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팀

국대 올스타 짜보기/동유럽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팀

토르난테 2022. 5. 1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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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별칭: 매직 마자르

월드컵: 출전 9회, 준우승 2회

유로: 출전 3회, 3위 1회

중유럽컵: 츨전 6회, 우승 1회

올림픽: 출전 9회, 금메달 3회

최다 출전 선수: 가보르 키라이, 108경기

최다 득점 선수: 페렌츠 푸스카스, 84골

매직 마자르 시절 기록

1950년 6월 4일~1956년 2월 19일 동안 총 50전 42승 7무 1패 승률 84%

1950년 6월 4일~1954년 7월 3일 동안 31게임 연속으로 무패

 


베스트 11

 

골키퍼

 

이름: 그로시치 줄라
출생년도: 1926년 2월 4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47~1962
A매치 기록: 86경기 89실점 / 28 클린시트

 

축구 역사상 최초의 스위퍼 키퍼 중 한 명으로 우수한 발밑과 정확한 골킥을 바탕으로 매직 마자르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맡기도 했다.

푸스카스, 코츠시스, 보직 등과 함께 부다페스트 혼베드와 매직 마자르 군단의 황금기를 이끈 그로시치는 매직 마자르 군단의 골문을 지키며 발칸 컵과 1952 헬싱키 올림픽, 중유럽컵에서 모두 우승했고 1953년에는 세기의 매치라 불리던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홈과 원정 모두 승리를 기록했다.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준우승에 공헌하며 ESPN이 선정한 대회 올스타팀에 들었고 이후에도 두 번의 월드컵에 더 참가한다.

헝가리 대표팀 통산 최다 출전 7위에 랭크된 그로시치는 1949년과 1950년에는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은퇴 이후인 1984년에 프랑스 풋볼지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골키퍼 3위를 기록했다.

 

라이트 풀백

 

이름: 휘글 카로이
출생년도: 1895년 1월 19일
신체조건: 키 180cm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18~1929
A매치 기록: 51경기 2골

 

1920년대 유럽 최고의 라이트 풀백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우수한 대인 수비 능력을 지녔으며 수비 진영을 진두지휘하는 수비라인의 리더였음은 물론 터프한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제압하는 부분에도 능숙했다.

헝가리 대표팀 소속으로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많은 경기인 50경기에 출전한 핵심 수비수로 1924 파리 올림픽과 1927~1930 중유럽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월드컵 시대 이전의 헝가리 대표팀을 이끌었다.

대표팀은 물론이고 소속팀 우이페슈티에서도 동생인 요제프 휘글과 수비 조합을 맞추며 휘글 게이트로 불렸으며 이 수비라인은 미트로파컵에서 우승하며 최초로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수비라인으로 여겨졌다.

 

레프트 풀백

 

이름: 란토스 미할리
출생년도: 1928년 9월 29일
신체조건: 키 177m / 몸무게 78kg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49~1956
A매치 기록: 52경기 5골

 

축구 역사상 최초로 전략적인 오버래핑을 시도했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기습적인 전방 침투에 이은 왼발 크로스는 매직 마자르의 또 하나의 공격 루트였으며 정확하면서도 강력한 킥력을 통해 중장거리 패스로 팀의 빌드업을 이끌기도 했으며 뛰어난 점프력을 활용한 공중볼 경합 능력도 우수했다.

매직 마자르 시대의 레프트 풀백으로 활약하며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으며 1948년부터 1953년까지 치러진 중유럽컵에서도 우승하는 등 4년간 31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기록했으나 1954 스위스 월드컵 결승에서 아쉽게 패하며 월드컵 우승에는 실패했다.

MTK 헝가리의 레전드로도 통하는 란토스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 및 1955년 미트로파 컵 우승에 공헌하기도 했다.

 

센터 하프

 

이름: 메스죌리 칼만
출생년도: 1941년 7월 16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3kg
포지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61~1971
A매치 기록: 61경기 6골

 

1960년대 유럽에서 이름을 날렸던 수비수로 금발머리의 선수가 견고한 수비력을 보여줬다고 해서 팬들은 그를 황금 바위라고 불렀으며 전술안이 우수하며 기본기가 탄탄해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기용되었다.

자국리그의 버셔시의 원 클럽 맨이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4회 우승 및 미트로파컵 3회 우승을 진두지휘한 메스죌리는 마자르 군단 소속으로는 1960 로마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것을 시작으로 1962 칠레 월드컵과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팀을 8강에 올렸으며 유로 1964에서는 3위라는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

메스죌리 개인의 명성도 헝가리 국내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인정받았는데 1962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동독 FUWO가 선정한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고 1967년에는 월드 사커가 선정한 월드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라이트 하프

 

이름: 보직 요제프
출생년도: 1925년 11월 28일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47~1962
A매치 기록: 101경기 11골

 

당대는 물론이고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선수로 후방에서 정확한 패스 능력과 우수한 볼 컨트롤, 그리고 왕성한 활동량과 뛰어난 대인 수비 능력을 바탕으로 중원을 장악했으며 전술안도 우수해 그라운드에서 감독 대신 선수단을 지휘하기도 했으며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포문을 여는데에도 능했다.

