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대 올스타 짜보기/아시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팀

토르난테 2022. 8. 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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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별칭: 태극전사

월드컵: 출전 11회, 4강 1회

아시안컵: 출전 14회, 우승 2회

올림픽: 출전 8회, 동메달 1회

아시안 게임: 출전 12회, 금메달 5회

북중미 골드컵: 출전 2회, 4위 1회

최다 출전 선수: 차범근, 홍명보, 136경기

최다 득점 선수: 차범근, 58골

 


베스트 11

 

골키퍼

 

이름: 이운재
생년월일: 1973년 4월 26일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0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94~2010
A매치 기록: 133경기 115실점

 

라이벌 김병지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골키퍼로 손꼽히며 번뜩이는 부분에서는 김병지에 밀렸다는 평가를 받지만 우수한 판단력과 흔들리지 않는 강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하는 차원이 다른 안정감을 자랑했으며 수비 조율 부분에서는 아시아에서도 적수가 없었으며 승부차기 방어에도 매우 능했는데 실제로 2004년 K리그 챔피언 결승전에서 승부차기에서 포항 측 마지막 키커 김병지의 페널티 킥을 막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후 수원 삼성에서도 창단 멤버로 합류해 K리그 4회 우승을 이끈 이운재는 이미 경희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94년부터 대표팀에 소집되었으며 1994 미국 월드컵 조별리그 독일전에 교체 출전했으며 히딩크부터 핌 베어벡까지 모두 이운재를 중용했으며 이운재는 감독들의 신임에 보답해 2002 한일 월드컵 4위를 기록했으며 북중미 골드컵에서도 준결승에 진출했으며 2007년 아시안컵에서도 3위를 기록했지만 이운재 개인의 활약은 인정받아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특히 한일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백미인데 부폰, 카시야스와 같은 거물급 골키퍼와 선방 대결을 벌여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2010년 베스트 일레븐지에서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리베로

 

이름: 홍명보
생년월일: 1969년 2월 12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4kg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90~2002
A매치 기록: 136경기 10득점

 

자타공인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대인 수비 능력은 부각되지 않았지만 뛰어난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두 스토퍼들을 커버하며 볼을 차단하고, 중앙에서 수비 라인을 리딩하는 리베로로 활약했으며 뛰어난 판단력과 넓은 시야, 그리고 뛰어난 패싱력을 바탕으로 한 훌륭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앞세워 아시아의 베켄바우어라고 불렸다.

포항 스틸러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92 시즌 K리그 MVP와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된 홍명보는 대표팀에서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2002 한일 월드컵까지 무려 네 번의 대회에 모든 경기에 풀타임으로 출전했으며 아시안컵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스페인을 상대로 프리킥 골을 득점하며 따라붙어 무승부에 공을 세웠고 독일전에서도 중거리 슈팅으로 만회골을 넣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팀의 리베로로 대한민국을 4강에 올리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이고 유럽과 남미 국적의 선수가 아닌 선수로는 최초로 월드컵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아시아 역대 최고의 수비수 홍명보는 은퇴 이후 2004년에는 펠레가 선정한 FIFA 100에 선정되었으며 2010년에는 베스트일레븐지에서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2013년에는 K리그 30주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2014년에는 아시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센터백

 

이름: 최진철
생년월일: 1971년 3월 26일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78kg
포지션: 센터백,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97~2006
A매치 기록: 65경기 4득점

 

한국의 베켄바우어 홍명보를 보좌했던 한국의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벡과 같은 선수로 큰 키와 탄탄한 피지컬을 기반으로 한 압도적인 제공권 경합 능력과 강력한 몸싸움을 바탕으로 플레이하던 수비수로 슬라이딩 태클에도 강점을 보여줬다.

25세라는 상당히 늦은 나이에 프로 무대에 데뷔한 최진철은 전북의 전설로 팀을 AFC 챔피언스리그 챔피언으로 올리고 대회 MVP에 올라서는 활약을 보여줬으며 대표팀에서는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파울레타, 비에리, 모리엔테스를 그럭저럭 잘 막아내며 4강 신화에 공헌했으며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수비라인의 리더로 출전해 토고의 아데바요르를 완벽하게 막아내며 원정 첫 승을 거두는데 일조했다.

최진철을 대표팀 주전으로 적극 기용한 감독은 거스 히딩크였는데 그는 최진철을 선발하면서 "왜 저런 선수를 여태 뽑지 않았는가?" 라는 인터뷰를 남겼고 그는 다른 한국인 수비수들과는 다르게 백인종이나 흑인종 공격수와의 경합에서 밀리지 않으며 한국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센터백

 

이름: 정용환
생년월일: 1960년 2월 10일
신체조건: 키 178cm
포지션: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83~1993
A매치 기록: 86경기 3득점

 

홍명보 이전 대한민국 최고의 수비수로 꼽히던 선수로 꾸준하고 성실한 몸 관리로 만든 신체능력이 특히 우수했는데 키가 178cm에 불과했으나 꾸준히 연구하며 성실하게 연습한 결과 키가 197cm에 달하는 외국인 선수와의 제공권 경합에서 밀리지 않는 경악스러운 점프력을 지녔으며 대한민구에서는 대인 방어능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프로 생활 11년 동안 단 한차례의 레드카드와 자책골도 기록하지 않았던 안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대우에서 활약하며 K리그 우승 3회와 리그 베스트 일레븐 선정 3회, 그리고 1991년 K리그 MVP를 수상한 정용환은 프로팀 입단 이전인 고려대학교 시절부터 대표팀에 뽑혔으며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1986 멕시코 월드컵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활약했으며 1987 아프로아시안 네이션스컵 우승을 경험했고 1988 아시안컵에서는 준우승을 거두기도 했으며 1988 서울 올림픽에도 참가했고 1994 미국 월드컵 출전까지 노렸으나 부상으로 아쉽게 낙마했다.

