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100~9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Total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100~91위

토르난테 2024. 10. 21.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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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100위 에른스트 오크비르크

 


생년월일: 1926년 3월 7일
국적: 오스트리아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아우스트리아 빈

1950년대 최고의 하프백 중 한 명으로 드넓은 시야와 정교한 롱패스를 활용한 우수한 볼 배급 능력, 그리고 원활한 수비력과 탄탄한 기본기를 겸비했음은 물론 축구지능까지 고차원적인 수준이라  인사이드 포워드나 풀백으로도 뛸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꾸준하고 일관적인 경기력을 유지해서 한 영국 언론사는 그를 두고 시계태엽이라 부르기도 했다.

아우스트리아 빈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커리어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는데 오크비르크 개인 통산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5회 우승 및 오스트리안컵 3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1952년에는 소규모 클럽 월드컵인 코파 히우에서 팀을 4강에 올리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53년에는 FIFA XI으로 선정되어 잉글랜드 FA 창립 90주년 기념 경기에 출전하며 창의적인 패스로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하며 4-4 무승부를 기록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오스트리아 대표팀에서도 라이트 하프 게르하르트 하나피, 레프트 하프 칼 콜러와 함께 화려한 중원라인을 형성해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팀이 3위라는 호성적을 거두는데 큰 공을 세워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말년에는 이탈리아 무대에 중견팀이었던 삼프도리아로 입단해 새로운 도전을 펼친 오크비르크는 비록 우승 트로피를 들지는 못했지만 개인은 뛰어난 활약을 펼쳐 1956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7위에 랭크되었으며 1960-61 시즌에는 그 당시 삼프도리아의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성적이었던 세리에 A 4위에 올리는데 공헌했다.



99위 보직 요제프

 


생년월일: 1925년 11월 28일
국적: 헝가리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부다페스트 혼베드

당대는 물론이고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선수로 후방에서 정확한 패스 능력과 우수한 볼 컨트롤, 그리고 왕성한 활동량과 뛰어난 대인 수비 능력을 바탕으로 중원을 장악했으며 전술안도 우수해 그라운드에서 감독 대신 선수단을 지휘하기도 했으며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포문을 여는데에도 능했다.

부다페스트 혼베드의 황금기를 이끈 보직은 넴제티 버이녹샤그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2년에는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다른 에이스들과는 다르게 헝가리 혁명 이후에도 부다페스트 혼베드에서 뛰면서 원 클럽맨으로 은퇴했기에 헝가리 공산 정권 시절에는 푸스카스, 코츠시슈보다 보직의 인기가 더 많았던 시절도 있었다.

헝가리 대표팀 최초의 센추리 클럽 가입자이자 세계에서도 빌리 라이트에 이어 두 번째 센추리 클럽 가입자였던 보직은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 1953년에는 5년간 치러진 중유럽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는 등 4년간 31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기록하며 1954 스위스 월드컵까지 승승장구했으나 결승에서 서독에게 아쉽게 패했지만 보직은 우수한 활약을 인정받아 ESPN과 문도 에스포르티보가 선정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모두 선정되었다.

 

 

98위 데이비드 베컴

 

 

생년월일: 1975년 5월 2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황금의 오른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타로 수려한 외모는 물론 예술에 경지에 오른 오른발 킥에서 나오는 크로스, 롱패스로 수많은 골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수려한 외모와는 다르게 농부를 연상시키는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하기도 했으며 프리킥도 매우 잘 차 역대 최고의 프리키커 중 한 명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일명 퍼기의 아이들로 데뷔해 전성기를 보낸 베컴은 구단에 머무는 동안 프리미어리그 6회 우승과 FA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8-99 시즌에는 리그와 FA컵은 물론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이뤄내며 트레블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트레블의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았고 이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에도 2006-07 시즌 라리가 우승을 이끌었다.

