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팀

국대 올스타 짜보기/남미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팀

토르난테 2021. 8. 1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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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별칭: 로스 차루아스, 라 셀레스테

월드컵: 출전 13회, 우승 2회

코파 아메리카: 출전 45회, 우승 15회

컨페드컵: 출전 2회, 4위 2회

올림픽: 출전 3회, 금메달 2회

최다 출전 선수: 디에고 고딘, 159경기

최다 득점 선수: 루이스 수아레즈, 68골

 


베스트 11

 

골키퍼

이름: 라디슬라오 마주르키에비치
출생년도: 1945년 2월 14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65~1974
A매치 기록: 36경기 35실점

 

레프 야신이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던 1970년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작은 키에도 멀리 튕겨내는 펀칭력과 괴물 같은 반사신경과 탄력적인 점프, 그리고 1대 1 상황에서의 침착한 전진 수비와 볼 컨트롤 능력까지 우수했던 완성형 골키퍼였다.

페냐롤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명성을 떨친 마주르키에비치는 대표팀에서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 처음 참가했으며 8강에 진출했으나 오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서독전에서 대패했다. 이후 1967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며 팀을 4강에 올렸으며 마주르키에비치 본인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센터백

이름: 호세 나사치
출생년도: 1901년 3월 24일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5kg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23~1936
A매치 기록: 41경기


우루과이를 넘어 축구 역사에서도 최고의 수비수 반열에 있는 선수로 당시로서는 굉장한 거구로 압도적인 힘과 영리한 위치 선정으로 상대 공격수를 잡아먹었다. 그의 튼튼한 수비력에 우루과이의 유명한 소설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X선조차 그의 수비를 뚫지 못할 것이라는 찬사를 보냈으며 리더십도 뛰어나 위대한 사령관이라 불렸다.

베야 비스타에서 전성기를 보낸 나사치는 대표팀에서도 핵심 수비수로 활약했는데 월드컵이 탄생하기 이전 세계 최고의 축구 권위 대회인 올림픽에서 주전 멤버로 두 번이나 금메달을 땄으며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네 번이나 우승했다. 그리고 초대 월드컵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면서 공격수들을 제치고 MVP를 수상했다. 이후 1935년 코파 아메리카 대회에서도 우승컵과 대회 MVP를 모두 석권했다.

 

센터백

이름: 호세 산타마리아
출생년도: 1929년 7월 31일
신체조건: 키 179cm
포지션: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52~1957
A매치 기록: 20경기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적인 수비수이자 1950년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유명했으며 벽이라고 불릴 정도로 압도적인 대인 수비 능력과 헤딩 클리어링을 자랑했으며 특히 머리로 멀리 쳐낸 공이 전방의 동료에게 오차 없이 떨어지는 묘기를 보였다.

클루브 나시오날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모두 대단한 활약을 보여준 산타마리아는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짧지만 좋은 활약을 보여줬는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팀을 4강에 올려놓는데 공헌했으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195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에는 스페인에 귀화하며 활약이 끊겼다.

 

라이트백

이름: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
출생년도: 1901년 11월 22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라이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23~1930
A매치 기록: 34경기 1골

 

당대 최고의 하프백이자 역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꼽히며 라이트 윙 하프가 주 포지션이었으며 엄청난 운동능력과 넓은 시야, 그리고 탄탄한 기본기를 겸비했으며 이를 활용해 중원과 오른쪽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보여줬다. 오늘날 다니 아우베스나 마르셀루, 주앙 칸셀루가 보여주는 플레이와 유사한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우루과이의 두 명문 페냐롤과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모두 활약한 안드라데는 나사치, 스카로네와 함께 월드컵이 탄생하기 이전 세계 최고의 축구 권위 대회인 올림픽에서 주전 멤버로 두 번이나 금메달을 땄으며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를 우승했고 초대 월드컵에서도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했는데 결승전에서 2-2 동점 상황에서 아르헨티나 측의 완벽한 골 찬스를 몸을 던져 블로킹해 무산시키며 4-2 역전승에 공헌했다. 이 활약이 인상적이었는지 대회 종료 이후 MVP 투표에서 3위를 차지해 브론즈볼을 획득했으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레프트백

이름: 빅토르 로드리게스 안드라데
출생년도: 1927년 5월 2일
신체조건: 키 169cm
포지션: 레프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47~1957
A매치 기록: 42경기 3골

 

상술했던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의 조카로 1940년대와 50년대 우루과이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체력과 대인 수비 능력이 좋은 선수였으며 레프트 풀백과 레프트 하프에서 모두 우수한 기량을 보여줬다.