1994년 대우와의 계약이 종료되고 1995년 겨울 이적시장에서 풀럼 입단을 노렸으나 워크퍼밋 문제로 불발되고 선수로서 모든 것을 이뤘다는 판단에 은퇴했다고 전해진다.

 

라이트백

 

이름: 박경훈
생년월일: 1961년 1월 19일
신체조건: 키 172cm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라이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81~1990
A매치 기록: 93경기 1득점

 

대한민국 축구에서 최초로 오버래핑을 시도했던 선구자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오버래핑이 발군이었고 센터백도 볼 수 있었을 정도로 기본적인 수비력도 상당히 뛰어났다.

포항제철에서 1988년 리그 MVP를 수상했던 박경훈은 1980년부터 대표팀에 발탁되어 1986 멕시코 월드컵과 1988 아시안컵,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모두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레프트백

 

이름: 이영표
생년월일: 1977년 4월 23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9kg
포지션: 레프트백, 라이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99~2011
A매치 기록: 127경기 5득점

 

박지성과 함께 21세기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헛다리를 활용해 상대 수비수를 제치는데 능했으며 철두철미한 자기관리 능력으로 다져진 철인같은 스테미너와 뛰어난 판단력을 겸비했다.

PSV 에인트호번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했으며 토트넘 핫스퍼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인 이영표는 대표팀에서도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대한민국 대표팀의 4강 신화에 크게 기여했으며 이후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원정 첫 승에 공헌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원정 첫 16강에 공헌하며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K리그는 물론 유럽 무대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친 이영표는 2010년에 베스트 일레븐지가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되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허정무
생년월일: 1955년 1월 13일
신체조건: 키 174cm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포함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

대표팀 활약 기간: 1974~1986
A매치 기록: 104경기 30득점

 


1970년대와 80년대 대한민국 최고의 미드필더로 뛰어난 지구력과 터프한 수비, 그리고 영리한 축구지능을 겸비한 선수로 본업인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앙 미드필더는 물론 최전방 공격수와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그리고 측면 수비수까지 완벽하게 봤으며 뛰어난 득점력은 덤이다.

이미 연세대학교 시절부터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던 허정무는 PSV 에인트호벤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크루이프, 빌렘 반 하네엄같은 거물급 선수들과의 경합에서도 밀리지 않았으며 대표팀에서도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주며 1978 아시안 게임 금메달과 1980 아시안컵 준우승을 경험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 주전으로 참여했으며 아시안 게임에서도 재차 금메달을 획득하는 활약을 보여줬다. 특히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레프트 윙백으로 참가하며 마라도나를 괴롭혔다.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허정무는 여론조사 단체인 한국갤럽이 2002년에 조사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과 베스트일레븐지가 2010년에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유상철
생년월일: 1971년 10월 18일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8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포함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

대표팀 활약 기간: 1994~2005
A매치 기록: 124경기 18득점

 

1990년대와 2000년대 대한민국 최고의 미드필더로 상술한 허정무와 마찬가지로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서 제 몫을 했으며 뛰어난 체력, 위치 선정, 많은 활동량으로 오프 더 볼 플레이가 굉장히 뛰어났고 다른 부분에서도 볼 터치가 다소 둔탁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결점이 없고 다재다능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울산 현대의 유이한 K리그 우승인 1996년과 2005년 우승을 이루는데 중심에 있었던 유상철은 1994 미국 월드컵 명단에는 탈락했지만 이후 아시안게임부터는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인 벨기에전에서 동점골을 넣었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폴란드전 득점을 포함해 훌륭한 활약을 펼치며 월드컵 4강 신화에 공헌했으며 개인적으로도 올스타 팀에 들었을 정도로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K리그에서 1994년에는 수비수로, 1998년에는 미드필더로, 2002년에는 공격수로 베스트 일레븐에 모두 들어본 유이한 선수였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박지성
생년월일: 1981년 3월 30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9kg
포지션: 레프트윙, 라이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2000~2011
A매치 기록: 100경기 13득점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두 개의 심장이라 불렸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량과 뛰어난 수비 가담 능력 및 영리한 움직임, 그리고 큰 경기에서 클러치 능력을 보여주며 활약했다.

PSV의 UEFA 챔피언스리그 4강행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황금기를 이끈 박지성은 대표팀에서는 언터처블의 존재였는데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어 활약했으며 한일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포르투갈 전에 득점하는 등 대한민국의 4강 신화에 공헌했으며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토고를 상대로 원정 첫승을 이뤄내고 프랑스를 상대로는 동점골을 넣었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그리스를 상대로 득점하는 등 맹활약하며 대한민국의 첫 원정 16강을 이뤄냈다.

