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SV 역대 올스타 팀

클럽 올스타 짜보기/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SV 역대 올스타 팀

토르난테 2022. 5. 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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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SV (Hamburger SV)

 

창단: 1887년 9월 29일

소속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연고지: 독일 함부르크 자유 한자시 함부르크시

홈구장: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

독일 분데스리가: 3회 우승 (1978-79, 1981-82, 1982-83)

독일 챔피언십: 3회 우승 (1922-23, 1927-28, 1959-60)

DFB포칼: 3회 우승 (1962-63, 1975-76, 1986-87)

DFL슈퍼컵/DFB리카포칼: 2회 우승 (1973, 2003)

북부 독일 챔피언십: 10회 우승

가울리가 노르트마르크/가울리가 함부르크: 5회 우승

오베리가 노르트: 15회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 (1982-83)

UEFA 컵위너스컵: 1회 우승 (1976-77)

UEFA컵/UEFA 유로파리그: 1회 준우승 (1980-81)

UEFA 인터토토컵: 2회 우승 (2006, 2008)

 


베스트 11

 

골키퍼

이름: 울리 슈타인
출생년도: 1954년 10월 23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6kg

활약 기간: 1980~1987, 1994-95
통산 기록: 296경기 351실점 92클린시트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분데스리가를 풍미한 골키퍼로 20년간 프로 생활을 유지할 정도로 우수한 자기 관리 능력과 뛰어난 반사신경 능력을 바탕으로 명성을 떨쳤다.

함부르크 구단 최전성기에 활약한 슈타인은 디 로토센의 분데스리가 2연패를 이뤄냈고 1986-87 시즌 DFB포칼 우승을 이뤄냈고 1982-83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우승에 이어서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도 유벤투스를 무실점으로 꺾고 빅이어를 들어내며 구단의 황금기에 대마를 장식했다.

1983-84 시즌 키커지 선정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슈타인은 디 로토센에 머무는 동안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무려 11번이나 선정되었는 활약을 보여줬음에도  경기장 내외에서 자주 기행을 일으켰으며 특히 대표팀 감독이자 독일 축구의 상징적인 존재인 프란츠 베켄바우어를 조롱한 사건으로 인해 대표팀에는 거의 뽑히지 못했다.

 

리베로

이름: 빌리 슐츠
출생년도: 1938년 10월 4일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64~1977
통산 기록: 250경기 3골 8도움

 

서독 최초의 리베로로 후대의 베켄바우어나 잠머와는 달리 공격적인 부분보다는 수비적인 부분에서 더 돋보였던 선수로 냉철하면서도 재빠른 판단력을 바탕으로 완벽한 커버플레이와 센스 있는 수비력을 보여줬다.

1960년대 분데스리가 초창기 시절의 함부르크에서 활약했으며 비록 우승 트로피를 들진 못했지만 1966-67 DFB 포칼 준우승과 1967-68 UEFA 컵 위너스 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컵 위너스 컵에서의 퍼포머스를 인정받아 1968년에는 발롱도르 12위에 올랐다.

비록 우승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빌리 슐츠는 함부르크에 머무는 동안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6회와 인터내셔널 클래스 6회에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두 번이나 선정되었으며 디 만샤프트에서도 베켄바우어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밀어내고 주전으로 활약했다.

 

센터백

이름: 디트마어 야콥스
출생년도: 1953년 8월 28일
포지션: 센터백, 리베로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79~1989
통산 기록: 405경기 37골

 

다재다능한 대기만성형 수비수로 주로 소화하는 역할은 스토퍼지만 스토퍼와 리베로를 모두 소화할 수 있으며 리베로로 활약할 시에는 공격적인 베켄바우어 류의 역할과 수비적인 체사레 말디니 류의 역할을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

1980년대 함부르크의 황금기를 이어간 야콥스는 디 로토센에서 분데스리가 2연패를 이뤄냈고 1986-87 시즌 DFB포칼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2-83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우승에 이어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며 국내 무대와 유럽 무대를 모두 평정하는데 기여했다.

함부르크 구단 통산 출전 8위에 오른 야콥스는 함부르크에 머물던 시절에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에 7회 선정되며 독일을 넘어 유럽에서도 경쟁력이 있었던 수비수였음을 증명했으며 디 만샤프트에서도 중용되었으나 1989-90 시즌 초반에 베르더 브레멘과의 북독 더비에서 골과 다름없는 슈팅을 태클로 걷어내다가 골망을 땅에 고정시키는 갈고리가 제대로 잠겨져 있지 않았던 이유로 갈고리가 등이 박히는 대형 부상을 당하며 허무하게 은퇴 수순을 밟았다.

 

라이트백

이름: 만프레트 칼츠
출생년도: 1953년 1월 6일
포지션: 라이트백, 리베로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7kg

활약 기간: 1971~1989, 1990~1991
통산 기록: 740경기 101골

 

197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측면 수비수로 역대 최고의 오른발 크로서로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크로스 실력을 보여 이를 두고 바나나 크로스라 불렸으며 실제로 함부르크와 디 만샤프트에서 칼츠의 크로스와 흐루베쉬의 헤딩은 중요한 공격 루트로 자리 잡았으며 함부르크 통산 100 득점을 넘게 득점했을 정도로 직접 득점에도 대단한 모습을 보여줬다.

