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루브 나시오날 (Club Nacional)
창단: 1899년 5월 14일
소속리그: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연고지: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홈구장: 그란 파르케 센트랄
프리메라 디비시온: 49회 우승
토르네로 데 아더/파 데 아너: 24회 우승
토르네오 컴페텐시아/코파 컴피텐시아 : 21회 우승
토르네오 쿼드라굴라르: 8회 우승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회 우승 (1971, 1980, 1988)
코파 인터아메리카나: 2회 우승 (1971, 1988)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1회 우승 (1988)
코파 알다오: 6회 우승
인터컨티넨탈컵: 3회 우승 (1971, 1980, 1988)
베스트 11
골키퍼

이름: 아니발 파스
출생년도: 1917년 5월 21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76cm
활약 기간: 1939-1953
통산 기록: 469경기
1940년대와 50년대 초반 우루과이 무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날렵한 반사신경은 물론 용수철과 같은 점프력을 바탕으로 공중볼 경합에서 장점을 보여줬다.
클루브 나시오날 통산 출전 2위에 랭크되었으며 출전한 경기에서 72%의 승률을 기록한 아니발 파스는 트리콜로리스에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9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20회 우승을 경험했으며 아르헨티나 챔피언과의 슈퍼컵인 코파 알다오에서 3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센터백

이름: 호세 나사치
출생년도: 1901년 5월 24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5kg
활약 기간: 1933–1937
통산 기록: 111경기 10골
우루과이를 넘어 축구 역사에서도 최고의 수비수 반열에 있는 선수로 당시로서는 굉장한 거구로 압도적인 힘과 영리한 위치 선정으로 상대 공격수를 잡아먹었다. 그의 튼튼한 수비력에 우루과이의 유명한 소설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X선조차 그의 수비를 뚫지 못할 것이라는 찬사를 보냈으며 리더십도 뛰어나 위대한 사령관이라 불렸다.
우루과이 대표팀의 주장으로 초대 월드컵 우승을 포함해 다수의 국제대회 우승을 이뤄낸 나사치는 전성기는 베야 비스타에서 보냈으며 말년에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도밍구스 다 기아와 함께 신성한 마스터라는 수비라인을 이끌며 1933년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과 캄페오나투 캄페텐시아 더블 우승을 이뤄내는 활약을 포함해 우루과이 무대에서 총 4회 우승을 이뤄냈다.
나사치의 맹활약으로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엄청난 영향력을 자랑한다는 지표를 보여줬는데 특히 1932 시즌에 베야 비스타는 리그에서 35실점을 기록하던 베야 비스타가 호세 나사치가 떠난 1933 시즌엔 무려 61실점과 리그 꼴찌를 기록하며 무너졌던 반면 클루브 나시오날은 1932년에 리그 3위와 34실점을 기록했지만 나사치가 이적한 1933년에는 리그 우승은 물론 27경기에서 고작 10실점만 기록하는 탄탄한 팀으로 변모한다.
센터백

이름: 호세 산타마리아
출생년도: 1947-1957
포지션: 센터백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47-1957
통산 기록: 291경기 11골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적인 수비수로 유명했지만 클루브 나시오날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보여줬던 산타마리아는 벽이라고 불릴 정도로 압도적인 대인 수비 능력과 헤딩 클리어링을 자랑했으며 특히 머리로 멀리 쳐낸 공이 전방의 동료에게 오차 없이 떨어지는 묘기를 보였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산타마리아는 트리콜로리스에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10번의 우승 트로피를 수집하는 활약을 펼치며 1950년대 남미무대 최고의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다.
라이트백

이름: 슈베르트 감베타
출생년도: 1920년 4월 14일
포지션: 라이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레프트백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8kg
활약 기간: 1940–1948, 1950–1956
통산 기록: 342경기 43골
1940년대와 50년대에 이름을 날린 라이트 풀백 겸 라이트 하프로 우수한 대인 방어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마킹맨을 놓치지 않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신출귀몰한 움직임으로 인해 원숭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오늘날의 포백 시스템의 오른쪽 측면 수비수 역할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선수 생활 대부분을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보낸 감베타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10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 무대에서 20회의 공식전 우승을 이뤄냈으며 1940년과 1946년에는 아르헨티나 챔피언과의 슈퍼컵 코파 알다오에서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여담으로 감베타는 1949년에 잠시 막대한 투자로 엘도라도라 불렸던 콜롬비아 리그의 쿠쿠타 데포르티보에서 활약하며 많은 돈을 벌기도 했다. 물론 1년 만에 다시 돌아와서 우루과이 대표팀에서 월드컵 우승을 포함해 클럽에서도 상술했던 영광을 누렸다.
레프트백

