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 페냐롤 역대 올스타 팀

클럽 올스타 짜보기/CONMEBOL

CA 페냐롤 역대 올스타 팀

토르난테 2022. 5. 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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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 페냐롤 (CA Peñarol)

 

창단: 1891년 9월 28일

소속리그: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연고지: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홈구장: 에스타디오 캄페온 델 시글로

프리메라 디비시온: 51회 우승 (최다 우승)

토르네로 데 아더 (1967년 폐지): 10회 우승

토르네오 컴페텐시아 (1990년 폐지, 비정기적으로 열리던 대회): 11회 우승

토르네오 쿼드라굴라르: 5회 우승

수페르코파 우루과이 (2018년 시작): 2회 우승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5회 우승 (1960, 1961, 1966, 1982, 1987)

인터컨티넨탈컵: 3회 우승 (1961, 1966, 1982)

IFFHS 선정 20세기 최고의 남아메리카 축구 클럽 1위

 


베스트 11

 

골키퍼

이름: 라디슬라오 마주르키에비츠
출생년도: 1945년 2월 14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9kg

활약 기간: 1964~1971, 1981
통산 기록: 최소 183경기

 

레프 야신이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던 1970년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작은 키에도 멀리 튕겨내는 펀칭력과 괴물 같은 반사신경과 탄력적인 점프, 그리고 1대 1 상황에서의 침착한 전진 수비와 볼 컨트롤 능력까지 우수했던 완성형 골키퍼였다.

아우리네그로스 군단의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이뤄낸 마수르키에비치는 1966 시즌에는 비록 자국 리그 우승컵을 나시오날에게 내줬지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을 제패하며 남미와 유럽 대륙을 평정했으며 1968 시즌에는 리그 18경기에서 단 5실점만을 기록했음은 물론 987분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최장 시간 무실점 기록을 세웠고 1969년에는 역대 인터콘티넨탈 우승팀끼리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인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스 슈퍼컵에서도 우승을 이뤄냈다.

1969년, 아르헨티나의 스포츠 언론지 엘 그라피코로부터 1960년대 남미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된 마주르키에비츠는 1971년 최초의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7위에 랭크되었다.

 

리베로

이름: 엘리아스 피게로아
출생년도: 1946년 10월 25일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1kg

활약 기간: 1967~1972
통산 기록: 241경기 7골

 

유럽의 베켄바우어에 대한 남미의 대답이라 평가받았던 리베로로 공수 양면에서 완벽했으며 큰 체격을 활용한 제공권 장악 능력은 실로 감탄을 할 만했으며 큰 키에도 몸이 굉장히 유연했고 아주 민첩했으며 수비라인 조율 능력도 뛰어나 마티아스 잠머와 함께 오프사이드 트랩을 가장 잘 구사하던 선수다. 그리고 공격 전개 능력은 물론 세트피스 상황에서 헤딩 득점에도 능했다.

페냐롤에서 세계적인 수비수로 성장한 피게로아는 아우리네그로스의 수비진을 이끌고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2연패에 공헌했으며 특히 1968 시즌에는 골키퍼 마주르키에비츠, 라이트백 파블로 포를란과 함께 견고한 수비를 선보이며 리그 18경기에서 단 5골만 내줬으며 1969년에는 역대 인터콘티넨탈 우승팀끼리 최강자를 가리는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스 슈퍼컵을 우승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은 피게로아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최고의 선수상을 3회 수상했으며 현역에서 은퇴한 뒤인 2000년에는 20세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선정되었다.

 

센터백

이름: 윌리엄 마르티네스
출생년도: 1928년 1월 13일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91kg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활약 기간: 1955~1962
통산 기록: 기록 미상

 

1950년대와 60년대 우루과이 무대에서 롱런한 센터백으로 당시로서는 드문 192cm라는 압도적인 피지컬을 이용해 상대를 찍어 누르는 플레이에 능했으며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헤더로 상대의 골문을 위협했으며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수비라인을 지휘했음은 물론 수비라인을 넘어 선수단 전체를 아우르는 훌륭한 리더십을 보였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데뷔했으나 자리잡지 못하고 팀을 떠나 중위권 람플라 주니오르스에서 잠재력을 만개해 우루과이 대표팀에 뽑혔고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페냐롤에 입단했다. 페냐롤에서 전성기를 누린 마르티네스는 바렐라의 뒤를 이어 아우리네그로스의 주장으로 활약하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5연패를 포함해 국내의 크고 작은 12개의 트로피를 들며 우루과이 무대를 페냐롤의 독무대로 만들었다.

우루과이 무대에서의 압도적인 활약을 남미 무대에서도 이어나간 마르티네스는 1960년에는 최초로 열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우승하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컵을 든 최초의 주장으로 이름을 남긴 마르티네스는 최초의 인터콘티넨탈컵을 든 주장 자리도 노렸으나 레알 마드리드에 밀려 아쉽게 실패했다. 1961년에도 펠레의 산투스를 꺾고 브라질 전국 무대를 평정한 파우메이라스와의 결승에서 1승 1무를 거두며 우승컵을 들며 2연패를 이뤄냈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에우제비우를 앞세운 벤피카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우루과이, 남아메리카, 그리고 세계 무대를 제패하며 트레블을 이뤄내며 정상의 자리에서 명예롭게 팀을 떠나 중소 규모의 구단에서 선수생활을 이어나갔다.

