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난테 & Red Archive 선정 1976년 F.C.U Football Award

F.C.U Football Award/1970년대

토르난테 & Red Archive 선정 1976년 F.C.U Football Award

토르난테 2023. 5. 2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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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1. 이 프로젝트는 티스토리 블로거이자 풋볼 크리에이터 연합(약칭 FCU) 소속 크리에이터 토르난테와 Red Archive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컨텐츠입니다.

2. 선정기간의 기준은 추춘제 리그의 경우에는 1975-76 시즌을 기준으로, 춘추제 리그의 경우에는 1976 시즌으로 잡았으며 1976년에 열린 국제대회를 모두 포함했습니다.

3. 상위 10인 外 최고의 축구선수 노미네이트는 출생일 순서대로 정렬했습니다.

4. 골든 보이의 기준은 해당 년도 12월 31일 기준 만 21세 이하의 선수로 한정되었으며 오직 한 번만 수상할 수 있습니다.

5. TOTY는 토르난테 혼자 선정하고 순위는 레드 아카이브와의 합산 및 토의로 선정해서 상충하는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토르난테 & Red Archive 공동 선정, 1976년 최고의 축구선수

 

1976년 최고의 축구선수 최초 노미네이트 50인

 

 


공동 9위

 

이름: 넬리뉴
출생일: 1950년 7월 26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크루제이루

 

1976년 최고의 선수 공동 9위에 선정된 첫 번째 선수는 크루제이루의 데드볼 스페셜리스트이자 제2의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넬리뉴다.

소속팀 크루제이루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우승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활약을 했던 넬리뉴는 강력한 오른발 킥을 바탕으로 결승 1차전과 3차전에서 모두 선제골을 기록하며 크루제이루의 우승에 큰 힘을 보탰다.

 

 

공동 9위

 

이름: 케빈 키건
출생일: 1951년 2월 14일
국적: 잉글랜드
소속팀: 리버풀 FC

 

1976년 최고의 선수 공동 9위에 선정된 마지막 선수는 리버풀의 잉글랜드 무대 및 UEFA컵 제패를 이뤄낸 마이티마우스 케빈 키건이다.

키건은 소속팀 리버풀의 풋볼 리그 1부 및  UEFA컵 더블 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시즌 통산 57경기 16골을 기록했다. 특히 UEFA컵 결승전에서는 하펠이 이끄는 클뤼프 브뤼허를 상대로 1차전과 2차전에 모두 득점포를 가동하는 활약상을 선보였다.

 

 

8위

 

이름: 나르시소 도발
출생일: 1944년 1월 4일
국적: 아르헨티나
소속팀: 플루미넨시


1976년 최고의 선수 8위에는 플루미넨시의 최전방에서 히벨리누, 카주, 지르세우 등과 함께 화려한 연계 플레이를 보여주며 회자된 나르시소 도발을 선정했다.

주립리그였던 캄페오나투 카리오카에서는 소속팀의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도발 개인도 득점왕에 올랐으며 전국리그에서는 4위에 그쳤지만 도발 개인은 득점 2위에 올랐으며 전국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활약상을 선보였다.

 

7위

 

이름: 이보 빅토르
출생일: 1942년 5월 21일
국적: 체코슬로바티아
소속팀: 두클라 프라하


1976년 최고의 선수 7위에는 조국 체코슬로바키아의 유로 우승을 이뤄낸 체코슬로바키아의 야신 이보 빅토르를 선정했다.

비록 소속팀 두클라 프라하에서는 무관으로 시즌을 마쳤지만 UEFA 유로에서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승리한 순간을 포함해 뛰어난 활약으로 조국의 우승을 이끈 빅토르는 대회 공식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특파 기자단에 의해 프란츠 베켄바우어와 함께 대회 MVP로 평가받았으며 1976년 체코슬로바키아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6위

이름: 호베르투 히벨리누
출생일: 1946년 1월 1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플루미넨시

 

1976년 최고의 선수 6위에는 공격 진영에서 화려한 플레이를 펼치며 리우 데 자네이루를 제패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히벨리누를 선정했다.

