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90~8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Total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90~81위

토르난테 2024. 10. 22.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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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90위 올레흐 블로힌

 


생년월일: 1952년 11월 5일
국적: 우크라이나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디나모 키이우

야신과 함께 소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팬들로부터 화살이라 불렸을 정도로 빠른 몸놀림으로 맹활약했으며 크루이프에 비견될 정도로 우수한 볼 컨트롤과 드리블을 활용한 화려한 개인기를 보여줬으며 신체 밸런스마저 훌륭한 완벽한 포워드였다.


디나모 키이우에서 명장 로바노프스키의 지도를 받으며 선수생활 대부분을 보낸 블로힌은 소련 탑 리그 우승 8회와 소비에트컵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럽 대항전에서도 1974-75 시즌과 1985-86 시즌의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전자의 대회 우승 자격으로 출전한 슈퍼컵에서는 베켄바우어와 게르트 뮐러가 이끄는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며 발롱도르 수상을 이뤄냈다. 후자의 대회에서는 팀 동료 벨라노프, 자바로프와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으며 소련 탑 리그 최다 출전자 및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남겼다.

블로힌 개인도 개인 통산 소련 탑 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13회 선정되었으며 소련 올해의 선수 3회 수상 및 우크라이나 올해의 선수 9회 수상, 소련 탑 리그 득점왕 5회 수상 등 업적을 이뤄냈고 소련 대표팀에서도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두 번의 하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냈고 두 번의 월드컵에 출전했다.



89위 오마르 시보리

 


생년월일: 1935년 10월 2일
국적: 아르헨티나 →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63cm / 몸무게 59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기 세계 최고의 판타지스타 중 한 명으로 뛰어난 볼 컨트롤과 드리블로 수비진을 교란했으며 매서운 왼발 슈팅으로 직접 득점하기도 했으나 규율과 규칙을 싫어하고 브라질 선수들과 사이가 나빠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리버 플레이트에서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연패를 이뤄내며 모레노, 디 스테퍼노와 같은 선배들과 동급의 풍격을 보이며 주목받은 시보리는 이때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195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하는데 크게 공헌했는데 이때 시보리와 아르헨티나 대표팀 선수들은 팬들로부터 더러운 얼굴의 천사들이라 불렸고 시보리는 그 핵심이었다.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한 이후 이탈리아로 건너가 유벤투스에 합류했는데 유벤투스에서는 존 찰스, 보니페르티와 함께 마법의 삼총사를 구성해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를 각 3회씩 우승했고 1959-60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으며 특히 1960-61 시즌에  데르비 디탈리아에서는 인테르를 상대로 혼자서 여섯 골을 퍼부으며 9-1이라는 기록적인 대승을 거두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때의 활약을 발판으로 1961년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말년에는 나폴리에서도 활약했다.



88위 쉬로서 임레

 


생년월일: 1889년 10월 11일
국적: 헝가리
신체조건: 키 185cm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1910년대 최고의 축구 선수로 평가받으며 국내외에서 각종 기록을 보유한 뛰어난 인사이드 포워드로 각종 기록을 보유했던 엄청난 득점력은 물론이고 공격 전반을 지휘하는 플레이메이킹에도 능했던 선수다.

넴제티 버이녹샤그에서도 각종 기록을 보유한 쉬로서는 페렌츠바로시와 MTK 헝가리아에서 모두 전성기를 누렸는데 두 클럽에서 각각 넴제티 버이녹샤그 6회 우승을 기록하며 개인 통산 넴제티 버이녹샤그 12회 우승을 기록했음은 물론 쉬로서 개인도 리그 득점왕 6년 연속 수상을 포함해 개인 통산 리그 7회 득점왕에 올랐으며 1911년부터 1914년까지 4년 연속 유럽 최다 득점자에 오르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넴제티 버이녹샤그 역대 최다 득점자이자 최다 우승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년 동안 헝가리 대표팀의 주전으로 활약한 쉬로서는 다섯 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했음은 물론 세계 최초로 A매치 50경기를 달성했고 A매치 50골도 세계 최초로 달성했으며 푸스카스가 이 기록을 깨기 전까지 30년 넘게 세계 최고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87위 마누엘 세오아네

