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카이저슬라우테른 역대 올스타 팀

클럽 올스타 짜보기/독일 분데스리가

FC 카이저슬라우테른 역대 올스타 팀

토르난테 2023. 1. 1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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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1. FC Kaiserslautern)

 

창단: 1900년 6월 2일

소속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연고지: 독일 라인란트팔츠 주 카이저슬라우테른

홈구장: 프리츠 발터 슈타디온

독일 분데스리가: 2회 우승 (1990–91, 1997–98)

독일 챔피언쉽: 2회 우승 (1950-51, 1952-53)

DFB포칼: 2회 우승 (1989-90, 1995-96)

베스트크레이스리가 1회 우승: (1908–09)

가울리가 베스트마르크: 1회 우승 (1941-42)

오베리가 주드베스트: 11회 우승 (1946-47, 1947-48, 1948-49, 1949-50, 1950-51, 1952-53, 1953-54, 1954-55, 1955-56, 1956-57
1962-63)

DFL슈퍼컵: 1회 우승 (1991)

2.분데스리가: 2회 우승 (1990–91, 1997–98)

 


베스트 11

 

골키퍼

 

 

이름: 로니 헬스트룀
출생년도: 1949년 2월 21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84kg

활약 기간: 1974~1984
분데스리가 기록: 266경기 435실점 / 65클린시트
통산 기록: 311경기 489실점 / 80클린시트

 

스웨덴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았으며 안정적인 수비 조율 능력과 뛰어난 선방 능력을 바탕으로 당대 유럽 정상급 골키퍼로 명성을 날렸다.

1974 서독 월드컵에서 서독의 주전 골키퍼 제프 마이어와 더불어 대회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골키퍼로 이때의 퍼포먼스로 인해 서독의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해 10년간 활약했는데 1975-76 시즌과 1980-81 시즌에는 붉은 악마 군단의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냈다. 분데스리가에서도 1978-79 시즌부터 1981-82 시즌까지 네 시즌 연속으로 팀을 리그 4위 안에 들며 팀 성적을 상위권으로 안착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고 헬스트룀 개인도 구단에 머무는 동안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4회 선정되었다.

카이저슬라우테른 구단 외국인 통산 최다 출전자에 랭크된 헬스트룀은 1977-78 시즌에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팀원들 다수가 부진했음에도 군계일학의 활약을 보여주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오직 리그에서의 활약으로만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6위에 올랐다.

 

 

리베로

 

 

이름: 미로슬라프 카들레치
출생년도: 1964년 6월 22일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2kg

활약 기간: 1990~1998
분데스리가 기록: 234경기 17골 13도움
통산 기록: 273경기 21골 16도움

 

체코 축구 역사상 최고의 리베로로 평가받는 선수로 힘보다는 기술을 앞세운 수비력과 기습적으로 공격에 가담해 상대 수비진을 교란하는 능력 또한 발군이었다.

1990년에 체코슬로바키아에도 공산주의가 해체되고 자유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선수들도 자유롭게 해외 무대에 나설 수 있게 되었고 카들레치도 1990-91 시즌에 독일의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해 팀의 수비를 이끌며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었으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전반기와 후반기에 모두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받았으며 후반기에는 리베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5-96 시즌, 카를스루헤를 꺾고 DFB포칼을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팀은 2부 리그로 강등을 경험한다.

그러나 카들레치는 팀과의 의리를 지키며 2.분데스리가에서도 붉은 악마 구단과 함께하며 팀의 2.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한 시즌만에 다시 분데스리가로 돌아왔고 승격한 시즌인 1997-98 시즌에는 팀의 수비라인의 리더이자 베테랑으로 활약하며 두 번째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전후반기 모두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선정되며 해당 등급에 총 다섯 번 선정되었다.

 

 

센터백

 

 

이름: 베르너 리브리히
출생년도: 1927년 1월 18일
포지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1945~1962
분데스리가 기록: 출범 이전
통산 기록: 413경기 32골

 

독일 축구사에서는 베른의 기적을 이끈 영웅 중 한 명으로 기억되지만 나치 독일 시절에는 독일 사회민주당 당원이었던 이유로 집안이 나치의 박해를 받았던 수비수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독 무대를 대표하는 센터하프로 거칠면서 집요한 대인 마킹으로 상대 공격수를 괴롭혔으며 특히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은 완벽에 가까웠다.

19년의 선수생활을 오직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만 보낸 리브리히는 붉은 악마 군단의 수비를 이끌며 오베리가 주트베스트 10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을 세우며 남서부 독일의 절대강자로 군림했고 전국 대회에서도 결승에 다섯 번 진출해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60-61 시즌에는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냈고 개인적으로도 1955년에 초대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다.

카이저슬라우테른 구단 통산 출전 2위에 랭트된 베르너 리브리히는 친형 에른스트 리브리히와 함께 구단에 헌신했는데 형은 라이트백과 라이트 하프 포지션에서 활약했는데 최전성기의 카이저슬라우테른은 발터 형제가 공격을 이끌고 리브리히 형제가 수비를 이끄는 팀이었다.

 

 

라이트백

 

 

이름: 악셀 로우스
출생년도: 1964년 8월 19일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0kg

활약 기간: 1984~2001
분데스리가 기록: 303경기 17골 16도움
통산 기록: 397경기 23골 17도움

 

라이트백과 센터백을 겸할 수 있던 수비수로 체구는 작았지만 엄청난 지구력과 강력한 집중력을 바탕으로 하는 집요한 대인 수비로 상대 공격수를 잘 견제했으며 팀을 위해 헌신하는 플레이를 했다.