 

센터백

이름: 옵둘리오 바렐라
출생년도: 1917년 9월 20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0kg

활약 기간: 1943~1955
통산 기록: 최소 302경기 72골

 

당대 최고의 센터하프이자 역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로 강건한 피지컬과 정밀도 높은 패싱력, 그리고 대포알과도 같은 중거리 슈팅을 모두 갖춘 선수였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정신력을 지녔으며 검은 우두머리라 불렸을 정도로 리더십이 뛰어나 동료들을 잘 지휘했음은 물론 수비수로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다.

군소팀 몬테비데오 원더러스에서 첫 전성기를 보내다가 1942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하며 명문팀들의 주목을 받았고 결국 1943년에 페냐롤에 합류한 바렐라는 아우리네그로스에서 1949 시즌,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16승 2무의 성적으로 무패 우승을 이뤄낸 업적을 포함해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을 포함해 우루과이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20개의 트로피를 들며 맹활약했다.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루과이의 월드컵 우승을 이끈 이력으로 유명한 바렐라는 1996년에 별세했는데 사후 1999년에 IFFHS 선정 20세기 남아메리카 최고의 축구선수 13위에 올랐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네스트로 곤칼베스
출생년도: 1936년 4월 27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리베로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56~1970
통산 기록: 574경기 30골

 

1960년대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뛰어난 예측력을 바탕으로 한 인터셉트와 클리어링을 보였으며 우수한 태클 능력을 보여줬으며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과 정확한 패싱력을 앞세워 빌드업에도 크게 관여했으며 리베로로 플레이했을 때도 우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1960년대 페냐롤 왕조를 재창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팀의 공수 밸런스를 탄탄하게 잡았던 곤칼베스의 활약으로 인해 그가 활약하는 동안 페냐롤은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9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에서 16개의 크고 작은 우승 트로피를 들었고 우루과이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그중 1961년과 1966년에는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벤피카와 레알 마드리드를 차례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고 1969년에는 역대 인터콘티넨탈 우승팀끼리 최강자를 가리는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스 슈퍼컵을 우승을 이뤄내며 아우리네그로스가 1960년대 최고의 축구 구단으로 군림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CA 페냐롤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에 랭크된 곤칼베스는 1966년에는 남미 무대와 세계 무대를 평가한 공을 바탕으로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들었으며 1967년에는 로 스포르트 일루스트라토가 선정한 남미 베스트 일레븐과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동시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라이트 메짤라

이름: 호세 피엔디베네
출생년도: 1890년 6월 5일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윙어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6kg

활약 기간: 1908~1928
통산 기록: 506경기 253골

 

우루과이 축구 초창기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로 높은 수준의 테크닉을 보여줬기에 팬들로부터 마법사라 불렸지만 정작 피엔디베네는 효율적인 플레이를 강조해 효율적인 드리블과 패스로 경기를 풀어나갔으며 득점포를 가동하는 부분에도 뛰어났음은 물론 공격지역 전 포지션에서 활약할 수 있었으며 당시로서는 드물게 볼을 잃은 상황에서는 바로 상대 수비수로부터 볼을 다시 빼앗는 수비적인 플레이를 선보이기도 했다.

클럽 커리어 전체를 페냐롤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인 피엔디베네는 20년 동안 팀에 머물며 라이벌 구단 클루브 나시오날의 에이스 앙헬 로마노, 엑토르 스카로네, 페드로 페르토네 등과 라이벌리를 이뤄 활약하며 아우리네그로스의 우루과이 프리미어 디비시온 6회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13개의 트로피를 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팬들의 대단한 지지를 받아 아우리네그로스 최초의 아이콘으로 등극했고 현시점에서도 페냐롤 구단 통산 출전 5위, 통산 득점 3위에 랭크되었다.

 

레프트 메짤라

이름: 후안 스키아피노
출생년도: 1925년 7월 28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9kg

활약 기간: 1943~1954
통산 기록: 최소 227경기 88골

 

적지 마라카냥에서 브라질을 꺾고 월드컵 우승을 이뤄낸 우루과이 축구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자 1950년대 최고의 인사이드 포워드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우수한 테크닉과 넓은 시야, 창의적이면서 정확한 패싱력을 보유했으며 임기응변에 능해 불리한 경기를 여러 번 뒤집었다.

1943년에 페냐롤에서 데뷔해 축구 선수 인생을 시작한 후안 스키아피노는 아우리네그로스의 공격을 이끌며 1949 시즌,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16승 2무의 성적으로 무패 우승을 이뤄낸 업적을 포함해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과 토르네오 데 아너 7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남미 무대를 평정했고 1954 스위스 월드컵이 끝난 뒤 유럽 무대 도전을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다.

 

라이트윙

이름: 페드로 로차
출생년도: 1942년 12월 3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라이트윙, 레프트윙, 포워드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활약 기간: 1959~1970
리그 기록: 159경기 81골
통산 기록: 287경기 234골

 

브라질의 펠레에 대한 우루과이의 대답이라 평가받았던 1960년대 하반기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중 한 명으로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필요한 덕목을 모두 갖춘 것은 물론 우수한 신체 능력과 우수한 득점력마저 겸비해 상대팀의 목숨을 한 순간에 끊어버린다는 뜻의 사형집행인이란 별명으로 불렸으며 초년에는 윙어로 선수생활을 시작했기에 주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 이외에도 좌우 측면공격수와 처진 공격수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페냐롤의 황금기에 데뷔한 로차는 아우리네그로스의 공격을 진두지휘하며 1961년 리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콘티넨탈컵 트레블을 포함해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8회 우승 및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회 우승,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회 우승을 이끌었으며 1969년에는 역대 인터콘티넨탈 우승팀끼리 최강자를 가리는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스 슈퍼컵 우승마저 이뤄내며 1960년대를 페냐롤의 시대로 만드는데 큰 공을 세웠다.

