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3월 27일 기준입니다.
10위 에데르

생년월일: 1957년 5월 25일
A매치 기록: 52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1980년대 남미 정상급 윙어로 스피드가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테크니컬한 볼 컨트롤 능력과 기상천외한 크로스와 패스를 통한 어시스트 능력은 물론 대포라고 불렸을 정도로 강력한 왼발 킥력을 활용한 왼발 슈팅으로 득점력을 보여줬다.
그레미우에서 첫 두각을 나타낸 에데르는 캄페오나투 가우초 2회 우승을 이뤄냈고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는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누리며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4연패를 포함해 6회 우승을 이뤄내며 이름을 날렸다. 에데르 개인도 1983년에는 브라질 전국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활약상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이 시즌의 활약을 인정받아 1983년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3위에 올랐다.
셀레상에서도 1982 스페인 월드컵에 주전 공격수로 참가해 황금의 사중주의 지원을 받았는데 특히 조별리그 스코틀랜드전 독수리 슛 득점과 소련전 중거리 아웃프런트 골은 아직도 회자되는 원더골이다.
9위 치쿠

생년월일: 1922년 1월 7일
A매치 기록: 21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바스쿠 다 가마
1940년대 하반기 남미 정상급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뛰어난 운동능력과 테크니컬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의 맨 마킹을 뚫어내고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을 통해 득점 찬스를 만들었다.
일명 '승리의 급행열차'라 불렸던 바스쿠 다 가마의 전성시대에 활약한 치쿠는 캄페오나투 카리와 5회 우승을 이뤄냈고 1948년에는 남아메리카 클럽 챔피언십 우승을 포함해 공식 대회 및 친선 대회를 모두 포함해 43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데 큰 공을 세우며 아르헨티나로부터 남미 축구의 패권을 일시적으로 가져오는데 공헌했다.
셀레상에서도 팀 동료인 아데미르, 프라이사와 함께 1선 공격 진영을 구축해 1946 코파 아메리카와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조별리그에선 침묵했지만 결승리그 스페인전과 스웨덴전에서 멀티골을 득점하며 브라질의 우승 가능성을 높였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우루과이의 수비수 감베타에게 막히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8위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생년월일: 2000년 7월 12일
A매치 기록: 38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현세대 축구계 최고의 드리블러 중 한 명으로 과거에는 마무리에 약점을 보였지만 현재는 뛰어난 볼 운반 능력과 우수한 드리블로 상대를 따돌리는데 능하면서도 우수한 결정력을 선보였음은 물론 적재적소에서 득점 찬스를 만드는 패스를 공급하는 부분에도 능한 완성형 레프트윙으로 평가받는다.
플라멩구에서 데뷔했으나 어린 나이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현재까지 활약한 비니시우스는 라리가 3회 우승 및 2021-22 시즌과 2023-24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022-23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과 수페르코파 에스파냐 3회 우승, 그리고 UEFA 슈퍼컵과 FIFA 클럽 월드컵 2회 우승 및 2024 FIFA 인터컨티넨탈컵 우승까지 모두 석권하며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성공신화를 써 내려갔다.
여러 논란을 야기하긴 했지만 그와 별개로 비니시우스 개인도 UEFA 챔피언스리그 시즌의 스쿼드와 라리가 올해의 팀에 각각 3회 선정되었고 2022 FIFA 클럽 월드컵에서는 대회 우승은 물론 골든볼을 수상했으며 2023-24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선수와 도움왕을 동시에 석권했음은 물론 2024년 발롱도르 2위에 올랐고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유소년 시절부터 중용된 비니시우스는 연령별 대표팀 시절에는 남미 U-15 챔피언십 우승을 시작으로 남미 U-17 챔피언십에서는 팀의 우승은 물론 개인의 득점왕과 MVP까지 모두 석권하며 대회 트레블을 이뤄냈고 성인 대표팀에서도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고 대한민국을 상대로 데뷔골을 넣었으나 8강 크로아티아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탈락했다.
7위 마리우 자갈루

