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구단 80위~7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구단

축구 역사상 최고의 구단 80위~71위

토르난테 2024. 8. 26. 15:23
728x90
728x90

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시대에 따른 리그 수준차이는 제가 가진 정보들을 참조해서 구성했습니다.

 


80위 리즈 유나이티드

 


창단일: 1919년 10월 17일
소속국가: 잉글랜드
연고지: 요크셔험버 웨스트요크셔주 리즈 
홈구장: 엘런드 로드

구단 역대 최고의 감독: 돈 레비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 빌리 브렘너

정규리그: 3회 우승
국내 컵 대회: FA컵 1회 우승 / EFL컵 1회 우승 / FA 커뮤니티 실드 2회 우승
유러피언 컵: 1회 준우승 (1974-75)
인터시티 페어스캅: 2회 우승 (1968, 1971)

화려했던 과거의 전성기를 뜻하는 '리즈 시절'의 주인공격인 클럽으로 재정 및 급여 문제로 해체되었던 리즈 시티가 1919년에 재탄생하면서 창단했는데 1923-24 시즌 2부 리그 우승을 차지해 처음으로 1부 리그 승격을 이뤄낸 이후에는 1부와 2부를 오가는 평범한 클럽으로 보냈다. 물론 존 찰스와 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을 배출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우승과는 거리가 먼 팀이었다.

그러나 리즈 유나이티드의 주장이었던 돈 레비가 선수 겸 감독으로 부임한 뒤에 리즈에게도 봄이 왔는데 1963-64 시즌 2부 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다시 1부 리그로 승격, 이듬해 1부 리그 준우승을 차지한다. 그 뒤에도 1968년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 1968-69 시즌 팀 창단 처음으로 리버풀을 2위로 밀어내며 1부 리그 우승을 달성했으며 1973-74 시즌 다시 1부 리그 우승컵을 차지했고 1974-75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한다.

레비가 잉글랜드 감독으로 떠난 뒤에 리즈는 다시 암흑기를 맞이했다가 마지막 풋볼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도 두 번째 전성기를 보였으나 이후 재정난으로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비엘사의 지휘 아래 2019-20 시즌 챔피언십 우승을 이뤄내며 프리미어리그로 복귀했다.

 


79위 우이페슈트 FC

 


창단일: 1885년 6월 16일
소속국가: 헝가리
연고지: 부다페스트 우이페슈트구
홈구장: 주자 페렌츠 슈터디온

구단 역대 최고의 감독: 구트만 벨라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 베네 페렌츠

정규리그: 20회 우승
국내 컵 대회: 마자르 쿠파 11회 우승 / 리가 쿠파 3회 우승 / 마자르 수페르 쿠파 3회 우승
미트로파컵: 2회 우승 (1929, 1939)

헝가리의 프로리그인 넴제티 버이녹샤그 창단 이래 한 시즌도 빠진 적이 없는 두 팀 중 하나였지만 페렌츠바로시와 MTK 헝가리아의 독주로 오랫동안 우승컵을 차지하지 못하다가 대표팀 주전 수비수였던 휘글 카로이와 요제프 카로이가 구성한 휘글의 문 조합이 세운 단단한 수비벽을 앞세워 1929년 미트로파컵 우승과 1929-30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황금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1930년대 총 다섯 번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전성기를 누린 우이페슈트는 특히 1938-39 시즌에는 명장 구트만 벨라와 에이즈 젱겔러 줄러의 활약으로 정규리그와 미트로파컵을 모두 제패하며 중유럽 최고의 클럽으로 군림했다. 세계대전 이후에는 헝가리 공산정권 비밀경찰에 인수되어 정규리그 3연패를 이뤄냈고 이후 1970년대에는 1969-70 시즌부터 1974=75 시즌까지 정규리그 6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공산정권이 끝나고 21세기가 되자 우이페슈트는 1997-98 시즌을 마지막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그나마 마자르 쿠파 4회 우승 및 리가 쿠파 3회 우승을 기록해 컵대회에서만 존재감을 희미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헝가리 프로축구리그 개근팀에 한때 괜찮은 시절을 보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78위 클뤼프 브뤼허

