013년 1월에 팬투표로 선정한 프랑크푸르트 역대 베스트 일레븐인 아인트라흐트의 기둥들에 선정된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의 부회장 볼프강 젠커에게 부동산 사기를 당했는데 젠커는 적반하장으로 법의 허점을 이용해 차범근의 급료를 압류하자 차범근은 팀을 떠났으며 이에 반발한 팬들은 이사회를 와해시켰을 정도로 그의 인기는 대단했고 아직까지도 많은 현지팬들에게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평가받는다.

 

 

스트라이커

 

 

이름: 토니 예보아
출생년도: 1966년 6월 6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7kg

활약 기간: 1990~1995
분데스리가 기록: 123경기 68골 26도움
통산 기록: 156경기 89골 28도움

 

차범근, 브루노 페차이와 함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평가받는 공격수로 흑인 특유의 탄력을 이용한 전진 드리블과 벼락같은 중거리 슈팅을 활용한 당대 최고의 원더골 제조기로 이름이 높았다.

가나 무대를 평정하고 독일 2부 리그의 FC 자르브뤼켄에 입단하며 독일 프로축구 최초의 흑인 선수라는 기록을 남겼으며 적응한 뒤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했는데 리가 최초의 흑인 선수다 보니 온갖 인종차별을 당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다섯 시즌 연속 공식전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자신에 대한 야유를 팬들의 환호로 바꿨다. 이 과정에서 같은 아프리카 출신 오코차와 호흡을 맞추며 1992-93 시즌, 1993-94 시즌에는 두 시즌 연속으로 분데스리가 득점왕 수상과 동시에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프랑크푸르트 구단 외국인 통산 최다 득점자이자 구단 역사상 첫 외국인 주장이며 2013년 1월에 팬투표로 선정한 프랑크푸르트 역대 베스트 일레븐인 아인트라흐트의 기둥들에 선정된 예보아는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1993-94 시즌 전반기에 월드클래스 등급에 선정되었으며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4회 선정되었다.

 

 

감독

 

 

이름: 파울 오스발트

출생년도: 1905년 2월 4일

부임기간: 1928~1933, 1935~1938, 1958~1964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세 차례에 걸쳐 프랑크푸르트의 지휘봉을 잡아 뛰어난 지도력과 우수한 전술적 역량을 보여줬다.

원래 체육 교사를 지망했지만 1928년에 독일 대표팀 감독 오토 네어츠의 조언에 따라 프랑크푸르트의 감독으로 부임해 베지르크스리가 마인헤센 4연패, 남부 독일 챔피언십 2회 우승, 1931-32 시즌 독일 챔피언십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35년에 재부임해 1937-38 시즌 가울리가 쥐드베스트 1회 우승을 이뤄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키커스 오펜바흐를 거쳐 1958년에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1958-59 시즌 오베리가 주트와 독일 챔피언십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듬해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고 1963-64 시즌에는 초대 분데스리가에서 프랑크푸르트를 우승 경쟁 레이스에 올렸지만 두 차례의 심장마비로 인해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고 건강을 돌보기 위해 시즌 후반에 감독직을 사임했다.

 


토르난테 선정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역대 베스트 11

 


25인 스쿼드 / 서브 14인

 

 

 

이름: 에곤 로이
출생년도: 1931년 5월 14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활약 기간: 1954~1967
분데스리가 기록: 69경기 111실점 / 15클린시트
통산 기록: 346경기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 오베리가 주트 최고의 골키퍼로 다소 기복은 있었지만 적절한 위치 선정과 우수한 반사신경과 핸들링을 바탕으로 공을 막아냈으며 근육질의 피지컬로 공격수와의 경합에서 승리했다.

분데스리가 출범 전후에 프랑크푸르트에서 활약하며 1958-59 시즌 오베리가 주트와 독일 챔피언십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9-60 시즌에는 4강전에서 난적 레인저스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의 벽에 가로막혀 7-3 대패를 기록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후 분데스리가가 출범한 1963-64 시즌에는 3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으며 DFB포칼에서도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은퇴 시즌인 1966-67 시즌에는 UEFA 인터토토컵 우승을 경험했다.