함부르크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의 자리에 올라있는 칼츠는 디 로토센 군단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분데스리가 3회 우승, DFB포칼 2회 우승을 이뤄내며 바이에른과 묀헨글라트바흐에 이어 독일 무대를 평정했고 유럽 무대에서도 1976-77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과 1981-82 시즌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럽 최고의 팀들이 참가한 유러피언컵에서도 1979-80 시즌 4강 2차전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도 2골 1도움을 기록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쳐 5-1 대승을 거두며 원정에서의 2-0 패배를 완벽하게 역전하며 결승에 진출했으나 결승전에서 노팅엄의 돌풍에 휘말리며 준우승에 그쳤으며 3년 뒤인 1982-83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우승에 이어 유러피언 컵에서도 우승하며 함부르크를 1983년을 대표하는 구단으로 올렸다.

칼츠는 함부르크에 머물면서 분데스리가 최다 출전 2위를 기록했으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 6회 선정,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3회 선정,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13회 선정은 물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두 번 선정되며 1979년 4위와 1980년 10위를 기록했으며 1976년부터 선정한 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도 2회 선정되었다.

다만 우수한 실력과는 별개로 분데스리가 역대 최다 자책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레프트백

이름: 위르겐 쿠어브윤
출생년도: 1940년 7월 26일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1kg

활약 기간: 1960~1972
통산 기록: 406경기 12골

 

1960년대 함부르크를 대표하는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팀을 위해 헌신하는 터프한 수비수로 경합 상황에서 상대 공격수를 잘 막아냈으며 종종 공격에 가담해 강력한 왼발 킥력을 바탕으로 중거리 슈팅으로 상대의 골망을 위협하거나 빌드업의 시작점 역할을 맡아 전방으로 롱패스를 보냈으나 뛰어난 수비력에 비해 패싱력은 다소 부정확했다고 전해진다.

클럽 커리어 전부를 함부르크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쿠어브윤은 지역리그 시절부터 활약하며 오베리가 노르트 3연패를 이뤄냈으며 전국단위 대화에서도 1962-63 시즌 DFB포칼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으며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에도 꾸준하게 활약하며 1966-67 시즌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준수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1960-61 시즌 유러피언 컵 4강과 1967-68 시즌 UEFA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함부르크 구단 통산 출전 7위에 오른 쿠어브윤은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첫 시즌인 1963-64 시즌 전반기에는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받기도 했다.

 

중앙 미드필더

이름: 볼프강 롤프
출생년도: 1959년 12월 26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라이트백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82~1986
통산 기록: 156경기 29골

 

1980년대 디 로토센 군단의 황금기에 마침표를 찍은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중앙 미드필더로 빠른 스피드와 왕성한 활동량을 겸비했으며 터프한 태클은 물론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패스 능력, 그리고 우수한 킥력을 두루 겸비한 완성형 미드필더였다.

포르투나 쾰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분데스리가 챔피언 함부르크에 입단한 롤프는 1982-83 시즌에 우수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디 로토센의 분데스리가와 유러피언컵 더블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는데 특히 유러피언 컵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줬는데 8강 디나모 키예프를 상대로는 블로힌을 꽁꽁 묶어냈으며 4강 레알 소시에다드 전에서는 1차전 동점골을, 결승 유벤투스전에서는 에이스 미셸 플라티니를 꽁꽁 묶어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디 로토센이 빅이어를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이때의 활약을 인정받아 1982-83 시즌 후반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선정되었다.

 

중앙 미드필더

이름: 펠릭스 마가트
출생년도: 1953년 7월 26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레프트윙,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76~1986
통산 기록: 388경기 63골

 

23세에 처음 프로 무대에 진출한 대기만성형 선수로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중반까지 함부르크의 전성기를 이끈 다재다능한 미드필더로 창의적인 롱패스 능력과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겸비했으며 뛰어난 스테미너를 기반으로 왕성한 수비 가담 능력도 겸비했다.

함부르크 구단 통산 출전 11위에 랭크된 마가트는 디 로토센의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아 활약하며 분데스리가 3회 우승을 이뤄내며 독일 무대를 평정했고 유럽 무대에서도 1976-77 시즌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과 1981-82 시즌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유러피언컵에서도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과 1982-83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모두 이뤄냈는데 특히 1982-83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는 유벤투스의 명 골키퍼 디노 조프를 상대로 벼락같은 중거리 슈팅으로 결승골을 터트리며 디 로토센의 첫 빅이어에 일등 공신이 되었다.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된 펠릭스 마가트는 함부르크에 머물면서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8회 선정되었으며 1982-83 시즌 후반기 평가에서는 월드클래스 등급에 선정되었고 그 해 연말에 열린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5위를 기록했고 같은 해에 아르헨티나의 저명지 엘 그라피코에서 뽑은 세계 최우수 선수 투표에서도 6위에 올랐다.

 

라이트윙

이름: 케빈 키건
출생년도: 1951년 2월 14일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라이트윙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77~1980
통산 기록: 114경기 42골

 

마이티 마우스라 불렸던 1970년대 하반기 유럽 최고의 축구 선수로 체격은 작았으나 단단한 근육질 몸매로 몸싸움을 잘했으며 공격수로서 부족함이 없는 만능 공격수였으며 우수한 헤더와 득점력은 물론 천재적인 플레이메이킹 능력마저 겸비했다.

리버풀에서 잉글랜드 무대를 평정하고 빅이어를 들어내며 세계 최고의 선수의 반열에 올라선 키건은 잉글랜드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서독 분데스리가 무대에 도전하며 함부르크로 이적해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디 로토센의 1978-79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과 1979-80 시즌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개인적으로도 함부르크에 머문 3년 동안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에 3회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여섯 번의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네 번이나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으며 1978년과 1979년에는 모두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197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군림하며 영광을 누렸으나 고향 잉글랜드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잉글랜드로 돌아갔다.