페냐롤 구단 통산 득점 6위에 랭크된 로차는 개인 통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통산 득점 3위에 랭크되었으며 해당 대회에서 그와 자주 붙었던 펠레는 그를 두고 "내가 붙어본 선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라고 평가했다.

 

레프트윙

이흠: 후안 호야
출생년도: 1934년 2월 25일
포지션: 레프트윙,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0kg

활약 기간: 1961~1969
통산 기록: 471경기 70골

 

1960년대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 중 하나로 팬들로부터 검은 11번이라 불렸으며 흑인 특유의 탄력과 재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드리블로 상대의 맨 마킹을 따돌리고 왼발 크로스를 통해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직접 슈팅하는데도 능해 스트라이커로 기용되기도 했다.

알리안사 리마에서 페루 무대를 평정한 뒤 당대 남미 최고의 클럽 페냐롤에 입단한 호야는 아우리네그로스의 좌측면 공격을 이끌며 우루과이 프리미어 디비시온 6회 우승을 포함해 우루과이 무대에서 크고 작은 트로피를 13개를 들었으며 1961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에 이어 그 해에 열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에우제비우를 앞세운 벤피카를 꺾고 페냐롤이 우루과이, 남미, 세계 무대에서 모두 챔피언에 오르는 트레블을 이뤄냈고 1966 시즌에는 우루과이 리그 우승을 라이벌 나시오날에게 내줬지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에 이어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1969년에는 역대 인터콘티넨탈 우승팀끼리 최강자를 가리는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스 슈퍼컵을 우승을 이뤄내며 아우리네그로스가 1960년대 최고의 축구 구단으로 군림하는데 적잖이 공헌했다.

페냐롤 통산 출전 11위에 오른 호야는 팀 커리어뿐만이 아니라 개인으로도 빛났는데 1961년 인터콘티넨탈컵 2차전, 홈경기에서는 벤피카를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하며 5-0 대승을 이뤄냈으며 1967년에는 로 스포르트 일루스트라로 선정 남미 베스트 일레븐과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69년에는 엘 그라피코지가 선정한 1960년대 포지션별 남미 최고의 선수 레프트윙 부문에서 페페, 자갈루, 레오넬 산체스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스트라이커

이름: 알베르토 스펜세르
출생년도: 1937년 12월 6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활약 기간: 1959~1970
통산 기록: 519경기 326골

 

펠레의 라이벌 중 하나로 명성을 떨친 1960년대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이자 에콰도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큰 체격임에도 빠른 스피드와 민첩한 몸놀림을 보여줬으며 특히 헤딩에 능해 마법의 머리라 불렸다. 게다가 인사이드 포워드 출신이었던 만큼 연계 플레이에도 두각을 나타내는 등 대단한 실력을 갖춰 우루과이 축구협회는 그를 귀화시켜 대표팀에 선발하려고 했지만 조국 에콰도르를 포함해 주변 국가들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실현되지는 못했다.

페냐롤 왕조의 주포로 발과 머리를 가리지 않고 득점하며 막강한 득점력을 보여준 스펜세르는 팀 공격의 방점을 찍으며 아우리네그로스의 우루과이 프리미어 디비시온 8회 우승,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회 우승, 인터콘티넨탈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그 과정에서 1961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에 이어 그 해에 열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에우제비우를 앞세운 벤피카를 꺾고 페냐롤이 우루과이, 남미, 세계 무대에서 모두 챔피언에 오르는 트레블을 이뤄냈고 1966년에는 리그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레알 마드리드를 홈과 원정에서 모두 꺾으며 1960년 대회를 설욕했으며  1969년에는 역대 인터콘티넨탈 우승팀끼리 최강자를 가리는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스 슈퍼컵 우승을 이뤄내며 1960년대 페냐롤의 황금기를 이끈 일등 공신으로 이름을 남았다.

페냐롤 왕조를 재창하는 과정에서 페냐롤 구단 통산 출전 5위와 통산 득점 2위에 오른 스펜세르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 4회 수상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 2회 수상을 이뤄냈고 특히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통산 최다 득점자에 랭크되었으며 1967년에는 로 스포르트 일루스트라토 선정 남미 베스트 일레븐 및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69년에는 엘 그라피코 선정 1960년대 남미 최고의 선수 스트라이커 부문 1위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스트라이커

이름: 페르난도 모레나
출생년도: 1952년 2월 2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1973~1979, 1981~1983, 1984
리그 기록: 196경기 203골
통산 기록: 484경기 440골

 

1970년대 우루과이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왼발을 잘 썼으며 골을 찾아 들어가는 저돌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팬들로부터 종마라고 불렸다. 특히 슈팅 스킬이 우수했고 2선으로 내려와 플레이메이킹을 하며 찬스를 만들어가는 능력도 우수한 전천후 공격수였다.

페냐롤 구단 통산 최다 득점, 통산 출전 8위에 랭크된 모레나는 아우리네그로스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82년에는 리그 우승은 물론이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도 연달아 제패하며 트레블을 이뤄냈고 그 과정에서 리그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모두 득점왕에 오르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그 해 남미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쿠, 파우캉, 마라도나에 이어 4위에 랭크되는 맹활약을 펼쳤다.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통산 최다 득점자였음에도 그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에 국가대표팀이 암흑기에 빠진 탓에 남미 대륙 밖에서는 다소 인지도가 떨어지며 저평가를 받는 선수지만 모레나 개인의 활약은 대단해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을 7회 수상했으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도 3회 수상했다. 그리고 페냐롤에 머무는 동안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상 10등 안에 8회 선정되었으며 1975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3위에 랭크되었다.

