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 Top 20

국가의 영웅들/브라질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 Top 20

토르난테 2022. 9. 1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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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브라질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2년 9월 17일 기준입니다.

 


20위 페르난지뉴

 


생년월일: 1985년 5월 4일
A매치 기록: 53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공수 양면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우수한 전술안과 공간 지각 능력에 안정적인 패싱력을 겸비했으며 본인보다 덩치가 큰 선수와 붙어도 크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공중볼 경합 능력과 발밑 능력도 우수해 드리블로 공격에도 기여해서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 펩 과르디올라는 "만약 팀에 페르난지뉴 3명이 있다면 우승도 가능하다."라고 평가했다. 

샤흐타르 도네츠크에서 우크라이나 프리미어리그 6회 우승과 우크라이난 컵 3회 우승, 그리고 2008-09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2007-08 시즌에는 우크라이나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명성을 쌓은 페르난지뉴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본격적인 전성기를 누리며 2018-19 시즌 도메스틱 트레블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5회 우승과 리그컵 6회 우승을 이뤄냈고 2020-21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공을 세웠으며 개인적으로도 2018-19 시즌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다만 셀레상에서는 다소 아쉬운 활약을 펼쳤는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준결승에 올랐지만 준결승전에서 부진하며 독일에게 1-7로 패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8강에 그쳤으나 그래도 2019 코파 아메리카 우승에 기여하며 최소한의 명예 회복은 했다.

 

19위 지우베르투 시우바

 


생년월일: 1976년 10월 7일
A매치 기록: 93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2000년대 축구판에 이름을 날린 수비형 미드필더로 막강한 지구력을 바탕으로 끈질긴 대인 수비 능력과 넓은 범위의 수비 커버 능력을 보여줬으며 3선의 넓은 지역과 두 명의 센터백 사이를 기가 막히게 지켜냈다.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활약하다가 한일 월드컵 이후 아스날로 이적해 활약하며 비에이라와 함께 중원을 조합해 2003-04 시즌 프리미어리그 무패 우승과 FA컵 2회 우승, 그리고 2005-06 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큰 공을 세운 지우베르투 실바는 비에이라가 떠난 이후에는 세스크 파브레가스와의 조합도 강력했으나 노쇠화로 인해 아스날에서 밀려났다. 말년에는 파나티나이코스로 이적해 2009-10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으며 그레미우를 거쳐 다시 아틀레치쿠 미네이루로 이적해 2013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다.

지우베르투 시우바는 셀레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아 2002 한일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2005 컨페드컵과 2007 코파 아메리카, 그리고 2009 컨페드컵에서 우승했으나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지나치게 공격적인 전술 문제로 인해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8위 카르피지아니

 


생년월일: 1949년 2월 7일
A매치 기록: 30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SC 인테르나시오나우

 

1970년대 브라질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중원 사령관으로 높은 수준의 전술안으로 경기의 흐름을 탁월하게 읽어냈으며 정교하면서도 창의적인 숏패스와 롱패스를 적재적소에 사용했으며 위협적인 양발 슈팅 능력과 유려한 볼 컨트롤은 물론 스피드도 빠른데다가 수비력도 뛰어나 신속정확한 예측력과 특유의 센스로 상대의 패스 흐름을 끊고 경기의 주도권을 아군 쪽으로 가져오는 지능적인 수비가 돋보이는 육각형 미드필더였다.

인테르나시오나우와 플라멩구에서 활약한 카르피지아니는 전자의 구단에서는 엘리아스 피게로아와 합을 맞춰 캄페오나투 가우초 2회 우승과 브라질 전국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플라멩구로 이적한 뒤에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회 우승과 브라질 세리 A 1회 우승을 이뤄내며 화려하게 은퇴했다. 은퇴 직후에 감독으로 임명되어 팀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1974 서독 월드컵 명단에 발탁되었는데 원래는 피아짜의 백업 역할을 맡을 예정이었지만 피아짜가 첫 경기에서 부상을 당하자 주전으로 활약하며 팀을 4위로 올렸다.