 


생년월일: 1902년 3월 19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60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작고 뚱뚱한 체구를 가졌으나 1920년대 아르헨티나를 대표했던 공격수로 키가 작았지만 경합 능력과 헤딩 스킬이 우수해 헤더로 많은 득점을 기록했고  볼 다루는 기술이 빼어났으며 정확한 양발 슈팅과 우수한 패스 센스를 가진 인사이드 포워드였으며 또한 체형 때문에 다소 느린 스피드를 보완하기 위해 다음 플레이를 예측하는 지능적인 플레이를 선호했다.

인디펜디엔테 구단 통산 득점 2위에 랭크된 세오아네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을 포함해 공식대회 통산 3회 우승을 이뤄냈고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을 3회 수상하며 당대 아르헨티나 축구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특히 1922년에는 리그 39경기에 출전해 51골을 득점하는 괴력을 뽐냈는데 리그 득점 2위 안토니오 두아르테와는 무려 29골 차이라는 압도적인 득점차로 득점왕을 수상했다.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대회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데 조국에게 3회 우승은 선물했음은 물론이고 1925년 대회에서는 우승, 득점왕, MVP의 트레블을 이뤄냈으며 1927년 대회에서도 MVP에 올랐고 1929년에도 우승 멤버로 이름을 남기는 대단한 활약을 보여줬다.

 

 

86위 토스탕

 


생년월일: 1947년 1월 25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크루제이루

하얀 펠레라 불렸던 197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유럽의 크루이프에 대한 남미의 대답으로 평가받았으며 경기 흐름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완벽한 전술안과 경기장 전체를 망라하는 드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패스로 수많은 골 찬스를 만들었으며 상대 마킹맨을 농락하는 탈압박 능력과 화려한 드리블 실력을 겸비한 공격수였다.

크루제이루에서 전성기를 보낸 크루제이루의 왕 토스탕은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5회 우승 및 1966년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냈는데 이 과정에서 전국리그 5연패를 이뤄냈던 펠레의 산투스를 상대로 1차전 6-2 대승 및 2차전 3-2 역전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모두 득점포를 가동했고 토스탕 개인도 1970년에는 브라질 전국리그 득점왕과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71년에는 브라질 전국리그 MVP를 수상했음은 물론 남미 올해의 선수상도 수상했다.

셀레상에서도 1970 브라질 월드컵 우승에 크게 공헌한 토스탕은 왕이라 불린 펠레의 뒤를 이어 부왕이라는 칭호로 불렸는데 히벨리누, 자이르지뉴,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제르손 등 전설적인 선수가 다수 포진했음을 감안하면 토스탕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다. 다만 망막박리라는 치명적인 안구 질환으로 인해 26세라는 어린 나이에 은퇴했는데 이는 브라질 축구계의 큰 손실이었다. 토스탕은 짧은 기간 굵은 활약을 보여줬기에 이를 인정받아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예를 누렸다.

 

 

85위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

 


생년월일: 1892년 7월 18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62kg
주 소속팀: CA 파울리스타노

축구 역사상 비공식전 포함 최다 득점자이자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초의 스타플레이어로 당시 브라질 축구계에 만연했던 인종차별이라는 장벽을 걷어내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써내려갔으며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흑인이 활약할 수 있는 판을 깔아놓은 기념비적인 인물이며 특유의 저돌적이면서 날쎈 플레이스타일로 인해 호랑이라는 벼령으로 불렸다.

