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Top 15

명문을 써내려간 남자들/리버풀

리버풀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Top 15

토르난테 2024. 10. 16. 13:19
728x90
728x90

주의사항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4년 10월 16일 기준입니다.
*기준은 철저하게 리버풀 내에서의 활약입니다. 고점, 누적 모두 동일합니다.
*공식전 80전 미만은 순위 선정에서 제외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의 네임드가 부족해 윙을 겸할 수 있는 쿠티뉴를 여기 추가했습니다.

 


15위 데이비드 페어클로프

 


출생년도: 1957년 1월 5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75~1983
통산 기록: 154경기 55골 13도움

올레 군나르 솔샤르 이전 잉글랜드 무대를 수놓은 최고의 슈퍼 서브로 전체적인 기량이 우수한 편은 아니었지만 적절한 위치 선정과 정확한 슈팅으로 팀이 골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꼭 득점하는 슈퍼서브였다.

리버풀 유스팀에서 데뷔해 케빈 키건, 존 토샥, 케니 달글리시, 이안 러시와 같은 위대한 공격수들을 보좌하는 조커로서 활약했던 페어클로프는 풋볼 리그 6회 우승 및 1975-76 시즌 UEFA컵 우승과 유러피언 컵 3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의외로 조커로 활약했음에도 2006년에 리버풀 공식 웹사이트에서 진행된 여론조사인 '100 Players Who Shook The Kop'에서 18위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조커 플레이어였던 그가 전설들 사이에서도 높은 인기를 기록할 수 있었던 가장 유명한 순간은 1976-77 시즌 유러피안 컵 8강전. 리버풀은 생테티엔 원정에서 1-0으로 지고 온 뒤 홈 안필드에서 2-1로 이기고 있었으나 원정 다득점 룰로 인해 그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리버풀은 떨어지는 상황에서 그가 교체로 들어가 생테티엔을 상대로 극장골을 넣고 리버풀 팬들이 사랑하는 선수로 거듭나게 된다.

 

 

14위 피터 크라우치

 


출생년도: 1981년 1월 30일
신체조건: 키 202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2005~2008
통산 기록: 134경기 42골 23도움

2m가 넘는 장신 공격수로 큰 키에도 불구하고 발재간과 볼 트래핑이 꽤나 안정적이며 주력이 나쁘지 않았으며 엄청 마른 몸에도 심판 몰래 손을 써서 상대를 괴롭히는 등 다소 교활한 몸싸움으로 자신의 약점을 극복했는데 그래도 역시 압도적인 신장을 이용한 제공권 장악력을 통해 팀원들에게 세컨볼 찬스를 내어주는 플레이에 가장 능했다.

포츠머스와 사우스햄튼에서 활약하다가 사우스햄튼이 강등당하자 리버풀에 입단한 크라우치는 첫 19경기 간 무득점을 이어갔는데 특유의 피지컬과 발재간을 이용한 찬스 메이킹이 제법 호평받기도 했다. 2006-07 시즌에는 모든 대회 통합 18골을 기록하며 리버풀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기도 했으나 페르난도 토레스와의 주전경쟁에서 완벽하게 밀려났기에 처음 두각을 나타낸 포츠머스로 다시 돌아갔다.

 

 

13위 에밀 헤스키

 


출생년도: 1978년 1월 11일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8kg
활약 기간: 2000~2004
통산 기록: 223경기 60골 30도움

큰 키와 견고한 피지컬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수놓은 스트라이커로 우수한 신체능력을 앞세운 파워풀한 몸싸움 능력으로 상대 수비진을 유린하고 공중볼 경합에 능한 전형적인 포스트 플레이어였는데 장신임에도 스피드가 빨랐음은 물론 팀의 승리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줄 알았다는 점. 스트라이커임에도 골 결정력이 그다지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반대로 동료 선수에게 찬스를 만들어주는 능력이 뛰어났던 올리비에 지루 이전의 올리비에 지루와 같은 선수였다.

레스터 시티에서 전성기를 누렸다가 11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리버풀에 합류하며 당대 리버풀 역사상 최고액 이적료를 기록한 헤스키를 두고 리버풀의 팬들은 골을 많이 넣지 못하는 공격수를 엄청난 돈을 주고 데려오냐며 반발했지만 당시 리버풀의 감독이었던 제라르 울리에는 "그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는 이보다 훨씬 성장할 가능성이 많은 선수다."라며 팬들에게 기다려줄 것을 호소했다.

 

그 결과 마이클 오언과 함께 모범적인 빅 앤 스몰 듀오를 구성해 2000-01 시즌 FA컵과 리그컵, 그리고 UEFA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2001 UEFA 슈퍼컵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팀의 2번째 골을 기록하며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 뒤로는 부족한 결정력이 발목을 잡았고 결국 2003-04 시즌이 끝나고 버밍엄 시티의 제의를 받고 리버풀을 떠났다.

