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국적의 선수를 성적의 기반으로 삼아 정점에 오른 독일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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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국적의 선수를 성적의 기반으로 삼아 정점에 오른 독일 구단

토르난테 2020. 5. 3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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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데스리가를 떨게 한 잉글랜드인들

 

분데스리가 26경기 14골 17도움, 맨체스터 시티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한 한 유망주가 이번 시즌 5월 30일 19시 기준으로 기록하고 있는 개인 스텟이다.

제이든 산초

이 선수의 이름은 제이든 산초다. 2000년 생으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유니폼을 입고 팀의 에이스로 맹활약하고 있으며 1억 유로가 넘는 이적료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의 이적설이 돌고 있는 특급 윙어이다.

보통 잉글랜드 선수들은 해외 리그에서 활약이 많지 않은 편이며 특히 분데스리가에서는 세리에나 라 리가에 비해서도 잉글랜드 출신의 선수들이 이적을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산초 이전에 북독의 함부르크에서 뛰며 두 번의 발롱도르를 탄 잉글랜드인이 있었다. 그 이름은 바로 케빈 키건이다.

케빈 키건

키건은 리버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명성을 떨쳤으며 1976-77 시즌에는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과 유러피언 컵을 모두 우승하며 더블을 달성했으며 키건은 총 56경기에 출장해 20골을 넣으며 잉글랜드와 유럽을 정복했으며 새로운 도전을 위해 독일의 함부르크로 떠난다.

 

"키건이 왔을 때 함부르크의 위대한 시대가 시작됐다" - 펠릭스 마가트

 

키건이 처음 함부르크에 왔을 때는 독일 무대 적응에 어려움을 느끼며 리그 25경기 6골과 통산 33경기 12골로 부진했으며 팀도 리그 10위에 불과했으며 동료들과 소통이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키건이 독일 적응을 마치고 새 감독으로 바이에른 뮌헨의 첫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룬 브란코 제베츠 감독이 사령탑으로 부임하고 나서는 팀 상황이 달라졌다.

1978-79 시즌 함부르크는 측면 공격을 사이드 백이 주도했으며 측면 공격수들은 중앙으로 이동했다.

1860 뮌헨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인 지미 하트빅과 레프트 백인 베른트 베마이어를 영입했으며 로트바이트 에센에서는 타깃 스트라이커인 호어스트 흐루베쉬를 영입하며 4-3-3 전술을 채택한 제베츠는 키건과 칼츠의 오른쪽의 강점을 두는 전술을 사용했다. 칼츠가 측면 지역에서 오버래핑을 하면 키건은 중앙으로 돌아가 공격을 지휘했다. 그리고 칼츠나 키건의 크로스는 헤딩의 달인이라 불리던 스트라이커 호어스트 흐루베쉬의 머리를 주로 노렸다.

레프트 윙 포워드를 맡은 빌리 라이만은 사실상 중앙에서 활동했으며 그 빈 자리를 메머링이 커버하여 측면 공격을 지원했으며 레프트 백 하이든과 번갈아가며 왼쪽에서 중앙으로 공격을 지원했다.

중원은 하트빅이 포백 보호를 맡았으며 마가트와 메머링이 메짤라 위치에서 왕성한 활동량으로 상대 중원을 견제했으며 리베로인 노이글리와 스토퍼인 불리안은 중앙 수비를 형성했으며 불리안은 세트피스 상황에서 득점을 함으로써 팀을 도왔으며 분데스리가 정상급 수문장 카르구스가 골문을 지키고 있었다.

메짤라들의 왕성한 활동량과 키건과 칼츠라는 오른쪽의 파괴력 있는 라인을 활용한 제베츠의 함부르크는 상대 왼쪽 지역을 초토화시켰으며 함부르크 구단은 분데스리가 출범 후 첫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루었으며 키건은 1978년과 1979년 모두 발롱도르를 획득하며 유럽 최고의 선수로 성장한다.

리그 우승 셀레브레이션을 하는 제베츠 감독, 케빈 키건, 만프레트 칼츠

1979-80 시즌도 치열한 우승 경쟁을 했으나 브라이트니게로 재편한 바이에른 뮌헨에게 밀려 아쉽게 준우승을 했다. 바이에른 뮌헨과의 치열한 우승 경쟁은 요즘의 데어 클라시코와 유사한 남북 더비라는 이름으로 불렸었다.

그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에서도 선전했는데 16강에서 소련 리그 챔피언 디나모 트빌리시를 무찌르고 8강에서는 하이두크 스플리트를, 4강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원정에서 2-0 패배를 극복하고 칼츠와 흐루베쉬의 멀티골과 메머링의 추가골로 5-1로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는 디펜딩 챔피언이자 명장 브라이언 클러프가 이끌던 노팅엄 포레스트를 만났으나 1-0으로 아쉽게 패하고 무관으로 시즌을 마친다.

설상가상으로 키건은 향수병에 걸려 세 시즌만에 함부르크를 떠났다. 베켄바우어를 영입했으나 이 무렵에는 30대 중반의 노장이었다. 그 외 골키퍼 카르구스를 울리 슈타인으로 대체하였다.

