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축구 역대 올스타 팀

국대 올스타 짜보기/동유럽

세르비아 축구 역대 올스타 팀

토르난테 2022. 12. 13.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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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별칭: 하얀 독수리

월드컵: 출전 13회, 4위 2회 (분리 독립 이전 유고슬라비아 시절 포함)

유로: 출전 5회, 준우승 2회

올림픽: 출전 6회, 금메달 1회

최다 출전 선수: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 105경기

최다 득점 선수: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 52골

 


베스트 11

 

골키퍼

 

 

이름: 밀루틴 쇼슈키치
생년월일: 1937년 12월 31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59~1966
A매치 기록: 50경기 71실점 / 16클린시트

 

1960년대 상반기 야신 다음가는 골키퍼로 평가받았던 선수 중 하나로 성실한 훈련 자세로 큰 부상을 입은 뒤에도 빠른 속도로 재활에 성공해 활약했을 정도로 몸 관리를 잘했으며 강력한 완력을 통해 공을 멀리 던지며 빌드업을 이끌기도 했다.

파르티잔에서 유고슬라비아 리그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낸 쇼슈키치는 베아라의 뒤를 이어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의 골문을 지키며 1960 UEFA 유로 준우승과 1960 로마 올림픽 금메달, 그리고 1962 칠레 월드컵 4위에 오르는 대단한 성과를 이뤄냈으며 대표팀 은퇴 이후에는 분데스리가의 쾰른으로 이적해 활약하며 독일 분데스리가의 발전에도 도움을 줬다.

쇼슈키치는 1963년에 잉글랜드 축구협회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잉글랜드와 세계 올스타의 경기에 초청받아 소련의 레프 야신과 함께 세계 올스타팀의 골문을 번갈아가며 지켰다.

 

 

리베로

 

 

이름: 벨리보르 바소비치
생년월일: 1939년 10월 3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4kg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61~1966
A매치 기록: 32경기 2골

 

196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리베로로 '죽기 아니면 살기'라고 불리는 강인한 정신력과 정교한 패싱력을 활용해 빌드업 과정에 크게 기여했고 뛰어난 전술 이해도를 자랑했으며 특히 훌륭한 리더십으로 외국인 용병임에도 아약스의 주장으로 활약했다.

파르티잔의 1965-66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아약스에서는 1970-71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낸 바소비치는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했지만 그가 주축으로 활약하던 기간에 유고슬라비아가 본선에 나서지 못했으며 1968년에는 그가 아약스로 이적하며 대표팀에서 은퇴하자 조국이 유로 결승에 진출하는 등 대표팀 운은 없었다.

여담으로 바소비치가 활약하던 시기의 아약스는 능수능란한 오프사이드 트랩 활용으로 유명했는데 이에 대해 바소비치는 "난 미헬스와 함께 공격적인 수비를 창조해 낸 설계자다. 내가 맡은 부분은 오프사이드 반칙을 유도하거나 골을 넣기 위해 벽 가운데 서있는 역할을 했을 뿐이지만 경기장 위에서 훌륭한 선수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훈련보다 100배는 도움이 된다. 그런 측면에서 난 아약스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라며 자신의 영향력에 대해 자랑하기도 했다.

 

 

센터백

 

 

이름: 네마냐 비디치
생년월일: 1981년 10월 21일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8kg
포지션: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2002~2011
A매치 기록: 56경기 2골

 

200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센터백으로 평가받던 선수로 단단한 체격에서 나오는 대인방어와 강력한 태클, 그리고 뛰어난 제공권을 이용한 활약이 돋보여 국내 팬들에게 벽디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퍼디난드와 함께 퍼디치 라인을 구성해 프리미어리그 5회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과 2회 준우승을 이뤄낸 비디치는 세르비아 대표팀에서도 수비라인의 핵으로 활약했는데 2006 독일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 7조에서 10경기에서 단 1실점만을 기록한 짠물 수비를 앞세워 스페인을 제치고 조 1위로 본선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비디치가 부상당하자 철의 포백이 와해되어 본선에서는 3전 전패로 탈락했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비록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독일 대표팀의 공세를 막아내며 독일을 잡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ESM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며 유럽 최고의 수비수로 명성을 떨친 비디치는 2009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16위에 올랐다.

 

 

라이트백

 

 

이름: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
생년월일: 1984년 2월 22일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1kg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2005~2018
A매치 기록: 105경기 13골

 

2010년대를 풍미한 세르비아 출신의 라이트백으로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득점력을 겸비한 공격형 수비수였으며 라이트백은 물론 센터백에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다.

