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영웅들/대한민국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 Top 15

토르난테 2022. 4. 1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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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KFA 대한축구협회입니다.
*기록일은 2022년 4월 13일 기준입니다.
*1차 수정일은 2022년 12월 6일 기준입니다.
*커리어가 다소 짧은 백승호 선수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을 유보했습니다.

 


15위 조원희

 

생년월일: 1983년 4월 17일
A매치 기록: 36경기 1득점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0년대 K리그의 투지 넘치는 미드필더로 몸싸움이 강력하고 활동 반경이 넓으며 상대를 집요하게 마킹하는 수비수로 가투소를 연상시키는 플레이를 한다.

플레이 초년에는 윙백으로 활약했고 울산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으나 상무를 거쳐 수원 블루윙즈로 이적했을 때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바꾸고 기량을 만개하며 2005년에는 리그컵 우승에 공헌해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2008년에는 리그 우승을 이끌고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위건 애슬레틱으로 이적했다가 수원으로 돌아온 뒤 중국 슈퍼 리그에 진출해 활약하다가 서울 이랜드를 거쳐 다시 수원 삼성으로 돌아와 활약했다.

대표팀에서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라이트백으로 뽑혔으나 주전으로 뛰지 못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었으나 위건에서 경기를 출전하지 못하다가 결국 최종 명단에는 들지 못하고 은퇴했다.

 

14위 김상식

 

생년월일: 1976년 12월 17일
A매치 기록: 59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성남 일화 천마 (現 성남 FC)

 

2000년대 대한민국 축구계 굴지의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센터백으로 스피드는 느렸지만 왕성한 활동량과 터프한 수비로 상대 미드필더를 끝까지 압박해 무력화시키며 독사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여기에 탁월한 위치 선정과 준수한 공중볼 경합 능력도 겸비하고 있었다. 다만 거친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카드를 많이 수집하기도 했다.

일화 천마에서 데뷔해 군 복무 시절인 상무 임대 시절을 제외하고 일곱 시즌을 보내며 1999년 FA컵 우승을 시작으로 천마 군단의 K리그 3회 우승과 2002 아디다스컵 우승과 2002 대한민국 슈퍼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전북 현대로 이적한 뒤에는 2009년과 2011년에 K리그 우승을 이뤄내면서 2009년 K리그 베스트 일레븐을 수상했다.

대표팀에서도 김남일, 최진철 등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나 센터백 자원의 백업으로 활약했으며 2006 독일 월드컵과 2007 아시안컵에 참가했으나 음주 파문으로 인해 대표팀에서 제외되며 잊혀지다가 2014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대표팀에 복귀해 활약하며 조국을 월드컵 본선으로 진출시켰으나 본선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13위 손준호

 

생년월일: 1992년 5월 12일
A매치 기록: 1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62kg
주 소속팀: 전북 현대

 

2010년대 후반 K리그에서 이름을 날렸던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왕성한 활동량으로 경기장 전역을 쉴 새 없이 오가며 공수 양면에서 기여도가 크며 빌드업 상황에서의 우수한 롱패스와 수비 상황에서 터프한 플레이로 명성을 떨쳤다.

포항 스틸러스에서 데뷔해 리그 정상급 선수의 반열에 오르면서 2017 시즌 K리그 도움왕에 올랐으며 전북 현대로 이적한 뒤에는 한층 더 발전하며 K리그 3연패를 이뤄냈으며 2020년 K리그 베스트 일레븐과 MVP를 모두 석권했으며 2021년에는 산둥 타이산의 중국 슈퍼 리그와 FA컵 더블 우승에 기여했다.

대표팀에서는 2014년에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벤투호에서는 중국에서 뛰는 이유로 방역 문제로 오랜 기간 부름 받지 못하다가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백업 멤버로 나섰으며 교체 카드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며 조국의 16강에 한 팔 힘을 보탰다.

 

12위 이영진

 

생년월일: 1963년 10월 27일
A매치 기록: 51경기 1득점
신체조건: 키 169cm
주 소속팀: LG 치타스 (現 FC 서울)

 

1990년대 상반기 대한민국 최고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승부욕이 강해 악바리라고 불렸을 정도로 중앙에서 지칠 줄 모르고 뛰어다니며 상대방을 압박했으며 패싱력도 준수해 간간히 좋은 찬스를 만들어냈다.