이름: 알프레도 포글리노
출생년도: 1892년 2월 1일
포지션: 센터백, 레프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미상
활약 기간: 1911-1925
통산 기록: 416경기 5골
우루과이 축구 태동기에 활약했던 수비수로 2-3-5 시스템의 레프트 풀백 또는 레프트 하프로 주로 활약했으며 우수한 대인 수비 능력과 강력한 카리스마로 팀을 아울렀다고 전해지며 철저한 자기 관리 능력으로 10여 년간 대표팀 주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선수 생활의 전부를 클루브 나시오날에서만 보냈으며 구단 통산 출전 8위에 랭크된 포글리노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시비온 9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외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24개의 우승 트로피를 수집했으며 특히 1915년에는 5관왕을 이뤄내며 클루브 나시오날이 우루과이의 명문으로 도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중앙 미드필더

이름: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
출생년도: 1901년 11월 22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라이트백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활약 기간: 1924–1930
통산 기록: 105경기 6골
당대 최고의 하프백이자 역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선수로 엄청난 운동능력과 넓은 시야, 그리고 탄탄한 기본기를 겸비했으며 이를 활용해 중원과 오른쪽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보여준 라이트 하프였으며 오늘날 다니 아우베스나 마르셀루, 주앙 칸셀루가 보여주는 플레이와 유사한 플레이를 이미 100년 전에 보여줬던 시대를 앞서나간 플레이를 하며 경이로운 흑인이라 불렸다.
오래 머물진 않았지만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개인 커리어의 최전성기를 누린 안드라데는 1924년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이뤄냈으며 다양한 친선 대회에서 우승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안드라데는 대표팀과 나시오날에서 보여준 활약을 바탕으로 사후 1988년에는 이탈리아 축구연맹 선정 축구사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99년에는 IFFHS 선정 20세기 남미 최고의 축구선수 8위 및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29위에 선정되었고 2017년에는 독일의 베를린브리츠 선정 1920년대 최고의 선수 1위에 선정되었다.
중앙 미드필더

이름: 일도 마네이로
출생년도: 1947년 8월 4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65–1973
통산 기록: 324경기 43골
1960년대와 70년대 우루과이 무대를 풍미했던 미드필더로 명민한 원터치플레이와 양발을 고루 활용한 빠른 패스를 통해 중원을 지휘하는 중원사령관이었으며 높은 수준의 테크닉과 민첩한 몸놀림을 바탕으로 한 탈압박에도 능했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데뷔해 곧바로 주전자리를 차지해 활약한 마네이로는 트리콜로리스에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1971년에는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코파 인터아메리카,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모두 우승하며 아메리카와 세계 무대를 평정하고 쿼트레블을 이뤄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라이트윙

이름: 루이스 쿠비야
출생년도: 1940년 3월 28일
포지션: 라이트윙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0kg
활약 기간: 1969-1974
통산 기록: 249경기 64골
팬들로부터 괴물이라 불렸던 1960년대 최고의 윙어 중 하나로 손꼽히며 빠른 스피드와 화려한 발재간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 돌파에 능했으며 신체밸런스가 우수해 상대의 견제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았으며 뛰어난 양발 사용 능력을 바탕으로 오른발과 왼발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슈팅력을 자랑했던 선수였다.
초년에는 페냐롤의 남미 무대 및 세계 무대 평정을 도왔던 쿠비야는 유럽의 바르셀로나와 아르헨티나의 리버 플레이트에서 활약하다가 고국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클루브 나시오날로 이적해 활약하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71년에는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코파 인터아메리카,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모두 우승하며 아메리카와 세계 무대를 평정하고 쿼트레블을 이뤄내는데 큰 역할을 하며 트리콜로리스에서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레프트윙