 

 

 

이름: 케빈 트랍
출생년도: 1990년 7월 8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8kg

활약 기간: 2012~2015, 2018~
분데스리가 기록: 217경기 336실점 / 43클린시트
통산 기록: 280경기 409실점 / 64클린시트

 

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던 프랑크푸르트의 약진을 이끌며 중상위권으로 올린 골키퍼로 우수한 신체 조건과 강력한 완력, 그리고 동물적인 반사신경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공중볼 처리와 볼 캐칭은 물론 장거리 스로인으로 페널티 라인에서 볼을 멀리 보내는 능력도 뛰어나며 경험이 쌓인 뒤에는 안정적인 수비진 조율과 발을 이용한 풋 세이브 능력도 향상되었지만 노이어, 테어 슈테겐과는 다르게 발밑 자체는 좋지 못했다.

골키퍼 육성의 명가 카이저슬라우테른 출신으로 2012-13 시즌에 승격한 프랑크푸르트에 합류했으며 해당 시즌에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여러 차례 좋은 모습을 보여줘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았고 결국 프랑스의 절대강자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해 상위권 클럽에서의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2017-18 시즌 이후에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임대 이적을 통해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2018-19 시즌에 UEFA컵 4강 진출을 이뤄냈고 분데스리가에서도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2021-22 시즌에는 UEFA 유로파리그에서 레알 베티스, FC 바르셀로나,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라는 고난도의 대진을 뚫고 결승에 진출했으며 결승 레인저스전에서도 엄청난 선방을 보여주며 승부차기 끝에 승리해 UEFA 유로파리그 우승컵과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타냈으며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UEFA 유로파리그 올스타팀에 2회 선정된 아인트라흐트의 리빙 레전드 케빈 트랍은 프랑크푸르트에 머무는 동안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7회 선정되었다.

 

 

 

이름: 만프레트 빈츠
출생년도: 1965년 9월 22일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6kg

활약 기간: 1985~1996
분데스리가 기록: 336경기 26골 20도움
통산 기록: 411경기 38골 20도움

 

아인트라흐트의 유스 출신으로 브루노 페차이의 후계자로 불리는 선수로 리베로 마니라는 애칭으로 불렸을 정도로 수비라인 지휘 능력과 커버 플레이에 능했다.

프랑크푸르트 통산 출전 9위에 랭크된 빈츠는 1987-88 시즌 DFB포칼 우승을 시작으로 1989-90 시즌부터 1993-94 시즌까지 팀을 리가 5등 안쪽으로 올리며 상위권을 유지하는데 큰 공을 세우며 베르더 브레멘으로 떠난 페차이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웠다. 빈츠 개인도 1989-90 시즌과 1991-92 시즌에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활약을 펼쳤으나 1995-96 시즌 팀이 강등되자 이탈리아 무대의 브레시아로 떠났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2회 선정되었으며 10년 넘게 주전으로 활약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강등된 팀에 남지 않고 떠나서 팬들에게 좋게 보이지 못했는지 2013년 1월에 발표한 베스트 일레븐 투표인 아인트라흐트 기둥들에서는 세 명을 선정하는 수비수 부문에 5등으로 다소 저조한 모습을 보였다.

 

 

 

이름: 아돌프 베히톨트
출생년도: 1926년 2월 20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신체조건: 미상

활약 기간: 1942~1960
분데스리가 기록: 출범 이전
통산 기록: 433경기 3골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활약하던 수비수로 WM 시스템의 라이트백으로 뛰며 건실한 대인 방어로 상대의 아웃사이드 레프트를 잘 막아냈다고 전해졌으며 클럽의 주장직을 훌륭하게 수행하며 은퇴 이후에는 구단 명예의 주장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유소년 시절부터 은퇴까지 선수 생활 전체를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소속으로만 보낸 베히톨트는 1958-59 시즌 오베리가와 독일 챔피언십 더블을 포함해 오베리가 주트 2회 우승, 1회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59-60 시즌 유러피언 컵에서는 백업 멤버로 준우승을 경험했다.

 

 

 

이름: 피터 레이첼
출생년도: 1951년 11월 30일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레프트백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활약 기간: 1970~1979
분데스리가 기록: 229경기 9골 1도움
통산 기록: 281경기 12골 1도움

 

1970년대 독수리 군단의 오른쪽 수비수로 활약한 수비수로 선수 개인은 오버래핑을 선호했지만 팀 사정상 주로 수비적인 플레이를 했으며 빠른 스피드와 거친 경합을 바탕으로 한 대인 방어에 능했다.