페냐롤에서 전성기를 누린 빅토르 안드라데는 라 셀레스테 군단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이어갔는데 1947 코파 아메리카에서 국제무대에 데뷔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선 탄탄한 수비력으로 팀의 우승에 공헌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팀을 4강에 올려놨다. 이후 1956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옵둘리오 바렐라
출생년도: 1917년 9월 20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0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39~1954
A매치 기록: 45경기 9골

 

당대 최고의 센터하프이자 역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로 강건한 피지컬과 정밀도 높은 패싱력, 그리고 대포알과도 같은 중거리 슈팅을 모두 갖춘 선수였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정신력을 지녔으며 검은 우두머리라 불렸을 정도로 리더십이 뛰어나 동료들을 잘 지휘했음은 물론 수비수로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다.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동료들은 물론 감독도 브라질의 전력과 관중들의 기세에 눌려 수비축구를 지시하는 상황이었으며 브라질의 신문들은 모두 브라질의 우승을 점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바렐라는 그 신문들에 소변을 누는 퍼포먼스를 보여줘 팀을 진정시켰으며 수비 축구를 지시하는 감독을 진정시키며 본래의 페이스대로 경기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결국 용기를 얻은 동료들에 의해 우루과이는 브라질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했고 바렐라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활약 이외에도 그는 다섯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해 한 번 우승했으며 우승한 1942년 대회에서는 대회 MVP를 수상했다. 이후에는 1954 스위스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8강 잉글랜드전에서 부상당해 준결승전에 뛰지 못했고 결국 우루과이는 매직 마자르와 접전을 펼쳤지만 바렐라의 공백을 극복하지 못하고 연장전에서 코치슈 산도르에게 멀티골을 주며 패했다.

 

라이트 메짤라

이름: 후안 스키아피노
출생년도: 1925년 7월 28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9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1946~1954
A매치 기록: 21경기 9골

 

우루과이 축구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자 1950년대 최고의 인사이드 포워드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우수한 테크닉과 넓은 시야, 창의적이면서 정확한 패싱력을 보유했으며 임기응변에 능해 불리한 경기를 여러 번 뒤집었다.

페냐롤과 AC 밀란에서 남미와 유럽 무대 모두 정상급 활약을 보여줬던 스키아피노는 라 셀레스테 군단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두 번의 월드텁에 참가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동점골을 기록하며 우승에 기여해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공격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팀의 4강 진출에 공헌했다. 이후에는 대표팀을 은퇴하고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유럽 무대를 호령했다.

 

레프트 메짤라

이름: 엔조 프란체스콜리
출생년도: 1961년 11월 12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4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레프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82~1997
A매치 기록: 73경기 17골

 

2000년대 최고의 축구선수 지단의 우상으로 잘 알려졌으며 공격형 미드필더가 필요한 모든 덕목에서 우수한 모습을 보였으며 특히 깔끔한 볼 터치와 상대의 예측을 비웃는 킬 패스가 일품이었다.

남미의 리버 플레이트와 유럽의 마르세유, 칼리아리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지네딘 지단의 우상으로 추앙받았던 프란체스콜리는 라 셀레스테 군단에서도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공격수로 출전해 우승했으며 소크라치스가 이끄는 브라질을 제압하고 우승에 크게 공헌해 대회 MVP에 선정되었으며 198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해 우승했다. 그리고 199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였으며 브라질을 제압하고 우승을 거두며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이토록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마라도나나 소크라치스를 능가하는 화려한 모습을 보였지만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다소 아쉬웠다.

 

라이트윙

이름: 알시데스 기지아
출생년도: 1926년 12월 22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포지션: 라이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50~1952
A매치 기록: 12경기 4골

 

대표팀에 한정해서는 짧지만 굵은 활약을 선보인 선수로 당대 남미 최고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빠른 스피드와 상대 수비수를 완벽하게 속여 넘기는 교묘한 발재간을 겸비한 높은 수준의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허문 뒤 날카로운 크로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내는 부분은 물론 골 결정력도 뛰어나 중요한 순간에는 직접 해결하는 클러치 능력도 보여줬다.

