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Top 11~20

국가의 영웅들/브라질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Top 11~20

토르난테 2025. 4. 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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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4월 2일 기준입니다.

 


20위 자다 마라빌랴

 


생년월일: 1946년 3월 4일
A매치 기록: 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1960년대 하반기와 70년대 브라질 무대를 주름잡던 득점기계로 왕성한 지구력과 빠른 가속력으로 쉴 새 없이 상대 페널티 박스를 공략했으며 원샷원킬이라 불리는 오른발 슈팅력과 우수한 헤더로 이름을 날리며 벌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브라질 무대의 여러 클럽 무대를 돌아다닌 저니맨으로 유명한 마라빌랴는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2회 우승과 1971 시즌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냈고 플라멩구에서는 1974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을 이뤄냈으며  스포르트에서는 1975년 캄페오나투 페르남부카누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당대 브라질에서 가장 잘 나가던 구단 중 하나인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는 1976년 캄페오나투 가우초와 브라질 세리 A 더블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이외에도 바이아에서는 캄페오나투 바이아누 우승을, 고이아스에서는 캄페오나투 고이아누 우승을 이뤄내며 무려 6개 주립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 마라빌라는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득점왕을 4회 수상했으며 브라질 전국 득점왕 3회 수상 및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득점왕 1회와 캄페오나투 페르남부카누 득점왕도 3회 수상했다. 다만 대표팀에서는 펠레와 토스탕이라는 큰 벽을 넘지는 못했는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그들의 백업 멤버로 참가해 예선과 본선 전승 우승을 경험했다.

 

19위 호베르투 미란다

 


생년월일: 1944년 7월 31일
A매치 기록: 12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1960년대 브라질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전설적인 공격수로 공격 진영 전 포지션에서 활약할 수 있었으며 저돌적인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진을 돌파하고 강력한 슈팅 감각으로 이름을 날리며 돌풍이라 불렸다.

보타포구에서 데뷔한 미란다는 초년에는 백업으로 대기했지만 경쟁자 아마리우두가 유럽으로 떠나고 콰렌치냐가 노쇠화된 이후의 보타포구 공격진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자이르지뉴, 지르송, 카주와 호흡을 맞춰 유기적인 공격 플레이를 선보였고 그 결과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3회 우승과 히우상파울루 토너먼트 2회 우승은 물론 1968년에는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동시에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1964 도교 올림픽에 참가한 미란다는 1970 멕시코 월드컵 스쿼드에도 발탁되었으나 펠레와 토스탕이라는 거대한 벽에 막혀 벤치에 머무르며 우승을 경험했다.

 

18위 파울루 발렌침

 


생년월일: 1933년 11월 20일
A매치 기록: 5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1950년대와 60년대 초반 남미 무대에서 전성기를 이뤄낸 선수로 적절한 위치 선정과 유려한 발밑에서 나오는 우수한 테크닉은 물론 단단한 바디 밸런스와 빠른 스피드를 겸비했음은 물론 양발과 헤더를 모두 잘 활용해 다채로운 득점 루트를 선보였다.

미나스제라이스 주의 명문 아틀레티쿠 미네이루에서 데뷔한 발렌침은 팀 공격의 핵으로 활약하며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3연패를 이뤄냈고 당대 브라질 최고의 팀 중 하나인 보타포구로 이적해서는 가린샤, 콰렌치냐와 함께 1957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을 이뤄냈고 그 과정에서 득점왕에 올랐다. 1960년에는 아르헨티나 무대에 도전해 보카 주니오스에서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라이벌 리버 플레이트와의 수페르클라시코에서는 7경기에 나서 10골을 득점하며 라이벌에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그러나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펠레, 바바, 아우타피니 등 우수한 공격수가 넘쳐났기에 많은 기회를 받지 못했던 발렌침은 그래도 1959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주전으로 참가해 펠레와 합을 맞춰 5골을 득점하며 8골을 득점한 펠레, 6골을 득점한 파라과이의 호세 아베이로에 이어 득점 3위에 올랐다.

 

17위 마르시우 아모로주

 


생년월일: 1974년 7월 5일
A매치 기록: 19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우디네세

1990년대 후반~밀레니엄 초반에 이탈리아와 독일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스트라이커로 민첩한 몸놀림과 우수한 주력에서 나오는 공간 침투와 빠른 드리블 돌파를 활용해 상대 수비 라인 배후로 침투하는데 능했으며 박스 안에서의 효율적인 움직임과 높은 수준의 골 결정력은 물론 우수한 헤더까지 겸비했고 유려한 볼 컨트롤과 높은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측면 공격수 역할도 찰떡같이 소화했다.