구단의 전설적인 라이트백 프리델 루츠의 후계자로 평가받는 레이첼은 프랑크푸르트에서 프로 데뷔를 이뤄냈으며 구단의 70년대 약진을 이끌며 1973-74 시즌과 1974-75 시즌에 DFB포칼 2연패를 이끌었으며 리그에서도 4위 안에 들며 상위권을 유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름: 파흐루딘 유수피
출생년도: 1939년 12월 8일
포지션: 레프트백, 라이트백, 센터백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활약 기간: 1966~1970
분데스리가 기록: 111경기 2골 11도움
통산 기록: 127경기 2골 11도움

 

1960년대 세계 정상급 라이트백이자 레프트백으로 '죽기 아니면 살기'를 플레이 신조로 삼았던 수비수로 격렬하고 거친 수비로 상대 공격수를 잠재우는 파이터형 측면 수비수였다.

이미 유고슬라비아 대표팀과 파르티잔에서 월드클래스 수비수로 명성을 떨쳤던 유수피는 해외 이적이 허용되는 만 27세가 되자 대표팀에서 물러나 서독 분데스리가의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해 활약하며 1966-67 시즌 UEFA 인터토토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7-68 시즌에는 당대 리그 최고급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월드 사커 선정 월드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이름: 랄프 팔켄마이어
출생년도: 1963년 2월 11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5kg

활약 기간: 1980~1987, 1989~1996
분데스리가 기록: 337경기 30골 6도움
통산 기록: 385경기 35골 7도움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이름을 날린 수비형 미드필더로 왕성한 활동량과 적극적인 수비가담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왼발을 잘 썼다.

아인트라흐트의 유스팀에서 승격한 팔켄마이어는 1980-81 시즌 선배들이 DFB포칼 우승을 이뤄낸 것을 경험했으며 선배들이 물러난 뒤에는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일련의 사건들로 팀의 핵심선수들이 나가고 이사회도 해산되는 혼란 속에서 팔켄마이어 역시 구단을 떠나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레버쿠젠에서 옛 선배 차범근과 UEFA컵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지만 새 감독 리누스 미헬스와의 갈등으로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우베 바인과 함께 독수리 군단의 중원을 이끌며 1989-90 시즌부터 1993-94 시즌까지 분데스리가 5위 안에 계속 들며 팀을 상위권으로 올려놓지만 바인이 노쇠화로 팀을 떠난 뒤 성적이 점점 하락하더니 1995-96 시즌에 팀이 강등당하면서 팔켄마이어도 다시 팀을 떠난다.

 

 

 

이름: 하세베 마코토
출생년도: 1984년 1월 18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리베로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2kg

활약 기간: 2014~
분데스리가 기록: 213경기 2골 5도움
통산 기록: 272경기 2골 5도움

 

분데스리가에서 장기간 활약하던 수비형 미드필더로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했으며 수비 상황에서는 날카로운 태클과 뛰어난 대인 마킹 능력으로 상대 공격수와의 경합에서 우위를 점하며 점프력이 좋아 제공권 경합에도 능했고 빌드업 상황에서도 양발을 모두 활용한 간결한 패스로 볼을 앞선으로 안정적으로 배급하며 킥력도 우수했으며 축구지능이 높아 3백 시스템의 리베로에서도 활약할 수 있었다.

볼프스부르크에서의 영광을 뒤로하고 뉘른베르크에서 좋지 못한 시즌을 보내다가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해 제2의 전성기를 맞아 DFB포칼 2회 연속 결승에 진출해 2017-18 시즌 우승을 차지했으며 UEFA 유로파리그에서도 2018-19 시즌 준결승 진출을 이뤄냈고 2021-22 시즌에도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하며 UEFA 유로파리그에서 레알 베티스, FC 바르셀로나,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라는 고난도의 대진을 뚫고 결승전에서 레인저스를 승부차기 끝에 제압하며 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한스 바일바허
출생년도: 1933년 10월 23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8kg

활약 기간: 1952~1965
분데스리가 기록: 0경기 0골
통산 기록: 308경기 68골

 

1950년대에 활약했던 다재다능한 선수로 초년에는 인사이드 레프트와 아웃사이드 레프트에서 활약했던 공격 자원이었지만 사고로 인해 왼발이 다치며 주발을 오른발로 바꿨으며 포지션도 좌우 하프백으로 옮겼는데 정교한 패싱력과 우수한 볼 키핑, 그리고 여전히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그라운드를 수놓았다.

