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생 베스트 일레븐

연생별 최고의 축구선수/1950년대생

1950년대생 베스트 일레븐

토르난테 2023. 5. 1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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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일은 2023년 5월 14일 기준이며 선수 사진 출처는 플레이어스에서 활약하는 법정스님의 소유님 건조폼

여러 자료들을 검토한 작성자의 주관적인 선정

 


골키퍼

 


이름: 리나트 다사예프
출생일: 1957년 6월 13일
국적: 러시아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1980년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명성을 날렸던 골키퍼로 강력한 펀칭, 적절한 위치선정, 우수한 점프력을 활용한 압도적인 제공권 장악, 적절한 타이밍에 치고 나오는 전진수비에 모두 능했음은 물론 막강한 완력을 바탕으로 공을 멀리 던지며 빌드업에 기여하며 팀 공격의 활로를 개척하기도 했다. 이런 신체적인 부분과 기술적인 부분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강인해 기복도 없었기에 골키퍼로서 모든 능력이 출중했던 완벽한 골키퍼였다.

커리어의 대부분을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서 보냈는데 디나모 키예프가 소련 탑 리그를 독주하던 시절에도 그들의 파상공세를 막아내며 정규리그 2회 우승을 이뤄내며 소련 탑 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 9회 선정 및 1982년 소련 올해의 선수상 수상 및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도 3회 선정되며 1980년대 최고의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고 1988년 IFFHS 선정 월드 베스트 골키퍼로도 선정되었다.

소련 대표팀에서도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압도적인 선방으로 1980 소련 올림픽 동메달을 이뤄낸 것을 시작으로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팀은 2차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지만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주며 축구황제 펠레가 선정한 대회 올스타 팀과 문도 데포르티보를 포함한 4개의 매체로부터 선정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고 유로 1988에서는 소련 대표팀의 결승 진출을 이끌며 그 해 IFFHS 선정 월드 베스트 골키퍼로 선정되기도 했다.

 

센터백

 


이름: 다니엘 파사레야
출생일: 1953년 5월 25일
국적: 아르헨티나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완벽한 수비 능력과 훌륭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 그리고 강력한 킥력을 활용해 득점과 찬스 메이킹마저 담당했으며 173cm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제공권 장악 능력이 오히려 강점에 속하는 만능 디펜더로 남미 축구 역사상 최고의 리베로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리버 플레이트와 피오렌티나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파사레야는 전자의 구단에서는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기리그 4회 우승과 후기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5 시즌과 1979 시즌에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제패했고 1976년에는 35경기 24골이라는 공격수라 해도 믿을 득점력을 보여주며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피오렌티나에서는 마지막 시즌인 1985-86 시즌에는 수비수임에도 무려 11골이나 득점하며 마테라치가 갱신하기 전까지 세리에 A 수비수 시즌 최다골을 기록했으며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세리에 A 외국인 선수 랭킹 2위에 2회 올랐다.

파사레야는 라 알비셀레스테에서도 위대한 주장으로 이름을 남겼는데 다소 논란이 많은 대회지만 주장으로써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의 우승을 차지했고 개인적으로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할 예정이었지만 대회 직전 식중독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벤치로 내려가는 비극을 겪었지만 결과적으로 월드컵 2회 우승이라는 영예를 누렸으며 은퇴 이후 2015년에는 아르헨티나 축구협회 선정 아르헨티나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센터백

 


이름: 가에타노 시레아
출생일: 1953년 5월 25일
국적: 이탈리아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유벤투스의 황금기를 이끈 리베로로 뛰어난 통솔력과 정확한 커버 플레이는 물론 롱패스와 중거리 슈팅 같은 공격적인 재능에도 능했으며 냉정한 성격으로 돌발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팀을 잘 수습했다. 

선수 생활 대부분을 유벤투스에서 보내며 유벤투스 구단 통산 출전 4위에 랭크된 시레아는 트라파토니 체제에서 유벤투스의 리베로를 맡아 구단의 세리에 A 7회 우승과 각 한 차례의 UEFA컵,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유러피언컵을 모두 우승하며 구단 역사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선수가 되었다.

아주리 군단에서도 시레아의 활약은 이어졌는데 팀의 리베로이자 수비라인의 중심으로 활약하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1980 UEFA 유로에서 4위를 기록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탄탄한 수비로 팀의 우승을 이끌었으며 1980 UEFA 유로 팀 오브 더 토너먼트에 들었으며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12위에 랭크되었다.