키건과 함께 함부르크의 공격을 이끈 펠릭스 마가트는 케빈 키건에 대해 "그가 왔을 때, 함부르크의 위대한 시대가 시작됐다."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마이티 마우스가 함부르크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했다.

 

레프트윙

이름: 게르트 되어펠
출생년도: 1939년 9월 18일
포지션: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2kg

활약 기간: 1959~1972
통산 기록: 423경기 144골 47도움

 

1960년대 함부르크를 이끌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빠른 스피드와 날렵한 몸놀림은 물론 뛰어난 킥력을 앞세운 득점력을 겸비한 당대 유럽 최고의 측면 공격수 중 한 명이었다.

디 로토센 군단에서 우베 젤러와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며 오베리가 노르트 4회 연속 우승, 1959-60 시즌 독일 챔피언쉽 우승, 1960-61 시즌 유러피언 컵 준결승 진출, 1961-62 시즌 DFB포칼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으며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에도 변함없이 활약하며 비록 리그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1966-67 시즌 DFB포칼 준우승과 1967-68 시즌 컵 위너스컵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적잖은 공을 세웠다.

함부르크 구단 통산 출전 5위와 통산 득점 6위에 랭크된 되어펠은 1965년에는 헨토를 제치고 프랑스 풋볼지 선정 유럽 최고의 레프트 윙에 이름을 올렸으며 키커 랑리스테에서는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4회 선정되기도 했다. 여담으로 되어펠은 아버지와 삼촌, 동생이 모두 함부르크에서 활약했을 정도로 축구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축구를 단지 취미로만 즐기는 수준이었는데 귀찮다는 이유로 디 만샤프트 소집을 두 번이나 거절하기도 했다.

 

스트라이커

이름: 우베 젤러
출생년도: 1936년 11월 5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6kg

활약 기간: 1964~1977
통산 기록: 587경기 507골 36도움

 

1960년대 독일 축구의 아이콘으로 범국민적인 사랑을 받아 우리들의 우베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공격수로서 결점이 없는 완벽한 공격수였는데 170cm의 단신임에도 헤딩에 매우 능했으며 양발을 모두 잘 썼으며 백 헤더와 백힐 패스, 바이시클 킥 등 고급적인 기술들을 실전에서 자유자재로 선보였으며 천둥과도 같은 강력한 슈팅으로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줬다. 여기에 스피드도 빨랐고 강력한 리더십마저 보유했다.

은퇴한 이후 코크 시티에서 한 경기를 뛴 것을 제외하면 선수 생활 전부를 디 로토센 군단에서 보냈으며 함부르크의 오버리가 노르트 9회 우승과 1959-60 시즌 독일 챔피언쉽 우승을 이루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1960년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이뤄낸 디 스테파노를 제치고 3위에 올랐으며 이듬해에는 유러피언 컵 4강에 진출했으나 바르셀로나에게 아쉽게 탈락했으며 1962-63 시즌 DFB포칼에서는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비록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에는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젤러 개인의 활약은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는데 1963-64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과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활약을 보였기에 당대 유럽 최고의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와 인테르 밀란에서 그의 영입을 타진했으나 젤러는 함부르크에 대한 충성심으로 이런 제안들을 모두 거부하며 함부르크 팬들의 사랑을 받았고 이후에도 1966-67 시즌 DFB포칼 준우승과 1967-68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70년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개인 통산 세 번째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함부르크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와 통산 출전 2위에 랭크된 우베 젤러는 키커 랑리스테에서는 월드클래스 등급 14회와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11회를 기록하며 프란츠 베켄바우어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아낸 선수로 기록되었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5회 선정되었으며 그중 10위 안에 네 번 들었으며 1960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3위를 기록했다.

 

스트라이커

이름: 호어스트 흐루베쉬
출생년도: 1951년 4월 17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2kg

활약 기간: 1978~1983
통산 기록: 212경기 134골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함부르크의 전성시대를 이끈 스트라이커로 헤딩에 특히 능해 헤딩 야수라 불렸으며 실제로 함부르크와 디 만샤프트에서 칼츠의 크로스와 흐루베쉬의 헤딩은 중요한 공격 루트로 자리 잡았을 정도로 당대에 유명세를 떨쳤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야수가 바나나를 먹으면 골이 터진다고 했을 정도로 강력한 콤비였다.

오랫동안 하부리그에서 활약하다가 28세의 늦은 나이로 함부르크에 입단해 활약한 대기만성형 선수였던 흐루베쉬가 디 로토센 군단에서 이룬 족적은 어마어마한데 분데스리가 3회 우승, 1981-82 시즌 UEFA컵 준우승, 1982-83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 및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개인적으로도 1980-81 시즌 DFB포칼 득점왕에 올랐고 1981-82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수상했다.

1979-80 시즌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던 흐루베쉬는 각종 개인 평가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에 4회 선정, 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 2회 선정, 1980년 구에린 스포르티보 세계 베스트 일레븐 선정 및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2회 선정되어 1980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6위에 오르는 등 1980년대 초반을 빛낸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 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다.

