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팀

국대 올스타 짜보기/남미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팀

토르난테 2021. 7. 2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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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별칭: 셀레상

월드컵: 출전 21회, 우승 5회

코파 아메리카: 출전 35회, 우승 9회

컨페드컵: 출전 7회, 우승 4회

올림픽: 출전 13회, 금메달 1회

최다 출전 선수: 카푸, 142경기

최다 득점 선수: 펠레, 77골

 


베스트 11

 

골키퍼

 

이름: 지우마르
출생년도: 1930년 8월 22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68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53~1969
A매치 기록: 94경기 98실점 / 34 클린시트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뛰어난 반사신경과 민첩한 몸놀림으로 상대의 슈팅을 선방했으며 공격수의 압박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안정적인 골키퍼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펠레와 함께 셀레상과 산투스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골키퍼로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골문을 지키며 월드컵 2연패에 크게 공헌했다.

다수의 매체로부터 브라질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는 지우마르는 상술한 활약을 바탕으로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센터백

 

이름: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출생년도: 1944년 7월 17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64~1977
A매치 기록: 53경기 8골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하나로 특히 현지 팬들은 그를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꼽는다. 최초의 현대적인 측면 수비수로 알려져 있으며 날카로운 오버래핑은 물론 중앙으로 치고 들어와 뛰어난 패싱력으로 골 찬스를 만들어내기도 했으며 이런 공격적인 부분에서의 강점들과는 다르게 수비수로서의 기본기도 뛰어나 중앙 수비수로 뛸 수도 있었다.

산투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아우베르투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출전해 팀의 본선과 예선 전승 우승에 큰 공을 세웠는데 특히 그의 결승전 골은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최고의 셀레상의 캡틴이었던 아우베르투는 상술한 활약을 바탕으로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센터백

 

이름: 도밍구스 다 기아
출생년도: 1912년 11월 19일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9kg
포지션: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31~1946
A매치 기록: 30경기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수비수 중 하나로 훌륭한 수비 기술과 강한 피지컬을 물론 그 당시 수비수로서는 드물게 훌륭한 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무대를 모두 평정한 도밍구스 다 기아는 셀레상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센터백이었으며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 셀레상의 준결승 진출에 크게 공헌했으며 해당 대회에서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이후 1945년에 열린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팀은 준우승에 그쳤지만 본인은 MVP를 수상 받으며 대회 최고의 선수로 공인되었다.

브라질 역대 최고의 센터백으로 평가받는 도밍구스 다 기아는 상술한 활약을 바탕으로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라이트백

 

이름: 자우마 산투스
출생년도: 1929년 2월 27일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52~1968
A매치 기록: 98경기 3골

 

아우베르투와 함께 브라질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손꼽히며 실제로 브라질 대표팀 활약은 카푸나 아우베르투, 다니 아우베스보다도 확실히 우위에 있다고 평가받는 선수로 바위 또는 벽이라 불렸을 정도로 견고한 대인 수비 능력과 깔끔한 패싱력으로 앞선 공격수를 지원하는 훌륭한 빌드업을 겸비했다.

파우메리아스에서 산투스를 제치고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룬 적 있었던 자우마 산투스는 셀레상 소속으로 네 번의 월드컵에 출전해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에서 우승했으며 1954 스위스 월드컵부터 1962 칠레 월드컵까지 세 번 연속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다. 특히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컨디션 난조로 결승전에만 출전했는데 그 결승전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대회 올스타 팀에 들기도 했다.

피파 월드컵 올스타 팀에 3회 선정된 세 명의 선수 중 한 명인 자우마 산투스는 상술한 활약을 바탕으로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레프트백

 

이름: 니우통 산투스
출생년도: 1925년 5월 16일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68kg
포지션: 레프트백, 레프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49~1962
A매치 기록: 75경기 3골

 

20세기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인정받는 선수였으며 축구사에서 측면 수비수의 오버래핑을 처음으로 정립한 선수로 알려졌다. 공격 기술부터 수비 기술까지 다재다능해서 백과사전으로 불렸다.