17년의 프로 선수 생활을 오직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인 로우스는 붉은 악마 구단에서 1989-90 시즌 DFB 포칼 우승을 시작으로 1990-91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에 이어 1991 리가포칼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3-94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이뤄냈고 1995-96 시즌 DFB포칼 우승을 이뤄냈으나 분데스리가 시즌 최종전 레버쿠젠전에서 패하며 붉은 악마는 32년 만에 첫 강등을 경험했다. 그러나 로우스는 강등당한 팀을 버리지 않고 잔류해 활약하며 레하겔 체제에서 2.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승격했고 승격한 시즌인 1997-98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는 카이저슬라우테른만의 드라마를 써내는데 공헌했다.

2001년에 은퇴한 로우스는 현재까지도 카이저슬라우테른 구단 통산 출전 3위에 랭크되었으며 현재는 카이저슬라우테른 지역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축구 학교의 교장 겸 코치로 일하며 인재 양성에 열중하고 있다.

 

 

레프트백

 

 

이름: 한스페터 브리겔
출생년도: 1955년 10월 11일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7kg

활약 기간: 1975~1984
분데스리가 기록: 240경기 47골
통산 기록: 294경기 61골

 

신체능력과 축구지능을 겸비한 선수로 188cm의 89kg라는 거대한 체격은 물론 축구를 시작하기 전 육상에서도 큰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라 운동 능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이러한 우수한 피지컬을 앞세운 맨 마킹 능력이 뛰어났으며 공격적인 부분에서도 양발을 모두 잘 썼고 특히 중거리 슈팅이 대단했으며 축구 지능도 뛰어나 필드 내에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다.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데뷔한 브리겔은 1978-79 시즌에 확고한 주전으로 도약해 1978-79 시즌부터 1981-82 시즌까지 붉은 악마 군단을 네 시즌 연속으로 분데스리가 4위 안에 들며 상위권으로 올려놨으며 DFB포칼 결승에도 2회 진출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브리겔 개인도 1978-79 시즌부터 1981-82 시즌까지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83-84 시즌이 종료된 뒤에는 이탈리아 무대로 떠나 엘라스 베로나의 리그 우승을 주도하며 1985년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받기도 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스토퍼, 측면 수비수, 미드필더 세 부분에서 모두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받아봤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브리겔은 13회의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받았으며 1980-81 시즌에는 스토퍼 부문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치리아코 스포르차
출생년도: 1970년 3월 2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리베로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활약 기간: 1993~1995, 1997~2000, 2002~2006
분데스리가 기록: 199경기 20골 41도움
통산 기록: 231경기 23골 43도움

 

도르트문트의 레전드 사퓌자와 함께 스위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는 선수로 한혈마와 같은 지구력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과 강력한 태클로 중원의 넓은 지역에서 상대와의 볼 경합에서 우위를 점했으며 볼을 잡았을 때에는 영리한 완급 조절은 물론 드넓은 시야와 우수한 킥력에서 나오는 정밀도 높은 롱패스와 빠른 판단력에서 나오는 숏패스를 바탕으로 하는 플레이메이킹에도 능했다.

스위스 무대에서 처음 명성을 날려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한 스포르차는 1993-94 시즌 붉은 악마가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이뤄내는 데 큰 역할을 했으나 2년 만에 팀을 떠나 바이에른 뮌헨과 인터 밀란을 거쳐 1997-98 시즌에 다시 분데스리가로 돌아온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돌아와 활약하며 승격팀의 분데스리가 우승이라는 드라마를 써내는데 큰 기여를 하며 해당 시즌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브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2000-01 시즌에 다시 바이에른으로 떠나서 챔피언스리그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으나 주전 경쟁에서 난항을 겪어 다시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돌아와 이번에는 위기에 빠진 팀에 돌아와 2002-03 시즌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냈고 여러 차례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해냈으나 결국 2005-06 시즌에 팀은 강등되었고 이미 너무 늙은 스포르차는 이를 막을 수 없었다. 스포르차의 마지막은 아쉽게 장식했지만 그는 카이저슬라우테른에 머무는 동안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6회 선정되었다.

 

 

라이트 메짤라

 

 

이름: 호어스트 에켈
출생년도: 1932년 2월 8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라이트윙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1949~1960
분데스리가 기록: 출범 이전
통산 기록: 248경기 74골

 

1950년대 독일 축구를 대표했던 월드클래스 수준의 하프백으로 드넓은 시야와 안정적인 패싱력, 그리고 왕성한 활동량을 겸비해 팬들로부터 빈트후트, 즉 시각 수렵견이란 별명으로 불렸으며 초년에는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활약하기도 했다.

카이저슬라우테른의 빈트후트는 구단을 위해 상대 공격수를 사냥하며 붉은 악마 군단의 오베리가 주스베스트 7회 우승과 독일 챔피언십 2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는데 특히 1950-51 시즌에는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출전해 대회 우승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7경기 6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오르는 등 구단이 마이스터샬레를 추가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레프트 메짤라

 

 

이름: 안드레아스 브레메
출생년도: 1960년 11월 9일
포지션: 레프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2kg

활약 기간: 1981~1986, 1993~1998
분데스리가 기록: 242경기 43골 10도움
통산 기록: 320경기 53골 17도움

 

1980년대 하반기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이자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세트피스 키커이자 양발잡이로 뛰어난 패싱력을 활용해 대표팀의 빌드업 시작점 역할을 했던 미래형 윙백이었으며 프리킥과 코너킥에 능해 팀의 공격을 지원했으며 높은 차원의 전술안과 특유의 다재다능함과 영리함을 바탕으로 레프트백은 물론 수비수와 미드필더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다.