페냐롤에서 활약한 기지아는 라 셀레스테 군단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는데 1950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역전골을 기록해 브라질을 무너트리고 우루과이를 우승시켰으며 이때의 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이때의 일로 파울로 로시와 함께 브라질 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축구선수였다. 하지만 그의 국가대표팀 경력은 조기에 끝나는데 자국 리그에서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을 폭행해 중징계를 받자 이탈리아로 출국해서 AS 로마에서 활약하며 국가대표팀에 부름을 받지 못했다.

 

레프트윙

이름: 엑토르 스카로네
출생년도: 1898년 12월 26일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3kg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대표팀 활약 기간: 1917~1930
A매치 기록: 51경기 31골

 

브라질엔 펠레와 호나우두, 아르헨티나엔 마라도나와 메시가 있다면 우루과이엔 스카로네가 있었다. 인사이드 포워드에게 필요한 모든 덕목에서 우수했으며 특히 골 결정력과 동료들을 활용하는 플레이가 일품이었다. 1920년대 최고의 인사이드 포워드로 이름을 날렸다.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의 전성기와 우루과이 대표팀의 전성시대를 이끈 에이스로 1917 코파 아메리카에서 팀의 우승을 견인하며 득점왕과 MVP를 모조리 석권했으며 총 네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했고 두 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초대 월드컵에서 우승을 거뒀으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192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스트라이커

이름: 루이스 수아레즈
출생년도: 1987년 1월 24일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3kg
포지션: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2007~
A매치 기록: 137경기 68골

 

레반도프스키와 함께 201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불렸다. 각종 기행으로 더 유명하지만 실력도 우수했는데 우수한 골 결정력은 물론 다이나믹한 드리블과 뛰어난 패싱력을 활용한 찬스 메이킹에도 능했다.

2014-15 시즌 FC 바르셀로나가 트레블을 이뤄내는데 한 축을 담당했던 수아레스는 대표팀에서도 에이스를 보좌하는 부분과 자신이 직접 에이스로 활약하는 부분에서 모두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는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포를란을 보좌하며 팀의 4강 진출에 공헌했으며 2011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MVP를 수상했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팀의 공격을 이끌며 16강에 진출에 공헌했지만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이탈리아전에서 키엘리니를 깨문 것이 들통나 징계를 받아 16강전에 결장하며 팀은 탈락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팀의 8강행을 이끌었던 수아레즈는 우루과이 대표팀 통산 최다 득점자의 자리에 올랐다.

 

감독

 

이름: 오스카 타바레즈

출생년도: 1947년 3월 3일

부임기간: 1988~1990, 2006~

 

비록 월드컵 우승은 없지만 침체기를 겪던 우루과이 축구의 부활을 이끈 명장이다. 포를란과 고딘같은 대표팀 핵심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역할을 대표팀에선 종종 보여줬는데 포를란의 플레이메이커로서의 우수한 모습과 고딘의 리베로로서의 우수한 역량을 보여줬던 적은 오직 타바레즈의 우루과이에서만 있었다,

2006년에 부임해 우루과이를 남미를 대표하는 강호로 천천히 끌어올렸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 4강, 2011 코파 아메리카 우승, 2018 러시아 월드컵 8강을 이끌었으며 1970년 이후 월드컵에서 부진했던 대표팀을 다시 월드컵의 강자로 끌어올리는데 크게 공헌했다. 2006년에 다시 부임한 이래 15년간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를 지키고 있다.

 


 

토르난테 선정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베스트 일레븐

 


25인 스쿼드 / 서브 14인

 

이름: 로케 마스폴리
출생년도: 1917년 10월 12일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5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45~1955
A매치 기록: 38경기 62실점

 

1940년대와 50년대 페냐롤과 우루과이를 대표하는 골키퍼로 큰 키임에도 민첩하며 반사신경까지 겸비했으며 때때로 공격에 가담해 득점포까지 터트렸던 공격형 골키퍼였는데 특히 소속팀 페냐롤에서는 20골이나 기록했다.

라 셀레스테 군단에서는 1945년 코파 아메리카에 데뷔해 두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결승 리그 브라질전 이전까진 실수가 많았지만 사실상 결승전인 브라질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을 우승시키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이후에도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4강에 진출했다.