 

감독

 

이름: 에른스트 하펠

출생년도: 1925년 11월 29일

부임기간: 1981~1987

 

무리뉴, 카펠로 이전 원조 우승 청부사이자 세계 최초로 4개국에서 우승컵을 들어낸 사나이로 강력한 카리스마와 뛰어난 용병술, 그리고 파격적이면서도 구단의 상황에 적합한 전술 운용 능력을 토대로 언더독 팀 위주로 맡았음에도 커리어 통산 17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이미 페예노르트와 클럽 브뤼헤, 그리고 스탕다르 리에주에서 우승 청부사로 이름을 떨치던 명장으로 함부르크가 대권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 구단의 1차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알콜 중독으로 부진하던 브란코 제베치를 경질하고 하펠에게 지휘봉을 맡겼고 하펠은 디 로토센을 지휘하며 분데스리가 2연패는 물론 1981-82 시즌에는 UEFA컵 결승에 올랐으며 1982-83 시즌에는 분데스리가에 이어 유러피언 컵에서도 우승해내며 세계 최초로 각자 다른 구단으로 빅이어를 든 첫 감독이 되었고 그 공로로 올해의 유럽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마지막 시즌에도 1986-87 시즌 DFB포칼 우승을 이뤄내며 아름답게 떠났고 그가 떠난 함부르크는 황금기가 끝나고 내리막을 걸었다.

주제 무리뉴의 상위 호환 격의 감독으로 악조건 속에서도 트로피를 따냈으며 펩 과르디올라의 상위 호환 격의 감독으로 불리는 리누스 미헬스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다.

 


베스트 일레븐

 

토르난테 선정 함부르크 SV 역대 베스트 일레븐


25인 스쿼드 / 서브 14인

 

이름: 루돌프 카르구스
출생년도: 1952년 8월 15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6kg

활약 기간: 1971~1980
통산 기록: 331경기 425실점 108클린시트

 

1970년대 하반기 분데스리가 정상급 골키퍼로 페널티 라인 안에서 안정적인 플레이를 추구했으며 적절한 위치 선정과 정확한 예측력, 그리고 우수한 반사신경을 바탕으로 견고한 수비를 펼쳤으며 특히 페널티킥 방어에 능해 분데스리가 통산 최다 페널티킥 세이브 기록을 보유했기에 페널티킬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1970년대 하반기 함부르크의 전성기를 이끌며 1975-76 DFB포칼 우승과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76-77 시즌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우승, 그리고 1978-79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과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웠으며 루디 카르구스 개인도 함부르크에 머무는 동안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9회 선정되며 제프 마이어, 하랄트 슈마허, 로니 헬스트룀 등과 함께 당대 분데스리가 정상급 골키퍼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이름: 호어스트 슈노어
출생년도: 1934년 4월 11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활약 기간: 1952~1969
통산 기록: 479경기 686실점 137클린시트

 

함부르크가 북독일을 평정하던 시절에 활약했단 골키퍼로 날렵한 반사신경과 안정적인 세이브를 바탕으로 활약하며 1960-61 시즌 후반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받기도 했다.

선수 생활의 전부를 함부르크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이자 구단 통산 출전 3위에 랭크된 슈노어는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에는 북부 오베리가 10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이는 슈노어 데뷔 이후 디 로토센은 1953-54 시즌을 제외하면 모두 우승을 차지하며 북독의 절대강자로 군림했고 1959-60 시즌에는 독일 챔피언십 우승을 이뤄내는데 힘을 보탰고 이듬해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하는데 공헌했다.

분데스리가 출범 초창기에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1966-67 시즌 DFB포칼 결승에 진출했으나 이미 노쇠한 슈노어는 신흥강호 바이에른을 막지 못하고 4-0 완패를 당하며 터키 출신의 후배 외즈칸 아르코츠에게 밀려났고 1968-69 시즌이 끝나고 은퇴했다.

 

이름: 페터 노글리
출생년도: 1947년 1월 14일
포지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5kg

활약 기간: 1969~1980
통산 기록: 414경기 50골 3도움

 

1970년대 함부르크의 약진을 이끈 스토퍼로 다부진 체격과 맹렬한 투지를 앞세운 강력한 몸싸움과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꽁꽁 묶었으며 일반적인 터프한 스토퍼들과는 다르게 발밑과 기동력이 우수해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기도 했으며 종종 공격에 가담해 득점했고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위협적인 헤더는 그의 주 무기였다.

함부르크 구단 통산 출전 6위에 오른 노글리는 디 로토센이 1975-76 시즌 분데스리가 준우승과 DFB포칼 우승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1976-77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 1978-79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 1979-80 시즌 분데스리가와 유러피언 컵에서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하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2회 선정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름: 요제프 포지팔
출생년도: 1927년 6월 20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6kg

활약 기간: 1949~1958
통산 기록: 283경기 14골

 

베른의 기적을 이뤄내는데 일조한 1950년대 독일 무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WM 시스템의 센터하프와 라이트 풀백에서 주로 활약했으며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완강한 대인 방어와 우수한 제공권 장악 능력과 헤딩 클리어링으로 지상전과 공중전에 모두 능숙했다.

1950년대 함부르크의 수비를 이끈 포지팔은 디 로토센의 북부 오베리가 7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1955년, 첫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대표팀 파트너 베르너 리브리히와 함께 월드클래스 등급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으며 이후에도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3회 선정되었다.

 

이름: 알베르트 바이어
출생년도: 1900년 9월 28일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65cm

활약 기간: 1921~1933
통산 기록: 최소 300경기

 

1920년대 함부르크의 전성기를 이끈 수비수로 2-3-5 시스템의 라이트 풀백에서 주로 뛰었으며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빠른 발과 우수한 심리전을 토대로 상대 공격수를 틀어막았다.

