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영웅들/대한민국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측면 수비수 Top 20

토르난테 2022. 4. 1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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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KFA 대한축구협회입니다.
*최초 기록일은 2022년 4월 11일 기준입니다.
*1차 수정일은 2022년 12월 6일 기준입니다.


20위 김태환

 

생년월일: 1989년 7월 24일
A매치 기록: 19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울산 현대

 

2010년대 후반과 2020년대 초반 K리그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 명으로 별명이 치타였을만큼 빠른 스피드와 왕성한 지구력을 활용해 낮고 빠른 크로스로 이름을 날렸으며 특유의 거친 태클과 몸싸움으로 상대를 제압했으나 이 때문에 상대 서포터팀의 미움을 받기도 했다.

FC 서울과 성남 일화 시절에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다가 울산 현대로 이적한 뒤에 환골탈태하며 리그 정상급 라이트백으로 활약했으며  2020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2022 시즌에는 울산 현대의 17년 만에 K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개인 통산 세 번째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대표팀에서는 벤투 체제 이전까지는 중용받지 못했으며 벤투 체제에서도 소집은 되지만 주로 서브 멤버로 활약했으며 2022 카타르 월드컵에 백업 멤버로 나섰지만 출전하지는 못했다.

 

19위 이기형

 

생년월일: 1974년 9월 28일
A매치 기록: 47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0년대 하반기부터 2000년대 상반기까지 K리그에서 이름을 날렸던 측면 수비수로 공격형 라이트백으로 명성을 떨치며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중거리 슈팅과 데드볼 상황에서의 프리킥으로 명성을 떨치며 캐논슈터라 불렸으며 수비적으로도 꽤 안정적인 선수였다.

고려대학교 시절부터 대표팀에 뽑히며 엘리트 코스를 타던 이기형은 199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창단 멤버로 활약하며 K리그 2연패와 리그컵 4회 우승은 물론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2연패를 포함해 수원에서 13개의 공식전 트로피를 들었으며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한 뒤에도 2003년 리그 우승과 2004년 리그컵 우승 및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냈다.

대표팀에서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데뷔했으며 다이너스티컵에서 일본을 상대한 결승에서 이우영이 코너킥 상황에서 땅볼로 내준 볼을 후방에서 달려들며 골대와 약 30m 떨어진 곳에서 중거리 슈팅을 날리며 득점하는 명장면을 보여줬으며 1997년에는 일본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3차전에서 날카로운 크로스로 서정원의 동점골을 도우며 맹활약했지만 정작 1998 프랑스 월드컵 명단에서는 탈락했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도 부상으로 낙마했다.

 

18위 홍철

 

 

생년월일: 1990년 9월 17일
A매치 기록: 47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0년대 대한민국 축구계 정상급 공격형 레프트백으로 천리마와 같은 빠른 스피드와 엄청난 활동량과 높은 수준의 개인기를 바탕으로 상대의 수비진을 쉴 새 없이 공략했으며 날카로운 왼발을 활용한 얼리 크로스와 러닝 크로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었으며 피지컬이 좋은 편은 아니라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약점을 드러냈다.

성남 일화에서 데뷔해 2010 AFC 챔피언스리그와 2011 FA컵 우승에 공헌했으며 수원 삼성으로 이적한 뒤에도 FA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2020년에는 울산 현대 소속으로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K리그에 머무는 동안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으며 2021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베스트팀에 선정되었다.

대표팀에서도 박주호, 김진수, 윤석영 등과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였으나 밀려나며 오랫동안 월드컵 경기에 선발로 나서지 못하다가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독일전에 선발로 출전해 레온 고레츠카와 요주아 키미히가 맡았던 오른쪽 라인에서 그들을 따돌리며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며 카잔의 기적이라 불리는 대표팀의 승리에 공헌했으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백업 멤버로 나섰으며 16강 브라질전에서 교체 출전했다.

 

17위 현영민

 

생년월일: 1979년 12월 25일
A매치 기록: 15경기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울산 현대

 

2000년대 대한민국 축구 정상급 레프트백으로 측면 수비수 치고는 발이 빠르진 않았지만 뛰어난 체력과 활동량을 앞세운 돌파력으로 이를 극복해 팬들은 경운기 드리블이라 불렀다. 그리고 스로인을 멀리 던지는데 능했으며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그의 킥력은 또 하나의 공격 루트였다.