보타포구의 원 클럽맨으로 브라질 무대에서 명성을 날린 니우통 산투스는 셀레상에서도 백업 멤버로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경험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의 마라카냥의 비극을 경험하기도 했으나 새옹지마라고 주전 멤버가 아닌 덕분에 이후에도 자주 기용되었고 펠레, 가린샤 등과 함께 브라질 대표팀의 최전성기를 누리며 1958년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 우승을 이뤄낸다.

세계 최초의 공격형 수비수 중 한 명인 니우통 산투스는 상술한 활약을 바탕으로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파우캉
출생년도: 1953년 10월 16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1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76~1986
A매치 기록: 34경기 6골

 

브라질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광활한 시야와 창의적인 두뇌에서 나오는 패스로 경기를 지배했으며 뛰어난 지구력과 볼 컨트롤 능력과 수비 스킬, 그리고 다양한 포지션을 무난하게 소화하는 축구 지능까지 겸비한 완벽한 미드필더로 1980년대 상반기를 호령했다. 

이탈리아의 AS 로마에서 팬들에게  로마의 여덟 번째 왕이라 불려진 파우캉은 셀레상에서도 그의 활약은 이어져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지쿠, 소크라치스, 세레주와 함께 황금의 사중주로 불리며 그들을 훌륭하게 보좌하며 뛰어난 경기력을 보였으며 이러한 활약을 팬들에게 인정받아 2차 리그에서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1982 스페인 월드컵 실버볼과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유럽과 남미를 호령한 중원 사령관인 파우캉은 상술한 활약을 바탕으로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라이트 메짤라

 

이름: 지지
출생년도: 1928년 10월 8일
신체조건: 키 174m / 몸무게 68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52~1962
A매치 기록: 68경기 20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축구 지능이 높아 감독이 졸고 있을 때 팀을 지휘하기도 했으며 광활한 시야와 정교하면서도 창의적인 숏패스와 롱패스로 경기를 지배했으며 발기술이 좋아 상대 수비수 두 명 정도는 제칠 수 있었고 프리킥에도 능해 '미스터 풋볼'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브라질 무대의 플루미넨시와 보타포구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당대 최고의 미드필더라 평가받았던 그는 셀레상에서는 1954 스위스 월드컵부터 1962 칠레 월드컵까지 참여해 두 번의 월드컵을 우승했으며 특히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중원을 지휘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MVP에 선정되는 맹활약을 펼쳤다.

셀레상의 사령탑 비센치 페올라가 경기 도중에 조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셀레상을 훌륭하게 지휘한 지지는 상술한 활약을 바탕으로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레프트 메짤라

 

이름: 지쿠
출생년도: 1953년 3월 3일
신체조건: 키 172m / 몸무게 68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76~1986
A매치 기록: 71경기 48골

 

1980년대 상반기를 수놓은 당대 최고의 선수이자 공격형 미드필더로 탄탄한 기본기와 교묘한 드리블, 창의적인 패싱 스킬과 양발 슈팅 스킬을 겸비했으며 스트라이커들을 초월하는 득점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프리킥에 능해 프리킥 통산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선수 생활 대부분을 플라멩구에서 보냈으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팀 자격으로 나간 1981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유럽 챔피언 리버풀을 3-0으로 대파하는데 큰 공을 세운 지쿠는 셀레상에서는 개인은 훌륭했지만 팀 성적은 아쉬웠는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와 페루의 승부조작 의혹으로 2차 조별리그 2위로 밀려나 3위의 성적에 만족해야 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본인은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활약을 보이고도 이탈리아에게 역전패하며 아쉽게 탈락했다. 