헝가리 대표팀 A매치 통산 출전 3위에 랭크되었으며 최초의 센추리 클럽 가입자이자 세계에서도 빌리 라이트에 이어 두 번째 센추리 클럽 가입자였던 보직은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 1953년에는 5년간 치러진 중유럽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는 등 4년간 31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기록하며 1954 스위스 월드컵까지 승승장구했으나 결승에서 서독에게 아쉽게 패했지만 보직은 우수한 활약을 인정받아 ESPN과 문도 에스포르티보가 선정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모두 선정되었다.

소속팀 부다페스트 혼베드에서도 구단의 전성기를 누리며 195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폼을 자랑했는데 넴제티 버이녹샤그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2년에는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레프트 하프

 

이름: 샤로시 죄르지
출생년도: 1912년 8월 5일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3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를 포함한 골키퍼 제외 모든 포지션

대표팀 활약 기간: 1931~1943
A매치 기록: 62경기 42골

 

1930년대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하나로 공격적인 부분은 물론 미드필더와 수비수로서의 역량은 물론 신체 능력과 전술 이해도까지 우수한 일명 육각형 선수의 시조와도 같은 선수로 심지어는 법학 박사 학위를 딸 정도로 축구 외적으로도 다재다능했다.

1930년대 마자르 군단이 세계 최고 레벨로 올라서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헝가리 대표팀 A매치 통산 득점 5위에 랭크된 샤로시는 1933-35 중유럽컵에서 득점왕에 올랐으며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탄 하면서 중단된 1936-38 중유럽컵에서도 10골을 넣으며 득점 선두를 달렸었으며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에이스로 5골을 득점하며 헝가리를 결승전 무대에 올려놓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그리고 중유럽컵에서는 17골로 대회 통산 최다 득점자에 올랐다.

소속팀 페렌츠바로시에서도 원 클럽맨이었던 샤로시는 1931-32 시즌 전승 우승을 포함해 넴제티 버이녹샤그 5회 우승과 헝가리 컵 4회 우승, 그리고 1937년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데 리그 득점왕과 미트로파컵 득점왕을 각각 3회 차지했음은 물론 미트로파컵 통산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던 진정한 중유럽의 황제였다.

 

인사이드 라이트

 

이름: 히데구티 난도르
출생년도: 1922년 3월 3일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45~1958
A매치 기록: 69경기 39골

 

최초의 현대적인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펄스 나인의 한 계보로 평가받으며 상대 수비를 유인한 뒤 창의적인 패싱력에서 나오는 찬스메이킹을 바탕으로 푸스카스와 코치슈와 연계해 상대 수비진을 공략하는 팀 전술의 핵심으로 활약했음은 물론 득점력 자체도 우수해서 유인에 실패하더라도 직접 득점을 노릴 수 있었다.

매직 마자르의 전술적 핵심으로 1952 헬싱키 올림픽 금메달, 중유럽컵 우승, 그리고 1954 스위스 월드컵 준우승을 이뤘지만 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경기는 1953년 웸블리에서 잉글랜드와의 세기의 매치였는데 이 경기에서 히데구티는 삼사자 군단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홈 무패의 삼사자 군단을 6-3으로 무너트리는데 크게 기여한다.

소속팀 MTK 헝가리아에서도 300경기에 넘게 출전해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5 미트로파 컵에서는 9골을 넣으며 팀 우승과 득점왕을 동시에 석권하는 활약을 보여줬다.

 

인사이드 레프트

 

이름: 페렌츠 푸스카스
출생년도: 1927년 4월 1일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2kg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대표팀 활약 기간: 1945~1956
A매치 기록: 85경기 84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유럽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로 오른발과 헤딩을 하지 못했음에도 오직 왼발로만 축구계를 평정했으며 뚱뚱한 체구와는 다르게 빠른 스피드를 보유했으며 우수한 볼 컨트롤과 테크닉, 그리고 공격을 주도하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모두 겸비했으며 특히 드래그 백을 실전에서 처음 상대한 선수로 유명했다.

매직 마자르 시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헝가리 대표팀 통산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린 푸스카스는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우승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5년간 진행된 중유럽컵에서도 우승은 물론 득점왕까지 차지했다. 1954 서독 월드컵에서도 조별리그 서독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고생했고 이 여파로 준우승에 머물렀음에도 ESPN이 선정한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나 헝가리 혁명을 외세인 소련군을 불러 진압한 헝가리 정부에게 실망해 스페인에 망명하면서 매직 마자르 시대를 끝내기도 했다.

30년 넘게 꺠지지 않았던 쉬로서의 A매치 최다 득점 기록을 갈아치우며 알리 다에이가 깨기 전까지 50년 넘게 A매치 최다 득점자에 올라있었던 푸스카스는 중유럽컵에서는 15골을 기록하며 선배 샤로시에 이어 대회 통산 득점 2위에 랭크된 푸스카스는 헝가리에 머물던 시기에는 혼베드에서 정규리그 넴제티 버이녹샤그 5회 우승했고 득점왕을 4회 수상했으며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라리가 5회 우승과 득점왕 4회 수상 및 유러피언 컵 3연패를 이뤄냈다.