대한민국 선수들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에 큰 공을 세운 선구자였던 박지성은 대표팀 활약에서만큼은 차범근과 손흥민 그 이상의 성과를 냈으며 이런 활약상을 인정받아 2010년에 베스트 일레븐지에서 투표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스트라이커

 

이름: 차범근
생년월일: 1953년 5월 22일생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8kg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라이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72~1986
A매치 기록: 136경기 58득점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였으며 분데스리가에서도 통했던 우수한 피지컬과 파괴적인 슈팅으로 상대의 골문을 강타해 갈색 폭격기라 불렸으며 측면에서 찬스를 만들어내는 이타적인 플레이에도 능했다.

서독 분데스리가에서도 정상급 선수로 활약했던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전에서 각각 한 번씩 UEFA컵 우승 과정에서 핵심으로 활약했던 차범근은 이미 서독 분데스리가에 가기 전부터 대표팀에서 130경기를 뛰고 50골을 넘게 득점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나왔다.

실제로 차범근은 1979-80 시즌 전반기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키커 랑리스테 외국인 항목에서 케빈 키건을 제치고 월드클래스 1위를 받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으며 당연하게도 IFFHS 선정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축구선수, 2002년 한국갤럽 선정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과 2010년 베스트 일레븐지 선정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을 모두 석권했으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A매치 통산 최다 출전과 최다 득점마저 기록한 명실상부 대한민국과 아시아 축구의 얼굴이다.

 

 

스트라이커

 

이름: 손흥민
생년월일: 1992년 7월 8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포지션: 포워드, 레프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2010~
A매치 기록: 102경기 33득점

 

현세대 아시아 최고의 축구선수로 강력한 피지컬과 빠른 스피드, 그리고 파워풀하면서도 예리함을 겸비한 양발 슈팅으로 상대의 골문을 강타하는 폭격기로 센세이셔널한 활약상을 보여준다고 손세이셔널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페널티킥을 차지 않고도 득점왕에 올랐던 손흥민은 대표팀에서도 2014 브라질 월드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전자의 대회에서는 팀이 전체적으로 부진하는 와중에도 맹활약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도 강호 멕시코와 독일을 상대로 득점포를 가동했으며 2019 아시안컵에서 우승했으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부상만 없다면 핵심 선수로 활약할 선수다.

2019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22위를 차지했고 프리미어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과 득점왕을 경험한 손흥민은 차범근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볼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하고 있으며 그의 활약은 현재진행형이다.

 

감독

 

거스 히딩크

출생년도: 1946년 11월 8일

부임기간: 2001~2002

 

네덜란드 축구계의 실리 축구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선수들의 체력을 강화시켜 상대를 전방에서부터 압박하며 후방에서 빠른 역습으로 상대를 물리치는 전술을 선호해 대중적으로 강팀으로 분류되지 않는 팀들을 이끌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는 감독으로 유명했다.

2001년에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아 짧은 기간에도 철저한 체력 훈련으로 최적의 몸상태를 만들고 과도한 군기 잡이 문화를 없애며 팀워크를 다졌으며 선수단에게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사용하며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을 이끌고 4강에 오르는 월드컵 역사상 전무후무한 이변을 현실로 만들었고 부진하던 본인의 커리어에 터닝포인트를 만들었다.

히딩크는 한일 월드컵에서의 업적으로 인해 2002년에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감독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 명예 국민증을 수여받았고 KF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토르난테 선정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베스트 일레븐

 


25인 스쿼드 / 서브 14인

 

 

이름: 김병지
생년월일: 1970년 5월 12일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7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95~2008
A매치 기록: 61경기 72실점

 

라이벌 이운재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골키퍼로 손꼽히며 뛰어난 선방 능력은 물론이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직접 공을 몰고 나와 빌드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스타일은 때때로 실점의 빌미가 되기도 해 호불호가 갈렸지만 김병지는 훌륭한 자기 관리 능력으로 대부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K리그 통산 최다 출전, K리그 통산 최다 클린시트, 153경기 연속 무교체 출전과 같은 화려한 기록을 보유한 김병지는 대한민국이 오랫동안 최인영과 김풍주의 대체자를 찾지 못했으나 혜성처럼 등장하며 아시아 예선전이자 한일전이었던 도쿄 대첩에서 활약했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주전 자리를 차지했는데 대다수의 대표팀 선수들이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였으나 김병지만큼은 훌륭한 활약을 보여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로부터 "우리는 더 많은 득점을 할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골키퍼가 너무 뛰어나서 더 많은 골을 넣지 못했다."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히딩크 감독에 의해 이운재에게 대표팀 경쟁에서 밀리며 한일 월드컵을 벤치에서 지켜봤고 이후에는 대표팀에서는 백업으로 밀려났지만 1998년의 그 활약은 팬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았다.