CA 파울리스타노에서 활약하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6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상파울루로 이적한 뒤에도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 횟수를 한번 추가했으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득점왕에 개인 통산 9회 수상했고 1925년에는 유럽 투어에서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열 경기에서 단 한 번도 패배를 허용치 않았는데 특히 파리에서 열린 첫 경기에서 파울리스타누는 프랑스를 상대로 7:2 대승을 거두며 유럽인들을 충격에 빠트렸는데 브라질의 전문가 알레산드리 다코스타 박사는 이를 두고 "아르투르의 축구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단 한 경기를 보고서도 말이죠. 아르투르는 이로써 왕 중의 왕이 되었습니다. 세계 축구의 왕 중의 왕이 된 거죠!"라고 찬사를 보냈다.

셀레상에서도 1919년과 1922년에 열린 코파 아메리카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으며 특히 1919년 대회에서는 우승은 물론 득점왕과 MVP까지 모두 석권했는데 이때를 두고 알레샨드리 다코스타 박사는 "그때 당시를 돌아보면 아르투르가 축구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때까지만 해도 브라질 언론은 경마에 대한 기사만 주로 다뤘습니다. 그런데 아르투르가 골을 넣고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에서까지 우승을 하자 구석에 몇 줄 실리던 게 고작이었던 축구기사가 신문에 대서특필되었죠! 아르투르는 축구를 인기 종목으로 만들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실제로 브라질에서 축구가 인기 종목으로 오른 것은 물론 흑인도 축구에 제약 없이 참가하게 된 부분에는 프리덴라이히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84위 레오니다스 다 시우바

 


생년월일: 1913년 9월 6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플라멩구


펠레 이전 브라질 축구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으로 정확한 위치 선정과 정교하면서도 강력한 왼발 슈팅 능력을 갖췄으며 고무인간이라 불렸을 정도로 훌륭한 탄력성을 겸비해 축구 역사상 최초로 바이시클 킥을 시도했으며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능해 인사이드 포워드로도 활약할 수 있었던 전천후 공격수였다.

바스쿠 다 가마, 보타포구, 플라멩구에서 캄파오네투 카리오카를 각각 한 번씩 우승하며 개인 통산 3회 우승을 이뤄낸 레오디나스는 1940년에는 득점왕도 거머쥐었으며 상 파울루로 이적한 이후에는 제2의 전성기를 누리며 사스트레와 함께 캄파오네투 파울리스타 5회 우승을 이뤄냈다. 실제로 레오디나스의 활약과 인기가 대단해 브라질의 초콜릿 제조업체인 렛타는 레오디나스의 허락하에 그의 별명인 검은 다이너마이트의 포르투갈어인 Diamante Negro라는 이름의 초콜릿을 발매했다. 

레오니다스는 셀레상 유니폼을 입고도 맹활약했는데 특히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발군이었는데 그가 결장한 4강 이탈리아전에서 브라질은 패배를 당해 3위에 머물렀음에도 7골을 득점한 레오디나스의 활약은 대단해 결승에 오른 이탈리아와 헝가리의 선수들을 제치고 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당연하게도 브라질 축구 명에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83위 알베르토 스펜세르

 


생년월일: 1937년 12월 6일
국적: 에콰도르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마법의 머리'

펠레의 라이벌 중 하나로 명성을 떨친 1960년대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이자 에콰도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큰 체격임에도 빠른 스피드와 민첩한 몸놀림을 보여줬으며 특히 헤딩에 능해 마법의 머리라 불렸다. 게다가 인사이드 포워드 출신이었던 만큼 연계 플레이에도 두각을 나타내는 등 대단한 실력을 갖춰 우루과이 축구협회는 그를 귀화시켜 대표팀에 선발하려고 했지만 조국 에콰도르를 포함해 주변 국가들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실현되지는 못했다.