자를란트 지역의 1. FC 자르브뤼켄에서 데뷔해 곧바로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낸 브레메는 한 시즌만에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해 활약하며 첫 시즌부터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동 포지션에는 대쵸팀 선배 브리겔이 있었으나 브리겔과 브레메 둘 다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기에 잘 공존하며 활약했다. 브레메는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활약하며 착실하게 성장해 대표팀에서도 주전을 차지했을 정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했고 1985-86 시즌까지 활약하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6회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나 브레메는 리그 우승 트로피를 원했고 카이저슬라우테른을 떠났으며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인테르 밀란에서 세리에 A 우승을 이끌고 구에린 도르를 수상하며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브레메도 30대에 접어들자 노장이라는 이유로 인테르에서 밀려나며 레알 사라고사를 거쳐 1993-94 시즌에 다시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돌아와 노익장을 과시하며 전반기에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팀의 분데스리가 준우승에 공헌했고 1995-96 시즌에는 DFB포칼 우승을 이뤄냈으나 분데스리가에서는 최종전에서 패하며 강등당해 2.분데스리가로 내려갔다. 그럼에도 브레메는 주장으로서 팀에 잔류해 팀 분위기를 잘 수습하며 붉은 악마 군단의 2.분데스리가 우승에 기여했고 1997-98 시즌에는 노쇠화해서 벤치를 지켰으나 그럼에도 팀의 정신적 지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약하며 승격팀의 우승이라는 기적을 쓰는데 일조했고 붉은 악마의 주장으로서 마이스터샬레를 들며 화려하게 물러났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프리츠 발터
출생년도: 1920년 10월 31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37~1959
분데스리가 기록: 출범 이전
통산 기록: 379경기 310골

 

비 오는 날에 특히 강했던 서독 대표팀 역대 최고의 주장으로 나치 독일 시절에 데뷔해 서독 축구의 부흥을 이끈 다재다능한 인사이드 포워드로 훌륭한 리더십과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보여줬으며 특히 비 오는 날에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줘 비 오는 날을 '프리츠 발터의 날'이라고 불렀다.

나치당의 명령으로 잠시 임대를 간 것을 제외하면 클럽 커리어의 전부를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만 보냈으며 오베리가 주트베스트 10회 우승과 독일 챔피언십 결승에 다섯 번 진출해 두 번 우승했으며 최초의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3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인사이드 포워드 부문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다.

카이저슬라우테른 구단 통산 출전 5위와 득점 2위에 랭크된 프리츠 발터는 동생 오트마어 발터와 함께 공격 듀오를 이끌었으며 카이저슬라우테른 구단 측은 상술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홈구장의 이름을 프리츠 발터 슈타디온으로 바꿨다.

 

 

스트라이커

 

 

이름: 슈테판 쿤츠
출생년도: 1962년 10월 30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레프트윙, 포워드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4kg

활약 기간: 1989~1995
분데스리가 기록: 170경기 75골 19도움
통산 기록: 204경기 92골 22도움

 

1980년대 하반기와 1990년대 독일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전천후 공격 자원으로 빠른 스피드로 정확한 위치에 침투하며 한 박자 빠른 타이밍의 슈팅을 보여줬으며 준족이라는 점을 살려 윙포워드의 임무도 소화할 수 있었다.

분데스리가 개인 통산 득점 순위 8위에 랭크되었으며 카이저슬라우테른 통산 득점 순위에도 8위에 랭크된 쿤츠는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전성기를 맞이해 1989-90 시즌에 DFB포칼 우승과 득점왕을 동시에 차지했으며 1990-91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루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우며 1991년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1993-94 시즌에는 득점력이 물이 올라 개인은 득점왕을 수상했고 팀은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1995-96 시즌을 앞두고 쿤츠가 터키 무대로 떠나자 카이저슬라우테른은 빈공에 시달리며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1989-90 시즌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쿤츠는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3회 선정되었다.

 

 

스트라이커

 

 

이름: 오트마어 발터
출생년도: 1924년 3월 6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라이트윙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7kg

활약 기간: 1941~1943, 1946~1956
분데스리가 기록: 출범 이전
통산 기록: 322경기 337골

 

우베 젤러와 게르트 뮐러 이전에 독일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이어나가던 선수로 피지컬이 우수한 것은 아니었지만 빠른 순간 스피드와 높은 공간 이해도, 그리고 정확한 위치선정을 바탕으로 득점하기 유리한 상황을 잘 만들었으며 양발과 머리를 가리지 않고 득점할 수 있었으며 프리킥 상황에서 득점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카이저슬라우테른 통산 최다 득점자에 랭크된 오트마 발터는 형 프리츠 발터와 함께 구단의 공격을 이끌며 오베리가 주트베스트 9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전국단위 대회인 독일 챔피언십에도 다섯 번 결승에 진출해 2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붉은 악마를 당대 독일을 대표하는 클럽으로 올렸고 오트마어 발터 개인도 1947-48 시즌 독일 챔피언십에서는 팀 동료 베르너 바슬러와 함께 대회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그러나 오트마어 발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크릭스마리네, 즉 전쟁해군에서 복무하다가 무릎 부상을 입었으며 그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선수 생활 동안 지속적인 방해를 받았고 이 부상이 심해지자 은퇴했다.