1986년 럭키금성 황소에 입단한 이영진은 그 해 K리그 준우승에 공헌했고 1990 시즌에는 K리그 우승을 이뤄낸 주역으로 이름을 날렸고 1991년에는 리그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이영진 개인은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K리그 베스트 일레븐이 선정되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멤버에 선발되어 벨기에전에 출전했으나 부진한 활약을 펼쳐 교체되었으며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노정윤과 합을 맞춰 조별 리그 세 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1990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11위 김정우

 

생년월일: 1982년 5월 9일
A매치 기록: 71경기 6득점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성남 일화 천마 (現 성남 FC)

 

2000년대 후반, 2010년대 초반, 대한민국과 일본 무대를 풍미한 중앙 미드필더로 마른 체형이지만 몸싸움에 능했으며 볼 키핑 능력과 상대의 패스 길목을 차단하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본 포지션인 중앙 미드필더는 물론 공격형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 그리고 스트라이커까지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다.

2003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해 2005년 리그 우승에 기여했으며 이후 J리그의 나고야 그램퍼스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유럽 이적설이 돌았지만 무산되어 국내로 복귀해 성남 일화 천마와 상무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후 전북으로 이적한 뒤에는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결국 태국의 BEC 테로 사사나에서 십자인대 부상으로 은퇴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기성용과 함께 탄탄한 중원 조합을 형성했으며 조별 리그 세 경기와 16강 모두 풀타임으로 뛰며 원정 16강 진출에 공헌하며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보여줬다.

 

10위 정우영

 

생년월일: 1989년 12월 14일
A매치 기록: 70경기 3득점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알 사드

 

2010년대 하반기 대한민국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비록 상대적으로 시야가 좁은 편이고 패싱력이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186cm의 큰 키와 강력한 피지컬에서 나오는 몸싸움 능력과 제공권 경합 능력이 우수하며 프리킥에도 일가견이 있다.

대학 졸업 이후 일본의 교토 상가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으며 이후 J리그와 중국 슈퍼 리그, 그리고 카타르 슈퍼 스타스 등 국내를 제외한 아시아 리그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갔으며 특히 알 사드에서는 챠비 에르난데스 감독의 지휘 아래 카타르 스타스 리그 3연패를 기록했으며 카타르 컵 2연패를 기록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이후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영이 부진하자 슈틸리케가 부임한 이후 한국영의 자리를 꿰찼다. 슈틸리케가 경질된 이후에도 신태용 체제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조별 리그 세 경기 모두 선발로 출전했으며 벤투호에서도 주전으로 활약 중이며 별다른 이변이 없으면 2022 카타르 월드컵에도 주전으로 활약할 예정이다.

 

9위 노정윤

 

생년월일: 1971년 3월 28일
A매치 기록: 45경기 5득점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산프레체 히로시마

 

199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원 자원으로 그 당시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였던 로타어 마테우스를 따서 노테우스라 불렸는데 기술적으로 매우 뛰어난 선수가 발도 빠른 편에, 몸싸움이 약한 것도 아니었기에 밀려나지 않고 공을 소유했으며 넓은 활동반경을 가져가며 경기를 운영했다.

아마추어 시절이었던 1990년부터 대표팀에서 활약했으며 아시안게임 동메달을 따기도 했고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고 1994 미국 월드컵에서도 주전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첫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며 대표팀에서 강한 입지를 다졌었으나 멕시코전 이후로 대표팀 주전에서는 밀려난다.

그 당시 선수로서는 특이하게 국내가 아닌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는데 1994년 팀의 J리그 준우승에 공헌했으며 두 차례의 천황배 준우승을 경험했고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네덜란드의 브레다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이후 세레소 오사카와 아비스파 후쿠오카, 부산 아이파크를 거쳐 울산 현대에 입단해 2005년 리그 우승에 기여하고 2006년에 은퇴한다.

 

8위 이을용

 

생년월일: 1975년 9월 8일
A매치 기록: 51경기 3득점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부천 SK (現 제주 유나이티드)

 

200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드필더로 피지컬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한국 축구 역대 최고의 왼발잡이 테크니션이며 뛰어난 패싱 능력과 넓은 시야, 그리고 뛰어난 볼 키핑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중원에서 팀을 조율하는 능력이 대단했다.

한국철도와 상무를 거쳐 1998년에 부천 SK에 입단해 2002년까지 활약하고 이후 트라브존스포르로 임대를 떠났으며 잠시 안양에서 활약하다가 다시 트라브존스포르로 이적했다. 이후 FC 서울로 다시 돌아왔으며 강원 FC의 창단 멤버로 활약하기도 했다.

1999년에 대표팀의 세대교체의 일원으로 발탁되었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이영표, 김남일이 결장했을 때 선발 출전했으며 비록 미국전에서 페널티 킥을 실축했지만 대회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대한민국의 4강 신화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토고전과 프랑스전에 선발 출전했다.

