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3월 30일 기준입니다.
25위 알레샨드리 파투

생년월일: 1989년 9월 2일
A매치 기록: 27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AC 밀란
2000년대 하반기 브라질 무대를 풍미했던 완성형 공격수로 이미 10대 시절에 기술적으로 완성되었으며 신체적으로도 매우 우수했으나 잦은 부상과 약한 정신력으로 인해 잠재력을 다 만개하지는 못했다.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 활약하던 시절인 2006 클럽 월드컵에서 카를레스 푸욜을 농락하는 활약을 보여주며 AC 밀란으로 이적해 활약한 파투는 2009년 세리에 A 영 플레이어 상을 수상했고 2010-11 시즌에는 즐라탄, 호비뉴, 케빈 프린스 보아텡과 함께 나와 25경기에 출전해 14골을 득점하는 활약을 펼치며 팀의 스쿠테토에 크게 기여했으나 이 시즌 이후로 잦은 부상과 약한 정신력으로 인해 몰락했다.
셀레상에서도 2008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을 따내며 주목받은 파투는 2009 컨페드컵 우승에 기여했으나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 명단에는 탈락했고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레안드로 다미앙의 서브로 나서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으나 2013년 이후로는 자국 리그의 프레드, 조와 같은 공격수에 밀려나며 셀레상과 멀어졌다.
24위 줄리우 밥티스타

생년월일: 1981년 10월 1일
A매치 기록: 47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세비야 FC
2000년대 초중반에 브라질 축구계에서 기대받던 다재다능한 2선 자원으로 큰 체격과 강력한 피지컬, 그리고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했는데 특히 초년에는 3선에서 주로 뛰었던 이력 덕분에 수비 상황에서 대인 수비력이 우수했고 테크닉도 준수했지만 기복이 다소 심하고 결정력은 좋지 못했다.
상 파울루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2000년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이뤄내며 유럽 무대에 진출한 밥티스타는 세비야로 이적한 뒤에는 처진 공격수로 포지션을 변경해 두 시즌 연속으로 20골을 득점하며 2004년 라리가 최우수 기량발전 선수상을 수상했지만 레알 마드리드, 아스날, AS 로마에서는 부진한 활약을 펼치며 먹튀의 대명사로 조롱받았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의외로 중용받은 밥티스타는 2003년 CONCACAF 골드컵과 2004년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했고 각각 준우승과 우승을 기록했다. 그리고 200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3-0 대승을 이뤄낸 맹활약을 펼치며 우승에 공한했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23위 에지우손

생년월일: 1970년 9월 17일
A매치 기록: 21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0kg
주 소속팀: 코린치안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브라질 무대에서 명성을 떨쳤던 테크니션으로 체구는 작았지만 빠른 발과 기민한 몸놀림, 그리고 유려한 볼 컨트롤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를 완벽하게 기만했기에 작은 악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초년에는 파우메이라스에서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한 에지우손은 1993년 브라질 세리 A 우승과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이뤄냈고 비록 유럽 무대의 벤피카에서는 실패했지만 일본의 가시와 레이숄에서는 두 시즌 연속 20골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해 다시 브라질 무대로 돌아와 코린치안스에서 브라질 세리 A 2연패 및 1999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과 2000 FIFA 클럽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을 이뤄냈고 에지우손 개인도 1998년 브라질 세리 A MVP 및 베스트 일레븐, 그리고 클럽 세계 선수권 대회 MVP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플라멩구에서는 2001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을 이뤄냈고 개인은 득점왕에 올랐다.
1993년에 브라질 대표팀에 처음 소집된 에지우손은 그 뒤 7년간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하다가 코린치안스에서의 활약 및 호나우두의 부상으로 2000년에 다시 기회를 잡았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백업으로 조국의 우승에 공헌했다.
22위 헐크