소속팀 플루미넨시에서 나르시소 도발, 카주, 지르세우 등과 주립리그였던 캄페오나투 카리오카에서는 소속팀의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전국리그에서는 4위에 그쳤지만 히벨리누 개인의 활약은 대단해 남미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3위에 오르기도 했다.

 

 

5위

 

이름: 지쿠
출생일: 1953년 3월 3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플라멩구


1976년 최고의 선수 5위에는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에 있었음에도 유려한 드리블과 날카로운 킬러패스는 물론 브라질 전국을 들썩들썩하게 만드는 득점력을 선보인 지쿠를 선정했다.

작년보다는 적게 득점했으며 소속팀 플라멩구도 무관에 그쳤지만 지쿠 개인은 주립리그와 전국리그를 포함해 47경기에 출전해 32골을 득점하는 괴력을 선보였으며 국가대표팀 경기 (9경기 6골)와 클럽 친선전 및 비공식 대회를 모두 포함해 63골을 득점하며 브라질 최다 득점자의 자리에 올랐으며 남미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도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4위

 

이름: 롭 렌센블링크
출생일: 1947년 7월 3일
국적: 네덜란드
소속팀: RSC 안더레흐트

 

1976년 최고의 선수 4위에는 컵 위너스컵 챔피언 자격으로 나선 UEFA 슈퍼컵 2차전에서 유럽 챔피언 바이에른 뮌헨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운 렌센블링크를 선정했다.

소속팀 안더레흐트에서는 비록 주필러리가 우승은 놓쳤지만 벨기에 컵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1975-76 시즌 한 시즌동안 50경기 35골을 득점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특히 UEFA 컵 위너스컵에서는 결승전에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한 멀티골을 포함해 총 8골을 득점하며 대회 우승과 득점왕에 동시에 올랐고 UEFA 슈퍼컵에서도 1차전에서는 유럽 챔피언 바이에른에게 패했지만 2차전에서는 멀티골을 득점하며 역전 우승을 이뤄냈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도 UEFA 유로 1976에 주전으로 나서며 조국을 3위에 올리는데 공헌했다.

 

3위 브론즈볼

 

이름: 다니엘 파사레야
출생일: 1953년 5월 25일
국적: 아르헨티나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76년 브론즈볼에는 남미 무대에 새롭게 리베로의 강자로 떠오르며 압도적인 득점력을 선보였으며 173cm의 단신에도 파워풀한 제공권 경합 및 헤더 득점을 선보이며 사람들을 놀라게 한 수비수 다니엘 파사레야를 선정했다.

1975-76 시즌 한 해 동안 전기리그와 후기리그에서 우승을 이뤄내진 못했지만 파사레야 개인은 총 35경기에 출전해 24골을 득점하는 고력을 선보였으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9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하며 소속팀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으나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파사레야는 한 해 동안 클럽과 대표팀을 포함해 50경기에 출전해 27골을 득점하며 1976년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2위 실버볼

 

이름: 엘리아스 피게로아
출생일: 1946년 10월 25일 
국적: 칠레
소속팀: SC 인테르나시오나우

 

1976년 실버볼에는 다시 한번 히우그란지두술 주 무대와 브라질 전국 무대를 평정하며 브라질 축구계의 카이저에 오른 엘리아스 피게로아를 선정했다.

피게로아는 소속팀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 캄페오나투 가우슈 및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수 양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압도적인 차이로 우승을 달성했음은 물론 남미 올해의 선수상과 브라질 전국리그 MVP 및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활약상을 인정받았다.

 

 

1위 골든볼

 

이름: 프란츠 베켄바우어
출생일: 1945년 9월 11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76년 골든볼에는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의 유러피언 컵 3연패를 완성시켰으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우승하며 세계 챔피언에 올랐고 서독 대표팀에서도 메이저 대회 3회 연속 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는 과정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프란츠 베켄바우어를 선정했다.

베켄바우어는 비록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에서 분데스리가 우승에 실패했지만 유러피언 컵에서는 전통의 강자 벤피카와 레알 마드리드를 모두 꺾고 결승에 진출했으며 결승전에서도 프랑스의 강자 생테티엔을 상대로 강력한 수비라인 지휘력을 선보이며 무실점으로 승리하며 빅이어를 들어 올리는데 공헌했다.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에는 남미 챔피언 크루제이루를 상대로 홈에서 2-0 승리를 이끌었으며 원정에서도 0-0 무승부를 이뤄내며 무실점으로 우승하는데 기여했다.