첼시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프리미어리그 3회 우승과 2011-12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이바노비치는 세르비아 대표팀에서도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2010 남아공 월드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전자의 대회에서는 비록 조별리그 최하위로 탈락했지만 우승후보 독일을 상대로 1-0으로 승리한 경기에서 비디치와 함께 독일의 파상공세를 막아내며 승리에 공헌했으며 2017년 11월 14일에는 대한민국 울산 문수 축구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의 친선 경기에 출전하면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세르비아 대표팀 통산 A매치 최다 출전을 기록한 이바노비치는 세리비아 올해의 선수를 2회 수상했으며 2014-15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 PFA 올해의 팀에 모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레프트백

 

 

이름: 파흐루딘 유수피
생년월일: 1939년 12월 8일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포지션: 레프트백, 라이트백,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59~1967
A매치 기록: 55경기 0골

 

1960년대 세계 정상급 라이트백이자 레프트백으로 '죽기 아니면 살기'를 플레이 신조로 삼았던 수비수로 격렬하고 거친 수비로 상대 공격수를 잠재우는 파이터형 측면 수비수였다.

파르티잔에서 유고슬라비아 탑 리그 4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대표팀에서도 핵심 선수로 활약한 유수피는 1960 로마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1960 UEFA 유로에서는 준우승을 이뤄냈고 1962 칠레 월드컵 4위와 같은 주목받는 성적을 냈으며 대표팀에서 은퇴한 뒤에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분데스리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명성을 떨쳤다.

유수피는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1984년 프랑스 풋볼 역대 포지션별 선수 랭킹 좌우 풀백 부분 공동 6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블라디미르 유고비치
생년월일: 1969년 8월 30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6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대표팀 활약 기간: 1991~2002
A매치 기록: 41경기 3골

 

1990년대 발칸 반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미드필더 전 지역에서 모두 뛰어난 기량을 보여줬을 정도로 다재다능했으며 특히 왕성한 활동량과 우아한 볼 컨트롤, 그리고 날카로운 킬패스와 한 방이 있었던 중거리 슈팅으로 이름을 날리며 팬들로부터 유고슬라비아의 지단이라 불렸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3회 우승과 1990-91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탈리아의 삼프도리아, 유벤투스, 라치오에서도 우수한 활약을 펼쳤던 유고비치는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의 중원의 핵으로 활약했는데 유로 1992에서는 예선에서 통과했지만 내전으로 인해 출전 자격이 박탈되었으며 내전이 종식한 뒤에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에도 참가해 전자의 대회에서는 16강 진출을, 후자의 대회에서는 8강 진출을 이뤄냈다.

 

 

라이트 메짤라

 

 

이름: 라이코 미티치
생년월일: 1922년 11월 19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4kg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46~1957
A매치 기록: 59경기 32골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주로 오늘날의 공격형 미드필더와 처진 공격수에 해당하는 인사이드 포워드 역할을 마았는데 기술적인 패스와 유려한 볼 컨트롤로 유명했으며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주장을 역임하며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마케도니아 등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진 대표팀을 분란 없이 잘 이끈 훌륭한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공식전 572경기에 나서 262골을 득점했으며 리그와 도메스틱 컵대회를 각각 5회 우승했던 미티치는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주장이자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1948 런던 올림픽과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조국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지만 전자의 대회에서는 그레노리 삼총사에게, 후자의 대회에서는 매직 마자르에게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과 1954 스위스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 구단측은 이런 미티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홈구장 이름을 라이코 미티치로 변경했다.

 

 

레프트 메짤라

 

 

이름: 드라고슬라프 세큘라라치
생년월일: 1937년 11월 8일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4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1956~1966
A매치 기록: 41경기 6골

 

1950년대 하반기와 1960년대 상반기 유고슬라비아를 대표하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우수한 턴 동작과 유려한 드리블로 상대의 압박을 쉽게 따돌렸으며 우수한 전술안과 창의적인 패스를 앞세운 플레이메이킹에도 능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5회 우승과 유고슬라비아 컵 3회 우승을 이뤄낸 세큘라라치는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절륜한 활약을 펼쳤는데 1956 멜버른 올림픽 은메달을 시작으로 UEFA 유로 1960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62 칠레 월드컵에서도 4강에 올랐다. 그리고 두 대회에서 모두 올스타 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3회 연속으로 선정되어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준결승 진출을 이끌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4위에 올랐던 세큘라라치는 한국과의 인연도 있는데 1996년에는 부산 대우 로얄즈의 감독으로 잠시 부임하기도 했다.

 

 

라이트윙

 

 

이름: 밀로스 밀루티노비치
생년월일: 1933년 2월 5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7kg
포지션: 라이트윙, 포워드,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53~1958
A매치 기록: 33경기 16골

 

1950년대를 수놓은 라이트윙으로 전성기가 짧고 폐 질환으로 꾸준하게 출전할 수 없었지만 전성기 기간에는 민첩한 몸놀림과 창의적인 드리블 돌파와 득점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레알 마드리드와 인테르가 그를 탐내기도 했다.

파르티잔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유러피언 컵의 첫 번째 득점왕에 오른 밀루티노비치는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1954 스위스 월드컵과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주전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출전해 조국의 8강 진출을 이뤄냈다.