 

감독

이름: 로베르토 스카로네

출생년도: 1917년 7월 16일

부임기간: 1959~1962

 

남미 축구에서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감독으로 빠른 전진 패스를 바탕으로 상대 수비진을 쉴 새 없이 괴롭히는 공격 축구로 명성을 날렸다.

스카로네는 페냐롤의 지휘봉을 잡고 팀을 이끌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연패를 이뤄냈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연패에 이어 1961년에는 인터콘티넨탈컵에서 에우제비우를 앞세운 벤피카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트레블을 이뤄냈다.

스카로네가 이뤄낸 압도적인 성적 덕에 아우리네그로스는 1960년대 세계 최고의 클럽에 오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토르난테 선정 페냐롤 역대 베스트 일레븐


25인 스쿼드 / 서브 14인

 

이름: 로케 마스폴리
출생년도: 1917년 10월 12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5kg

활약 기간: 1940~1955
통산 기록: 최소 253경기 20골

 

1940년대와 50년대 페냐롤과 우루과이를 대표하는 골키퍼로 큰 키임에도 민첩하며 반사신경까지 겸비했으며 때때로 공격에 가담해 득점포까지 터트렸던 공격형 골키퍼였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데뷔했지만 주전 경쟁에서 난항을 겪고 리버풀 몬테비데오를 거쳐 페냐롤에 입단한 마스폴리는 팀의 주전 수문장으로 활약하며 1949 시즌,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16승 2무의 성적으로 무패 우승을 이뤄낸 업적을 포함해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토르네오 콤펜텐시아와 토르네오 데 아너를 각각 7회 우승하는데 기여하며 아우리네그로스 소속으로 20개의 크고 작은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골키퍼였음에도 아우리네그로스 소속으로 20골이나 득점한 마스폴리는 선수 은퇴 이후에도 페냐롤에서 감독으로도 성공하며 스카로네의 뒤를 이어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과 1966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66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홈과 원정에서 모두 승리하며 6년 전의 패배를 완벽하게 설욕했다.

 

이름: 페르난도 알베스
출생년도: 1959년 9월 4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1kg

활약 기간: 1978~1984, 1985~1986, 1988~1991, 1997
통산 기록: 최소 211경기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남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골키퍼로 빠른 반응속도를 앞세운 탄탄한 선방 능력과 우수한 발밑 기술을 바탕으로 팀의 안정적인 빌드업을 돕는 현대형 골키퍼였다.

남미 5개국을 돌아다니며 여러 팀에서 선수생활을 한 알베스는 페냐롤에서만 네 번이나 선수 생활을 했는데 특히 1기 시절의 활약이 발군으로 6년간 아우리네그로스에 머물면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2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우승까지 경험했으나 1980년에 합류한 베테랑 골키퍼 구스타부 아우베스와 아우베스와의 주전경쟁에서 밀려나며 해외로 나섰으나 다시 돌아옴을 반복했으며 최종적으로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7회 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로베르토 마토사스
출생년도: 1940년 5월 11일
포지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8kg

활약 기간: 1960~1963, 1969~1972
통산 기록: 최소 124경기 6골

 

1960년대 남미 무대 정상급 센터백으로 센터백 치고는 키가 작았지만 용수철 같은 점프력으로 이를 극복했으며 빠른 스피드와 왕성한 지구력을 바탕으로 상대 공격수를 집요하게 몰아세웠으며 특히 면도날 같은 슬라이딩 태클을 활용해 상대 공격수를 효과적으로 제압했다.

페냐롤에서 데뷔한 마토사스는 아우리네그로스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연패를 이뤄냈으며 1961년에는 리그는 물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도 연달아 제패하며 트레블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나 1964년 아르헨티나의 리버 플레이트로 떠났다가 1969년에 다시 아우리네그로스로 돌아와 인터콘티넨탈 슈퍼컵 우승에 공헌했다.

 

이름: 후안 비센테 레즈카노
출생년도: 1937년 4월 5일
포지션: 센터백, 리베로, 라이트백, 레프트백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7kg

활약 기간: 1961~1968
통산 기록: 기록 미상

 

파라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선수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바디밸런스를 바탕으로 완강한 대인 수비로 상대 공격수를 무력화시켰음은 물론 강력한 카리스마와 우수한 전술안으로 완벽한 수비조율을 보여주며 리베로 역할도 훌륭하게 소화하며 파라과이인 사령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미 올림피아에서 파라과이 1부 리그 5연패를 이뤄낸 레즈카노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남미 최고 수준의 클럽 페냐롤로 이적해 활약하며 데뷔 시즌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며 리그는 물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을 모두 제패하며 아우리네그로스의 3관왕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이를 포함해 아우리네그로스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을 포함해 우루과이 국내에서 크고 작은 우승트로피를 13개나 들었다. 1966년에는 비록 리그는 놓쳤지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우승했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홈과 원정, 두 경기 모두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하며 아우리네그로스의 황금기의 수비진을 이끌었다.

 

이름: 파블로 포를란
출생년도: 1945년 7월 14일
포지션: 라이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9kg

활약 기간: 1963~1970, 1976
통산 기록: 최소 237경기 8골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골든볼을 수상한 디에고 포를란의 아버지이자 1960년대 남미 무대를 호령하던 수비수로 험상궂은 외모와는 다르게 세련되고 깔끔하며 매너있는 수비 스타일을 보여주며 팬들로부터 좋은 해골바가지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주 포지션인 라이트백 아외에도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으로 출전해도 제 몫을 다했다.