이름: 앙헬 로마노
출생년도: 1893년 8월 2일
포지션: 포워드, 레프트윙 외 골키퍼 포함 모든 포지션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10, 1914~1930
통산 기록: 388경기 163골
1910년대와 20년대 우루과이의 황금기를 이끈 핵심 선수 중 한 명으로 드리블과 찬스 메이킹에 능했으며 주 포지션은 인사이드 레프트 및 아웃사이드 레프트였지만 골키퍼를 포함해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을 정도로 다재다능했으며 축구라는 스포르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던 천재적인 토탈 플레이어였다.
클루브 나시오날 통산 득점 5위에 랭크된 로마노는 스카로네와 함께 트리콜로리스의 공격을 이끌며 1915년 5관왕을 포함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8회, 코파 데 아너 우승 3회, 그리고 코파 데 캄페텐시아 4회 우승, 그리고 아르헨티나 챔피언과의 슈퍼컵인 코파 알다오 3회 우승을 포함해 도합 24회의 크고 작은 공식전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끈 핵심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포워드

이름: 엑토르 스카로네
출생년도: 1898년 11월 26일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16~1931, 1934~1939
통산 기록: 391경기 293골
브라질엔 펠레와 호나우두, 아르헨티나엔 마라도나와 메시가 있다면 우루과이엔 스카로네가 있었다. 인사이드 포워드에게 필요한 모든 덕목에서 우수했으며 특히 골 결정력과 동료들을 활용하는 플레이가 일품이었기에 1920년대 최고의 인사이드 포워드로 이름을 날렸으며 마법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클루브 나시오날 통산 득점 2위에 랭크된 스카로네는 로마노와 함께 트리콜로리스의 공격을 이끌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8회 우승과 아르헨티나 챔피언과의 슈퍼컵인 코파 알다오 3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외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도합 22개의 우승 트로피를 따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누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여담으로 스카로네는 부업으로 집배원을 하기도 했으며 1926-27 시즌에는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로 임대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열 살 터울의 친형 카를로스 스카로네 역시 엑토르에 앞서 활약하며 클루브 나시오날의 전성기를 이끌기도 했다.
스트라이커

이름: 아틸리오 가르시아
출생년도: 1914년 8월 26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6cm
활약 기간: 1938-1951
통산 기록: 441경기 466골
클루브 나시오날의 게르트 뮐러라고 불릴만한 스트라이커로 뛰어난 테크틱과 적절한 위치선정에 이어 높은 수준의 테크닉과 정확성을 겸비한 슈팅을 바탕으로 골 넣는 것을 주머니 속에 물건 빼듯이 쉽게 했다.
클루브 나시오날 구단 통산 최다 득점 및 통산 출전 6위에 랭크된 가르시아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8회 우승과 아르헨티나 챔피언과의 슈퍼컵 코파 알다오 3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외의 크고 작은 공식 대회에서 22회의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을 무려 8회 차지하며 리그 역사상 가장 많이 득점왕을 수상한 선수로 기록되었다.
득점왕뿐만이 아니라 우루과이 클라시코에서도 35골을 기록하며 페냐롤과 클루브 나시오날 양 팀을 합쳐서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하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잡이에 오른 가르시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클루브 나시오날 구단은 홈구장인 에스타디오 그란 파르케 센트럴에 그의 이름을 딴 아틸리오 세페리노 가르시아 스탠드를 만들기도 했다.
감독

이름: 와싱톤 에차멘디
출생년도: 1921년 3월 2일
부임기간: 1968, 1970~1972
남미 축구 역사상 단일 시즌 최강의 팀 중 하나로 손꼽히는 1971년의 클루브 나시오날을 이끈 사령관으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연패를 이뤄내며 라이벌 페냐롤의 독주 체제를 종식시켰다.
특히 1971년에는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차지하며 대회 4연패를 노리는 에스투디안테스를 잡고 우승을 차지하며 남미 무대를 평정했고 코파 인터 아메리카에서는 북중미 챔피언 크루스 아슬을 상대로 2경기 합 3-2 승리를 거두며 아메리카 챔피언으로 올라섰고 인터콘티넬탈컵에서는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낸 파나티나이코스마저 꺾고 쿼트러블을 이뤄내며 세계 무대를 평정했으며 한 해 44전 27승 14무 3패라는 전적을 기록했다.