 

 

레프트윙

 

 

이름: 드라간 자이치
생년월일: 1946년 5월 30일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7kg
포지션: 레프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64~1978
A매치 기록: 85경기 23골

 

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한 윙어로 평가받으며 매직 드라간이라 불렸을 정도로 환상적인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진을 장판파의 조자룡처럼 휘저었으며 강력하면서도 정교한 슈팅은 물론 크로스도 우수해 20세기 최고의 왼발 크로서라 불렸으며 여기에 수비 가담까지 완벽하게 하며 시대마저 앞서 나간 불세출의 윙어였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리그 5회 우승과 컵 4회 우승, 그리고 1968년 미트로파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에 오른 자이치는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의 활약도 대단했는데 특히 1968 유로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주며 토너먼트에 진출한 네 팀 중 가장 약하다고 평가받았던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을 이끌어 준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우며 득점왕과 대회 베스트 일레븐을 석권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도 조별리그에서 브라질과 스코틀랜드를 제치고 조 1위로 8강 2차 조별리그에 진출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유로 1976에서도 조국의 4위를 이끌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재차 선정되었다.

특히 유로 1968에서의 충격적인 활약은 특별하게 다시 설명해도 부족함이 없는데 이 활약을 본 세계 최고의 공격수 펠레는 "자이치는 발칸 반도가 낳은 기적입니다. 진정한 마법사죠. 그가 브라질리안이 아니라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는 제가 이제껏 보아온 선수 중 가장 자연스럽게 축구하는 사나이예요."라고 평가했으며 최고의 수비수 베켄바우어는 "1968년 발롱도르는 누가 뭐래도 드라간 자이치의 것이었습니다. 조지에게는 미안하지만, 1968년은 자이치의 해였어요. 그는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보여줬죠."라고 말했을 정도로 대단했다.

자이치는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7회 선정되어 1968년에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3위에 올랐으며 2004년에 UEFA 주빌리 어워드에서 세르비아 대표로 선정되었으며 2020년에 프랑스 풋볼이 선정한 발롱도르 드림팀에서는 왼쪽 공격수 부문 노미네이트로 선정되었다.

 

 

스트라이커

 

 

이름: 밀란 갈리치
생년월일: 1938년 3월 8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5kg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대표팀 활약 기간: 1959~1965
A매치 기록: 51경기 37골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린 인사이드 포워드로 기술적인 드리블과 섬세한 볼 컨트롤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며 우수한 신체 밸런스를 활용한 몸싸움과 양발과 머리를 가리지 않는 득점력도 대단해 수비수의 입장에서는 막기 어려운 선수였다.

파르티잔에서 유고슬라비아 리그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낸 갈리치는 UEFA 유로 1960 준우승을 이뤄내며 대회 득점왕과 팀 오브 토너먼트를 석권했고 1960 로마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거는 과정에서 득점왕까지 석권했다. 플레이오프에서 대한민국을 홈과 원정에서 모두 꺾고 올라온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세큘라라치, 예르코비치와 공격 편대를 이루며 준결승 진출을 이끌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8위에 올랐고 그 해에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체육인에게 주는 골든 벳지를 받았다.

 

 

감독

 

 

이름: 보슈코 시모노비치

생년월일: 1898년 2월 12일

부임기간: 1930~1940

 

유고슬라비아 축구계의 아버지 격의 존재로 선수 시절에도 대표팀의 첫 주장에 임명되었으며 선수 은퇴 이후에는 본업은 건축가였지만 본업보다도 부업인 축구 업무에 종사하며 처음에는 심판을 맡았지만 썰매를 타다가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심판을 그만두고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의 감독을 맡아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 참가해 조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는데 그 과정에서 장거리 항해 원정이라는 핸디캡을 안고도 브라질을 2-0으로 꺾었으며 1934년에는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서 8-4로 대승을 거두며 브라질에게 강력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지도자 은퇴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의 첫 스포츠 일간지인 스포르트 다이어리를 창립했는데 현장과 대중을 연결하는 창구를 마련하며 축구의 대중화에도 크게 공헌했다.

자신의 제자인 티르나니치가 가시적으로는 더 좋은 성과를 이뤄냈지만 세르비아인들은 유고슬라비아 축구 태동기를 이끈 시모노비치의 업적을 높게 평가했기에 그를 세르비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뽑았다.

 


토르난테 선정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베스트 일레븐

 


25인 스쿼드 / 서브 14인

 

 

 

이름: 일리야 판텔리치
생년월일: 1942년 8월 2일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5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64~1968
A매치 기록: 18경기 19실점 / 5클린시트

 

1960년대 후반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골키퍼로 후배 드라간 판텔리치와 함께 골 넣는 골키퍼로 유명했는데 페널티킥을 잘 찼으며 1963년에는 FK 트레슈네프카와의 경기에서 골키퍼로서는 세계 최초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보이보데나의 1965-66 시즌 유고슬라비아 탑 리그 우승을 이끌며 쇼슈키치의 후계자로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 선발되었고 대표팀에서는 유로 1968에서 조국의 준우승을 이끌었는데 결승전에서 디노 조프와 선방 대결을 펼치며 무승부를 거두었으나 재경기에서는 루이지 리바와 아나스타시를 막지 못하고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대표팀 은퇴 이후에는 리그앙에서 활약하며 1970-71 시즌 마르세유에서 백업 멤버로 리그앙 우승을 경험했으며 마르세유를 떠난 이후에는 바스티아와 파리 생제르맹에서도 활약했다.

