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2편- 남아메리카 축구계 최초의 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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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2편- 남아메리카 축구계 최초의 패자

토르난테 2023. 7. 1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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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1925

 

'원조 친코 코파스' 클루브 나시오날

 

남아메리카 축구계 최초의 패자

 


성적

프리메라 디비시온: 9회 우승 (1912, 1915, 1916, 1917, 1919, 1920, 1922, 1923, 1924)

코파 컴페텐시아: 7회 우승 (1912, 1913, 1914, 1915, 1919, 1921, 1923)

코파 데 아너: 5회 우승 (1913, 1914, 1915, 1916, 1917)

코파 레온 페이로: 3회 우승 (1920, 1921, 1922)

코파 알비온: 1회 우승 (1919)

코파 데 아너 쿠세니어: 3회 우승 (1915, 1916, 1917)

코파 알다오: 3회 우승 (1916, 1919, 1920)

코파 타이 컴페티션: 2회 우승 (1913, 1915)


소개

1910년대부터 20년대 초중반에 걸쳐 남미 무대 최고의 클럽으로 우루과이 무대에서는 독주에 가까운 성적을 냈음은 물론 국제무대에서도 우루과이와 함께 남미 축구계의 헤게모니를 이끈 아르헨티나의 챔피언들도 여러 번 격파했는데 특히 1915년에는 정규리그, 코파 컴페텐시아, 코파 데 아너, 코파 데 아너 쿠세니어, 코파 타이 컴페티션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축구사 최초로 5관왕을 달성했다.

우루과이 축구협회 내부분열로 인해 리그가 중단되었던 시절에는 유럽 투어를 다니며 9개의 나라를 돌아다니며 38개의 팀과 친선경기를 가졌는데 이때  카탈루냐 챔피언 FC 바르셀로나, 이탈리아 챔피언 제노아 CFC, 스포르팅 리스본, 라피드 빈, 스파르타 프라하 등 여러 유럽 팀들과 시합을 가졌고, 26승 7무 5패의 성적을 거두었다. 당시 나시오날의 원정은 유럽에서 큰 화제였고 라피드 빈과의 경기에서는 당시 오스트리아의 대통령 미하엘 하이니슈가 직접 맞아주며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1920년대 남미와 세계 무대를 평정하며 여러 대회를 우승했던 우루과이 국가대표팀 선수들 대다수가 이 시대 클루브 나시오날의 소속이었다.


주요 감독

 


호세 마리아 델가도

20세기 초반 우루과이의 다방면에서 이름을 날렸던 인물로 유능한 의사이자 저명한 시인이며 축구인이었는데 클루브 나시오날에서는 회장 겸 감독을 맡아 10년간 재직하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델가도 재임 시기에 들어낸 트로피는 정규리그 6회 우승을 포함해 총 28개의 공식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나시오날을 남미 최강의 클럽으로 성장시켰다.


ACE Card

 

 

이름: 엑토르 스카로네
출생년도: 1898년 11월 26일
포지션: 인사이드 포워드, 센터 포워드, 아웃사이드 포워드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4kg

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인사이드 포워드에게 필요한 모든 덕목에서 우수했으며 특히 골 결정력과 동료들을 활용하는 플레이가 일품이었기에 1920년대 최고의 인사이드 포워드로 이름을 날렸으며 마법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친형 카를로스 스카로네와 함께 클루브 나시오날의 공격을 진두지휘하며 구단의 황금기에 앞장섰으며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모두 에이스로 평가받았다.

 

 

이름: 앙헬 로마노
출생년도: 1893년 8월 2일
포지션: 인사이드 포워드, 아웃사이드 레프트 외 골키퍼 포함 모든 포지션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3kg

1910년대와 20년대 우루과이의 황금기를 이끈 핵심 선수 중 한 명으로 드리블과 찬스 메이킹에 능했으며 주 포지션은 인사이드 레프트 및 아웃사이드 레프트였지만 골키퍼를 포함해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을 정도로 다재다능했으며 축구라는 스포츠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던 천재적인 토탈 플레이어였다.

로마노는 클루브 나시오날과 우루과이 대표팀에서 총 50개의 공식전 우승을 이뤄내며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공식전 우승자로 이름을 남겼다.

 

 

아름: 안드레아 마살리
출생년도: 1902년 7월 22일
포지션: 골키퍼, 센터 포워드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2kg

1920년대 우루과이 축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슛 스토퍼로 키가 매우 작았으나 번뜩이는 다이빙 능력으로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훌륭하게 보완했으며 이런 플레이스타일 때문에 팬들로부터 다이버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여담으로 마살리는 골키퍼였음에도 때때로 센터 포워드로 출전하기도 했으며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공식 경기 12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베스트 일레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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