 

 

17위 제 호베르투

 


생년월일: 1974년 7월 6일
A매치 기록: 84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90년대부터 2010년대에 걸쳐 유럽 무대와 남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리던 브라질리언 윙어이자 중앙 미드필더로 경탄할만한 자기 관리 능력을 바탕으로 왕성한 활동량과 타고난 운동능력은 물론 뛰어난 볼 컨트롤 능력과 헌신적인 수비력은 물론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던 축구 지능을 앞세워 활약했으며 엄청난 자기관리의 화신으로 최상의 몸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탄산 음료와 패스트푸드를 일절 먹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포르투게사에서 데뷔해 레알 마드리드에 도전했으나 주전 경쟁에서 레버쿠젠으로 이적한 제 호베르투는 2001-02 시즌 팀의 트리플 러너업을 이뤄냈으며 이때의 활약을 높게 평가받아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고 바이에른에서는 측면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소화하며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4회 더블 우승을 이뤄내는 수훈갑을 새웠고 제 호베르투 개인도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다.

셀레상에서는 1997 코파 아메리카와 1997 컨페드컵에서도 모두 우승을 차지했으나 1998 프랑스 월듵컵에서는 벤치에 앉았다. 절치부심한 제호베르투는 1999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주전으로 도약해 셀레상의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스콜라리의 비선호로 인해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출중한 폼을 보여줬음에도 선발되지 못했고 스콜라리가 떠난 이후에 다시 소집되어 2005 컨페드컵 우승과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주전 멤버로 활약했는데 팀은 8강에서 탈락했지만 제 호베르투는 대회 올스타 스쿼드에 선정되며 활약을 인정받았다.

 

 

16위 알레망

 


생년월일: 1961년 11월 22일
A매치 기록: 39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SSC 나폴리

 

본명은 히카르두 호제리우 지 브리투로 외모가 독일계와 닮아 독일인을 뜻하는 알레망이라 불렸던 선수로 1980년대 하반기와 1990년대 초반 브라질을 대표하는 중앙 미드필더로 강력한 스테미너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워 넓은 지역에 영향을 끼쳤으며 안정적인 패스와 헌신적인 태클로 팀을 도왔다.

보타포구에서 이름을 날리며 1985년 브라질 전국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알레망은 유럽 무대에 도전했는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1987-88 시즌 한 시즌 머물렀지만 라리가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했다. 이후 나폴리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리며 바니의 뒤를 이어 페르테노페이의 중원을 책임지며 1988-89 시즌 UEFA컵 우승과 1989-90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을 세웠다.

셀레상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한 알레망은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데뷔해 198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주전 미드필더로 나섰으나 여러 불운이 겹치며 16강에 그쳤다.

 

15위 두두

 

 

생년월일: 1939년 11월 7일
A매치 기록: 13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3kg
주 소속팀: 파우메이라스

 

파우메이라스의 홈구장인 알리안츠 파르키 외곽에 흉상이 조각되어 있는 전설적인 선수로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는데 일반적인 브라질 축구선수와 다르게 기술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으나 적극적인 수비와 왕성한 활동량으로 팀의 궂은일을 맡으며 중원의 넓은 지역에서 볼을 소유하는데 도움을 줬기에 공의 노동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펠레의 산투스가 이름을 날리던 시절 파우메이라스에서 산투스와 치열한 라이벌리를 구성한 두두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3회 우승 및 브라질 전국리그 5회 우승이라는 대업적을 남겼는데 이때 팀의 플레이메이커 아데미르 다 기아는 그를 두고 "Carregador de Piano" 즉 피아노 운반자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아무리 훌륭한 실력을 가진 연주자라도 공연장에 피아노를 가져다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뜻이었다.

 

 

14위 이메르송

 


생년월일: 1976년 4월 4일
A매치 기록: 73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AS 로마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정상급 앵커맨이자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왕성한 활동량을 통해 경기장 넓은 지역에 영향을 끼쳤으며 상대 공격의 흐름을 끊는 훌륭한 인터셉트와 볼 탈취 후 빠르게 역습으로 전환하는 능력이 마치 퓨마와 같다고 해서 퓨마라고 불렸다.