 

7위 김남일

 

생년월일: 1977년 3월 14일
A매치 기록: 98경기 2득점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전남 드래곤즈

 

200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진공청소기라는 별명답게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바탕으로 몸싸움과 태클에 적극적이고 대인마크에 능했고 전술 이해도도 높은 수준이었으며 전방으로 찔러주는 전진 패스도 준수했다.

1998년 한양대학교 시절부터 세대교체의 선두주자로 대표팀에 소집되었으며 방곡 아시안 게임에도 참가했다. 그리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대한민국의 4강 신화에 공헌했고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주전급 선수로 출전했다. 이후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서브 멤버로 출전했다.

2000년에 전남에 입단해 활약하다가 네덜란드의 페예노르트와 엑셀시오르에 임대를 다녀왔으며 다시 전남으로 복귀한 이후엔 FA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수원 삼성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J리그로 떠나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러시아의 톰 톰스크로 다시 유럽 무대에 도전했으나 실패하고 인천으로 돌아와 활약하기도 했다. 이후 전북과 교토 상가를 거쳐 은퇴한다.

김남일은 재미있는 어록으로도 유명한데 특히 압권은 기자가 지단에게 부상을 입힌 김남일에게 "어떡하냐. 지단 연봉이 얼만데…"라고 걱정스레 묻자 김남일은 "아, 내 연봉에서 까라고 하세요!!"라고 답했다.

 

6위 황인범

 

생년월일: 1996년 9월 20일
A매치 기록: 41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0kg
현 소속팀: 올림피아코스 FC

 

2020년대 한국 중원을 책임지는 선수로 우수한 판단력과 탄탄한 볼 컨트롤 능력, 그리고 왕성한 활동량을 겸비했으며 창의적이면서도 과감한 스루패스로 공격의 활로를 여는 부분에 능한 후방 플레이메이커 유형의 선수였다.

대전 하나 시티즌에서 데뷔해 3년 연속 K리그2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들며 맹활약했으며 북미의 밴쿠버 화이트캡스와 러시아의 루빈 카잔에서도 리그 정상급 선수로 활약했으나 러시아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K리그의 FC 서울로 잠시 이적했다가 그리스의 올림피아코스에서도 팀의 핵심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다.

대표팀에서도 벤투 체제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조국의 16강 진출을 이뤄냈는데 조별리그에서 총 89개의 전진 패스를 기록하며 대회에서 세 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으며 파이널 서드로의 전진 패스는 총 54회로 유럽과 남미의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5위 김용식

 

생년월일: 1910년 7월 25일
A매치 기록: 3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2cm
주 소속팀: 경성 축구단

 

일제강점기부터 활약했던 축구인으로 당대 아시아 최고의 센터하프로 이름을 날렸으며 일본 대표팀에서조차 그 실력을 인정해 김용식을 뽑았을 정도로 선전했던 선수였으며 일제의 베를린 올림픽 8강에 기여하기도 했다.

보성전문학교를 거쳐 경성 축구단과 평양 축구단에서 활약했으며 광복 이후에는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플레잉 코치 자격으로 출전해 멕시코를 5-3으로 꺾는데 공헌했으나 노르달, 리드홀름, 그렌을 앞세운 스웨덴에게 12-0으로 패했고 그 경기는 축구 선수로서의 김용식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선수 시절에는 물론 은퇴한 이후에도 지도자로 활약하며 한국 축구의 발전에 큰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아 2006년 대한민국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최초의 7인이 되었다.

 

4위 조광래

 

생년월일: 1954년 3월 19일
A매치 기록: 100경기 15득점
신체조건: 키 170cm
주 소속팀: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2000년대의 대한민국 축구 팬들에게는 전술적인 고집이 강한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1980년대 올드 축구팬들에게는 날카롭고 정확한 패스로 '컴퓨터 링커'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터프한 태클에도 능한 공수겸장이었다.

프로 출범 이전에는 연세대학교와 포항제철 축구단에서 활약했고 이후 상무에서 복무한 뒤 대우 로얄즈에서 활약하며 1983 시즌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84 시즌과 1987 시즌, 두 번의 K리그 우승에 공헌하기도 했다.

이미 연세대학교 시절부터 대표팀에 뽑혔던 엘리트였으며 1980 아시안컵 준우승에 기여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전에서 자책골을 넣으며 3-2 패배에 큰 역할을 하게 되는 비운의 선수였다.

