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Top 20

국가의 영웅들/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Top 20

토르난테 2022. 11. 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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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아르헨티나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2년 11월 9일 기준입니다.


20위 마르틴 팔레르모

 


생년월일: 1973년 11월 7일
A매치 기록: 15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아르헨티나 축구 무대를 빛낸 장신 공격수로 특유의 커다란 체구 덕에 타이탄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상대 수비수를 등지고 플레이하는 부분에 능했으며 우수한 위치 선정과 강력한 헤더로 골망을 갈랐다.

후안 로만 리켈메와 함께 보카 주니어스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에 오른 팔레르모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아페르투라 4회 우승과 클라우수라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득점왕에는 1998 시즌 아페르투라와 2007년 클라우수라 두 번 올랐으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도 2회 우승했고 2000년에는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우승했는데 유럽 챔피언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하며 맨 오브 더 매치를 수상했다.

개인적으로도 1998년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두 번의 남미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지만 대표팀에서는 중용받지 못했지만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로 참가해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인 그리스전에 선발 출전했다.

 

19위 아벨 발보

 


생년월일: 1966년 6월 1일 
A매치 기록: 37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AS 로마

 

199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한 스트라이커로 타점 높은 헤더와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은 물론 유려한 발밑 기술을 활용한 연계 플레이에도 능했으며 스피드도 준수했다.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리그 우승을 아뤄내며 주목받았고 우디네세, 로마, 파르마 등지에서 활약하며 1990-91 시즌 우디네세에서 세리에 B 득점왕에 올랐으며 그 다음 시즌에는 우디네세의 세리에 A 승격을 이끌었으며 로마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2000-0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경험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서브 멤버로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준우승을 경험했으며 주전으로 1994 미국 월드컵과 1995 코파 아메리카에서 활약했다.

 

18위 엑토르 스코타

 

 

생년월일: 1950년 9월 27일
A매치 기록: 6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67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산 로렌조

 

1970년대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에서 활약하던 공격수로 키는 작았지만 우수한 공간 지각력과 높은 수준의 반응속도를 통해 빈 공간으로 침투해 마무리 짓는 골 사냥꾼이었다.

산 로렌조에서 두 번의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5 시즌에는 우승을 차지하진 못했지만 전기리그에서 32골로 득점왕에 올랐고 후기리그에서도 28골을 득점하며 1년 동안 60골을 득점하는 괴력을 발휘하며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스페인의 세비야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화려한 득점력에도 불구하고 블라디슬라오 캡 감독이나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감독의 전술에 맞지 않아 대표팀에는 거의 뽑히지 못했다.

 

17위 로돌포 피셔

 


생년월일: 1944년 4월 2일
A매치 기록: 35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산 로렌조

 

독일계 공격수로 당시로서는 큰 키를 가지고 있어 우수한 위치 선정과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헤더에 장기를 드러냈으며 헤더뿐만 아니라 발로 마무리하는 원샷 원킬의 피니시가 돋보여 팬들에게 늑대라 불렸다.

산 로렌조의 전성기를 이끈 공격수로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1968 시즌 전기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1969 시즌 후기리그 득점왕에 올랐으며 1972 시즌에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제패했다.

다만 대표팀에서는 빛을 보지 못했는데 1970 멕시코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조국의 예선 탈락을 막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16위 엑토르 야살데

 

 

생년월일: 1946년 5월 29일
A매치 기록: 10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6cm
주 소속팀: 스포르팅 리스본

 

1970년대 유럽 무대에서 활약한 스코어러 가운데 한 명으로 기술적으로는 평범했지만 신들린 반응속도와 우수한 위치 선정을 겸비했으며 정확한 슈팅으로 엄청난 득점력을 뽐냈다.

아르헨티나의 인데펜디엔테에서 활약하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을 이뤄내며 1970년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으며 스포르팅 리스본으로 건너간 뒤에는 리그 104경기 104골이라는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주며 1973-74 시즌 프리메이라 리가와 타사 데 포르투갈 더블 우승을 이뤄냈는데 야살데는 리그 46골을 득점하며 리그 득점왕은 물론 게르트 뮐러, 요한 크루이프, 루이지 리바 등 당대 최고의 공격수들을 제치고 유러피언 골든슈를 차지했으며 마르세유에서는 1975-76 시즌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화려한 득점력에도 불구하고 블라디슬라오 캡 감독과의 전술에 맞지 않아 1974 서독 월드컵 멤버로 소집은 되었지만 주전으로 활약하진 못했다.