함부르크에서 300경기 넘게 활약한 바이어는 함부르크의 북독일 챔피언십 9회 우승과 뉘른베르크와 함께 공동 우승을 차지한 1921-22 시즌을 포함한 독일 챔피언십 3회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통산 25개의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며 당대 독일 최고의 라이트 풀백이자 함부르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군림했다.

 

이름: 베른트 베마이어
출생년도: 1952년 6월 6일
포지션: 레프트백,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9kg

활약 기간: 1978~1986
통산 기록: 236경기 14골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 독일 무대에서 활약한 오른발잡이 왼쪽 측면 자원으로 레프트백과 레프트윙을 모두 능숙하게 소화할 수 있었던 베마이어는 빠른 스피드와 높은 수준의 테크닉을 활용한 드리블을 통해 공격 상황에서 중앙으로 파고들면서 상대 수비수를 제치고 오른발로 슈팅을 날리는 컷인 플레이를 즐겼으며 수비적으로는 상대 윙어에게 빠르게 달려들어 압박해 볼을 빼앗았다.

함부르크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선배 페터 히딘을 대체한 베마이어는 디 로토센의 분데스리가 3회 우승과 3회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럽 무대에서도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 1981-82 시즌 UEFA컵 준우승에 이어 1982-83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의 대마를 장식하는데 공헌했으며 은퇴 이후에도 함부르크의 보드진으로 활약하며 스포츠 디렉터와 부이사장을 역임했다.

 

이름: 아스비요른 할보르센
출생년도: 1898년 12월 3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센터백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71kg

활약 기간: 1921~1934
통산 기록: 미상

 

1920년대 독일 무대에서 용병으로 활약한 노르웨이 출신의 선수로 키는 작았지만 다부진 체격을 바탕으로 상대 센터 포워드와의 경합에서 밀리지 않았으며 적절한 포지셔닝과 강력한 맨 마킹 실력, 그리고 높은 수준의 수비라인 컨트롤을 바탕으로 수비수들의 빈틈을 커버하는데 능했으며 한혈마와 같은 지구력과 정밀도 높은 패싱력을 겸비해 경기장 곳곳을 뛰어다니며 경기장 전역에 영향력을 끼쳤으며 여기에 강력한 리더십까지 갖췄다.

자국에서 활약하다가 1921년에 함부르크에 합류한 할보르센은 디 로토센의 북독일 챔피언십 9회 우승과 뉘른베르크와 함께 공동 우승을 차지한 1921-22 시즌을 포함한 독일 챔피언십 3회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통산 25개의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며 당대 독일무대 최고의 센터하프로 활약했으나 1934년에 나치당이 독일의 정권을 장악하며 독재의 바람이 불자 독일을 떠나 노르웨이로 돌아갔다.

 

이름: 지미 하트비히
출생년도: 1954년 10월 5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센터백, 라이트백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1kg

활약 기간: 1978~1984
통산 기록: 239경기 72골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초의 흑인 혼혈 선수로 이름을 날린 수비형 미드필더로 한혈마와 같은 지구력을 바탕으로 경기장 전역을 부지런하게 뛰어다니며 공수 양면에 기여도가 높았으며 집요한 대인 수비와 우수한 공중볼 경합 능력을 바탕으로 팀의 수비를 도왔으며 공격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1선 침투와 강력한 헤더를 통해 상대의 골문을 위협했으며 스로인 상황에서는 강력한 완력을 활용한 중장거리 스로인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고 찬스를 만들기도 했다.

키커스 오펜바흐와 1860 뮌헨을 거쳐 1978-79 시즌에 함부르크에 합류한 하트비히는 분데스리가 3회 우승과 3회 준우승을 이뤄내며 독일 무대를 평정했고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 1981-82 시즌 UEFA컵 준우승에 이어 1982-83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며 1982-83 시즌 독일과 유럽의 챔피언에 오르는데 기여하며 1982-83 시즌 후반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선정되었으며 수비형 미드필더였음에도 1980-81 시즌 DFB포칼 준우승에 오르기도 했다.

세네갈 혼혈의 하트비히는 세네갈 출신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아 독일인 어머니 혼자서 그를 양육했으며 프로 선수로서 성공한 뒤에도 독일 국적이면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음에도 아프리카계라는 이유로 디 만샤프트에 뽑히지 못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름: 카스파어 메메링
출생년도: 1953년 6월 1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레프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레프트백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71~1982
통산 기록: 402경기 40골 3도움

 

1970년대 독일 무대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준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중앙과 좌측면을 왕성하게 뛰어다니며 팀원들의 볼을 받거나 공간을 만들어줬으며 우수한 테크닉과 정교한 왼발 크로스를 바탕으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능했으며 상대에게 볼 소유권이 넘어간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수비가담과 고강도의 압박을 통해 볼 소유권을 되찾기도 했다.

디 로토센 통산 출전 9위에 오른 메메링은 1975-76 시즌 분데스리가 준우승과 DFB포칼 우승을 시작으로 분데스리가 2회 우승을 이뤄내며 독일 무대를 풍미했고 유럽 무대에서도 1976-77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과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과 1981-82 시즌 UEFA컵 결승에 진출하는 등 팀의 황금기에 적잖이 공헌했지만 1982-83 시즌을 앞두고 볼프강 롤프에게 밀려나며 보르도로 이적해 유러피언컵과 분데스리가 더블 우승을 이뤄내지는 못했다.