베컴 개인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머무는 동안 PFA 올해의 팀에 4회 선정되었으며 특히 1999년에는 ESM 올해의 팀, UEFA 클럽 올해의 미드필더와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상을 석권했고 상술한 업적들을 인정받아 2021년에 프리미어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00년대 잉글랜드 출신 스타들이 대체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와 다르게 베컴의 기량은 삼사자 군단에서도 대단했으며 2002 한일 월드컵과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에이스로 고군분투하며 팀을 8강에 올려놓았고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현역으로 활약하던 2008년에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97위 파벨 네드베드

 


생년월일: 1972년 8월 30일
국적: 체코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2000년대 상반기 최고의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강력한 체력으로 공수 양면에 걸쳐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며 경기장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창의적이진 않았지만 정확한 패스를 통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우수한 킥력도 겸비했으며 "나는 하루 12시간을 연습했다, 두 다리 모두 우월하다고 느낄 때 희열을 느꼈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양발을 잘 썼던 만능 미드필더 자원이었다.

두클라 프라하에서 데뷔해 스파르타 프라하를 거쳐 세리에 A의 라치오와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보낸 네드베드는 라치오에서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누리며 1997-98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UEFA컵 준우승, 1998-99 시즌 컵 위너스컵 우승과 1999-2000 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다. 2001-02 시즌에 유벤투스로 이적한 뒤에도 세리에 A 2연패를 이뤄냈고 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이뤄내며 2003년 발롱도르를 수상하기도 했다.

네드베드는 개인도 발롱도르 수상 이외에도 체코 골든볼 6회 선정, UEFA 올해의 팀 3회 선정 및 ESM 올해의 팀 2회 선정이라는 성과를 냈으며 2002-03 시즌에는 UEFA 클럽 베스트 미드필더와 2003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및 올해의 외국인 선수를 수상했으며 평점왕 구에린 도르도 수상했다.

체코 대표팀에서도 UEFA 유로 1996에서 조국의 결승 진출에 큰 역할을 하며 전 유럽의 주목을 받았고 UEFA 유로 2004에서도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4강에 올리며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으나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96위 마티아스 잠머

 


생년월일: 1967년 9월 5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마지막 리베로'

마지막 리베로라 불리는 사나이로 스리백 시스템에서 오프사이드 트랩은 불가능하다는 세간의 편견을 깨며 스리 백 시스템에서도 오프사이드 트랩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축구 지능과 수비 조율 능력을 가진 선수였다.

전성기는 짧지만 그 고점은 가히 베켄바우어 다음가는 선수였던 잠머는 히츠펠트 체제의 도르트문트에서 분데스리가와 DFL슈퍼컵 2연패를 이뤄냈으며 1996-97 시즌에는 유벤투스를 꺾고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동독 대표팀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다 통일 이후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거쳐 리베로로 활약했던 잠머는 리베로로 활약한 UEFA 유로에 1996에서 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여 녹슨 전차군단이라 조롱받았던 독일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MVP를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으나 이후 1998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큰 부상을 당해 은퇴하면서 독일 축구는 한동안 암흑기를 겪었다.

잠머는 분데스리가에서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1995년 독일 올해의 선수와 발롱도르 9위에 올랐고 1996년에는 디 만샤프트의 앙리 들로네를 드는데 크게 기여해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초신성 호나우두를 간신히 따돌리고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95위 안드리 셰우첸코

 


생년월일: 1976년 9월 29일
국적: 우크라이나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AC 밀란

호나우두와 함께 90년대 말, 2000년대 초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통했으며 뛰어난 위치 선정과 킥력에서 나오는 득점력은 물론이고 화려한 드리블 실력과 유려한 연계 능력을 겸비한 무결점 스트라이커였다.

영혼의 파트너 레브로프와 함께 1990년대 하반기 디나모 키이우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끌었던 셰우첸코는 우크라이나 리그 5회 우승과 컵대회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챔피언스리그에서 바르셀로나 원정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1998-99 시즌에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승리해 준결승에 진출하기도 했다.