 

이름: 루돌포 로드리게스
출생년도: 1956년 1월 20일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90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76~1986
A매치 기록: 78경기 68실점

 

마주르키에비치의 후계자로 나시오날과 산투스의 전설적인 선수다. 큰 키와 긴 팔다리, 그리고 높은 점프력을 잘 활용했으며 1대 1 상황에서 침착하게 전진하며 거리를 좁히는 능력도 훌륭했으며 이런 능력을 보여줘 사람들에게 표범이라 불렸다.

클루브 나시오날과 산투스에서 전성기를 보낸 루돌포 로드리게스는 라 셀레스테 군단에서도 1980년에 초대 월드컵 50주년 기념으로 열린 문디알리토에서 우승을 거뒀으며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우승을 따냈다. 하지만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의 모습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름: 우고 데 레온
출생년도: 1958년 2월 27일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0kg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79~1990
A매치 기록: 48경기

 

1980년대 하반기 남미 최고의 리베로로 큰 키와 강건한 어깨를 활용한 몸싸움과 거친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를 직접 저지하는 부분에도 능했으며 우수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과 적절한 커버 플레이는 물론 공격 진영으로 볼을 운반하며 빌드업에도 크게 기여했던 공수 만능의 리베로였다.

클루브 나시오날과 그레미우에서 각각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회 우승과 1회 우승을 이뤄낸 우고 데 레온은 라 셀레스테 군단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는데 1980년에 초대 월드컵 50주년 기념으로 열린 문디알리토에서 우승을 거뒀으며 1989년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 16강 진출에도 공을 세웠다.

 

이름: 디에고 고딘
출생년도: 1986년 2월 16일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78kg
포지션: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2005~
A매치 기록: 161경기 8골

 

2010년대를 풍미한 대인 수비의 달인으로 굉장히 지능적인 수비수로 뛰어난 위치 선정과 훌륭한 상황 판단 및 심판이 보지 못하게 반칙을 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제공권 능력도 수준급이었던 선수였다.

2010년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두줄 수비의 핵심과도 같은 선수로 라 리가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2회 준우승에 공을 세웠던 고딘은 라 셀레스테 군단에서도 2007년 코파 아메리카에 데뷔해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팀의 4강 진충을 이끌었으며 2011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백업 멤버로 우승을 경험했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단두대 매치에서 결승골을 득점해 16강 진출에 공헌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선 8강에서 탈락했지만 공수 양면에서 우수한 활약을 펼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우루과이 대표팀 통산 최다 출전자에 랭크된 고딘은 현재까지도 라 셀레스테 군단의 수비를 이끌고 있어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개인은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나 팀은 과거 월드컵에서 우루과이에 밀려 탈락했던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에게 밀리며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름: 슈베르트 감베타
출생년도: 1920년 4월 14일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9kg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벡

대표팀 활약 기간: 1941~1952
A매치 기록: 37경기 3골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무려 열 번이나 리그 우승을 경험한 라이트 백으로 우수한 대인 방어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라이트 하프와 라이트백을 모두 겸비할 수 있었으며 오늘날의 오른쪽 측면 수비수 역할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라 셀레스테 군단에서 네 번의 코파 아메리카와 1950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한 감베타는 1942 코파 아메리카와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브라질의 에이스 지지뉴를 묶어내는 데 성공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한 활약상을 인정받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다.

 

이름: 리카르도 파보니
출생년도: 1943년 7월 8일
신체조건: 키 167cm
포지션: 레프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62~1974
A매치 기록: 13경기 2골

 

남미 클럽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프트백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출중한 대인 수비 능력과 공격 상황에서 우수한 킥력으로 정확한 크로스와 세트피스를 담당했으며 활동량과 투지도 대단했다.

아르헨티나의 인디펜디엔테에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5회 우승을 이끌었을 정도로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 파보니는 당시 시대상 해외에서 뛰는 선수는 국가대표팀에 발탁하지 않아 활약상은 적지만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드디어 발탁되어서 활약했는데 팀은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지만 파보니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름: 네스토르 곤칼베스
출생년도: 1936년 4월 27일
신체조건: 키 178m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리베로

대표팀 활약 기간: 1956~1970
A매치 기록: 50경기 1골

 

1960년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뛰어난 예측력을 바탕으로 한 인터셉트와 클리어링을 보였으며 우수한 태클 능력을 보여줬으며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과 정확한 패싱력을 앞세워 빌드업에도 크게 관여했으며 리베로로 플레이했을 때도 우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페냐롤에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9회 우승,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회 우승과 인터콘티넨탈컵 2회 우승을 이뤄내며 왕조를 재창한 곤칼베스는 라 셀레스테 군단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는데 1957년과 1959년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했으며 1962 칠레 월드컵과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1957년 대회에서는 3위를 기록했고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8강에 올랐다.

