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 레전드 스토리 8편 - 삼프도리아의 신 로베르토 만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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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 레전드 스토리 8편 - 삼프도리아의 신 로베르토 만치니

토르난테 2022. 1. 2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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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악명 높은 역병인 코로나로 인해 2021년에 열린 유로 2020이 개막하기 직전에 이탈리아의 우승을 점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로 디펜딩 챔피언이자 황금 세대라 불렸던 포르투갈, 카림 벤제마가 복귀하며 공격진이 강화된 2018 러시아 월드컵 챔피언 프랑스, 포르투갈과 함께 황금 세대라 불리는 잉글랜드가 우승후보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이 이끄는 이탈리아는 조별 예선에서 3전 전승을 거뒀으며 오스트리아와 벨기에, 스페인을 연파하고 결승에 진출해 잉글랜드를 승부차기 끝에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는 기적을 보여줬다.

만치니 감독은 전성기에서 내려왔다는 평가를 비웃듯이 아주리에게 기적을 선물했었다. 하지만 만치니는 이미 선수 시절에도 기적을 경험했다.

 

유로 우승을 달성한 만치니



오늘 할 이야기는 세리에가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리그였던 시절에 삼프도리아와 만치니가 이뤄낸 이야기다.

그럼 삼프도리아의 신을 소개하겠다.

 


프로필

 

사진 출처: 법정스님의 소유

 

선수이름: 로베르토 만치니

출생일: 1964년 11월 27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0cm / 78kg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커리어

 

볼로냐의 유스부터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프로 데뷔 시즌인 1981-82 시즌에 31경기 9골이란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고 이 활약을 본 삼프도리아가 그를 영입했다.

1983-84 시즌까지는 소속팀 주전 공격수 자리를 차지했던 그냥 좀 하는 유망주의 레벨이었으나 1984년을 기점으로 성장해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인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었으며 1984-85 시즌 코파 이탈리아 결승 2차전에서 밀란을 상대로 훌륭한 활약을 펼치고 페널티킥 골까지 넣으며 우승에 공헌한다.

이후에도 세리에는 굉장히 거칠고 수비적인 리그라 많은 골을 기록하지는 못하지만 착실하게 성장했다. 그럼에도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벤치를 지키는데 그쳤다.

하지만 1986년 이후로 만치니는 많은 게 바뀐다. 대표팀에서는 16강에서 탈락한 문제로 감독 베아르초트와 쟁쟁한 선배들이 다소 은퇴했고 신임 감독 안젤리오 비치니가 부임하면서 만치니는 주전으로 활약하게 되었으며 클럽팀에서는 훗날 구단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된 유고슬라비아 출신 명장 부야딘 보슈코프가 부임했고 그는 만치니의 성장을 도왔다.

 

감독 부야딘 보슈코프와 동료들과 함께



만치니의 기량은 점점 올라가며 1987-88 시즌엔 리그 최우수 선수상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으며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 토리노를 제압했으며 시즌이 끝나고 여름에 열린 UEFA 유로 1988에도 투톱 파트너 비알리와 함께 주전으로 참가해 서독전에 선제골을 기록하며 팀의 준결승 진출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준결승에서는 로바노프스키의 소련 대표팀에게 2-0으로 패하며 4강에 그쳤다.

1988-89 시즌엔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 마라도나와 카레카가 이끄는 나폴리를 만났다. 나폴리 원정은 지옥의 원정으로 통했으며 마라도나까지 건재했기에 1-0으로 패했다. 그러나 홈에서 만치니의 페널티 킥 득점을 포함해 4-0으로 대승을 거두며 복수에 성공하며 코파 이탈리아 2연패라는 업적을 세웠다.

이어서 코파 이탈리아 우승팀 자격으로 나간 1989-90 시즌 컵 위너스 컵에서  4강에선 모나코를 꺾고 결승에선 만치니의 활약에도 상대 수비도 견고해 연장전에 간다. 그러나 연장전에서 만치니의 파트너 비알리의 멀티골로 안더레흐트를 2-0으로 이기고 첫 유럽 대항전에서 우승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만치니의 선수생활은 상승세였다. 그러나 국가대표팀이 문제였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파트너 비알리와 함께 부진해서 신예 바조와 반짝 스타라 평가받았던 스킬라치에게 밀려나기에 이른다. 이탈리아는 3위를 거두었지만 바조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린 만치니에겐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이후에는 신예 공격수 주세페 시뇨리에게도 밀리며 대표팀과 멀어졌다.

 

당대 최고의 판타지스타들이자 대표팀 주전 경쟁 상대였던 만치니와 바조



그리고 월드컵이 끝난 이후 대망의 1990-91 시즌,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리그에서는 중상위권에 위치한 삼프도리아는 양 밀란이나 유벤투스에 가려져 우승 후보로 평가받지는 못했다.

