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연생별 최고의 축구선수/1950년대생

1953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토르난테 2023. 5. 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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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일은 2023년 5월 1일 기준이며 선수 사진 출처는 플레이어스에서 활약하는 법정스님의 소유님 건조폼

여러 자료들을 검토한 작성자의 주관적인 평가.


5위 만프레트 칼츠

 


생일: 1월 6일
국적: 독일
포지션: 라이트백, 리베로, 레프트백, 라이트윙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2회 (1979, 1980)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79년 4위

 

197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측면 수비수로 역대 최고의 오른발 크로서로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크로스 실력을 보여 이를 두고 바나나 크로스라 불렸으며 실제로 함부르크와 디 만샤프트에서 칼츠의 크로스와 흐루베쉬의 헤딩은 중요한 공격 루트로 자리 잡았으며 함부르크 통산 100 득점을 넘게 득점했을 정도로 직접 득점에도 대단한 모습을 보여줬다.

함부르크 통산 최다 출전자로 이름을 남긴 칼츠는 디 로토센 군단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분데스리가 3회 우승, DFB포칼 2회 우승은 물론 유럽에서도 컵 위너스 컵 우승과 1981-82 시즌 UEFA컵 결승 진출은 물론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과 1982-83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모두 이뤄냈으며 특히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4강 2차전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5-1 대승을 거두는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원정에서의 2-0 패배를 완벽하게 뒤집기도 했다.

칼츠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보여줬는데 1976 유로에서 백업으로 시작해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잠시 리베로로 활약했으나 1980년대에는 라이트백으로 활약하며 유로 1980 우승과 1982 스페인 월드컵 결승 진출에 공헌했다.

함부르크에서 칼츠는 분데스리가 통산 출전 2위,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 6회 선정은 물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두 번 선정되며 1979년 4위와 1980년 10위를 기록했으며 1976년부터 선정한 옹즈 드 옹즈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도 두 번 선정되며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군림했다.

 

4위 가에타노 시레아

 


생일: 5월 25일
국적: 이탈리아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1회 (1982)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82년 12위

 

유벤투스의 황금기를 이끈 리베로로 뛰어난 통솔력과 정확한 커버 플레이는 물론 롱패스와 중거리 슈팅 같은 공격적인 재능에도 능했으며 냉정한 성격으로 돌발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팀을 잘 수습했다. 

선수 생활 대부분을 유벤투스에서 보내며 유벤투스 구단 통산 출전 4위에 랭크된 시레아는 트라파토니 체제에서 유벤투스의 리베로를 맡아 구단의 세리에 A 7회 우승과 각 한 차례의 UEFA컵,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유러피언컵을 모두 우승하며 구단 역사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선수가 되었다.

아주리 군단에서도 시레아의 활약은 이어졌는데 팀의 리베로이자 수비라인의 중심으로 활약하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1980 UEFA 유로에서 4위를 기록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탄탄한 수비로 팀의 우승을 이끌었으며 1980 UEFA 유로 팀 오브 더 토너먼트에 들었으며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12위에 랭크되었다.

 

 

3위 다니엘 파사레야

 

 

생일: 5월 25일
국적: 아르헨티나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남미 올해의 선수상 Top 10: 6회 (1976, 1978, 1979, 1980, 1981, 1982)
남미 올해의 선수상 최고 성적: 1978년 4위

 

완벽한 수비 능력과 훌륭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 그리고 강력한 킥력을 활용해 득점과 찬스 메이킹마저 담당했으며 173cm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제공권 장악 능력이 오히려 강점에 속하는 만능 디펜더로 남미 축구 역사상 최고의 리베로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리버 플레이트와 피오렌티나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파사레야는 전자의 구단에서는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기리그 4회 우승과 후기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5 시즌과 1979 시즌에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제패했고 1976년에는 35경기 24골이라는 공격수라 해도 믿을 득점력을 보여주며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피오렌티나에서는 마지막 시즌인 1985-86 시즌에는 수비수임에도 무려 11골이나 득점하며 마테라치가 갱신하기 전까지 세리에 A 수비수 시즌 최다골을 기록했으며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세리에 A 외국인 선수 랭킹 2위에 2회 올랐다.