 

 

이름: 홍덕영
생년월일: 1926년 5월 5일
신체조건: 키 170cm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47~1954
A매치 기록: 17경기 56실점

 

광복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주전 골키퍼로 1948년 대한민국의 첫 국제 대회인 런던 하계 올림픽 축구에서 나름 월드컵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낸 멕시코를 상대로 5-3으로 이기는 데 일조하며 팀을 8강으로 이끌었고 8강에서는 당대 최고의 팀 중 하나이자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스웨덴을 만나 48개의 슈팅을 기록하는 일방적인 경기 속에서 12-0으로 패했지만 홍덕영은 수많은 선방으로 유일하게 자존심을 지켰다.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열악한 환경으로 비행기를 제때 탑승하지 못해 미군 군용기를 타고 가서 경기 시작 20 시간 전에 도착했음에도 세계 최강 헝가리를 상대로 수많은 슈팅을 선방해 9-0으로 패했음에도 유럽의 축구 팬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당시 언론은 당대 세계 최고의 축구 강국 헝가리와 전쟁이 끝난 지 채 1년이 안된 조악한 상황에서의 대한민국이라 헝가리의 20-0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9 실점으로 막아낸 홍덕영의 대단한 활약에 감복해 스위스에 방문한 팬들은 그에게 사인을 받아 가거나 한국 대표팀 숙소에 선물을 두고 가는 등 그를 훌륭한 스포츠 스타로 대접했다.

 

 

이름: 김태영
생년월일: 1970년 11월 8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3kg
포지션: 센터백, 레프트백, 라이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92~2004
A매치 기록: 105경기 3득점

 

한일월드컵에서 투혼을 보여줬던 수비수로 아파치라고 불렸던 거친 수비수로 한일 월드컵 당시 코뼈 부상으로 착용한 타이거 마스크로도 유명했다. 거친 플레이를 펼쳤음에도 현역 내내 퇴장 기록이 없을 정도로 지능적인 면모를 보였으며 축구화에 일부러 쇠로 된 징을 박아, 경기장 입장할 때부터 상대 선수에게 쇳소리를 들려줘 겁을 주는 등 심리전에도 능했다. 양발을 모두 잘 썼고 발이 빨라 측면 수비수로도 뛰었다.

고향팀 전남 드래곤즈의 프렌차이즈 스타였던 김태영은 대표팀에서도 출중한 활약을 보여주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는 레프트백과 센터백을 번갈아가며 맡았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왼쪽 스토퍼로 4강 신화를 이뤄냈다. 타이거 마스크로 대변되는 투지는 한일 월드컵 이후 그의 상징이 되었다.

 

 

이름: 송종국
생년월일: 1978년 3월 5일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포지션: 라이트백, 라이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2000~2007
A매치 기록: 60경기 3골

 

단일 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측면 수비수중에서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선수. 신체능력이 대단했으며 지치지 않는 지구력과 견고한 대인 마킹 능력을 겸비했으며 킥력도 훌륭했고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할 수 있는 축구 지능도 갖추었다.

페예노르트에서 당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후보 중 하나였던 유벤투스를 상대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 송종국은 대표팀에서는 선수 초창기부터 히딩크의 황태자로 군림하며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했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라이트 윙백으로 활약하며 루이스 피구를 묶어내고 전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하는 대단한 체력을 보여주며 대한민국의 4강 신화를 경험했고 이후 토고전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월드컵 첫 원정승을 이뤄냈으나 이미 폼이 떨어져 우측으로 이동한 이영표한테 밀려났다.

단순히 고점으로는 박경훈보다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그 고점이 너무 짧아서 아쉬운 선수였다.

 

 

이름: 하석주
생년월일: 1968년 2월 20일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포지션: 레프트백, 레프트윙, 중앙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91~2001
A매치 기록: 94경기 23득점

 

199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왼쪽 자원으로 윙백은 물론 레프트 윙과 왼쪽 메짤라까지도 능숙하게 소화하는 다재다능한 선수였으며 뛰어난 왼발 킥력을 활용한 크로스와 프리킥, 코너킥으로 공격 포인트를 양산하는데 능해 왼발의 달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대우 로얄즈의 전성기를 보내며 K리그 우승 2회를 이끈 하석주는 대표팀에서도 세대교체의 일원으로 발탁되어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였으며 1996년 이후 주전 자리를 차지해 1998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해 멕시코전 선제골을 넣었으나 백태클을 걸다가 퇴장당하며 팀의 역전패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이후 네덜란드전은 징계로 나오지 못했으나 벨기에전에서 유상철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며 부분적으로 명예회복을 했다. 이후 2001년까지 대표팀에 뽑혔으나 결국 2002 한일월드컵 대표팀에는 탈락하는 비운을 겪는다.

대한민국의 월드컵 역사에서 첫 선제골을 득점한 주인공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으며 월드컵에서 득점한 뒤 퇴장을 당하는 일명 가린샤 클럽에 시조 가린샤에 이어 두 번째로 가입한 회원이기도 했다.

 

 

이름: 기성용
생년월일: 1989년 1월 24일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4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2008~2019
A매치 기록: 110경기 10골

 

201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지탱했던 최고의 미드필더로 경기장 전체를 아우르는 드넓은 시야와 시원한 중장거리 패스와 강력한 슈팅력을 바탕으로 했던 레지스타였다. 특히 롱패스만큼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잘했던 선수로 회자된다.

FC 서울과 셀틱, 그리고 스완지 시티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유럽에서도 명성을 떨친 기성용은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도 대단했는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모든 경기에 선발 출전하며 팀의 원정 첫 16강 진출에 공헌했으며 이후에 2014 브라질 월드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2015 아시안컵에서도 준우승을 거두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결혼 이전에는 SNS에서의 미성숙한 대응으로 잦은 논란을 일으켰으나 결혼 이후에는 본인도 성숙해지며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까지 도맡았다.