 

 

 

이름: 드라간 판텔리치
생년월일: 1951년 12월 9일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9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79~1984
A매치 기록: 19경기 2골 23실점 / 6클린시트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골키퍼로 우수한 킥력을 바탕으로 선배 일리야 판텔리치와 함께 골 넣는 골키퍼로 유명했으며 페널티킥으로 프로 통산 20골 넘게 득점했다.

FK 라드니치키 니시에서 활약하며 스포르트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으며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1980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2 스페인 월드컵에 주전으로 참가했으며 대표팀 은퇴 이후에는 프랑스의 지롱댕 보르도에서 잠시 활약했다.

 

 

 

이름: 시니사 미하일로비치
생년월일: 1969년 2월 20일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5kg
포지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레프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91~2003
A매치 기록: 63경기 10골

 

축구 역사상 프리킥을 가장 잘 차는 선수 중 한 명이자 축구 역사상 가장 난폭한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혔으며 원래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중앙 수비수로 정착했던 선수로 강력한 피지컬을 기반으로 한 몸싸움 능력과 우수한 킥력으로 빌드업 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끼쳤으며 데드볼 상황에서의 프리킥을 활용한 득점에도 능했는데 1998-99 시즌에는 라치오 소속으로 친정팀 삼프도리아를 상대로 프리킥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빅이어를 드는데 공헌했으며 삼프도리아에서는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했으며 라치오에서는 1998-99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과 1999-2000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낸 미하일로비치는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했는데 유로 1992에서는 예선을 통과했고 엔트리에도 들었지만 조국에서 발발한 내전으로 인해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고 내전이 수습된 이후인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에 참가해 전자의 대회에서는 16강에 올랐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8강에 올랐다.

피를로와 함께 세리에 역대 최다 프리킥 득점자 타이틀 기록 보유자인 미하일로비치는 ESM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으며 1999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이름: 밀루틴 이브코비치
생년월일: 1906년 3월 3일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8kg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25~1934
A매치 기록: 39경기 0골

 

유고슬라비아 축구 태동기에 활약했던 수비수로 당시 2-3-5 시스템의 라이트 풀백으로 활약했으며 엄청난 운동 능력과 강력한 완력, 그리고 강인한 투지에서 나오는 대인 수비로 이름을 날렸으며 운동선수로서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지녔고 상대를 항상 존중할 줄 알았다.

SK 유고슬라비아에서 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에는 SK 바스크에서 활약한 이브코비치는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과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 주전 수비수로 참가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조국의 준결승 진출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축구선수였지만 학업도 병행하며 베오그라드 의대를 졸업해 의사로 활약했던 이브코비치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유고슬라비아의 예비군 장교로 복무했으나 사회주의 활동 이력과 레지스탕스 활동 이력으로 인해 나치 독일에 의해 체포되어 살해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이름: 블라디미르 두르코비치
생년월일: 1937년 11월 6일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59~1966
A매치 기록: 50경기 0골

 

1960년대 유럽 정상급 라이트백 중 한 명으로 스피드가 빠르고 전투적인 몸싸움을 활용한 대인 수비를 보여주며 상대 수비수를 제압해 그를 상대하는 공격수는 그 누구라도 쉽게 플레이하지 못했으며 우수한 패싱력으로 공격 작업을 돕는 부분에도 능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유고슬라비아 리그 5회 우승을 이뤄낸 두르코비치는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유로 1960에서 준우승을 이뤄내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1960 로마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준결승 진출을 도왔다.

대표팀에서 은퇴한 뒤 프랑스의 셍테티엔에서 활약하며 리그앙 3연패를 이뤄내며 구단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스위스의 시옹에서도 활약했으나 시옹에서 활약하던 시절 한 경찰관이 쏜 오발탄에 맞아 허무한 최후를 맞았다.

 

 

 

이름: 알렉산다르 콜라로프
생년월일: 1985년 11월 10일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1kg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레프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2008~2020
A매치 기록: 94경기 11골

 

발칸의 호베르투 카를루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레프트백으로 스피드가 빠른 편이 아니고 수비 복귀 속도는 늦어 수비적인 부분에서의 리스크가 있었으나 적극적인 오버래핑에 이은 강력한 왼발 킥력을 활용한 크로스로 공격 기회를 만들었으며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로 활약하기도 했으며 선수 생활 후기에는 우수한 신체 조건을 활용해 센터백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프리미어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탈리아 연고의 라치오와 로마에서도 활약한 콜라로프는 세르비아 대표팀에서도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10 남아공 월드컵, 그리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특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활약했다.