 


창단일: 1891년 11월 13일
소속국가: 벨기에
연고지: 베스트플란데런주 브뤼헤
홈구장: 얀 브레이덜 스타디온

구단 역대 최고의 감독: 에른스트 하펠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 얀 쾰레만스

정규리그: 19회 우승
국내 컵 대회: 벨기에컵 11회 우승 / 벨기에 슈퍼컵 17회 우승
유러피언 컵: 1회 준우승 (1977-78)
UEFA 컵: 1회 준우승 (1975-76)

안더레흐트와 함께 벨기에를 대표하는 양대명문 중 하나로 정규리그 우승 횟수는 1위 안더레흐트에 비해 크게 밀리지만 벨기에컵과 벨기에 슈퍼컵에서는 최다 우승팀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창단 당시에는 '브뤼셰 FC'라는 클럽명을 달았고 이 시대에는 1919-20 시즌 우승이 유일했는데 이후 몇 차례 클럽명을 변경하다 1972년부터 '클뤼프 브뤼허 KV'라는 클럽명을 사용한 뒤로는 무려 18회의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197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는데 에른스트 하펠 체제에서는 자국 무대는 물론 유럽 대항전에서도 큰 성과를 남기며 1975-76 시즌 UEFA컵과 1977-78 시즌 유러피언 컵에서 모두 결승에 진출하지만 붉은 제국이라 불리던 리버풀에 막히며 준우승을 기록했는데 이때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은 벨기에 구단으로는 유일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이다. 하펠이 떠난 뒤에는 한때 어려움을 겪었지만 여전히 정규리그와 컵대회에서 종종 우승했다.

안더레흐트가 몰락한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리그 내 압도적인 탑독으로 군림하며 최근 5년간 정규리그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대회를 대표하는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를 만나면 선전하는 독특한 상성을 보이기도 했다. 여담으로 축구계를 넘어 종목 불문 대표적인 스포츠 앤섬이 된 The White Stripes의 <Seven Nation Army>를 최초로 응원가로 사용한 구단이기도 했다.

 

 

77위 UC 삼프도리아

 


창단일: 1946년 8월 12일
소속국가: 이탈리아
연고지: 제노바광역시
홈구장: 스타디오 루이지 페라리스

구단 역대 최고의 감독: 부야딘 보슈코프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 로베르토 만치니

정규리그: 1회 우승
국내 컵 대회: 코파 이탈리아: 4회 우승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회 우승

UEFA 컵 위너스컵: 1회 우승 (1989-90)
유러피언 컵: 1회 준우승 (1991-92)

'삼프도리아의 신' 로베르토 만치니가 대단한 업적을 세운 구단으로 유명한 삼프도리아는 라이벌 제노아가 초창기에 잘 나갔던 것과는 대조되게 1946년 삼피에르다레네세와 안드레아 도리아가 합병해 탄생한 상대적으로 젊은 구단이다. 에른스트 오크비르크와 같은 스타들을 영입해 상위권으로 도약해보기도 했지만 우승 트로피와는 영 인연이 멀었던 삼프도리아는  1979년, 석유 사업가인 파올로 만토바니가 구단을 인수하게 된다.

파올로 만토바니 회장의 적극적인 경영 아래에서 1980년대 중반부터 세리에 A 정상급 클럽으로 올라온 삼프도리아는 코파 이탈리아 4회 우승 및 1988-89 시즌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준우승과 1989-90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 그리고 1990-91 시즌에는 화려한 스쿼드를 자랑하는 AC 밀란과 인테르, 유벤투스를 모두 제치고 스쿠테토를 따내기도 했으며 이듬해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하며 황금기를 누렸지만 1993년 만토바니 회장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그의 아들인 엔리코가 뒤를 이었는데 무능한 경영으로 인해 비알리, 비에르코보드, 만치니와 같은 팀의 기둥과도 같은 레전드들이 떠났고 결국 세리에 B로 강등되었으며 구단은 이탈리아의 정유사 ERG에게 매각되었다.

