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11~20

국가의 영웅들/독일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11~20

토르난테 2025. 1. 2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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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준일은 2025년 1월 28일입니다.

 


20위 만프레트 카이저

 


생년월일: 1929년 1월 7일
A매치 기록: 31경기 1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바스무트 아우에

1950~60년대 동독 축구의 아이콘 중 한 명으로 득점력은 다소 평범했지만 매혹적인 볼 컨트롤과 우수한 드리블링, 그리고 높은 수준의 전술안을 바탕으로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했던 중원사령관이었다.

위스무트 게라에서 데뷔했지만 위스무트 아우에에서 전성기를 누린 카이저는 1950년대 오베리가 4회 우승을 이뤄내며 팀의 에이스로 군림했고 1956년 10월 6일에는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바스무트 아우에와 카이저슬라우테른 간의 동서독 통합 결승전에서도 3-5로 패하긴 했지만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동독 대표팀에서도 서독의 프리츠 발터에 대응되는 존재로 평가받았던 카이저는 1961년에는 동독 올해의 선수 초대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고 1961년부터 1967년까지 집권했던 소스 카로이가 이끌었던 '소스 시대'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19위 토마스 돌

 


생년월일: 1966년 4월 9일
A매치 기록: 47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동독 말기~통일 독일 초창기 시대의 유럽 무대 톱클래스 공격형 미드필더로 높은 수준의 볼 컨트롤과 테크니컬한 드리블, 그리고 창의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데 능했던 고전적인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동독의 한자 로스토크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낸 뒤 디나모 베를린으로 이적해 첫 전성기를 누린 토마스 돌은 1987-88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디나모 베를린에서 오베리가 2연패 및 FDGB포칼 2연패를 이뤄냈고 통일 독일 이후에는 함부르크를 거쳐 1991년 당시 독일 축구사 최고의 이적료였던 1500만 마르크의 이적료로 이탈리아의 라치오로 이적해 활약했는데 실제로 1991-92 시즌 전반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는 기염을 토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마티아스 잠머와 함께 동독 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한 토마스 돌은 A 대표팀 29경기 7골 및 올림픽팀 14경기 2골을 기록하며 팀의 중핵으로 활약하다가 독일이 통일된 이후에도 토마스 헤슬러의 슈퍼 서브로 참가해 UEFA 유로 1992 준우승을 이뤄냈으나 1993년 이후로 기량이 떨어지며 이른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18위 에리히 비어

 


생년월일: 1946년 12월 9일
A매치 기록: 24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헤르타 BSC

1970년대 하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작은 체구 탓에 몸싸움에서는 약점을 드러냈지만 우수한 전술안과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을 바탕으로 한 정확한 패싱력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메이킹은 물론 기습적인 1선 침투 이후 정확한 슈팅으로 직접 골문을 가르는 데에도 능했다.

뉘른베르크에서 데뷔해 로트바이트 에센을 거쳐 헤르타 BSC에서 전성기를 보낸 에리히 비어는 1974-75 시즌 팀의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75-76 시즌에는 페널티킥과 프리킥을 차지 않고도 리그에서 23골이나 득점하는 괴력을 선보였고 1976-77 시즌에는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은퇴한 뒤인 2003년에는 헤르타 BSC 111주년 기념 구단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이름 때문에 기자들로부터 베를린 맥주 또는 베를린 곰이라고 불렀던 비어는 오베라트와 네처가 대표팀에서 물러난 뒤에 수많은 공격형 미드필더들 중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내며 UEFA 유로 1976에 주전 미드필더로 참가해 준우승을 이뤄냈고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17위 아키 슈미트

 


생년월일: 1935년 9월 5일
A매치 기록: 25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 독일 최고의 인사이드 라이트이자 공격형 미드필더로 스피드는 빠르지 않았지만 우수한 볼 컨트롤과 창의적이면서 정밀도도 높은 쓰루패스와 도전적인 롱패스로 공격의 활로를 열었으며 수비적인 부분에도 능해 라이트 하프백으로도 뛰었다.

선수 생활을 전부 도르트문트에서 보낸 원 클럽맨이었던 슈미트는 1950년대를 풍미한 중앙 공격 조합인 알프레트 삼인방의 후계자이자 또 다른 알프레트로 그들이 하락세를 겪은 이후 독일 챔피언쉽 말엽과 분데스리가 초반 도르트문트에서 활약하며 오베리가 1회 우승과 독일 챔피언쉽 2회 우승, 그리고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에는 1964-65 시즌 DFB포칼 우승과 1965-66 시즌 분데스리가 준우승과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만 12회 랭크된 슈미트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프리츠 발터와 막스 몰록의 백업으로 참개해서 조국이 4위라는 성적을 거두는 것을 벤치에서 지켜봤다.