 

 

감독

 

 

이름: 오토 레하겔

생년월일: 1938년 8월 9일

부임기간: 1996~2000

 

선수시절 잠시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수비형 미드필더와 수비수로 활약하며 100경기 넘게 나왔으며 이런 인연 때문인지 당대 독일 축구계 최고의 감독 중 하나였음에도 1996-97 시즌 2.분데스리가에 머물던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지휘봉을 맡았다.

승리를 위해서는 극단적인 수비축구도 마다하지 않았던 레하겔은 독일식 카테나치오 시스템의 신봉자로 전방에서부터 철저한 압박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수비진들이 대인 수비를 이룰 때 미드필더들이 그 자리를 채워주는 방식의 수비 시스템을 바탕으로 1996-97 시즌 2.분데스리가 우승에 이어 1997-98 시즌에는 승격팀의 분데스리가 우승이라는 기적의 드라마를 써내는 데 성공한다.

베르더 브레멘에서 장기집권하며 명성을 날렸으나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주춤했지만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돌아와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끈 레하겔은 1999~2000 시즌이 끝나자 그리스 대표팀으로 자리를 옮겼고 유로 2004에서 라트비아와 함께 우승 확률 공동 꼴찌를 기록한 그리스의 유로 우승을 이끌며 기적의 정점에 올랐다.

 


토르난테 선정 FC 카이저슬라우테른 역대 베스트 11

 


25인 스쿼드 / 서브 14인

 

 

 

이름: 게랄트 에어만
출생년도: 1959년 2월 18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90kg

활약 기간: 1984~1997
분데스리가 기록: 292경기 414실점 / 82클린시트
통산 기록: 348경기 493실점 / 98클린시트

 

1980년대 카이저슬라우테른의 골문을 지킨 골키퍼로 여러 노하우를 통해 붉은 악마의 골문을 안정적으로 지켰으며 자기 관리 능력도 뛰어나 14년간 롱런하며 카이저슬라우테른 구단 통산 출전 8위에 올랐다.

쾰른에서 데뷔했으나 당대 분데스리가 최고의 골키퍼 슈마허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며 벤치를 달궜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로니 헬스트룀이 떠난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해 14년간 활약하며 1990-91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과 DFB포칼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팀이 강등되었을 때에는 플레잉 코치로 전환해 주전을 차지한 라인케의 성장을 도우며 1996-97 시즌 2.분데스리가 우승과 1997-98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경험하고 은퇴한다.

선수 은퇴 후에는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24년간 골키퍼 코치직을 역임하며 세계 최고의 골키퍼 코치 중 한 명으로 명성을 날리며 바이덴펠러, 비제, 트랍 등 여러 골키퍼들을 분데스리가 정상급 골키퍼로 성장시켰다.

 

 

 

이름: 빌리 홀즈
출생년도: 1929년 4월 16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미상

활약 기간: 1947~1950, 1952~1961
분데스리가 기록: 출범 이전
통산 기록: 290경기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활약했던 골키퍼로 18세의 나이부터 엄청난 선방을 보이며 당대 독일무대 최고의 유망주로 활약했지만 1949년에 반월판 부상을 입은 뒤 새로 영입함 카를 아담에게 밀려나 팀에서 방출당했으나 보르마티아 보름스에서 부상을 딛고 다시 훌륭한 실력을 보여주며 1952-53 시즌에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다시 돌아와 1961년까지 함께한다.

초년에는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오베리가 주트베스트 3연패를 이뤄냈으며 보르마티아 보름스를 거쳐 다시 돌아온 뒤에도 1952-53 시즌 독일 챔피언십 우승과 오베리가 주트베스트 5연패를 이뤄내며 개인 통산 8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이름: 볼프강 볼프
출생년도: 1957년 9월 24일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라이트백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0kg

활약 기간: 1976~1988
분데스리가 기록: 248경기 11골
통산 기록: 293경기 17골

 

1970년대와 80년대 붉은 악마 군단의 수비를 이끌었던 리베로로 우수한 수비라인 조율 능력과 안정적인 커버플레이로 명성을 날렸으며 라이트백이나 스토퍼로 뛸 때는 악착같은 대인수비를 보여주기도 했다.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데뷔해 12년간 활약한 볼프는 붉은 악마 군단의 수비를 이끌며 1978-79 시즌부터 1981-82 시즌까지 네 시즌 연속으로 붉은 악마 군단이 분데스리가 4위 안에 들게 하며 팀을 상위권으로 올리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1980-81 시즌에는 DFB 포칼 준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에른스트 딜
출생년도: 1949년 3월 28일
포지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8kg

활약 기간: 1967~1978
분데스리가 기록: 314경기 18골 5도움
통산 기록: 369경기 25골 5도움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던 스토퍼형 센터백으로 체구는 작았지만 강한 집념을 바탕으로 한 대인방어로 이름을 날렸고 기복 없이 꾸준히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선수 생활을 전부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만 보낸 딜은 비록 붉은 악마 구단에게 트로피를 선물하지는 못했지만 DFB포칼 준우승에 2회 올랐으며 딜 개인도 꾸준하게 주전으로 출장하며 카이저슬라우테른 구단 통산 출전 6위에 올랐다.

 

 

 

이름: 에른스트 리브리히
출생년도: 1923년 12월 18일
포지션: 라이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신체조건: 미상

활약 기간: 1941~1955
분데스리가 기록: 출범 이전
통산 기록: 179경기 3골

 

베른의 기적으로 유명한 베르너 리브리히의 친형으로 WM 시스템의 라이트 풀백과 라이트 하프에서 주로 활약하며 센터하프로 활약한 동생 베르너 리브리히와 함께 1950년대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수비를 책임지며 침착하고 실속 있는 대인 수비 능력과 앞선으로의 안정적인 볼 배급 능력을 겸비했다.