 

아웃사이드 라이트

 

이름: 베네 페렌츠
출생년도: 1944년 12월 17일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0kg
포지션: 라이트윙, 포워드,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62~1979
A매치 기록: 76경기 36골

 

플로리안 알베르트, 칼만 메스죌리와 함께 1960년대 마자르 군단을 이끈 에이스로 오프 더 볼 상황에서 움직임이 뛰어나 공간 활용을 잘하며 동료들을 활용하며 파괴적인 득점력을 보여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비슷한 유형의 선수였다.

만 17세의 어린 나이로 데뷔해 1964 유러피언 네이션스 컵에서 3위를 기록하고 대회 득점왕과 베스트 일레븐을 석권하며 이름을 알린 베네는 같은 해에 열린 1964 도쿄 올림픽에서는 금메달과 득점왕을 동시에 석권했고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조별 리그에서 디펜딩 챔피언 브라질을 상대로 선제골을 득점하며 팀의 8강 진출에 공헌해 소파 스코어를 포함해 4개의 매체에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유로 1972에서도 4위를 기록하는데 공헌했다.

소속팀에서도 우이페슈티 도사의 황금기를 이뤄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베네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8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3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음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넴제티 버이녹샤그 득점왕 6회, 헝가리 올해의 선수 2회 수상이라는 업적을 세웠다.

 

아웃사이드 레프트

 

이름: 치보르 졸탄
출생년도: 1929년 8월 23일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8kg
포지션: 레프트윙,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1949~1956
A매치 기록: 43경기 17골

 

1950년대 세계 정상급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인사이드 레프트와의 효율적인 스위칭 플레이로 상대 수비진을 교란시키며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는데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치보르가 유려한 드리블과 날카로운 슈팅, 그리고 우수한 킬패스를 바탕오르 하는 찬스 메이킹에 모두 능했기에 가능했다.

매직 마자르와 혼베드에서 푸스카스와 파트너를 이루며 상대 수비수들을 괴롭혔던 치보르는 헝가리 대표팀에서는 1952 헬싱키 올림픽 금메달과 1948~1953 중유럽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웸블리와 부다페스트에서는 잉글랜드 대표팀을 각각 6-3, 7-1이라는 경악적인 점수차로 침몰시키며 헝가리의 시대를 알렸다. 1954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팀은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디펜딩 챔피언 우루과이와 전대회 준우승팀 브라질을 격침시켰지만 서독에게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에 멈췄음에도 치보르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페렌츠바로시와 혼베드에서 활약했으나 정부가 외세인 소련군을 불러 헝가리 민중 혁명을 진압하는 것을 보고 회의감을 느끼고 스페인에 망명했으며 스페인 망명 이후에는 쿠발라의 도움을 받아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며 라리가 2연패와 유러피언 컵 결승을 이뤄냈다.

 

센터 포워드

 

이름: 코츠시스 샨도르
출생년도: 1929년 9월 21일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3kg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1948~1956
A매치 기록: 68경기 75골

 

195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는 선수로 우수한 득점력 및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오는 유려한 연계플레이를 겸비했음은 물론 특히 헤더를 활용해 득점하는 부분에서는 축구사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아 황금 머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매직 마자르와 혼베드에서 푸스카스와 조합을 이뤄 활약한 코츠시스는 1952 헬싱키 올림픽 금메달, 중유럽컵 우승은 물론 잉글랜드와의 세기의 대결에서 두 번이나 대승을 거두며 매직 마자르의 시대를 열었고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결과적으로는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며 호평받았다. 특히 코치슈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 5경기 11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석권했고 실질적인 대회 MVP로 평가받았는데 이 활약으로 1954 헝가리 올해의 선수에 오르기도 했다.

페렌츠바로시와 혼베드에서 활약했으나 정부가 외세인 소련군을 불러 헝가리 민중 혁명을 진압하는 것을 보고 회의감을 느끼고 스페인에 망명했으며 스페인 망명 이후에는 쿠발라의 도움을 받아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며 라리가 2연패와 유러피언 컵 결승을 진출을 이뤄냈으나 벤피카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감독

 

이름: 세베슈 구스타브

출생년도: 1906년 1월 22일

부임기간: 1946~1957

 

헝가리 대표팀의 황금기를 주도한 명장으로 다뉴브 학파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스위칭 플레이 이론에 밝아 1952 헬싱키 올림픽 금메달, 1948~1953 중유럽 컵 우승, 그리고 1954 스위스 월드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그 과정에서 4년간 31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했으며 6년간 월드컵 결승전 단 1패만을 기록했다.