그레미우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세리에 A 우승을 이끈 뒤 유럽에 진출해 레버쿠젠 시절에는 키커 랑리스테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던 이메르송은 전성기인 AS 로마 시절에는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시즌이라 불리는 2000-01 시즌에 로마의 세리에 A 우승을 확정지었으며 이후 유벤투스와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활약했다.

화려한 클럽 커리어에 비해 셀레상에서의 활약은 다소 아쉬운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선 둥가와 삼파이우 조합을 넘지 못해 벤치에 앉았으며 2002 한일 월드컵은 부상으로 결장했으며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199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주전으로 나와 셀레상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13위 클로두아우두

 


생년월일: 1949년 9월 25일
A매치 기록: 38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FC 산투스

 

1970년대 브라질을 빛낸 수비형 미드필더로 수비형 미드필더의 기본적인 역할은 물론 당대 정상급 윙어들에도 견줄 수 있는 뛰어난 드리블 기술을 활용한 적극적인 공격 가담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산투스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주로 나오며 500경기가 넘는 공식 경기에 출전했으며 주립 리그인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5회 우승과 1968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대표팀이라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해 중앙 미드필더 제르송과 중원 조합을 이뤄서 활약했는데 이들의 압도적인 중원 장악 능력은 예선과 본선에서 전승으로 우승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12위 윌송 피아짜

 


생년월일: 1943년 2월 25일
A매치 기록: 51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크루제이루

 

1970년대 브라질 축구계를 풍미한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리베로이며 강철 같은 스테미너와 뛰어난 전술안과 빠른 상황 판단력을 앞세워 상대의 패스 흐름을 끊는데 능했으며 빌드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수비라인과 공격라인을 연결해주는 역할도 맡았다.

크루제이루에 머물면서 15년 동안 팀에 머물면서 캄페오네투 미네이루 10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6년에는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6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도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명성을 날렸다.

셀레상에서의 활약도 대단했는데 센터백으로 나온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아우베르투, 브리투, 에베라우두와 함께 후방을 튼튼히 지키며 예선과 본선 전승 우승에 공헌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왔지만 첫 경기에서 부상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11위 지노 사니

 


생년월일: 1932년 5월 23일
A매치 기록: 15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상 파울루

 

1950년대 하반기와 196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알렸던 전천후 미드필더로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과 타인의 예측을 불허하는 창의성과 드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롱패스로 두뇌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거기서 끝이 아니라 왕성한 활동량까지 겸비해 아군 수비 진영부터 상대 수비 진영까지 볼 운반을 맡았다.

상 파울루와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누린 사니는 상 파울루에서는 1957 시즌에 벨라 구트만 체제에서 4-2-2 시스템의 중앙 미드필더 중에서도 플레이메이커 맡으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에 공헌했다. 네레오 로코의 AC 밀란에서는 플레이메이커 자리를 지안니 리베라에게 양보하고 상 파울루 시절보다 수비적인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역할을 맡아 수비진과 공격진을 이어주며 1961-62 시즌 스쿠테토와 1962-63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에 공헌했다.

다만 클럽에서의 화려한 영광과는 다르게 셀레상의 활약은 다소 저조한데 이는 역대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하나로 손꼽히는 지지의 존재 때문이었다. 지지의 백업 역할을 맡으며 1958 스웨덴 월드컵 우승과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모두 벤치에서 경험했다.

 

10위 카제미루

 


생년월일: 1992년 2월 23일
A매치 기록: 63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2010년대 하반기 세계 정상급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왕성한 활동량과 우수한 포백 커버 능력과 터프한 태클을 겸비한 진공청소기 유형의 선수였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룰 누린 카제미루는 같은 팀의 중앙 미드필더 크로스, 모드리치와 조합을 이뤄 일명 크카모 라인으로 불렸는데 이들의 활약으로 라리가 3회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포함해 5회 우승을 이뤄내며 클럽 월드컵에서도 3연패를 기록했으며 개인적으로도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2회 포함되었다.