 

이름: 파블로 벵고에체아
출생년도: 1965년 6월 27일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5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86~1997
A매치 기록: 43경기 6골

 

1990년대 우루과이 축구계를 대표하던 중원사령관으로 엘 프로페서, 즉 교수라 불렸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전술안을 가진 선수로 경기장 전체를 관통하는 드넓은 시야와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 그리고 정밀도 높은 중장거리 패스로 팀의 후방 플레이메이킹을 이끌었으며 킥력도 우수해 양발 중장거리 슈팅으로 직접 득점에도 능했다.

세비야와 페냐롤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벵고에체아는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는 1987년 코파 아메리카와 199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이름: 페드로 로차
출생년도: 1942년 12월 3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1961~1974
A매치 기록: 52경기 17골

 

우루과이의 펠레라 불렸던 1960년대 말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필요한 덕목을 모두 갖춘 것은 물론 우수한 신체 능력과 우수한 득점력마저 겸비해 상대팀의 목숨을 한 순간에 끊어버린다는 뜻의 사형집행인이란 별명으로 불렸으며 펠레는 그를 두고 "내가 붙어본 선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라는 평가를 했다.

페냐롤의 공격을 진두지휘하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8회 우승 및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회 우승,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회 우승을 이끌었던 로차는 라 셀레스테 군단에서도 에이스 역할을 도맡았으며 1962 칠레 월드컵부터 1974 서독 월드컵까지 네 번의 월드컵에 참가해  196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5경기 3골을 득점하며 우승에 크게 기여해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조기에 부상당해 하차했으며 이에 우루과이는 공격 전개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름: 루이스 쿠비야
출생년도: 1940년 3월 28일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0kg
포지션: 라이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59~1974
A매치 기록: 38경기 11골

 

팬들로부터 괴물이라 불렸던 1960년대 최고의 윙어 중 하나로 손꼽히며 빠른 스피드와 화려한 발재간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 돌파에 능했으며 신체밸런스가 우수해 상대의 견제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았으며 뛰어난 양발 사용 능력을 바탕으로 오른발과 왼발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슈팅력을 자랑했던 선수였다.

페냐롤과 나시오날, 그리고 디펜소르 스포르팅에서 활약하며 우루과이 프리미어 디비시온에서 세 구단 합쳐서 9회 우승했으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도 3회 우승한 쿠비야는 라 셀레스테 군단에서도 세 번의 월드컵에 참여해 1970 월드컵에서는 로차가 부상으로 이탈하자 공격진영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팀의 준결승 진출을 도왔다. 다만 바르셀로나와 리버 플레이트 시절에는 전성기를 구가했음에도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이름: 이사벨리노 그라딘
출생년도: 1897년 7월 8일
신체조건: 키 172cm
포지션: 레프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15~1927
A매치 기록: 73경기 17골

 

1910년대 우루과이를 대표하는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부업으로 대륙 단위 육상 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다섯 번이나 따냈을 정도로 엄청난 스피드를 활용해 상대 수비라인을 돌파해 득점하는 플레이를 선호했다.

페냐롤에서 전성기를 보낸 그라딘은 라 셀레스테 군단에서도 1916년 초대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해 로스 차루아스 군단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득점왕과 대회 MVP를 타내며 대회를 지배했으며 다음 대회인 191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우승하며 2연패에 성공했다.

 

이름: 앙헬 로마노
출생년도: 1893년 8월 2일
신체조건: 미상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레프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11~1927
A매치 기록: 69경기 28골

 

1910년대와 20년대 우루과이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으로 드리블과 찬스 메이킹에 능했으며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고 활약했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프리메라 디비시온 8회 우승을 포함해 총 22개의 트로피를 들며 전성시대를 이끈 로마노는 라 셀레스테의 최전성기를 주도했는데 코파 아메리카에서만 여섯 번 우승했으며 특히 1917년 대회와 1920년 대회에는 득점왕을 달성하기도 했으며 올림픽에서도 1924 파리 올림픽과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두 번이나 금메달을 목에 거는 영광을 누렸다.

