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 밀란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10

명문을 써내려간 남자들/AC 밀란

AC 밀란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10

토르난테 2024. 8. 1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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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4년 8월 10일 기준입니다.
*기준은 철저하게 AC 밀란 내에서의 활약입니다. 고점, 누적 모두 동일합니다.
*공식전 80전 미만은 순위 선정에서 제외했습니다.


10위 발테르 노벨리노

 


출생년도: 1953년 6월 4일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78~1982
통산 기록: 151경기 14골

1970년대 후반에 전성기를 누렸던 다재다능한 2선 자원으로 기술적이면서 화려한 드리블링과 효율적인 원터치 플레이에서 나오는 킬러패스 그리고 축구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공격형 미드필더와 좌우 윙어, 그리고 세컨드 스트라이커까지 소화할 수 있었던 다재다능한 2선 자원이었다.

여러 클럽을 돌아다녔던 저니맨이었던 노벨리노는 페루자에서 만개해 AC 밀란에 입단했는데 입단 첫 해에 1978-79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격진의 리더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토토네로 스캔들로 팀은 1979-80 시즌에 강등되었는데 팀이 강등당한 상황에서도 잔류하며 1980-81 시즌 세리에 B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이때의 활약을 팬들에게 인정받아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9위 후이 코스타

 


출생년도: 1972년 3월 29일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79kg
활약 기간: 2001~2006
통산 기록: 192경기 11골 46도움

포르투갈의 골든 제너레이션의 핵심 멤버이자 최전성기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한 트레콰르티스타로 드넓은 시야와 창의적이면서도 정교한 패스로 팀의 공격을 이끄는 플레이메이커로 루이스 피구와 함께 포르투갈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천재다.

피오렌티나의 에이스로 전성기를 누렸으나 팀이 파산하자 AC 밀란에 합류한 후이 코스타는 밀란에서도 2002-0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2003-04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나 2003-04 시즌부터 세계구급 선수로 떠오르던 카카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렸고 중앙 미드필더 백업으로 나오기도 했으나 묵묵하게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였고 훗날 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8위 알베르토 비곤

 


출생년도: 1947년 10월 31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71~1980
통산 기록: 329경기 90골 50도움

1970년대 세리에 A에서 유명세를 떨쳤던 다재다능한 2선 자원으로 우수한 볼 컨트롤을 바탕으로 한 기술적인 드리블과 효율적인 원터치플레이로 유명했는데 특히 판단력이 신속하면서도 정확했는데 볼을 전개하는 속도가 매우 빨라 상대 수비수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으며 때때로 빠른 속도로 페널티 박스로 침투해서 헤더로 득점하기도 했다.

초년에는 포워드로 활약하다가 밀란 입단 이후에 트레콰르티스타 위치에서 리베라를 보좌하며 후계자 역할을 맡았던 비곤은 코파 이탈리아 3회 우승 및 1972-73 시즌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고 1978-79 시즌에는 은퇴한 리베라 대신 자신이 주인공을 맡아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이 덕분에 은퇴한 뒤에는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7위 즈보니미르 보반

 


출생년도: 1968년 10월 8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91~2001
통산 기록: 251경기 30골 36도움

 

1990년대를 수놓은 유럽 정상급 플레이메이커로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고 좋은 모습을 보였고 우수한 템포 조절과 경기장 전체를 읽는 드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적절한 킬패스와 상대 수비수를 완벽하게 속이는 드리블을 바탕으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 능했으며 심지어는 제공권 경합 능력도 우수해 헤더로도 득점할 수 있었던 데다가 강력한 카리스마에서 나오는 리더십도 훌륭했다.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뛰던 시절에 내무부 소속의 즈베즈다와 경기중 관중끼리 충돌이 있었는데 내무부 산하의 즈베즈다를 지지하던 유고슬라비아 경찰의 폭력에 대항해 플라잉 니킥을 날려버려 유고슬라비아 무대에서 뛸 수 없게 되자 그를 구원하는 AC 밀란에 입단했는데 초년에는 바리로 임대를 떠났다가 굴리트의 대체자로 돌아와 활약했는데 카펠로와 자케로니 체제의 밀란에서 세리에 A 4회 우승 및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3회 우승, 그리고 1993-94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당연하게도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6위 군나르 그렌

