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플레이어 열전 74편: 야신이 인정한 강철주먹의 발레리나 블라디미르 베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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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플레이어 열전 74편: 야신이 인정한 강철주먹의 발레리나 블라디미르 베아라

토르난테 2020. 3. 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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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9월의 블라디미르 베아라

1.프로필

이름: 블라디미르 베아라 (Vladimir Beara)
생몰년: 1928년 10월 26일-2014년 10월 11일 (향년 85세) 
국적: 유고슬라비아→크로아티아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2kg
포지션: 골키퍼

 

하이두크 스플리트 시절

2.클럽 이력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7관왕의 수호신.

강제 이적이라는 논란의 주인공

하이두크 스플리트: (1947-1955) 136경기
츠르베나 즈베즈다: (1955-1960) 98경기
알레마니아 아헨: (1960-1963) 23경기
비토리아 쾰른: (1963-64) 23경기

토탈: 280경기

 

베아라는 어릴 때 전기 기술자를 꿈꿨으나 맞지 않아 발레리노가 되기 위해 발레를 했으며 이를 통해 유연한 신체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10대 후반에 하이두크 스플리트의 스카우터의 권유로 축구를 시작하고 골키퍼로 축구를 시작하는데 이때 베아라는 본래의 규격보다 훨씬 작은 공으로 매일 몇 시간 동안 훈련하면서 탁월한 핸들링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1947-48 시즌 데뷔했으며 점점 실력이 향상되어 1949-50 시즌에는 10승 8무로 하이두크 스플리트의 무패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18경기에서 13 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유고슬라비아 전역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1952 시즌에는 그룹별로 진출 후 최종전을 치뤘는데 2그룹에서 츠르베나 즈베즈다에게 밀려났지만 최종 순위 결정인 챔피언쉽 그룹에서는 츠르베나 즈베즈다와 디나모 자그레브 등을 따돌리고 우승에 성공한다.

1952-53 시즌에는 다시 본래의 리그 방식으로 회귀했으며 12팀이 치르는 리그로 틀이 잡혔으나 츠르베나 즈베즈다에게 밀려 준우승을 거둔다.

그리고 1953-54 시즌 14팀으로 확장된 리그에서는 1954-55 시즌에 또다시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리그 2위 BSK 즈베즈다가 43 실점을 하고 하이두크 스플리트를 제외한 최소 실점팀인 츠르베나 즈베즈다와 파르티잔이 36 실점을 하는 와중에 하이두크 스플리트는 베아라의 활약으로 27 실점으로 틀어막았다.

하이두크 스플리트는 베아라라는 골키퍼에 의해 환호했으며 그는 영원히 하이두크 스플리트의 든든한 수호신으로 남을 것 같았다. 동료 베르나르드 부카스처럼 말이다.

 

그러나 베아라는 1955-56 시즌을 앞두고 츠르베나 즈베즈다로 이적했으며 당국의 강제 이적 요구가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을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으로 평가받았다.

그를 영입한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베아라가 머문 5 시즌 동안 4 시즌을 리그에서 우승했으며 리그 우승에 실패하지 못한 시즌에는 유고슬라비아 풋볼 컵에서 우승하며 무관으로 보낸 시즌이 없었으며 1958-59 시즌에는 더블을 이루기도 했다.

반면 하이두크 스플리트는 베아라를 잃자 그 공백을 메꾸지 못하고 우승 팀임에도 1955-56 시즌 12위까지 떨어지며 간신히 강등을 피했다.

베아라는 유러피언 컵에 나서며 유럽에서도 명성을 드러냈는데 1956-57 시즌에는 팀의 4강행을 이끌었으나 이탈리아의 챔피언인 피오렌티나에게 홈에서 0-1로 패했다.

원정에서 베아라는 보텔류, 비르질리, 몬투오리, 그라톤 등 당대 최고의 공격진을 상대로 분투했지만 결국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공격진이 단 한 골도 넣지 못해 0-0으로 비기며 탈락했다.
그리고 다음 시즌에는 8강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총합 5-4로 패하며 8강에서 탈락했지만 맨유와의 명승부로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선수들은 이름을 날릴 수 있었다.

1959-60 시즌 우승을 하고 해외이적이 가능한 나이가 되자 독일에 알레마니아 아헨과 비토리아 쾰른에서 활약하다가 예전에 부상당한 적이 있었던 오른쪽 다리 부상을 당하고 은퇴했다.

 

3. 국가대표팀 이력

실력은 인정받았지만 올림픽 준우승, 월드컵 8강이란 한계를 넘지 못하다.