 

이름: 토마스 폰 헤센
출생년도: 1961년 10월 1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중앙 미드필더, 포워드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80~1994
통산 기록: 443경기 125골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활약했던 다재다능한 2선 자원으로 본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지만 좌우 측면 공격수와 처진 공격수, 그리고 중앙 미드필더까지 소화할 수 있었으며 준수한 볼 컨트롤과 정교한 드리블과 롱 패스에 능했으며 특히 기습적인 1선 침투와 날카로운 중거리 슈팅을 활용해 상대의 골망을 직접 가르는 미들라이커로 명성을 날렸다.

1980-81 시즌에 함부르크에서 데뷔해 구단 통산 최다 출전 4위에 랭크된 폰 헤센은 디 로토센 군단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분데스리가 2연패를 이뤄냈으며 1982-83 시즌에는 분데스리가에 이어 유러피언 컵에서도 우승하는데 기여해 구단의 황금기에 대마를 찍었으며 1986-87 시즌에는 디 로토센의 주장을 맡아 DFB포칼에서 4골을 기록하며 우승에 기여했으며 개인적으로도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4회 선정되었다.

 

이름: 메흐디 마다비키아
출생년도: 1977년 7월 24일
포지션: 라이트윙, 라이트백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2kg

활약 기간: 1999~2007
통산 기록: 263경기 34골 57도움

 

이란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2000년대 분데스리가를 풍미한 우측면 자원으로 오른쪽 측면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으며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지구력을 통해 적극적인 공수가담을 했으며 공격 상황에서는 빠른 스피드를 활용하 드리블로 측면을 가로질러 오버래핑하며 우수한 오른발 킥력에서 나오는 얼리 크로스와 컷백 패스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수비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압박을 통해 상대로부터 볼을 탈환하기도 했다.

2000년대 디 로토센의 핵심 선수로 활약한 마다비키아는 2003 DFB리가포칼 우승과 2005 UEFA 인터토토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2002-03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도움왕에 올랐으며 해당 시즌 후반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선정되었으며 측면 공격수 부분 랭킹 1위에 올랐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마다비키아를 지도했던 쿠르트 야라 감독은 마다비키아를 두고 "그의 기량은 이미 데이비드 베컴의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라고 평가했다.

 

이름: 게오르크 볼케르트
출생년도: 1945년 11월 28일
포지션: 레프트윙,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1971~1978
통산 기록: 275경기 80골

 

30대 중반인 1970년대 하반기까지 전성기를 유지한 대기만성형 레프트윙으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적절한 타이밍에 재빠르게 침투해 위협적인 오른발 슈팅으로 득점하는 인버티드 윙어였으며 간혹 볼을 끌긴 했어도 드리블 실력도 수비수 한두명은 제칠 수 있었을 정도로 대체로 우수했다.

뉘른베르크에서 분데스리가 우승을 경험한 볼케르트는 1971년 함부르크에 입단했는데 젤러와 되어펠, 슐츠의 은퇴 이후 암흑기에 빠진 함부르크를 구해내며 1975-76 시즌 분데스리가 준우승과 DFB포칼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6-77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루돌프 노아크
출생년도: 1913년 3월 30일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5kg

활약 기간: 1931~1942, 1944~1945
통산 기록: 193경기 233골

 

가울리가 시절에 활약했던 인사이드 레프트로 우수한 볼 컨트롤과 날카로운 킬러패스를 바탕으로 팀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했으며 플레이메이킹을 하면서도 경기당 1골을 넘는 엄청난 골 결정력을 자랑하기도 했지만 다소 완고한 면도 있어서 감독과 갈등을 벌이기도 했다.

1930년대와 40년대 함부르크에 머물며 북부 독일 축구 챔피언십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구단의 전성기를 이끈 선배들이 떠나고 지역리그가 가울리가 체제로 변경된 이후에도 가울리가 노르트마르크 4회 우승을 이뤄내며 디 로토센이 북독의 맹주로 군림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함부르크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노아크는 힘든 시대를 살며 많은 고초를 겪었는데 팔의 문신이 있었는데 노아크는 정치성향을 드러낸 적이 없었음에도 이 문신을 나치 독일이 싫어했기 때문에 경기 중에도 소매를 걷어올리지 못했고 대표팀 출전에도 불이익이 있었는데 이 문신 때문에 불확실한 범죄 누명을 쓰고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자격을 정지당해 1년간 출장이 금지되는 부당함을 겪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도중에는 징집되어 동부전선에서 군복무를 하다 포로가 되어 소련에 끌려가 1947년에 옥사했다.

 

이름: 오토 하르더
출생년도: 1892년 11월 25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7kg

활약 기간: 1912, 1913~1931
통산 기록: 378경기 387골

 

독일 축구 태동기의 스트라이커로 190cm에 87kg이라는 큰 체격에서 나오는 파괴적인 몸싸움과 압도적인 제공권 경합을 바탕으로 엄청난 헤더와 포스트플레이를 보여줬으며 보통의 장신 타겟 스트라이커와는 다르게 발밑도 준수해 좁은 공간에서도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따돌렸으며 장기인 헤더는 물론 오른발과 왼발을 가리지 않고 정밀도 높은 슈팅을 날려대며 온 몸이 무기임을 보여줬다.

함부르크에서 20년 가까이 활약하며 경기당 1골 이상을 득점하며 후배 젤러에 이어 구단 통산 최다 득점 2위에 랭크된 하르더는 북부 독일 챔피언십 7회 우승을 이뤄냈고 뉘른베르크와 함께 공동 우승을 차지한 1921-22 시즌을 포함한 독일 챔피언십 3회 우승을 이뤄내며 당대 독일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군림했다.