2011년 세르비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콜라로프는 그가 활약하던 기간 동안에는 5대 리그에서 리오넬 메시 다음으로 많은 프리킥 득점을 기록했다.

 

 

 

이름: 네마냐 마티치
생년월일: 1988년 8월 1일
신체조건: 키 194cm / 몸무게 85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2008~2019
A매치 기록: 48경기 2골

 

2010년대 중반 잉글랜드 무대를 풍미했던 수비형 미드필더로 순발력은 다소 떨어졌지만 강력한 스테미너와 압도적인 몸싸움 능력을 바탕으로 상대 공격진을 막아냈으며 슛 테크닉이 우수해 상대방이 예측하지 못하는 타이밍에 멋진 중거리 슈팅으로 골망을 가르는 명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첼시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프리미어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2014-15 시즌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오래 머문 마티치는 세르비아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조별리그 전 경기에 출전했다.

마티치는 2014년과 2015년에 세르비아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다.

 

 

 

이름: 부야딘 보슈코프
생년월일: 1931년 5월 16일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5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라이트백, 레프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51~1958
A매치 기록: 57경기 0골

 

1950년대 유고슬라비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하프백으로 왕성한 활동량으로 공수 양면에서 많은 기여를 했는데 우수한 원터치 플레이로 동료들에게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적절한 커버 플레이로 수비라인 지원도 능숙하게 수행했다.

선수 시절 전성기를 보이보디나에서 보냈으며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1954 스위스 월드컵과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도 모두 주전 라이트 하프로 참가해 조국의 8강 진출을 이뤄냈다.

보슈코프는 훗날 감독으로도 성공해 레알 마드리드의 라리가 우승과 삼프도리아의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유로 2000 8강 진출을 이뤄냈다.

 

 

 

이름: 데얀 스탄코비치
생년월일: 1978년 9월 11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5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98~2013
A매치 기록: 103경기 15골

 

2000년대 세르비아 축구계가 낳은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중 한 명으로 중앙 미드필더와 측면 미드필더, 그리고 트레콰르티스타를 모두 소화하는 우수한 멀티플레이어이자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줬으며 대포 같은 중거리 슈팅 능력을 보유해 팬들에게 드래곤이라 불렸다.

라치오에서 1999-2000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으며 인터 밀란에서는 세리에 A 5연패와 2009-10 시즌 트레블을 이뤄냈던 스탄코비치는 대표팀에서도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을 정도로 오래 활약했는데 유고슬라비아 시절에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데뷔해 백업 멤버로 활약했으며 유로 2000에서는 주전으로 도약해 8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시절에는 2006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 스페인을 꺾고 무패로 올라왔으나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으며 세르비아 소속으로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해 주장 완장을 차고 활약하며 독일과의 경기에서 승리에 기여하기도 했다.

세 가지의 국명으로 국제대회에 참가한 기록을 세운 스탄코비치는 2006년과 2010년 세르비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2006-07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이름: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생년월일: 1965년 3월 3일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0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중앙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83~2001
A매치 기록: 84경기 15골

 

1980년대와 90년대 유고슬라비아 축구계의 간판스타로 유려한 볼 컨트롤 능력과 상대의 수비라인을 궤멸시키는 날카로운 쓰루패스로 득점 찬스를 창출하는데 능했던 클래식한 공격형 미드필더였으며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요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리그 우승 2회를 이뤄내며 리그 MVP를 2회 수상한 스토이코비치는 분리 이전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 활약하며 UEFA 유로 1984에 나섰고 1984 LA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1988 서울 올림픽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해 후자의 대회에서는 8강에 진출했음은 물론 스토이코비치 본인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그러나 당대 유럽 최강의 전력을 가진 팀 중 하나였던 마르세유로 이적했으나 마르세유에서 적응에 실패했으며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자국리그도 붕괴되고 유로 1992 참가권도 박탈되는 등 고통을 겪자 당시 엄청난 투자로 리그를 부흥시켰던 일본 J리그의 나고야 그램퍼스로 이적해 활약하며 일왕배 2회 우승을 이뤄냈고 개인적으로도 J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1995년에는 리그 MVP를 수상하며 폼을 되찾은 스토이코비치는 분리 이후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의 주장을 맡아 1998 프랑스 월드컵 16강과 UEFA 유로 2000 8강 진출을 이뤄냈다.

 

 

 

이름: 알렉산다르 티르나니치
생년월일: 1910년 7월 15일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6kg 
포지션: 라이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29~1940
A매치 기록: 50경기 12골

 

유고슬라비아 축구 태동기에 활약했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우수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벗겨냈으며 뒷공간으로 침투해 날카로운 슈팅을 노리는 부분과 크로스로 스트라이커를 지원하는 부분에 모두 능했다.