함부르크의 기틀을 다진 감독 브란코 제베츠

이 무렵에 함부르크는 키건이 떠난 것 이상으로 큰 문제가 일어났는데 감독인 제베츠도 알코올 중독 초기 증세를 보이며 경기장 벤치에서 조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그리고 선수들에게 하프타임에 "0-2, 졌어! 그러나 상관없어, 다음 경기에서 승리를 하면 되니까!"라는 괴상한 말을 남겼으며 12월에 경질되었다. 그리고 함부르크는 바이에른 뮌헨에게 밀리며 2위로 시즌을 마감한다.

그리고 함부르크는 승부수로 스탕다르 리에주를 이끌던 우승 청부사 에른스트 하펠을 감독으로 영입한다.

 

빅 이어를 들며 유럽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다.

 

에른스트 하펠은 라스 바스트루프 이외에 큰 영입 없이 시즌을 시작했으나 전술을 데어발의 독일 대표팀을 본받아 포 백에서 스리 백으로 바꾼다.

1981-82 시즌에 쾰른과 바이에른 뮌헨을 따돌리고 마이스터 샬레를 드는 데 성공한다. 특히 바이에른 뮌헨과의 남북 더비에서 홈에서는 4-1로 대승을 거두고 원정에서는 4-3으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홈에서 북독의 라이벌 베르더 브레멘을 5-0으로 대파했다.

칼츠에게 지시하는 에른스트 하펠

포르투나 쾰른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롤프를 영입한 함부르크는 1982-83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우승은 물론이고 유러피언 컵에서도 올림피아코스, 디나모 키예프, 레알 소시에다드를 연파하고 결승에서 유벤투스를 만났다.

유벤투스를 상대로도 결승전에서 마가트의 선제골을 잘 지켜 우승에 성공했다.

이 시즌 함부르크를 분석해보자면 마가트와 본 헤센이 지키는 공격형 미드필더 라인이 중심이 되며 측면은 윙백인 칼츠와 베마이어가 맡는다.

1982-83 시즌 함부르크

양 측면에서 지원하는 크로스는 장신 스트라이커 흐루베쉬의 머리를 노렸으며 마가트와 본 헤센의 패스는 상대 수비라인을 돌파하는 위르겐 밀레프스키에게 정확히 전달된다. 물론 마가트나 본 헤센은 직접 슈팅에도 상당히 능한 선수들이었다.

이 마가트와 본 헤센을 뒤에서 보호하는 신입생 볼프강 롤프는 왕성한 활동량으로 공격에 무게중심이 쏠린 함부르크 선수진들의 균형을 잡아줬으며 스리 백은 젊은 리베로 하이로니무스를 중심으로 노련한 야콥스와 위르겐 그로가 상대 공격수를 방어한다. 골문은 슈타인이 지킨다.

빅 이어를 들고 우승 셀레브레이션을 하는 함부르크 선수단

스리 백이 튼튼히 지키고 양 측면이 공격과 수비를 모두 하며 측면을 장악하며 많은 선수들을 중앙에 투입한 이런 3-5-2는 훗날 베켄바우어의 전술에도 큰 영향을 줬으며 베켄바우어는 이 전술을 변형해서 1990 월드컵에서 우승하기도 한다.

하펠은 케빈 키건의 이탈이라는 구단의 시련을 넘어서 새로운 트렌드를 한층 더 팀에 맞게 융화시키며 함부르크를 1982-83 시즌 유럽의 지배자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인위경 (以人爲鏡)

 

'사람으로서 거울을 삼는다’는 뜻으로 훌륭한 품행을 지닌 사람을 본받는다는 말이다.

사람은 아니지만 이 구단을 거울로 삼아야 할 분데스리가 구단이 있다.

바로 산초 이적설에 시달리며 독일 내에서 바이에른 뮌헨의 경쟁자 역할을 하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다.

산초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핵심 선수고 분데스리가 최고의 윙어이다. 하지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키건을 보내고도 유럽을 정복한 함부르크를 본받아서 산초가 이탈하더라도 이를 극복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훌륭한 명장을 데려와야 한다. 루시앵 파브레는 피터 보츠 체제에서 무너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어느 정도 재건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더 큰 야망을 위해서는 더 훌륭한 감독을 데려올 필요가 있다.

각자 다른 이유로 팀을 떠날 것 같은 산초와 파브레 감독

물론 현재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는 에른스트 하펠 정도 되는 레벨의 감독을 데려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파브레가 최선이라고 보기도 어려워 보인다. 분명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더 좋은 감독을 데려올 역량이 있는 팀이다.

도르트문트 구단은 이 시절의 함부르크의 키건과 제베츠를 거울삼아 산초의 이탈에 대비하고 파브레의 다음 감독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산초를 잡을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일 테지만 말이다.

잉글랜드 국적 선수로 분데스리가를 빛낸 케빈 키건과 제이든 산초

박수용의 토르난테 - 동네 축덕 아저씨의 축구 썰
관리자 박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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