 

 

12위 데이비드 존슨

 


출생년도: 1951년 10월 23일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0kg
활약 기간: 1976~1982
통산 기록: 213경기 78골 31도움

 

1970년대와 80년대 초반까지 잉글랜드 무대를 주름잡았던 스트라이커로 키가 큰 편이 아니었음에도 적절한 위치선정과 우수한 점프력, 그리고 정확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한 포스트 플레이와 헤더 득점에 장점을 보였던 타켓형 스트라이커였다.

의외로 리버풀의 라이벌 에버튼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존슨은 오랫동안 빌 샹클리의 구애를 받았으나 정작 샹클리가 물러난 뒤에 밥 페이즐리가 집권했을떄 합류했는데 존 토샥의 백업 겸 장기적인 대체자로 활약하며 잉글랜드 풋볼 리그 4회 우승 및 유러피언 컵 3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79-80 시즌에는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유러피언 컵 결승에 세 번 올라갈 동안 두 시즌은 벤치에 머물렀지만 1980-81 시즌에는 선발 출전해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빅 이어를 차지했으나 그 뒤로는 급격하게 성장한 이안 러시와의 주전경쟁에서 밀려나며 리버풀을 떠났다.

 

 

11위 알버트 스티빈스

 


출생년도: 1919년 7월 17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2kg
활약 기간: 1946~1953
통산 기록: 178경기 83골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잉글랜드 무대에서 정상급 포워드로 명성을 떨쳤던 인물로 신체적으로는 키가 크고 튼튼하고 강력한 체격을 바탕으로 헤더와 포스트플레이에 모두 능했고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우수한 볼 컨트롤로 볼 소유를 지키면서 양발로 정확한 슈팅을 날렸던 명품 스트라이커였다.

전성기 시절에는 아스날의 황금기를 이끈 알렉스 제임스에 비교되었던 알버트 스티빈스는 1946-47 시즌에 리그에서만 24골을 득점해 득점왕에 올랐음은 물론 팀의 리그 우승에 큰 공을 세웠으나 1950년대 들어서 잦은 부상으로 고생했고 결국 1952-53 시즌에 은퇴했다. 그리고 그가 은퇴한 뒤에 리버풀은 오랜 암흑기를 겪어야 했다.

 

 

10위 존 토샥

 


출생년도: 1949년 3월 22일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70~1978
통산 기록: 247경기 96골 54도움

1970년대 잉글랜드 풋볼리그를 주름잡은 클래식 스트라이커로 다소 투박하지만 박스 안에서의 우수한 센스와 적절한 위치선정, 그리고 마른 체격에도 우수한 바디밸런스를 바탕으로 제공권 경합에서 강점을 보이며 헤더로 득점하거나 포스트플레이로 케빈 키건과 같은 포워드를 지원하는 부분에도 매우 훌륭했다.

카디프 시티에서 데뷔해 훌륭한 활약을 펼쳐서 빌 샹클리에 눈에 들어 11만 파운드의 이적료에 리버풀로 합류한 존 토샥은 리버풀에서 활약하는 동안 잉글랜드 풋볼 리그 1부 3회 우승 및 1973-74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1972-73 시즌과 1975-76 시즌에 UEFA컵 우승을 이뤄냈고 1976-77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우승에 공헌했다.

특히 케빈 키건과 함께 우수한 투톱으로서 최고의 팀워크를 보여줬는데 어떤 이는 두 사람이 마치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한 몸인 것 같다고 평할 정도로 호흡이 잘 맞았다고 전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팀을 떠난 시기도 비슷했다.

 

 

9위 잭 파킨슨

 


출생년도: 1883년 9월 21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6kg
활약 기간: 1902~1914
통산 기록: 219경기 128골

20세기 초반 잉글랜드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센터 포워드 겸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당시 영국에서 가장 빠른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스피드가 빨랐고 민첩한 턴과 유려한 볼 컨트롤, 그리고 슈팅의 강약을 적절하게 조절에 필요한 상황에서 적재적소에 활용해 득점했음은 물론 다른 공격수와의 연계 플레이도 훌륭했다.

1902-03 시즌에 데뷔한 파킨슨은 1903-04 시즌에 리버풀은 강등의 수모를 겪었으나 1904-05 시즌 2부 리그 우승에 이어 1905-06 시즌에는 부상으로 적은 경기에 출전했음에도 골 순도가 높아 1부 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백투백 우승에 성공했다. 그리고 1909-10 시즌에는 풋볼 리그 1부 득점왕에 올랐다.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 직전에 팀을 떠났다.