 

라이트백

 


이름: 만프레트 칼츠
출생일: 1953년 1월 6일
국적: 독일
포지션: 라이트백, 리베로, 레프트백, 라이트윙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197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측면 수비수로 역대 최고의 오른발 크로서로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크로스 실력을 보여 이를 두고 바나나 크로스라 불렸으며 실제로 함부르크와 디 만샤프트에서 칼츠의 크로스와 흐루베쉬의 헤딩은 중요한 공격 루트로 자리 잡았으며 함부르크 통산 100 득점을 넘게 득점했을 정도로 직접 득점에도 대단한 모습을 보여줬다.

함부르크 통산 최다 출전자로 이름을 남긴 칼츠는 디 로토센 군단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분데스리가 3회 우승, DFB포칼 2회 우승은 물론 유럽에서도 컵 위너스 컵 우승과 1981-82 시즌 UEFA컵 결승 진출은 물론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과 1982-83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모두 이뤄냈으며 특히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4강 2차전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5-1 대승을 거두는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원정에서의 2-0 패배를 완벽하게 뒤집기도 했다.

칼츠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보여줬는데 1976 유로에서 백업으로 시작해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잠시 리베로로 활약했으나 1980년대에는 라이트백으로 활약하며 유로 1980 우승과 1982 스페인 월드컵 결승 진출에 공헌했다.

함부르크에서 칼츠는 분데스리가 통산 출전 2위,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 6회 선정은 물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두 번 선정되며 1979년 4위와 1980년 10위를 기록했으며 1976년부터 선정한 옹즈 드 옹즈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도 두 번 선정되며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군림했다.

 

레프트백

 


이름: 파울 브라이트너
출생일: 1951년 9월 5일
국적: 독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레프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독일 축구의 천재 수비수이자 미드필더이며 풍운아로 레프트백 시절부터 이름을 날렸던 활약했던 뛰어난 수비 능력은 물론, 전략가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훌륭한 전술안과 탄탄한 기본기를 겸비했으며 상대방의 허를 찌르며 동료 공격수에게 골 찬스를 제공하는 킬패스와 골문을 직접 노리는 중거리 슈팅은 물론 왕성한 활동량까지 겸비해 그라운드의 넓은 범위에 영향력을 끼쳤던 공수겸장의 완벽한 선수였다.

바이에른 뮌헨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했으며 바이에른 뮌헨 1기 시절에는 분데스리가 3회 우승과 포칼 우승, 그리고 구단 역사상 첫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는 라 리가 2회 우승과 1974-75 시즌에는 코파 델 레이에서도 우승하며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으며 이후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한 뒤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를 거쳐 바이에른 뮌헨으로 돌아가 루메니게와 함께 브라이트니게 조합을 이루며 분데스리가 2연패와 포칼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했으며 특히 1981년에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며 동료 루메니게의 뒤를 이어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에 올랐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유로 1972와 1974 서독 월드컵에서 모두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우승은 물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도 들었으나 이후 독일 축구협회와의 갈등으로 디 만샤프트에 뽑히지 못하다가 1980년 이후에 다시 뽑히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결승 진출에 공헌하며 팀은 결승전에서 패했지만 브라이트너는 결승전에서 만회골을 넣었다.

브라이트너는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영예를 누렸는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6회 선정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 4회 선정, 그리고 1981년 독일 올해의 선수상은 물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6회 선정해 1981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에 올랐으며 은퇴한 이후인 1994년에는 FIFA 월드컵 올타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수상 이력이 화려하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요한 네스켄스
출생일: 1951년 9월 15일
국적: 네덜란드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사이드백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AFC 아약스

또 다른 요한이라 불리며 크루이프를 보좌했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미드필더의 전 지역과 측면 수비수까지 소화할 수 있었던 만능 자원이다. 아약스의 팀 동료이자 윙어인 스바르트는 그는 혼자서 두 명의 몫까지 뛸 수 있었다며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줬다고 증언했다.

아약스와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누린 네스켄스는 1971-72 시즌 트레블을 포함해 에레데비시 3회 우승과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FC  바르셀로나에서는 1977-78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과 1978-79 시즌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5-76 시즌에는 문도 데포르티보 선정 라리가 MVP 및 돈 발롱 선정 라리가 올해의 외국인 선수로 선정되었다.

오랑예 군단의 유니폼을 입고 1974 서독 월드컵과 유로 1976, 그리고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활약했으며 서독 월드컵에서는 크루이프를,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렌센브링크를 보좌하며 팀을 결승에 올려놓았으나 두 대회 모두 다소 논란이 될 판정으로 아쉽게 패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호베르투 파우캉
출생일: 1953년 10월 16일
국적: 브라질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AS 로마

브라질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광활한 시야와 창의적인 두뇌에서 나오는 패스로 경기를 지배했으며 뛰어난 지구력과 볼 컨트롤 능력과 수비스킬, 그리고 다양한 포지션을 무난하게 소화하는 축구 지능까지 겸비한 완벽한 미드필더로 1980년대 상반기를 호령했다.