AC 밀란으로 이적한 뒤에는 비어호프, 질라르디노, 인자기, 욘 달 톰마손 등과 호흡을 맞추며 공격의 중심으로 활약한 셰우첸코는 2002-03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챔피언스리그에서 더블 우승을 기록했고 2003-04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며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발롱도르 이외에도 밀란에 머무는 동안 세리에 A 득점왕을 2회 수상했으며 ESM 올해의 팀 3회 선정되었다.

우크라이나 올해의 선수상 6회 수상 및 대표팀 통산 A매치 최다 득점자에 랭크된 셰우첸코는 우크라이나 대표팀의 유일한 월드컵 진출인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팀에게 8강 진출을 선물했으며 유로 2012에도 참가해 말년을 불태웠다.

 

 

94위 루이스 수아레스

 


생년월일: 1987년 1월 24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레반도프스키와 함께 201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불렸으며 각종 기행으로 더 유명하지만 실력도 우수했는데 우수한 골 결정력은 물론 다이나믹한 드리블과 뛰어난 패싱력을 활용한 찬스 메이킹에도 능했으며 전성기 시절에는 하프 라인부터 직접 골라인까지 몰고 가서 득점을 하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다.

아약스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낸 뒤, 리버풀에서 첫 전성기를 보낸 수아레스는 비록 리그 우승을 이뤄내진 못했지만 2013-14 시즌에 득점왕과 리그 MVP를 수상하며 ESM 올해의 팀, PFA 올해의 팀, 유러피언 골든슈, FWA 올해의 선수, PFA 올해의 선수 등 여러 상을 독식했으나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키엘리니를 물어버리며 반년 간 축구계 모든 행사 참가 금지를 받아 발롱도르 후보에 들지 못했다.

2014-15 시즌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뒤에는 상술했던 징계로 반 년을 쉬었지만 복귀하고 나서 메시, 네이마르와 함께 MSN 라인을 구축해 활약하며 2014-15 시즌 트레블을 포함해 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2015-16 시즌에는 40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에 올랐으며 해당 시즌에 코파 델 레이 우승도 이뤄냈다. 수아레스 개인도 ESM 올해의 팀에 2회 연속 선정된 것과 2015년 발롱도르 5위, 2016년 발롱도르 4위에 올랐다.

우루과이 대표팀 A매치 통산 최다 득점자인 수아레즈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포를란을 보좌하며 팀의 4강 진출에 공헌했으며 2011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MVP를 수상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8강에 진출했으나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안타깝게도 세월의 흔적을 이겨내지 못하고 부진했다.



93위 카림 벤제마

 


생년월일: 1987년 12월 19일
국적: 프랑스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2010년대를 풍미한 스트라이커로 유려한 발기술과 패싱력, 그리고 이타적인 오프 더 볼 능력을 겸비한 뛰어난 연계 플레이 능력이 강점이었으며 날카로운 슈팅과 클러치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능력도 충분히 보여줬던 만능 공격수였다.

올림피크 리옹에서 리그앙 4연패를 거두고 2007-08 시즌 리그앙 올스타 팀, 득점왕, 올해의 선수를 모두 석권하며 이름을 날린 벤제마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첫 시즌에는 부진한 활약으로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지만 이내 적응하며 경쟁자인 이과인을 밀어내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파트너 자리를 차지해 UEFA 챔피언스리그 3연패의 금자탑을 쌓았는데 호날두가 이적한 이후에는 자신이 직접 공격의 에이스가 되어 중요한 경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2021-22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며 통산 라리가 4회 우승,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 및 UEFA 챔피언스리그 5회 우승을 이뤄냈다.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스 2기라 불리는 구단 역사상 세 번째 황금기를 이끌던 벤제마는 레알 마드리드 올해의 선수 4회 선정, 라리가 올해의 팀 3회 선정,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 2회 선정 및 ESM 올해의 팀 2회 선정을 기록했으며 2019-20 시즌 라리가 MVP를 석권했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9회 선정 및 2022년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팀, 득점왕, 올해의 선수를 석권하며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레 블뢰에서 순조롭게 앙리의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는 듯 했던 벤제마는 모종의 사건으로 UEFA 유로 2016 준우승과 2018 프랑스 월드컵 우승에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최근 다시 복귀해 2020-21 UEFA 네이션스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나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부상과 대표팀 감독과의 불화설이 겹치며 나서지 못했다.