파사레야는 라 알비셀레스테에서도 위대한 주장으로 이름을 남겼는데 다소 논란이 많은 대회지만 주장으로써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의 우승을 차지했고 개인적으로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할 예정이었지만 대회 직전 식중독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벤치로 내려가는 비극을 겪었지만 결과적으로 월드컵 2회 우승이라는 영예를 누렸으며 은퇴 이후 2015년에는 아르헨티나 축구협회 선정 아르헨티나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2위 호베르투 파우캉

 


생일: 10월 16일
국적: 브라질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AS 로마

남미 올해의 선수상 Top 10: 3회 (1979, 1981, 1982)
남미 올해의 선수상 최고 성적: 1982년 2위

브라질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광활한 시야와 창의적인 두뇌에서 나오는 패스로 경기를 지배했으며 뛰어난 지구력과 볼 컨트롤 능력과 수비스킬, 그리고 다양한 포지션을 무난하게 소화하는 축구 지능까지 겸비한 완벽한 미드필더로 1980년대 상반기를 호령했다.

인테르나시오나우와 AS 로마에서 활약했으며 전자의 클럽에서는 주립 리그 5회 우승과 전국 리그인 브라질 세리 A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후자의 클럽에서는 두 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1982-83 시즌에는 스쿠테토를 따냈고 1983-8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올려놓았는데 이때 파우캉의 활약이 대단해서 로마 팬들은 그를 두고 로마의 여덟 번째 왕이라 불렀다. 

셀레상에서도 그의 활약은 이어져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지쿠, 소크라치스, 세레주와 함께 황금의 사중주로 불리며 그들을 훌륭하게 보좌하며 뛰어난 경기력을 보였다. 이러한 활약을 팬들에게 인정받아 2차 리그에서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1982 스페인 월드컵 실버볼과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파우캉은 브라질 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1978년과 1979년에는 브라질 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1979년에는 남미 올해의 선수 3위, 1982년에는 옹즈도르 3위, 그리고 1983년에는 옹즈도르 2위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고 은퇴 이후에는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위 지쿠

 


생일: 3월 3일
국적: 브라질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포워드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플라멩구

남미 올해의 선수상 Top 10: 6회 (1976, 1979, 1980, 1981, 1982, 1985)
남미 올해의 선수상 최고 성적: 1위 3회 (1977, 1981, 1982)

 

1980년대 상반기를 수놓은 당대 최고의 선수이자 공격형 미드필더로 탄탄한 기본기와 교묘한 드리블, 창의적인 패싱 스킬과 양발 슈팅 스킬을 겸비했으며 스트라이커들을 초월하는 득점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프리킥에 능해 프리킥 통산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전성기의 대부분을 플라멩구에서 보낸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 지쿠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7회 우승과 브라질 전국리그인 세리 A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개인적으로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득점왕 5회, 브라질 전국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고 1981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 1차전에서 멀티골을 넣어 2-1 승리했는데 1승 1패 상황 최종전에서도 멀티골을 넣으며 2-0으로 승리하는데 크게 기여해 우승은 물론 대회 MVP를 수상했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붉은 제국이라 불리는 리버풀을 3-0으로 완파하며 대회 MVP를 수상했다. 유럽 무대 도전을 위해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우디네세로 이적해 활약하며 1983-84 시즌 올해의 선수에 올랐으나 향수병으로 다시 플라멩구로 돌아갔으며 말년에는 J리그에서 새로운 도전을 했다.

셀레상에서는 개인은 훌륭했지만 팀 성적은 아쉬웠는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와 페루의 승부조작 의혹으로 2차 조별리그 2위로 밀려나 3위의 성적에 만족해야 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본인은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활약을 보이고도 이탈리아에게 역전패하며 아쉽게 탈락했다.

지쿠는 개인적으로도 1977년, 1981년, 1982년 세 차례나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1983년에는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은퇴 이후에는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선외 명단

한스 크란클

그레이엄 수네스

레네 오우세만

클라우디오 젠틸레

장마리 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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