25인 스쿼드 / 서브 14인

이름: 안드레스 마살리
출생년도: 1902년 7월 22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2kg
활약 기간: 1919-1930
통산 기록: 270경기 12골
1920년대 우루과이 축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슛 스토퍼로 키가 매우 작았으나 번뜩이는 다이빙 능력으로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훌륭하게 보완했으며 이런 플레이스타일 때문에 팬들로부터 다이버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클럽 커리어의 전부를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이어나간 원 클럽맨이었던 마샬리는 트리콜로리스에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1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19년과 1920년에는 아르헨티나 챔피언과의 슈퍼컵이었던 코파 알다오에서 보카 주니어스를 2년 연속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아니발 파스, 루돌포 로드리게스와 함께 클루브 나시오날 3대 골키퍼로 칭송받았던 마살리는 골키퍼였음에도 때때로 센터 포워드로 출전하기도 했으며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공식 경기 12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름: 루돌포 로드리게스
출생년도: 1956년 1월 20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90kg
활약 기간: 1976-1983
통산 기록: 360경기
1970년대 후방부터 80년대 중반까지 남미 정상급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던 선수로 큰 키와 긴 팔다리, 그리고 높은 점프력을 잘 활용했으며 1대 1 상황에서 침착하게 전진하며 거리를 좁히는 능력도 훌륭했으며 이런 능력을 보여줘 사람들에게 표범이라 불렸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첫 전성기를 맞은 루돌포 로드리게스는 트리콜로리스에 머무는 동안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80년에는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내며 트레블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고 이를 인정받아 그 해 남미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9위에 랭크되었다.

이름: 우고 데 레온
출생년도: 1958년 2월 27일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0kg
활약 기간: 1977-1980, 1988-1989, 1992-1993
통산 기록: 204경기 7골
1980년대 하반기 남미 최고의 리베로로 큰 키와 강건한 어깨를 활용한 몸싸움과 거친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를 직접 저지하는 부분에도 능했으며 우수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과 적절한 커버 플레이는 물론 공격 진영으로 볼을 운반하며 빌드업에도 크게 기여했던 공수 만능의 리베로였다.
자국 최고의 명문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데뷔한 데 레온은 클루브 나시오날 1기 시절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80년에는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다.
이후 브라질의 그레미우에서 활약하다 돌아온 뒤에 1988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재차 이뤄냈으며 이어서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코파 인터아메리카컵을 모두 우승하며 아메리카 통합 챔피언에 올랐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유럽 무대에서 트레블을 이뤄낸 PSV 아인트호벤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우며 그해 남미 올해의 선수상 투표애서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며 1992년에는 개인 통산 세 번째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에밀리오 알바레스
출생년도: 1939년 2월 10일
포지션: 센터백, 레프트백
신체조건: 미상
활약 기간: 1959–1970
통산 기록: 502경기 9골
1960년대 클루브 나시오날의 수비를 이끌던 왼발잡이 센터백으로 강력한 몸싸움 능력을 바탕으로 대인 마킹에 능했으며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레프트백도 볼 수 있었다.
클루브 나시오날 통산 최다 출전자인 알바레스는 라이벌 페냐롤이 황금기를 이루는 상황에서도 분전하며 11년간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외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21회의 우승을 차지하는데 공헌했다.

이름: 루이스 우비냐
출생년도: 1940년 6월 7일
포지션: 라이트백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7kg
활약 기간: 1967-1974
통산 기록: 259경기 4골
1960년대 하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라이트백으로 뛰어난 지구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압박해 괴롭혔으며 반 박자 빠른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견제하는데 능한 수비적인 풀백이었으나 적절한 오버래핑을 통한 공격력도 겸비했으며 주장으로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다.
중견 클럽 람플라 주니오르스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한 우비냐는 클루브 나시오날로 이적한 뒤에는 우루과이 프리미어 디비시온 4회 우승을 이뤄내며 페냐롤의 독주 체제를 종식시켰으며 특히 1971년에는 팀의 주장을 맡아 리그는 물론 코파 아메리카와 코파 인터아메리카, 그리고 인터컨티넨탈컵을 모두 제패하며 쿼트레블을 이뤄냈다.
루이스 우비냐는 1967년에는 로 스포르트 일루스트라토지 선정 남미 베스트 일레븐 및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이름: 후안 무히카
출생년도: 1943년 12월 22일
포지션: 레프트백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67–1971
통산 기록: 267경기 48골
1960년대와 70년대 남미 무대 정상급 레프트백으로 한혈마를 연상시키는 강력한 지구력과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왼쪽 측면 전 지역을 아우르며 공수 양면에서 큰 영향력을 끼쳤는데 특히 공격적인 부분에서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주며 창의적인 드리블과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로 공격 찬스를 만들었으며 가끔은 중앙으로 침투해 직접 슈팅을 날리기도 했는데 실제로 측면 수비수라는 포지션을 감안하면 득점력이 매우 좋았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전성기를 보낸 무히카는 동료 루이스 우비냐와 함께 정상급 측면 수비 라인을 구축하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을 이뤄냈고 1971년에는 리그 우승에 이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코파 인터아메리카,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아메리카와 세계 무대를 평정하고 쿼트레블을 이뤄냈으며 이후에는 프랑스 무대에서 유럽 무대에 도전했다.

