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난테 & Red Archive 선정 1974년 F.C.U Football Award

F.C.U Football Award/1970년대

토르난테 & Red Archive 선정 1974년 F.C.U Football Award

토르난테 2023. 5. 1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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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1. 이 프로젝트는 티스토리 블로거이자 풋볼 크리에이터 연합(약칭 FCU) 소속 크리에이터 토르난테와 Red Archive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컨텐츠입니다.

2. 선정기간의 기준은 추춘제 리그의 경우에는 1973-74 시즌을 기준으로, 춘추제 리그의 경우에는 1974 시즌으로 잡았으며 1974년에 열린 국제대회를 모두 포함했습니다.

3. 상위 10인 外 최고의 축구선수 노미네이트는 출생일 순서대로 정렬했습니다.

4. 골든 보이의 기준은 해당 년도 12월 31일 기준 만 21세 이하의 선수로 한정되었으며 오직 한 번만 수상할 수 있습니다.

5. TOTY는 토르난테 혼자 선정하고 순위는 레드 아카이브와의 합산 및 토의로 선정해서 상충하는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토르난테 & Red Archive 공동 선정, 1974년 최고의 축구선수

 

1974년 최고의 축구선수 최초 노미네이트 50인

 

 


공동 10위

 

이름: 베르디 포그츠
출생일: 1946년 12월 30일
국적: 서독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74년 최고의 선수 공동 10위에 선정된 첫 번째 선수는 월드컵 결승전에서 천하의 크루이프를 지워내는 데 성공한 역사상 최고의 대인마커 베르디 포그츠를 선정했다.

사냥개라고 불렸을 정도로 집요한 대인 수비수로 상대 플레이메이커를 수없이 좌절시킨 포그츠는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에서는 개인의 훌륭한 기량에도 불구하고 무관으로 시즌을 마쳤으나 서독 월드컵에서 수많은 상대 에이스들을 잠재웠으며 결승전에서는 크루이프를 완벽하게 지워내며 우승에 공헌했기에 에스타디오와 ESPN이 선정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렸다.

 

 

공동 10위

 

이름: 마리오 켐페스
출생일: 1954년 7월 15일
국적: 아르헨티나
소속팀: CA 로사리오 센트랄

 

1974년 최고의 선수 공동 10위에 선정된 마지막 선수는 아르헨티나 무대를 강타한 초신성 마리오 켐페스를 선정했다.

투우사라 불렸을 정도로 저돌적인 움직임을 보여준 공격수 켐페스는 후기리그인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나시오날에서 맹활약하며 25골을 득점하며 득점 2위에 오른 엑토르 스코타와 8골 차이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득점왕을 수상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전 공격수로 참가하며 전 경기에 선발로 출전해 폴란드전과 동독전에서 각각 1도움을 기록했으며 조국의 8강 2차 조별리그 진출에 공헌했다.

 

 

9위

 

이름: 지쿠
출생일: 1953년 3월 3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플라멩구

 

1974년 최고의 선수 9위는 브라질 무대에서 공식전 50경기에 나와 30골을 득점하며 펠레가 떠난 빈 자리를 채울 새로운 황제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은 지쿠를 선정했다.

플라멩구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지쿠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소속팀 플라멩구의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음은 물론 지쿠 개인도 미드필더였음에도 31경기에 출전해 19골을 득점하며 득점왕 루이지뉴 레모스와 한 골 차이로 득점 2위에 올랐다.

지쿠의 활약은 전국리그에서도 훌륭한 기량을 발휘했는데 소속팀 플라멩구는 우승권과 거리가 멀었지만 지쿠 개인은 19경기에 출전해 11골을 득점하는 퍼포먼스를 보이며 1974년 브라질 세리 A MVP를 수상했으며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지쿠가 브라질 대표팀에 뽑혔으면 펠레와 토스탕이 물러남으로 인해 빈공에 시달리던 브라질에게 한 줄기 빛이 되지 않았을까?

 

 

8위

 

이름: 엘라아스 피게로아
출생일: 1946년 10월 25일 
국적: 칠레
소속팀: SC 인테르나시오나우


1974년 최고의 선수 8위는 유럽 최강이자 세계 최강인 서독 대표팀을 상대로 눈물겨운 수비를 보여주며 그들을 완벽에 가깝게 막아낸 거인 리베로 엘리아스 피게로아를 선정했다.