 

15위 레오폴도 루케

 


생년월일: 1949년 5월 3일
A매치 기록: 45경기 22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70년대 하반기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스트라이커로 빠른 스피드와 유려한 발밑 기술을 겸비했으며 슈팅 스킬도 뛰어나 발리 슈팅, 로빙 슈팅 등 높은 수준의 슛 기술을 구사했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전기리그 3회 우승과 후기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1975 코파 아메리카 득점왕에 올랐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최전방 공격수를 맡아 우승에 기여하며 복수의 매체로부터 대회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되었다.

 

14위 카를로스 비앙키

 


생년월일: 1949년 4월 26일
A매치 기록: 14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벨레스 사르스필드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아르헨티나와 프랑스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스트라이커로 우수한 볼 컨트롤을 통한 효율적인 원터치 플레이에 능했으며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위치 선정으로 골 넣기 쉬운 위치를 선점해 정밀도 높은 슈팅으로 마무리하는 일명 포처 유형의 공격수였으며 골잡이 또는 총독이라고 불렸다.

벨레스 사르스필드 구단 역대 개인 통산 최다골 기록을 세운 비앙키는 벨레스 사르스필드에 머물면서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을 3회 수상했으며 프랑스 무대의 스타드 드 랭스와 파리 생제르맹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리그앙 득점왕을 5회 수상했으며 10시즌 연속으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다만 클럽에서의 대단한 활약과는 달리 아르헨티나 대표팀과는 큰 인연이 없다.

 

13위 알베르토 마르코베키오

 


생년월일: 1893년 3월 6일
A매치 기록: 11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초기 아르헨티나 아마추어 리그 시절 최고의 공격수로 다부진 체격과 빠른 반응 속도를 겸비해 상대 수비와의 경합에서 우위를 차지했으며 높은 수준의 슈팅 정확도와 골 결정력으로 단번에 승부를 마무리지었다.

오아코와 함께 아마추어 리그 시절의 라싱 클루브의 전성기를 이끌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8회 우승을 포함해 총 19회의 크고 작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냈으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에 2회 올랐으며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1916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준우승을 이끌었다.

 

12위 기예르모 스타빌레

 


생년월일: 1905년 1월 17일
A매치 기록: 4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CA 우라칸


1920년대와 3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 최고의 공격수로 다른 부분에서는 평범했지만 스피드가 엄청났는데 이 질풍 같은 스피드를 활용해 공을 몰고 수비수 등 뒤로 가서 골키퍼와 1:1 상황을 만들어내는 게 장기였으며 마치 여과기가 어항 물 환수를 하듯이 빠르다고 여과기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우라칸에서는 주전 공격수였으나 대표팀에서는 서브 선수였는데 주전 공격수이자 주장인 마누엘 페레이라는 대학 시험 때문에 아르헨티나로 돌아가버렸고 체로는 발작을 일으켜서 스타빌레를 기용했으나 멕시코전 해트트릭을 포함해 4경기 8골을 이끌며 초대 월드컵 득점왕에 오르는 맹활약을 펼쳤으며 MVP 투표에서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제노아, 나폴리 등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했으나 볼로냐전의 해트트릭을 제외하면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후보 선수로 전락했는데 긴 백업 생활 동안 다른 팀과 선수들을 분석하는데 재미를 붙였고 유럽에 건너간 이후 여러 팀에서 감독을 맡았으며 선수 생활 도중 감독을 겸임하기도 하며 감독으로 성공하며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21년간 머물렀다.

 

11위 에르미니오 마산토니오

 

 

생년월일: 1910년 8월 5일
A매치 기록: 19경기 21골
신체조건: 키 180cm
주 소속팀: CA 우라칸

 

193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로 우수한 피지컬과 강력한 완력은 물론 영리한 오프 더 볼 능력과 우수한 테크닉은 물론 뛰어난 득점력은 물론 동료들을 이용한 연계플레이에도 능했다.