 

 

92위 우베 젤러

 


생년월일: 1936년 11월 5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1960년대 독일 축구의 아이콘으로 범국민적인 사랑을 받아 우리들의 우베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인물로 공격수로서 결점이 없는 완벽한 공격수였는데 170cm의 단신임에도 헤딩에 매우 능했으며 양발을 모두 잘 썼고 백 헤더와 백힐 패스, 바이시클 킥 등 고급적인 기술들을 실전에서 자유자재로 선보이기도 했음은 물론 천둥과도 같은 강력한 슈팅으로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줬다. 여기에 스피드도 빨랐고 강력한 리더십마저 보유했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함부르크에서 보낸 젤러는 오버리가 노르트 9회 우승과 1959-60 시즌 독일 챔피언쉽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이듬해에 1960-61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4강에 진출했으나 바르셀로나에게 아쉽게 탈락했고 1962-63 시즌 포칼 우승도 이끌어냈다. 비록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에는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1963-64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기록했으며 발롱도르 10등 안에 네 번이나 들었던 우베 젤러의 활약은 당대 최고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기에 레알 마드리드와 인터 밀란에서 영입을 타진했으나 젤러가 함부르크에 대한 충성심으로 거부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1958 스웨덴 월드컵부터 1970 멕시코 월드컵까지 네 번에 월드컵에 참가해 모두 주전으로 활약하며 모든 대회에서 득점을 기록했으며 특히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선 주장으로 디 만샤프트를 이끌고 결승에 진출하는 활약을 보여줬다.

우리들의 우베라 불렸던 서독 축구계의 인기 스타 우베 젤러는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3회 수상했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5회 선정되어 1960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3위에 오르며 포디움에 들었다.

 

 

91위 케니 달글리시

 


생년월일: 1951년 3월 4일
국적: 스코틀랜드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1980년대 유럽 정상급 공격수로 굉장히 빠른 스피드를 보유하는 동시에 우수한 드리블 능력까지 보여주는 선수였으며 측면에서 중앙으로 들어오면서 감아차기로 수많은 득점을 만들어냈다.

셀틱이 스코틀랜드 무대에서 독주하던 시절 데뷔한 달글리시는 스코티시 풋볼 리그와 스코티시 컵을 각각 4회 우승했고 1975-76 시즌에는 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주목받은 달글리시는 에이스 케빈 키건을 함부르크에 내준 붉은 제국 리버풀에 입단해 키건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우며 붉은 제국이라 불렸던 왕조의 중흥기를 이끌어 풋볼 리그 우승 6회, 유러피언 컵 우승 3회를 포함해 20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왕조를 세웠고 달글리시 개인도 PFA 올해의 팀 5회 선정 및 FWA 올해의 선수에 2회 선정되었으며 1982-83 시즌에는 PFA 올해의 선수에도 선정되었음은 물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노미네이트에 5회 선정되어 1983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에 올랐다.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도 세 번의 월드컵에 출전했던 달글리시에 대해 라이벌 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감독 알렉스 퍼거슨은  "달글리시는 모든 면에서 케빈 키건보다 뛰어난 선수였다."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키건은 발롱도르를 두 번이나 수상한 전설적인 선수였으며 이 발언을 라이벌 팀의 감독이 말했던 것을 생각하면 당시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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