남미의 베켄바우어라 불리던 리베로 피게로아는 인테르나시오나우 소속으로 주립 리그인 캄페오나투 가우초에서 18전 전승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으며 브라질 세리 A에서도 4위에 오르는 활약을 펼치며 브라질 세리 A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특히 1974 서독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발군이었는데 전력이 약했고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플레이오프 상대 소련이 기권하는 행운을 통해 본선에 진출했다고 저평가받는 칠레에서 유일하게 월드클래스의 품격을 선보이며 서독 공격진의 맹공을 막아내며 1-0 패배에 그쳐 소파스코어 기준 평점 8.0점을 받았으며 1무 2패로 탈락한 칠레 대표팀에서도 평균평점 7.9점이라는 높은 평점을 받았으며 에스타디오 선정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이때의 활약으로 생애 첫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것은 덤.

 

공동 6위

 

이름: 그제고시 라토
출생일: 1950년 4월 8일
국적: 폴란드
소속팀: 스탈 마엘레츠


1974년 최고의 선수 공동 6위에 선정된 첫 번째 선수는 게르트 뮐러, 요한 크루이프를 모두 제치고 월드컵 골든슈를 수상한 그제고시 라토를 선정했다.

폴란드 대표팀의 에이스 라토는 클럽에서는 별다른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지만 폴란드 대표팀 소속으로 1974 서독 월드컵에서 출중한 기량을 발휘했음은 물론 디펜딩 챔피언 브라질과의 3.4위전에서 환상적인 골을 득점하며 조국을 3위에 올리는데 크게 공헌했다.

라토는 1974 서독 월드컵 대회 베스트 일레븐을 뽑은 일곱 매체 중 네덜란드 매체인 더 볼크스크란트를 제외한 나머지 여섯 매체에서 모두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공동 6위

 

이름: 요한 네스켄스
출생일: 1951년 9월 15일
국적: 네덜란드
소속팀: AFC 아약스

 

1974년 최고의 선수 공동 6위에 선정된 마지막 선수는 오랑예의 살림꾼으로 활약하면서도 무려 월드컵 득점 2위에게 수여하는 실버슈를 수상한 네스켄스를 선정했다.

소속팀 아약스에서는 크루이프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리그 우승을 페예노르트에게 넘겼지만 네스켄스 개인은 에레데비시 31경기에 출전해 15골을 득점하는 활약을 선보였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도 네덜란드 대표팀의 살림꾼으로 활약하며 5골을 기록하며 월드컵 준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네스켄스는 1974 서독 월드컵 대회 베스트 일레븐을 뽑은 일곱 매체 중 통계업체 캐스트롤 인덱스를 제외한 나머지 여섯 매체에서 모두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5위

 

이름: 파울 브라이트너
출생일: 1951년 9월 5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74년 최고의 선수 5위는 기존의 공격 가담 방식이었던 오버래핑은 물론 중앙으로 침투하는 언더래핑을 병행하며 측면 수비수의 플레이메이킹 및 직접 득점이라는 패러다임을 연 브라이트너를 선정했다.

측면 공격, 중앙 공격 지원, 직접 슈팅의 삼지선다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상대 수비수들을 괴롭혔던 브라이트너는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의 분데스리가 및 유러피언컵 우승에 크게 기여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칠레전과 유고슬라비아전에서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을 터트렸으며 네덜란드와의 결승전에서도 천금 같은 결승골을 터트리며 우승 과정에서 큰 기여를 했다.

브라이트너는 1974 서독 월드컵 대회 베스트 일레븐을 뽑은 일곱 매체 중 4개 매체의 선택을 받았으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1973-74 시즌 후반기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다.

 

 

4위

 

이름: 게르트 뮐러
출생일: 1945년 11월 3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74년 최고의 선수 4위는 중요한 순간에는 날카로운 득점으로 마무리했던 해결사 게르트 뮐러를 선정했다.

지난 두 시즌에 비하면 화력이 다소 줄어들었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1973-74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34경기 30골을 득점하며 유프 하인케스와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고 유러피언 컵에서도 소속팀의 우승을 이끌었음은 물론 득점왕에 올랐는데 그 과정에서 16강에서 만난 디나모 드레스덴과의 1차전 결승골 밑 2차전 동점골, 결승 2차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 멀티골 등 골의 순도도 매우 높았다.