1941년 카이저슬라우테른에 입단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도중에 미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생환하며 1945년에 다시 붉은 악마의 유니폼을 입었으며 오베리가 주트베스트 8회 우승을 이뤄내며 서독 남서부 지역을 평정했으며 독일 챔피언십에서도 다섯 번 결승에 진출해 2회 우승을 이뤄내며 붉은 악마 군단을 1950년대 상반기 독일 최고의 팀으로 올리는데 기여하며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이름: 베르너 콜마이어
출생년도: 1924년 4월 19일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6kg

활약 기간: 1941~1957
분데스리가 기록: 출범 이전
통산 기록: 333경기 20골

 

1950년대 상반기 카이저슬라우테른을 서독 최고의 팀으로 올린 수비수로 WM 시스템에서 레프트 풀백으로 주로 활약했으며 믿음직해 팀원들의 신뢰를 받았으며 항상 자신감이 넘쳤다고 전해진다.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운동능력이 대단했는데 100m 달리기를 11초 이내에 주파했고 근대 5종 경기를 즐겼을 정도로 신체 능력이 탁월했으며  다부진 체구를 이용한 몸싸움에 능했고 용수철과 같은 점프력으로 작은 키에도 제공권 경합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1940년대와 50년대에 걸쳐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활약한 콜마이어는 1941-42 시즌 가울리가 베스트마르크 우승을 시작으로 오베리가 체제에서는 오베리가 주트베스트 10회 우승을 이뤄내며 서독 남서부를 평정했고 전국단위 대회인 독일 챔피언십에서도 5회 결승에 올라 2회 우승을 이뤄내며 붉은 악마 군단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팀동료였던 발터 형제와 베르너 리브리히, 호어스트 에켈과 함께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베른의 기적을 이끌기도 했다.

 

 

 

이름: 베르너 멜저
출생년도: 1954년 5월 2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라이트백, 센터백
신체조건: 키 178cm

활약 기간: 1974~1986
분데스리가 기록: 374경기 31골 2도움
통산 기록: 445경기 37골 2도움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약진을 이끈 수비형 미드필더로 엄청난 지구력을 바탕으로 중원을 왕성하게 뛰어다니며 상대 플레이메이커를 모기처럼 따라다니며 무력화시켰으며 특히 맨 마킹에 능해 종종 스토퍼나 라이트백으로도 기용되었다.

카이저슬라우테른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에 랭크되었을 정도로 몸 관리를 잘했던 멜저는 팀의 살림꾼으로 활약하며 1978-79 시즌부터 1981-82 시즌까지 네 시즌 연속으로 붉은 악마 군단이 분데스리가 4위 안에 들며 상위권으로 올라서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1975-76 시즌과 1980-81 시즌에는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한스 본가르츠
출생년도: 1951년 10월 3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라이트윙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2kg

활약 기간: 1978~1984
분데스리가 기록: 167경기 15골 4도움
통산 기록: 213경기 25골 8도움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분데스리가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미드필더로 절륜한 패싱력과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넓은 지역에서 팀원들과 볼을 주고받았으며 압박과 수비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팀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이자 플레이메이커였으며 오른쪽 측면으로 빠져서 드리블을 통해 상대 수비진을 따돌리고 얼리 크로스를 통해 득점 기회를 창출하는 부분에도 뛰어났다.

샬케와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본가르츠는 붉은 악마 군단의 약진을 이끌며 1978-79 시즌부터 1981-82 시즌까지 네 시즌 연속으로 붉은 악마 군단이 분데스리가 4위 안에 들며 상위권으로 올라서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그 과정에서 1978-79 시즌 후반기에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받았으며 1980-81 시즌에는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라이너 게예
출생년도: 1949년 11월 22일
포지션: 라이트윙,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2kg

활약 기간: 1977~1986
분데스리가 기록: 290경기 47골
통산 기록: 346경기 59골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분데스리가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2선 자원으로 지칠 줄 모르는 스테미너와 빠른 발을 바탕으로 화려하진 않지만 실속 있는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제치며 공간을 창출했으며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직접 득점을 노리는 부분과 효율적인 컷인 패스를 바탕으로 득점 찬스를 창출하는 부분 모두 뛰어났음은 물론이고 신체 조건이 좋아 압박을 잘 버텨냈기에 공격형 미드필더와 스트라이커로 출전할 때도 있었다.

카이저슬라우테른 구단 통산 최다 출전 9위에 이름을 올린 게예는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분데스리가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고 1977-78 시즌을 앞두고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해 붉은 악마 군단의 상승세를 이끌며 1978-79 시즌부터 1981-82 시즌까지 네 시즌 연속으로 붉은 악마 군단이 분데스리가 4위 안에 들며 상위권으로 올라서는데 큰 공을 세웠고 1980-81 시즌에는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롤란트 산베리
출생년도: 1946년 12월 16일
포지션: 레프트윙, 포워드,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2kg

활약 기간: 1973~1977
분데스리가 기록: 118경기 60골
통산 기록: 138경기 69골

 

1970년대 서독 분데스리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엄청난 스피드를 활용하는 전력질주에 이은 크로스로 팀 공격의 포문을 열었으며 직접 득점하는 부분에도 능하고 양발을 모두 능숙하게 활용했기에 왼쪽과 오른쪽을 모두 소화했음은 물론 스트라이커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자국리그에서의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서독 무대의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한 산베리는 4년간 활약하며 붉은 악마 군단의 1975-76 시즌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냈고 산베리 개인도 여덟 번의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5회나 받았으며 그중 세 번은 외국인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이름: 마르틴 바그너
출생년도: 1968년 2월 24일
포지션: 레프트윙, 중앙 미드필더, 레프트백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0kg