생년월일: 1986년 7월 25일
A매치 기록: 49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FC 포르투
2010년대 상반기 유럽 중견 리그에서 이름을 날린 브리질 출신의 다재다능한 공격수로 신체능력이 우수해 강건한 피지컬과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힘으로 돌파했고 강한 슈팅력을 바탕으로 직접 타격에 능했는데 슈팅이 얼마나 강했는지 경기 도중 날아가면서 막아내는 골키퍼의 손가락에 상해를 입힌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초년에는 브라질 무대에서 주목받지 못했고 일본의 J2리그의 콘사도레 삿포로까지 밀려났으나 도쿄 베르디에서 만개하며 FC 포르투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리며 프리메이라 리가와 타사 드 포르투갈, 그리고 수페르타사를 각각 3회 우승했고 특히 2010-11 시즌에는 UEFA 유로파 리그 우승까지 이뤄내며 미니 트레블을 이뤄냈다. 헐크 개인도 팀동료 팔카오를 제치고 2010-11 시즌과 2011-12 시즌 프리메이라 리가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다. 2012년 러시아의 제니트로 이적한 뒤에도 2014-15 시즌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우승 및 2015-16 시즌 러시아컵 우승을 이뤄냈고 헐크 개인도 2014-15 시즌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와 득점왕을 동시에 석권했고 2015-16 시즌에는 리그 도움왕 및 러시아컵 도움왕을 동시에 석권했다.
말년에는 중국의 상하이 상강에서 2018 중국 슈퍼리그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중국 슈퍼리그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고 현재까지 활약중인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는 2021년 세리 A, 코파 두 브라질,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3관왕을 이뤄냈고 캄페오나투 미네이루에서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회 연속 우승을 이뤄냈다. 특히 2021년에는 개인으로도 브라질 세리 A 올해의 선수와 올해의 팀, 득점왕을 모두 석권했음은 물론 코파 두 브라질 MVP와 득점왕도 석권했다.
포르투에서의 활약으로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소집된 헐크는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브라질 올림픽 축구팀으로 와일드 카드로 뽑혀 활약했고 결승전에서도 득점했지만 아쉽게 패하며 은메달에 만족했다. 그리고 2013 컨페드컵 우승을 이뤄냈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주전 멤버로 발탁되었지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21위 가브리에우 제주스

생년월일: 1997년 4월 3일
A매치 기록: 64경기 19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2010년대 후반~2020년대 초반에 이름을 날리는 브라질의 천재 공격수로 높은 수준의 축구 지능으로 상대의 빈 공간을 찾아 자신이 패스받을 수 있는 위치로 움직이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며 우수한 볼 컨트롤과 헌신적인 수비 가담, 그리고 중앙과 측면을 모두 소화할 수 있으나 골 결정력에 다소 기복이 심한 단점도 있었다.
파우메이라스에서 2016 시즌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끌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 및 MVP를 수상하며 혜성같이 등장한 제주스는 펩 과르디올라 체제의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해서도 주전과 로테이션 멤버를 오가며 2018-19 시즌 도메스틱 트레블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4회 우승과 리그컵 3회 우승, 그리고 2020-21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그러나 맨체스터 시티의 엘링 홀란에게 밀려나자 아스날로 이적해 주전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꽤 중용받은 제주스는 2016 리우 올림픽에서 3골을 넣으며 금메달 획득 주축으로 활약했고 성인 대표팀에서도 2018 러시아 월드컵 8강, 2019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202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이뤄냈다.
20위 움베르토 토치

생년월일: 1934년 2월 4일
A매치 기록: 7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파우메이라스
1950년대 브라질 무대의 기대주로 브라질리언 특유의 리듬감 넘치는 드리블과 빠른 스피드, 그리고 강력한 슈팅으로 상대의 골문을 위협했고 순간순간 천재성을 보였지만 게으른 성품으로 인해 훈련을 자주 빠졌고 경기장에서도 많이 뛰지는 않았다.
상 크리스토방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내다가 파우메이라스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린 토치는 특히 1954 시즌에는 커리어 하이를 세웠는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에서 무려 36골을 득점하며 18골을 득점한 차순위자 지누 오를란두를 두 배 차이로 따돌리고 압도적으로 득점왕에 올랐고 막강한 득점력뿐만이 아니라 공격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쳐 소속팀 파우메이라스의 리그 준우승을 이뤄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기대주로 평가받았던 토치는 로테이션 멤버로 1954 스위스 월드컵 8강 헝가리전에 나섰으나 거친 파울로 퇴장당하는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표팀 커리어를 포기하고 이탈리아의 라치오로 이적했는데 그곳에서도 1957-58 시즌에 10골을 득점하며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토치를 잃은 브라질은 또 한 명의 어린 선수를 대표팀에 불러들였는데 그가 바로 펠레다.
19위 닐로