비록 국제대회 성적은 좋지 않지만 하얀 펠레라 불리며 축구계를 호령했던 지쿠는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아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라이트윙 포워드

 

이름: 가린샤
출생년도: 1933년 10월 28일
신체조건: 키 169m / 몸무게 72kg
포지션: 라이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55~1966
A매치 기록: 50경기 12골

 

역대 최고의 라이트 윙으로 평가받는 선수로 소아마비로 인해 양다리의 길이가 달랐으나 오히려 그런 점을 이용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드리블을 보여주며 상대 수비를 벗겨냈다. 크로스와 패스로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능했다.

브라질 전국리그에서는 펠레와 라이벌리를 구축했지만 대표팀에선 펠레와 합을 맞추며 1958 스웨덴 월드컵부터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때까지 활약했으며 펠레가 중도에 부상으로 이탈한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에이스로서 팀을 이끌며 우승을 이뤄내며 득점왕과 골든볼을 수상했다.

장애를 가졌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선수이자 역대 최고의 라이트윙 반열에 오른 인간승리의 주인공 가린샤는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아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레프트윙 포워드

 

이름: 펠레
출생년도: 1940년 10월 23일
신체조건: 키 173m / 몸무게 75kg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윙어

대표팀 활약 기간: 1957~1971
A매치 기록: 92경기 77골

 

명실상부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압도적인 운동신경과 훌륭한 축구 지능은 물론 공격수로서 필요한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역대 최고의 스코어러이자 플레이메이커였다.

클럽팀 산투스에서도 최고였지만 셀레상에서의 활약은 가히 차원이 달랐는데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팀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고 신인상과 실버볼을 차지했다. 이후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절륜한 플레이메이킹을 보내며 역대 최고의 대표팀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예선과 본선에서 전승 우승하며 대회 MVP를 수상하며 우월함이 무엇인지 만천하에 보여줬다.

펠레는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매체에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으며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음은 물론 브라질에서 체육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스트라이커

 

이름: 호나우두
출생년도: 1976년 9월 22일
신체조건: 키 183m / 몸무게 90kg
포지션: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94~2011
A매치 기록: 98경기 62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최전성기 시절에는 엄청난 스피드와 화려한 개인기, 그리고 뛰어난 슈팅 능력을 모두 겸비해 상대 수비수와 골키퍼를 무릎 꿇리며 압도적인 득점력은 물론 플레이메이킹 마저 능했던 스트라이커였으며 잦은 부상과 갑상선 비대증으로 인해 살이 찐 이후에도 엄청난 골 감각과 축구 센스, 그리고 적절한 위치 선정을 활용해 유럽 최고의 스코어러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다.

상대적으로 적은 우승 트로피에도 그가 1990년대와 2000년대 축구계를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인데 특히 월드컵에서의 활약이 백미인데 백업 멤버였던 1994 미국 월드컵을 제외하더라도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골든볼과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뒀으며,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득점왕과 우승, 그리고 실버볼을 제패했으며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월드컵 역사상 최다 골을 기록했었다가 지금은 클로제에게 자리를 내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로제의 월드컵 활약이 호나우두 이상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에릭 칸토나로부터 "어느 날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등장해, 네덜란드와 카탈루냐에서 별이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우상이 되었고 스페인에서 신이 되었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호나우두는 상술한 업적을 바탕으로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들었다.

 

감독

 

이름: 마리우 자갈루

출생년도: 1931년 8월 9일

부임기간: 1967-1968, 1970-1974, 1994-1998

 

선수 시절 브라질 대표팀의 레프트윙으로 활약하며 두 번의 우승을 이뤄낸 자갈루는 감독이 된 이후에 보타포구에서 좋은 성과를 내며 축구 역사상 최고의 국가대표팀이라 불렸던 1970 멕시코 월드컵의 셀레상을 이끄는 기회를 받았는데 모두의 기대대로 상대 팀들을 압도했으며 결승전에서는 카테나치오의 상징 이탈리아를 상대로 4-1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4-2-4 시스템의 창안자인 페올라의 수제자로 4-3-3 같은 4-2-4를 활용해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며 펠레, 토스탕, 제르손 등 여러 선수가 물러나자 유럽식 실리 축구로 전환하는 유연성도 지녔다.