그동안 화려했던 클럽 커리어에 비해 셀레상의 활약은 비교적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2018 러시아 월드컵 8강과 2019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202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및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에 기여했고 특히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했다.

 

 

9위 바우어

 


생년월일: 1925년 11월 21일
A매치 기록: 26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상 파울루


마라카냥의 괴물이라 불렸던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상반기 브라질 무대 절상급 하프백으로 거친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제압했으며 유려한 패스로 팀 빌드업의 시작점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하는 등 강함과 아름다움을 겸비했다고 평가받는 선수였다.

상 파울루의 센터하프 역할을 맡았던 바우어는 노로냐, 후이 캄포스와 함께 룰러라고 불렸던 하프백 라인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중원에서 유기적인 플레이로 공격진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며 트리컬러 파울리스타의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5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1950 브라질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두 대회 모두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1950년의 마라카냥에서 우루과이에게 패해 우승이 좌절되자 오랫동안 저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당대의 축구 전문가 카타 프레타는 바우어를 두고 "지난 40년 동안 그에 비견될만한 하프백은 아무도 없었다."라고 높게 평가했다.

 

 

8위 마우루 시우바

 


생년월일: 1968년 1월 12일
A매치 기록: 59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990년대 하반기 라리가 3대 미드필더로 꼽혔던 선수로 스피드가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지칠 줄 모르는 지구력과 거침없는 태클과 드넓은 지역을 커버했으며 특히 상대의 패스흐름을 완벽하게 파악해 상대의 볼 순환을 끊어냈고 적절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영리한 파울로 상대의 흐름을 저지하는 부분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다.

클루비 아틀레치쿠 브라간치누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서 활약했는데 전자의 구단에서는 브라질 전국 리그 MVP의 자리에 올랐고 1992년에는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올랐으며 후자의 클럽에서는 두 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과 세 번의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그리고 1999-2000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유일한 우승을 이뤄냈고 2003-04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을 이뤄내며 팬들로부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다.

셀레상에서도 199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시작으로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둥가, 마지뉴와 함께 철통 같은 중원을 형성하며 우승에 공헌해 피파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9위에 올랐으며  1997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우승을 이뤄냈으나 1998 프랑스 월드컵은 부상으로 낙마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7위 다닐루 아우빔

 


생년월일: 1920년 12월 3일
A매치 기록: 25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바스쿠 다 가마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평가받는 선수로 유럽의 WM 시스템이 브라질에 정착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정교한 태클과 중앙에서 측면으로 보내는 우수한 롱패스를 활용한 빌드업에도 능했다.

바스쿠 다 가마가 승리의 급행열차라 불리며 브라질 최고의 팀으로 활약하던 시절, 팀 내에서 왕자라 불리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48년에는 코파 아메리카의 전신 대회인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오브 챔피언스에서 우승하는 등 크고 작은 대회에서 36회 우승을 이뤄내며 남미 최강자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다수의 바스쿠 다 가마의 동료들과 함께 브라질 대표팀에서 주축으로 활약하며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냈으나 마라카냥의 비극이라 불리는 결승전에서 우루과이에게 결과적으로는 패했기에 다소 저평가받기도 한다.

 

 

6위 지투

 


생년월일: 1932년 8월 8일
A매치 기록: 52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FC 산투스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평가 받는 선수로 빠른 발과 왕성한 활동량을 겸비했고 터프한 태클로 상대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괴롭히는데 능했으며 뛰어난 리더십으로 팀을 하나로 묶는데 능했다.

펠레, 페페와 함께 산투스의 황금기를 이끈 1등 공신으로 산투스에서 15년간 활약하며 주립리그인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에서 9회 우승 및 전국리그 5연패를 이뤄냈고 브라질 밖에서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2연패를 기록하며 당대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다. 특히 1962년에는 주립리그인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와 전국리그를 모두 석권함은 물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는 당대 남미 최강의 팀인 페냐롤을 꺾으며 트레블을 달성했고 추가로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유럽 최강의 팀인 에우제비우의 벤피카를 꺾는 기염을 토한다.