바이에른에서 48경기에 출전해 43골을 득점한 게르트 뮐러는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4골을 득점하며 기대보다는 약한 득점력을 보였지만 결승 진출이 걸린 폴란드전 결승골과 결승전에서 네덜란드를 상대로 역전골과 같은 클러치 능력을 보이며 조국의 월드컵 우승에 크게 기여하며 캐스트롤 인덱스 선정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3위 브론즈볼

 

이름: 카지미에시 데이나
출생일: 1947년 10월 23일
국적: 폴란드
소속팀: 레기아 바르샤바

 

1974년 브론즈볼에는 폴란드 대표팀의 야전사령관으로 자국 축구 역사상 첫 월드컵 3위에 오르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데이나를 선정했다.

소속팀 레기아 바르샤바에서도 35경기에 출전해 12골을 득점한 데이나는 소속팀에서는 무관으로 시즌을 마무리했지만 폴란드 대표팀에서는 출중한 기량을 뽐냈는데 월드컵 기간 내내 찬스메이킹 30회, 리커버리 62회, 인터셉트 25회 미 태클 성공 17회를 보이며 공수 양면으로 훌륭한 활약을 펼치며 조국 폴란드를 3위에 올렸다.

데이나는 1974 서독 월드컵 대회 베스트 일레븐을 뽑은 일곱 매체 중 에스타디오를 제외한 나머지 여섯 매체에서 모두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2위 실버볼

 

이름: 프란츠 베켄바우어
출생일: 1945년 9월 11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74년 실버볼에는 팀의 주장이자 핵심 플레이메이커로 유러피언 컵과 월드컵을 모두 제패하며 진정한 카이저의 자리에 오른 프란츠 베켄바우어를 선정했다.

팀의 주장이자 리베로면서 팀의 제1 플레이메이커인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바이에른 뮌헨의 분데스리가 우승 및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1974년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1974 서독 월드컵에서도 팀의 주장이자 리베로면서 팀의 제1 플레이메이커의 자리를 지킨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팀을 하나로 묶어냈음은 물론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며 월드컵 우승이라는 대업을 세웠으며 당연하게도 베스트 일레븐을 뽑은 모든 매체에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베켄바우어는 이런 대단한 업적에도 개인 기량에서 더 우월한 라이벌에게 골든볼 수상에서 밀려났다.

 

 

1위 골든볼

 

이름: 요한 크루이프
출생일: 1947년 4월 25일
국적: 네덜란드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1974년 골든볼에는 토털 풋볼의 참맛을 전 세계에 보여줬으며 남미의 3대 강호를 모두 압도적으로 물리치는 퍼포먼스를 보이며 축구의 헤게모니를 유럽으로 다시 가져오는데 큰 공을 세운 크루이프를 선정했다.

아약스에서는 이룰 걸 다 이뤄낸 크루이프는 은사 미헬스가 지휘봉을 잡은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해 활약하며 마드리드 클럽의 우승 독주 체제를 끝나며 14년 만에 라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그 과정에서 공식전 38경기에 출전해 24골을 득점하는 활약상을 선보이며 꾸레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1974 서독 월드컵에서도 크루이프는 절정의 기량을 발휘했는데 대회 내내 36회의 찬스 메이킹을 이뤄냈음은 물론 아르헨티나전 멀티골과 브라질전 쐐기골을 포함해 3골 3도움을 기록했으며 소파스코어 기준 평균평점 8.74점을 받으며 대회 평점 1위를 기록했으며 준우승에 머물렀음에도 골든볼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상위 11인 外 최고의 축구선수 최종 노미네이트 19인