 

 

이름: 조광래
생년월일: 1954년 3월 19일
신체조건: 키 170cm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75~1986
A매치 기록: 100경기 15득점

 

2000년대의 대한민국 축구 팬들에게는 전술적인 고집이 강한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1980년대 올드 축구팬들에게는 날카롭고 정확한 패스로 '컴퓨터 링커'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터프한 태클에도 능한 공수겸장이었다.

대우 로얄즈에서 K리그 2회 우승을 이뤄낸 조광래는 이미 연세대학교 시절부터 대표팀에 뽑혔던 엘리트였으며 1980 아시안컵 준우승에 기여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전에서 자책골을 넣으며 3-2 패배에 큰 역할을 하게 되는 비운의 선수였다.

허정무와 함께 20세기 대한민국 축구계의 중원 사령관의 대명사로 평가받았던 조광래는 여론조사 단체인 한국갤럽이 2002년에 조사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과 베스트 일레븐지가 2010년에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름: 서정원
생년월일: 1970년 12월 17일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7kg
포지션: 라이트윙,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1990~2001
A매치 기록: 88경기 16득점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손꼽히는 스피드 스타로 100m를 11초 6에 끊는 엄청난 스피드를 지녔으며 지구력도 좋아 왕성한 활동량으로 수비 가담도 적극적으로 했으며 양발 사용에 능해 왼발과 오른발로 모두 득점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FC 서울인 LG 치타스와 수원 삼성 블루윙즈 양 구단에서 모두 활약한 서정원은 고려대학교 시절에 이미 대표팀에 뽑혔으며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 동메달을 시작으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대표팀으로 활약했으며 성인 대표팀에서도 성인 대표팀에서도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스페인전 동점골을 넣으며 활약했고 이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는 리그앙의 스트라스부르로 이적해서 활약했다.

서정원은 전성기 시절인 1990년대 중반에는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발렌시아, 베르더 브레멘과 같은 팀들이 노렸으나 LG 치타스의 비협조와 에이전트의 미숙한 일처리로 실패하는 아쉬움을 겪었으며 이후 간신히 프랑스 무대로 진출했다가 국내 무대로 돌아올 때 수원 삼성으로 리턴하며 FC 서울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으로 유명하다.

 

 

이름: 설기현
생년월일: 1979년 2월 4일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2kg
포지션: 라이트윙, 레프트윙,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2000~2009
A매치 기록: 82경기 19득점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러닝 크로스를 잘하는 선수로 히딩크의 발언에 따르면 "한국에서 유일하게 외국 선수들과의 몸싸움을 이겨내고 크로스를 올려줄 수 있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던 윙어로 히바우두와 유사한 신체 조건과 플레이스타일로 인해 설바우두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국내 무대가 아닌 벨기에에서 경력을 시작했으며 안더레흐트와 잉글랜드의 레딩에서 전성기를 누린 설기현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주전 선수로 중용했으며 16강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동점골을 넣으며 대표팀의 4강 신화에 공헌했다. 이때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들었으며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프랑스전에서 크로스 패스를 날려 공이 조재진 머리에 닿았고 그 공은 결국 박지성의 발에 맞아 동점골을 넣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설기현은 대표팀 동료 박지성으로부터 "기현이 형이 선수로서 잉글랜드에 있을 때 감독들이 좀 더 기현이 형을 믿고 계속해서 꾸준하게 출전 기회만 주어졌다면 다른 어떤 선수보다 가장 높은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선수다."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고집이 지나치게 세서 잉글랜드는 물론 국내 무대에서도 소속팀 감독들과 불화를 겪어서 커리어의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름: 김주성
생년월일: 1966년 1월 17일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포지션: 레프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리베로

대표팀 활약 기간: 1985~1996
A매치 기록: 76경기 14득점

 

20세기 대한민국 축구의 아이콘 중 한 명으로 왕성한 활동량과 빠른 스피드, 그리고 뛰어난 기술은 물론이고 높은 축구 지능을 앞세워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다.

K리그에서는 부산 대우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세 번의 리그 우승을 이뤄냈던 김주성은 조선대학교 시절부터 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이후 1988 아시안컵에서는 준우승을 거뒀지만 대회 MVP로 선정되었으며 1990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우리나라가 11전 9승 2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본선 진출권을 따냈고 팀의 에이스였던 김주성은 예선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에서는 부진하기도 했으며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바꿔서 출전하기도 했다.

유상철과 함께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로 K리그 베스트 일레븐을 선정한 유이한 선수이며 K리그 베스트 일레븐 5회 선정, KFA 올해의 팀 4회 선정이라는 화려한 개인 수상 이력을 기록했으며 1989년부터 1991년까지 3회 연속 아시아 올해의 축구선수를 수상하기도 했으며 2002년 한국 최고의 여론조사업체인 한국갤럽에서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2010년에는 베스트 일레븐지 선정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2013년에 선정한 K리그 30주년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었다.

 

 

이름: 이회택
생년월일: 1946년 10월 11일
신체조건: 키 167cm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66~1977
A매치 기록: 82경기 21득점

 

차범근이 대두하기 이전 한국 최고의 선수라고 평가받았으며 100m를 11초 8에 끊는 빠른 스피드와 낮은 무게중심에서 나오는 튼튼한 신체 밸런스를 겸비했으며 강력한 슈팅과 유려한 패스로 찬스를 만드는데 능했던 전천후 공격수였으며 당대 유럽 최고의 공격수 에우제비우와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로 인해 아시아의 표범이라 불렸던 선수다.