서독 대표팀에서도 UEFA 유로 결승에 진출하며 메이저 대회 3회 연속 우승의 기회를 잡았으나 결승전에서 체코슬로바키아와의 승부차기에서 패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럼에도 베켄바우어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체코슬로바키아의 빅토르와 함께 대회 MVP로 평가받았으며 유럽 최고의 선수에게 수상하는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키커 랑리스테 월드클래스 등급은 덤이다.

 

상위 10인 外 최고의 축구선수 최종 노미네이트 20인

이반 쿠르코비치 (유고슬라비아 / 생테티엔)
우고 가티 (아르헨티나 / 보카 주니어스)
자이르지뉴 (브라질 / 크루제이루)
호세 피리 (스페인 / 레알 마드리드)
유프 하인케스 (서독 /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게르트 뮐러 (서독 / FC 바이에른 뮌헨)
드라간 자이치 (유고슬라비아 / SC 바스티아)
베르티 포그츠 (서독 /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요한 크루이프 (네덜란드 / FC 바르셀로나)
뤼트 헤일스 (네덜란드 / AFC 아약스)
테오필로 쿠비야스 (페루 / FC 포르투)
뤼트 크롤 (네덜란드 / AFC 아약스)
카주 (브라질 / 플루미넨시)
클라우스 피셔 (서독 / FC 샬케 04)
안톤 온드루쉬 (체코슬로바키아 / 슬로반 브라티슬라바)
파올로 풀리치 (이탈리아 / 토리노)
요한 네스켄스 (네덜란드 / FC 바르셀로나)
라이너 본호프 (서독 /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호베르투 파우캉 (브라질 / 인테르나시오나우)
미셸 플라티니 (프랑스 / 낭시)


2. 토르난테 선정 1976년 최고의 축구감독

 

골든 바통

 

이름: 후안 카를로스 로렌소
국적: 아르헨티나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주 업적: 1976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메트로폴리타노 우승, 나시오날 우승


1976년 최고의 감독에는 다시 고향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더블을 이뤄낸 후안 카를로스 로렌소를 선정했다.

1976년의 보카 주니어스는 우고 가티 이외에는 스타플레이어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우고 가티 조차도 리버 플레이트의 우발도 피욜에게 밀린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였으며 상대적으로 리버 플레이트나 인디펜디엔테에 비해 우승후보로 거론받지 못했다.

그러나 로렌소의 적재적소의 전략과 강력한 통솔력을 바탕으로 보카 주니어스는 강력한 팀워크를 발휘하며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조리 제패하는 기염을 토했다.

 

 

실버 바통

 

이름: 에른스트 하펠
국적: 오스트리아
소속팀: 클뤼프 브뤼헤
주 업적: 1975-76 벨기에 주필러리가 우승, UEFA컵 준우승


1976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뛰어났던 감독에게 수여하는 실버 바통에는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에 이어 벨기에 무대에서도 영향력을 넓혀가는 에른스트 하펠을 선정했다.

에른스트 하펠이 지휘하던 클뤼프 브뤼헤는 렌센블링크, 아리 한, 루도 코엑, 프랑수아 반 데르 엘스트 등 스타플레이어로 무장한 우승 경쟁팀 안더레흐트에 비해 전력에서 밀렸으나 그들을 밀어내고 벨기에 주필러리가 우승을 이뤄냈으며 UEFA컵에서도 리옹, 입스위치 타운, AS 로마, AC 밀란, 함부르크를 차례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으나 단 한 골차로 리버풀에게 아쉽게 밀려나며 준우승을 이뤄냈다.

클뤼프 브뤼헤는 스타플레이어가 없었음에도 하펠 감독의 적재적소의 용병술 및 신출귀몰한 지략을 바탕으로 벨기에의 강자로 올라설 수 있었다.