페냐롤에서 프로무대에 데뷔한 파블로 포를란은 아우리네그로스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6 시즌에는 비록 리그 우승은 놓쳤지만 대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을 제패하며 남미와 유럽 무대 최강의 클럽으로 군림했으며 특히 1968 시즌에는 골키퍼 마주르키에비츠, 리베로 엘라아스 피게로아와 함께 견고한 수비를 선보이며 리그 18경기에서 단 5골만 내줬으며 1969년에는 역대 인터콘티넨탈 우승팀끼리 최강자를 가리는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스 슈퍼컵을 우승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름: 빅토르 로드리게스 안드라데
출생년도: 1927년 5월 2일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2kg

활약 기간: 1952~1957
통산 기록: 기록 미상

 

우루과이 대표팀이 세 개의 별을 다는데 공헌했든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의 조카로 1940년대와 50년대에 이름을 날린 정상급 수비수로 레프트백으로 우루과이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체력과 대인 수비 능력이 좋은 선수였으며 레프트 풀백과 레프트 하프에서 모두 우수한 기량을 보여줬다.

중견팀 센트랄 에스파뇰에서 활약하다가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 조국을 이끈 활약을 바탕으로 강호 페냐롤로 이적해 활약하며 아우리네그로스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2연패를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8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이름: 알바로 헤스티도
출생년도: 1907년 5월 17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레프트백, 센터백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26~1941, 1944
통산 기록: 447경기 26골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서 조국의 우승을 이끈 레프트 하프로 안드라데, 로렌소 페르난데스와 함께 철의 장막이라 불렸던 견고한 하프백 라인을 형성해 활약했으며 중원에서의 센스 있는 플레이로 팀의 볼 소유를 도왔으며 기술적인 태클로 파울 없이 공만 빼내는 플레이와 상대의 패스 흐름을 끊는 지능적인 플레이로 이름이 높았으며 리더십이 뛰어나고 착실해 페냐롤의 주장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고 전해진다.

선수 생활의 전부를 페냐롤에서만 보낸 헤스티도는 아우리네그로스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7회 우승과 토르네오 콤펜텐시아 2회 우승을 이뤄내며 총 9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41 시즌이 끝나고 소속팀 페냐롤의 50주년 기념 경기를 끝으로 은퇴했다가 1944년 9월 22일에 갑자기 페냐롤로 복귀해 두 경기를 더 치르고 완전히 은퇴했다.

밀리터리 스쿨에서 공부했던 이력 때문에 엘 테니엔티, 즉 중위라고 불렸지만 페어플레이를 중시했던 헤스티도는 그의 사후 1966년에 우루과이의 대통령으로 취임한 오스카 헤스티도의 친동생이다.

 

이름; 로렌소 페르난데스
출생년도: 1900년 5월 20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포워드,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1928~1935
통산 기록: 543경기 31골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서 조국의 우승을 이끈 센터 하프로 알바로 헤스티도, 안드라데와 함께 철의 장막이라 불렸던 견고한 하프백 라인을 형성해 활약했으며 마사지사였던 후안 키르슈버그의 말에 따르면 마치 가로등 기둥을 만지는 느낌이 든다고 했을 정도로 단단한 다리 근력에서 나오는 강력한 수비력과 우수한 발기술과 패스 센스는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성을 유지하는 강력한 멘탈을 겸비했고 공격수로도 좋은 활약을 펼쳤는데 특히 1929년 코파 아메리카 페루전에서는 페드로 세아 대신 인사이드 레프트로 출전해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페냐롤 통산 출전 3위에 랭크된 페르난데스는 이적한 첫 시즌에 주장 완장을 찼지만 이후 헤스티도에게 넘어갔음에도 아무런 불만 없이 묵묵히 부주장 역할을 수행하며 아우리네그로스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이뤄냈다.

평소에 유머 감각이 전혀 없었으며 축구에만 미친 수도자 같은 생활을 했다고 전해지는 로렌소 페르난데스는 그의 사후인 2002년에 우루과이 우정사업본부에서 그를 모델로 한 우표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름: 파블로 벵고에체아
출생년도: 1965년 6월 27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1993~2003
통산 기록: 545경기 166골

 

1990년대 우루과이 축구계를 대표하던 중원사령관으로 엘 프로페서, 즉 교수라 불렸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전술안을 가진 선수로 경기장 전체를 관통하는 드넓은 시야와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 그리고 정밀도 높은 중장거리 패스로 팀의 후방 플레이메이킹을 이끌었으며 킥력도 우수해 양발 중장거리 슈팅으로 직접 득점에도 능했다.

몬테비데오 원더러스에서 데뷔해 세비야를 거쳐 페냐롤로 돌아온 벵고에체아는 10년간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아우리네그로스의 프리메라 디비시온 7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은퇴한 시점에서는 페냐롤 통산 출전 2위에 올랐을 정도로 롱런했다.

 

이름: 알시데스 기지아
출생년도: 1926년 12월 22일
포지션: 라이트윙,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2kg

활약 기간: 1948~1953
통산 기록: 최소 169경기 26골

 

1950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득점했던 선수로 당대 남미 최고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빠른 스피드와 상대 수비수를 완벽하게 속여 넘기는 교묘한 발재간을 겸비한 높은 수준의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허문 뒤 날카로운 크로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내는 부분은 물론 골 결정력도 뛰어나 중요한 순간에는 직접 해결하는 클러치 능력도 보여줬다.

페냐롤에서 5년간 활약하며 1949 시즌과 1951 시즌에 두 번 우승했는데 특히 1949 시즌에는 리그에서 16승 2무의 성적으로 무패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페냐롤에서 승승장구하던 기지아의 전성시대는 다소 허무하게 끝났는데 기지아는 경기 중 심판이 자신의 골을 무효처리하자 이에 격분해 심판을 폭행했고 그 대가로 8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으며 우루과이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없게 되자 결국 이로 인해 유럽 팀을 알아보게 되었고, 징계가 끝난 1953년 시즌부터 세리에 A의 AS 로마에서 뛰게 되었다.

