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르 밀란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7

명문을 써내려간 남자들/인테르 밀란

인테르 밀란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7

토르난테 2024. 6. 20. 15:37
728x90
728x90

주의사항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4년 6월 19일 기준입니다.
*기준은 철저하게 인테르 밀란 내에서의 활약입니다. 고점, 누적 모두 동일합니다.
*공식전 80전 미만은 순위 선정에서 제외했습니다.

 


7위 조반니 페라리

 


출생년도: 1907년 12월 6일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0kg
활약 기간: 1935~1940
통산 기록: 125경기 33골

 

1930년대 이탈리아 축구를 빛낸 인사이드 포워드로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워 중앙과 측면을 오가 메짤라라는 단어의 시조조가 되며 득점 찬스를 만드는 창조적인 패싱력과 직접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하는 능력까지 겸비했기에 인테르 시절 동료 안젤로 로벨리는 그를 두고 "튼튼하고 실용적이며 직선의 움직임을 갖는 미드필더의 피스톨. 그러면서 골도 넣을 수 있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유벤투스에서 세리에 A 5연패를 이끌었으나 회장 에도아르도 아넬리의 사망으로 인해 팀이 긴축정책을 펼쳤기에 페라리는 대표팀 파트너 주세페 메아차를 따라 인테르로 이적했고 1937-38 시즌과 1939-40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고 1938-39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6위 에바리스토 베칼로시

 


출생년도: 1956년 5월 12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78~1985
통산 기록: 215경기 37골

산드로 마촐라 은퇴 이후에 인테르의 공격을 이끌었던 트레콰르티스타로 기복이 다소 심했지만 잘하는 경기에서는 빠른 스피드와 놀라운 창의성을 이용한 신기의 드리블로 상대를 모두 제쳤고 광활한 시야와 강력한 킥력을 바탕으로 어느 방향으로든 킬패스를 날릴 수 있었던 데다가 원래는 오른발잡이였다가 축구를 위해 후천적으로 왼발 능력을 업그레이드한 케이스여서 양발 사용에 모두 능해 일 제니오, 즉 천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비록 언론뿐만 아니라 함께 뛰는 동료 역시 "한 경기에서도 여러 번 선수가 바뀌는 것 같을 정도로 기복이 심하다."며 비판을 듣기도 했던 제칼로시는 그래도 1979-80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고 1981-82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도 공헌했다. 특히 당시 인테르의 주전 스트라이커 알레산드로 알토벨리와의 호흡은 실로 대단해서, 아직까지도 세리에 역사상 최고의 파트너 중 하나로 회자되기도 했다.

여담으로 본래는 페널티킥에 능한 선수였으나  1982년에는 슬로반 브라티슬라바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두 번의 페널티킥 실축을 범하며 역으로 페널티킥을 못 차는 선수로 더더욱 유명세를 타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5위 알바로 레코바

 


출생년도: 1976년 3월 17일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9kg
활약 기간: 1997~2008
통산 기록: 261경기 72골 66도움

한때나마 호나우두와 지단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연봉 수령자로 이름을 날렸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오른발을 거의 못 썼으며 낮은 수준의 체력과 압박에 취약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화려한 드리블 스킬과 날카로운 왼발 패스, 그리고 강력한 왼발 킥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특히 데드볼 상황에서 그의 왼발은 빛났다.

남아메리카의 지단이라 불렸던 레코바는 자국리그에서 가능성을 보여 1997년 인터 밀란으로 이적해 호나우두, 비에리, 바조 등과 함께 네라주리의 공격을 이끌며 1997-98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들이 떠난 뒤에는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에서 각각 2회 우승을 경험했다.

 

 

4위 알도 캄파텔리

 


출생년도: 1919년 4월 7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36~1950
통산 기록: 304경기 44골

194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명성을 날린 인사이드 포워드 겸 하프백으로 스피드와 드리블, 그리고 태클 실력이 모두 평범한 수준이거나 그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으며 활동량이 많은 선수도 아니었지만 영리한 인터셉트로 볼을 자신의 것으로 가로채거나 자신에게 전달된 볼을 능숙하게 다루며 정확하게 전달했으며 전진된 위치에서 활약했을 땐 정확한 중거리 슈팅으로 분위기를 반전하기도 했다.