만치니와 비알리의 투 톱은 리그를 폭격했으며 중원의 토니뉴 세레주와 수비라인의 에이스 비에르코보드는 상대 공격진을 잘 제어했다. 결국 삼프도리아는 34경기 20승 11무 3패, 57 득점 24 실점을 기록하며 세리에 A에서 우승하고 스쿠테토를 따냈다.

경쟁 상대도 강력했는데 아리고 사키와 오렌지 삼총사가 이끄는 극강의 밀란 제너레이션과 트라파토니와 게르만 삼총사가 이끄는 인테르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우승했으며 훌륭한 공수 밸런스를 자랑했는데 삼프도리아가 기록한 57 득점은 리그 내 최다 득점이고 24 실점은 리그 내에서 AC 밀란 다음으로 적은 실점이었다.

 

1990-91 시즌 삼프도리아의 우승 세레머니



그리고 비알리와 만치니 투 톱은 31골을 합작해냈으며 많은 찬스를 만들어내 파트너 비알리의 득점왕을 도왔기에 삼프도리아 우승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리그 최우수 상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다.

삼프도리아의 돌풍은 유럽으로 향했다. 컵 위너스 컵에서는 강했지만 유러피언 컵은 처음이었던 삼프도리아는 디펜딩 챔피언 츠르베나 즈베즈다와 벨기에의 강호 안더레흐트, 그리스의 챔피언 파나티나이코스를 모두 제치고 결승에 진출했다.

 

1991-92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삼프도리아 라인업



비록 결승전에서는 크루이프가 이끄는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지만 112분에 쿠만의 프리킥이 들어가며 아쉽게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1991-92 시즌 이후 삼프도리아의 전성기를 이끈 부야딘 보슈코프 감독이 떠났으며 1993년엔 만토바니 회장이 병사하면서 그의 아들 엔리코가 삼프도리아를 물려받았으나 엔리코는 팀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방만한 경영으로 팀을 서서히 파멸시키고 있었다

그래도 만치니는 변함없이 우수한 활약을 보여줬으며 1992-93 시즌에는 무려 15골을 득점했으며 1993-94 시즌에는 AC 밀란에서 임대온 루드 굴리트와 함께 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도왔으며 팀의 마지막 코파 이탈리아 우승컵을 선물한다.

만치니는 노장에 접어든 1996-97 시즌까지도 33경기에 나와 15골을 넣으며 굉장한 활약을 보여주며 1996-97 시즌에 수상하기 시작한 세리에 올해의 선수상 부문과 세리에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상 부문에서 초대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린다.

하지만 그게 삼프도리아에서의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으며 구단주의 방만한 운영에 지친 그는 감독 스벤 예란 에릭손과 함께 삼프도리아 팬들의 눈물을 뒤로하고 라치오로 이적한다.

 

만치니와 새 은사 스벤 예란 에릭손


이미 33세의 나이지만 라치오에서도 주전 공격수 복시치의 잦은 부상으로 생각보다 많은 경기에 출전했으며 교체로 나와서도 경기 흐름을 바꾸는 슈퍼 서브 역할을 맡아 1997-98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UEFA컵에서 준우승을 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1998-99 시즌엔 무려 47경기 12골을 넣으며 건재함을 과시했으며 컵 위너스 컵 우승에도 공헌했으며 1999-2000 시즌 시작 전 유러피언 슈퍼 컵에서는 선발 출전해 트레블을 이룬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격파하기도 했다. 이후 1999-2000 시즌에는 소속팀 라치오가 도메스틱 더블을 이루긴 하지만 만치니는 리그에서는 한 골도 득점하지 못했으며 2000-01 시즌에는 전력 외로 분류되어 2001년 겨울 레스터 시티로 이적해 잠깐 활동해 5경기에서만 출전하고 은퇴했다.

삼프도리아가 1부 리그에서 거둔 우승은 모두 만치니와 함께 이룬 우승이었으며 그가 없는 삼프도리아는 우승컵이 없었으며 이 구단의 최고 출장자이자 최고 득점자마저 만치니였다. 즉 이 구단의 신이라기엔 부족함이 없는 사나이다.

 

레스터 시티로 이적한 만치니



클럽

1981~1982 볼로냐 FC 1909: 31경기 9골
1982~1997 UC 삼프도리아: 567경기 171골
1997~2001 SS 라치오: 136경기 24골
2001 레스터 시티 FC: 5경기

클럽 통산: 739경기 204골

국가대표팀

1984-1994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36경기 4골

 


플레이 스타일

 

'이탈리아의 또 다른 판타지스타'

 

전형적인 이탈리아의 판타지스타로 처진 공격수와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활약했으며 환상적인 볼 컨트롤과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괴롭혔으며 우수한 발리 슈팅 능력을 활용해 제법 멋있는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뛰어난 창의성과 넓은 시야를 겸비해 팀의 공격 찬스를 만들고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했다. 즉 선배인 쥐세페 메아차나 후배인 로베르토 바조, 시뇨리, 델 피에로와 유사한 스타일이다. 이런 스타일로 세리에 A의 MVP격인 구에린 도르를 두 번이나 수상했고 세리에 이탈리아인 올해의 선수상을 최초로 수상했다.