 

이름: 훌리오 아바디에
출생년도: 1930년 9월 7일
포지션: 라이트윙, 포워드,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8kg

활약 기간: 1949~1956, 1962~1969
통산 기록: 483경기 142골

 

프랑스인 아버지와 에스파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선수로 엄청난 가속력과 수준 높은 발재간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따돌렸으며 선수시절 초년에는 중앙으로 직접 침하며 날카로운 슈팅으로 마무리하는 플레이를 즐겼으나 베테랑 선수가 된 이후에는 자로 잰 듯한 정확한 오른발 크로스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을 더 선호했고 당대 남미 공격수로서는 드물게 불혹에 가까운 나이까지 롱런했다.

1950 시즌에 페냐롤에서 데뷔해 6년간 활약하며 아우리네그로스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이름을 날리다가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제노아로 이적해 4년간 활약했으며 이후 레코를 거쳐 다시 페냐롤로 돌아와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추가로 이뤄냈으며 1966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회갈색의 머리빛을 했기에 엘 파르도라 불린 아바디에는 페냐롤 통산 출전 10위에 랭크되었으며 아우리네그로스에서 머무는 동안 국내외의 크고 작은 우승컵을 25회 들었다.

 

이름: 이사벨리노 그라딘
출생년도: 1897년 7월 8일
포지션: 레프트윙, 포워드,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8kg

활약 기간: 1915~1921
통산 기록: 최소 212경기 101골

 

1916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 MVP, 득점왕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으며 1910년대 세계 축구계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부업으로 대륙 단위 육상 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다섯 번이나 따냈을 정도로 엄청난 스피드를 활용해 상대 수비라인을 돌파해 득점하는 플레이를 선호했다.

페냐롤에서 7년간 활약했지만 클루브 나시오날의 전성시대에 밀려나며 리그 2회 우승에 그쳤음에도 그라딘 개인의 활약은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이름: 후안 호베르
출생년도: 1926년 10월 8일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49~1960
리그: 136경기 98골
통산 기록: 경기수 미상, 251골

 

195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인사이드 포워드로 사형집행인, 투우사 엘 코도비스 등의 별명으로 불렸으며 강력한 파워와 높은 정확성을 겸비한 벼락같은 슈팅으로 순식간에 득점하며 흐름을 바꿨으며 발기술이 좋고 몸이 다부져 볼을 쉽게 빼앗기지 않았으며 키카 큰 편은 아니었음에도 헤더도 제법 잘 따냈다.

페냐롤 통산 득점 4위에 랭크된 호베르는 원래는 아르헨티나의 코르도바 태생으로 아르헨티나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으나 1949년 페냐롤로 이적했으며 우루과이로 귀화하며 전성기를 누리며 1949 시즌 리그 무패 우승을 포함해 아우리네그로스의 우루과이 프리미어 디비시온 7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총 20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0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도 우승하며 클럽을 최초의 남미 챔피언으로 올렸다.

 

이름: 오스카 미구에스
출생년도: 1927년 12월 5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8kg

활약 기간: 1948~1959
통산기록: 336경기 231골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루과이의 우승을 이끈 스트라이커로 슈팅 능력이 특히 뛰어났는데 강력한 중장거리 슈팅과 정밀도 높은 피니시는 물론 종종 아크로바틱한 슈팅으로도 득점했을 정도로 슈팅 스킬이 뛰어났다.

페냐롤 통산 득점 7위에 랭크된 미구에스는 아우리네그로스의 리그 6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49 시즌에는 리그에서 16승 2무의 성적으로 무패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개인적으로도 리그에서만 20골을 득점하며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에 올랐다.

 


25인 스쿼드 완성판

 

토르난테 선정 페냐롤 역대 올스타 25인 스쿼드


페냐롤 역대 올스타 리저브 팀 11인

 

이름: 왈테르 코르보
출생년도: 1949년 5월 2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활약 기간: 1970~1976
통산 기록: 151경기

 

마주르키에비츠가 브라질 무대로 떠난 이후 우루과이 최고의 수문장으로 골키퍼 치고 작은 키를 가지고 있었지만 용수철을 연상시키는 점프력과 동물적인 반사신경은 물론 신속정확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약점을 극복했다.

페냐롤 유스 출신으로 데뷔했으며 1971년에 마주르키에비츠가 브라질의 아틀레치쿠 미네이루로 떠나자 주전자리를 차지하며 1973년부터 1975년까지 아우리네그로스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연패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름: 넬손 구티에레스
출생년도: 1962년 4월 13일
포지션: 센터백, 리베로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0kg

활약 기간: 1981~1985, 1993~1996
통산 기록: 최소 134경기 4골

 

1980년대 우루과이를 대표하는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초년에는 빠른 스피드와 강건한 피지컬에서 나오는 대인수비로 주목받던 스토퍼였으나 원래부터 발기술이 괜찮고 경험이 쌓이면서 경기 흐름을 읽는 전술안이 한 차원 높아지며 리베로로도 좋은 모습을 보였는데 특히 그가 리베로를 맡았을 때에는 스토퍼 시절의 장점에 더해 후방에서 우수한 패싱력으로 빌드업의 시작점 역할을 완벽에 가깝게 수행했으며 능숙한 수비라인 조율로 팀의 수비진의 리더로 활약했다.