우라칸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349경기 254골을 득점하며 활약하며 인데펜디엔테의 아르세니오 에리코와 라이벌리를 구성했으며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1935 코파 아메리카와 1942 코파 아메리카의 준우승을 이끌며 두 대회에서 모두 득점왕에 올랐다.

 

 

10위 마누엘 페레이라

 


생년월일: 1905년 10월 22일
A매치 기록: 21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에스투디안테스

1920년대와 30년대에 걸쳐 활약한 센터 포워드로 군더더기 없는 플레이와 높은 수준의 골 결정력, 그리고 동료들과의 우수한 연계 플레이를 겸비해 조종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에스투디안테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구아이타, 스코펠리와 함께 공격편대를 이뤄내며 활약했으며 대표팀에서도 인사이드 포워드와 센터 포워드를 오가며 활약했는데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냈으며 1927년과 192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MVP에 올랐으며 1930년에 열린 초대 월드컵에서는 결승 진출을 이끌었지만 준우승에 머물렀다.

 

9위 도밍고 타라스코니

 


생년월일: 1903년 12월 20일
A매치 기록: 24경기 18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1920년대에 전성기를 누리며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활약했던 스트라이커로 강력하면서도 예술적인 슈팅으로 주목받았으며 골 감각이 좋아 상대 수비수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9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개인적으로도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을 5회 수상했는데 특히 1922년부터 1924년까지 3년 연속으로 득점왕에 올랐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축 멤버로 활약해 1925년과 1929년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을 거뒀으며 1924년과 1926년 대회에서는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도 은메달을 타냈고 타라스코니 개인은 득점왕에 올랐으나 초대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8위 디에고 밀리토

 

 

생년월일: 1979년 6월 12일
A매치 기록: 25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2009-10 시즌 단 한 시즌은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었으며 수려한 외모로 왕자라 불렸으며 화려한 발기술은 물론 빠른 발과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지능적인 움직임은 물론 날카로운 슈팅과 헤더로 상대의 골문을 강타했다.

라싱 클루브에서 두 번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사라고사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제노아에서는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한 밀리토는 인테르에서 전성기를 맞아 무리뉴 체제의 공격 중심으로 활약하며 세리에 A, 코파 이탈리아, UEFA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석권했으며 밀리토 본인도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와 UEFA 클럽 올해의 공격수와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상을 석권하며 그가 차지하며 그 해 최고의 공격수임을 입증했다.

다만 대표팀에서는 메시, 크레스포, 아구에로, 테베스, 이과인 등 수준 높은 공격수들이 많아 정기적으로 출전할 수 없었다.

 

 

7위 곤살로 이과인

 


생년월일: 1987년 12월 10일
A매치 기록: 75경기 31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SSC 나폴리

 

2010년대 스페인과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한 스트라이커로 스피드는 느렸지만 영리한 오프 더 볼 능력과 우수한 위치 선정 능력으로 상대의 배후로 침투했으며 우수한 바디밸런스로 상대 수비와의 경합에서도 쉽사리 밀리지 않았으며 정확한 양발 슈팅으로 안정적으로 득점포를 뿜어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라리가 3회 우승을 이끌었으며 벤제마와 치열한 주전 경쟁을 펼쳤으나 결국 호날두와의 궁합 차이로 밀려나 나폴리로 이적했는데 나폴리에서는 2013-14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2015-16 시즌에는 세리에 A에서만 36골을 득점하며 리그 역대 단일 시즌 최다골 기록을 세우며 ESM 올해의 팀에 들었고 유벤투스로 합류한 뒤에도 세리에 A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세리에 A에 머무는 동안 세리에 A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데뷔 무대인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전 해트트릭을 포함해 4골을 득점하며 8강 진출에 공을 세웠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날리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며 조국의 결승행을 이끌었음에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6위 알베르토 오하코

 

 

생년월일: 1889년 1월 12일
A매치 기록: 23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초기 아르헨티나 아마추어 리그 시절 최고의 공격수로 우수한 테크닉과 명민한 전술안, 그리고 빠른 스피드를 겸비해 상대의 뒷공간을 공략해 득점하는 스트라이커였으며 인사이드 레프트도 소화할 수 있었다.