페드로 로차 (우루과이 / 상 파울루 FC)
빌리 브렘너 (스코틀랜드 / 리즈 유나이티드)
볼프강 오베라트 (서독 / FC 쾰른)
빌렘 반 하네엄 (네덜란드 / 페예노르트)
제프 마이어 (서독 / FC 바이에른 뮌헨)
유프 하인케스 (서독 /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호베르투 히벨리누 (브라질 / SC 코린치안스)
로베르트 가도하 (폴란드 / 레기아 바르샤바)
브란코 오블락 (유고슬라비아 / 하이두크 스플리트)
롭 렌센블링크 (네덜란드 / 안더레흐트)
아틸리오 안체타 (우루과이 / 그레미우)
루드 크롤 (네덜란드 / AFC 아약스)
우고 소틸 (페루 / FC 바르셀로나)
루이스 페헤이라 (브라질 / 파우메이라스)
울리 회네스 (서독 / FC 바이에른 뮌헨)
페르난도 모레나 (우루과이 / CA 페냐롤)
마리뉴 샤가스 (브라질 / 보타포구)
리카르도 보치니 (아르헨티나 / CA 인디펜디엔테)
호베르투 지나미치 (브라질 / 바스쿠 다 가마)


2. 토르난테 선정 1974년 최고의 축구감독

 

골든 바통

 

이름: 헬무트 쇤
국적: 서독
소속팀: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
주 업적: 1974 서독 월드컵 우승


1974년 최고의 감독에게 수여하는 골든 바통의 주인공은 서독의 헬무트 쇤으로 선정했다.

화려한 스위칭 플레이와 패스워크로 람바참바라 불리는 플레이로 유럽을 제패한 서독은 이번에는 정반대의 카테나치오 컨셉을 바탕으로 남미 3강을 꺾은 네덜란드의 미헬스를 전술로 압도하며 우승했다.

비록 화려함에서는 미헬스에 비해 부족한 면모를 보였지만 정작 미헬스와의 지략 싸움에서 완승을 보인건 다름아닌 헬무트 쇤이었다. 헬무트 쇤은 좌익 축구와 우익 축구의 방식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유연함을 대중들은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도리어 그런 무기야말로 감독이 꼭 지녀야 할 덕목이다.

 

 

실버 바통


이름: 리누스 미헬스
국적: 네덜란드
소속팀: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겸 FC 바르셀로나
주 업적: 1973-74 라리가 우승 및 1974 서독 월드컵 준우승


1974년의 실버 바통은 리누스 미헬스로 선정했다. FC 바르셀로나와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직을 겸직한 리누스 미헬스는 바르셀로나에서 라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카스티야 클럽들의 독주를 끊어냈으며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도 기술 축구로 무장한 남미의 3대 강호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을 테크니컬한 토털 풋볼로 제압했다.

비록 결승전에서는 서독을 뚫지 못했지만 대체로 대회 내내 질타를 받았던 서독보다 경기력적인 측면에서는 더 나은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브론즈 바통

 

이름: 우도 라텍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주 업적: 1973-74 분데스리가 우승, 유러피언 컵 우승

월드컵 결승에서 세기의 대결을 벌인 두 거장에겐 밀렸지만 클럽 감독들 중에서는 단연 최고의 모습을 보인 우도 라텍에게 브론즈 바통을 선정했다.

분데스리가 3연패의 대업을 이뤄낸 라텍은 이번에는 분데스리가에 더해 구단 역사상 첫 유러피언 컵을 차지하며 독일과 유럽을 지배했다. 바이에른이 인터콘티넨탈컵에 불참하면서 남미 챔피언들과 대결하면 어떤 모습을 보일진 모르겠지만 바이에른에게 패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인데펜디엔테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으며 현재 남미에서는 라텍에 견줄만한 전략전술을 가진 감독은 보이지 않는다.

 

상위 3인 外 최고의 축구감독 노미네이트

 

이름: 조크 스타인
국적: 스코틀랜드
소속팀: 셀틱 FC
주 업적: 1973-74 스코틀랜드 풋볼 리그 우승, 스코티시 컵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이름: 하인츠 크루겔
국적: 동독
소속팀: 마그데부르크
주 업적: DDR 오버리가 우승 및 UEFA 컵 위너스컵 우승

이름: 카지미에시 고르스키
국적: 폴란드
소속팀: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주 업적: 1974 서독 월드컵 3위

이름: 톰마소 마에스트렐리
국적: 이탈리아
소속팀: SS 라치오
주 업적: 1973-74 세리에 A 우승

이름: 오스발도 수벨디아
국적: 아르헨티나
소속팀: 산 로렌소
주 업적: 1974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나시오날 우승

이름: 돈 레비
국적: 잉글랜드
소속팀: 리즈 유나이티드 →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주 업적: 1973-74 잉글랜드 풋볼 리그 우승

이름: 발레리 로바노프스키
국적: 소련
소속팀: 디나모 키이우
주 업적: 1974 소련 탑 리그 우승 및 소비에트 컵 우승

 


3. 토르난테 선정 1974년 축구 특별상

 

토르난테 선정 골든 글러브

 

이름: 제프 마이어
출생일: 1944년 2월 28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74년 세계 최고의 골키퍼에게 수여하는 골든 글러브의 주인공으로는 제프 마이어를 선정했다.