활약 기간: 1992~2000
분데스리가 기록: 242경기 44골 48도움
통산 기록: 169경기 23골 35도움

 

독일 통일 전후에 활약했던 측면 미드필더로 마치 한혈마와 같이 왼쪽 측면을 쉴 새 없이 빠른 스피드로 뛰어다니며 공수 양면에 헌신적으로 지원했는데 공의 소유권이 상대에게 넘어갔을 때에는 빠른 스피드로 내려와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고 공격 찬스에서는 빠른 스피드로 오버래핑한 뒤 우수한 왼발 킥력을 바탕으로 정밀도 높은 왼발 크로스로 기회를 만드는 부분에 능했으며 강력한 왼발 킥력을 바탕으로 데드볼 상황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1992-93 시즌부터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활약한 바그너는 1993-94 시즌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기여하며 해당 시즌 키커지 선정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나 1995-96 시즌에는 DFB포칼 결승에서 카를스루헤를 상대로 직접 결승골을 넣으며 우승을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붉은 악마 군단은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하지만 바그너는 여러 이적제의에도 불구하고 카이저슬라우테른에 잔류했으며 1996-97 시즌 2.분데스리가 우승으로 팀을 다시 승격시켰고 1997-98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승격팀의 우승이라는 기가 막히는 드라마를 써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름: 베르너 바슬러
출생년도: 1921년 10월 2일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라이트백
신체조건: 미상

활약 기간: 1938~1942, 1944~1951, 1953~1957
분데스리가 기록: 출범 이전
통산 기록: 265경기 249골

 

나치 독일 시대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세 번에 걸쳐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활약했던 선수로 초년에는 유스팀 생활을 함께했던 프리츠 발터와 함께 WM 시스템의 인사이드 포워드로 활약하며 날카로운 킬패스로 수많은 찬스를 만들었으며 날카로우면서도 강력한 슈팅과 높은 골 결정력을 겸비해 꾸준하게 득점포를 가동했고 말년에는 젊은 인사이드 포워드 벤젤에게 밀리며 라이트백으로 뛰었을 때에도 우수한 대인 수비력을 겸비한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총 15년간 세 번에 걸쳐서 활약하며 구단 통산 득점 4위에 랭크된 바슬러는 붉은 악마 군단 1기 시절에는 4년간 머물며 1941-42 시즌 가울리가 베스트마르크 우승을 이뤄냈으며 2기 시절에는 7년간 머물면서 오베리가 주스베스트 5연패를 이뤄내며 서독 남서부 최강자로 올라섰으며 1951년에는 독일 챔피언십 우승을 이뤄다.

3기 시절에는 라이트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며 4년간 활약하며 오베리가 주스베스트 4연패를 이뤄냈으며 독일 챔피언십 2회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공을 세웠던 바슬러는 자신의 회고록에 따르면 자신은 카이저슬라우테른 외 여러 구단에 머물면서 비공식전과 청소년팀 시절을 포함해 최소 1388골을 기록했다고 주장했다.

 

 

 

이름: 클라우스 토프묄러
출생년도: 1951년 8월 12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4kg

활약 기간: 1972~1980
분데스리가 기록: 204경기 108골
통산 기록: 242경기 136골

 

레버쿠젠의 트리플 러너업을 이끈 감독으로 유명한 토프묄러는 선수 시절에는 분데스리가를 풍미했던 중앙 공격수였으며 강건한 피지컬을 활용한 포스트플레이로 동료들에게 볼을 떨궈주는 부분과 강력하면서도 예리한 헤더로 직접 득점에 모두 능했으며 뛰어난 뒷공간 침투와 위치 능력을 통해 골키퍼와 1대 1 상황에서 침착하게 마무리하는 부분에도 능했으나 1976년에 겪은 교통사고와 1979년에 무릎부상으로 인해 커리어를 망쳤다.

카이저슬라우테른 구단 통산 공식전 득점 5위, 구단 소속으로 분데스리가 통산 최다 득점자에 자리에 오른 토프묄러는 1970년대 후반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약진을 이끌며 1975-76 시즌에 DFB포칼 결승에 진출했으며 해당 시즌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며 커리어하이를 찍었으나 부상으로 상승세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이름: 올라프 마르샬
출생년도: 1966년 3월 19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1994~2002
분데스리가 기록: 144경기 49골 22도움
통산 기록: 199경기 73골 28도움

 

동독 출신의 스트라이커로 186cm의 큰 키를 활용한 제공권 경합 능력에 장점을 드러냈으며 특히 헤딩슛에 능했고 그의 주 무기인 강력하면서도 정밀도 높은 헤더는 대표팀 선배 호어스트 흐루베쉬, 후배 비어호프나 클로제는 물론이고 축구 역사상 최고의 헤더라 불리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산도르 코치슈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동독 시절에는 로코모티브 라이프치히에서 활약하다가 통일이 된 뒤 오스트리아의 아드미라 바커와 구 동독 지역의 디나모 드레스덴을 거쳐 1994-95 시즌에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해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이뤄냈으나 1995-96 시즌 DFB포칼 우승을 이뤄냈으나 분데스리가에서의 부진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마르샬은 카이저슬라우테른에 잔류해 2.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1997-98 시즌에는 팀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었으며 그 과정에서 21골을 넣으며 리가 득점 2위에 오르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승격팀의 분데스리가 우승이라는 기적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우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25인 스쿼드 완성판

 

토르난테 선정 FC 카이저슬라우테른 역대 올스타 25인 스쿼드

 


FC 카이저슬라우테른 역대 올스타 리저브 팀 11인

 

 

 

이름: 안드레아스 라인케
출생년도: 1969년 1월 10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96kg

활약 기간: 1994~2000 
분데스리가 기록: 136경기 169실점 / 41클린시트
통산 기록: 201경기 239실점 / 71클린시트

 

동독 출신의 골키퍼로 게랄트 에어만이 노쇠하자 그를 대체하려고 이적했고 에어만의 제자로 그의 노하우를 물려받아 안정적으로 골문을 지켰다.