클럽에서의 커리어도 우수했지만 대표팀에서는 더 빛나는 활약을 펼쳤는데 셀레상 유니폼을 입고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에서 모두 주전으로 활약하며 우승했으며 특히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팀 밸런스를 안정시키며 결승전에선 득점까지 기록하는 활약을 보여주며 다수의 매체로부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했다.

 

 

5위 둥가

 


생년월일: 1963년 10월 31일
A매치 기록: 91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1980년대 하반기와 199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성실한 몸 관리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과 계산적이면서 거친 태클, 안정적인 패스, 경기의 흐름을 읽는 날카로운 전술안, 강력한 카리스마에서 나오는 훌륭한 통솔력을 겸비한 선수로 기존의 화려한 브라질 선수와는 거리가 있었던 선수였다.

인테르나시오날에서 데뷔해 캄페오나투 가우초 3회 연속 우승을 이뤄내며 주목받은 둥가는 피오렌티나와 슈투트가르트에서도 우승컵을 들지는 못했지만 팀의 핵심 선수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는데 특히 피오렌티나에서는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2회 선정되며 명성을 떨쳤고 J리그에서도 주빌로 이와타에서도 경기를 지고도 웃으며 수다를 떨었을 정도로 해이해진 선수단에게 "웃지 말라고 바보들아!"라고 일갈해 팀의 베테랑으로서 위닝 멘탈리티를 선물하며 팀을 1997 시즌 J리그 우승팀으로 만들었다.

1990년대 브라질 축구의 부활을 이끈 위대한 주장으로 월드컵 세 번, 코파 아메리카 네 번, 그리고 컨페드 컵에 한 번 참가해 총 다섯 번 결승에 진출해 네 번 우승했다. 1994 미국 월드컵과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주장으로 대회에 참가해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1994 미국 월드컵과 1997년 코파 아메리카와 컨페드컵에서는 주장으로 우승컵을 들었다.

 

4위 토니뉴 세레주

 


생년월일: 1955년 4월 21일
A매치 기록: 57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UC 삼프도리아

 

198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왕성한 활동량과 강력하면서도 기술적인 완성도도 높은 명품 태클과 지능적인 인터셉트와 같은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물론 부드러운 볼 컨트롤과 넓은 시야를 활용한 창의적인 롱패스 실력과 기습적인 공격 가담까지 겸비한 완전체 미드필더로 공의 주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보통 고점은 높지만 전성기가 짧다는 이야기가 있는 브라질 국적 선수들과는 다르게 자기 관리 능력이 뛰어나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약 20년간 정상급 기량을 펼친 세레주는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는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7연패 및 두 번의 브라질 세리 A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세레주 개인도 전국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음은 물론 MVP에 2회 선정되는 활약을 펼쳤다.

 

유럽으로 건너간 뒤에는 AS 로마에서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올랐으며 삼프도리아에서는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과 1989-90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고 1990-91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첫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으며 이듬해에는 재차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다가 다시 브라질로 돌아가서는 상파울루에서 활약하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에서 우승하는 공을 세웠는데 특히 1993년에는 인터콘티넨탈컵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대표팀에서는 출중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음에도 다소 결과가 아쉬웠는데 지쿠, 파우캉, 소크라치스와 함께 중원 조합을 구성해 황금의 사중주라 불리며 기대를 모았으나 2차 리그에서 이탈리아에 패하며 탈락하는 아쉬움을 경험하기도 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8강에 진출했으나 승부차기에서 패하며 준결승전 진출에는 실패했다.

 

 

3위 지르송

 


생년월일: 1941년 1월 11일
A매치 기록: 70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남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경기장 전체를 읽는 드넓은 시야와 예술과도 같은 볼 컨트롤은 물론 짧은 왼발 패스와 롱패스에 모두 능해 적절하게 템포를 조절하거나 골 찬스를 만들어내는 만능 플레이메이커였으며 왼발 기술이 좋아 팬들에게 황금의 왼발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셀레상과 보타포구에서 전설적인 미드필더 지지의 후계자로 활약하며 새로운 전설을 썼는데 보타포구에서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회 우승과 타사 브라질 1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1년에는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들었다.