유고슬라비아 A 대표팀: (1950-1959) 59경기 0골

 

1954 월드컵 유고슬라비아 멤버들로 검은 옷을 입은 선수가 블라디미르 베아라다.

1950 시즌 베아라는 소속팀에서 무패우승을 이끌게 되고 국가대표팀에 소집된다.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 월드컵 데뷔전인 스위스전에서 무실점을 이끌며 3-0 대승을 이끌고 멕시코를 4-1로 대파하기도 했다.

그러고 2승인 상태로 1승 1무를 거둔 개최국 브라질을 상대로 무승부만 해도 결선 리그에 진출하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나 4분 만에 아데미르에게 선제골을 먹히고 지지뉴에게 쐐기골을 먹히며 결선 리그에 진출하지 못한다.

절치부심한 유고슬라비아는 1952년에 헬싱키 올림픽에 참가하며 1948년 런던 올림픽 은메달과 1950 브라질 월드컵의 실패를 만회하려고 했다.

인도를 10-1로 이긴 베아라는 다음 라운드에서 베아라의 부진으로 소련과 5-5로 비긴다. 그러나 재경기에서 3-1로 대파한다.

덴마크와 독일 단일팀을 연파하고 결승에 온 유고슬라비아는 매직 마자르라 불리는 세베슈 구스타브의 헝가리를 만나게 되고 푸스카스와 치보르에게 연속골을 먹히며 준우승에 머문다.

관중들은 베아라와 그로시치와 선방 대결을 기대했으나 매직 마자르의 공격진과 수비진이 워낙에 압도적이라 선방할 일이 드물었던 그로시치 줄라와는 다르게 베아라는 푸스카스의 페널트 킥을 선방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골이나 실점하며 참패해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1954 월드컵에서도 본선에 진출했으며 그룹 1에서 프랑스를 이기고 브라질과 비기며 1승1무로 조 2위로 8강에 진출했고 당시의 특이한 규정으로 인해 B조 2위 서독을 만난다.

여기서 서독과 베아라의 악연이 시작되는데 수비진의 리더 호르바트의 자책골로 불리하게 시작한 유고슬라비아는 헬무트 란에게 한 골 더 먹히며 2-0으로 8강에서 탈락한다.

1958 월드컵에서도 엄청난 공격력을 지녔던 프랑스를 3-2로 이겼으며 스코틀랜드, 파라과이와 비기며 조 2위로 8강에 진출했으나 또 서독을 만나게 되고 헬무트 란에게 12분에 결승골을 먹히고 패했다.

특히 서독전을 앞두고 베아라는 부상을 안고 플레이를 했으며 평소보다 힘든 경기가 되었다.

이 당시는 유고슬라비아가 서독보다 전력이 좋았음에도 서독 대표팀, 특히 그 중에서도 헬무트 란만 만나면 베아라가 굉장히 작아지기도 했다.

그리고 1955-60 중유럽 컵에서 공격진의 부진으로 팀은 4위에 그쳤지만 베아라의 활약으로 최소 실점을 했으며 베아라는 대회 도중인 1959년에 국가대표팀에서 물러났다.

비록 베아라의 국가대표팀 성적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았으며 서독의 헬무트 란만 만나면 작아졌지만 그의 실력은 많은 선수들이 인정하고 존경했다.

 

4. 당대의 평가와 플레이 스타일

위대한 블라디미르

강철 주먹의 발레리노

상술했듯이 발레리노의 경험이 있으며 이는 유연성에 큰 도움이 되었으며 고무인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유연하기만 한 골키퍼가 아닌 굉장히 강력한 펀칭으로 상대의 공을 멀리 쳐내는 데에도 능했는데 이에 강철주먹의 발레리노라 불렀다.

그로시치 줄라, 레프 야신, 질마르 등과 함께 당대 최고의 골키퍼로 손꼽혔으며 이는 축구계의 셀럽들의 평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세계 최고의 골키퍼가 아니다. 세계 최고의 골키퍼는 블라디미르 베아라다."

-레프 야신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는 사람)

" 그는 코일 스프링처럼 항상 발끝으로 뛸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밥 윌슨 (아스날의 전설적인 골키퍼 중 하나)

베아라가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다.

-리카르도 사모라 (스페인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중 한명이자 1930년대 최고의 골키퍼)

 

노년의 베아라

5.수상 이력

클럽

하이두크 스플리트

1950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우승 (무패 우승)
1952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우승
1954-55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우승

츠르베나 즈베즈다

1955-56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우승
1956-57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우승
1957-58 유고슬라비아 풋볼 컵 우승
1958-59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우승
1958-59 유고슬라비아 풋볼 컵 우승
1959-60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우승

국가대표팀

1952 헬싱키 올림픽 남자축구 종목 은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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