2003-04 시즌에는 세리에 A에 복귀해 안정된 경영을 통하여 중견 클럽으로 자리했고 2009-10 시즌에는 세리에 A 4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그 뒤로는 그저 그런 클럽으로 보냈다. 하지만 축구 역사상 최강의 리그라는 1980~90년대 세리에 A 시절의 한 축을 담당하며 코파 이탈리아의 강자로 등극한 삼프도리아는 그 시대의 영웅들과 위대한 업적을 쌓았다.

 


76위 SS 라치오

 


창단일: 1900년 1월 9일 
소속국가: 이탈리아
연고지: 라치오주 로마시
홈구장: 스타디오 올림피코

구단 역대 최고의 감독: 스벤 예란 에릭손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 알레산드로 네스타

정규리그: 2회 우승
국내 컵 대회: 코파 이탈리아: 7회 우승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5회 우승
UEFA 컵 위너스컵: 1회 우승 (1998-99)
UEFA 슈퍼컵: 1회 우승 (1999)
UEFA컵: 1회 준우승 (1997-98)

시각에 따라서는 로마의 가장 근본적인 클럽인 라치오는 1900년 1월 9일에 로마의 프라티 지구에서 창단되었고 1910년에 공식적으로 축구부를 만들어 1912년부터 리그에 참가했는데 1927년 파시스트 정권의 영향 하에서 로마 구단들이 통합하여 AS 로마를 창단할 때, 라치오는 이를 거부하고 독자 노선을 걸었다. 그럼에도 라치오의 창단을 주도한 것은 군 장교들이었고, 당시 라치오의 팬이었던 조르지오 바카로 덕에 AS 로마와의 합병을 거부하고도 무사할 수 있었다. 이듬해에 처음 조작된 전국리그인 세리에 A에 창단 멤버로 합류했다.

1930년대 전설적인 공격수 실비오 피올라를 보유했음에도 오랜 기간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라치오는 1973-74 시즌, 루치아노 레 체코니의 맹활약으로 구단 역사상 첫 스쿠테토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1980년에 토토네로 스캔들로 인해 강등을 당했다. 이 강등 이후로 암흑기를 겪다가 1988-89 시즌을 앞두고 세리에 A로 돌아오면서 잔마르코 탈리에리의 안정적인 재정 관리를 받았고, 상위권 클럽으로서의 기틀을 다졌다. 그리고 1992년, 새 구단주 세르지오 크라뇨티 체제에서는 세계구급 스쿼드를 구축했고 1998-99 시즌 마지막 컵 위너스컵과 UEFA 슈퍼컵 우승을 이뤄냈고 1999-2000 시즌에는 세리에 7공주라 불리는 치열한 리그에서 정규리그와 코파 이탈리아를 모두 제패하며 이탈리아 통일을 이뤄냈으며 동년 주식시장에 상장을 한 최초의 이탈리아의 축구 클럽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무리한 투자로 자금이 떨어졌고 역분식회계가 걸렸음은 물론 네드베드와 베론의 대체에 실패하는 최악의 운영으로 크라뇨티가 재정 스캔들 등의 압력으로 물러났고 2004년 사업가 클라우디오 로티토가 클럽의 소유권을 다수 획득했고, 현재까지 구단주를 역임했다. 비록 로티토 체제에서는 체급의 한계로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로티토 체제에서 코파 이탈리아 4회 우승 및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3회 우승을 이뤄내며 국내 컵대회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75위 SSC 나폴리

 


창단일: 1926년 8월 1일
소속국가: 이탈리아
연고지: 캄파니아주 나폴리시
홈구장: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

구단 역대 최고의 감독: 오타비오 비앙키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 디에고 마라도나

정규리그: 3회 우승
국내 컵 대회: 코파 이탈리아 6회 우승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회 우승
UEFA컵: 1회 우승 (1988-89)

나폴리 지역은 물론 이탈리아 남부권에 해당하는 구 양 시칠리아 왕국 영역을 대표하며 거대한 팬층을 가진 남부 이탈리아의 제왕 나폴리는 1960년대까지는 평범한 시절을 보냈지만 1961-62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끌면서 주목받았고 디노 조프, 오마르 시보리, 안토니오 줄리아노, 주제 아우타파니를 영입하며 상위권으로 도약했지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진 못했기에 1980년대 중반, 모든 예산을 디에고 마라도나 영입에 배팅한다.