 

16위 루돌프 겔레슈

 


생년월일: 1914년 5월 1일
A매치 기록: 21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1cm
주 소속팀: FC 샬케 04

1930년대 로얄 블루스의 전성기를 이끈 인사이드 포워드로 우수한 패스 능력과 유려한 드리블을 통한 볼 운반 능력을 바탕으로 하프백으로 이동한 프리츠 슈체판과 에른스트 쿠조라 사이를 잇는 역할을 담당하며 크라이젤이라 불린 짧고 빠른 패스 위주의 점유율 축구를 구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선수다.

샬케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프리츠 슈체판, 에른스트 쿠조라, 오토 티불스키 등과 함께 호흡을 맞춰 활약한 겔레슈는 1930년대 로얄 블루스의 전성시대를 이끌며 가울리가 베스트팔렌 10회 우승과 독일 챔피언십 6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36-37 시즌에는 독일 챔피언쉽과 DFB-포칼을 동시에 우승하며 샬케를 독일 최초의 도메스틱 더블 팀으로 올려놓는데 공을 세웠다.

독일 대표팀에서도 슈체판과 발을 맞춘 겔레슈는 1936 베를린 올림픽 이후 헤어베르거에 의해 주전으로 도약하며 1937년 한 해 동안 11전 10승 1무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뒀으며 특히 1937년에 덴마크를 상대로 8-0 대승을 거둔 브레슬라우 엘프의 일원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안슐루스로 인해 오스트리아 선수들이 대거 합류해자 조직력이 약해진 독일 대표팀은 토너먼트 1차전에서 스위스한테 탈락하는 굴욕을 겪었다.

 

15위 자말 무시알라

 


생년월일: 2003년 2월 26일
A매치 기록: 38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현세대 분데스리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온 더 볼 상황에서 강점을 보였는데 특히 굉장히 간결하면서도 빠른 속도로 구사하는 팬텀 드리블을 활용해 다수의 수비수들에게 포위된 상황에서도 유의미한 찬스를 만들 수 있었기에 독일의 차세대 명장 나겔스만은 그를 두고 "무시알라는 발에 자석이 달린 것처럼 플레이한다."라고 평가했다.

첼시 유스팀에서 바이에른의 유스팀으로 이적한 무시알라는 2019-20 시즌 트레블 과정에서는 경기를 거의 나오지 못했지만 2020-21 시즌부터 출전시간을 늘려나가며 분데스리가 4연패를 이뤄냈는데 특히 2022-23 시즌 최종전에서는 자신이 직접 마무리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어냈다. 무시알라 개인도  2021년 골든 보이 3위를 시작으로 키커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고 2022-23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키커 올해의 팀, VDV 일레븐, 바이에른 뮌헨 올해의 선수상을 석권했다.

잉글랜드와 독일 이중국적자였지만 독일 대표팀을 선택한 무시알라는 UEFA 유로 2020에서는 백업으로 조별리그와 16강전에 교체 투입되었고 2022-23 UEFA 네이션스 리그에서는 팀은 아쉬운 성적을 보였지만 무시알라 개인은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다소 아쉬웠지만 UEFA 유로 2024에서는 3골을 득점하며 팀의 8강행을 이끌었다. 그리고 2024-25 시즌 전반기에는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에 선정되었다.

 

14위 플로리안 비르츠

 


생년월일: 2003년 5월 3일
A매치 기록: 29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바이어 레버쿠젠

현세대 분데스리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전성기의 마리오 괴체를 연상하게 하는 센스와 레버쿠젠의 토마스 뮐러라고 불리는 공간지각 능력을 바탕으로 매우 간결한 플레이를 선보이는데 어린 나이임에도 동료를 활용하는 월패스나 원터치 패스, 방향 전환을 위한 롱패스부터 속공 상황에서 킬러 패스, 파이널 서드에서 창의적인 기점 및 파이널 패스 등 모든 유형의 패스를 매우 높은 완성도로 구사할 수 있음은 물론 기습적인 드리블로 상대를 종종 교란하며 상대 수비라인에게 다지선다를 강요하는 플레이에 능했다.

쾰른 유스 출신이었으나 레버쿠젠 유스팀으로 이적해 프로 데뷔를 이뤄낸 비르츠는 데뷔 시즌부터 하베르츠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웠고 다음 시즌에는 곧바로 그보다도 훌륭한 플레이를 펼쳤고 결국 2023-24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 주역으로 활약했고 비르츠 개인도 2020-21 시즌 바이어 레버쿠젠 올해의 선수, 2021-22 시즌 VDV 일레븐 및 올해의 신인 선정 및 2022-23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올해의 영플레이어를 수상했음은 물론 2023-24 시즌에는 VDV 올해의 선수와 분데스리가 올해의 선수를 모두 석권했고 당연하게도 VDV 일레븐,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키커 올해의 팀, 그리고 UEFA 유로파 리그 시즌의 스쿼드와 ESM 올해의 팀에 모두 선정되었다.

U-17과 U-20에서 모두 프리츠 발터 메달 금메달을 수상한 엘리트이자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에 2회 선정된 비르츠는 독일 대표팀 소속으로도 2021 UEFA U-21 챔피언십 우승을 이뤄냈고 UEFA 유로 2024에서도 무시알라와 함께 팀을 8강에 올리는데 공헌했고 심지어 9강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는 동점골을 터트리기도 했다.