스위칭 플레이의 시초인 다뉴브 학파의 영향을 크게 받은 세베슈는 한 선수에게 다양한 포지션 소화를 지시하는 소셜리스트 풋볼을 이상으로 삼았고 이에 어긋나는 페렌츠 데아크나 산도르 주치같은 선수들을 대표팀에서 정리하기도 했다. 훗날 그의 철학은 리누스 미헬스의 토털 풋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베스트 일레븐 완성판

 

토르난테 선정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베스트 일레븐

 


25인 스쿼드 / 서브 14인

 

이름: 사보 안탈
출생년도: 1910년 9월 4일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3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32~1939
A매치 기록: 42경기 93실점

1930년대 마자르 군단의 주전 수문장으로 작은 키를 지녔음에도 우수한 탄력과 유연성을 앞세워 놀라운 선방을 수도 없이 보여주며 팬들에게 광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MTK 헝가리아에서 400경기 넘게 출전한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였던 사보는 마자르 군단을 대표해 두 번의 월드컵과 중유럽컵에 참가했으며 특히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마자르 군단의 결승행을 이끌기도 했다.

 

이름: 삭 카로이
출생년도: 1895년 8월 30일
신체조건: 키 188cm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12~1925
A매치 기록: 30경기 36실점

큰 키와 건장한 체격을 가진 헝가리 축구 초창기의 명 골키퍼로 재빠른 몸놀림으로 리투아니아 어로 소리라는 뜻의 스카야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안정적인 캐칭 능력과 우수한 회복력을 바탕으로 경기에 임했는데 특히 페널티킥에 능숙해 소속팀인 33 FC에서는 페널티 킥으로만 40골을 득점하며 축구사 최초의 골 넣은 골키퍼로도 유명했다.

33 FC에서 활약했던 삭은 1914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헝가리 대표팀 저지를 입고 1912 스톡홀름 올림픽과 1924 파리 올림픽에 출전해 활약했다. 그는 20대 초반에 손가락 중 하나가 부러지면서 회복되지 않아 절단했음에도 네 손가락으로 골문을 지킨 인간 승리자이기도 하다.

 

이름: 로란트 줄러
출생년도: 1923년 2월 6일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49~1955
A매치 기록: 37경기

리베로의 프로토 타입으로 불리는 선수 중 한 명으로 큰 키와 견고한 피지컬, 그리고 훌륭한 수비 커버 능력과 수비라인 지휘 능력을 물론 중원에서 스위칭까지 보여주며 축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버셔시와 부다페스트 혼베드에서 이름을 날리며 특히 혼베드의 전성시대를 이끈 로란트는 매직 마자르 시대의 센터 하프로 활약하며 수비 라인을 지휘했는데 그의 수비라인 지휘력 덕분에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으며 1948~1953 중유럽컵에서도 연달아 우승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1954 스위스 월드컵 결승에서 아쉽게 패하며 월드컵 우승에는 실패했다.

 

이름: 휘글 요제프
출생년도: 1897년 8월 14일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7kg
포지션: 센터백, 레프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20~1930
A매치 기록: 38경기

1920년대 유럽 최고의 레프트 풀백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우수한 대인 수비 능력은 물론이고 우수한 왼발 킥력도 겸비하며 데드볼을 전담하기도 했다.

대표팀과 소속팀 우이페슈티에서도 형인 카로이와 함께 수비 조합을 맞추며 휘글 게이트로 불렸으며 이 수비라인은 미트로파 컵에서 우승하며 최초로 세간의 화제를 불러 모은 수비라인으로 여겨졌는데 대표팀에서는 1924 파리 올림픽과 1927~1930 중유럽컵에 출전했다. 말년에 버셔시로 이적한 형과 달리 우이페슈티의 원 클럽 맨으로 남았다.

 

이름: 비로 샨도르
출생년도: 1911년 8월 19일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7kg
포지션: 센터백, 레프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32~1946
A매치 기록: 54경기

1930년대와 40년대 유럽 최정상급 레프트 풀백으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강력한 완력과 우수한 수비기술, 그리고 빠른 스피드를 모두 갖춘 완벽한 수비수였다고 전해진다.

MTK 헝가리아와 우이페슈티 도사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개인 통산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을 이뤄낸 비로는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 조국 헝가리의 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으며 1940년에는 헝가리 올해의 축구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름: 마트러이 샨도르
출생년도: 1932년 11월 20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7kg
포지션: 라이트백, 리베로,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56~1967
A매치 기록: 81경기

1960년대 헝가리를 이끈 리베로로 어린 시절에는 헝가리 육상대표로 활동했던 이력이 있을 정도로 스피드가 빨라 100m를 10.9초에 주파할 수 있었으며 6.99m의 멀리뛰기 기록과 1.83m의 높이뛰기 기록을 보유했을 정도로 운동능력이 대단했음은 물론 축구 지능도 우수하며 적절한 커버링과 냉철한 상황 판단 능력을 앞세워 수비라인을 지휘했고 수비라인의 다양한 포지션에서 다양한 역할을 막힘없이 소화했다.