생년월일: 1903년 4월 3일
A매치 기록: 14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3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1920년대~30년대 초반에 걸쳐서 활약한 위대한 골잡이라 불렸던 인사이드 포워드로 키는 작았지만 우수한 테크닉과 빠른 스피드를 통해 2선에서 1선으로 빠르게 침투해 득점하는 플레이에 능했다.
히우그란지두노르치주의 아메리카 FC에서 데뷔한 닐로는 플루미넨시에서 1924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과 득점왕에 올랐고 보타포구에서는 전성기를 누리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5회 우승을 이뤄내며 득점왕에 2회 올랐다.
셀레상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닐로는 1923 코파 아메리카 4위와 192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뤄냈고 초대 월드컵에도 주전 멤버로 참가했다.
18위 파우히냐

생년월일: 1967년 12월 14일
A매치 기록: 16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상 파울루
1990년대 초반 브라질 무대 정상급 처진 공격수 겸 공격형 미드필더로 브라질리언 특유의 현란한 볼 컨트롤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과 공격진영에서 세밀한 연계플레이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데 능했고 양발 슈팅을 활용한 득점력도 준수했다.
벨루오리존치 지역의 아메리카 FC에서 데뷔했고 텔레 산타나 체제의 상 파울루에서 두각을 나타낸 파우히냐는 구단의 황금기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1992년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이뤄냈고 국제무대에서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회 우승과 인터콘티넨탈컵 2회 우승 및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2회 우승, 1993년 수페르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1994년 코파 CONMEBOL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93년에는 국제무대에서만 4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파우히냐 개인도 1992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에서 득점왕에 올랐다.
크루제이루에서도 전성기를 이어나간 파우히냐는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2회 우승 및 1997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고 그레미우에서는 199년 캄페오나투 가우초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호마리우와 베베투, 그리고 호나우두의 위상에 밀려 중용받지 못했다.
17위 프레기뉴

생년월일: 1905년 2월 8일
A매치 기록: 3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3kg
주 소속팀: 플루미넨시
브라질의 유명 작가 코엘류 네투의 아들로 1920년대 하반기와 30년대를 풍미한 브라질의 공격수로 축구뿐만 아니라 수영, 조정, 수구, 다이빙, 농구, 배구, 육상에서 모두 브라질 챔피언에 올랐을 정도로 다양한 스포츠를 잘하는 다재다능한 운동신경을 보유했고 이를 축구에도 적극 활용했다고 전해지며 브라질 스포츠계에서 아이돌이라 불렸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려 유명 작가인 아버지 코엘류 네투마저도 "나는 100권 이상의 책을 썼지만 거리에서는 프레기뉴의 아버지로 더 많이 불린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국민 스타였다.
선수 커리어를 전부 플루미넨시에서만 보낸 프레기뉴는 전신 대회를 포함해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5회 우승과 4회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득점왕을 2회 수상했는데 특히 구단 플루미넨시에 대해서는 "뭐라 말을 해야 정확할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플루미넨시는 이미 나의 영혼이고 심장이자 몸입니다."라고 말하며 프로화가 된 이후에도 플루미넨시에서 평생 무급으로 활약했다. 셀레상에서도 조국을 대표해 초대 월드컵인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 출전했다.
16위 호베르투 피르미누