말년에도 뛰어난 경기 감각과 득점 감각을 유지해 라치오의 전성기때 슈퍼 서브로 활약했다.

특히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같이 투 톱으로 호흡을 맞춘 동갑내기 공격수 지안루카 비알리와 조합이 좋아 'I Gemelli del gol' 즉 골 쌍둥이라고 불렸다.

 

'I Gemelli del gol' 이라 불렸던 최고의 투 톱 파트너였던 만치니와 비알리

 


여담

 

* 그의 삼프도리아 시절엔 팬들 사이에서 이런 유머가 돌았다.

루드 굴리트가 말하길  "베를루스코니가 말하기를 내가 세계 최고의 선수라 한다."

로베르토 바조가 말하길 "무슨 소리! 내가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잔니 아녤리가 인정했다."

디에고 마라도나가 말하길  "모두 주목! '신(God)'이 말하기를 내가 세계 최고의 선수이다." 

이때 삼프도리아 팬들이 마라도나에게  "마라도나, 헛소리하지 마라, 신(만치니)은 너에게 한마디의 말도 건네지 않았다!!"라고 일갈했다.

이런 이야기가 유행할 정도로 삼프도리아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선수였다.

* 맨체스터 시티 감독을 거치면서 덕장으로 유명해졌지만 선수 당시엔 다혈질이던 만치니는 1995년 11월 경기에서 자신이 파울을 당했고 페널티킥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만치니는 주심이 휘슬을 불지 않자 성질을 못 이기고 자신의 주장 완장을 땅바닥으로 던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감독이었던 에릭손 감독은 만치니에게 욕설을 날렸을 정도고 그가 다시 필드로 돌아온 후 그놈의 성질을 못 이기고 곧바로 심각한 파울로 퇴장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6주 동안 출전할 수 없는 중징계를 받았다.

* 코파 이탈리아의 끝판왕이다. 선수 시절 6회 우승과 감독 시절 4회 우승 즉 도합 10회 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두었으며 도메스틱 컵으로 범위를 넓히면 총 12회 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두었다.

* 아틸리오 롬바르도와는 삼프도리아 시절부터 라치오 시절을 함께했으며 감독 취임 이후에도 항상 그를 수석코치로 데리고 다녔다. 이후에는 잠시 결별했지만 2019년에 롬바르도는 다시 만치니의 휘하 코치로 돌아왔고 유로 2020 우승에 공헌한다.

* 시니사 미하일로비치와의 우정으로도 유명하다. 미하일로비치와 만치니는 삼프도리아와 라치오 그리고 인테르에서 함께했으며 미하일로비치는 만치니가 경질되자 그와의 의리를 앞세워 코치직을 사임하고 신임 감독 무리뉴를 비난했다. 그가 백혈병 투병생활에 들어가자 만치니는 "시니사 너는 강한 친구니까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이겨내고 겨울에 같이 스키 타러 가야지" 라며 응원하기도 했다.

 

만치니와 미하일로비치

 


수상 이력

 

※ 선수 시절만 기재한다.

클럽팀

삼프도리아

1984-85 코파 이탈리아 우승
1987-88 코파 이탈리아 우승
1988-89 코파 이탈리아 우승
1989-90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우승
1990-91 세리에 A 우승
1991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1991-92 유러피언 컵 준우승
1993-94 코파 이탈리아 우승

 



라치오

1997-98 코파 이탈리아 우승
1997-98 UEFA컵 준우승
1998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1998-99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우승 (개인 통산 2회)
1999 UEFA 수퍼컵 우승
1999-2000 세리에 A 우승 (개인 통산 2회)
1999-2000 코파 이탈리아 우승 (개인 통산 6회)

 

라치오 시절의 컵위너스컵 우승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1986 멕시코 월드컵 16강
1988 UEFA 유로 4강
1990 이탈리아 월드컵 3위

개인상

1987-88 구에린 도르 (구에린 지 선정 세리에 A MVP)
1990-91 구에린 도르 (구에린 지 선정 세리에 A MVP)
1996-97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초대 수상자)
1996-97 세리에 A 올해의 이탈리아인 선수 (초대 수상자)
2017 골든 풋 선정 풋볼 레전드

 

골든풋 수상자 만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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