페렌츠바로시에서 전성기룰 누리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 및 인터시티 페어스 컵 우승을 이뤄낸 마트러이는 마자르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1955-1960 중유럽컵에서 데뷔해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 세 차례의 월드컵에 참가해 8강 2회 진출을 기록했으며 1964 유러피언 네이션스 컵에서는 3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1965년에는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이름: 자카리아스 요제프
출생년도: 1924년 3월 25일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0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49~1954
A매치 기록: 35경기 0골

헝가리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평가받는 선수로 우수한 지구력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과 날카로운 태클 능력을 겸비했으며 순간적으로 세 명의 수비진 사이에 들어가 포백을 구성했는데 이는 현대의 포백 시스템 정립에 큰 영향을 줬다고 전해진다.

소속팀 MTK 헝가리아의 중원의 핵으로 활약하며 정규리그 2회 우승 및 미트로파 컵 우승을 이뤄낸 자카리아스는 매직 마자르에서는 레프트 하프 포지션에서 활약하며 1952 헬싱키 올림픽 우승, 1948~1953 중유럽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아쉽게 준우승을 이뤄냈지만 결승까지의 과정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름: 시푸스 페렌츠
출생년도: 1932년 12월 13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6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라이트백, 레프트백,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57~1966
A매치 기록: 77경기 1골

1960년대 헝가리를 이끈 중원 자원으로 허파라고 불렸을 정도로 지구력이 대단했으며 하프백과 센터백, 그리고 좌우 측면 수비수를 막힘없이 소화할 수 있었음은 물론 안정적인 볼 컨트롤과 뛰어난 스피드와 침착한 성격을 바탕으로 기복 없는 경기력을 선보였다.

MTK 헝가리아와 부다페스트 혼베드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58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시푸스는 1955-1960 중유럽컵에서 데뷔해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 세 차례의 월드컵에 참가해 8강 토너먼트에 두 번 진출했고 유로 1964에서는 조국을 3위에 올렸다.

 

이름: 오르트 죄르지
출생년도: 1901년 4월 30일
신체조건: 키 185cm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함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

대표팀 활약 기간: 1917~1927
A매치 기록: 32경기 13골

1910년대 하반기와 1920년대 상반기 MTK 헝가리아 왕조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으로 인사이드 포워드와 센터 하프에서 주로 활약했지만 골키퍼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소화했던 멀티플레이어였으며 우아한 볼 터치와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한 창의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플레이메이킹에 능했으며 득점력도 우수했다.

마자르 군단에서 10년간 활약했으며소속팀 MTK 헝가리아에서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8연패를 이뤄낸 이후에는 프랑스 리그의 마르세유에서 활약하며 리그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름: 콘라드 칼만
출생년도: 1896년 5월 23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4kg
포지션: 라이트윙,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14~1928
A매치 기록: 13경기 2골

1910년대 하반기와 1920년대 상반기 MTK 헝가리아 왕조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으로 아웃사이드 라이트와 인사이드 라이트에서 모두 활약할 수 있었으며 날카로운 드리블링과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볼을 배급하며 골 찬스를 만드는 능력을 보여줬음은 물론 오른발과 왼발을 가리지 않고 직접 슈팅하는 능력도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지미 호건 체제의 MTK 부다페스트에서 넴제티 버이녹샤그 4연패를 이뤄냈으며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도 우수한 활약을 보여줬으며 북미로 건너가서도 활약하며 헝가리 축구의 위엄을 널리 알렸다.

 

이름: 알베르트 플로리안
출생년도: 1941년 9월 15일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6kg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윙어

대표팀 활약 기간: 1959~1974
A매치 기록: 75경기 31골

1960년대 헝가리를 대표하는 인사이드 포워드이자 처진 공격수로 양발을 모두 잘 썼으며 민첩한 몸놀림과 탁월한 센스를 활용해 팀 공격을 이끌었으며 드리블과 패스, 슈팅에 모두 능한 완벽한 공격수였다.

페렌츠바로시의 원 클럽 맨으로 페렌츠바로시에서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4회 우승을 이뤄낸 알베르트는 마자르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고 1960 로마 올림픽 동메달을 시작으로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8강 진출을 이뤄내며 개인적으로도 공동 득점왕과 신인상을 수상했고 유로 1964 3위, 1966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유로 1972 4위 등 마자르 군단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뤄냈다.

1967년에는 리그에서 27경기 28골을 기록했으며 인터시티 페어스 컵 득점왕에 오르는 활약을 보여주며 발롱도르를 수상했는데 이는 헝가리 국적의 축구선수로서는 유일한 발롱도르 공식 수상이다.

 

이름: 쉬로서 임레
출생년도: 1889년 10월 11일
신체조건: 키 185cm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06~1927
A매치 기록: 68경기 59골

1910년대 최고의 축구 선수로 평가받으며 국내외에서 각종 기록을 보유한 뛰어난 인사이드 포워드로 각종 기록을 보유했던 엄청난 득점력은 물론이고 공격 전반을 지휘하는 플레이메이킹에도 능했던 선수다.