유연한 몸놀림과 뛰어난 선방 능력으로 안칭의 고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마이어는 클럽에서는 분데스리가와 유러피언 컵 2관왕을 이뤄냈으며 대표팀에서도 조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을 이뤄냈다.

에스티다오 선정 1974 서독 월드컵 최우수 골키퍼인 제프 마이어는 1973-74 시즌 후반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다.

 

 

토르난테 선정 골든 보이

 

이름: 지쿠
출생일: 1953년 3월 3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플라멩구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4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쉴드

 

이름: 프란츠 베켄바우어
출생일: 1945년 9월 11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4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렌즈

 

이름: 요한 크루이프
출생일: 1947년 4월 25일
국적: 네덜란드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4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에로우

 

이름: 게르트 뮐러
출생일: 1945년 11월 3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4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암밴드

 

이름: 프란츠 베켄바우어
출생일: 1945년 9월 11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74년 최고의 주장에게 수여하는 골든 암밴드의 수상 대상자로 프란츠 베켄바우어를 선정했다.

바이에른과 서독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분데스리가와 유러피언 컵, 그리고 월드컵을 모두 제패한 베켄바우어는 특히 서독 대표팀에서는 바이에른의 선수들과 우승 경쟁 라이벌 구단인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선수들을 잘 융합시킨 공을 세웠으며 묀헨글라트바흐 출신의 베르디 포그츠와 라이너 본호프는 서독 대표팀의 우승 과정에서 결정적인 수훈을 세웠다. 이는 라이벌 네덜란드의 주장 크루이프가 아약스의 라이벌인 PSV 에인트호번 출신의 선수들을 배척한 것과 반대되었으며 이 둘의 승부는 여기서 갈렸다. PSV의 명 골키퍼 얀 반 베버렌이 있었다면 서독을 상대로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지만 이미 그는 배척당한 뒤였다.

이에 포용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차이를 만든 프란츠 베켄바우어가 골든 암밴드를 수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4. 토르난테 선정 1974 Team Of The Year

 

 

골키퍼

 

 

이름: 제프 마이어
출생일: 1944년 2월 28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4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센터백

 

 

이름: 프란츠 베켄바우어
출생일: 1945년 9월 11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4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센터백

 

 

이름: 엘라아스 피게로아
출생일: 1946년 10월 25일 
국적: 칠레
소속팀: SC 인테르나시오나우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4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라이트백

 

 

이름: 베르디 포그츠
출생일: 1946년 12월 30일
국적: 서독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4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레프트백

 

 

이름: 파울 브라이트너
출생일: 1951년 9월 5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4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요한 네스켄스
출생일: 1951년 9월 15일
국적: 네덜란드
소속팀: AFC 아약스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4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지쿠
출생일: 1953년 3월 3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플라멩구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4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카지미에시 데이나
출생일: 1947년 10월 23일
국적: 폴란드
소속팀: 레기아 바르샤바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4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포워드

 

 

이름: 요한 크루이프
출생일: 1947년 4월 25일
국적: 네덜란드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4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포워드

 

 

이름: 게르트 뮐러
출생일: 1945년 11월 3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4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포워드

 

 

이름: 그제고시 라토
출생일: 1950년 4월 8일
국적: 폴란드
소속팀: 스탈 마엘레츠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4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1974 TOTY 베스트 일레븐

 

 


5. Red Archive 선정 1974년 세계 최고의 축구팀

 

1위 골든 팀

 

 