지역 리그 시절의 프랑크푸르트를 이끌며 1958-59 시즌 오베리가 주트와 독일 챔피언십 2관왕을 이뤄냈으며 1959-60 시즌 유러피언 컵에서도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팀의 첫 유러피언 컵 경기에서 영 보이스를 상대로 4분 만에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득점해 프랑크푸르트 선수로는 최초로 유러피언 컵 득점을 기록했으며 꾸준히 좋은 활약으로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디 스테파노와 푸스카스를 앞세운 레알 마드리드는 막지 못해 준우승에 머물렀으며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에는 백업으로 밀리며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이름: 베른트 니켈
출생년도: 1949년 3월 15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0kg

활약 기간: 1967~1983
분데스리가 기록: 426경기 141골 31도움
통산 기록: 528경기 174골 34도움

 

19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프랑크푸르트의 중원을 지켰던 플레이메이커로 패스와 볼 키핑 등 여러 부분에서 준수했지만 특히 해머 박사라 불렸을 정도로 망치같이 강력한 왼발 킥으로 명성을 날렸는데 오픈 플레이와 데드볼 상황을 가리지 않고 위협적인 슈팅을 날려댔으며 심지어는 왼발 킥을 바탕으로 코너킥 상황에서 직접 득점을 4골이나 넣었는데 이는 분데스리가에서 직접코너킥 득점 역대 최다 득점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대단한 왼발 킥력을 바탕으로 많은 득점을 이뤄내며 프랑크푸르트 구단 통산 최다 득점 3위에 올라있는 니켈은 DFB포칼 3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80-81 시즌에는 포칼 우승은 물론 분데스리가에서도 키커지 선정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79-80 시즌에는 UEFA컵 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리차드 크레스
출생년도: 1925년 3월 6일
포지션: 라이트윙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1kg

활약 기간: 1953~1964
분데스리가 기록: 17경기 2골
통산 기록: 360경기 96골

 

1950년대 지역리그 시절에 독일 무대에서 활약했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공격은 물론 수비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오른쪽 무대를 부지런하게 오갔으며 공격 상황에서는 빠른 스피드로 상대의 왼쪽 측면을 돌파해 양질의 오른발 크로스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은 물론 페널티킥 유도와 기습적으로 왼발 슈팅으로 득점을 기록하는 컷인 플레이에도 능했고 팀이 볼 소유권을 잃은 상황에서는 수비라인까지 내려와 수비를 도왔다.

리처드 크레스는 1958-59 시즌 오베리가 주트와 독일 챔피언십 더블 크라운을 포함해 오베리가 주트 3회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59-60 시즌에는 아인트라흐트의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일조했으며 결승전에서도 그가 선제골을 득점했지만 7-3 대역전패의 희생양이 되었다. 분데스리가가 출범한 뒤 1963-64 시즌에는 DFB포칼 준우승을 벤치에서 지켜보고 은퇴했다.

 

 

 

이름: 알프레트 파프
출생년도: 1926년 7월 16일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6kg

활약 기간: 1949~1961
분데스리가 기록: 출범 이전
통산 기록: 358경기 136골

 

1950년대 지역리그 시절에 독일 무대에서 활약했던 인사이드 레프트로 드넓은 시야와 완벽한 테크닉, 훌륭한 완급조절과 날카로운 킬패스를 자랑했던 독일 무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였으며 강력한 슈팅으로 득점을 노리는 골 사냥꾼이었고 때때로 아웃사이드 레프트로도 활약했다.

프랑크푸르트 구단 통산 득점 8위에 랭크된 파프는 1952-53 시즌에 오베리가 주트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3-54 시즌 오베리가 주트 준우승을 이뤄냈고 1958-59 시즌 오베리가 주트와 독일 챔피언십을 우승했으며 1959-60 시즌에는 독수리 군단이 UEFA컵 준우승을 이루는데 공을 세웠다.

 

 

 

이름: 알렉산더 마이어
출생년도: 1983년 1월 17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96cm / 몸무게 96kg

활약 기간: 2004~2018
분데스리가 기록: 270경기 93골 32도움
통산 기록: 379경기 137골 55도움

 

21세기 프랑크푸르트의 아이콘 중 한 명으로 압도적인 피지컬에도 불구하고 초년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으나 패싱력이 우수하지 못했으나 큰 키와 강건한 체격에서 나오는 제공권 경합 능력과 몸싸움이 우수한 점을 무기로 스트라이커로 포지션을 변경한 뒤 기량이 만개했으며 압도적인 헤더를 통해 주로 득점했지만 제공권만 강한 게 아니라 긴 다리를 이용한 드리블을 통해 상대 수비진을 교란했으며 우수한 위치 선정 능력으로 세컨볼을 잘 잡아 세컨볼을 통한 득점에도 장기를 드러냈다.