초년에는 브라질과 일본에서 활약했던 아모로주는 1997-98 시즌 우디네세의 세리에 A 3위를 이끌었고 비어호프가 떠난 뒤에는 1998-99 시즌에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으나 파르마에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도르트문트로 이적해서도 첫 시즌에는 2001-02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아모로주 개인도 득점왕에 올랐으나 이후에는 부상으로 고생하다가 말년에 상파울루로 이적해 2005 시즌에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FIFA 클럽 월드컵을 우승하며 FIFA 클럽 월드컵 득점왕을 차지했다.

클럽에서는 대단한 모습을 보였던 아모로주지만 셀레상에서는 호나우두, 호마리우, 베베투와 같은 거물 선수들에게 밀려나며 기회를 잘 받지 못했는데 그래도 1999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4골을 득점하는 등 히바우두, 호나우두와 함께 셀레상의 우승에 공헌했으나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16위 지오바니 에우베르

 


생년월일: 1972년 7월 23일
A매치 기록: 15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분데스리가에서 이름을 날렸던 브라질리언 스트라이커로 강력한 피지컬과 부드러운 볼 터치 능력을 겸비했으며 양발을 모두 잘 써 어느 발로도 득점할 수 있었던 스트라이커였다.

어린 시절부터 잠재력을 인정받아 당대 세계 최고의 구단인 AC 밀란에서 데뷔했으나 국가대표팀 주전 출신의 스타들조차 주전 경쟁을 장담할 수 없었던 환경이라 스위스로 밀려났으나 스위스의 그라스호퍼에서 1993-94 시즌 리그 우승과 득점왕은 물론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하는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였고 결국 독일의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했는데 요하임 뢰브 체제에서는 발라코프, 보비치와 함께 마법의 삼지창 조합을 이루며 1996-97 시즌 DFB포칼 우승과 1997-98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이뤄냈다.

전성기를 누린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구단의 제2 황금기를 이끈 에우베르는 분데스리가 4회 우승과 포칼 3회 우승, 그리고 2000-01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당대 바이에른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고 2002-03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2000년대 초반에 뛰어난 활약상을 보여주며 바이에른 뮌헨 팬들의 큰 지지를 받았으며 은퇴한 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1991년에 열리 U-20 월드컵에서 팀을 결승에 올리며 실버볼과 실버슈를 수상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에우베르지만 성인 대표팀에서는 호마리우, 호나우두, 베베투, 히바우두 등 쟁쟁한 경쟁자가 많아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는데 1998 북중미 골드컵에 초청팀으로 참가할 때 명단에 포함되는데 그쳤다.

 

15위 헤이토르

 


생년월일: 1898년 12월 20일
A매치 기록: 11경기 4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파우메이라스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와 더불어 브라질 축구계의 태동기를 대표했던 스타플레이어로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적절한 위치선정 및 정밀도 높은 슈팅으로 수많은 득점을 기록했으며 축구 외에도 농구, 배구, 탁구에도 능숙했을 만큼 운동능력이 뛰어난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90년 넘게 파우메이라스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린 헤이토르는 파우메이라스가 팔레스트라 이탈리아였던 시절에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4회 우승을 포함해 13회의 크고 작은 우승을 이뤄내며 상 파울루 주립 리그에서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와 라이벌리를 이뤄내기도 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헤이토르는 프리덴라이히, 네쿠와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며 1919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인사이드 포워드로 조국의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이뤄냈고 1922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최전방에서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14위 발타자르

 


생년월일: 1926년 1월 14일
A매치 기록: 31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코린치안스