 


25인 스쿼드 완성판

 

토르난테 선정 함부르크 SV 역대 올스타 스쿼드

 


함부르크 SV 역대 올스타 리저브 팀 11인

 

이름: 리하르트 골츠
출생년도: 1968년 6월 5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99cm / 몸무게 98kg

활약 기간: 1987~1998
통산 기록: 314경기 410실점 92클린시트

 

키가 2m에 달하는 장신 골키퍼로 큰 키와 긴 팔다리를 활용해 사각지대로 가는 슈팅을 잘 막아냈으며 특히 능숙한 공중볼 처리로 이름을 날렸다.

함부르크 유스팀에서 데뷔해 함부르크의 황금기의 방점을 찍은 울리 슈타인의 뒤를 이어 골문을 지킨 골츠는 1990년대 함부르크의 암흑기에 활약하면서도 1989-90 시즌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이름: 홀거 히어로니무스
출생년도: 1959년 2월 22일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79~1984
통산 기록: 169경기 11골

 

한때 디 만샤프트의 리베로를 맡아 수비를 이끌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던 유망주로 드넓은 시야로 경기흐름을 정확하게 읽어냈으며 우아한 볼 컨트롤과 정밀도 높은 패싱력을 바탕으로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이끌었으며 빠른 기동력을 통해 광범위한 수비 커버 범위를 자랑했다.

장크트 파울리에서 데뷔해 명성을 날리며 함부르크에 입단해서는 미국에서 돌아온 베켄바우어의 가르침을 받으며 더 빠르게 성장하면서 디 로토센 군단의 분데스리가 2연패를 이뤄냈으며 1981-82 시즌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유럽 무대에서도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과 1981-82 시즌 UEFA컵 준우승에 이어 1982-83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며 독일 무대와 유럽 무대 모두 제패하며 1983년을 함부르크의 해로 만들었다.

그러나 1983-84 시즌 후반인 1984년 3월에 발트호프 만하임과의 경기에서 상대 공격수 프리츠 발터와 충돌해 십자인대와 삼각인대가 파열되었으며 반월판과 무릎 연골이 손상되는 등 선수 생활이 불가능한 큰 부상을 당하며 한때 제2의 베켄바우어를 꿈꿨던 리베로 히어로니무스는 은퇴했다.

 

이름: 요헨 마인케
출생년도: 1930년 10월 23일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레프트백
신체조건: 미상

활약 기간: 1949~1965
통산 기록: 400경기 10골

 

본명은 요한프린츠 마인케로 포지팔과 함께 수비를 이끌었으며 WM 시스템의 라이트백과 레프트백에서 주로 뛰었지만 포지팔 은퇴 이후에는 센터하프로 자리 잡으며 견고하면서도 세련된 대인 수비로 이름을 떨쳤다.

함부르크 구단 통산 출전 10위 마인케는 디 로토센 소속으로 오베리가 노르트 1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9-60 시즌 독일 챔피언십 우승과 1960-61 시즌 유러피언 컵 4강 진출과 1961-62 시즌 DFB포칼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나 1963-64 시즌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부터는 주전에서 완벽하게 밀리며 2년간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은퇴했다.

 

이름: 이반 불얀
출생년도: 1949년 12월 11일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4cm

활약 기간: 1977~1981
통산 기록: 123경기 27골

 

1970년대 중후반에 이름을 날렸던 수비수로 센터백과 라이트백 양쪽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센터백으로 활약할 때는 우수한 수비라인 조율이 빛났으며 라이트백으로 활약할 때에는 장신 수비수는 둔하다는 편견을 깨고 상대 윙어를 민첩하게 막아냈다.

이미 하이두크 스플리트와 유고슬라비아 무대에서 유고슬라비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불얀은 만 27세가 되자 유고슬라비아 정부로부터 이적을 허락받아 함부르크로 이적해 4년간 활약하며 1978-79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과 1979-80 시즌 분데스리가  및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름: 페터 히딘
출생년도: 1953년 11월 14일
포지션: 레프트백, 라이트백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80kg

활약 기간: 1972~1982
통산 기록: 286경기 17골

 

1970년대 분데스리가에서 이름을 날린 측면 수비수로 원랜 라이트백을 선호했지만 동포지션에 동갑내기이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하나인 만프레트 칼츠가 있었기에 선수생활 내내 레프트백으로 활약했는데 다부진 체격을 활용한 몸싸움과 빠른 스피드로 공수 양면에서 밸런스가 좋다는 평가를 받았던 사이드백이다.

1972-73 시즌에 데뷔해 암흑기에 빠진 팀을 황금기로 올린 주인공으로 분데스리가 2회 우승, 1973-74 시즌 DFB포칼 준우승과 1975-76 시즌 DFB포칼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럽 무대에서도 1976-77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 1979-80 시즌 유러피언컵 준우승, 1981-82 시즌 UEFA컵 준우승을 이뤄내며 디 로토센이 3대 유럽 대항전에서 모두 결승에 오르는데 공을 세웠으나 1981-82 시즌이 끝나고 후배 베마이어에게 밀려나며 팀을 떠나 아마추어 클럽으로 이적했다.

 

이름: 위르겐 그로
출생년도: 1956년 7월 17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레프트백, 센터백, 리베로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0kg

활약 기간: 1980~1985
통산 기록: 207경기 5골

 

1970년대 하반기부터 80년대에 걸쳐 활약했던 선수로 주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와 레프트백이지만 수비라인 전 지역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특히 엄청난 지구력으로 유명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경기장 전역을 뛰어다니며 아군의 볼 소유권을 보호하고 상대로부터 볼을 탈환했으며 공격에도 적극 가담했지만 많은 득점을 터트리지는 못했다.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명성을 쌓은 뒤 함부르크로 이적한 그로는 디 로토센에서는 분데스리가 2연패와 1981-82 시즌 UEFA컵 준우승, 그리고 1982-83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우승에 이어 유러피언 컵 우승까지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에 방점을 찍는 데 기여했다.

