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UEFA Euro Champion 리뷰] 6편 부활한 스리 백 시스템으로 다시 깨어난 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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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UEFA Euro Champion 리뷰] 6편 부활한 스리 백 시스템으로 다시 깨어난 서독

토르난테 2021. 6. 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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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Euro 1980 챔피언 서독

 

개최지: 이탈리아

본선 대회 기간: 1980년 6월 11일 ~ 1980년 6월 22일

참가국: 서독, 벨기에, 체코슬로바키아, 이탈리아, 네덜란드, 잉글랜드, 스페인, 그리스


머리말

 

2020년에 하기로 했던 UEFA EURO 2020은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으로 1년 뒤인 2021년에 개최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1년 6월 11일 개막하며 터키와 이탈리아의 경기가 열린다. 그렇다 유로 2020까지 약 한 달 남은 것이다.

그래서 유로의 역대 챔피언을 리뷰하는 컨텐츠를 하려고 한다. 월드컵처럼 전 세계인의 축제라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축구 팬들에게는 유로 역시 월드컵 못지않은 큰 행사다.


서독이 우승하기까지

 

 

이 대회부터 대회 진행 방식이 혁신적으로 바뀌었다. 예선 이전부터 개최국을 정해 개최국은 예선을 면제받고 바로 본선으로 진출한다.

그리고 본선 진출권이 기존의 4장에서 8장으로 늘어났다. 개최국을 제외하면 일곱 팀이 예선에서 올라오는 방식이며 지역예선은 조별리그로 치뤄진다.

본선 진출에 성공한 여덟 팀을 두 조로 나누어 8강 조별 리그를 치른 뒤 각 조 1등은 결승전을 치르고 각 조 2등은 3.4위전을 치르는 방식으로 설정되었다.

서독은 7조에서 터키, 웨일스, 몰타를 상대로 4승 2무 17득점 1실점으로 조 1위에 올라 본선에 진출했다.

서독은 그룹 1에 속했다. 전 대회에서 서독을 꺾은 체코슬로바키아, 서독의 라이벌 네덜란드, 그리고 처녀 출전팀 그리스가 있었다.

서독은 체코슬로바키아를 상대로 1-0으로 승리해 복수했으며 알로프스의 해트트릭을 앞세워 네덜란드를 탈락시켰다. 이미 2승으로 비기기만 해도 결승행이 확정된 서독은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비기며 2승 1무 조 1위로 결승에 진출한다.

결승전에서는 개최국 잉글랜드와 당대 최고의 선수 케빈 키건을 데리고 있는 잉글랜드를 밀어낸 벨기에가 기다리고 있었다. 벨기에는 8년 전 유로에서 서독에게 진걸 복수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유로 1980 결승 서독 멤버들이다. 뒷줄: 슈틸리케, 슈마허, 브리겔, 루메니게, 푀르스터, 흐루베쉬,       앞줄 알로프스, 슈스터, 디츠, 칼츠, 한지 뮐러


선제골은 전반 10분에 서독 측에서 득점했다. 슈스터와 알로프스의 패스워크로 벨기에의 수비 진영을 교란했으며 슈스터가 가볍게 띄워준 볼을 흐루베쉬가 트래핑 후 슈팅하며 득점했다.

전반이 종료되고 후반 30분에 서독의 리베로 슈틸리케가 벨기에의 공격수 반 데르 엘스트에게 백태클을 걸며 페널티 킥을 내줬고 이를 르네 반데레이켄이 성공시키며 동점을 만들었다.

경기 종료를 2분 남기고 서독은 코너킥 찬스를 얻었다. 루메니게가 코너킥을 찼고 이를 호어스트 흐루베쉬가 헤딩으로 득점하며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넣었고 서독이 우승했다.

서독이 우승함으로서 서독은 최초로 앙리 들로네를 두 번이나 든 국가가 되었다.


우승국 서독은 어떤 팀이었을까?

 

데어발은 4-4-2 시스템, 즉 투 톱의 유행에 맞춰, 스리 톱일 때는 수비수가 네 명이어야 하지만 투 톱이면 세 명으로 줄여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투 톱을 저격해 3-5-2 시스템을 맞췄으며 측면의 공격과 수비를 모두 윙백에게 맡겼으며 중원에 더 무게중심을 줬다.

대신 훗날에 유행한 수비적인 스리 백이 아닌 리베로가 수비형 미드필더의 위치까지 올라와 오늘날의 라볼피아나처럼 빌드업을 하며 중앙 미드필더는 공격에 더 비중을 두는 아주 공격적인 대형이었다.

거기다가 공격형 미드필더 루메니게와 알로프스는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공격적으로 움직였으며 호어스트 흐루베쉬는 측면에서 대기해 크로스를 받는 역할을 맡았다.

서독이 이 대회에서 성공한 3-5-2 시스템은 앞으로 20년간 서독의 메인 포지션으로 군림한다.

 

서독 대표팀 라인업


감독: 유프 데어발

출처: 법정스님의 소유


이탈리아의 조나 미스타 시스템을 더 개혁하며 3-5-2 시스템을 만들어 서독의 세대교체를 완벽하게 성공했다.

공격적인 3-5-2 시스템의 운용으로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부진했던 서독을 새로운 디 만샤프트로 재편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특히 함부르크의 공격 루트인 윙백 칼츠의 크로스와 스트라이커 흐루베쉬의 헤딩을 좋아했다. 그리고 슈틸리케를 최후방 수비수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전진시켜서 수비형 미드필더의 위치에서 슈스터, 한지 뮐러와 볼을 순환하는 데 큰 역할을 맡게 했다.