프랑크푸르트 구단 통산 득점 7위에 랭크된 마이어는 북독의 장크트 파울리에서 데뷔해 함부르크로 이적했지만 자리잡지 못하고 2.분데스리가에 머물던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했으며 2011-12 시즌 잠시 2.분데스리가에 머물 때 스트라이커로 포지션을 변경해 2부 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팀의 승격의 일등 공신으로 활약했다.

2012-13 시즌에도 분데스리가에서 16골을 득점하며 2부 리그뿐만이 아니라 1부 리그에서도 경쟁력을 보여줬으며 2014-15 시즌에는 레반도프스키, 로번, 토마스 뮐러, 오바메양 등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을 제치고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차지했고 VDV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며 인생역전을 이뤄냈고 2016-17 시즌에는 DFB포칼 결승에 교체 출전했으나 준우승에 머물렀고 2017-18 시즌에는 백업으로 DFB포칼 우승을 경험했다.

 

 

 

이름: 카를 에흐머
출생년도: 1906년 11월 25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미상

활약 기간: 1927~1938
분데스리가 기록: 출범 이전
통산 기록: 222경기 225골

 

1920년대 후반부터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프랑크푸르트의 공격을 이끌었던 스코어러로 뛰어난 리더십으로 주장직을 역임했으며 엄청난 득점력을 보이며 데뷔 첫 시즌부터 통산 40골을 득점했으며 독일 챔피언십 득점왕에 2회 올랐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통산 최다 득점자인 에흐머는 남부 독일 챔피언십 2회 우승 및 2회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31-32 시즌에는 전국리그 결승전에 올랐지만 바이에른 뮌헨에게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는 1978년 11월 12일 사망하는 그 순간까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명예 회원이자 명예 주장이었다.

 


25인 스쿼드 완성판

 

토르난테 선정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역대 올스타 25인 스쿼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역대 올스타 리저브 팀 11인

 

 

 

이름: 오카 니콜로프
출생년도: 1974년 5월 25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6kg

활약 기간: 1995~2013
분데스리가 기록: 229경기 342실점 / 51클린시트
통산 기록: 415경기 560실점 / 115클린시트

 

북마케도니아 국적의 골키퍼로 팀의 암흑기에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큰 키와 우수한 반사신경을 바탕으로 뛰어난 선방쇼를 보여줬다.

프랑크푸르트의 유스 출신으로 1995-96 시즌 데뷔 당시에는 서드 골키퍼였지만 1995-96 시즌, 팀이 강등당한 뒤에 주전으로 도약했고 1997-98 시즌에는 2.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승격에 성공시켰지만 이후로도 디르크 하이넨, 마르쿠스 펄과의 치열한 주전 경쟁속에서도 오직 팀에 대한 충성심으로 버티며 18년간 팀에서 활약하며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1998-99 시즌에는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받으며 전문가들에게도 주목받았다.

밖으로는 승강 경쟁, 안으로는 치열한 주전 경쟁 속에서도 팀에 충성하며 결국 프랑크푸르트 구단 통산 출전 8위, 외국인 통산 최다 출전자의 자리에 오른 니콜로프는 2013년 1월에 팬투표로 선정한 프랑크푸르트 역대 베스트 일레븐인 아인트라흐트의 기둥들에 선정되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름: 디터 린트너
출생년도: 1939년 6월 11일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1956~1971
분데스리가 기록: 189경기 5골
통산 기록: 416경기 72골

 

오베리가 시대 후기와 분데스리가 출범 초창기에 활약했던 선수로 초년에는 WM 시스템의 인사이드 라이트에서 활약했지만 분데스리가가 출범된 이후에는 4백의 시스템의 최후방 수비수인 리베로 역할을 맡았는데 당시에는 굉장히 드문 인사이드 포워드 출신의 수비수였기에 우수한 발밑을 바탕으로 미드필더진으로 볼을 정확하게 배급했으며 영리한 커버 플레이로 이름을 날렸다.

프랑크푸르트 구단 통산 출전 7위에 있는 린트너는 1958-59 시즌에 오베리가 주트와 독일 챔피언십 더블 우승을 이뤄냈고 1959-60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에서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공을 세웠고 1963-64 시즌,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에는 수비수로 활약하며 해당 시즌에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최고순위인 3위와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냈고 1966-67 시즌에는 UEFA 인터토토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을 세웠다.