바르셀로나에서 일련의 사건들로 불행한 시간을 보내던 마라도나를 영입한 나폴리는 마라도나 이적 이전까지 1984년 승점 1점차로 겨우 강등을 모면하며 성적이 상당히 떨어졌는데 마라도나 영입 이후 3년만인 1986-87 시즌에 구단 역사상 첫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고 1988-89 시즌에는 UEFA컵에서는 유벤투스와 바이에른 뮌헨을 차례로 꺾은 뒤 결승에서 독일의 VfB 슈투트가르트를 상대로 난타전 끝에 승리하며 첫 유럽 무대 타이틀을 획득했고 1989-90 시즌에는 사키의 밀란과 마테우스를 앞세운 인테르를 꺾고 구단 역사상 두 번째 스쿠테토를 획득했으며 마라도나와 함께 뛰기 위해 카레카, 데 나폴리, 페라라, 카르네발레와 같은 스타 플레이어들도 나폴리에 합류했지만 마라도나가 떠나자 팀은 몰락하기 시작한다.

21세기를 거치며 제만과 몬도니코 체제에서 세리에 B로 강등당했고 결국 2004년 8월 7000만 유로의 부채를 안고 파산을 선고받아 세리에 C로 떨어졌다. 나락에 떨어진 나폴리를 구제한 것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영화제작자 팔마우로의 소유주 아우렐리오 데 라우렌티스가 3900만 유로에 나폴리를 인수하면서 대대적인 개혁과 투자가 시작했고 팬들 앞에서 "5년 이내에 나폴리를 1부 리그에 올려놓고, 그 후 5년 내에는 나폴리를 우승 경쟁을 다투는 팀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이 약속을 지켜냈으며 양 밀란이 몰락해 유벤투스가 독주하는 2010년대에도 유벤투스를 견제하며 강한 모습을 보이다가 2023-24 시즌 스팔레티 체제에서 흐비차, 김민재, 오시멘의 활약으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구단 역사상 세 번째 스쿠테토를 들어올렸다.

 

 

74위 볼로냐 FC

 


창단일: 1909년 10월 3일
소속국가: 이탈리아
연고지: 에밀리아주 볼로냐시
홈구장: 스타디오 레나토 달라라

구단 역대 최고의 감독: 헤르만 펠스너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 안젤로 스키아비오

정규리그: 7회 우승
국내 컵 대회: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
미트로파컵: 3회 우승: (1932, 1934, 1961)
UEFA 인터토토컵 1회 우승: (1998)

1909년에 오스트리아인 에밀리오 아른스테인에 의해 창단된 볼로냐는 1920년 구인 광고로 뽑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헤어만 펠스너가 지휘봉을 잡으면서 강력한 클럽으로 도약하기 시작했는데 대체로 낮은 수준이라 평가받았던 볼로냐의 선수들을 체력적으로 강인하게 훈련시켰으며 체력적인 훈련뿐만이 아니라 기본기와 드리블 훈련을 몇 시간을 시키기도 했음은 물론 당시 유행했던 피라미드 시스템에 대한 전술 훈련도 병행했는데 이런 노력을 통해 강력한 전력을 보유한 팀으로 탈바꿈한 볼로냐는 1924-25 시즌에 최초로 이탈리아 챔피언십을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1928-29 시즌에는 결승에서 토리노를 꺾고 두 번째로 리그 우승을 이뤄낸다.