BSK 베오그라드에서 센터 포워드 마르야노비치와 듀오를 이뤄 활약하며 통산 500경기에 나서 527골을 득점했고 유고슬라비아 리그 5회 우승을 이뤄낸 티르나니치는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 나서며 조국의 준결승 진출에 공을 세웠다.

선수 이후에는 감독으로도 이름을 날리며 두 번의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했으며 유로 1960 준우승과 1960 로마 올림픽 금메달을 이뤄내는데 기여했다.

 

 

 

이름: 보라 코스티치
생년월일: 1930년 6월 14일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2kg
포지션: 레프트윙, 포워드,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56~1964
A매치 기록: 33경기 26골

 

1960년대 초반 동유럽 축구계를 흔들었던 아웃사이드 레프트이자 스트라이커로 우수한 공간 이해와 신속정확한 상황 판단력을 토대로 한 지능적인 컷인 플레이와 높은 수준의 전술 이해도와 강력하면서도 정확한 슈팅력을 겸비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활약하며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7회 우승을 이뤄내며 두 차례의 득점왕을 차지한 코스티치는 유고슬라비아 대표팀 소속으로도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며 1955-1960 중유럽컵에서 데뷔했으며 1960 유로에서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60 로마 올림픽에서도 6골을 득점하며 금메달을 차지하는데 공헌하는 등 두 대회에서 우수한 활약을 펼치며 1960년 발롱도르 12위에 올랐지만 부상으로 1962 칠레 월드컵은 참가하지 못했다.

 

 

 

이름: 블라고예 마르야노비치
생년월일: 1907년 9월 9일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2kg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라이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26~1938
A매치 기록: 58경기 37골

 

유고슬라비아 축구 태동기에 활약했던 다재다능한 공격수로 커리어 초창기에는 킬패스로 골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 맛을 들려서 많은 득점을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BSK 베오그라드 이적 이후로는 철저하게 득점을 노리는 스타일로 바꿨는데 슈팅 파워는 평범했지만 정확한 슈팅으로 수많은 득점을 기록했으며 양발과 머리는 물론 발뒤꿈치와 가슴, 심지어는 배로 득점하기도 했으며 프리킥에도 능했으며 축구 지능이 높아 동료들과의 연계에도 능했다.

BSK 베오그라드에서 아웃사이드 라이트 티르나니치와 듀오를 이뤄 활약하며 통산 566경기에 나서 575골을 득점했고 유고슬라비아 리그 5회 우승을 이뤄낸 마르야노비치는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과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 참가해 후자의 대회에서는 주전으로 도약해 준결승 진출에 공을 세웠다.

1934년에는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8-4 대승을 기록하며 이 경기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마르야노비치를 칭찬했는데 그중에는 오스트리아 분더팀을 이끈 전설적인 명장 후고 마이슬도 있는데 그는 마르야노비치가 분더팀에 있었으면 완벽한 팀이 되었을 것이라고 극찬했다고 전해졌다.

 

 

 

이름: 토도르 베셀리노비치
생년월일: 1930년 10월 22일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4kg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윙어

대표팀 활약 기간: 1953~1961
A매치 기록: 37경기 28골

 

1950년대 유고슬라비아를 대표했던 골잡이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테크닉을 겸비했는데 특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환상적인 슈팅 기술의 소유자였는데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각도에서도 득점을 이뤄낸 명 스트라이커였다.

파르티잔과 보이보디나에서 활약하던 베셀리노비치는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데뷔하며 8강에 올랐고 1956 멜버른 올림픽에서는 4골을 득점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1955-1960 중유럽컵과 1958 스웨덴 월드컵에 참가해 활약했다.

 


25인 스쿼드 완성판

 

토르난테 선정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25인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리저브 팀 11인

 

 

 

이름: 페타르 라덴코비치
생년월일: 1934년 10월 1일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4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56
A매치 기록: 3경기

 

초창기 분데스리가를 빛낸 골키퍼이자 축구 골키퍼 발전사에 있어서 절대로 이름이 빠져서는 안 되는 선수로 역사상 최초의 스위퍼키퍼 가우데 한 명으로 알려졌으며 페널티라인 외곽까지 나와 루즈볼을 처리했으며 먼 훗날 대한민국의 김병지처럼 전방으로 드리블을 감행해 많은 팬들을 놀라게 했다.

아런 다소 특이한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대표팀에는 기용되지 못했는데 그래도 1956 멜버른 올림픽에서는 주전 골키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분데스리가의 1860 뮌헨에서 활약하던 시절에는 1963-64 시즌 DFB포칼 우승과 1964-65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준우승, 그리고 1965-66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으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이름: 미로슬라프 주키치
생년월일: 1966년 2월 19일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7kg
포지션: 리베로,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91~2001
A매치 기록: 48경기 2골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리베로형 센터백으로 적절한 타이밍을 노려 공격 진영까지 적극적으로 오버래핑해서 득점 찬스를 만들며 수비 상황에서는 우수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과 깔끔한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의 공격을 차단했으며 특히 페널티킥에 능했다.