울산 현대에서 데뷔해 활약해 팀의 주장으로 K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활약을 보여줬으며 이후 제니트에 지출했다가 사비로 이적료를 지불해 울산 현대에 복귀했으며 이후 FC 서울과 성남 일화를 거쳐 전남 드래곤즈에서 말년을 불태우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K리그 정상급 측면 수비수였다,

하지만 대표팀에선 이영표, 김동진 등 수위급 레프트백들에 밀려 백업 멤버로 활약했으며 백업 멤버로 2002 한일 월드컵의 4강 신화를 경험했다.

 

16위 이용

 

생년월일: 1986년 12월 24일 
A매치 기록: 55경기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전북 현대 모터스

 

201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측면 수비수로 오버래핑을 자주 시도하며 크로스의 질 또한 우수한 공격형 풀백인데 수비력마저도 준수하다.

울산 현대에서 데뷔해 활약해  2012 AFC 챔피언스 리그 무패 우승에 기여하였으며 2013년에는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전북 현대에서는 K리그 5연패를 이뤘으며 2018년과 2019년에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며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대표팀에서도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며 2014 브라질 월드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전 경기 풀타임으로 출전해 활약했다.

 

15위 최성용

 

생년월일: 1975년 12월 25일
A매치 기록: 65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대한민국 무대와 일본 무대에서 활약했던 측면 수비수로 엄청난 체력을 활용해 상대 공격수를 마킹하며 괴롭혔다, 특히 대표팀에서는 나가타 히데토시를 전담 마킹하며 유명해졌다.

고려대학교 시절부터 대표팀에 뽑혔으며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빗셀 고베와 린츠를 거쳐 수원 삼성에서 전성기를 맞았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주전 멤버로 활약했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도 백업 멤버로 4강 신화를 이루었다.

 

 

14위 신홍기

 

생년월일: 1968년 5월 4일
A매치 기록: 48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3cm
주 소속팀: 울산 현대

 

199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격형 풀백으로 유명했던 수비수로 지구력이 뛰어났으며 당시 해설진들은 신홍기를 언급할 때 항상 체력이 뛰어난 선수라 언급했으며 우수한 킥력으로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기여도가 높았고 태클 실력도 준수했다.

강철과 함께 대표팀 세대교체의 기수로 뽑혀 프로에 입단한 해에 선발되었으며 강철과 주전 경쟁을 했으나 강철의 부상으로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스페인전의 부진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으며 명예회복의 기회도 없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하석주와 김태영에게 밀려나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

소속팀에서도 울산 현대 호랑이에서 전성기를 구가해 1992년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1996년에는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김호 감독과 뛰고 싶어 하던 신홍기는 1996년 수원 창단 당시 수원에 합류하기를 원했으나 구단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합류하지 못했으며 이 과정에서 폼이 떨어진 1998년에야 수원으로 합류했다. 그러나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합류하고 챔피언 결정전에서 만난 울산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고 우승을 하고 다음 해에는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며 부활한다. 그러나 2001년에 겪은 다리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었다. 수비수임에도 공격력이 대단해 K리그 30골 30도움 고지를 넘었다.

 

13위 강철

 

생년월일: 1971년 11월 2일
A매치 기록: 54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6cm
주 소속팀: 부천 SK (現 제주 유나이티드)

 

원래는 유망한 스트라이커였으나 대학 시절 풀백으로 보직을 변경한 199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던 유망주로 강인한 정신력과 영리한 판단력을 앞세워 상대의 측면 공격을 막아냈으며 리베로 역할도 수행할 수 있었다.

1989년에 만 17세 7개월의 어린 나이에 처음 대표팀에 입성했으며 10년 넘게 대표팀에 소집되었으나 주전으로 활약하는 게 예상되었던 1994 미국 월드컵을 십자인대 부상으로 날렸으며 상무에서 선수생활을 하던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하석주와 김태영에게 밀려 뽑히지 못했으며 한일월드컵에서도 히딩크의 부름을 받지 못했던 건 아니지만 최종 명단에서는 탈락했다. 다만 아시안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했다.

K리그에서는 유공 코끼리에 입단해 니폼니시의 니포 축구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두 번의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이후 오스트리아의 LASK 린츠로 이적했으나 부진하여 4개월 만에 국내로 돌아왔으나 친정 부천 SK가 아닌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하며 과거 유공/부천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그는 팬들의 원망을 받으며 유니폼 화형식까지 진행되는 비극적인 상황을 겪었다.