 


출생년도: 1920년 10월 31일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8kg
활약 기간: 1949~1953
통산 기록: 137경기 38골

193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세계 정상급 수준을 유지하며 롱런한 인사이드 포워드로 영리한 공간 활용 능력과 동료 활용 능력은 물론 우수한 판단력으로 최적의 위치로 패스를 찔러줬으며 득점력도 훌륭했으며 특히 높은 축구 지능으로 유명해 교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군나르 노르달, 닐스 리드홀름과 함께 조국의 금메달에 공헌해 몸값을 높인 뒤에 아마추어 무대인 스웨덴 무대를 떠나 프로 무대인 이탈리아의 AC 밀란에 합류한 그렌은 그레노리 트리오의 두뇌 역할을 맡아 1950-51 시즌 세리에 A 우승 및 라틴컵 우승을 이뤄냈고 1951-52 시즌에는 임시 감독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5위 후안 스키아피노

 


출생년도: 1925년 7월 28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9kg
활약 기간: 1954~1960
통산 기록: 171경기 60골

우루과이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 명이자 1950년대 최고의 인사이드 포워드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우수한 테크닉과 넓은 시야, 창의적이면서 정확한 패싱력을 보유했으며 임기응변에 능해 불리한 경기를 여러 번 뒤집었다.

1954 스위스 월드컵 이후에는 유럽 무대에 도전하며 AC 밀란에 입단해 군나르 그렌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웠는데 AC 밀란에서 노르달, 리드홀름과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며 세리에 A 3회 우승과 1956년 라틴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7-58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스키아피노의 최전성기 시즌 중 하나였던 1954-55 시즌, 그는 심각한 부상을 당했음에도 심판에게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다른 심판의 증언에 따르면 코랄로 심판은 스키아피노 앞에서 엄지와 검지를 비비며 "네 놈은 모든 이탈리아 심판들을 매수했냐"라고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심판은 5일간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던 일화도 있다.

 

 

4위 카카

 


출생년도: 1982년 4월 22일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2003~2009, 2013~2014
통산 기록: 307경기 104골 83도움

2000년대 하반기 브라질을 대표했던 트레콰르티스타이자 축구 선수로 화려한 볼 컨트롤 능력과 창의적인 킬패스는 물론 일명 치고 달리기를 활용해 역습 상황에서 상대 수비 라인을 순식간에 붕괴시키고 1선으로 침투해 득점하는 데 굉장히 능했다. 심지어는 인테르의 전설적인 수비수 왈테르 사무엘은 카카의 연속적인 방향 전환을 따라가려다가 무릎이 돌아가버려 시즌 아웃을 당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보낸 카카는 후이 코스타와 히바우두 같은 거물들과의 주전 경쟁을 이기고 로쏘네리의 트레콰르티스타이자 에이스로 활약했는데 2003-04 시즌에는 10골을 득점하며 세리에 A 우승을 이끌었으며 2006-07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에서만 10골 3도움을 기록하며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개인적으로도 득점왕과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상을 석권했으며 2007-08 시즌과 2008-09 시즌에는 연속으로 리그 15골을 돌파했다.

로쏘네리 군단에 머무는 동안 카카의 개인상 이력은 굉장히 화려한데 2004-05 시즌 UEFA 클럽 올해의 미드필더, 2006-07 시즌 UEFA 클럽 올해의 공격수와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UEFA 올해의 팀 3회 선정,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3회 선정과 올해의 선수 2회 선정은 물론 발롱도르 상위 11등 안에 네 번 들어 2007년에는 1위를 차지해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그 해에 피파 올해의 선수상과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선수상은 물론 옹즈도르까지 수상하며 부정할 수 없는 2007년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다.