 


토르난테 선정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베스트 일레븐

 


25인 스쿼드 / 서브 14인

 

 

이름: 클라우디오 타파렐
출생년도: 1966년 5월 8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68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88~1998
A매치 기록: 101경기 69실점 / 53 클린시트

 

1990년대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안정적인 핸들링은 물론 큰 경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준 강심장이다.

파르마와 갈라타사라이에서 전성기를 누린 타파렐은 셀레상에서도 그 훌륭한 명성을 이어갔는데 1988년에 서울 올림픽 은메달을 시작으로 코파 아메리카 우승 2회와 1994 미국 월드컵 우승, 그리고 1998 프랑스 월드컵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브라질 대표팀 역사상 최초로 센츄리 클럽에 가입했던 타파렐은 상술한 활약상을 인정받아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에메르송 레앙
출생년도: 1949년 7월 11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69~1986
A매치 기록: 80경기 48실점 / 45 클린시트

 

데뷔 시즌부터 은퇴 시즌까지 꾸준히 높은 고점을 유지한 골키퍼이며 정확한 던지기와 뛰어난 골킥을 활용해 수비수들과의 연계에 강점을 보여줬다.

파우메리아스와 그레미우에서 전설적인 활약을 펼친 에메르송 레앙은 셀레상에서도 위대한 활약을 이어갔는데  1970 멕시코 월드컵부터 1986 멕시코 월드컵까지 1982 스페인 월드컵을 제외한 네 번의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과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레앙은 FIFA 월드컵 본선 14경기에 출전해 87.9%의 선방률을 보여주는 괴력을 보여줬다.

 

 

이름: 루시우
출생년도: 1978년 5월 8일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4kg
포지션: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2000~2011
A매치 기록: 105경기 4골

 

월드컵과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핵심 선수로 제패한 경험이 있는 2000년대 최고의 센터백 중 한 명으로 강력한 피지컬을 앞세워 거친 플레이와 전진 드리블과 전진 패스를 활용한 빌드업, 그리고 지능적이며 신속한 인터셉트와 뛰어난 공중전 능력과 위협적인 프리킥까지 겸비한 완벽한 수비수였다,

21세기 분데스리가 최고의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세리에 A의 인터 밀란에서 트레블을 이룬 루시우는 셀레상 유니폼을 입고도 센츄리클럽에 가입했을 정도로 롱런했는데 월드컵에 세 번, 컨페드컵에 네 번 참가했으며 2002 한일 월드컵 우승과 두 번의 컨페드컵 우승을 이끌었는데 2009년에는 팀의 주장으로 우승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이름: 일데랄두 벨리니
출생년도: 1930년 6월 7일
신체조건: 키 185cm
포지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57~1966
A매치 기록: 51경기

 

1950년대 브라질을 대표하는 중앙 수비수였으며 선수단에게 인정받은 뛰어난 리더십과 부족한 기술을 근성 있는 집중력과 끈질긴 대인방어를 앞세운 헌신적인 플레이로 팀을 도왔다.

바스쿠 다 가마에서는 승리의 급행열차라 불리는 팀의 전성기를 이끈 벨리니는 셀레상에서도 위대한 활약을 이뤄내며 두 번의 월드컵에서 우승했는데 특히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우승을 이뤄내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었다.

지금은 다소 흔한 트로피를 쥐고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셀레브레이션을 최초로 보여준 베우리니의 모습은 지금도 브라질 대표팀의 메인 구장인 마라카냥 스타디움 앞에 동상으로 남아있다.

 

 

이름: 카푸
출생년도: 1970년 6월 7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5kg
포지션: 라이트백, 라이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90~2006
A매치 기록: 142경기 5골

 

같은 국적의 자우마 산투스, 카를루스 아우베르투와 함께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하나로 평가받는 선수로 오버래핑 상황과 수비 상황에서 모두 부족함 없는 모습을 보여주며 현대적인 측면 수비수의 교과서로 불렸다.