1940년대와 50년대에 걸쳐 브라질 무대에서 활약하던 스트라이커로 처음에는 인사이드 라이트 포지션에서 시작했지만 센터 포워드로 자리잡았으며 기술적으로는 뛰어나지 못했지만 훌륭한 위치선정과 경이로운 점프력을 겸비했으며 키가 큰 편이 아니었지만 상술한 능력을 통해 압도적인 헤더로 수많은 득점을 이뤄내며 황금 머리라 불렸는데 오죽했으면 팬들은 펠레조차도 그만큼 헤더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코린치안스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구단 통산 득점 2위에 랭크된 발타자르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3회 우승과 히우상파울루 토너먼트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53년에는 미니 클럽 월드컵에 참가해 루이지뉴와 함께 소속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런 활약 덕택에 그는 브라질에서 인기가 매우 많았는데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축구 선수라는 타이틀을 얻은 대회에서 자동차를 받았다. 그리고 그 자동차가 전기 문제로 타버리자, 팬들은 돈을 모아 그에게 자동차를 다시 선물했을 정도로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아데미르의 후계자로 주목받은 발타자르는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 아데미르의 로테이션으로 활약하며 준우승을 이뤄냈는데 백업인 덕택에 마라카냥의 비극이라는 책임을 피해서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었는데 아데미르가 대표팀에서 물러나자 1953 코파 아메리카와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했고 전자의 대회에서는 준우승을, 후자의 대회에서는 8강에 올랐다.

 

13위 코치뉴

 


생년월일: 1943년 6월 11일
A매치 기록: 15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산투스 FC

산투스 유소년 팀을 거쳐 산투스에서 데뷔한 프랜차이즈 스타로 10년간 펠레와 투톱 콤비를 구성해 활약했으며 '페널티 박스 안의 천재'라 불렸던 엄청난 포처로 뛰어난 위치 선정과 정확한 슈팅으로 무수히 많은 골을 기록했다.

산투스 통산 최다 득점 3위와 최다 출전 8위에 랭크된 쿠치뉴는 펠레와 호흡을 맞춰 활약하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6회 우승과 브라질 전국 리그 5회 우승을 이뤄내며 브라질을 평정했으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2연패를 달성하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특히 1962년에 물고기 군단의 일원으로 전관왕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는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에서 페냐롤과의 1차전에서는 멀티골을 넣으며 팀의 2-1 역전승을 이뤄냈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벤피카를 상대로도 홈과 원정에서 모두 득점을 기록했고 1963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에서는 보카 주니오스를 상대로 홈과 어웨이 두 경기 모두 득점을 기록했다.

 

12위 헤이나우두

 


생년월일: 1957년 1월 11일
A매치 기록: 37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상반기 남미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번개 같은 순간 스피드와 영리한 라인 브레이킹으로 상대 페널티 박스로 침투해 상대에게 다지선다를 강요하는 다양한 슈팅 스킬을 양발로 날렸음은 물론 우수한 볼 컨트롤까지 겸비한 완성형 스트라이커였다.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보낸 헤이나우두는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8회 우승 및 미나스제라이스컵 3회 우승을 이뤄냈고 헤이나우두 개인도 브라질 전국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음은 물론 1977년에는 브라질 전국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라이벌 호베르투 지나미치와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였던 헤이나우두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첫 두 경기에서 선발 출전했지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고 이후에는 지나미치에게 밀려나며 벤치에서 시작했다.

 

11위 아드리아누

 


생년월일: 1982년 2월 17일
A매치 기록: 48경기 27골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91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2000년대 초반 엄청난 기대를 받았던 스트라이커로 전성기 시절인 2000년대 중반에는 축구사 전체를 통틀어 봐도 매우 희귀한 완벽에 가까운 공격수였는데 강력한 피지컬과 축구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는 왼발 킥력은 물론 덩치에 맞지 않게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테크닉을 겸비했으며 인테르 시절의 동료 이반 코르도바는 그를 두고 "호나우두의 재능과 이브라히모비치의 피지컬을 겸비한 존재"라고 평가했다.

플라멩구에서 데뷔해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연패를 이끌어 주목받은 아드리아누는 유럽 무대의 인테르 밀란으로 이적했고 인테르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2004-05 시즌과 2005-06 시즌 코파 이탈리아 2연패를 이뤄냈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2004년 6위와 2005년 7위에 랭크되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2004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압도적인 활약으로 셀레상의 우승을 이끌며 대회 득점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한 이드리아누는 2005 컨페드컵에서도 우승을 이뤄냈으나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고 이후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몰락하며 인테르의 전성기를 함께 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은퇴했다가 브라질의 플라멩구로 돌아왔다.

플라멩구로 돌아와서는 정신을 차렸는지 2009 시즌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냈으며 브라질 세리 A MVP와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며 부활하는 듯했지만 다시는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으며 AS 로마로 이적한 뒤에는 다시 몰락하며 컴퓨터 게임 위닝 일레븐에서의 영광을 현실에서는 이어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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