볼로냐가 가진 당대 최고의 공격수 스키아비오의 활약으로 비록 유벤투스에게 자국리그의 패권은 내줬지만 미트로파컵에서 다소 기를 쓰지 못했던 유벤투스와 다르게 결승에서 퍼스트 비엔나와 아드미라 빈을 물리치고 대회 2회 우승이라는 업적을 이뤄냈고 1935-36 시즌을 앞두고 부임한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 감독 베이시 아르파드는 볼로냐의 체계를 제대로 잡고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며 1936-37 시즌에도 재차 스쿠테토를 들어올렸고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 국제대회에서는 결승전에서 잉글랜드의 첼시를 4-1로 제압하며 이탈리아 역사상 최초로 국제대회에서 잉글랜드를 격파한 팀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베아시가 유대인이었던 탓에 제정한 이탈리아 인종법에 의해 박해를 받아 이탈리아를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볼로냐의 첫 전성기를 이끈 펠스너가 다시 지휘봉을 잡아 1938-39 시즌과 1940-41 시즌에 볼로냐의 우승을 달성하며 볼로냐 왕조의 역사를 매듭지었다.

세계대전 이후에는 황금기의 성적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1963-64 시즌, 디펜딩 챔피언 인테르 밀란과의 치열한 경합 끝에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고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2회 우승을 기록했다. 이후 3부 리그까지 추락했으나 21세기에는 세리에 A에 오래 머물렀고 지난 시즌에는 티아고 모타의 훌륭한 지휘 아래 세리에 A 5위를 기록하며 확장 개편된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합류할 수 있었다.

 

 

73위 토리노 FC

 


창단일: 1906년 12월 3일
소속국가: 이탈리아
연고지: 피에몬테주 토리노시
홈구장: 스타디오 올림피코 그란데 토리노

구단 역대 최고의 감독: 루이지 페레로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 발렌티노 마촐라

정규리그: 7회 우승
국내 컵 대회: 코파 이탈리아 5회 우승
UEFA컵: 1회 준우승 (1991-92)
미트로파컵: 1회 우승 (1990-91)

유벤투스의 단장이었던 스위스의 사업가 알프레드 딕은 클럽 보드진과 가치관에 따른 대립으로 인해 클럽을 떠나게 되고, 이후 1906년 12월 3일, 그를 따르는 세력들과 토리노를 창단했다. 토리노는 1926-27 시즌 다소 논란이 있는 사건으로 인해 우승 트로피가 박탈되었고 다음 시즌인 1927-28 시즌에 첫 스쿠테토를 들 수 있었다. 그리고 세리에 A 출범 이후에는 유벤투스와 볼로냐의 강세에 밀려났었다.

그러다가 1940년대에 페루치오 노보는 이탈리아의 패권을 쥐기 위해 수많은 선수들을 영입해 그란데 토리노라 불렸던 이탈리아 축구사 최고의 왕조 중 하나가 나와 세리에 A 5회 우승 및 1942-43 시즌 더블을 이뤄냈으나 이들은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모두 사망했고 전력이 약화된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수비전략을 기조로 전술을 짜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결국 카테나치오 시스템으로 재정비 한 뒤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을 정도로 기나긴 암흑기를 경험했다. 이때 네레오 로코가 토리노를 어느 정도 부활시키며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을 이뤄냈고 루이지 라디체가 조나 미스타 시스템을 창안해 1975-76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세리에 7공주 시대에는 1990년대 초반 잠깐 상위권으로 도약한 것을 제외하고는 구단의 잘못된 경영과 잦은 감독 교체로 인해 재정난이 오면서 팀이 휘청이기 시작했다. 결국 1995-96 시즌 세 번째 강등을 맞이한다. 그리고 2004-05 시즌 승격을 달성했음에도 구단이 파산한 것이 발목을 잡아 세리에 A 승격이 거부되는 초유의 굴욕도 맞이했다. 현재는 세리에 A에서 오래 살아남는 데 성공하며 2014-15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진출권을 따는 등 확고한 중상위권 팀이 되어가고 있다. 현재의 토리노는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여도 쉽게 잊혀질 클럽 역시 아니다.