데포르티보에서 1994-95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과 라리가 준우승 2회를 이끌며 '수페르 데포르'라 불리던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발렌시아에서도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회, 1998-99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과 2001-02 시즌 라리가 우승을 이끌며 스페인 축구계에 큰 영향력을 끼쳤던 주키치는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자주 소집되었는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로 나섰지만 월드컵 이후 유고슬라비아 수비라인의 지휘자로 활약하며 유로 2000 8강 진출을 이끌었다.

 

 

 

이름: 믈라덴 크르스타이치
생년월일: 1974년 3월 4일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4kg
포지션: 센터백, 레프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99~2008
A매치 기록: 59경기 2골

 

2000년대 세르비아 축구계를 이끌었던 수비수로 선수 초년에는 레프트백에서 활약했지만 우월한 피지컬에서 나오는 강력한 몸싸움과 공중전 경합, 그리고 강함과 정교함을 겸비한 날카로운 태클로 상대를 제압하는데 능숙해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해 전성기를 맞았다.

파르티잔에서 유고슬라비아 리그 3회 우승을 이끈 뒤 독일의 베르더 브레멘으로 건너가 2003-04 시즌 분데스리가와 DFB 포칼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며 샬케로 건너가서도 보르돈, 하피냐 등과 함께 철의 포백을 구성해 분데스리가 정상급 수비수로 활약하던 크르스타이치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비디치, 드라구티노비치와 함께 철의 포백을 구성해 지역예선 10경기에서 단 1실점만을 허용하며 스페인을 제치고 1위로 본선에 진출했으나 본선에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며 탈락했다.

2003-04 시즌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오른 크르스타이치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조국 세르비아의 감독으로 8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켰다.

 

 

 

이름: 페타르 크리보쿠차
생년월일: 1947년 6월 12일
신체조건: 키 184cm
포지션: 라이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72~1974
A매치 기록: 13경기 0골

 

1973년 한 해 동안에는 세계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 명으로 군림했던 선수로 전성기 기간에는 공수 양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리그 3회 우승을 이뤄낸 크리보쿠차는 1973년에 월드 사커지 월드 일레븐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맹활약했지만 1974 서독 월드컵을 앞두고 부상당해 월드컵에 나서지 못했으며 그 뒤에는 기량이 떨어져 다시는 전성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이름: 밀란 다미아노비치
생년월일: 1943년 10월 15일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9kg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67~1968
A매치 기록: 7경기 0골

 

1960년대 후반 유고슬라비아 축구를 이끌었던 레프트백으로 몸싸움에 약하고 스피드도 빠르지 않았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나오는 슬라이딩 태클과 수비하기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보다 더 신체적으로 우수하거나 빠른 공격수들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FK 파르티잔에서 유고슬라비아 리그 2회 우승과 1965-66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차지한 다미아노비치는 1968년 UEFA 유로에서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하며 조국의 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이름: 슬라비사 요카노비치
생년월일: 1968년 8월 16일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6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91~2002
A매치 기록: 64경기 10골

 

1990년대에 발칸 반도와 스페인 무대에서 활약한 수비형 미드필더로 큰 키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제공권 경합과 강력한 힘을 갖췄으며 왕성한 활동량을 통해 중원을 장악했으며 상대 박스 근처에서는 기습적인 중거리포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도 했는데 실제로 1996-97 시즌에는 라리가에서 10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보이보디나와 파르티잔에서 각각 유고슬라비아 리그 우승을 1회씩 이뤄내며 대표팀에 오른 요카노비치는 유로 1992에서도 본선 진출에 힘을 보탰으나 조국이 내전에 휩싸이며 대회 출전권이 박탈되었으며 요카노비치도 전쟁의 참화를 피하기 위해 라리가로 떠났다.

스페인 무대의 테네리페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서 활약하며 후자의 구단에서 라리가 우승을 이뤄낸 요카노비치는 분리 이후 유고슬라비아에서도 유고비치와 함께 중원의 핵으로 활약하며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에 출전해 전자의 대회에서는 16강에 진출했고 후자의 대회에서는 8강에 진출했다.

 

 

 

이름: 요반 아치모비치
생년월일: 1948년 6월 21일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8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68~1976
A매치 기록: 55경기 3골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 유고슬라비아 무대 정상급 플레이메이커 중 한 명으로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주로 뛰었는데 스피드는 느렸지만 영리한 탈압박 기술과 효과적인 킬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데 능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유고슬라비아 리그 4회 우승과 컵대회 3회 우승을 이뤄낸 아치모비치는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오랜 기간 좋은 모습을 보였는데 약관의 나이에 유로 1968에 주전으로 나서며 조국의 결승 진출에 공헌했고 1974 서독 월드컵과 유로 1976에서는 또 다른 위대한 미드필더 브란코 오블락과 조합을 이뤄 전자의 대회에서는 8강 2차 리그에 올랐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4위를 차지했다.