 

 

8위 잭 발머

 


출생년도: 1916년 2월 6일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1kg
활약 기간: 1935~1952
통산 기록: 309경기 110골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활약했던 테크니션으로 기존에 신체 능력에 의존해 단단한 수비를 돌파하는 전형적인 잉글랜드식 스트라이커와는 다르게 영리하고 기술적인 공격수였는데 볼을 다루는데 능숙했으며 영리한 심리전과 빠른 순간속도로 상대 수비를 따돌렸으며 정확한 각도에서 강력한 슈팅으로 득점하기도 했지만 상대 수비수와의 경합을 피하고 몸을 사리는 유형이라 일부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리버풀의 원 클럽맨이었던 발머는 스트라이커 외에도 인사이드 포워드 및 아웃사이드 포워드로도 활약하며 다양한 포지션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특히 1938년 2월 16일 구디슨 파크에서 열린 에버튼과의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경기 시작 30초 만에 득점을 올려 당시 구단 최단기간 득점 신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창 전성기를 누려야 할 나이에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리그가 중단되며 커리어에 많은 손해를 보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꾸준하게 관리해 활약했던 발머는 리그가 재개되자 걸출한 실력을 뽐내며 리그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로 거듭나기 시작했는데 1946-47 시즌 리버풀의 풋볼 리그 1부 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알버트 스터빈스와 절륜한 파트너십을 뽐냈고 발머 개인도 3경기 연속 해트트릭이라는 불세출의 기록을 작성했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리버풀 선수 중 최다 연속 경기 해트트릭 기록으로 남아있다.

 

 

7위 샘 레이불드

 


출생년도: 1875년 6월 11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6kg
활약 기간: 1900~1907
통산 기록: 226경기 130골

 

리버풀 역사상 첫 전성기를 이끈 스트라이커로 공을 다루는 속도가 빠르면서 온 더 볼 상황에서는 매우 위협적이었기에 수비수가 실수하는 틈을 놓치지 않고 바로 골로 연결했으며 측면에서 크로스를 보내는 능력 역시 우수했다.

초년에는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활약했으나 여러 클럽을 떠돌면서 정착하지 못하다가 리버풀에 입단해 센터포워드로 포지션을 바꿔 정착한 레이볼드는 1900년 1월, 리버풀 FC에 입단했고, 1월 13일 에버튼 FC와의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3-1로 승리하며 리버풀 데뷔전을 치르며 1900-01 시즌 풋볼 리그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1902-03 시즌에는 득점왕을 수상했다.

1902-03 시즌에는 우승은 놓쳤지만 33경기동안 31골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왕 타이틀을 차지하는 등 상승세를 탔지만 1903년에는 포츠머스 FC로 이적을 시도하다 불법으로 판단되어 7개월 출전 금지 징계를 받았는데 이 일이 타격이 되어 리버풀은 강등을 겪는다. 그러나 레이불드는 포츠머스 이적 계획을 철회하고 리버풀에 남아 2부 리그에서 19골을 기록해 우승을 차지하며 1부 리그로 돌아왔고 1905-06 시즌에는 1부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6위 페르난도 토레스

 


출생년도: 1984년 3월 20일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79kg
활약 기간: 2007~2011
통산 기록: 142경기 81골 19도움

200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질풍과도 같은 순간 스피드로 상대 수비진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어냈으며 우수한 득점력과 클러치 능력도 겸비한 금발의 스트라이커였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스팀의 역작인 토레스는 라리가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리버풀에 입단했고 첫 시즌에 시즌 30골을 넘겨 세계의 축구팬들의 눈도장을 받아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를 기록했으며 2007-08 시즌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PFA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다.

이 시기에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주로 활약했던 제라드와 제토라인으로 불리며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공격 듀오 중 하나로 명성을 떨쳤으나 우승을 이뤄내지 못하고 팀이 하락세에 빠지자 겨울 이적시장에서 첼시로 이적했다. 그러나 토레스는 리버풀을 떠난 뒤에는 더 이상 리버풀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5위 루이스 수아레스

 


출생년도: 1987년 1월 24일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6kg
활약 기간: 2011~2014
통산 기록: 133경기 82골 34도움

레반도프스키와 함께 201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불렸으며 각종 기행으로 더 유명하지만 실력도 우수했는데 우수한 골 결정력은 물론 다이나믹한 드리블과 뛰어난 패싱력을 활용한 찬스 메이킹에도 능했으며 전성기 시절에는 하프 라인부터 직접 골라인까지 몰고 가서 득점을 하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다.

아약스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낸 뒤, 리버풀에서 첫 전성기를 보낸 수아레스는 우루과이 대표팀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리버풀에 입단해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비록 리그 우승을 이뤄내진 못했지만 2013-14 시즌에 득점왕과 리그 MVP를 수상하며 ESM 올해의 팀, PFA 올해의 팀, 유러피언 골든슈, FWA 올해의 선수, PFA 올해의 선수 등 여러 상을 독식했다.