레오폴도 콘티와 주세페 메아차를 동경하던 인테르 유스 출신으로 인테르에서 데뷔해 14년간 활약한 캄파텔리는 인사이드 포워드와 하프백, 그리고 말년에는 풀백까지 뛰었을 정도로 멀티성이 대단했으며 1943-44 시즌부터 1949-50 시즌까지 일곱 시즌 동안 인테르의 주장직을 역임했다. 초년에는 세리에 A 2회 우승 및 1938-39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격해지면서 리그가 중단되었고 전후에는 '그란데 토리노'라고 불리던 토리노의 독주로 힘을 쓰지 못했다.

 

 

3위 웨슬리 스네이더

 


출생년도: 1984년 6월 9일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2kg
활약 기간: 2009~2012
통산 기록: 116경기 22골 35도움

2000년대 후반을 빛낸 고전적인 플레이메이커로 양발 모두를 잘 썼으며 짧은 패스와 중장거리 패스를 안 가리고 잘 활용했으며 중거리 슈팅, 그리고 데드볼 상황에 능해 '스나이퍼'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아약스에서 기대받던 기대주였으나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실패로 인해 2009년에 영입된 카카에 밀려나 인테르로 쫓겨났다. 그러나 인테르에서는 이를 비웃듯 그리고 2009-10 시즌 인터 밀란에서 트레블을 이뤄내는데 큰 역할을 하며 2010년 UEFA 클럽 올해의 미드필더를 수상했다.

그리고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활약까지 겹치며 2010년 피파 발롱도르에서 4위를 기록했는데 만약 피파 올해의 선수상과 발롱도르를 통합하지 않고 과거의 발롱도르 투표처럼 기자단 투표로 했으면 2010년의 발롱도르는 스네이더의 차지였다는 것이다. 이후에는 하락세를 겪었지만 2010-1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도 공헌했고 결국 인테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위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

 


출생년도: 1935년 5월 2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1kg
활약 기간: 1961~1970
통산 기록: 328경기 55골

 

1960년대 상반기 유럽 무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어난 훌륭한 볼 컨트롤과 우수한 패싱력과 효율적인 공간 활용, 그리고 탁월한 전술안을 바탕으로 팀의 공격을 지휘해 일명 건축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바르셀로나에서 발롱도르를 수상한 루이스 수아레스는 은사 엘레니오 에레라를 따라 인테르로 이적한 뒤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해 세리에 A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루며 그란데 인테르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루이스 수아레스 개인 역시 인테르에서 활약한 기간에만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1964년 발롱로드 2위와 1965년 발롱도르 3위에 올랐다.

 

 

1위 산드로 마촐라

 


출생년도: 1942년 11월 8일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60~1977
통산 기록: 565경기 160골

아버지 발렌티노 마촐라와 라이벌 지안니 리베라와 함께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손꼽히며 훌륭한 슈팅 스킬과 창의적인 패싱력, 탄탄한 볼 컨트롤과 같은 공격형 미드필더의 필수적인 덕목은 물론 기동력도 탁월했으며 측면과 중앙을 오가는 왕성한 활동량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인테르 밀란 역대 통산 득점 4위에 올라있으며 선수 생활을 오직 인테르 밀란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산드로 마촐라는 세리에 A 4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루며 그란데 인테르의 시대를 열었는데 이 과정에서 마촐라는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줘 레알 마드리드의 푸스카스로부터 "너의 아버지 발렌티노 마촐라 못지않구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마촐라 개인도 여러 영예를 누렸는데 1963-6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 올랐으며 1964-65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고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음은 물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9회 선정되어 1971년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 물론 선수 자체로는 루이스 수아레스가 산드로 마촐라보다 위대한 선수였지만 인테르에 한정해서는 마촐라의 헌신 기간을 무시할 수 없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