로마노는 1910년대와 20년대의 스타플레이어로 군림하며 세계 최초로 A매치 60경기를 돌파하며 당시 A매치 출전 횟수 세계 신기록을 달성했었다.

 

이름: 페드로 페트로네
출생년도: 1905년 5월 11일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4kg
포지션: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23~1930
A매치 기록: 29경기 24골

 

포병이라 불렸던 막강한 슈팅력의 소유자로 20년대 최고의 센터 포워드로 이름을 날렸다. 슈팅력 이외에도 당시의 센터 포워드들과는 달리 드물게 후방으로 내려와 인사이드 포워드들과 연계에도 힘썼다.

클루브 나시오날과 피오렌티나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이름을 날린 페트로네는 라 셀레스테 군단에서는 두 번의 올림픽 금메달과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에 크게 기여했으며 우승한 1923년과 1924년 대회에서는 모두 득점왕에 오르는 맹활약을 펼쳤지만 초대 월드컵에서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 백업으로 우승을 경험했다.

 

이름: 디에고 포를란
출생년도: 1979년 5월 19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포지션: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2002~2014
A매치 기록: 112경기 36골

 

우루과이 축구의 부흥을 이끈 스타플레이어로 탁월한 슛 테크닉과 파괴력 넘치는 중거리 슈팅을 앞세워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주던 선수로 국가대표팀에서는 득점에 집중하던 소속팀에서와는 다르게 플레이메이킹 능력도 보여주기도 했다.

비야레알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모두 피치치상을 차지한 포를란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표팀에 데뷔했으며 이후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와 한 번의 컨페드컵, 그리고 2010 남아공 월드컵과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활약했는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해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플레이메이킹 능력과 우수한 공격수들도 다루기 어려워하는 자볼라니를 신기에 가깝게 다루며 자볼라니 마스터라 불렸으며 그 대회에서 4위를 차지한 디에고 포를란은 공동 최다 득점자와 대회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 대회 MVP인 골든볼을 수상했다.

 


25인 스쿼드 완성판

 

토르난테 선정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25인 팀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리저브 팀 11인

 

이름: 안드레스 마살리
출생년도: 1902년 7월 22일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2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24~1929
A매치 기록: 21경기 20실점

 

1920년대 우루과이 축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슛 스토퍼로 키가 매우 작았으나 번뜩이는 다이빙 능력으로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훌륭하게 보완했으며 이런 플레이스타일 떄문에 팬들로부터 다이버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정규리그 5회 우승을 이뤄낸 마살리는 우루과이 대표팀에서 매우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1924 파리 올림픽과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이끌며 우루과이 축구협회에게 별 두개를 선물었으며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3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이 예상되었으나 알베르토 수피치 감독이 정해놓은 통행금지 시간을 어겨 대표팀에서 축줄되는 수모를 맛보며 월드컵 우승의 영예와 함께하지 못했다.

 

이름: 윌리엄 마르티네스
출생년도: 1928년 1월 13일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91kg
포지션: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50~1965
A매치 기록: 54경기 2골

 

1950년대와 60년대 우루과이 무대에서 롱런한 센터백으로 당시로서는 드문 192cm라는 압도적인 피지컬을 이용해 상대를 찍어 누르는 플레이에 능했으며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헤더로 상대의 골문을 위협했다.

페냐롤과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모두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으며 특히 1961년 인터콘티넨탈컵에서 에우제비우가 이끄는 벤피카의 공격진을 완벽하게 무력화시켰던 마르티네스는 라 셀레스테 군단에서는 1950 브라질 월드컵 우승을 백업 멤버로 경험했으며 이후 대표팀에서도 주전 자리를 꿰차며 1953 코파 아메리카 3위, 1954 스위스 월드컵 4위, 1955 코파 아메리카 4위, 그리고 1956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아틸리오 안체타
출생년도: 1948년 7월 19일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8kg
포지션: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69~1971
A매치 기록: 20경기 2골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상반기 남미 최고의 스토퍼 중 한 명으로 빠른 스피드와 악착같은 대인 수비로 상대 공격수를 막아냈으며 용수철 같은 점프력을 통한 제공권 경합에서도 항상 우위를 점했으며 발밑마저 우수했던 완벽한 수비수였다.