20년 동안 헝가리 대표팀의 주전으로 활약한 쉬로서는 다섯 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했음은 물론 세계 최초로 A매치 50경기를 달성했고 A매치 50골도 세계 최초로 달성했으며 푸스카스가 이 기록을 깨기 전까지 30년 넘게 세계 최고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넴제티 버이녹샤그에서도 각종 기록을 보유한 쉬로서는 페렌츠바로시와 MTK 헝가리아에서 활약하며 두 클럽에서 각각 넴제티 버이녹샤그 6회 우승을 기록하며 개인 통산 넴제티 버이녹샤그 12회 우승을 기록했음은 물론 쉬로서 개인도 리그 득점왕 6년 연속 수상을 포함해 개인 통산 리그 7회 득점왕에 올랐으며 1911년부터 1914년까지 4년 연속 유럽 최다 득점자에 오르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넴제티 버이녹샤그 역대 최다 득점자이자 최다 우승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름: 젱겔러 줄러
출생년도: 1915년 12월 27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36~1947
A매치 기록: 39경기 32골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헝가리를 대표하던 공격수로 기술적인 드리블 실력과 정확한 패스를 바탕으로 동료들과 연계 능력도 뛰어났음은 물론 시즌 50골을 두 번이나 넘었을 정도로 압도적인 득점력을 자랑했다.

자국 리그의 우이페슈티에서 정규리그 4회 우승을 이뤄낸 젱겔러는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1936-38 중유럽컵과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 샤로시와 함께 에이스로 호흡을 맞춰 후자의 대회에서는 준우승이라는 호성적을 이뤄냈지만 1947년에 공산주의에 반대해 헝가리를 떠나 대표팀 생활이 끊겼다.

헝가리 넴제티 버이녹샤그 득점왕 5회 및 1939년과 1945년에는 헝가리를 넘어 유럽 리그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린 젱겔러는 1938-39 시즌에는 정규리그와 미트로파컵 우승은 물론 젱겔러 개인도 32경기에 나와 65골을 기록하는 경악스러운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넴제티 버이녹샤그와 미트로파컵에서 모두 득점왕에 올랐다.

 

이름: 데아크 페렌츠
출생년도: 1922년 1월 16일
신체조건: 키 174cm
포지션: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46~1949
A매치 기록: 20경기 29골

 

1940년대 최고의 공격수로 뛰어난 위치 선정과 정확한 슈팅으로 순수하게 득점에 치중하는 공격수였으며 요제프 비칸이나 게르트 뮐러, 그리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못지않았던 득점력을 자랑했다.

센틀뢰린치와 페렌츠바로시에서 활약하며 리그 득점왕 3회와 유럽 리그 득점왕 3회에 올랐으며 특히 1945-46 시즌에는 무려 66골을 득점하며 단일 시즌 리그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던 데아크는 대표팀에서도 경기수보다 골이 더 많았으며 특히 중유럽컵에서는 중도에 하차했음에도 10골로 푸스카스에 이어 득점 2위를 기록했으나 세베슈 감독의 철학과 맞지 않아 배제되었다.

그리고 개인주의적인 성향떄문에 축구선수로서의 커리어는 물론 개인적인 부분에서도 갖은 수난을 당했는데 정부의 이적 명령에 불복했다가 반정부 인사로 낙인찍혀 체포당했으며 가족이 협박을 당함에 따라 비밀경찰팀 소속의 우이페슈티로 강제로 이적당하는 비운을 겪었다.

데아크의 자세한 생애는 아래 박스를 참조하라.

 

페렌츠 데아크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동축아썰 관리자 박수용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굉장히 화려하게 보이는 것이 있을 겁니다. 사람이던 단체던 말이죠. 근데 그런 것들을 속을 자세히 들여보면 굉장히 어두운 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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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인 스쿼드 완성판

 

토르난테 선정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25인 팀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리저브 팀 11인

 

이름: 플라트코 페렌츠
출생년도: 1898년 12월 2일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3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17~1923
A매치 기록: 6경기

1920년대 세계 정상급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로 뛰어난 선방 능력과 특유의 용감한 과감한 플레이로 유명했는데 스페인 문학의 전성시대를 이끈 유명 시인인 라파엘 알베르티는 그의 날랜 기상을 칭송하는 『Oda A Platko』란 운문을 발표했을 정도로 그의 용감한 플레이는 유명했다.

헝가리 무대에서도 활약했지만 MTK에서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며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는데 이 바르셀로나에서 사모라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우며 카탈루냐 리가 6회 우승, 코파 델 레이 3회 우승 및 1928-29 시즌 초대 라리가 우승을 이끌며 당대 사모라와 라이벌리를 구성하며 스페인 무대 최고의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다.

위대한 선수였음에도 헝가리 대표팀 경력 자체는 짧기에 선외 명단에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이름: 주치 샨도르
출생년도: 1921년 11월 23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5kg
포지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41~1948
A매치 기록: 19경기 0골

1940년대 정상급 센터하프로 센터 포워드를 상대하는 대인 수비 능력이 특히 뛰어났으나 세베슈 구스타브가 로란트 줄라를 더 중용한 사실을 가지고 추론했을 때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하는 빌드업 능력은 상대적으로 뛰어나지 않았던 걸로 추정된다.