 

 

72위 벨레스 사르스필드

 


창단일: 1910년 1월 1일
소속국가: 아르헨티나
연고지: 후로레스타지구 리니에르스
홈구장: 에스타디오 호세 아말피타니

구단 역대 최고의 감독: 카를로스 비앙키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 호세 칠라베르트

정규리그: 10회 우승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1회 우승 (1994)
인터컨티넨탈컵: 1회 우승 (1994)
코파 인터아메리카나: 1회 우승 (1996)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1회 우승 (1996)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1회 우승 (1997)

아르헨티나의 헌법을 제정한 명망 높은 법관이었던 달마시오 벨레스 사르스필드의 이름을 따서 구단명을 재창한 벨레스 사르스필드는 아마추어 리그 시절부터 활약해 1931년 아르헨티나 리그가 프로화되어 새로 창설했을 때 18개 클럽의 일원이 되기도 했지만 괄목한 성과를 내지는 못하다가 리그 정상급 스트라이커 카를로스 비앙키의 맹활약으로 1969년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나시오날에 첫 우승을 이뤄냈다.

선수시절에도 벨레스의 레전드였던 카를로스 비앙키가 1993년 감독으로 부임한 뒤에는 더 큰 전설을 쓰는데 벨레스 사르스필드에 3년 동안 머물면서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합쳐 정규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94년에는 칠라베르트의 활약에 힘입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텔레 산타나 체제의 상파울루의 3연패를 저지하고 구단 역사상 첫 남미 챔피언으로 등극했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크루이프의 바르셀로나를 4-0으로 제압했던 카펠로의 AC 밀란을 2-0으로 완벽하게 제압하며 명성을 떨쳤고 그 외 남아메리카의 여러 컵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누렸다.

21세기 초반에도 우승경쟁을 하던 훌륭한 클럽이었던 벨레스 사르스필드는 2012-13 시즌을 마지막으로 11년째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1943년에 2부 리그에서 복귀한 이후 프리메라 디비시온에 계속 잔류했으며 현재 아르헨티나 리그 통산 순위에서 5위에 랭크된 명문클럽이다.

 

 

71위 콜로 콜로

 


창단일: 1925년 4월 19일
소속국가: 칠레
연고지: 산티아고
홈구장: 에스타디오 모누멘탈 다비드 아레야노

구단 역대 최고의 감독: 미르코 요지치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 프란시스코 발데스

정규리그: 33회 우승
국내 컵 대회: 코파 칠레 13회 우승 / 수페르코파 칠레 3회 우승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1회 우승 (1991)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1회 우승 (1992)
코파 인터아메리카나: 1회 우승 (1992)

16세기에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맞선 전설적인 마푸체 족장 콜로콜로의 이름을 딴 콜로콜로는 라이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와 함께 칠레 축구를 대표하는 축구 클럽으로 칠레의 정규리그인 프리메라 디비시온과 정규 컵대회인 코파 칠레의 최다 우승 클럽임은 물론 인기도 부분에서도 칠레에서 가장 많은 팬층을 보유하는 등 자타공인 칠레 축구 역사상 최고의 클럽이다.

1973년 칠레 클럽 역사상 최초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에 진출한 콜로콜로는 1980년대와 9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는데 80년대 정규리그 4회 우승 및 컵대회 5회 우승을 이뤄냈고 1990년대에는 정규리그 6회 우승 및 컵대회 3회 우승을 이뤄냈다. 특히 1991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는 디펜딩 챔피언인 루이스 쿠비야의 클루브 올림피아 아순시온을 결승에서 꺾고 칠레 클럽 역사상 최초로 대회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고 이듬해에는 남미 슈퍼컵 격의 대회인 레코파 수다메리카나에서 신예 호나우두를 앞세운 크루제이루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코파 인터아메리카나에서도 멕시코의 푸에블라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칠레를 대표하는 클럽으로 명성을 떨쳤고 장 보세주르, 곤살로 하라와 같은 선수들을 배출하며 2010년대 초중반 칠레 대표팀의 약진에도 기여했으나 최근 행보는 좋지 못한데 2021년 구단 역사상 최초로 2부 리그 강등 위기에 처했다가 2월 들어 가까스로 승수를 쌓아 16위를 기록해 강등 플레이오프를 치러 겨우 1부 리그 잔류에 성공했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전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구단 90위~81위

다음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구단 70위~61위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