이름: 훌리오 몬테로 카스티요
출생년도: 1944년 4월 25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66-1973, 1976-1978
통산 기록: 462경기 24골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한 수비수 파울로 몬테로의 아버지로 아들의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었을 정도로 저돌적이고 강인한 플레이에 능했으며 엄청난 지구력과 강력한 대인 마킹으로 상대를 지워냈으며 이런 거친 플레이스타일에 더해 과묵하고 딱딱한 성격으로 인해 벙어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클루브 나시오날 통산 출전 3위에 랭크된 카스티요는 트리콜로리스에 머무는 동안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1971년에는 우루과이 무대 제패를 시작으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으로 남미를 평정했고 인터 아메리카컵에서 아메리카 통합 챔피언에 올랐으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우승하며 세계 무대를 정복하고 쿼트레블을 달성했고 1972년에는 뛰어난 퍼포먼스로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5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름: 알프레도 지베치
출생년도: 1894년 10월 30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미상
활약 기간: 1917-1924
통산 기록: 222경기 33골
1910년대 후반부터 20년대 중반까지 활약했던 하프백으로 광활한 시야와 높은 수준의 테크닉을 바탕으로 상대와의 중원 싸움에서 우위를 점했으며 하프백치고는 득점력도 제법 뛰어났음은 물론 강력한 카리스마에서 나오는 리더십을 바탕으로 주장으로서 라커룸을 장악하는 임무도 훌륭하게 수행했으며 팬들로부터 인기가 많아 아이돌이라 불렸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활약하는 동안 1915년 친코 코파스를 비롯해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과 아르헨티나 챔피언과의 슈퍼컵 코파 알다오 2회 우승을 포함해 15개의 공식전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클루브 나시오날이 남미를 대표하는 명문으로 올라서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름: 산토스 우르디나란
출생년도: 1900년 3월 30일
포지션: 라이트윙, 스트라이커,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8kg
활약 기간: 1919–1933
통산 기록: 321경기 122골
1920년대 우루과이 축구의 전성시대를 이끈 다재다능한 공격수로 주 포지션은 아웃사이드 라이트이지만 공격 진영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으며 빠른 스피드와 정교한 패스 및 슈팅은 물론 기술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선수로 전해진다.
선수 생활 전부를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보낸 원 클럽맨 우르디나란은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과 코파 컴페텐시아 3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1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아르헨티나 챔피언과의 슈퍼컵인 코파 알다오에서도 보카 주니어스만 2년 연속으로 잡고 우승을 이뤄내는 활약을 보여주며 다양한 포지션에서 클루브 나시오날의 황금기를 이뤄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름: 빅토르 에스파라고
출생년도: 1944년 10월 6일
포지션: 레프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66–1973
통산 기록: 411경기 58골
1970년대 우루과이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전술이해도가 높고 다재다능한 선수였는데 주 포지션인 양 측면 윙어는 물론 공격형 미드필더와 중앙 미드필더, 그리고 스트라이커까지 막힘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클루브 나시오날 구단 통산 출전 10위에 랭크된 에스파라고는 트리콜로리스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코파 인터아메리카,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모두 우승하며 아메리카와 세계 무대를 평정하고 쿼트레블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큰 역할을 했다.