솔로크에서 데뷔해 약체라 불리던 팀을 데리고 1940-41 시즌 마자르 쿠파 우승에 큰 공을 새우며 주목받아 우이페슈티에서 넴제티 버이녹샤스 3연패를 이뤄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결국 1941년부터 성인 대표팀에 소집되었으며 1943년부터는 핵심 선수로 평가받아 1948년에는 중유럽컵 명단에 포함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주치 샨도르는 유명 가수 에르지 코바치와의 불륜으로 인해 헝가리를 탈출해 인근의 자유주의 국가인 오스트리아로 망명할 계획을 세웠으나 준비가 허술한 탓에 걸렸고 경찰 신분이었기에 국가와 당을 배신했다는 변절죄와 탈영죄를 동시에 적용받아 사형을 선고받았고 결국 1951년 6월 4일, 주치 산도르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주치 샨도르의 사랑의 도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박스를 참조하라

 

풋볼 레전드 스토리 6편 - 불쌍한 로멘티스트인가? 세상 물정 모르는 천치인가? 주치 산도르

서문 세계 어느 나라든 간에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말도 안되는 국가의 폭력이 당연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직후의 헝가리도 마찬가지인데 그 당시 헝가리는 소련의 지원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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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주치 러요시
출생년도: 1943년 12월 10일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포지션: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67~1973
A매치 기록: 37경기 2골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걸쳐서 헝가리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센터백으로 다부진 피지컬과 강건한 어깨를 활용한 견고한 대인 수비로 이름을 날렸다.

페렌츠바로시와 부다페스트 혼베드에서 활약한 주치 러요시는 1968년 도쿄 올림픽에서 조국의 우승을 이끌며 금메달을 목에 거는 활약으로 발롱도르 17위에 랭크되었음은 물론 동독 언론 FUWO가 선정한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도 이름을 올렸으며 1972년에도 UEFA 유로 4위와 뮌헨 올림픽 준우승을 이뤄냈다.

수비수였음에도 1968년과 1971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를 수상한 주치 러요시는 성이 같은 대표팀 선배 주치 샨도르와는 다르게 사랑에도 성공했는데 헝가리의 유명 여배우 페치 일디코와 결혼에 성공하며 더욱 유명세를 얻었다.

 

이름: 부잔스키 예뇌
출생년도: 1925년 5월 4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6kg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50~1956
A매치 기록: 48경기

1950년대 상반기 유럽 정상급 라이트 풀백 중 한 명이자 도로기 FC 역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집요하고도 견고한 대인 마킹 실력을 자랑하는 수비수로 상대의 에이스를 봉쇄하는 능력에 특히 능했다.

매직 마자르의 라이트백으로 활약했으며 1952 헬싱키 올림픽 우승, 1948~1953 중유럽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상대의 에이스인 지지와 후안 스키아피노를 완벽하게 봉쇄하며 결승행에 공헌했다.

당시 대표팀의 선수들의 소속팀은 공산주의 독재정권의 명령으로 인해 공군팀인 부다페스트 혼베드와 내무부 산하의 MTK 헝가리아에 몰려있었으나 부잔스키는 도로기 FC라는 중하위권 소속팀 출신임에도 중용받았다. 도로기 FC는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경기장 이름을 부잔스키 스타디움으로 지었다.

 

이름: 샤로시 라슬로
생년월일: 1932년 2월 27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4kg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56~1965
A매치 기록: 46경기 0골

매직 마자르 시대가 종결된 이후에 란토스 미할리의 후계자로 이름을 날렸던 레프트 풀백으로 WM 시스템의 레프트 풀백과 4백 시스템의 레프트백에서 모두 능숙한 활약을 선보였는데 왕성한 활동량과 적절한 양발 사용 능력으로 유명했으며 원래 아웃사이드 레프트 출신이었기에 우수한 테크닉과 날카로운 공격력도 겸비했다.

버셔시에서 넴제티 버이녹샤그 5회 우승과 미트로파컵 4회 우승을 이뤄낸 샤로시 라슬로는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후자의 대회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조국의 8강 토너먼트 진출을 이끌었으며 유로 1964에서도 조국을 3위에 올렸다.

 

이름: 라자르 줄러
생년월일: 1911년 1월 24일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8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레프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31~1941
A매치 기록: 49경기 1골

1930년대 정상급 레프트 하프로 우수한 축구지능을 바탕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오는 커버 플레이와 적절한 위치 선정으로 명성을 날렸으며 탄탄한 기본기를 활용한 우아한 플레이를 선보였음은 물론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으로도 유명했다.

헝가리 대표팀과 페렌츠바로시의 약진을 이끌며 1931-32 시즌 전승 우승을 포함해 넴제티 버이녹샤그 5회 우승 및 1937년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낸 라자르는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세 번의 중유럽컵에 주전으로 참가했으며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8강 진출을 이뤄냈고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1933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를 수상한 라자르 줄러는 페렌츠 바로시의 원 클럽맨으로 샤로시 죄르지, 알베르트 플로리안과 함께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다.