 

브론즈 바통

 

이름: 밥 페이즐리
국적: 잉글랜드
소속팀: 리버풀 FC
주 업적: 1975-76 잉글랜드 풋볼 1부 리그 우승, UEFA컵 우승, 및 1976 FA 채리티 실드 우승

1976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뛰어났던 감독에게 수여하는 브론즈 바통의 주인공은 스승 빌 샹클리에 이어 리버풀의 대약진을 이끈 밥 페이즐리를 선정했다.

밥 페이즐리가 지휘했던 리버풀은 퀸즈 파크 레인저스 및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치열한 경합 끝에 잉글랜드 풋볼 리그 1부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를 다른 우승 경쟁 구단과는 다르게 유럽대항전을 병행하면서 이뤄냈는데 유럽대항전에서도 UEFA컵에서도 레알 소시에다드, FC 바르셀로나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으며 결승전에서도 에른스트 하펠이 이끄는 클뤼프 브뤼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두 대회를 병행하면서도 기복이 심하지 않았던 이유는 감독이 그만큼 철저하게 관리했기에 가능했다.

 

상위 3인 外 최고의 축구감독 노미네이트

 

이름: 제제 모레이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크루제이루
주 업적: 1976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이름: 디트마어 크라머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주 업적: 1975-76 유러피언 컵 우승 및 1976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이름: 루벤스 미넬리
국적: 브라질
소속팀: SC 인테르나시오나우
주 업적: 1976 캄페오나투 가우슈 우승, 브라질 세리 A 우승

이름: 밀랸 밀리야니치
국적: 유고슬라비아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주 업적: 1975-76 라리가 우승 및 유러피언 컵 4강

이름: 루이지 라디체
국적: 이탈리아
소속팀: 토리노 FC
주 업적: 1975-76 세리에 A 우승

이름: 우도 라텍
국적: 서독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주 업적: 1975-76 분데스리가 우승

이름: 로베르 에르빙
국적: 프랑스
소속팀: AS 생테티엔
주 업적: 1975-76 프랑스 리그앙 우승 및 유러피언 컵 준우승

 


3. 토르난테 선정 1976년 축구 특별상

 

토르난테 선정 골든 글러브

 

이름: 이보 빅토르
출생일: 1942년 5월 21일
국적: 체코슬로바티아
소속팀: 두클라 프라하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보이

 

이름: 미셸 플라티니
출생일: 1955년 6월 21일
국적: 프랑스
소속팀: 낭시

 

1976년 최고의 만 21세 선수에는 프랑스 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킨 미셸 플라티니를 선정했다.

승격팀이었던 낭시 소속의 공격형 미드필더 플라티니는 공격형 미드필더였음에도 리그 22골을 득점하며 득점순위 4위에 올랐고 공식전 38경기에 출전해 28골을 득점하는 괴력을 선보였음은 물론 승격팀 낭시를 리그앙 7위 및 쿠프 드 프랑스 4강에 올리는 활약을 선보였다.

플라티니는 레 블뢰에도 소집되어 5경기에 출전해 4골을 득점하는 활약을 펼쳤다.

 

 

토르난테 선정 골든 쉴드

 

이름: 프란츠 베켄바우어
출생일: 1945년 9월 11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렌즈

 

이름: 지쿠
출생일: 1953년 3월 3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플라멩구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에로우

 

이름: 롭 렌센블링크
출생일: 1947년 7월 3일
국적: 네덜란드
소속팀: RSC 안더레흐트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암밴드

 

이름: 프란츠 베켄바우어
출생일: 1945년 9월 11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76년 골든 암밴드는 소속팀 바이에른을 유럽 챔피언 및 세계 챔피언에 올린 프란츠 베켄바우어를 선정했다.

베켄바우어는 소속팀 바이에른이 분데스리가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며 다소 어수선할 수 있었던 분위기를 빠르게 수습해 견고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유러피언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남미 챔피언 크루제이루와의 2연전에서도 1승 1무, 무실점으로 대회를 마치며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을 세웠다. 바이에른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토너먼트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인 건 카이저라 불리는 베켄바우어의 강력한 리더십이 큰 영향력을 발휘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4. 토르난테 선정 1976 Team Of The Year

 

 

골키퍼

 

 

이름: 이보 빅토르
출생일: 1942년 5월 21일
국적: 체코슬로바티아
소속팀: 두클라 프라하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센터백

 

 

이름: 다니엘 파사레야
출생일: 1953년 5월 25일
국적: 아르헨티나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센터백

 

 

이름: 엘라아스 피게로아
출생일: 1946년 10월 25일 
국적: 칠레
소속팀: SC 인테르나시오나우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라이트백

 

 

이름: 베르디 포그츠
출생일: 1946년 12월 30일
국적: 서독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76년 최고의 라이트백에는 유럽 최고의 리그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낸 베르티 포그츠를 선정했다.