이름: 로베르토 포르타
출생년도: 1913년 6월 7일
포지션: 포워드, 윙어,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66cm / 몸무게 60kg
활약 기간: 1930–1931, 1936–1946
통산 기록: 316경기 138골
1930년대 우루과이 무대를 빛낸 인사이드 레프트로 창의적이면서 민첩한 몸놀림을 활용한 드리블과 날카로운 킬패스를 사정없이 뿌리며 득점 찬스를 만들어내는 플레이메이커였으며 특유의 다재다능함과 높은 수준의 전술안을 토대로 주 포지션 인사이드 레프트 이외에도 공격 진영의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전성기를 보낸 포르타는 아니발 치오카와 함께 인사이드 포워드 라인을 구성해 활약하며 트리콜로리스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과 코파 알다오 2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외의 크고 작은 공식 대회에서 17번의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포르타는 중간에 아르헨티나의 인디펜디엔테와 이탈리아의 인테르 밀란에서도 활약했으며 1935년에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 먼저 승선했으나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돌아오며 우루과이 대표팀에 승선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름: 아니발 치오카
출생년도: 1915년 7월 23일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2kg
활약 기간: 1931-1946
통산 기록: 353경기 154골
1930년대 우루과이 무대를 빛낸 인사이드 라이트로 창의적인 개인기와 탄탄한 기본기를 겸비해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제침은 물론 날카로운 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내는 플레이메이커였으며 우아한 플레이로 클루브 나시오날의 팬들에게 왕자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으며 득점력도 준수했다.
몬테비데오 원더러스에서 데뷔했지만 데뷔 시즌을 제외하면 선수 커리어를 전부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보낸 치오카는 로베르토 포르타와 함께 인사이드 포워드 라인을 구성해 활약하며 트리콜로리스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8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 무대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17회의 우승을 경험했으며 1940년에는 아르헨티나 챔피언과의 슈퍼컵인 코파 알다오에서 보카 주니어스를 상대로 우승을 이뤄냈고 클루브 나시오날 구단 통산 득점 랭킹 6위에 랭크되었다.

이름: 페드로 페르토네
출생년도: 1905년 5월 11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24–1931, 1933–1934
통산 기록: 128경기 148골
1920년대 세계 최고의 골잡이로 포병이라 불렸을 정도로 막강한 슈팅력의 소유자로 20년대 최고의 센터 포워드로 이름을 날렸으며 슈팅력 이외에도 당시의 센터 포워드들과는 달리 드물게 후방으로 내려와 인사이드 포워드들과 연계 플레이에도 능숙했던 선구자였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스카로네, 로마노 등과 호흡을 맞추며 제1의 전성기를 누리며 구단 통산 득점 랭킹 9위에 오른 페르토네는 1924년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포함해 친선전 포함 6개 대회에서 우승을 이뤄냈으며 피오렌티나로 떠났다가 돌아온 뒤인 1933년에도 정규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맹활약했다.
경기당 1골 이상을 득점하는 괴력을 발휘하는 파르토네를 두고 공격 파트너인 엑토르 스카로네는 그를 두고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페르토네에게 공을 넘기고 코트 중앙을 바라보기만 하면 골입니다."

이름: 엑토르 카스트로
출생년도: 1904년 11월 29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9kg
활약 기간: 1923–1932, 1933–1936
통산 기록: 242경기 146골
유년 시절, 전기톱을 다루다 사고로 오른손을 잃어 외팔이라 불렸던 포워드로 한쪽 손이 없었음에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엄청난 반응속도와 적절한 위치선정을 바탕으로 빙 공간에 침투해 득점하기 쉬운 찬스를 잡는데 능했으며 인사이드 포워드들과의 연계 플레이에도 능했으며 이 부분에서는 선구자 페트로네보다도 뛰어났기에 1930 초대 월드컵에서는 페트로네를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데뷔해 활약하며 중간에 1년 동안 에스투디안테스를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나시오날에서 보냈는데 초년에는 페드로 페르토네의 백업에 머물렀지만 그와 주전 경쟁을 이기며 주전을 차지해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포함해 비공식전 초함 13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1933년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챔피언 결정전은 상당히 유명한데 페냐롤과의 경기에서 상대 페냐롤이 다소 논란이 있는 골을 득점하며 결승골이 되었고 나시오날의 선수들은 이를 격렬하게 항의하다 호세 나사치를 포함해 세 명이 심판 폭행으로 퇴장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고 결국 70분에 경기가 중단되고 말았으며 두 달간의 심의 끝에 우루과이 축구 협회는 그 골을 무효로 선언했고 심판 폭행 역시 무효로 처리하며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에서 재경기를 치렀고 무승부로 끝났는데 3차전에서는 카스트로의 해트트릭으로 우승팀을 결정지었다.
25인 스쿼드 완성판