1994년에 장크트 파울리에서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해 활약한 라인케는 1995-96 시즌 DFB포칼 우승을 이뤄냈으나 분데스리가에서의 부진으로 2부 리그로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나 플레잉코치로 보직을 변경한 스승 게랄트 에어만의 노하우를 물려받은 뒤 각성하며 붉은 악마 군단의 2.분데스리가 우승 및 분데스리가 승격을 이뤄냈고 1997-98 시즌애는 분데스리가에서 우승하며 승격팀의 돌풍을 넘어 기적을 이뤄냈다.

 

 

 

이름: 디트마어 슈바거
출생년도: 1940년 8월 15일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1964~1975
분데스리가 기록: 320경기 2골
통산 기록: 388경기 5골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영광의 세대들이 모두 팀을 떠난 이후에 팀을 지탱했던 수비수로 클럽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인 베르너 리브리히에 비견되었을 정도로 막강한 대인 수비 능력은 물론 리베로로서 광범위한 범위를 커버할 수 있었으며 수비라인 조율에도 강점을 보였다.

카이저슬라우테른 구단 통산 출전 4위에 랭크된 슈바거는 특히 에른스트 딜과의 수비 조합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팀의 암흑기를 지탱하며 강등만큼은 막아냈고 1966-67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5위에 오르며 당시 기준으로 클럽이 리가 역대 최고 순위에 오르는데 공을 세웠고 1971-72 시즌 DFB포칼에서는 팀의 결승 진출에 공헌했으나 결승전에서 샬케에게 대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름: 미하엘 두제크
출생년도: 1958년 11월 10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레프트백, 리베로
신체조건: 키 185cm

활약 기간: 1979~1988
분데스리가 기록: 211경기 10골
통산 기록: 243경기 10골

 

수비라인 전 포지션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다재다능한 수비 유틸리티 자원으로 감독이 정해주는 포지션에 불만 없이 출전하며 어느 쪽에서나 견고한 수비를 선보였다.

선수 커리어를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두제크는 데뷔 시즌인 1979-80 시즌부터 1981-82 시즌까지 세 시즌 연속으로 붉은 악마 군단이 분데스리가 4위 안에 들며 상위권으로 올라서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1980-81 시즌에는 팀의 DFB포칼 결승 진충을 이끌었으며 결승전에서는 스토퍼로 출전했으나 차범근과 횔첸바인 듀오를 앞세운 프랑크푸르트의 공격진에게 밀려나며 아쉽게 준우승을 거뒀다.

순조롭게 커리어를 이어나가던 두제크는 1988년, 만 29세의 젊은 나이에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한다.

 

 

 

이름: 해리 코흐
출생년도: 1969년 11월 15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1995~2003
분데스리가 기록: 187경기 17골 6도움
통산 기록:  272경기 30골 9도움

 

현재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로빈 코흐의 아버지로 센터백과 라이트백에서 활약했으며 레하겔 체제의 독일식 카테나치오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으며 투지 넘치는 맨 마킹을 보여줬으며 수비적인 부분 이외에도 페널티킥에도 능해 분데스리가에서 12회의 페널티킥을 시도해 11회 성공하며 믿음직한 페널티키커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1995-96 시즌 합류한 시즌에 DFB포칼을 이뤄냈으나 카이저슬라우테른은 강등되었지만 그는 팀에 잔류해 1996-97 시즌에 2부 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다시 분데스리가로 돌아왔으며 1997-98 시즌에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우며 승격팀의 분데스리가 우승이라는 드라마를 써내는데 기여했으며 2002-03 시즌에는 붉은 악마의 주장을 역임하며 팀의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카를 슈미트
출생년도: 1932년 3월 5일
포지션: 레프트백, 레프트윙,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9kg

활약 기간: 1955~1960
분데스리가 기록: 출범 이전
통산 기록: 125경기 6골

 

1950년대 하반기에 독일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다재다능한 선수로 주 포지션은 WM 시스템의 레프트 풀백이었지만 레프트 하프와 아웃사이드 레프트는 물론 라이트 풀백까지 뛸 수 있었던 다재다능한 자원이었으며 준족으로 이름을 날리며 레프트백으로 나올 땐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맨 마킹으로 명성을 날렸고 아웃사이드 레프트 시절에는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드리블 돌파로 공간창출에 능했다.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는 콜마이어가 주전을 차지하던 시기에는 아웃사이드 레프트나 레프트 하프로 나섰으나 그가 팀을 떠난 뒤에는 레프트백으로 안착해 붉은 악마 군단의 오베리가 주트베스트 2연패를 이뤄냈다.