라싱 클루브의 원 클럽맨으로 구단의 창립자인 후안 오아코의 아들인 알베르토 오하코는 라싱의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8회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총 18회 우승하며 1910년대를 라싱 클루브의 시대로 만들었고 오아코 개인도 1912 시즌부터 1915 시즌까지 네 시즌 연속으로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을 연속으로 수상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오아코는 초대 코파 아메리카인 1916년 코파 아메리카와 1917년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했으나 두 번 다 우루과이를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머물렀다.

 

5위 레네 폰토니

 


생년월일: 1920년 5월 18일
A매치 기록: 19경기 19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산 로렌조

 

194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체구가 작아 상대 수비와 직접 경합하기보다는 상대 수비를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공간 지각력으로 따돌리며 배후로 침투해 득점하는 포처 유형에 가까웠으며 연계 능력이 좋아 팀원과의 유기적인 팀플레이에 능한 선수였는데 최전성기인 1940년대 중반에는 잠시나마 40년대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 호세 마누엘 모레노와 비견되었다.

뉴웰스 올드 보이스와 산 로렌소에서 활약한 폰토니는 1946년에는 리날도 마르티노와 함께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산 로렌소의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이끌었으며 아르헨티나 대표팀 소속으로도 1945, 1946, 1947년 코파 아메리카를 내리 우승하며 아르헨티나의 위대한 코파 3연패에 크게 일조했다.

 

 

4위 세르히오 아구에로

 

 

생년월일: 1988년 6월 2일
A매치 기록: 101경기 41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2010년대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공격수로 공격수로 감각적인 움직임과 빠른 순간 스피드와 탄탄한 신체 밸런스를 앞세워 상대 수비 라인을 붕괴시켜 득점을 노렸던 호마리우와 비슷한 유형의 공격수였다.

다비드 실바, 뱅상 콤파니와 함께 만수르 체제 블루문 군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에 오른 아구에로는 구단의 첫 번째 프리미어 리그 우승에 특히 크게 공헌했으며 QPR과의 최종전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결승골을 득점해 팀의 역전 우승에 공헌했으며 이후에도 도메스틱 트레블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5회 우승과 리그 컵 6회 우승을 이끌었으며 이 공로로 콤파니, 다비드 실바에 이어 동상이 건립되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연령별 대표 시절에는 2007 U-20 월드컵 우승과 득점왕, MVP를 모두 석권했고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아구에로였으나 성인 대표팀에서는 세 번의 월드컵과 다섯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2014 브라질 월드컵을 포함해 총 세 번이나 준우승에 그쳤지만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백업 멤버로 우승을 경험했다. 다만 예선전에서는 출중한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메이저 대회 본선에서는 팀 성적과는 별개로 부진한 활약을 펼쳤다.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5회 선정된 아구에로는 2015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13위에 올랐다.

 

3위 에르난 크레스포

 


생년월일: 1975년 7월 5일
A매치 기록: 64경기 35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파르마


1990년대 하반기와 2000년대 초중반에 이름을 날렸던 스트라이커로 스트라이커의 기본인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라인 브레이킹 능력과 뛰어난 양발 슈팅력, 그리고 강력한 몸싸움 능력과 점프력을 바탕으로 하는 훌륭한 헤딩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거기에 추가로 강력한 몸싸움과 폭넓은 활동량을 활용해 파트너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역할에도 능했으며 수비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며 자신에게로 수비수를 유인한 뒤 뛰어난 패스 센스로 파트너에게 찬스 메이킹을 했으며 동료를 이용한 연계 플레이에도 능했던 시대를 앞서나간 완성형 공격수였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데뷔해 전기리그 2회 우승과 1996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끌며 뉴 라 마키나의 핵심으로 이름을 날리며 당대 최고 수준의 무대인 세리에 A의 파르마로 이적해 1998-99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 더블 우승을 이끌었는데 전자의 대회에서는 득점왕에 올랐고 후자의 대회에서는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에 올랐으며 라치오로 이적한 뒤에는 2000-01 시즌에 토티, 셰브첸코, 바티스투타 등을 제치고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라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이후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부진했지만 인테르 밀란에서는 세리에 A 3연패에 기여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득점왕에 오르며 은메달 획득에 공을 세웠지만 성인 대표팀에서는 바티스투타라는 큰 벽 때문에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으나 바티스투타가 은퇴하고 2006 독일 월드컵과 200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전자의 대회에서는 실버슈를 수상하며 올스타 팀에 들었고 후자의 대회에서는 조국의 결승행을 이끌었다.