상 파울루의 황금기를 이끈 카푸는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월드컵 결승전에만 세 번 출전했는데 1994년에는 교체 출전으로, 2002년에는 주장으로 선발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으며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우승을 이뤄냈다.

다만 월드컵 올스타 팀에 한 번도 뽑히지 못한 점 때문에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A매치 최다 출전자임에도 불구하고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이름: 호베르투 카를루스
출생년도: 1973년 4월 10일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73kg
포지션: 레프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92~2006
A매치 기록: 125경기 11골

 

21세기를 대표하는 공격적인 레프트백으로 탄환인간이라 불렸을 정도로 엄청난 지구력과 스피드를 겸비했으며 거침없는 오버래핑과 단단한 몸을 이용한 대인 수비, 그리고 악마의 왼발로 불리는 강력한 왼발 킥력도 가지고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1기를 이끌며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을 이끌었으며 자신도 ESM 올해의 팀에 7회나 선정된 호베르투 카를루스는 셀레상에서도 월드컵 3회, 코파 아메리카 4회에 출전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준우승과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에 올랐으며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두 번이나 우승했다.

1997 컨페드컵에서 UFO 슛이라 불렸던 귀신같은 궤적의 프리킥을 날려 득점하며 이름을 날린 호베르투 카를루스는 상술했던 업적들을 인정받아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지투
출생년도: 1932년 8월 8일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69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55~1966
A매치 기록: 52경기 3골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선수로 빠른 발과 왕성한 활동량을 겸비했으며 터프한 태클로 상대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괴롭히는데 능했으며 뛰어난 리더십으로 팀을 하나로 묶는데 능했다.

펠레, 페페, 지우마르와 함께 산투스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지투는 셀레상에서도 그들과 함께 영광을 누렸는데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에서 모두 주전으로 활약하며 우승했으며 특히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팀 밸런스를 안정시키며 결승전에선 득점까지 기록하는 활약을 보여주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름: 둥가
출생년도: 1963년 10월 31일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7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87~1998
A매치 기록: 91경기 6골

 

1980년대 하반기와 199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성실한 몸 관리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과 계산적이며 거친 태클, 안정적인 패스, 경기의 흐름을 읽는 날카로운 전술안과 강력한 카리스마에서 나오는 훌륭한 통솔력을 겸비한 선수로 기존의 화려한 브라질 선수와는 거리가 있었던 선수였다.

브라질, 이탈리아, 독일, 일본을 거치면서 항상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던 둥가는 1990년대 셀레상의 부활을 이끈 위대한 주장으로 세 번의 월드컵과 네 번의 코파 아메리카와 한 번의 컨페드컵에 참가해 총 다섯 번 결승에 진출해 네 번을 우승했으며 특히 1994 미국 월드컵과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주장으로 대회에 참가해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1994 미국 월드컵과 1997년 코파 아메리카와 컨페드 컵에서는 주장으로 우승컵을 들었다.

J리그의 주빌로 이와타에 머물던 시절에 승부욕 없는 동료들이 지고도 웃으며 떠들자 "웃지 말라고 바보들아!"라고 일갈했을 정도로 뜨거웠던 둥가의 승부욕은 화려한 브라질 축구에 날개를 달아줬다.

 

 

이름: 지지뉴
출생년도: 1921년 9월 14일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3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1942~1957
A매치 기록: 53경기 30골

 

펠레 이전 브라질 축구의 아이콘이었던 선수로 인사이드 포워드에게 필요한 모든 덕목을 가지고 있던 창의적인 플레이메이커로 이름을 날렸으며 이외에도 하프백이나 전방 공격수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선수라 풋볼 마스터, 혹은 대가라는 뜻의 마에스트레라 불렸다.

당대 브라질 리그 최고의 선수였던 지지뉴의 명성은 셀레상에 완성되었는데 1949년 대회 우승과 네 번의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팀은 마라카냥에서 우루과이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지지뉴는 골든볼을 수상했다.