 

 

 

이름: 우베 빈데발트
출생년도: 1968년 8월 13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6kg

활약 기간: 1988~2004
분데스리가 기록: 263경기 2골 2도움
통산 기록: 442경기 9골 4도움

 

견고한 대인 수비를 자랑했던 스토퍼이자 라이트백이었던 우베 빈데발트는 분데스리가 내에서 높은 레벨에 있는 선수라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경기장에서의 강력한 투지와 팀에 대한 충성심, 우수한 팬서비스를 겸비해 팬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말년에 세미 프로팀에서 단 한 시즌 뛴 것을 제외하면 프로 무대에서는 프랑크푸르트에서만 헌신한 빈데발트는 팀의 황금기인 1990년대 초반부터 만프레트 빈츠와 함께 활약하며 명성을 누렸고 1995-96 시즌에 팀이 강등되었을 때에도 남아 아인트라흐트 수비의 중심으로 헌신하며 팀의 힘겨운 승강 싸움을 이끌었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구단 통산 출전 5위에 오른 빈데발트는 2013년 1월에 팬투표로 선정한 프랑크푸르트 역대 베스트 일레븐인 아인트라흐트의 기둥들에 선정되며 팬들에게 구단과 팬들에 대한 충성심을 인정받았다.

 

 

 

이름: 토마스 베어톨트
출생년도: 1964년 11월 12일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1kg

활약 기간: 1982~1987
분데스리가 기록: 111경기 17골
통산 기록: 121경기 18골

 

수비지향적인 라이트백으로 넓은 커버 범위와 뛰어난 대인 수비 능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으며 라이트백은 물론 센터백에서도 우수한 기량을 발휘했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유스 출신으로 데뷔해 다섯 시즌 중 네 시즌을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팀은 암흑기였지만 베어톨트 개인은 약관의 나이로 어린 선수였음에도 독일 대표탐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을 정도로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줬고 모종의 사건으로 이사회가 해산되고 핵심 선수들이 이탈했음에도 팀이 강등을 필사적으로 막아냈다.

그러나 베어톨트도 더 높은 무대를 꿈꿨고 계약 기간이 종료되자 당대 최고의 리그인 이탈리아 무대로 떠났다.

 

 

 

이름: 헤어만 회퍼
출생년도: 1934년 7월 19일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53~1967
분데스리가 기록: 68경기 2골
통산 기록: 371경기 20골

 

독일 무대에서 측면 수비수의 오버래핑을 정립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초년에는 WM 시스템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데뷔했지만 강력한 완력과 상대를 압도하는 수비력을 인정받아 레프트 풀백으로 자리 잡았고 4백 시스템에서는 레프트백으로 주로 활약했는데 도살자라 불렸을 정도로 거친 대인 수비와 강건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제공권 경합에 강해 가끔 센터백으로 기용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수비적인 플레이보다는 호쾌한 드리블로 오버래핑한 뒤 강력한 슈팅으로 골문을 노리는 플레이를 선호했고 볼 소유권을 잃었을 때 수비 복귀가 늦는 단점이 있었다.

1950년대와 60년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약진을 이끌었던 회퍼는 1953-54 시즌 오베리가 주트 준우승을 시작으로 1958-59 시즌 오버리가 주트와 독일 챔피언십 2관왕과 1959-6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1963-64 시즌에 분데스리가가 출범하자 팀의 주장으로 활약하며 분데스리가 3위와 DFB포칼 준우승을 이끌어냈는데 리그 3위는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프랑크푸르트의 최고 성적이었다. 은퇴 시즌인 1966-67 시즌에는 인터토토컵 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놀베르트 나흐트바이
출생년도: 1957년 6월 4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라이트백, 레프트백, 리베로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활약 기간: 1976~1982, 1991
분데스리가 기록: 120경기 26골
통산 기록: 161경기 31골

 

1980년대 분데스리가에서 이름을 날린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주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와 양 측면 수비수지만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을 정도로 다재다능하며 전술안이 우수했고 양발을 모두 잘 썼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대포알 같은 중거리 슈팅을 양발로 날려대며 상대 골키퍼를 괴롭혔다.

동독 태생의 선수였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에 1976년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에 동독 대표로 참가했을 때 동료 골키퍼 위르겐 팔과 함께 개최국 터키의 도움을 받아 탈출했으며 탈동에 성공한 이후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했지만 피파로부터 1년간 선수생활 금지라는 중징계를 받았고 서독 대표팀으로 뛰는 것을 금지당했다.