 

12위 구상범

 

생년월일: 1964년 6월 15일
A매치 기록: 67경기 3득점
신체조건: 키 175cm
주 소속팀: 럭키 금성 황소 (現 FC 서울)

 

대한민국 축구계의 인간승리의 상징으로 학창 시절에는 작은 신체 조건으로 축구부에서 중용받지 못했음은 물론 경신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발목 골수염에 걸려 아예 선수 생활을 접을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골수염으로 쉬는 와중에 키가 많이 자라서 다시 축구를 했다. 대학무대에서도 외면받았다 간신히 인천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대학 무대에서 기량이 급속도로 올라 럭키 금성 황소에 합류하게 된다.

뛰어난 활동량과 예리한 킥력, 득점력을 갖춘 구상범은 데뷔 시즌부터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1987년에는 리그 베스트 일레븐을 수상했고 1990년에는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1993년까지 활약하며 리그 우승 1회와 준우승 3회를 기록했으나 이후 대우 로얄즈와 포항 아톰즈에서의 활약은 아쉬웠다.

럭키 금성에서의 활약으로 전문 레프트백이 없던 대표팀에도 빠르게 자리 잡았으며 탄탄한 수비력을 보여주며 1988년 아시안컵 준우승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에서 맹활약했으나 막상 본선에서는 세계 무대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이후에는 정용환에 이어 대표팀 주장을 잠시 맡았으나 김호 감독 부임 이후 세대교체로 인해 강철과 신홍기에게 주전 자리를 내줬으나 강철의 부상으로 백업 멤버로 1994 미국 월드컵에 합류한다.

 

11위 최종덕 

 

생년월일: 1954년 6월 24일
A매치 기록: 98경기 9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포항제철 축구단 (現 포항 스틸러스)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반에 대한민국에서 명성을 날린 라이트백으로 당대 수비수치고는 공격에 자주 가담했으며 특히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을 노리는 플레이로 유명했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며 1978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1980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끌었으며 실업팀 포항제철 축구단에서도 활약하며 1976년 KFA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으며 1981년 추계실업축구연맹전에서 우승을 기록했고 KFA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다.

1982 스페인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탈락하고 대표팀에서 은퇴했으며 1983년 K리그 출범 원년에 할렐루야 축구단의 멤버로 첫 K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할렐루야 축구단이 해체하자 1985년에는 럭키 금성에서 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화려하게 은퇴했다.

 

10위 김판근

 

생년월일: 1966년 3월 5일 
A매치 기록: 59경기 3득점
신체조건: 키 168cm
주 소속팀: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대한민국 성인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연소 출장 기록 보유자로 작은 키와 마른 체구를 지녔음에도 볼을 영리하게 잘 찼던 유형의 선수로 그라운드의 여우라 불렸으며 측면 수비수와 중앙 미드필더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선수다.

청소년 시절부터 1983 청소년 월드컵 4강 신화의 멤버로 시작한 엘리트로  1983년 11월 1일, 만 17세 242일의 나이로 태국전에서 A매치에 데뷔했다. 하지만 박경훈과 최강희의 벽은 높아 당분간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으나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로 주전 라이트백으로 활약해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대우 로얄즈에서는 오랜 시간 주전 라이트백으로 활약해 두 번의 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1993년에는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이후 안양 LG 치타스로 이적한 이후로는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1995년에 또다시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9위 김동진

 

생년월일: 1982년 1월 29일
A매치 기록: 62경기 2득점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0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비형 풀백으로 기동력은 평범했지만 체격이 좋고 중앙 수비수 경험도 있기에 대인방어 능력이 우수한 데다가 크로스 능력도 준수해 공격적으로도 부족한 선수는 아니었다.

안양 LG 치타스에서 데뷔했으며 데뷔 시즌에 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2004년에는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독일 월드컵 이후 러시아의 신흥 강호 제니트로 진출해 로테이션 선수로 활약했으며 2007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와 2007-08 UEFA컵 우승과 2008-09 UEFA 슈퍼컵 우승을 경험했다.

2003년에 합류한 대표팀에서는 2003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을 경험했고 독일과의 친선전에서는 데뷔골을 기록했으며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출전하며 원정 첫 승에 공헌했다. 하지만 주전으로 활약하던 제니트에서 서브로 밀려난 시점에서 차두리의 약진으로 이영표가 다시 왼쪽으로 가자 대표팀 주전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으며 뇌혈류 장애로 졸도한 뒤에는 기량이 급속도로 하락했던 비운의 선수다.