 

 

3위 뤼트 굴리트

 


출생년도: 1962년 9월 1일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8kg
활약 기간: 1987~1994
통산 기록: 171경기 56골 38도움

오렌지 삼총사의 일원이자 EA 스포츠의 게임인 피파 시리즈 최고의 선수로 꼽혔지만 실제로도 짧은 기간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손꼽히던 시절이 있었으며 압도적인 피지컬과 100m를 10초대에 주파하는 빠른 스피드는 물론 우수한 테크닉과 축구 지능이 모두 뛰어나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볼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패싱력이 약하다는 지적도 받았지만 그가 가진 다른 능력에 비해서지 전체적으로는 뛰어난 편이었다.

페예노르트와 PSV 에인트호번에서 네덜란드 무대를 평정하며 세계구급 선수의 반열에 오른 굴리트는 AC 밀란으로 이적해 발롱도르를 수상한 굴리트는 사키 체제의 밀란 제너레이션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세리에 A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이뤄냈는데 그 덕분에 사키 시대의 밀란 제너레이션 1기는 클럽 축구 사상 최강의 팀 중 하나로 평가받는 팀으로 평가받았다.

로쏘네리의 유니폼을 입는 동안 여러 영예를 누린 만능맨 굴리트는 옹즈 드 옹즈 3회 선정은 물론 1987년에는 발롱도르와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를 수상했고 1988년에는 발롱도르 2위를 수상했고 1989년에는 다시 한번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에 선정되었다.

 

 

2위 닐스 리드홀름

 


출생년도: 1922년 10월 8일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0kg
활약 기간: 1949~1961
통산 기록: 394경기 89골

 

195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창의적이면서도 우수한 축구 지능과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유려한 볼 컨트롤 능력을 겸비했으며 정교한 패싱력과 넓은 시야를 지녔으며 2년간 패스미스를 하지 않다가 2년 만에 패스미스를 하자 관중들이 박수를 쳤다는 일화도 있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군나르 노르달, 군나르 그렌과 함께 조국의 금메달에 공헌해 몸값을 높인 뒤에 아마추어 무대인 스웨덴 무대를 떠나 프로 무대인 이탈리아의 AC 밀란에 합류한 리드홀름은 AC 밀란에서 활약하던 시절에는 세리에 A 4회 우승과 라틴 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7-58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AC 밀란의 전성기를 이끈 영웅으로 올라섰다.

AC 밀란 명예의 전당과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 그리고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된 리드홀름은 개인적으로도 많은 영광을 누렸는데 1958년에 발롱도르 투표에서 8위를 차지했음은 물론 본 포지션이 아닌 라이트 하프 자리에서도 1958-59 시즌 코리에레 델로 스포르트의 세리에 A 랭킹에서 라이트 하프 부문 1위를 차지했다.

 

 

1위 지안니 리베라

 


출생년도: 1943년 8월 18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9kg
활약 기간: 1960~1979
통산 기록: 658경기 164골 158도움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하는 트레콰르티스타로 신기에 가까운 볼 컨트롤을 가진 것은 물론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창의적인 패싱력과 정교한 드리블로 유명했음은 물론 1972-73 시즌 세리에 A 득점왕 및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도 2회 수상한 적도 있었을 정도로 득점력도 훌륭했다.

AC 밀란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며 구단 통산 출전 4위 및 통산 득점 3위에 랭크된 골든 보이 지안니 리베라는 AC 밀란에서 19년간 활약하며 세리에 A 3회 우승 및 코파 이탈리아 우승 4회를 이뤄내 그란데 인테르와 양립하는 이탈리아의 또 다른 왕조를 만들었고 유럽 무대에서도 1962-63 시즌과 1968-69 시즌에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고 1967-68 시즌과 1972-73 시즌에는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1969년에는 남미의 패자 에스투디안테스의 거친 플레이를 뚫고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냈다.

은퇴 후 AC 밀란의 부구단주가 된 리베라는 AC 밀란에서 많은 영예를 누렸는데 FUWO 선정 유럽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9회 선정되어 1963년에는 2위, 1969년에는 1위를 기록하며 발롱도르를 수상해 명실상부 유럽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그리고 은퇴한 이후에는 AC 밀란 명예의 전당 헌액 및 1999년 20세기 최고의 AC 밀란 선수로 선정되었고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및 이탈리아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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