인테르나시오나우와 AS 로마에서 활약했으며 전자의 클럽에서는 주립 리그 5회 우승과 전국 리그인 브라질 세리 A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후자의 클럽에서는 두 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1982-83 시즌에는 스쿠테토를 따냈고 1983-8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올려놓았는데 이때 파우캉의 활약이 대단해서 로마 팬들은 그를 두고 로마의 여덟 번째 왕이라 불렀다. 

셀레상에서도 그의 활약은 이어져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지쿠, 소크라치스, 세레주와 함께 황금의 사중주로 불리며 그들을 훌륭하게 보좌하며 뛰어난 경기력을 보였다. 이러한 활약을 팬들에게 인정받아 2차 리그에서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1982 스페인 월드컵 실버볼과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파우캉은 브라질 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1978년과 1979년에는 브라질 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1979년에는 남미 올해의 선수 3위, 1982년에는 옹즈도르 3위, 그리고 1983년에는 옹즈도르 2위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고 은퇴 이후에는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미셸 플라티니
출생일: 1955년 6월 21일
국적: 프랑스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80년대 상반기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발롱도르 3회 연속 수상을 기록하며 남미의 지쿠, 디에고 마라도나에 대한 유럽의 대답이라 불렸다. 드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하는 플레이메이킹은 일품이었으며 경기가 안 풀릴 때에는 3선 지역까지 내려가서 볼을 순환시켰다. 그리고 전방에서 동료들과 연계하며 많은 득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훌륭한 킥력을 바탕으로 하는 롱패스는 당대를 넘어 역대에서도 최고라 할 만했다.

셍테티엔과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전자의 클럽에서는 프랑스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후자의 클럽에서는 두 번의 세리에 A 우승과 한 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그리고 1983-8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을 우승했으며 1984-85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을 우승하며 유벤투스 역사상 최초의 빅 이어 달성에 큰 공을 세우며 대회 득점왕에 올랐으며 단 5년만 활약하고도 유벤투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반드시 거론될 정도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이러한 대단한 활약이 레 블뢰에서도 이어졌는데 티가나, 지레스, 루이 페르난데스와 함께 마법의 사각형이라 불리는 중원 조합을 구성해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6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4강에 진출했으며 유로 1984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유로 1984에서의 활약이 일품이었는데 경기에 끼치는 영향력이 대단했음은 물론 단일대회 5경기 9골을 기록하며 2021년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경신할 때까지 유로 역대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렸었다. 호날두가 다섯 대회에서 득점을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다섯 경기에서 9골이나 득점한 플라티니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 수 있다. 이때의 활약으로 당연하게도 1984년 발롱도르를 수상한다.

플라티니는 개인적으로도 1983년과 1985년에 발롱도르와 옹즈도르를 3년 연속으로 수상했으며 1984년과 1985년에는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지쿠
출생일: 1953년 3월 3일
국적: 브라질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포워드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플라멩구

1980년대 상반기를 수놓은 당대 최고의 선수이자 공격형 미드필더로 탄탄한 기본기와 교묘한 드리블, 창의적인 패싱 스킬과 양발 슈팅 스킬을 겸비했으며 스트라이커들을 초월하는 득점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프리킥에 능해 프리킥 통산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전성기의 대부분을 플라멩구에서 보낸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 지쿠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7회 우승과 브라질 전국리그인 세리 A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개인적으로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득점왕 5회, 브라질 전국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으며 1981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 1차전에서 멀티골을 넣어 2-1 승리를 이뤄냈으며 1승 1패 상황 최종전에서도 멀티골을 넣으며 2-0으로 승리하는데 크게 기여해 우승은 물론 대회 MVP를 수상했으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붉은 제국이라 불리는 리버풀을 3-0으로 완파하며 대회 MVP를 수상했다. 유럽 무대 도전을 위해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우디네세로 이적해 활약하며 1983-84 시즌 올해의 선수에 올랐으나 향수병으로 다시 플라멩구로 돌아갔으며 말년에는 J 리그에서 새로운 도전을 했다.

셀레상에서는 개인은 훌륭했지만 팀 성적은 아쉬웠는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와 페루의 승부조작 의혹으로 2차 조별리그 2위로 밀려나 3위의 성적에 만족해야 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본인은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활약을 보이고도 이탈리아에게 역전패하며 아쉽게 탈락했다.