생년월일: 1931년 8월 9일
A매치 기록: 33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1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 정상급 레프트윙으로 기술적으로 훌륭했을 뿐만 아니라 높은 수준의 전술안과 지치지 않는 지구력을 활용해 왕성한 활동량을 통해 넓은 범위에 영향을 끼쳤는데 중원 싸움에 가세하기도 했으며 소속팀 동료이자 대표팀 동료인 니우통 산투스의 오버래핑을 효과적으로 커버하기도 했던 미래형 윙어였다.
히우 데 자네이루의 클럽에서 주로 활약했던 자갈루는 플라멩구에서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3연패를 이뤄냈고 같은 주 라이벌이 보타포구로 이적해서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연패 및 1962년 6관왕을 이끌었다. 자갈루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에서만 개인 통산 5회 우승을 이뤄냈지먼 펠레의 산투스, 줄리뉴의 파우메이라스에 의해 막혀 전국리그에서는 우승을 이뤄내진 못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카누테이루, 주제 마리아 페페와의 치열한 주전 경쟁에서 플레이 스타일로 인한 전술적인 선호도 덕에 주전 자리를 차지했던 자갈루는 감독들의 기대에 부응해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에서 우승을 이뤄냈고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득점해 대회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되었고 은퇴한 뒤에는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6위 주제 마시아 페페

생년월일: 1935년 2월 25일
A매치 기록: 41경기 22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산투스 FC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 브라질 축구의 세 명의 스타 레프트윙 중 한 명으로 왼쪽 사이드에서 거침없는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돌파했으며 위치와 거리를 가리지 않는 기습적인 슈팅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에 사람들은 그를 두고 빌라의 대포라 불렸다.
선수 생활을 오직 산투스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으로 산투스 역대 최다 출전자이자 펠레에 이어 최다 득점 2위에 올라있는 윙어로 펠레, 지투와 함께 산투스의 황금기를 이끈 1등 공신으로 10번의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경험했으며 전국리그에서도 5연패를 포함한 6회 우승을 달성했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2연패를 기록하며 당대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다. 특히 1962년에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와 전국리그를 모두 석권함은 물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는 당대 남미 최강의 팀인 페냐롤을 꺾으며 트레블을 달성했고 추가로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유럽 최강의 팀인 에우제비우의 벤피카를 꺾는 기염을 토했다.
5위 자이르지뉴

생년월일: 1944년 12월 25일
A매치 기록: 81경기 33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1970년 브라질을 상징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드리블 돌파와 정확한 오른발 슈팅, 그리고 화려한 발기술을 이용해 상대 수비의 압박을 따돌리는 능력도 지녔지만 크로스의 정확도가 나빠 클래식 윙어로 기용되진 못했다.
제2의 가린샤라 불리며 전성기를 누린 자이르지뉴는 보타포구에서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4회 우승과 1968년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포함해 총 10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이후 마르세유에서 유럽 무대에 도전했으나 반 시즌만에 다시 귀환해 크루제이루에서 부활하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셀레상에서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전승 우승을 차지했던 셀레상의 주포였다. 본선에서 6경기 모두 출전해 7골을 넣었으며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1970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월드컵 폭풍이라 불렸다. 펠레와 토스탕이 은퇴한 이후에 열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도 공격진의 에이스로 조국을 4위로 올렸다.
4위 줄리뉴

생년월일: 1929년 7월 29일
A매치 기록: 24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1950년대 세계 최고의 라이트윙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으며 가린샤가 대두하기 이전 최고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활약했는데 브라질리언답게 훌륭한 드리블과 개인기 스킬을 활용한 날카로운 컷인 플레이는 물론 크로스로 공격을 지원하는 능력도 당대 최고였다,
포르투게사에서 브라질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성장한 줄리뉴는 유럽의 피오렌티나에서는 구단 역사상 첫 세리에 A 우승 및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파우메이라스에서도 펠레와 라이벌리를 구성하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0 시즌 전국리그에서도 펠레의 산투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셀레상에서의 활약은 195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과 1954 스위스 월드컵 8강으로 다소 아쉬웠으나 클럽에서의 활약이 너무나도 대단해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음은 물론 세 시즌만 활약한 피오렌티나에서도 1996년에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는 위엄을 보였다.
3위 네이마르