포항 스틸러스의 전신 포항제철 축구단의 창단 멤버였던 이회택은 비록 월드컵에서 활약하진 못했지만  1970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으며 1972 AFC 아시안컵에서는 준우승을 이뤄냈다.

한국 대표팀 소속으로 펠레의 산투스와 에우제비우의 벤피카와 친선경기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분데스리가의 묀헨글라트바흐와 포르투갈의 벤피카가 그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정보 부족으로 해외에서 축구하는것이 좋은 경험인지 몰랐던 이회택이 거부해서 이적이 불발되었고 훗날에 크게 후회했다고 전해진다.

 

 

 

이름: 최순호
생년월일: 1962년 1월 10일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80~1991
A매치 기록: 95경기 30득점

 

이탈리아 축구계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한국의 판타지스타형 공격수로 화려한 볼 컨트롤 능력과 슈팅과 동료를 적절하게 이용하고 날카로운 킬러 패스를 찔러주는 플레이메이킹에 모두 능했으며 큰 키와 강한 피지컬까지 겸비했다.

청소년 대표팀과 병행하던 시절에 성인 대표팀에 데뷔해 1980 AFC 쿠웨이트 아시안컵에서 7골로 역대 최연소 득점왕에 오르며 준우승에 기여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프로 데뷔 이전인 1981년 호주 청소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와의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2골 2도움의 MOM급의 활약을 벌여 이탈리아를 4-1로 꺾었으며 이로 인해 이탈리아의 명문 유벤투스로부터 로베르트 베테가의 대체자로 거론되었으나 국내 리그를 활성화시키고 싶어 했던 정치권과 국내의 분위기로 인해 결국 이적은 불발되기도 했으며 그래도 국내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2002년 한국갤럽에서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이름: 안정환
생년월일: 1976년 1월 27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97~2012
A매치 기록: 71경기 17득점

 

1970년대생 한국 축구 최고의 재능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던 공격수로 화려한 볼 컨트롤과 영리하고 실용적인 오프 더 볼 능력을 겸비했으며 날카로운 오른발 킥으로 득점에도 능했으며 이런 화려한 플레이 스타일과 잘생긴 외모로 테리우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K리그의 부산 대우 로얄즈와 이탈리아의 페루자에서 전성기를 누린 안정환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슈퍼서브로 활약하며 조별 리그 미국전 동점골과 16강 이탈리아전 골든골을 득점했으며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토고전 결승골을 득점하며 맹활약했다.

집안 문제와 에이전트의 미숙한 일처리, 그리고 페루자의 괴짜 구단주에 의한 피해자였는데 이로 인해 세리에의 여러 클럽이 노렸음에도 J리그로 이적하며 페루자 입단 초기에 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마테라치가 인테르에 안정환의 영입을 추천했을 정도의 재능에 비해 클럽 커리어가 상당히 좋지 않게 풀렸다.

 

 

 

이름: 황선홍
생년월일: 1968년 7월 14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0kg
포지션: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88~2002
A매치 기록: 103경기 50득점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으며 강력한 피지컬과 넓은 활동 반경, 그리고 우수한 슈팅 스킬과 지능적인 위치 선정으로 많은 골을 폭격했으며 연계 플레이에도 능했던 국내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포항 스틸러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황선홍은 1988 아시안컵 카타르에서 데뷔했는데 데뷔전인 한일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했으며 이후 부상으로 낙마한 1998 프랑스 월드컵을 제외하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2002 한일 월드컵까지 활약했으며 1994 미국 월드컵에서의 부진을 2002 한일 월드컵 폴란드전 득점으로 씻어내며 팀의 4강 진출에 공헌한 것은 덤이다.

대한민국 소속으로 A매치 통산 최다 득점자에 랭크된 차범근에 이어 통산 득점 2위를 자랑하는 황선홍은 이후 감독으로도 용병이 없는 포항 스틸러스의 더블 우승을 이끌었다.

 


25인 스쿼드 완성판

 

토르난테 선정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25인 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리저브 팀 11인

 

 

이름: 최인영
생년월일: 1962년 3월 5일
신체조건: 키 182cm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83~1994
A매치 기록: 51경기 40실점

 

대한민국 대표팀 최초로 월드컵 두 대회 연속으로 주전으로 활약한 골키퍼로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아시아 최고의 골키퍼라 불렸으며 동물적인 반사 신경으로 뛰어난 선방 능력을 보여줬다.

현대 호랑이 시절 울산의 수문장으로 활약하며 리그 최고의 한국인 골키퍼로 군림하던 최인영은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때는 팀은 3패를 기록했지만 수많은 슈팅을 선방해내기도 했고 1994 미국 월드컵 볼리비아전에서는 한국 축구 역사상 첫 무실점 경기를 했지만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인 독일전에서의 부진으로 중도 교체당하는 불운으로 인해 그에 대한 저평가가 심하게 이뤄지는 안타까운 일을 겪었다.

세계적으로 훌륭한 공신력을 자랑하는 축구 기록 기관인 IFFHS에서는 최인영을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골키퍼 3위로 선정했으며 동시에 20세기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골키퍼로 선정했다.