페냐롤의 유스로 4년을 보내다가 1980년에 프로무대에 데뷔한 구티에레스는 아우리네그로스의 리그 2연패를 이뤄냈으며 특히 1982년에는 리그 우승은 물론이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도 연달아 제패하며 남미를 넘어 세계 무대를 제패하며 트레블을 이뤄냈다. 이후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스페인을 떠돌다가 1991년에 다시 페냐롤로 돌아와 활약하며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아우리네그로스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4연패를 이뤄내며 개인 통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이름: 에르네스토 마스체로니
출생년도: 1907년 11월 21일
포지션: 센터백, 레프트백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활약 기간: 1930~1933, 1936~1940
통산 기록: 216경기 9골

 

전설적인 수비수 호세 나사치와 함께 1930년대 우루과이 대표팀의 수비진을 책임졌던 왼발잡이 수비수로 2-3-5 시스템의 레프트 풀백에서 주로 활약했으며 우수한 바디밸런스로 상대 공격수와의 경합을 즐겼으며 특히 터프하면서도 날카로운 태클로 상대를 저지하는데 능숙했다.

올림피아 몬테비데오에서 활약하다가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서 조국을 우승으로 이끈 활약을 인정받아 아우리네그로스의 유니폼을 입었던 마스체로니는 1932년 리그 우승을 이뤄냈지만 팀을 떠나 이탈리아의 인테르 밀란에서 잠시 활약했으며 이후 1936년에 다시 페냐롤로 돌아와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2연패를 이뤄냈다.

 

이름: 빅토르 디오고
출생년도: 1958년 4월 9일
포지션: 라이트백, 레프트백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8kg

활약 기간: 1979~1984
통산 기록: 최소 189경기 5골

 

1980년대 중반 남미 무대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 명으로 양발잡이였으며 이를 이용해 측면에서 중앙으로 볼을 전달하는데 능했으며 정력적인 오버래핑으로 팀의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테크닉이 뛰어나 오버래핑 상황에서는 현란한 발재간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로 상대를 뚫어내며 공간을 만들었다.

1977년 페냐롤 유스팀에 입단해 1979년 첫 1군 데뷔를 이뤄낸 디오고는 아우리네그로스의 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82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까지 제패하며 팀이 남미와 세계 무대를 정복하며 트레블을 이뤄내는데 적잖이 기여했으며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1983년 남아메리카 올해의 투표에서 5위를 기록했다.

여담으로 빅토르 디오고의 아들이 우루과이 대표침 출신 라이트백이면서 레알 마드리드에 잠시 머물렀던 카를로스 디오고다.

 

이름: 알폰소 도밍게스
출생년도: 1965년 9월 24일
포지션: 레프트백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8kg

활약 기간: 1985~1991
통산 기록: 최소 154경기 2골

 

도마뱀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1980년대 후반 남아메리카 프로축구 무대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공수 양면을 아우르는 엄청난 활동량으로 명성을 날렸지만 기본적으로 날카로운 오버래핑으로 측면에서 활로를 뚫었으며 양발을 모두 잘 썼기에 측면에 머물면서 왼발로 크로스를 올리거나 중앙으로 침투해 오른발로 직접 강력한 슈팅을 날려 득점을 노릴 수도 있었다.

페냐롤 유스 출신으로 1985 시즌에 데뷔한 알폰소 도밍게스는 페냐롤에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2연패를 이뤄냈고 1987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내며 아우리네그로스의 다섯 번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컵을 드는데 큰 공을 세웠는데 이는 현재까지 페냐롤의 마지막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컵이다. 도밍게스는 개인적으로도 엘 파이스가 뽑은 남아메리카 올해의 팀에 1987년부터 1989년까지 3년 연속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이름: 오마르 카예타노
출생년도: 1938년 11월 8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레프트백
신체조건: 키 167cm

활약 기간: 1961~1975
통산 기록: 530경기, 득점 미상

 

1960년대 우루과이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팀의 살림꾼으로 수비형 미드필더와 레프트맥에서 주로 출전했으며 한혈마와 같은 지구력을 바탕으로 공수 양면의 광범위한 범위를 부지런하게 뛰어다녔으며 투지 넘치는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를 제압했다.

페냐롤 통산 출전 4위에 랭크된 카예타노는 아우리네그로스의 살림꾼으로 활약하며 정규리그 9회 우승을 포함해 우루과이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16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었으며 데뷔 시즌인 1961 시즌에는 자국리그 우승에 이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을 모두 제패하며 우승을 경험했으며 1966년에는 비록 리그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레프트백으로 선발 출전해 우승을 이뤄내는데 기여하며 남미 대륙과 세계 무대를 평정했다. 그리고 1969년에는 역대 인터콘티넨탈 우승팀끼리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인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스 슈퍼컵에서도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끄는데 공헌했다.

 

이름: 훌리오 세사르 코르테스
출생년도: 1941년 3월 29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2kg

활약 기간: 1958~1959, 1966~1971
통산 기록: 최소 116경기 12골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누린 남미 정상급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강철같은 지구력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과 흑인 특유의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중원의 광범위한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간혹 전방으로 기습적인 킬패스를 찔러주며 득점 찬스를 만들기도 했다.

1958년 페냐롤에 입단했지만 치열한 주전 경쟁으로 인해 여러 팀을 떠돌다가 1966년에 다시 아우리네그로스로 돌아와 곤칼베스와 함께 중원을 이끌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에도 정구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69년에는 역대 인터콘티넨탈 우승팀끼리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인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스 슈퍼컵에서도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끄는데 공헌했다.