생년월일: 1992년 2월 5일
A매치 기록: 119경기 74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2010년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당대 최고의 드리블 실력은 물론 볼 컨트롤 실력은 물론 득점력과 왕성한 활동량을 통해 3선까지 내려가서 팀의 경기를 풀어주는 역할에 능통한 완벽한 2선 자원인데 특히 고난이도의 개인기인 사포를 구사하는 능력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산투스에서 첫 전성기를 누린 네이마르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3회 우승과 2011 시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으며 개인적으로도 브라질 세리 A 올해의 팀 3회 선정과 2011 브라질 세리 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바르셀로나에서는 전성기를 누리며 2014-15 시즌 트레블을 이뤄냈고 2015년과 2017년에 발롱도르 3위에 올라 포디움에 올랐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에서는 메시가 있었기에 바르셀로나에서 주인공이 될 수 없었고 발롱도르를 원했던 네이마르는 역대 이적료 1위에 해당하는 2억 2200만 유로라는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기록하며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하며 리그앙 4회 우승과 구단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하는데 공헌했음은 물론 개인 통산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3회 선정되었다.
셀레상에서도 전체적인 활약상은 훌륭했지만 정작 메이저 대회 활약은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물론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성적이 2014 브라질 월드컵 4강과 202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이라는 성적이다. 이 대회에서 모두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2위 가린샤

생년월일: 1933년 10월 28일
A매치 기록: 50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역대 최고의 라이트윙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로 소아마비로 인해 양다리의 길이가 달랐으나 오히려 그런 점을 이용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드리블을 보여주며 상대 수비를 벗겨냈다. 크로스와 패스로 찬스를 만드는 데에도 능했다.
펠레의 산투스의 위용에 밀렸지만 지지, 니우통 산투스, 마리우 자갈루, 콰렌치냐 등과 함께 보타포구의 황금기를 누렸으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보타포구 통산 출전 2위와 통산 득점 2위에 올라있으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최우수 선수상을 3회 수상했다.
셀레상에서는 펠레와 함께 1958 스웨덴 월드컵부터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때까지 활약했으며 펠레가 중도에 부상으로 이탈한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에이스로서 팀을 이끌며 우승을 이뤄내며 득점왕과 골든볼을 수상했다. 특히 1962년에는 클럽과 대표팀에서 모두 대단한 활약을 보였는데 클럽에서 보타포구의 6관왕을 이끌었음은 물론 월드컵에서는 펠레 대신 에이스로 활약했다. 한 해 5개의 대회에서 MVP에 오른 것은 덤이다.
1위 호나우지뉴

생년월일: 1980년 3월 21일
A매치 기록: 97경기 33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2005년, 단 1년은 펠레, 마라도나, 메시, 호나우두가 보여준 모습을 보여준 창의적인 윙어다. 외계인으로 불렸으며 다른 선수들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는 다양한 프리스타일 개인기를 경기 내내 실전에 맞게 구사하는 천재였으며 저 화려한 기술을 뛰어난 전술안과 결합해 절륜한 플레이메이킹을 구사했으며 프리킥 실력마저 역대급 레벨로 평가받았다.
그레미우에서 캄파오네투 가우초 우승을 이끌며 두각을 나타냈고 파리에서 정상급 선수로 올라서며 바르셀로나에 입단한 호나우지뉴는 FC 바르셀로나에서는 바르셀로나를 수렁에서 구하며 라리가 2연패를 이뤄냈으며 2005-06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대단한 성적을 거뒀는데 이때 호나우지뉴의 퍼포먼스가 대단해 2005년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2005-06 시즌에는 라리가와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도움왕을 수상하며 2005-06 시즌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무절제한 생활과 부실한 몸관리로 인해 고점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며 2007-08 시즌에 최악의 부진을 거두자 AC 밀란으로 떠난 호나유지뉴는 전성기 때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세리에 A 도움왕을 수상하며 클래스를 증명했고 이후 브라질 무대로 돌아가서는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는 2012년에 브라질 세리 A MVP와 팬선정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2013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내는데 크게 공헌하며 2013 남미 올해의 축구선수에 선정되며 커리어를 완성한다.
셀레상에서도 외계인이란 명성을 이어가며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호나우지뉴는 1999년 코파 아메리카에 처음으로 명단에 올렸으나 히바우두와 제 호베르투에 밀려 벤치 신세를 졌었다. 그러나 2002 월드컵에서 호나우두, 히바우두와 함께 3R이란 공격 삼각편대를 이뤄내 우승에 크게 공헌해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다. 이후 호나우두를 밀어내고 대표팀의 에이스로 군림해 2005 컨페드컵을 우승했으나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보이며 8강에서 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