요반 아치모비치는 서독 월드컵과 소속팀에서의 활약을 앞세워 1974년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이름: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
생년월일: 1995년 2월 27일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3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2017~
A매치 기록: 38경기 7골

 

2010년대 후반과 2020년대 초반에 걸쳐 세리에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로 군림한 선수로 박스 투 박스 유형의 육각형 미드필더로 거대한 신체조건을 앞세운 우수한 경합 능력과 헤더로 공수 양면에 크게 기여했으며 수비적으로도 우수했으며 탱크와 같은 드리블과 몸싸움을 적극 활용한 탈압박에도 능했다.

라치오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팀을 리그 상위권으로 올렸으며 2018-19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내며 2018-19 시즌 세리에 A 최오수 미드필더를 수상했으며 세리에 A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된 밀린코비치사비치는 세르비아 대표팀에서도 중원의 핵으로 활약하며 2018 러시아 월드컵과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조국의 본선 진출을 이끌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카메룬을 상대로 득점포를 뿜어내기도 했다.

 

 

 

이름: 일리야 페트코비치
생년월일: 1945년 9월 22일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0kg
포지션: 레프트윙, 라이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68~1974
A매치 기록: 43경기 6골

 

드라간 자이치에 가려진 또 다른 유고슬라비아 정상급 윙어로 클럽에서는 레프트윙으로 활약했지만 대표팀에서는 자이치의 존재로 인해 라이트윙에서 활약했는데 빠른 스피드와 교묘한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진을 괴롭혀 세간으로부터 카라부르메의 태풍이라 불렸다.

OFK 베오그라드에서 활약하며 1965-66 시즌 유고슬라비아컵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운 페트코비치는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유로 1968 우승과 1974 서독 월드컵 8강 2차 리그 진출에 공헌했다.

 

 

 

이름: 사보 밀로세비치
생년월일: 1973년 9월 2일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2kg
포지션: 스트라이커, 라이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94~2008
A매치 기록: 102경기 37골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여러 나라가 분리 독립한 직후에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을 이끌었던 스트라이커로 쉬운 찬스를 많이 놓쳐 Miss-a-lot-evic, 즉 많이 놓치는 에비치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도 불렸지만 견고한 피지컬과 강력한 왼발로 상대 수비수를 어렵게 만드는 공격수였다.

파르티잔에서 리그 2회 우승을 이끌었으며 아스톤 빌라를 거쳐 라리가의 레알 사라고사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99-2000 시즌에는 라리가 21골을 득점한 밀로세비치는 전후 유고슬라비아 대표팀 소속으로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에 참가해 전자의 대회에서는 16강에 진출했고 후자의 대회에서는 조국의 8강 진출을 이끌며 밀로세비치 개인은 대회 득점왕에 오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이후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소속으로 2006 독일 월드컵에 참가했다.

 

 

 

이름: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
생년월일: 1994년 9월 16일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90kg
포지션: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2013~
A매치 기록: 79경기 52골

 

현세대 세르비아 대표팀의 핵심 공격수로 선수 생활 초창기에는 우수한 헤더를 앞세워 득점만 노렸던 스트라이커였지만 프리미어리그를 거치면서 우수한 신체조건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제공권 경합 능력을 바탕으로 포스트 플레이에 능했으며 발밑도 제법 뛰어났으며 양발과 머리를 모두 활용해 득점을 노리는 스트라이커다.

파르티잔에서 세르비아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안더레흐트에서도 2013-14 시즌 벨기에 리그 우승과 2014-15 시즌 리그 득점왕에 올랐으며 잉글랜드의 뉴캐슬과 풀럼에서는 득점력이 많이 줄었지만 2021-22 시즌 챔피언십에서 44경기 43골을 기록한 뒤 현재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스탭 업한 모습을 보여줬다.

세르비아 대표팀에서는 블라호비치와 요비치의 도전을 물리치고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세르비아 대표팀 통산 A매치 최다 득점자 자리에 오른 미트로비치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쳐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음에도 2018 세르비아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으며 2022 카타르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는 무려 포르투갈과의 최종전에서 결승골을 득점하며 본선 직행을 확정지었으며 미트로비치 개인도 8골을 득점하며 6골을 득점한 호날두를 제치고 UEFA 유럽예선 A조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오르는 등 맹활약했지만 본선 무대에서는 팀 전체적으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시리즈의 선정 기준은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 50%와 선수 자체의 위상 50%를 합산해서 올스타 팀을 짭니다.

* 국가대표팀으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선수는 당연하게도 선정에서 제외합니다.

* 과거 다수의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선수들은 더 많은 활약을 한 국가대표팀으로 선정합니다.

* 세르비아 대표팀의 기록에는 분리 독립 이전 유고슬라비아의 기록도 합산했습니다.

* 현역 선수들의 스탯은 2022년 12월 13일 기준입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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