클루브 나시오날과 그레미우에서 활약하며 1973년 브라질 전국 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아틸리오 안체타는 브라질 무대 진출 때문에 대표팀 생활을 고작 2년밖에 하지 못했지만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로차의 공백으로 빈공에 시달리던 우루과이에게 철통같은 수비력을 선물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 한 대회에서만 19번의 공중볼 경합에서 15번을 이기는 괴력을 보여주며 팀을 4위로 이끌었고 안체타 자신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며 짧고 굵은 활약을 보여줬다.

 

이름: 루이스 우비냐
출생년도: 1940년 6월 7일
신체조건: 키 178cm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65~1973
A매치 기록: 33경기 1골

 

1960년대 하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라이트백으로 뛰어난 지구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압박해 괴롭혔으며 반 박자 빠른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견제하는데 능한 수비적인 풀백이었으나 적절한 오버래핑을 통한 공격력도 겸비했다.

나시오날의 캡틴으로 1971 시즌에 자국리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낸 우비냐는 라 셀레스테에서도 1966 잉글랜드 월드컵 8강과 1970 멕시코 월드컵 준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주장 페드로 로차가 부상으로 스쿼드에서 이탈하자 대신 주장 완장을 차며 훌륭한 리더십으로 팀을 독려했다.

 

이름: 알바로 헤스티도
출생년도: 1907년 5월 17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레프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27~1940
A매치 기록: 26경기 0골

 

밀리터리 스쿨에서 공부한 이력으로 팬들에게 위관급 장교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레프트 하프로 우수한 센스로 상대의 패스를 미리 차단했으며 파울을 자제하는 페어플레이로 이름을 날렸으며 책임감 있는 주장이었다고 전해지는 선수였다.

페냐롤의 주장으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7회 우승을 이끌어낸 헤스티도는 라 셀레스테 군단에서 로렌소 페르난데스,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와 함께 철의 장막이라 불리던 하프백 라인을 구성해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금메달과 1930 우루과이 월드컵 우승에 공헌하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여담으로 알바로 헤스티도는 우루과이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던 오스카 헤스티도의 여섯 살 터울의 친동생이었다.

 

이름: 로렌소 페르난데스
출생년도: 1900년 5월 20일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5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1925~1935
A매치 기록: 31경기 4골

 

스페인 출신의 센터하프로 마사지사가 가로등 기둥을 만지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을 정도로 다리 근력이 우수했으며 견고한 수비력과 우수한 발기술, 그리고 강력한 정신력을 동시에 갖춘 하프백으로 인사이드 레프트 포지션도 소화할 수 있었다.

페냐롤의 리그 5회 우승을 이끈 페르난데스는 1926년과 193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 192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28년부터 1930년까지 알바로 헤스티도,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와 함께 철의 장막이라 불리던 하프백 라인을 구성해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금메달과 1930 우루과이 월드컵 우승에 공헌했다.

클럽과 대표팀에서 모두 훌륭한 활약을 펼쳤던 로렌소 페르난데스는 사생활 부분에서는 유머 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으로 오직 축구에만 전념한 수도승같은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름: 훌리오 아바디에
출생년도: 1930년 9월 7일
신체조건: 키 179cm
포지션: 라이트윙,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52~1966
A매치 기록: 26경기 14골

 

프랑스인 아버지와 에스파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선수로 엄청난 가속력과 수준 높은 발재간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따돌렸으며 선수시절 초년에는 중앙으로 직접 침하며 날카로운 슈팅으로 마무리하는 플레이를 즐겼으나 베테랑 선수가 된 이후에는 자로 잰 듯한 정확한 오른발 크로스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을 더 선호했고 당대 남미 공격수로서는 드물게 불혹에 가까운 나이까지 롱런했다.

페냐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7회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잠시 제노아에도 다녀와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아바디에는 1954 스위스 월드컵과 195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라 셀레스테 군단의 4위를 이끌었다.