클루브 나시오날 역대 올스타 리저브 팀 11인

이름: 로베르토 소사
출생년도: 1935년 6월 14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79cm
활약 기간: 1953-1967
통산 기록: 383경기
1950년대 하반기와 60년대 상반기에 우루과이 대표팀의 골문을 지켰던 수문장으로 우수한 위치선정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수비라인 조율, 그리고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골문을 수호했다.
라이벌 페냐롤의 황금기에도 그들의 영입 제안을 거절하고 전성기를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보낸 소사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 무대에서 19개의 크고 작은 우승 트로피를 들었으며 특히 1965-66 시즌에는 18경기에서 6실점만을 기록하는 철벽 수비를 보여주며 우승에 공헌했고 남미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보여주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회 준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아틸리오 안체타
출생년도: 1948년 7월 19일
포지션: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8kg
활약 기간: 1965–1971, 1982-1983
통산 기록: 226경기 7골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상반기 남미 최고의 스토퍼 중 한 명으로 빠른 스피드와 악착같은 대인 수비로 상대 공격수를 막아냈으며 용수철 같은 점프력을 통한 제공권 경합에서도 항상 우위를 점했으며 발밑마저 우수했던 완벽한 수비수였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한 안체타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연패를 이뤄내며 라이벌 페냐롤의 전성기를 끊어냈으며 특히 1971년에는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도 이뤄냈다. 이후 팀을 떠나 브라질 무대에서 활약하다 1982년에 다시 클루브 나시오날로 돌아와 말년을 보내며 은퇴했다.

이름: 라울 피니
출생년도: 1923년 6월 2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0kg
활약 기간: 1942-1950, 1954
통산 기록: 257경기 1골
1940년대 우루과이 축구계에서 이름을 날린 수비수로 2-3-5 시스템의 라이트 풀백에서 주로 활약했는데 그의 경기를 본 모든 사람들은 피니를 두고 수비수임에도 최고 수준의 공격수에 뒤지지 않는 테크닉과 수비수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섬세한 볼 컨트롤로 볼을 잘 다뤘다고 평가했다.
1940년대 클루브 나시오날의 수비를 이끈 피니는 감베타와 함께 수비라인을 이끌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과 1946 코파 알다오 우승을 포함해 국내외의 크고 작은 공식 대회에서 12회 우승을 차지하는데 공헌했으나 1950년 막대한 투자로 엘도라도라 불리던 콜롬비아 리그의 부자 구단 미요나리오스로 이적해 디 스테파노, 네스트로 로시 등과 함께 활약하기도 했으며 말년에는 페루 리그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이름: 에우세비오 테헤라
출생년도: 1922년 1월 6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레프트백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2kg
활약 기간: 1945-1950
통산 기록: 153경기 1골
1940년대와 50년대 남미 축구를 대표하는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강인해 불굴의 전사라 불렸으며 강인한 투지와 용감한 수비력, 그리고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은 물론 우수한 위치선정 및 수비라인 조율 능력과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수비라인의 넓은 지역을 커버할 수 있었으며 패싱력이 우수해 남미 무대 최초의 스위퍼롤 수비수로 활약했다고도 전해지며 심지어는 팔 힘도 좋아 스로인 상황에서 전방으로 멀리 던지며 아군의 공격을 돕기도 했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전성기를 누린 테헤라는 트리콜로리스에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외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정규리그와 아르헨티나 우승팀과 겨루는 슈퍼컵인 코파 알다오를 포함해 총 10개의 우승컵을 들었다.

이름: 에우제니오 갈발리시
출생년도: 1915년 11월 15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신체조건: 미상
활약 기간: 1938–1949
통산 기록: 281경기 7골
1940년대 우루과이 축구계에서 이름을 날린 센터 하프로 양 풀백과 윙 하프의 연결 고리를 맡으며 수비라인의 리더로 활약했으며 상대의 패스 흐름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지능적인 인터셉트와 정교한 패싱력으로 빌드업에 기여하는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40년대 클루브 나시오날의 약진을 이끈 갈발리시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과 코파 데 아너에서 각각 일곱 번 우승했으며 아르헨티나 챔피언과의 슈퍼컵인 코파 알다오에서도 3회 우승을 이뤄내는 등 국내외의 크고 작은 공식대회에서 21회의 우승을 이뤄내는데 기여했다.