1988년까지 수상했던 KFA 베스트 일레븐에 여덟 번 뽑혔으며 여론조사 단체인 한국갤럽이 2002년에 조사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과 베스트일레븐지가 2010년에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3위 기성용

 

생년월일: 1989년 1월 24일
A매치 기록: 110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스완지 시티

 

201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지탱했던 최고의 미드필더로 경기장 전체를 아우르는 드넓은 시야와 시원한 중장거리 패스와 강력한 슈팅력을 바탕으로 했던 레지스타였다. 특히 롱패스만큼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잘했던 선수로 회자된다.

FC 서울에서 데뷔해 2008년과 2009년에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고 K리거들이 뽑은 최고의 K리거에 선정되며 리그 정상급 선수로 인정받았으며 셀틱에서도 스코틀랜드에서도 정상급 선수로 인정받아 EPL의 스완지 시티에 진출해 주전 선수로 오랜 기간 활약했으며 특히 2014-15 시즌 스완지 시티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스완지 시티를 떠난 이후에도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마요르카를 거쳐 FC 서울에 다시 돌아와서도 리그 정상급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다.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도 대단했는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모든 경기에 선발 출전하며 팀의 원정 첫 16강 진출에 공헌했으며 이후에 2014 브라질 월드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2015 아시안컵에서도 준우승을 거두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2010년부터 선정한 KFA올해의 선수에 2011년, 2012년, 2016년, 총 3회 선정되었다.

 

2위 허정무

 

생년월일: 1955년 1월 13일
A매치 기록: 104경기 30득점
신체조건: 키 174cm
주 소속팀: PSV 에인트호번

 

1970년대와 80년대 대한민국 최고의 미드필더로 뛰어난 지구력과 터프한 수비, 그리고 영리한 축구 지능을 겸비한 선수로 본업인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앙 미드필더는 물론 최전방 공격수와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그리고 측면 수비수까지 완벽하게 봤으며 뛰어난 득점력은 덤이다.

이미 연세대학교 시절부터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으며 1978 아시안 게임 금메달과 1980 아시안컵 준우승을 경험했으며 네덜란드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1986 멕시코 월드컵에 주전으로 참여했으며 아시안 게임에서도 재차 금메달을 획득하는 활약을 보여줬다. 특히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레프트 윙백으로 참가하며 마라도나를 괴롭혔다.

한국전력 축구단과 해병대 축구단을 거쳐 PSV 에인트호번에 입단해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1982-83 시즌 팀의 준우승에 기여했으며 크루이프, 반 하네엄과 같은 거물들을 잘 마킹하기도 했으며 이후 현대 호랑이의 창단 멤버 겸 초대 주장으로 활약했으며 1984년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활약을 보여주기도 했다.

1988년까지 수상했던 KFA 베스트 일레븐에 일곱 번 뽑혔으며 여론조사 단체인 한국갤럽이 2002년에 조사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과 베스트일레븐지가 2010년에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1위 유상철

 

생년월일: 1971년 10월 18일
A매치 기록: 124경기 18득점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울산 현대

 

1990년대와 2000년대 대한민국 최고의 미드필더로 상술한 허정무와 마찬가지로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서 제 몫을 했으며 뛰어난 체력, 위치 선정, 많은 활동량으로 오프 더 볼 플레이가 굉장히 뛰어났고 다른 부분에서도 볼 터치가 다소 둔탁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결점이 없고 다재다능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1994 미국 월드컵 명단에는 탈락했지만 이후 아시안게임부터는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인 벨기에전에서 동점골을 넣었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폴란드전 득점을 포함해 훌륭한 활약을 펼치며 월드컵 4강 신화에 공헌했으며 개인적으로도 올스타 팀에 들었을 정도로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건국대학교 축구부를 졸업하고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해 활약했으며 1996년에는 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1994년과 1998년에는 리그 베스트에 들었고 특히 1998년에는 리그 득점왕 타이틀도 차지했다. 이후 요코하마 F. 마리노스와 가시와 레이숄에서도 맹활약했으며 다시 울산 현대로 돌아와서 2002년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다시 요코하마로 돌아가 J리그 2연패를 이뤄냈으며 2005년에 돌아와 울산에서 우승을 경험하고 2006년에 은퇴했다.

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K리그에서 1994년에는 수비수로, 1998년에는 미드필더로, 2002년에는 공격수로 베스트 일레븐에 모두 들어본 유이한 선수이며 (다른 한 명은 윙어 출신의 김주성) 1998년에는 상술했듯이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아쉽게 뽑히지 못한 선수로 민병대, 고재욱, 김상식, 하대성, 한국영, 주세종, 손준호 같은 선수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해당 항목에 있을법했는데 없는 선수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분류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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