출전 금지 징계가 풀린 1977-78 시즌에 데뷔해 수비수와 미드필더, 공격수를 가리지 않고 준수한 플레이를 보여주며 1979-80 시즌 UEFA컵 결승에서는 스트라이커로 출전해 독수리 군단의 우승에 기여했으며 1980-81 시즌 DFB포칼 결승에서는 라이트윙으로 뛰며 우승에 기여했지만 1982-83 시즌을 앞두고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났고 나중에 1990-91 시즌 후반기에 돌아와 반년 간 팀에 머문다.

 

 

 

이름: 제바스티안 로데
출생년도: 1990년 10월 11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2010~2014, 2019~
분데스리가 기록: 158경기 10골 5도움
통산 기록: 247경기 14골 22도움

 

2010년대 프랑크푸르트의 약진을 이끈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왕성한 활동량과 견고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저돌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중원의 활력을 불어넣는 팀의 엔진이며 패싱력도 준수하지만 플레이스타일의 한계 상 카드 수집이 잦고 잔부상도 많은 선수다.

2010년에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로 입단했으며 2010-11 시즌에 팀이 강등당하며 주전 선수들이 이적한 틈에 주전으로 자리 잡아 팀을 2.분데스리가로 다시 승격시켰고 승격한 2012-13 시즌 전반기에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받았고 슈바인슈타이거에 이어 수비형 미드필더 부문 2위에 오르는 등 1부 리가에서도 경쟁력이 있음을 증명했으나 2013-14 시즌에 무릎 연골 부상으로 후반기 대부분을 날렸고 시즌이 끝난 뒤 자유계약으로 바이에른 뮌헨으로 합류해 팬들의 원성을 샀고 설상가상으로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주전 경쟁에서 배제되었고 도르트문트 이적 이후에는 더욱 부진하며 출전시간이 더 줄었다.

결국 2018-19 시즌 후반기에 임대 이적을 통해 프랑크푸르트로 다시 돌아왔는데 다행히 좋은 활약을 보이며 해당 시즌 유로파 리그에서 강호 샤흐타르와 인터 밀란, 그리고 벤피카를 연파하고 팀의 준결승 진출을 이끌었고 준결승전 첼시전에서도 비록 승부차기 끝에 결승 진출은 좌절되었지만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완전이적에 성공했고 2021-22 시즌에도 유로파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유로파 리그 우승 트로피와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을 동시에 획득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2022-23 시즌 전반기에는 팀을 분데스리가 상위권에 올렸고 UEFA 챔피언리그에서도 조별 리그를 통과해 16강 진출을 이뤄낸 공을 인정받아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받았고 팬덤에서의 민심도 완전히 회복했다.

 

 

 

이름: 빌헬름 후버츠
출생년도: 1938년 2월 22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리베로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1963~1970
분데스리가 기록: 213경기 67골 29도움
통산 기록: 262경기 89골 29도옴

 

오스트리아 출신의 플레이메이커로 포지션은 WM 시스템의 인사이드 포워드와 4백 시스템의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주로 뛰며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담당했지만 우수한 테크닉과 드넓은 시야, 그리고 높은 수준의 전술 이해도를 바탕으로 다양한 포지션에서 뛸 수 있었고 말년에는 리베로 역할을 맡기도 했다.

1963-64 시즌에 분데스리가의 출범 이후에 알프레트 파프의 대체자로 영입된 후버츠는 1963-64 시즌 분데스리가 3위를 이뤄냈고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66-67 시즌에는 인터토토컵 우승을 이뤄내며 분데스리가 출범 초창기 아인트라흐트의 에이스 카드로 활약했다.

 

 

 

이름: 제이제이 오코차
출생년도: 1973년 8월 14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라이트윙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1kg

활약 기간: 1992~1996
분데스리가 기록: 90경기 18골 13도움
통산 기록: 116경기 25골 18도움

 

나이지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는 선수이자 자타공인 아프리카 축구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스텝오버, 드래그 벡, 팬텀드리블, 슛 페이팅에 모두 능했으며 바이시클킥, 호커스포커스, 사포 등 고난도의 개인기도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었다.

토니 예보아와 함께 분데스리가의 아프리카 돌풍을 보여준 선수로 1992-93 시즌에는 우베 바인, 예보아와 함께 공격편대를 이끌고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구단 역사상 최고 성적인 3위에 올랐고 1993년 8월 31일, 카를스루헤와의 분데스리가 경기에서는 환상적인 개인기로 올리버 칸을 자빠트리고 득점에 성공하며 독일 올해의 골에 선정되었다.