 

이름: 루이스 쿠비야
출생년도: 1940년 3월 28일
포지션: 라이트윙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0kg

활약 기간: 1958~1962
통산 기록: 123경기 24골

 

팬들로부터 괴물이라 불렸던 1960년대 최고의 윙어 중 하나로 손꼽히며 빠른 스피드와 화려한 발재간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 돌파에 능했으며 신체밸런스가 우수해 상대의 견제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았으며 뛰어난 양발 사용 능력을 바탕으로 오른발과 왼발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슈팅력을 자랑했던 선수였다.

팀의 에이스 아바디에가 떠난 뒤 1958년에 페냐롤에서 데뷔해 주전 라이트윙 자리를 차지한 쿠비야는 4년 동안 아우리네그로스의 소속으로 활약하며 정규리그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0년에는 팀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의 초대 챔피언 자리를 차지하는데 기여했으며 1961년에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 이어 작년에 우승에 실패한 인터콘티넨탈컵까지 우승했는데 특히 결승 2차전에서 벤피카를 상대로 5-0 대승을 거둔 경기에서의 활약이 대단했다.

쿠비야는 이후 유럽의 FC 바르셀로나로 떠났다가 리버 플레이트를 거쳐 라이벌 구단인 클루브 나시오날로 이적한다.

 

이름: 카를로스 보르헤스
출생년도: 1932년 1월 14일
포지션: 레프트윙,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66cm / 몸무게 68kg

활약 기간: 1949~1960
통산 기록: 최소 154경기 49골

 

1950년대와 60년대 우루과이 축구계에서 명성을 떨친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팬들에게 루초라는 애칭으로 불렸으며 전광석화와 같은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드리블 돌파와 택배와 같이 상대의 머리로 정확히 전달하는 왼발 얼리크로스로 이름을 날렸다.

페냐롤의 유스 팀을 거쳐 1949년에 프로 무대에 데뷔한 보르헤스는 10년간 아우리네그로스의 왼쪽 공격을 이끌며 정규리그 7회 우승을 포함해 우루과이 무대에서 크고 작은 대회에서 20회의 우승 트로피를 들었으며 1960년에는 초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우승을 이뤄내는데 기여하며 팀을 대회 초대 챔피언의 자리에 올렸다.

 

이름: 세베리노 바렐라
출생년도: 1913년 9월 14일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0kg

활약 기간: 1935~1942, 1946~1947
통산 기록: 최소 74경기 46골

 

베레모를 쓰고 경기하는 것을 즐겨 유령 베레모라 불렸던 선수로 1930년대 하반기 페냐롤의 전성기를 이끈 공격수로 인사이드 포워드와 스트라이커를 겸했으며 우수한 볼 컨트롤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의 견제로부터 볼을 잘 지켜냈으며 특히 엄청난 점프력에서 나오는 강력한 헤더로 상대의 골망을 가르는 게 주특기였으며 킥력도 우수해 프리킥을 통한 득점에도 능숙했으며 무엇보다도 경기를 뛸 때에는 항상 투지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리버 플레이트 몬테비데오에서 데뷔했으나 팀은 우승권과 거리가 멀었고 1935년에 페냐롤에 입단한 바렐라는 1935년부터 1938년까지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연속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 새로운 도전을 위해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했다가 1945년에 다시 페냐롤로 돌아왔다. 이때 보카 주니어스는 페냐롤로 다시 돌아가는 그를 잡기 위해 계약금으로 백지수표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바렐라는 내가 벌 수 없는 돈을 받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이름: 호세 사시아
출생년도: 1933년 12월 27일
포지션: 포워드, 라이트윙,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8kg

활약 기간: 1961~1965
통산 기록: 기록 미상

 

1960년대 상반기에 남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다재다능한 공격자원으로 WM 시스템의 아웃사이드 라이트를 선호하지만 소속팀에서는 루이스 쿠비야나 훌리오 아바디에 같은 뛰어난 우측면 공격수들이 있었기에 주로 인사이드 포워드나 센터 포워드에서 뛰었는데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드리블과 센스 넘치는 볼 컨트롤로 상대 수비수의 견제를 뚫어냈으며 팀 플레이에도 장기를 드러내며 동료들과의 간결하면서도 효율적인 연계 플레이로 상대 수비를 공략했으며 상대 골키퍼의 허를 찌르는 슈팅에도 득점에 능했으며 특히 스펜세르와 후안 호야, 페드로 로차와 같은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팀의 페널티킥을 전담했을 만큼 페널티킥을 잘 찼다.

데펜소르 스포르팅과 보카 주니어스를 거쳐 페냐롤에 입단한 사시아는 4년 반 동안 구단에 머물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1년에는 리그에 이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내는데도 큰 공을 세웠는데 특히 인터콘티넨탈컵 3차전에서 각자 1승 1패를 거둔 상황에서 사시아는 멀티골을 넣으며 2-0 완승을 이뤄냈다. 

특히 결승전 2차전에 강했던 사시아는  1961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 2차전에서 파우메이라스를 상대로 동점골을 넣으며 1차전 승리를 지켜냈으며 동년에 열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1차전 원정에서는 벤피카에게 1-0으로 패했지만 2차전에는 10분 만에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기록하며 5-0 대승에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1962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에서도 펠레가 이끄는 산투스를 상대로 1차전에 1점 차로 패배했으며 2차전에도 전반에 2-1으로 끌려다가 스펜세르의 동점골로 2-2 균형을 이루자 사시아는 동점골 득점 2분 후에 직접 역전 결승골을 넣으며 승부를 3차전까지 끌고 가는 활약을 보였다.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기록은 주로 트렌스퍼마켓을 참조합니다. 잘못될 경우 다른 기록을 참조합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기록이 있으면 공식 홈페이지 우선)

*기록 기준은 2023년 1월 20일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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