베르티 포그츠는 소속팀 묀헨글라트바흐의 분데스리가 우승 및 유러피언컵 8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서독 대표팀에서도 UEFA 유로 결승 진출을 이뤄내는 활약을 보였고 포그츠 개인도 키커 랑리스테 평가 측면 수비수 부문에서 전반기에는 월드클래스 등급과 포지션 랭킹 1위, 후반기에는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과 포지션 랭킹 1위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 상위 10위 안에 다른 라이트백인 넬리뉴가 있음에도 토르난테 박이 포그츠를 선정한 이유는 올해의 선수 선정 방식에서 나왔는데 토르난테 박은 넬리뉴와 포그츠 모두 상위 10인으로 선정하지 않았지만 다른 선정자인 Red Archive는 넬리뉴를 8위에 선정해 합산 과정에서 공동 9위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TOTY 선정자 토르난테 박은 둘 다 상위 10인으로 선정하지 않았음에도 한 해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인 라이트백이라는 부문에서 넬리뉴보다 포그츠가 낫다고 판단해 포그츠를 선정했기에 이런 결과값이 나온 것이다.

 

 

레프트백

 

 

이름: 뤼트 크롤
출생일: 1949년 3월 24일
국적: 네덜란드
소속팀: AFC 아약스


1976년 최고의 레프트백에는 서독의 브라이트너와 쌍벽을 이루는 네덜란드의 공수겸장 레프트백 뤼트 크롤을 선정했다.

비록 뤼트 크롤은 소속팀 아약스에서 무관으로 시즌을 마무리했지만 개인의 기량은 여전히 대단했으며 UEFA 유로에서도 조국 네덜란드를 3위로 이끌며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유일하게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프란츠 베켄바우어
출생일: 1945년 9월 11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본 포지션은 센터백이지만 이번 년도에는 골든볼부터 브론즈볼까지 모두 센터백에서 나오는 일이 발생했기에 수비형 미드필더에서도 전설적인 활약을 펼쳤던 베켄바우어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진 배치했다.

이하 자새한 설명은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지쿠
출생일: 1953년 3월 3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플라멩구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호베르투 히벨리누
출생일: 1946년 1월 1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픞루미넨시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포워드

 

 

이름: 케빈 키건
출생일: 1951년 2월 14일
국적: 잉글랜드
소속팀: 리버풀 FC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포워드

 

 

이름: 나르시소 도발
출생일: 1944년 1월 4일
국적: 아르헨티나
소속팀: 플루미넨시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포워드

 

 

이름: 롭 렌센블링크
출생일: 1947년 7월 3일
국적: 네덜란드
소속팀: RSC 안더레흐트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1976 TOTY 베스트 일레븐

 

 


5. Red Archive 선정 1976년 세계 최고의 축구팀

 

1위 골든 팀

 

 

SC 인테르나시오나우

성적: 1976 캄페오나투 가우슈 우승, 브라질 세리 A 우승

캄페오나투 가우슈와 브라질 전국리그를 모두 제패하며 2년 연속으로 브라질 통합 챔피언에 올랐다. 심지어 단순히 우승만 이은 것이 아니라 지난 시즌의 압도적인 포스까지 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 

캄페오나투 가우슈에서는 정규리그 1단계에서 19경기 17승 2무 무패로 19경기 18승 1패의 그레미우와 승점 동률을 기록했다. 1위를 가리는 플레이오프에서는 아쉽게 2-0으로 패배했지만, 정규 경기들에서는 55득점 4실점이라는 말도 안 되는 득실을 기록하며 최강자로 군림했다. 상위 4팀이 참여한 2단계에서는 1라운드, 2라운드 모두 무패로 마치며 여유롭게 우승을 결정지었다. 