 

이름: 닐라시 티보르
생년월일: 1955년 1월 18일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3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1975~1985
A매치 기록:  70경기 32골

1970년대와 80년대 헝가리를 이끈 헝가리 축구 최후의 월드클래스 선수로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과 우아한 퍼스트 터치, 그리고 날카로운 드리블과 큰 키를 활용한 탁월한 제공권은 물론 득점력도 우수했다.

티보르 닐라시는 마자르 대표팀 소속으로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소속팀 페렌츠바로시에서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2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74-75 시즌에는 컵 위너스 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3연패를 이뤄냈다.

개인 수상 이력도 화려한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만 5회 선정되어 1977년에는 무려 7위에 올랐으며 1980-81 시즌에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득점왕에 올랐으며 1983-84 시즌에는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와 UEFA컵에서 득점왕에 올랐다.

 

이름: 샨도르 카로이
생년월일: 1928년 11월 26일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75kg
포지션: 라이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49~1964
A매치 기록: 75경기 27골

1950년대 매직 마자르의 일원으로 이름을 날렸던 윙어로 빠른 방향 전환과 양발로 올리는 날카로운 크로스는 물론 득점력을 가지고 있었다.

난도르 히데구티와 함께 MTK 헝가리아의 공격을 이끌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 및 미트로파컵 2회 우승을 이뤄낸 샨도르는 매직 마자르 시대에서도 라슬로 부다이와 주전 경쟁을 펼치며 1948-1953 중유럽 컵에 참가해 우승을 이루는데 공헌했지만 1952 헬싱키 올림픽과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라이벌 부다이에게 밀려났다. 하지만 1954 스위스 월드컵 이후 다시 주전 경쟁 자리에서 부다이를 이겨내며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주전 자리를 차지한다.

 

이름: 티트코시 팔
생년월일: 1908년 1월 8일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포지션: 레프트윙, 라이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29~1938
A매치 기록: 48경기 13골

코후트 빌모시와 함께 1930년대 헝가리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빠른 스피드와 정밀도 높은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벗겨냈으며 완숙한 볼 컨트롤 능력을 바탕으로 원터치플레이에 강점을 보였음은 물론 주발은 왼발이었지만 오른발도 잘 사용했다.

MTK 헝가리아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 및 1937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티트코시는 마자르 군단에서는 세 번의 중유럽컵에 참가했으며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1938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8강까지는 코후트 빌모시에 밀려 나오지 못했으나 4강 스웨덴전에서 전반 37분에 역전골을 넣었고 결승전에서는 전반 8분에 동점골을 넣는 등 분전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음에도 강력한 임팩트를 남겼다.

 

이름: 타카스 요제프
생년월일: 1904년 6월 30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2kg
포지션: 스트라이커, 라이트윙,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1923~1933
A매치 기록: 32경기 26골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초반까지 유럽 정상급 센터 포워드로 이름을 날렸는데 키가 큰 편이 아니었음에도 엄청난 점프력을 바탕으로 기가 막힌 헤더를 선보였으며 유려한 볼 컨트롤과 대포알과 같은 오른발 슈팅을 활용하며 명성을 날렸다.

전성기를 누린 페렌치바로시에서는 경기당 1.5골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득점력을 선보인 타카스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 및 득점왕 5회 수상, 마자르 쿠파 2회 우승과 1928년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내며 MTK 왕조로부터 다시 헝가리 무대의 패권을 페렌츠바로시로 돌려냈다. 마자르 군단에서도 1924 파리 올림픽에 참가했으며 중유럽컵에 3회 출전했는데 특히 1927~1930 중유럽컵에서는 4골을 득점했다.

 

이름: 티치 러요시
생년월일: 1935년 3월 21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1955~1971
A매치 기록: 72경기 51골

1950년대 하반기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활약하며 국가의 폭격기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공격수로 왼발, 오른발, 머리를 가리지 않고 득점할 수 있었으며 테크닉도 준수해 스스로의 힘으로 상대 수비를 뚫어내며 최적의 슈팅 각도를 만들어냈다.

부다페스트 혼베드의 원 클럽맨이며 리그 득점왕에 다섯 번이나 올라선 티치는 1958 스웨덴 월드컵부터 1866 잉글랜드 월드컵까지 3개 대회에 참가해 8강 토너먼트에 두 번 진출했으며 유로 1964에서는 팀의 주장으로 조국이 3위에 오르는데 공헌했다.

 


*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시리즈의 선정 기준은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 50%와 선수 자체의 위상 50%를 합산해서 올스타 팀을 짭니다. 이래서 국대 활약이 너무 적은 페렌츠 플라티코가 바르셀로나에서의 우수한 활약에도 선외명단으로 밀려났습니다.

* 국가대표팀으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선수는 당연하게도 선정에서 제외합니다.

* 과거 다수의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선수들은 더 많은 활약을 한 국가대표팀으로 선정합니다. 고로 라슬로 쿠발라는 스페인 대표팀으로 보냈습니다.

* 현역 선수들의 스탯은 2022년 5월 18일 기준이며 2023년 7월 17일에 1차 수정했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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