 

8위 최강희

 

생년월일: 1959년 4월 12일
A매치 기록: 33경기
신체조건: 키 176cm
주 소속팀: 울산 현대

 

1980년대 K리그를 대표하는 측면 수비수로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스테미너의 화신이라 불렸으며 더불어 뛰어난 판단력을 바탕으로 한 영리한 경기 운영 능력이 돋보였으며 양 측면 수비수는 물론 중앙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도 소화할 수 있었던 선수다.

소속팀에서도 실업 리그 시절부터 활약했던 선수로 K리그 원년에는 포항제철 아톰즈에서 활약했으나 부상으로 거의 출장하지 못하고 다음 해 현대 호랑이 창단 멤버로 활약하며 1986년에는 K리그 MVP를 이룩했으며 네 번의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그간 라이벌 박경훈에 밀렸으나 리그의 활약으로 다소 늦은 나이인 20대 후반에 대표팀에 뽑혀 중앙 수비수와 레프트백같은 다양한 포지션에 기용되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아시안컵 무패 통과에 공헌했으나 본선에서는 세계 무대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1998년 피파에서 선정한 20세기 아시아-오세아니아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7위 박주호

 

생년월일: 1987년 1월 16일
A매치 기록: 40경기 1득점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FSV 마인츠 05

 

201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레프트백으로 탄탄한 기본기와 높은 지능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플레이를 하는 측면 수비수다.

K리그가 아닌 J리그의 미토 홀리호크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가시마 앤틀러스와 주빌로 이와타에서 활약하다가 바젤에서 기량을 만개한 선수로 리그와 유럽 대항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분데스리가의 마인츠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렸다. 마인츠에서 도르트문트로 이적한 이후 국내에 돌아와 울산 현대나 수원 FC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월드컵과 유독 인연이 없는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홍명보 감독의 개인적인 선호와 박주호 자신의 부상 문제로 윤석영한테 주전 자리를 내줬으며 이후에는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2015 아시안컵 결승 진출에 공헌했으나 2018 러시아 월드컵 첫 경기 스웨덴전에서 장현수의 무리한 패스를 받으러 가다 햄스트링 파열로 부상당해 잔여 경기를 모두 결장하며 월드컵과는 악연으로 끝난 비운의 선수다.

 

6위 김진수

 

생년월일: 1992년 6월 13일
A매치 기록: 65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전북 현대

 

2010년대 중후반과 2020년대 초반에 걸쳐 명성을 떨친 아시아 정상급 레프트백으로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공격과 수비를 쉴 새 없이 넘나들며 우수한 언더래핑으로 중앙으로 볼을 보내 찬스를 만드는데 능하며 현영민 못지않은 롱 스로인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스피드와 수비력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일본 J리그 소속의 알비렉스 니가타에서 데뷔해 호펜하임으로 이적해 독일 분데스리가에 도전했으나 주전 도약에 실패하고 국내의 전북으로 이적해 활약하며 K리그 5회 연속 우승을 이끌었으며 2017년과 2022년에는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대표팀에서는 박주호, 홍철, 윤석영과 주전 경쟁을 하며 활약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2014 브라질 월드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 나서지 못했는데 그래도 2015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끌었으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조국의 16강 진출에 공헌했다.

 

5위 하석주

 

생년월일: 1968년 2월 20일
A매치 기록: 94경기 23득점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부산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199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왼쪽 자원으로 윙백은 물론 레프트 윙과 왼쪽 메짤라까지도 능숙하게 소화하는 다재다능한 선수였으며 뛰어난 왼발 킥력을 활용한 크로스와 프리킥, 코너킥으로 공격 포인트를 양산하는데 능해 왼발의 달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대우 로얄즈에 입단해 활약하며 두 번의 리그 우승과 1996년에는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며 K리그 정상급 왼쪽 자원으로 평가받았으며 특히 1997년에는 K리그 우승은 물론 아디다스컵과 프로스펙스컵을 모두 우승하는 전관왕의 영광을 누렸고 1998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세레소 오사카와 비셀 고베에서 활약하다가 포항으로 돌아와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대표팀에서도 세대교체의 일원으로 발탁되어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였으며 1996년 이후 주전 자리를 차지해 1998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해 멕시코전 선제골을 넣었으나 백태클을 걸다가 퇴장당하며 팀의 역전패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이후 네덜란드전은 징계로 나오지 못했으나 벨기에전에서 유상철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며 부분적으로 명예회복을 했다. 이후 2001년까지 대표팀에 뽑혔으나 결국 2002 한일월드컵 대표팀에는 탈락하는 비운을 겪는다.