 

 

 

이름: 토마스 둘리
출생년도: 1961년 5월 12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리베로, 센터백,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6kg

활약 기간: 1988~1993
분데스리가 기록: 107경기 13골 5도움
통산 기록: 138경기 17골 5도움

 

미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이자 수비형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선수로 우수한 피지컬과 운동능력에서 나오는 견고한 대인 방어력은 물론이고 뛰어난 제공권 경합 능력을 바탕으로 공중전에서 강점을 드러냈으며 우수한 빌드업 능력을 바탕으로 팀의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기도 했다.

미국 국적이지만 독일에서 태어난 둘리는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의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중원의 핵으로 활약하며 1989-90 시즌 DFB포칼 우승과 1990-91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었다.

 

 

 

이름: 위르겐 그로
출생년도: 1956년 7월 17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레프트백, 센터백, 리베로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0kg

활약 기간: 1976~1980, 1986~1989
분데스리가 기록: 196경기 3골
통산 기록: 232경기 3골

 

1970년대 하반기부터 80년대에 걸쳐 활약했던 선수로 주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와 레프트백이지만 수비라인 전 지역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특히 엄청난 지구력으로 유명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경기장 전역을 뛰어다니며 아군의 볼 소유권을 보호하고 상대로부터 볼을 탈환했으며 공격에도 적극 가담했지만 많은 득점을 터트리지는 못했다.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데뷔해 4년간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이후 함부르크로 이적해 유러피언 컵 우승을 경험한 뒤에 다시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돌아와 3년간 활약했다.

 

 

 

이름: 요제프 필룽
출생년도: 1949년 7월 24일
포지션: 라이트윙,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67cm / 몸무게 68kg

활약 기간: 1968~1981
분데스리가 기록: 305경기 61골
통산 기록: 369경기 72골

 

1970년대 독일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필룽은 키는 작았지만 민첩한 몸놀림과 재빠른 드리블 돌파로 측면에서 중앙으로 침투해 직접 득점을 노리는 플레이에 능했으며 축구 지능이 높아 주 포지션 라이트윙 이외에도 레프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처진 공격수로도 뛸 수 있었다.

카이저슬라우테른 구단 통산 출전 7위에 랭크된 필룽은 1970년대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약진을 이끌며 DFB포칼 2회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74-75 시즌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이름: 카를 방게르
출생년도: 1930년 2월 9일
포지션: 레프트윙
신체조건: 미상

활약 기간: 1950~1957
분데스리가 기록: 출범 이전
통산 기록: 184경기 100골

 

1950년대 카이저슬라우테른의 황금기에 활약했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드리블 돌파와 예리한 슈팅으로 우수한 득점력을 보여주며 붉은 악마 군단에서 100 득점을 기록한 일곱 명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남겼다.

카이저슬라우테른 구단 통산 득점 7위에 오른 방게르는 오베리가 주트베스트에서 6회 우승을 이뤄내며 서독 남서부 지역을 평정했으며 독일 챔피언십에서도 4회 결승에 진출해 2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을 1950년대 서독 최고의 클럽으로 만드는데 공헌했다.

 

 

 

이름: 빌리 벤젤
출생년도: 1930년 10월 12일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레프트윙
신체조건: 미상

활약 기간: 1948~1949, 1951~1962
분데스리가 기록: 출범 이전
통산 기록: 239경기 164골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유스 출신 인사이드 레프트와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지션에서 활약했으며 다부진 체격을 바탕으로 수비수들의 견제를 쉽게 뿌리쳤으며 우수한 테크닉과 뛰어난 득점력 겸비해 10살 연상의 파트너 프리츠 발터와 함께 구단의 황금기를 이뤄내는데 공을 세웠다.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데뷔했으나 프리츠 발터와 베르너 바슬러 조합에 밀려 출전기회를 잡지 못해 피르마센스로 이적했다가 베르너가 팀을 떠나자 다시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돌아와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1955년에 다시 돌아온 베르너와의 경쟁에서 이겨 그를 라이트백 포지션으로 보냈을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붉은 악마 군단의 오베리가 주트베스트 6회 우승과 1952-53 시즌 독일 챔피언십 우승 및 1960-61 시즌 DFB포칼 준우승을 이끌어냈으며 개인적으로도 구단 통산 최다 득점 4위에 올랐고 그보다 카이저슬라우테른 소속으로 많은 득점을 기록했던 선수는 발터 형제와 베르너 바슬러, 단 세 명뿐이다.

 

 

 

이름: 미로슬라프 클로제
출생년도: 1978년 6월 9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0kg

활약 기간: 1999~2004
분데스리가 기록: 120경기 44골 19도움
통산 기록: 147경기 52골 25도움

 

2000년대에 디 만샤프트를 대표했던 스트라이커로 우수한 점핑력을 활용한 뛰어난 헤더로 많은 골을 득점했으며 깔끔한 원터치 패스를 활용해 동료 공격수와의 유려한 연계 능력으로 분데스리가에서 도움왕만 두 번을 올려놨을 정도로 기회 창출에도 능했던 완성형 공격수였다.

현재까지는 카이저슬라우테른이 배출한 마지막 월드클래스 공격수로 2001-02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16골을 득점하는 활약을 보여줬으며 2002-03 시즌애는 DFB포칼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결승전에서도 3-1로 패했지만 한 골을 득점하는 등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빈약한 지원을 받으면서도 팀의 공격을 이끌며 팀의 강등을 막아냈으나 그가 떠난 뒤 2년 만에 카이저슬라우테른은 2.분데스리가로 강등당하고 만다.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기록은 주로 트렌스퍼마켓을 참조합니다. 잘못될 경우 다른 기록을 참조합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기록이 있으면 공식 홈페이지 우선

*스텟기준은 2023년 1월 14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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