생년월일: 1991년 10월 2일
A매치 기록: 55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2010년대 하반기에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던 건실한 공격수로 골 결정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좋은 위치를 잡아 압박을 풀어주거나 공격진들에게 패스로 찬스를 만들어주며 공격의 흐름을 살려주는 지능적인 플레이에 능하며 드리블 돌파력도 제법 뛰어났으며 공을 빼앗겼을 시 바로 전방 압박을 시도하거나 수비 가담을 매우 적극적으로 하는 전천후 공격수였다.
게임 풋볼 매니저에서의 성능이 좋아 호펜하임의 단장이 영입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환 일화이며 호펜하임에서 2013-14 시즌 분데스리가 올해의 이적생에 선정되었으며 리버풀로 이적한 뒤에는 클롭 체제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2015-16 시즌 유로파리그 준우승을 시작으로 2017-18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내며 피르미누 본인은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들었으며 2018-19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2019-20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2021-22 시즌에는 리그와 챔피언스리그는 준우승을, FA컵과 리그컵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피르미누는 2010년대 하반기 셀레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차지해 주전으로 활약하며 2018 러시아 월드컵 8강, 201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뒀으며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하며 준우승을 이뤄냈다.
15위 팀

생년월일: 1915년 2월 20일
A매치 기록: 16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플루미넨시
본명은 에우바 지 파두아 리마로 1930년대 중반~40년대 초반 브라질 무대 정상급 인사이드 포워드로 지능적이고 뛰어난 위치 선정을 바탕으로 하는 효율적인 골게터이면서 뛰어난 드리블과 예측 불허의 패스로 상대 수비진을 균열내고 득점 찬스를 만드는 플레이메이커로 명성이 높았는데 특히 드리블에 대해서는 상파울루의 지역 신문 '폴랴 지 상파울루'에서 "가린샤에 비견될만한 쉽고 알랑거리는 드리블러"라고 평가했다.
보타포구 FC에서 데뷔해 포르투게자 산치스타를 거쳐 플루미넨시에서 전성기를 누린 팀은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5회 우승을 이뤄냈고 상 파울루에서도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2회 우승을 경험했는데 이 시절에 브라질 축구사 최고의 센터백 도밍구스 다 기아는 그를 두고 "10여년간을 그와 같이 뛰면서 그가 실수한 것을 본 기억이 없다."라고 했다. 그리고 우루과이의 클루브 나시오날과 엘도라도라 불리던 콜롬비아 리그의 아틀레티코 후니오르에서도 잠시 활약했는데 특히 아틀레티코 후니오르에서는 감독 겸 선수로 활약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레오디나스 등과 활약한 팀은 1937 코파 아메리카 당시 브라질 대표팀의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이때 팀은 전당포 주인처럼 브라질 팀원들을 이끌어서 전당포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준우승을 이끌었지만 1938년 월드컵에서는 백업으로 3위를 경험했다.
14위 호메우 펠리시아리

생년월일: 1911년 3월 26일
A매치 기록: 13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67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플루미넨시
1930년대 중반~40년대 초반의 브라질 무대를 이끈 인사이드 포워드로 초년에는 통통한 체격과 낮은 무게중심에서 나오는 파워풀한 몸싸움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를 돌파했고 패스보다는 직접 슈팅을 선호했으나 1930년대 후반부터는 플레이메이커 스타일로 변신에 성공해 드넓은 시야와 날카로운 패스를 바탕으로 팀의 공격을 지휘하며 득점 찬스를 만들었다.
초년에는 파우메이라스의 전신 구단인 파울리스트라 이탈리아에서 활약하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3연패를 이뤄냈고 호메우 개인도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득점왕을 2회 수상했는데 특히 1933년에 벌어진 SC 코린치안스와의 경기에서는 4골을 기록하며 8-0 압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플루미넨시로 이적해서도 팀과 함께 브라질 무대 최고 레벨의 인사이드 포워드 라인을 구성하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5회 우승을 기록했다가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1942년에는 고향팀 파우메이라스로 돌아와 주립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브라질 대표팀 소속으로도 중용되며 팀동료 팀과 경쟁한 호메우는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레오디나스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4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브라질의 당시 월드컵 최고 성적인 3위 달성에 큰 공을 세웠다.
13위 에드문도