대한민국의 월드컵 역사에서 첫 선제골의 주인공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4위 차두리

 

생년월일: 1980년 7월 25일
A매치 기록: 76경기 4득점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셀틱 FC

 

대한민국 축구사 최고의 레전드 차범근의 아들로 200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준족으로 북유럽인이 연상되는 뛰어난 피지컬과 공을 앞질러가는 빠른 스피드로 차미네이터라 불렸으며 초년에는 윙 포워드로 활약했으나 마인츠에서 측면 수비수로 자리 잡아 전성기를 맞은 선수다.

고려대학교 시절 한일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되어 백업 멤버로 활약했으나 이후 레버쿠젠과 프랑크푸르트에서 벤치를 전전하며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탈락했다. 이후 마인츠와 코블렌츠에서 라이트백으로 자리를 변경해 프라이부르크에서는 라이트백에서 완벽하게 적응하며 부활했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뛰어난 피지컬을 보여주며 대한민국의 원정 첫 16강에 크게 공헌했다.

이후에는 셀틱으로 이적해 활약했으며 대표팀에서 밀린 이후에는 FC 서울에서 두 번의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며 유종의 미를 거둔다. 특히 2015년에는 아시안컵과 K리그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3위 송종국

 

생년월일: 1978년 3월 5일
A매치 기록: 60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단일 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측면 수비수중에서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선수. 신체능력이 대단했으며 지치지 않는 지구력과 견고한 대인 마킹 능력을 겸비했으며 킥력도 훌륭했고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할 수 있는 축구 지능도 갖추었다.

선수 초창기부터 히딩크의 황태자로 군림하며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했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라이트 윙백으로 활약하며 루이스 피구를 묶어내고 전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하는 대단한 체력을 보여주며 대한민국의 4강 신화를 경험했고 이후 토고전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월드컵 첫 원정승을 이뤄냈으나 이미 폼이 떨어져 우측으로 이동한 이영표한테 밀려났다.

부산 아이콘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2001년에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고 아스널로 갈 뻔했으나 구단 간 사인만 남겨둔 상태에서 부산 쪽이 시간을 끌어 영국 이적시장 시간을 지나 어쩔 수 없이 페예노르트로 이적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당대 챔피언스리그 우승후보 유벤투스를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이며 활약했으나 부상으로 내리막을 겪었다.  이후에는 예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수원 삼성에서 리그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2위 박경훈

 

생년월일: 1961년 1월 19일
A매치 기록: 93경기 1득점
신체조건: 키 172cm
주 소속팀: 포항제철 돌핀스-아톰즈 (現 포항 스틸러스)

 

대한민국 축구에서 최초로 오버래핑을 시도했던 선구자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오버래핑이 발군이었고 센터백도 볼 수 있었을 정도로 기본적인 수비력도 상당히 뛰어났다.

1980년부터 대표팀에 발탁되어 1986 멕시코 월드컵과 1988 아시안컵,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모두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포항에서도 세 번의 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다소 논란이 있었지만 1988년에는 리그 MVP에 뽑히기도 했다. 이 외에도 두 번의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1988년까지 수상하던 KFA 베스트 일레븐에 여섯 번이나 들었으며 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1위 이영표

 

생년월일: 1977년 4월 23일
A매치 기록: 127경기 5득점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PSV 에인트호번

 

박지성과 함께 21세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헛다리를 활용해 상대 수비수를 제치는데 능했으며 철두철미한 자기 관리 능력으로 다져진 철인 같은 스테미너와 뛰어난 판단력을 겸비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대한민국 대표팀의 4강 신화에 크게 기여했으며 이후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원정 첫 승에 공헌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원정 첫 16강에 공헌하며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클럽에서도 대단했는데 안양 LG 치타스에서 2001년에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2002 한일 월드컵 활약으로 진출한 PSV 에인트호번에서도 2003-04 시즌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2004-05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하는 활약을 보여줬고 토트넘 핫스퍼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말년에 간 밴쿠버 화이트캡스에서도 유종의 미를 거뒀다.

2010년에 베스트 일레븐지가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되었다.

 


아쉽게 뽑히지 못한 선수로 최종덕, 장외룡, 이기형, 박진섭, 김진수, 홍철, 김태환과 같은 선수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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