 

 

4위 로비 파울러

 


출생년도: 1975년 4월 9일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8kg
활약 기간: 1993~2001, 2006~2007
통산 기록: 369경기 183골 48도움

1990년대 리버풀을 대표하던 스트라이커로 스피드가 빨라 수비라인 배후로 침투하는데 능하며 본 발인 왼발은 물론 오른발 슈팅과 헤더에도 능해 골 사냥꾼이라 불렸으나 득점력뿐만이 아니라 창의적인 찬스 메이킹도 가능했으며 동료들과 연계에도 능한 공격수였다.

리버풀 통산 득점 6위를 기록하고 있는 파울러는 리버풀에서 리그 우승을 이뤄내진 못했지만 두 번의 리그 컵 우승에 큰 공을 세웠으나 이후 오웬, 헤스키 조합에 밀려 맨체스터 시티로 떠났다. 그러다가 다시 돌아온 2006-07 시즌에는 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에 슈퍼 서브로 공을 세웠다.

 

3위 마이클 오언

 


출생년도: 1979년 12월 14일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0kg
활약 기간: 1996~2004
통산 기록: 297경기 158골 49도움

 

1990년대 말 세계 축구계를 들썩이게 했던 원더보이로 환상적인 볼터치와 빠른 스피드와 현란한 몸놀림을 화려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교란하며 공간을 만들어냈으며 뛰어난 득점 감각 역시 자랑했다.

리버풀에서 짧지만 강력한 임팩트를 보였던 오언은  2000-01 시즌 FA컵, 리그컵, UEFA컵을 우승하며 미니 트레블을 이뤄냈고 UEFA 슈퍼컵에서 유럽 챔피언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팀의 세 번째 골을 득점하며 3-2 승리를 이루는데 공헌했기에 그 해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다소 논란은 있었지만 발롱도르를 타내며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올라섰다.

리버풀 통산 득점 8위를 기록하고 있는 오언은 1997-98 시즌 PFA 올해의 영 플레이어 수상 및 올해의 팀 선정,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2회 수상했고 옹즈 몽디알이 선정한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으나 리버풀을 떠난 이후 악재가 겹쳤으며 그저 그런 선수로 전락하며 잊혀졌고 레알 마드리드와 뉴캐슬을 거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을 때는 이길 수 없으면 합류하라는 망언을 해서 팬들을 화나게 하기도 했다.

 

 

2위 로저 헌트

 


출생년도: 1938년 7월 20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58~1969
통산 기록: 492경기 285골

 

1960년대 리버풀을 대표하던 선수로 리버풀의 지미 그리브스라고 불렸을 정도로 탁월한 득점 감각은 물론 왕성한 활동량을 통한 전방 압박과 후방 수비 가담 능력도 겸비했음은 물론 축구 지능이 높아 본 포지션인 스트라이커 이외에도 인사이드 포워드도 소화할 수 있었다.

빌 샹클리가 처음 선택한 에이스였던 로저 헌트는 리버풀이 2부 리그에 머물던 시절에 데뷔해 데뷔 시즌부터 21골을 득점하며 영웅의 탄생을 알렸고 1961-62 시즌에는 41경기 41골을 득점하며 2부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1부 리그 우승 2회와 1964-65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내며 붉은 제국의 초석을 닦았다.

리버풀 구단 통산 득점 2위에 랭크된 로저 헌트 개인도 1961-62 시즌에는 2부 리그 득점왕을 석권했으며 1965-66 시즌에는 데니스 로, 지미 그리브스와 같은 공격수들을 제치고 1부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1위 이안 러시

 


출생년도: 1961년 10월 20일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9kg
활약 기간: 1980~1987, 1988~1996
통산 기록: 660경기 346골 56도움

 

1980년대 유럽 정상급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볼을 다루는 기술과 패싱력은 평범했지만 빠른 스피드와 간결한 볼터치, 그리고 적절한 위치선정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를 귀신처럼 따돌리며 정교한 슈팅으로 득점하며 유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리버풀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인 붉은 제국 시절에 전성기를 누렸던 러시는 달글리시와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며 풋볼 리그 5회 우승과 유러피언 2회 컵 우승을 포함해 총 18회의 우승을 이뤄하며 구단의 황금기에 방점을 찍으며 PFA 올해의 팀과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각각 5회 선정되었다.

리버풀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인 이안 러시는 개인으로도 1982-83 시즌 PFA 올해의 영 플레이어에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하이커리어를 누린 1983-84 시즌에는 풋볼 리그 득점왕과 유러피언 골든슈를 모두 싹쓸이했음은 물론 PFA 올해의 선수, FWA 올해의 선수도 동시에 석권했고 유러피언 컵에서도 우승 주역으로 명성을 떨치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4위에 올랐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