셀레상에서도 1970 멕시코 월드컵의 브라질 대표팀의 두뇌로 활동하며 중앙 미드필더에서 템포를 조절하며 팀의 예선과 본선 전승 우승에 기여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 MVP 투표에서 펠레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실버볼을 수상했다.


2위 지지

 


생년월일: 1928년 10월 8일
A매치 기록: 68경기 20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축구 지능이 높아 감독이 졸고 있을 때 팀을 지휘하기도 했으며 광활한 시야와 정교하면서도 창의적인 숏패스와 롱패스로 경기를 지배했으며 발기술이 좋아 상대 수비수 두 명 정도는 제칠 수 있었고 프리킥에도 능해 '미스터 풋볼'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브라질 무대의 플루미넨시와 보타포구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특히 후자의 클럽에서는 캄페오네투 카리오카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전국 리그에서도 펠레의 산투스를 견제하는 강팀으로 이름을 날렸다. 다만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디 스테파노와의 불화와 스페인 적응 실패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떠났다.

셀레상에서는 1954 스위스 월드컵부터 1962 칠레 월드컵까지 참여해 두 번의 월드컵을 우승했으며 특히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중원을 지휘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MVP에 선정되는 맹활약을 펼쳤다.

 

 

1위 호베르투 파우캉

 


생년월일: 1953년 10월 16일
A매치 기록: 34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AS 로마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브라질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광활한 시야와 창의적인 두뇌에서 나오는 패스로 경기를 지배했으며 뛰어난 지구력과 볼 컨트롤 능력과 수비스킬, 그리고 다양한 포지션을 무난하게 소화하는 축구 지능까지 겸비한 완벽한 미드필더로 1980년대 상반기를 호령했다.

인테르나시오나우와 AS 로마에서 활약했으며 전자의 클럽에서는 주립 리그 5회 우승과 전국 리그인 브라질 세리 A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후자의 클럽에서는 두 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1982-83 시즌에는 스쿠테토를 따냈고 1983-8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올려놓았는데 이때 파우캉의 활약이 대단해서 로마 팬들은 그를 두고 로마의 여덟 번째 왕이라 불렀다. 

셀레상에서도 그의 활약은 이어져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지쿠, 소크라치스, 세레주와 함께 황금의 사중주로 불리며 그들을 훌륭하게 보좌하며 뛰어난 경기력을 보였다. 이러한 활약을 팬들에게 인정받아 2차 리그에서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1982 스페인 월드컵 실버볼과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파우캉은 브라질 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1978년과 1979년에는 브라질 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1979년에는 남미 올해의 선수 3위, 1982년에는 옹즈도르 3위, 그리고 1983년에는 옹즈도르 2위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선정 인원 외 추가할 수 있는 명단

 

 

엘리

 


생년월일: 1921년 5월 4일
A매치 기록: 1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바스쿠 다 가마

 

제퀴냐

 


생년월일: 1928년 3월 19일
A매치 기록: 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플라멩구

 

 

호베르투 벨랑게루

 


생년월일: 1928년 6월 28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1cm
주 소속팀: 코린치안스

 

 

멩가우비우

 


생년월일: 1939년 12월 17일
A매치 기록: 13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FC 산투스

 

 

바티스타

 


생년월일: 1955년 3월 8일
A매치 기록: 3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SC 인테르나시오나우

 

마지뉴

 


생년월일: 1966년 4월 8일
A매치 기록: 35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바스쿠 다 가마

 

세자르 삼파이우

 


생년월일: 1968년 3월 31일
A매치 기록: 47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파우메리아스

 

에드미우손

 

 

생년월일: 1976년 7월 10일
A매치 기록: 39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루이스 구스타부

 


생년월일: 1987년 7월 23일
A매치 기록: 41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파비뉴

 


생년월일: 1993년 10월 23일
A매치 기록: 2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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