페냐롤 왕조의 주포로 양발과 머리를 가리지 않고 득점하며 막강한 득점력을 보여준 스펜세르는 팀 공격의 방점을 찍으며우루과이 프리미어 디비시온 8회 우승,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회 우승, 인터콘티넨탈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그 과정에서 1961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에 이어 그 해에 열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에우제비우를 앞세운 벤피카를 꺾고 페냐롤이 우루과이, 남미, 세계 무대에서 모두 챔피언에 오르는 트레블을 이뤄냈고 1966년에는 리그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레알 마드리드를 홈과 원정에서 모두 꺾으며 1960년 대회를 설욕했으며  1969년에는 역대 인터콘티넨탈 우승팀끼리 최강자를 가리는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스 슈퍼컵 우승을 이뤄내며 1960년대 페냐롤의 황금기를 이끈 일등 공신으로 이름을 남았다.

페냐롤 왕조를 재창하는 과정에서 페냐롤 구단 통산 출전 5위와 통산 득점 2위에 오른 스펜세르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 4회 수상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 2회 수상을 이뤄냈고 특히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통산 최다 득점자에 랭크되었으며 1967년에는 로 스포르트 일루스트라토 선정 남미 베스트 일레븐 및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69년에는 엘 그라피코 선정 1960년대 남미 최고의 선수 스트라이커 부문 1위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82위 안드레아 피를로

 


생년월일: 1979년 5월 19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AC 밀란

레지스타의 대명사이자 현대적인 후방 플레이메이커의 시조로 불리던 선수로 전통적으로 포백 보호를 겸하던 후방 플레이메이커와는 다르게 수비 가담은 메짤라에게 맡기고 드넓은 시야와 마에스트로가 생각나는 템포 조절, 그리고 치명적인 롱패스 능력으로 그라운드를 자신의 뜻대로 쥐락펴락하는 천재였다.

21세기 세리에 A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AC 밀란과 유벤투스에서 활약했으며 로쏘네리 군단에서는 세리에 A 2회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을, 비안코네리 군단에서는 2011-12 시즌 무패 우승을 포함한 세리에 A 4회 연속 우승은 물론 2014-15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우승해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으며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준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물리치고 결승에 진출했다.

아주리에서 피를로의 활약도 위대했는데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중원을 이끌며 대회 어시스트 1위를 달성해 팀의 우승에 크게 공헌해 월드컵 브론즈볼과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유로 2012 때는 전력이 약화된 이탈리아를 결승에 올려놓으며 맹활약했다. 비록 스페인에게 대패했지만 그의 활약은 인정받아 대회 베스트 일레븐과 MVP 선정에서 2위에 올랐다. 

피를로는 개인적으로도 세리에 A 올해의 팀 4회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연속으로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특히 2011-12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과 2012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4회 선정되어 네 번 모두 10위 안에 들었으며 밀란에 머물던 2007년에 5위에 오르며 개인 통산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81위 호베르투 카를루스

 


생년월일: 1973년 4월 10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21세기를 대표하는 공격형 레프트백으로 탄환인간이라 불렸을 정도로 엄청난 지구력과 스피드를 겸비했으며 거침없는 오버래핑과 단단한 몸을 이용한 대인 수비, 그리고 악마의 왼발로 불리는 강력한 왼발 킥력도 가지고 있었다.

파우메이라스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를 누린 호베르투 카를루스는 파우메이라스에서는 브라질 세리 A 2연패를 이뤄냈고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라리가 4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을 이끌어냈음은 물론 카를루스 개인도 ESM 올해의 팀에 7회나 선정되었을 정도로 꾸준하게 활약했고 UEFA 올해의 수비수에도 2회 선정, 발롱도르 투표에서 10위 안에 3회 선정되었음은 물론 2002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에 오르기도 하는 등 높은 고점도 동시에 보여줬다.

셀레상에서도 월드컵 3회 출전, 코파 아메리카 4회, 그리고 컨페드컵 1회에 출전했으며 두 번의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으며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를 우승했다. 특히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에 올랐으며 1997년 컨페드컵에서는 귀신같은 궤적의 프리킥을 날려 득점했는데 그 슈팅의 궤적이 너무나도 경이로워 UFO 슛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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