 

이름: 호세 피엔디베네
출생년도: 1890년 6월 5일
신체조건: 키 181cm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대표팀 활약 기간: 1909~1922
A매치 기록: 43경기 22골

 

우루과이 축구 초창기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로 높은 수준의 테크닉을 보여줬기에 팬들로부터 마법사라 불렸지만 정작 피엔디베네는 효율적인 플레이를 강조해 효율적인 드리블과 패스로 경기를 풀어나갔으며 득점포를 가동하는 부분에도 뛰어났음은 물론 공격지역 전 포지션에서 활약할 수 있었으며 당시로서는 드물게 볼을 잃은 상황에서는 바로 상대 수비수로부터 볼을 다시 빼앗는 수비적인 플레이를 선보이기도 했다.

페냐롤에서 페냐롤에서 20년간 활약하며 우루과이 프리미어 디비시온 4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초창기의 아이콘으로 사랑받았던 피엔디베네는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1916년, 1917년, 1920년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했으며 특히 1920년 대회에서는 대회 MVP를 수상했다.

 

이름: 페드로 세아
출생년도: 1900년 9월 1일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3kg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23~1932
A매치 기록: 26경기 13골

 

1920년대 중후반과 1930년대 초반 남미 무대 최고의 인사이드 레프트로 우수한 볼 테크닉을 활용한 교묘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교란시키는데 능했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리그 2연패를 이끈 세아는 1923 코파 아메리카에서 데뷔해 우승을 차지했으며 1924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우승했으며 파리 올림픽에서는 4강전이던 네덜란드전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2:1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고 결승전에서도 득점포를 가동해 금메달을 목에 거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도 활약하메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초대 월드컵에서는 4강전에서의 해트트릭과 결승전에서의 동점골을 포함해 총 5골을 득점하며 팀의 우승에 공헌했다.

올림픽 결승전과 월드컵 결승전에서 모두 골을 기록한 유이한 선수였던 세아는 똑같이 월드컵 결승전과 올림픽 결승전에서 모두 득점해본 푸스카스는 맛보지 못한 월드컵 우승도 맛봤다.

 

이름: 엑토르 카스트로
출생년도: 1904년 11월 29일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9kg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1923~1935
A매치 기록: 25경기 18골

 

우루과이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천후 공격수로 13살 때 전기톱을 다루다 사고로 오른손을 잃어 외팔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전방에서의 뛰어난 연계 플레이와 문전 앞에서의 효율적인 원터치 플레이와 침착한 슈팅으로 이름을 날렸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리그 3회 우승을 이끈 카스트로는 대표팀에서는 페드로 페트로네와의 치열한 주전 경쟁으로 유명했는데 1926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데뷔해 6골을 득점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으나 1927 코파 아메리카와 금메달을 차지한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으나 1930년 초대 월드컵에서는 다시 주전 자리를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는데 두 골밖에 넣지 못했음에도 절륜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인정받아 대회 올스타 팀에 올랐으며 193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우승에 기여했다.

 

이름: 페르난도 모레나
출생년도: 1952년 2월 2일
신체조건: 키 177cm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1971~1983 
A매치 기록: 53경기 22골

 

종마라 불렸던 1970년대 우루과이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왼발을 잘 썼으며 골을 찾아 들어가는 저돌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팬들로부터 종마라고 불렸다. 특히 슈팅 스킬이 우수했고 2선으로 내려와 플레이메이킹을 하며 찬스를 만들어가는 능력도 우수한 전천후 공격수였다.

페냐롤에서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줬던 모레나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 7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 3회를 수상했으며 1982년 리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콘티넨탈컵을 모두 석권해 트레블을 이뤄냈던 모레나는 대표팀에서는 암흑기에 맞물려 부진했는데 그래도 말년에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 백업 멤버로 출전해 우승을 경험했다.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10등 안에 8번 들었으며 1975년에는 3위에 랭크되는 등 개인의 활약은 출중했던 모레나는 대표팀 활약에서는 남아공 월드컵 골든볼에 수상한 포를란에 밀려 리저브팀에 배치되었다.


*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시리즈의 선정 기준은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 50%와 선수 자체의 위상 50%를 합산해서 올스타 팀을 짭니다.

* 국가대표팀으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선수는 당연하게도 선정에서 제외합니다.

* 과거 다수의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선수들은 더 많은 활약을 한 국가대표팀으로 선정합니다. 고로 안드레올로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으로 선정되었으며 스키아피노, 기지아, 산타마리아는 우루과이에서 더 많은 경기를 소화하고 더 활약했으므로 우루과이 대표팀으로 선정되었습니다.

* 현역 선수들의 스탯은 2023년 1월 20일 기준입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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