FC 바이에른 뮌헨

성적: 1973-74 분데스리가 우승, 유러피언 컵 우승

독일의 절대 강자 바이에른 뮌헨은 분데스리가와 유로피언 컵을 모두 우승하며 더블을 달성했고 DFB 포칼에서도 준결승에 올랐다. 분데스리가에서 34경기 20승 9무 5패, 95득점 53실점을 기록하였고, 비록 다소 많은 실점을 기록하고 라이벌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게 5-0으로 대패하는 등의 시련도 여러 번 있었지만, 묀헨글라트바흐를 승점 1점 차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유로피언 컵에서는 스페인의 강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는데, 0-0으로 정규 시간이 끝나고 연장전에서 루이스 아라고네스에게 프리킥으로 실점하며 좌절할뻔했으나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베크의 기적 같은 중거리 슈팅으로 동점을 만들어 승부를 재경기까지 끌고 갔다. 재경기에서는 울리 회네스와 게르트 뮐러의 멀티골에 힘입어 4-0으로 대파하고 유럽 챔피언에 등극했다. 

 

 

2위 실버 팀

 

 

FC 바르셀로나

성적: 1973-74 라리가 우승, 코파 델 레이 준우승

리뉘스 미헬스 감독의 거대 프로젝트였던, 바르셀로나에 토탈풋볼의 색채를 입히는 작업이 드디어 빛을 발한 시즌이었다. 미헬스의 페르소나 요한 크라위프, 페루의 크랙 우고 소틸이라는 거물 용병들을 영입하며 공격진의 개인 역량 부족을 해결하며 미헬스의 전술을 성공적으로 구현하였다. 

비록 UEFA 컵에서는 일찍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고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에게 4-0으로 대패하며 준우승에 그치는 등 크라위프가 참가하지 않은 대회에서는 쓴맛을 보았지만, 라 리가에서는 21승 8무 5패, 75득점 24실점으로 무려 승점 50점을 기록하며 2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10점 차로 제치고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9연승을 포함하여 26경기 무패 행진을 달렸고, 그중 레알 마드리드를 원정에서 5-0으로 깨부순 경기가 유명하다.

 

 

3위 브론즈 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성적: 1973-74 라리가 준우승, 유러피언컵 준우승, 1974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라리가에서는 압도적인 페이스의 바르셀로나를 따라잡지 못하며 2위에 그쳤고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에서도 바르셀로나에게 패하며 준결승에서 탈락했지만 스페인을 대표해서 참가한 유로피언 컵에서는 동유럽의 강호들인 갈라타사라이, 디나모 부쿠레슈티, 츠르베나 즈베즈다를 연속으로 꺾었으며 준결승에서는 셀틱을 꺾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을 만났고 루벤 아얄라 등의 몇몇 핵심 선수들이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악재 속에서도 치열하게 맞서 싸웠다. 연장전에서 루이스 아라고네스가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득점하며 고지가 눈 바로 앞까지 다가왔으나, 막판에 집중력을 잃고 한스-게오르크 슈베르첸베크에게 실점하며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결국 재경기에서 4-0으로 대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그래도 바이에른 뮌헨이 인터콘티넨탈 컵을 불참하며 대신 참가하였는데, 여기서 남아메리카의 왕조 인디펜디엔테를 꺾고 우승하며 세계 챔피언의 영광을 누렸다.

 


6. 평가자 소개

 

1. 토르난테


해당 블로그의 주인이자 F.C.U의 회장으로 축구역사 매니아, 중부 유럽과 남부 유럽 그리고 동부 유럽 축구에 관심이 많다.

선수와 감독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전술적 상징성과 최고점에서의 퍼포먼스를 굉장히 중시하는 성향

응원팀: 바이에른 뮌헨, 인테르 밀란, 디나모 키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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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d Archive


F.C.U의 회원으로 축구역사 매니아, 특히 남미 축구에 관심이 많다.

선수와 감독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토르난테에 비해 상징성보다는 어빌리티에서 더 섬세하게 평가하는 성향

응원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CA 인데펜디엔테, 아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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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Archive Football

축구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입니다. 응원팀에 대한 생각도 전합니다. 업로드 주기가 불규칙적이고 느린데, 규칙적이고 빠르게 쓸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

red-archive.tistory.com

 


7. 축사

 

한때 세계 축구계를 주름잡으며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명성을 떨쳤던 펠레가 산투스를 떠나 북미 무대의 뉴욕 코스모스에 입단했습니다.

비록 현재는 북미무대가 현재는 축구계의 불모지로 평가받지만 기본적으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시장인만큼 펠레의 북미행이 세계 축구게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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