생년월일: 1971년 4월 2일
A매치 기록: 39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바스쿠 다 가마
1990년대 브라질 무대를 풍미한 악마의 재능으로 빠른 스피드와 강인한 피지컬과 높은 투쟁심은 물론 우수한 테크닉을 겸비한 우수한 선수였지만 폭행, 동물학대, 음주운전, 팀 무단이탈 등 경기장 내외에서 항상 사고를 쳤던 인성에 문제가 많은 선수였으며 경기장 내에서도 상대 선수에 대한 공격적인 행동으로 카드를 받는 일이 잦았으며 이성은 없고 본능에만 충실했다고 해서 세간의 사람들로부터 짐승이라 불렸다.
1990년대 브라질 무대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로 군림한 에드문도는 파우메이라스에서는 1993 시즌과 1994 시즌에 브라질 세리 A와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회 연속 더블 우승을 이뤄냈고 1995년에는 남미 올해의 선수 3위에 올랐으며 바스쿠 다 가마에서도 1997년에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내며 브라질 세리 A 득점왕과 MVP를 모두 석권했고 개인 통산 남미 올해의 팀 2회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브라질 세리 A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도 2회 선정되었다. 이탈리아의 피오렌티나에서도 출중한 모습을 보여줬고 은퇴 시즌인 2008년에도 38세의 나이로 쿠파 데 브라질에서 득점왕에 올랐을 정도로 기량 유지도 오래 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출중한 선수들에 밀려나며 크게 중용받지 못한 에드문도는 1993 코파 아메리카에 처음 선발되었으나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호나우두와의 백업 경쟁에서 밀려나며 스쿼드에서 제외되었고 199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호마리우와 로테이션으로 나오며 호나우두와 함께 투 톱을 형성했는데 결승전에 선발 출전해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차지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호나우두와 베베투의 백업으로 뒤를 받쳐주며 준우승을 경험했다.
12위 네쿠

생년월일: 1895년 3월 7일
A매치 기록: 15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코린치안스
프리덴라이히, 아밀카르와 함께 브라질 축구의 태동기를 이끌었던 인사이드 포워드로 끈질긴 집념과 훌륭한 테크닉을 겸비했으며 주력이 빨라 상대 수비를 교란하는데 능했다고 전해진다.
코린치안스의 레전드 닐로는 팀의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8회 우승을 이뤄냈으나 1915년에 팀 내 정치적인 문제로 잠시 맥캔지 대학교에서 뛸 때 전 소속팀이던 SC 코린치안스와의 경기에선 돈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SC 코린치안스의 도서관에 침입하기도 했으며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을 폭행해 18경기 출장정지를 당하는 중징계로 받기도 했고 특이하게도 감독이 경질되면 종종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셀레상에서도 프리덴라이히, 아밀카르와 함께 활약하며 1919 코파 아메리카와 1922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22년 대회 우승 결정전에서는 파라과이를 상대로 선제골을 득점해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11위 치차

생년월일: 1958년 4월 1일
A매치 기록: 32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플라멩구
1980년대 브라질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처진 공격수로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과 동료들을 활용한 연계 플레이는 물론 지치지 않는 지구력에서 나오는 넓은 활동 반경은 물론 높은 수준의 볼 컨트롤 능력으로 플레이메이킹을 이뤄냈으며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 좌우 측면 공격수도 소화할 수 있었다.
플라멩구에서 전성기를 누린 치차는 지쿠, 주니오르 등과 함께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4회 우승과 브라질 전국 리그 3회 우승, 그리고 1981 시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고 그레미우에서 반 시즌 머물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다가 플라멩구로 다시 돌아간 뒤에는 1984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득점왕에 올랐다. 그리고 1987년에는 바스쿠 다 가마에서 1987 시즌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을 이끌며 개인 통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5회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 진출해서도 독일의 신흥 강호 바이어 레버쿠젠에서 차범근, 다니엘 바스 등과 함께 공격 조합을 이루며 1987-88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냈다.
셀레상에서도 종종 소집된 치차는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해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이뤄냈고 198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하는 영예를 누렸으나 월드컵 스쿼드에는 번번이 탈락했는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는 드디어 스쿼드에 들었지만 16강에서 탈락하며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