이름: 호세 반치노
출생년도: 1893년 5월 12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라이트백, 레프트백
신체조건: 미상
활약 기간: 1912–1930
통산 기록: 419경기 5골
1910년대와 20년대 우루과이 축구의 태동기 및 황금기에 활약했던 하프백으로 양발을 모두 잘 써 2-3-5 시스템의 양쪽 윙 하프를 모두 소화할 수 있었으며 헌신적인 수비 가담과 폭넓은 활동량과 안정적인 패스로 볼을 운반하는 부분에 능했다.
클루브 나시오날 구단 통산 출전 7위에 랭크된 반치노는 트리콜로리스의 중원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9회 우승과 아르헨티나 챔피언과의 슈퍼컵 코파 알다오 3회 우승을 포함해 총 32개의 크고 작은 공식대회에서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15년에는 5관왕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우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이름: 하비에르 암브로이스
출생년도: 1932년 5월 9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7kg
활약 기간: 1950–1954, 1955–1957
통산 기록: 202경기 107골
1950년대 중후반 남미 축구 무대 정상급 플레이메이커로 키는 작았지만 다부진 체격으로 상대 수비의 몸싸움에 쉽게 흔들리지 않았으며 높은 수준의 테크닉과 정밀도 높은 패스, 그리고 강력한 슈팅을 바탕으로 팀의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았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데뷔해 월드컵 챔피언 훌리오 페레스와 함께 2선 라인을 맡아 팀의 공격을 이끌며 트리콜로리스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외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총 11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암브로이스가 뛴 경기에서 클루브 나시오날은 72%의 승률을 기록했다.

이름: 파스쿠알 솜마
출생년도: 1896년 2월 7일
포지션: 라이트윙
신체조건: 미상
활약 기간: 1911, 1915-1924, 1926-1927
통산 기록: 344경기 63골
1910년대와 20년대에 걸쳐 우루과이 축구의 중흥기의 기초를 닦은 선수로 2-3-5 시스템의 아웃사이드 레프트에서 활약하며 팀의 측면 공격을 이끌었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전성기를 누린 솜마는 정규리그 8회 우승과 아르헨티나 챔피언과의 슈퍼컵인 코파 알다오에서도 3회 우승을 이뤄낸 솜마는 국내외의 크고 작은 공식 트로피를 25개나 수집하며 클루브 나시오날 구단의 황금기를 이뤄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름: 소일로 살돔비데
출생년도: 1903년 10월 26일
포지션: 레프트윙, 라이트윙
신체조건: 미상
활약 기간: 1927-1934
통산 기록: 166경기 45골
1920년대 전성기를 맞이한 양발잡이 아웃사이드 포워드로 양쪽 측면을 모두 완벽하게 소화했으며 엄청난 가속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따돌리며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다.
우루과이 대표팀의 주역으로 활약하던 살돔비데는 중견팀 몬테비데오 원더러스에서 리그 최고의 클럽인 클루브 나시오날로 이적해 활약하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과 여러 국제 친선전을 포함해 총 아홉 번의 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페드로 세아
출생년도: 1900년 9월 1일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29–1934
통산 기록: 105경기 35골
1920년대 중후반과 1930년대 초반 남미 무대 최고의 인사이드 레프트로 우수한 볼 테크닉을 활용한 교묘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교란시키는데 능했다.
전성기는 중소 구단인 센트럴 아틀레티코 리토에서 보낸 세아는 우승에 대한 열망으로 1929년 클루브 나시오날로 이적해 활약하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2연패를 이뤄낸 것을 포함해 다수의 친선 대회에서 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루이스 아르티메
출생년도: 1938년 12월 2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69–1974
통산 기록: 183경기 152골
1960년대 남미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맹수라 불렸을 만큼 동물적인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강력한 몸싸움과 빠른 스피드, 용수철 같은 점프력을 겸비했으며 재빠른 반응속도를 활용한 라인 브레이킹과 반 박자 빠른 슈팅에 능한 득점기계였다.
아르헨티나 무대와 브라질 무대에서 모두 리그 우승을 이뤄낸 아르티메는 1969년 클루브 나시오날로 이적하며 우루과이 무대에 도전장을 냈는데 뛰어난 득점력을 보여주며 1969년부터 1971년까지 리그 3연패 및 3회 연속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는 활약을 보여줬으며 특히 1971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코파 인터 아메리카,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을 모두 제패하며 쿼트레블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아르티메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 마지막 골을 포함해 10골로 득점왕에 올랐으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팀이 기록한 세 골을 모두 득점하며 대회 최우수 선수로 평가받는 활약을 펼쳤다.
클루브 나시오날에 한정해서는 짧지만 굵은 활약을 펼친 아르티메는 1971년에 공식전 31경기 29골을 기록하는 우수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3위에 올랐다.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클루브 나시오날의 기록은 atilio.uy 의 기록을 참조했습니다.
*기록 기준은 2023년 2월 23일 기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