짧지만 강력한 임팩트를 남겼던 제이제이 오코차는 키커 랑리스테 평가가 좋지 못했음에도 화려한 플레이스타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아 2013년 1월에 팬투표로 선정한 프랑크푸르트 역대 베스트 일레븐인 아인트라흐트의 기둥들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이름: 필립 코스티치
출생년도: 1992년 11월 1일
포지션: 레프트윙, 레프트백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2kg

활약 기간: 2018~2022
분데스리가 기록: 129경기 18골 49도움
통산 기록: 172경기 33골 64도움

 

2010년대 말과 20년대 초반에 분데스리가 무대 최고의 좌측면 스페셜리스트로 활약하며 빠른 스피드와 순간속도를 바탕으로 좌측면에서 치고 달리는 플레이를 즐겼으며 오버래핑 이후에는 베컴의 오른발에 버금가는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를 선보였고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공격은 물론 수비에도 헌신적으로 가담했고 몸싸움 능력도 우수해 공격 상황에서 버티는 능력과 수비 상황에서 경합 능력 모두 뛰어났지만 3백 시스템의 레프트 윙백이 아니면 그 기량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해 기용하기 까다로운 선수로도 평가받았다.

프랑크푸르트는 코스티치를 영입하고 3백 윙백에 기용했으며 이 포지션에서 코스티치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줬는데 특히 유로파리그에서 강력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2018-19 시즌에는 샤흐타르, 인테르, 벤피카를 모두 꺾고 준결승에 진출해 비록 탈락했지만 첼시와도 박빙의 승부를 펼쳤고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대회 올스타 스쿼드에 포함되었고 2021-22 시즌에는 에이스로 활약하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고 레알 베티스, FC 바르셀로나, 웨스트햄, 레인저스를 차례로 꺾으며 유로파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해당 대회에서 베스트 일레븐과 MVP를 석권했다.

분데스리가에서도 알폰소 데이비스와 함께 좌측면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으며 네 시즌, 여덟 번의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무려 여섯 번이나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선정되었고 2020-21 시즌에는 VDV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며 짧지만 강력한 임팩트를 보여줬다.

 

 

 

이름: 에르빈 슈타인
출생년도: 1935년 6월 10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라이트윙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8kg

활약 기간: 1959~1966
분데스리가 기록: 41경기 14골
통산 기록: 200경기 138골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던 센터 포워드로 '왼발은 거들뿐'이라는 말처럼 왼발을 거의 쓰지 않았지만 오른발만 쓰고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는데 가공할 만한 스피드와 적절한 타이밍에 침투하는 플레이로 상대 배후를 공략해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으로 득점하는 부분은 물론 다른 공격수들과의 연계 플레이에도 능해 골 찬스를 내주기도 했으며 빠른 스피드를 통해 측면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통산 득점 6위에 오른 슈타인은 1959-60 시즌에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결승전에서도 멀티골을 넣었지만 수비라인에서 디 스테파노와 푸스카스를 막는데 실패해 준우승에 머물렀고 이후 오베리가 주트에서 2회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공을 세웠고 1963-64 시즌에 분데스리가가 출범하자 첫 시즌에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리가 3위와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냈으나 이후에는 기량이 떨어지며 백업 멤버로 밀려난다.

 


*아인트라흐트의 기둥들에 선정되었던 수비형 미드필더 알렉산더 슈어는 강등된 팀에도 남아 헌신한 공로가 있지만 2013년 이후에 두각을 나타낸 후배들인 로데, 하세베에 비해 클럽에서 이룬게 부족하고 선배 나흐트바이나 팔켄마에어, 바일바히에 비해서는 퍼포먼스가 확실히 부족했다고 판단해 선정하지 않았습니다.

*아인트라흐트의 기둥들에 선정되었던 감독 외르크 베어거는 실적과 롱런에서 모두 파울 오스발트에 밀린다고 생각해 선정하지 않았습니다. 파울 오스발트가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에 활약했던 감독이라 팬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설령 리저브 팀 감독을 선정한다고 해도 현재 프랑크푸르트의 약진을 이끈 올리버 글라스너나 포칼 2연패를 이룬 디트리히 바이저를 고려했을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기록은 주로 트렌스퍼마켓을 참조합니다. 잘못될 경우 다른 기록을 참조합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기록이 있으면 공식 홈페이지 우선

*스텟기준은 2023년 1월 11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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