지쿠는 개인적으로도 1977년, 1981년, 1982년 세 차례나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1983년에는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은퇴 이후에는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포워드

 


이름: 케빈 키건
출생일: 1951년 2월 14일
국적: 잉글랜드
포지션: 포워드,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1970년대 하반기 유럽 최고의 축구 선수로 체격은 작았으나 단단한 근육질 몸매로 몸싸움을 잘했으며 공격수로서 부족함이 없는 만능 공격수였으며 우수한 헤더와 득점력은 물론 천재적인 플레이메이킹 능력마저 겸비했다.

리버풀과 함부르크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잉글랜드에 머무는 동안 풋볼 리그 3회 우승과 1976-77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개인적으로도 PFA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고 1975-76 시즌에는 FW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1977년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2위에 오르며 명실상부 당대 잉글랜드 프로축구무대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함부르크에서는 1978-79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과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에 크게 공헌했으며 세 시즌 간 머물면서 세 시즌 모두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여섯 번의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네 번이나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고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간 뒤에도 사우스햄튼에서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며 1981-82 시즌 PFA 올해의 팀과 올해의 선수에 동시에 선정되었다.

삼사자 군단에서는 유로 1980과 1982 스페인 월드컵에 참가했지만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준 키건이지만 상술했던 클럽에서의 엄청난 커리어로 인해 발롱도르를 2년 연속으로 수상했으며 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는 4회 선정되었으며 은퇴한 이후에는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포워드

 


이름: 칼하인츠 루메니게
출생일: 1955년 9월 25일
국적: 독일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8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피지컬 활용 능력과 드리블, 슈팅, 헤더 모두 우수했으며 공격수로서 결점이 없는 완벽한 공격수임과 동시에 우수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겸비한 완성형 선수였으며 독일의 펠레라 불리며 80년대 유럽 축구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1970년대 황금기 막바지부터 활약했으며 암흑기를 거치며 다시 돌아온 브라이트너와 함께 브라이트니게 시대를 이끌며 분데스리가와 DFB포칼을 각각 두 번 우승했으며 유러피언 컵에서도 2회 우승과 1회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80-81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도 올랐고 이후 인테르 밀란으로 이적한 뒤에도 세리에 A 정상급 선수로 활약했다.

디 만샤프트에서는 1978 멕시코 월드컵에 처음 주전으로 출전했으며 유로 1980에서 차원이 다른 기량을 보여주며 핵심 선수로 우승해 발롱도르를 획득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부상을 달고 뛰었음에도 5골이나 기록하며 월드컵 준우승과 브론즈 볼을 수상하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팀을 결승에 올려놓았다.

루메니게는 키커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7회 선정되었으며 옹즈 몽디알이 선정한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월드 베스트 일레븐 5회 선정,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8회 선정 및 옹즈도르 2회 수상의 영예를 누렸다.

 

감독

 


이름: 카를로 안첼로티
출생일: 1959년 6월 10일
국적: 이탈리아
감독 부임기간: 1995~
주 소속팀: AC 밀란
현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선수 시절에도 이탈리아 대표팀 주전 멤버로 활약했던 명선수 출신으로 스승 사키와는 다르게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선수단을 품었으며 미드필더에 관한 용병술이 특히 대단해 피를로를 포백 앞 레지스타로 포텐을 터트렸으며 이에 부족한 수비력을 가투소의 메짤라 기용으로 채워냈다. 그리고 앙헬 디 마리아, 토니 크로스, 루카 모드리치, 티아고 알칸타라 등은 모두 그를 거치며 한 단계 성장해 시대를 대표하는 미드필더로 이름을 날렸다.

이탈리아 대표팀 수석 코치로 시작해 레지나와 파르마에서 좋은 성과를 보내 유벤투스 감독으로 기용되었으나 무관을 명분으로 경질당한 뒤 AC 밀란의 감독을 맡아 2002-03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유벤투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3-04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2006-07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첼시에서는 2009-10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FA컵 우승을, PSG에서는 2012-13 시즌 리그앙 우승을,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2016-17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2013-14 시즌 코파 델 레이와 챔피언스리그 더블을 이뤄냈으며 2021-22 시즌에 다시 돌아와 라 리가와 챔피언스리그 더블을 이뤄냈다.

비록 백업 멤버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으며 바이에른 뮌헨과 나폴리에서는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유럽 5대 리그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했으며 챔피언스리그 4회 우승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내며 총 25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냈고 크고 작은 감독상을 19회나 수상했다.

 


베스트 일레븐

 

1950년대생 올스타팀 베스트 일레븐

 


Golden Player

 

미셸 플라티니

 

 

Silver Player

 

지쿠

 

 

Bronze Player

 

칼하인츠 루메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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