골키퍼: 하랄트 슈마허 (FC 쾰른)

1954년 3월 6일 (결승전 당시 26세)

제프 마이어가 불의의 사고로 은퇴한 뒤, 디 만샤프트의 주전 자리를 차지한 골키퍼다. 분데스리가 역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꼽히는데 그 신화의 시작이 이 대회이다. 


리베로: 울리 슈틸리케 (레알 마드리드)

출처: 법정스님의 소유


1954년 11월 15일 (결승전 당시 25세)

공격적으로 운용된 리베로로 후방에서 수비를 커버하는 본업은 물론이고 전진해서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서 중원으로 볼을 배급하는 역할도 잘 맡았다. 다만 결승전에서 페널티 킥을 허용한 장면은 살짝 아쉬웠다.


스토퍼: 베르나르드 디츠 (뒤스부르크)

1948년 3월 22일 (결승전 당시 32세)

30대 노장으로 팀의 주장을 맡았다. 레프트백과 스토퍼, 리베로를 모두 능숙하게 맡았으며 침착한 수비로 선수 생활 내내 퇴장을 당하지 않았다. 유로에서도 깔끔한 수비를 보여줬다.


스토퍼: 칼하인츠 푀르스터 (슈투트가르트)

1958년 7월 25일 (결승전 당시 21세)

당대 최고의 수비수 유망주이자 독일 축구 역사에도 남을만한 스토퍼로 곱상한 외모와 이와 반대되는 거친 대인 수비로 인해 천사의 얼굴과 철의 정강이라는 두 별명이 붙었다. 상대 공격수를 지독하게 괴롭히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푀르스터는 이 대회에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라이트 윙백: 만프레트 칼츠 (함부르크)

1953년 1월 6일 (결승전 당시 27세)

오른쪽에서 상대 윙어의 수비를 맡음과 동시에 서독의 중요한 공격 루트를 맡았다. 특히 날카로운 크로스가 일품이었다. 이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10위에 들었다.


레프트 윙백: 한스 페터 브리겔 (카이저슬라우테른)

1955년 10월 11일 (결승전 당시 24세)

철인 삼종 경기, 창 던지기 등을 했던 육상 선수 출신이었으나 늦은 나이에 축구에 입문했다. 압도적인 피지컬과 엄청난 활동량, 그리고 축구 지능이 높아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이 대회에서도 공수 양면으로 활약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중앙 미드필더: 베른트 슈스터 (쾰른)

출처: 법정스님의 소유


1959년 12월 22일 (결승전 당시 20세)

당대 최고의 패스마스터이자 축구도사로 꼽혔다. 뛰어난 패스 능력과 부드러운 드리블은 물론이고 수비 가담까지 확실했던 그는 대회 내내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이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슈스터 개인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을 수상했고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를 기록했다. 이후 바르셀로나로 이적한다.


중앙 미드필더: 한지 뮐러 (슈투트가르트)

1957년 7월 27일 (결승전 당시 22세)

유럽이 주목하던 신예였다. 정확성과 창의성을 겸한 왼발 패싱력이 특히 뛰어났으며 발기술도 제법 화려해 상대를 농락했다. 유로에서도 맹활약하며 대회 올스타팀에 들었다.


공격형 미드필더: 칼하인츠 루메니게 (바이에른 뮌헨)

출처: 법정스님의 소유

1955년 9월 25일 (결승전 당시 24세)

자타공인 대회 시점 세계 최고의 선수로 완성형 공격수이자 공격형 미드필더라 평가받았으며 독일의 펠레라는 명성에 걸맞게 유로에서도 공격의 핵심으로 종횡무진하며 맹활약했다. 대회 베스트 일레븐을 수상했으며 당해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스트라이커: 클라우스 알로프스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1956년 12월 5일 (결승전 당시 23세)

중앙과 측면 공격 지역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토털 풋볼로 무장한 네덜란드를 해트트릭으로 격침시키며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스트라이커: 호어스트 흐루베쉬 (함부르크)

출처: 법정스님의 소유

1951년 4월 17일 (결승전 당시 29세)

팬들로부터 헤딩 야수라 불렸으며 파울 브라이트너로부터는 프리킥을 헤딩으로 시도하는 최초의 선수가 될 거라는 농담을 들었을 정도로 헤딩에 굉장히 능한 공격수였다. 대회 내내 침묵했으나 결승전에서 멀티골을 넣어 벨기에의 골키퍼 장 마리 파프를 격침시켰으며 이런 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일레븐과 발롱도르 투표에서 6위를 차지했다.


결론

 

서독은 8년 만에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으며 최초로 두 번째 우승을 달성한 서독의 전술은 이후 20년간 서독의 아이콘이 되었다.

서독의 3-5-2 시스템은 다른 나라에서도 심지어 유럽을 넘어 남미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한동안 3-5-2 포지션이 대세가 된 적도 있었을 정도로 전술사에 큰 영향을 줬다.

그리고 서독은 이후 통일이 되기 전까지 월드컵에서 3회 연속 결승에 진출하는 등 황금기를 다시 한 번 누린다.

 

우승의 기쁨을 누리는 흐루베쉬와 한지 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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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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