 

13위 마리오 괴체

 


생년월일: 1992년 6월 3일
A매치 기록: 63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유망주 시절부터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으로 평가받았던 천재적인 선수로 창의적인 패스와 우수한 기본기를 겸비했을 뿐만 아니라 왕성한 활동량으로 성실하게 전방에서 상대 수비수를 압박했으며 우수한 공간 활용 능력과 효율적인 드리블과 날카로운 킬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다.

도르트문트에서 데뷔해 데뷔 초반부터 전성기를 누린 괴체는 2011-12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분데스리가 2연패를 이뤄냈고 2011년에는 골든 보이 상을 수상했으며 2012-13 시즌에는 팀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올리는 활약을 펼쳤는데 특히 2011년에 전성기를 누리며 상술한 골든 보이 이외에도 VDV 올해의 신인과 키커 올해의 신인, 분데스리가 올해의 영플레이어를 모두 석권했고 VDV 일레븐 및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에도 동시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바이아웃인 3700만 유로의 이적료로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으나 치열한 주전 경쟁에서 밀렸으며 설상가상으로 부상까지 당하자 다시 도르트문트로 돌아와 2016-17 시즌 포칼 우승에 기여했으나 클롭 시절만큼 좋은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고 현재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다.

독일 대표팀에서는 U-17 대표팀 시절인 2009년에 조국의 UEFA U-17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며 MVP를 받았고 2009년 프리츠 발터 U-17 금메달 및 2010년 U-18 금메달을 모두 석권하며 어린 시절부터 차세대 에이스로 주목받았던 괴체는 성인 대표팀에서도 주전과 백업을 오가는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하며 UEFA 유로 2012 준결승 진출에 공헌했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대회 내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교체 출전해 결승골을 득점하며 우승을 확정지었고 이 덕분에 결승전 MOTM에 선정됨은 물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5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의 결승전 골 세레머니는 디 만샤프트의 역사책에 기록되었다.

 

12위 메멧 숄

 



생년월일: 1970년 10월 16일
A매치 기록: 36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90년대 말 분데스리가에서 명성을 날린 공격형 미드필더로 민첩한 몸놀림과 현란한 발재간을 활용한 우수한 드리블과 정확한 킥력을 활용한 데드볼 능력과 롱 패스를 겸비한 화려한 플레이메이커였다.

카를스루헤에서 데뷔해 독일 축구계의 미래 중 한 명으로 주목받았던 메멧 숄은 바이에른으로 이적해서 전성기를 누렸는데 바이에른에 머무는 동안 분데스리가 8회 우승과 포칼 5회 우승, 그리고 1995-96 시즌 UEFA컵 우승, 그리고 1998-99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과 2000-01 시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에서 ESM 올해의 팀 2회 선정과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2회에 선정되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의 3M 시대라 불렸던 바이에른 뮌헨의 제2 전성기는 물론 그 이후인 암흑기에도 팀을 지탱하며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선수였던 메멧 숄은 정작 독일 대표팀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월드컵을 한 번도 뛰지 못했지만 그래도 UEFA 유로 1996에서는 조국의 우승에 공헌했고 UEFA 유로 2000에서도 녹슨 전차 군단이라 불리며 부진한 디 만샤프트에서 유일하게 분전했다.

 

11위 우베 바인

 


생년월일: 1960년 9월 26일
A매치 기록: 17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분데스리가에서 이름을 날렸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섬세한 볼 컨트롤과 유려한 테크닉, 그리고 정확한 숏패스와 모험적인 롱패스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며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했다.

키커스 오펜바흐에서 데뷔해 쾰른을 거쳐 함부르크 SV에서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누린 바인은 특히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였는데 1988-89 시즌 16위로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렀던 프랑크푸르트를 1989-90 시즌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구단 역사상 최고 성적 기록 타이인 3위에 올리며 암흑기에 빠진 팀을 다시 구했고 그가 머문 동안 팀은 다섯 시즌 모두 5위 안에 들어 상위권으로 도약했으나 그가 노쇠화로 떠나자 팀은 하위권으로 내려앉았다가 결국 강등의 수모를 겪었다.

바인 개인도 함부르크와 프랑크푸르트에서 많은 영광을 누렸는데 1990-91 시즌부터 1992-93 시즌까지 세 시즌 연속으로 분데스리가 도움왕에 올랐으며 함부르크 시절을 포함해 5년 연속으로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은퇴한 뒤인 2013년 1월에 팬투표로 선정한 프랑크푸르트 역대 베스트 일레븐인 아인트라흐트의 기둥들에 선정되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9회 선정된 바인은 독일 대표팀에서는 토마스 헤슬러와 안드레아스 묄러의 백업 자리를 두고 경쟁했는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백업 멤버로 참가해 우승을 경험했지만 그 뒤로는 메이저 대회에 나서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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