 

 

이름: 조영증
생년월일: 1954년 8월 18일
신체조건: 키 183cm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75~1986
A매치 기록: 113경기 1득점

 

1980년대 대한민국 수비를 대표했던 선수로 코끼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몸싸움에 능했으며 드넓은 시야와 뛰어난 전술안과 판단력을 겸비했으며 패싱력과 득점력도 뛰어났다.

미국의 포클랜드 팀버스에서 활약하며 북미 무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평가받았던 1세대 해외파로 두 번의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1980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도 참가했고 1987 아프로아시안 네이션스컵에서 우승하는데 기여했다.

수비수였지만 우수한 몸싸움 능력을 통해 스트라이커로 활약할 수 있었으며 1984년에는 6경기 연속골을 이뤄내기도 했다.

 

 

이름: 김민재
생년월일: 1996년 11월 15일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8kg
포지션: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2017~
A매치 기록: 42경기 3득점

 

현세대 대한민국 최고의 수비수로 190cm의 큰 키와 빠른 스피드를 겸비한 완벽한 신체 능력을 활용해 일대일 경합과 제공권 경합에서 모두 우수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적절한 상황 판단과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오는 드리블로 전방으로 치고 올라와 상대 수비진의 균열을 이끌거나 롱패스를 활용해 찬스를 만드는 능력 모두 뛰어난 완벽한 수비수였다.

전북에서 리그 2연패를 시작으로 베이징 궈안과 페네르바체를 거쳐 한국인 수비수로서는 최초로 세리에 A 무대에 진출한 김민재는 대표팀에서도 가장 호평받는 선수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뤄냈으며 월드컵 지역에서도 팀 내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기복 없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부상으로 놓치는 바람에 자신의 첫 월드컵 무대가 될 수 있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름: 차두리
생년월일: 1980년 7월 25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9kg
포지션: 라이트백, 라이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2001~2015
A매치 기록: 76경기 4득점

 

대한민국 축구사 최고의 레전드 차범근의 아들로 200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준족으로 북유럽인이 연상되는 뛰어난 피지컬과 공을 앞질러가는 빠른 스피드로 차미네이터라 불렸으며 초년에는 윙 포워드로 활약했으나 마인츠에서 측면 수비수로 자리잡아 전성기를 맞은 선수다.

우월한 신체 능력으로 인해 고려대 시절에 이미 2002 한일 월드컵 대한민국 대표팀 로스터에 들었으며 이후 레버쿠젠과 프랑크푸르트에서 벤치를 전전하며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탈락했다. 이후 마인츠와 코블렌츠에서 라이트백으로 자리를 변경해 프라이부르크에서는 라이트백에서 완벽하게 적응하며 부활했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뛰어난 피지컬을 보여주며 대한민국의 원정 첫 16강에 크게 공헌했다.

차두리는 긍정적인 성격과 강력한 신체 능력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항상 웃는 표정과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인해 차미네이터, 로봇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름: 이을용
생년월일: 1975년 9월 8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9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레프트윙, 레프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99~2006
A매치 기록: 51경기 3득점

 

200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드필더로 피지컬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한국 축구 역대 최고의 왼발잡이 테크니션이며 뛰어난 패싱 능력과 넓은 시야, 그리고 뛰어난 볼 키핑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중원에서 팀을 조율하는 능력이 대단했다.

부천 SK와 터키의 트라브존스포르에서 전성기를 누린 이을용은 1999년에 대표팀의 세대교체의 일원으로 발탁되었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이영표, 김남일이 결장했을 때 선발 출전했으며 비록 미국전에서 페널티 킥을 실축했지만 대회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대한민국의 4강 신화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토고전과 프랑스전에 선발 출전했다.

강원도 삼척 출신의 이을용은 말년에는 고향팀 강원 FC의 창단 멤버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름: 김남일
생년월일: 1977년 3월 14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98~2013
A매치 기록: 98경기 2득점

 

200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진공청소기라는 별명답게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바탕으로 몸싸움과 태클에 적극적이고 대인마크에 능했고 전술 이해도도 높은 수준이었으며 전방으로 찔러주는 전진 패스도 준수했다.

비록 유럽에서는 부진했지만 전남 드래곤즈와 수원 삼성에서는 리그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의 품격을 보여준 김남일은 1998년 한양대학교 시절부터 세대교체의 선두주자로 대표팀에 소집되었으며 방곡 아시안 게임에도 참가했다. 그리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대한민국의 4강 신화에 공헌했고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주전급 선수로 출전했다. 이후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서브 멤버로 출전했다.

김남일은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어록을 남기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특히 압권은 기자가 지단을 부상 입힌 김남일에게 "어떡하냐. 지단 연봉이 얼만데…"라고 걱정스레 묻자 김남일은 "아, 내 연봉에서 까라고 하세요!!"라고 답했다. 물론 부상을 당한 상황에서도 기본 급여는 계속 나오기에 연봉을 보상할 필요는 없었다.

 

 

이름: 구자철
생년월일: 1989년 2월 27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9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2008~2019
A매치 기록: 76경기 19골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족적을 남긴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탄탄한 기본기와 영리한 공간 지각 능력을 활용한 기회창출 능력과 페널티 박스 침투 능력을 통해 공격 포인트를 쌓아서 구파드라고 불렸다.