 

2위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생년월일: 1969년 2월 1일
A매치 기록: 피오렌티나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이자 1990년대를 대표하는 골게터로 화려한 플레이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천둥 같은 슈팅력과 강력한 헤딩을 앞세워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줘 바티스투타라는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득점을 해낸다 하여 바티골이라 불렀다.

피오렌티나에서 전성기를 보냈는데 피오렌티나에 입단한 뒤 두 시즌 후에 자신은 16골이나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이 강등되었는데도 팀에 남아서 팀을 세리에 A로 다시 올렸으며 1995-96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하지만 피오렌티나는 재정난 때문에 그를 AS 로마에 팔았고 바티스투타는 AS 로마에서 2000-0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낸다.

대표팀에서도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주며 맹활약했는데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두 번의 우승과 두 번의 득점왕을 이뤄냈으며 세 번의 월드컵에 참가해 월드컵 통산 10골을 득점했는데 이는 아르헨티나 국적 선수 중 월드컵 최다 득점 기록이다.

바티스투타는 클럽과 대표팀을 가리지 않고 통산 여섯번의 득점왕에 올랐으며 1998년에는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1998-99 시즌 ESM 올해의 팀에 들었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6회 선정되어 1999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성적인 4위에 올랐다.

 

 

1위 루이스 아르티메

 


생년월일: 1938년 12월 2일
A매치 기록: 25경기 24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60년대 남미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맹수라 불렸을 만큼 동물적인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강력한 몸싸움과 빠른 스피드, 용수철 같은 점프력을 겸비했으며 재빠른 반응속도를 활용한 라인 브레이킹과 반 박자 빠른 슈팅에 능한 득점기계였다.

조국인 아르헨티나 무대는 물론 우루과이와 브라질에서도 활약했으며 리버 플레이트에서는 득점왕만 세 번이나 했으며 인데펜디엔테에서는 1967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나시오날(후기리그)에서 우승했으며 브라질의 파우메리아스에서는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우루과이의 클루브 나시오날에서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연패는 물론 1971 시즌에는 리그에 이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을 모두 우승하며 트레블을 이뤄냈고 1971년에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득점왕을 이뤄냈다.

클럽 무대에서 더 많은 활약을 했지만 국가대표팀에서도 1966 잉글랜드 월드컵 8강과 1967년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해당 대회에서는 5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개인 통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 4회,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 3회를 포함해 클럽과 대표팀을 포함해 총 열 번이나 득점왕에 올랐다.

 


선정 인원 외 추가할 수 있는 명단

 

 

알베르토 소사야

 


생년월일: 1908년 4월 13일
A매치 기록: 9경기 8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에스투디안테스

 

베르나베 페레이라

 


생년월일: 1909년 2월 12일
A매치 기록: 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cm / 몸무게 2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후안 카를로스 카르데나스

 


생년월일: 1945년 7월 25일
A매치 기록: 5경기 1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카를로스 모레테

 


생년월일: 1952년 1월 14일
A매치 기록: 2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페드로 파스쿨리

 


생년월일: 1960년 5월 17일
A매치 기록: 16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아르헨티노 주니오스

 

 

라몬 메디나 베요

 


생년월일: 1968년 4월 29일
A매치 기록: 17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훌리오 크루스

 


생년월일: 1974년 10월 10일
A매치 기록: 22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리산드로 로페스

 


생년월일: 1983년 3월 2일
A매치 기록: 7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포르투

 

 

마우로 이카르디

 


생년월일: 1993년 2월 19일
A매치 기록: 8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라우타로 마르티네스

 


생년월일: 1997년 8월 22일
A매치 기록: 40경기 21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현 소속팀: 인테르 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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