 

이름: 라파엘 반 더 바르트
출생년도: 1983년 2월 11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2005~2008, 2012~2015
통산 기록: 199경기 66골 55도움

 

2003년, 그 해 최고의 유망주에게 수상하던 골든 보이를 수상하며 전 유럽의 주목을 받았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날카로운 1선 침투에 이어 상대 골키퍼의 예측을 불허하는 왼발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했으며 우수한 볼 컨트롤과 유려한 연계플레이를 바탕으로 한 플레이메이킹으로 명성을 날렸으나 부족한 활동량과 전술적인 제약이 크며 조직적인 압박에 취약하다는 그 시대 대부분의 트레콰르티스타들과 비슷한 단점을 공유했다.

2000년대 중후반 함부르크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2005-06 시즌 분데스리가 3위와 2007-08 시즌 분데스리가 4위에 오르며 디 로토센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끌며 활약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가 토트넘을 거쳐 2012-13 시즌에는 암흑기에 빠진 함부르크로 돌아와 3년간 활약했다.

 

이름: 클라우스 슈튀머
출생년도: 1935년 8월 9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스트라이커,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53~1961
통산 기록: 212경기 135골

 

1950년대 독일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공격 자원으로 WM 시스템의 인사이드 레프트에서 주로 활약했는데 스피드가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왕성한 활동량과 우수한 패싱력을 겸비한 플레이메이커였으며 적절한 위치와 타이밍에 날카로운 킬패스를 전방으로 배달하며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다.

함부르크에서 우베 젤러, 게르트 되어펠과 함께 공격 트리오로 명성을 날리며 오베리가 노르트 6연패를 이뤄내며 북독의 지배자로 군림했고 1959-60 시즌에는 독일 챔피언십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0-61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준결승에 진출하는데 기여했다.

 

이름: 위르겐 밀레프스키
출생년도: 1957년 10월 19일
포지션: 라이트윙,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7kg

활약 기간: 1980~1985
통산 기록: 175경기 59골

 

1980년대 상반기에 전성기를 누렸던 재능 있는 윙어로 키는 작았지만 빠른 스피드와 높은 수준의 드리블 기술을 겸비해 오른쪽 측면을 휘저었으며 군더더기 없는 원터치 패스로 찬스를 만드는데 능했으며 스트라이커로 뛸 때는 수비라인 배후로 침투해 곧바로 득점을 노렸다.

1980-81 시즌에 함부르크 SV에 입단하 밀레프스키는 분데스리가 2연패와 1981-82 시즌 UEFA컵 준우승, 그리고 1982-83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우승에 이어 유러피언 컵 우승까지 이뤄내는데 공을 세우며 구단의 황금기에 방점을 찍는 데 기여했고 밀레프스키 개인도 1982-83 시즌에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해 꾸준히 출전하지 못하고 기량도 쇠퇴하여 함부르크에서 밀려나 생테티엔으로 이적했으며 그곳에서도 거의 뛰지 못하고 다시 함부르크 2군으로 돌아와서 잠시 머물다 은퇴했다.

 

이름: 피오트르 트로호프스키
출생년도: 1984년 3월 22일
포지션: 레프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라이트윙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0kg

활약 기간: 2005~2011
통산 기록: 259경기 36골 55도움

 

2000년대 함부르크에서 활약한 2선 자원으로 키는 작았지만 유려한 드리블로 수비수들을 따돌린 뒤 중앙으로 킬패스를 찔러주며 찬스를 만들거나 강력한 양발 슈팅으로 직접 득점을 노렸으며 주 포지션은 레프트윙이지만 2선 모든 포지션에서 뛸 수 있었다.

바이에른의 유스출신이지만 2004-05 시즌 겨울이적시장에 함부르크로 이적한 트로호프스키는 반 더 바르트와 함께 함부르크의 공격을 이끌며 2005-06 시즌 분데스리가 3위와 2007-08 시즌 분데스리가 4위에 올랐고 2008-09 시즌 UEFA컵 4강 진출을 이뤄내며 함부르크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름: 세르게이 바바레즈
출생년도: 1971년 9월 17일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라이트윙,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3kg

활약 기간: 2000~2006
통산 기록: 216경기 76골 47도움

 

2000년대 상반기에 함부르크의 공격을 이끈 보스니아 출신 공격수로 주 포지션은 처진 공격수였지만 공격형 미드필더와 윙어, 스트라이커를 모두 소화할 수 있었을 정도로 다재다능했으며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볼 컨트롤, 그리고 강력한 피지컬과 강철같은 지구력을 겸비했으며 정교한 왼발과 헤더로 상대의 골문을 노렸으며 창의적인 패스로 찬스를 만드는 부분 역시 능한 다재다능한 공격수였다.

보스니아 올해의 선수상을 3회 수상한 바바레즈는 마다비키아와 함께 디 로토센의 공격을 이끌며 2000-01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차지함과 동시에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되었으며 2003 DFB리가포칼 우승과 2005 UEFA 인터토토컵 우승을 이뤄냈다.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기록은 주로 트렌스퍼마켓을 참조합니다. 잘못될 경우 다른 기록을 참조합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기록이 있으면 공식 홈페이지 우선)

*기록 기준은 2023년 1월 16일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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