제주 유나이티드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구단의 레전드로 추앙받는 구자철은 대표팀에서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는 합류하지 못했지만 2011 아시안컵에서 득점왕과 올스타팀을 석권했으며 런던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타냈다. 그러나 2014 브라질 월드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마지막 독일전 승리에 공헌하며 월드컵의 부진을 끊어냈다. 2019 아시안컵이 끝나고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이름: 이청용
생년월일: 1988년 7월 2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0kg
포지션: 라이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2008~
A매치 기록: 89경기 9득점

 

2010년대 상반기 대한민국 최고의 윙어로 뛰어난 센스와 우수한 테크닉, 그리고 훌륭한 전술안을 겸비한 정상급 윙어였으며 슈팅력을 제외하면 단점이 없는 윙어였다.

볼턴 원더러스 시절에 전성기를 누렸으며 대표팀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특히 아르헨티나전과 우루과이전에서는 결과적으로는 패했지만 동점골을 넣는 맹활약을 펼치며 원정 첫 16강에 공헌했다.

그러나 5부 리그 선수인 톰 밀러[에게 거친 태클을 당해 정강이뼈가 부러지며 그의 전성기는 허무하게 끝났으며 소속팀에서나 대표팀에서나 전성기 때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는데 축구에 만약은 없지만 그때 그 태클만 아니었어도 훨씬 좋은 활약을 펼쳤을 선수라 많은 아쉬움이 남는 재능이었다.

 

 

이름: 이천수
생년월일: 1981년 7월 9일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5kg
포지션: 레프트윙, 라이트윙,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2000~2009
A매치 기록: 78경기 10득점

 

200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풍운아로 킥 능력이 우수해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프리키커 중 하나로 꼽힌다. 그리고 작은 체구에 뛰어난 스피드를 가졌으며 특히 공 잡고 방향을 전환하면서 순간적으로 가속을 붙이는 능력이 좋았다.

울산 현대의 2005 K리그 우승을 이끌고 MVP를 받았던 이천수는 고려대학교 시절부터 대표팀에 뽑히던 엘리트였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로테이션 멤버로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대한민국의 4강 신화에 공헌했으며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주전 멤버로 활약하며 토고전에서 프리킥 득점을 기록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조별 리그에서 아쉽게 탈락했고 2007 아시안컵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재능만 보면 박지성 이상이라는 평가가 무색하게도 유럽 무대에서는 적응 문제로 실패했으며 K리그에서는 울산 시절에는 화려했지만 전남 시절에는 구단과의 갈등으로 임의탈퇴를 당하며 커리어가 꼬여서 자신의 재능을 다 펼치지 못한 아쉬운 재능으로 평가받는다.

 

 

이름: 박주영
생년월일: 1985년 7월 10일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5kg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2005~2012
A매치 기록: 68경기 24득점

 

2000년대 중반에 축구 천재라 불리며 데뷔한 선수로 별명에 걸맞게 높은 전술안에서 나오는 오프 더 볼 능력과 적절한 위치 선정 능력, 그리고 탄탄한 볼 컨트롤과 정확한 슈팅과 헤더로 득점포를 가동했다.

FC 서울에서 신인상과 리그 베스트 일레븐을 휩쓸었으며 AS 모나코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던 박주영은 2006 독일 월드컵 스위스전에서 선발 출전해 월드컵 무대에 데뷔했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 나이지리아전 동점골,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결승골을 득점하는 등 꾸준하진 못했어도 중요한 길목에서 클러치 능력이 빛나던 선수였다.

다만 자신에게 청구고 시절부터 지원을 해준 포항 스틸러스를 외면하고 FC 서울에 입단했으며 병역 연기 과정에서의 편법과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최악의 부진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이름: 이동국
생년월일: 1979년 4월 29일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5kg
포지션: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98~2017
A매치 기록: 105경기 33득점

 

1970년대생 한국 축구 최고의 재능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던 공격수로 군더더기 없는 볼 터치 후 정확한 슈팅으로 득점했으며 강력한 피지컬에서 나오는 포스트 플레이에 와 높은 수준의 축구 지능에서 나오는 연계 플레이에도 능했다.

K리그에서는 프로 데뷔 시즌인 1998년에 최우수 신인상을 받았던 이동국은 대표팀에서도 1998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전에 교체 출전해 데뷔했으나 플레이 스타일 문제로 히딩크의 눈 밖에 나서 한일 월드컵 명단에서 제외되었으며 2006 독일 월드컵 때는 절정의 폼을 보여줬으나 부상으로 낙마했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교체 멤버로 활약했으나 우루과이전 득점 찬스를 날리는 등 월드컵 무대와는 악연이었지만 예선에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국가대표팀 A매치 통산 득점 4위에 랭크되었다.

이동국은 대표팀보다는 클럽 무대에서 롱런하며 위대한 기록을 여러번 세웠는데 포항과 전북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K리그 8회 우승을 이뤄냈고 K리그 베스트 5회 선정되었으며 K리그 통산 최다 득점과 통산 최다 도움 2위, 그리고 통산 출전 3위와 통산 공격포인트 1위를 자랑했으며 AFC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통산 득점 2위에 랭크된 기록의 사니이였다.

 


*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시리즈의 선정 기준은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 50%와 선수 자체의 위상 50%를 합산해서 올스타 팀을 짭니다.

* 국가대표팀으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선수는 당연하게도 선정에서 제외합니다.

* 과거 다수의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선수들은 더 많은 활약을 한 국가대표팀으로 선정합니다.

* 현역 선수들의 스탯은 2022년 8월 9일 기준입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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