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로'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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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로 10

볼로네즈 모터볼의 기적-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광인

1. 2-7-2 포메이션을 꿈꾸는 광인 "2-7-2 포메이션을 주목하라. 이 포지션은 축구의 미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보통 포메이션에 나온 숫자를 셀 때 골키퍼는 세지 않기에 포메이션에 언급된 숫자의 합은 10이 된다. 그러나 모타는 기존의 관념과는 다르게 골키퍼를 포함한 11명을 배치했는데 심지어 골키퍼를 두 명의 센터백보다 앞자리에 배치했다.  UEFA 프로 라이선스 과정에서 논문 작성과 발표를 포함해 110점 만점에 108점으로 수석을 차지했던 모타는 지도자 커리어의 시작점이었던 파리 생제르맹 U-19 시절부터 이를 주장했다. 제노아에서는 이를 적용하려다가 팀이 최하위로 떨어지며 경질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스페지아 칼초에서 반등에 성공해 2022년 1월 세리에 A 이 달의 감독상을 ..

F.C.U Football Award 기반 1960~1989 연도별 최고의 센터백들

포지션별 순위 재선정을 돕기 위해 한번 만들어봤습니다. 1960년대 이전 WM 시대 인물들은 모든 수비 포지션을 다 한 뒤에 수비수로 묶어서 하겠습니다. 1960 1위 자우마 디아스 (브라질 / 아메리카 RJ) 2위 호세 산타마리아 (스페인, 우루과이 / 레알 마드리드) 3위 윌리엄 마르티네스 (우루과이 / CA 페냐롤) 4위 헤수스 가라이 (스페인 / 아틀레틱 빌바오) 5위 아나톨리 마슬론킨 (소련 /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1961 1위 제르마누 (포르투갈 / SL 벤피카) 2위 윌리엄 마르티네스 (우루과이 / CA 페냐롤) 3위 호세 산타마리아 (스페인, 우루과이 / 레알 마드리드) 4위 페데리코 사키 (아르헨티나 / 라싱 클루브) 5위 마우리스 노먼 (잉글랜드 / 토트넘 핫스퍼) 1962 1위 칼하..

이탈리아 세리에 A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20

*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 대상자는 이탈리아 세리에 A 에서 100경기 이상 출전한 센터백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 기록일은 2023년 9월 19일 기준입니다. * 튀랑은 세리에 a에선 센터백으로 자주 뛰어서 센터백으로 분류합니다. * 마르셀 드사이는 AC 밀란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더 자주 소화했기에 이 명단에서는 빠집니다. 20위 카를로 파롤라 생년월일: 1921년 9월 20일 세리에 A 기록: 341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4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40년대 하반기와 1950년대 상반기에 이탈리아 무대에서 이..

New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50

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경기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기에 현대의 후방 플레이메이커와 동급의 비중을 지닌 리베로형 수비수가 평가에서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 기준은 2022-2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직후입니다. * 설명이 간..

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20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우루과이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3년 2월 6일 기준입니다. 20위 세바스티안 코아테스 생년월일: 1990년 10월 7일 A매치 기록: 49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96cm / 몸무게 94kg 주 소속팀: 스포르팅 리스본 2010년대 포르투갈 리그 정상급 센터백으로 크고 육중한 피지컬을 활용한 공중볼 경합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세트피스 상황에서 헤더로 득점하는 부분에..

프랑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20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프랑스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2년 10월 6일 기준입니다. 20위 필리프 맥세 생년월일: 1982년 3월 30일 A매치 기록: 29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AS 로마 200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수비수로 강한 피지컬을 앞세운 터프한 태클과 헌신적인 플레이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탁월한 슈팅 스킬로 간간히 원더골을 터트리기도..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20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2년 9월 6일 기준입니다. *동독 대표팀에서만 활약한 선수들은 제외했습니다. 20위 롤프 뤼스만 생년월일: 1950년 10월 13일 A매치 기록: 20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5cm 주 소속팀: FC 샬케 04 키커 랑리스테: IK: 4회 / K: 14회 / B: 5회 슈바르첸벡과 함께 1970년대 분데스리가 최고의 스토퍼로 평가받았던 선..

토르난테 선정-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수비수 Top 50

읽기 전에 주의사항 * 작성자의 평가 기준이 강하게 반영되었으며 작성자는 당대의 위상, 최고점에서 이룬 개인 및 팀 커리어, 그리고 수비수 포지션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큰 선수를 우선순위로 선정했습니다. 이 점에서 비슷하면 얼마나 더 오래 고점을 유지했느냐를 고려했습니다. * 1960년대 이후 선수로는 리베로로서의 덕목을 순위 선정에 큰 비중을 뒀으며 2010년대 이후의 선수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볼 플레잉 디펜더들에게 더 높은 평가를 내렸습니다. 시대에 역행한 선수는 고평가 할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

한때 독일 축구의 혼이였던 3-5-2 시스템

독일의 혼을 정립했던 선구자 서독의 유로와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던 헬무트 쇤이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의 부진의 책임을 지고 은퇴하자 그의 수석코치였던 유프 데어발이 그의 뒤를 이었다. 이때의 세계 축구의 전술적인 흐름은 미헬스 시대의 토털 풋볼을 따라 하기 위해 4-3-3을 시도했으나 효율적인 점유와 공격진의 스위칭에서 한계를 느끼고 4-4-2를 구사하며 중원을 틀어막아 압박에 최적화된 축구를 했으며 이탈리아 팀들은 카테나치오와 토털 풋볼의 방식을 혼합한 변형 4-4-2 시스템인 조나 미스타를 사용하고 있었다. 데어발은 스리 톱을 상대하는 상황에서는 네 명의 수비수가 효율적이지만 투 톱을 상대하는 상황에서는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여기서 그는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와 토리노에서 유행하는 조나 미스..

부대찌개로 보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역사 - (히츠펠트의 도르트문트의 성공과 그 이후의 몰락)

부대찌개 - 잔반도 뭉치면 명품이 될 수 있다. 부대찌개는 동양과 서양의 잘 퓨전 된 특유의 맛으로 인해 필자도 참 좋아한다. 하지만 이 부대찌개가 세상에 나온 배경은 제법 어두운 환경에 기인했다. 1950년대 대한민국은 6.25 전쟁을 겪은 이후 굉장히 어려운 시대에 살았다. 이때 대한민국에는 미국 군대가 주둔하며 안보를 지원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군량으로 스팸과 소시지, 베이컨을 주로 먹었고 이를 남겼다. 당시 어려웠던 식량 사정으로 인해 주한미군 부대에서 쓰고 남은 햄, 소시지, 베이컨 등을 가져와 김치를 넣고 솥뚜껑에 볶은 요리가 원조였으며 볶으면 자꾸 태워서 물을 부어보니 식량과 술안주 역할을 하는 찌개가 탄생했다. 그래서 이름이 미군 부대에서 나왔다는 의미의 부대찌개나 미국 대통령인 린든 베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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