전국리그에서는 1라운드와 2라운드를 모두 무패 조 1위로 마치고, 3라운드에서 2패를 기록했으나 역시 조 1위에 안착하며 압도적인 정규리그 성적과 함께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준결승에서 당시 지역과 전국리그 모두 강세를 보이던 아틀레치쿠 미네이루를 꺾었고, 결승전에서는 코린치안스를 꺾으며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전국리그 23경기 19승 1무 3패, 59득점 13실점이라는 괴물 같은 성적표와 함께.

 

 

2위 실버 팀

 

 

FC 바이에른 뮌헨

성적: 1975-76 분데스리가 3위, 유러피언 컵 우승 및 1976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비록 분데스리가에서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함부르크에게 밀려 3위를 기록했지만, 유로피언 컵과 인터콘티넨탈 컵을 우승하며 대륙과 세계의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유로피언 컵에서 벤피카, 레알 마드리드, 생테티엔이라는 난적들을 차례로 격파하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인터콘티넨탈 컵에서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팀인 크루제이루를 도합 2-0으로 누르고 우승했다.

 

 

3위 브론즈 팀

 

 

보카 주니어스

 

성적: 1976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메트로폴리타노 우승, 나시오날 우승

아르헨티나의 양대 리그인 캄페오나토 메트로폴리타노와 캄페오나토 나시오날을 모두 제패하며 한 시즌에 두 번의 리그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루었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그룹 A 4위를 기록하며 초반에는 다소 주춤했으나 챔피언십 그룹에서는 11경기 8승 3무 무패로 1위에 올랐고 우승을 차지했다. 

나시오날에서는 그룹 A에서 킬메스와 승점 동률을 기록하였으나 1위 결정전에서 2-1로 승리하며 1위로 플레이오프 단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에서 반필드, 우라칸, 리버 플레이트를 차례로 꺾고 마침내 우승을 차지하며 양대리그 통합 우승의 위업을 이뤘다.

 


6. 평가자 소개

 

1. 토르난테


해당 블로그의 주인이자 F.C.U의 회장으로 축구역사 매니아, 중부 유럽과 남부 유럽 그리고 동부 유럽 축구에 관심이 많다.

선수와 감독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전술적 상징성과 최고점에서의 퍼포먼스를 굉장히 중시하는 성향

응원팀: 바이에른 뮌헨, 인테르 밀란, 디나모 키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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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d Archive


F.C.U의 회원으로 축구역사 매니아, 특히 남미 축구에 관심이 많다.

선수와 감독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토르난테에 비해 상징성보다는 어빌리티에서 더 섬세하게 평가하는 성향

응원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CA 인데펜디엔테, 아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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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Archive Football

축구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입니다. 응원팀에 대한 생각도 전합니다. 업로드 주기가 불규칙적이고 느린데, 규칙적이고 빠르게 쓸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

red-archive.tistory.com

 


7. 추도사

 

브라질 벨루오리존치의 젊은 축구선수 호베르투 바타타는 지역의 명문 팀 크루제이루에서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었다.

이 당시 크루제이루는 지역을 넘어 브라질 전국과, 남아메리카 대륙까지 명성을 넓혀가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바타타 역시 선수로서 전성기의 나이를 맞이하였으며 1975년에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렇게 바타타의 선수 생활은 순탄하게 이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76년 5월 13일, 가족을 보기 위해 인근 지역인 트레스 코라소이스로 이동하던 바타타는 페르낭 디아스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26세의 젊은 나이였다.

그가 크루제이루에서 남긴 기록은 281경기 출전과 110골 득점이었다. 크루제이루와 브라질 축구계는 큰 슬픔에 빠졌다.

크루제이루는 떠난 동료에게 영광스러운 우승을 바치기 위해 더욱 단결하여 힘을 모았을 것이다. 이런 간절함이 통했는지, 1976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크루제이루는 선전을 거듭했고 마침내 우승을 차지하며 바타타에게 마지막 선물을 바칠 수 있었다.

직접 함께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좋은 곳에서 생전 동료들의 활약을 지켜보며 행복했기를 바란다. 그는 여전히 크루제이루를 비추는 별로 기억되고 있다.

 

호베르투 바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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