펠레 이전 브라질 축구계 최고의 스타 지지뉴는 상술한 공로를 인정받아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호베르투 히벨리누
출생년도: 1946년 1월 1일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3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레프트 윙,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1965~1978
A매치 기록: 92경기 26골

 

펠레 이후, 지쿠 이전 브라질 대표팀의 아이콘이었던 선수로 플립플랩 드리블의 시조로 화려한 드리블을 보여줬으며 원자폭탄 킥이라 불렸던 매서운 왼발 프리킥을 보여줬다. 즉 킥과 드리블, 패스에서 모두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플레이메이커였다.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지역예선과 본선에서 전승 우승을 거두며 화려하게 자신을 세상에 알린 히벨리누는 1970년에는 대회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1974 서독 월드컵에서도 팀의 핵심 선수로 팀 공격을 이끌었다.

 

 

 

이름: 호나우지뉴
출생년도: 1980년 3월 21일
신체조건: 키 182m / 몸무게 76kg
포지션: 레프트 윙,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1999~2013
A매치 기록: 97경기 33골

 

2005년 단 1년은 역대 최고의 폼을 보여준 창의적인 윙어다. 외계인으로 불렸으며 다른 선수들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는 다양한 프리스타일 개인기를 경기 내내 실전에 맞게 구사하는 천재였으며 저 화려한 기술을 뛰어난 전술안과 결합해 절륜한 플레이메이킹을 구사했으며 프리킥도 잘 찼다.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1999년 코파 아메리카에 처음으로 명단에 올렸으나 히바우두와 제 호베르투에 밀려 벤치 신세를 졌었다. 그러나 2002 월드컵에서 호나우두, 히바우두와 함께 3R이란 공격 삼각편대를 이뤄내 우승에 크게 공헌해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다. 이후 호나우두를 밀어내고 대표팀의 에이스로 군림해 2005 컨페드컵을 우승했으나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보이며 8강에서 탈락했다.

 

 

이름: 히바우두
출생년도: 1972년 4월 19일
신체조건: 키 186m / 몸무게 75kg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93~2003
A매치 기록: 74경기 35골

 

악마의 왼발이라 불렸던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강력하면서도 정확한 왼발 킥력과 뛰어난 득점력과 찬스 메이킹 능력을 모두 겸비했으며 공이 발에 붙어 다닌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드리블과 볼 컨트롤 능력이 발군이었는데 피지컬마저 강했다. 종합하자면 공격수로서의 기량과 플레이메이커로서의 기량이 모두 뛰어난 완성형 선수였다.

브라질과 스페인 무대에서 전성기를 보낸 히바우두는 셀레상에서는 더 화려한 활약을 펼쳤는데 1997 컨페드컵 우승을 시작으로 1998 프랑스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이뤄냈으며 199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득점왕과 MVP를 석권하며 우승에 크게 공헌해 트레블 팀 에이스인 베컴을 제치고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호나우두, 호나우지뉴와 삼각 편대를 구성해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대회 올스타 팀과 실버슈를 수상했다.

호나우두와 지단이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던 시절 그들의 명성을 가장 강하게 위협하는 선수였던 히바우두는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아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호마리우
출생년도: 1966년 1월 29일
신체조건: 키 168m / 몸무게 70kg
포지션: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87~2005
A매치 기록: 70경기 56골

 

골의 왕이라 불렸던 199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동물적인 감각을 앞세워 상대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너트려 득점했으며 신체 밸런스와 양발 사용 능력 모두 훌륭했으며 볼 컨트롤과 뛰어난 드리블 실력까지 자랑했다. 

PSV 에인트호번과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명성을 떨친 호마리우는 셀레상에서도 위대한 활약을 펼쳤는데 198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에 기여했으며 1994 미국 월드컵에서도 팀의 공격을 이끌며 우승해 월드컵 우승과 골든볼을 모두 석권했다. 그리고 1997년 컨페드컵에서는 호나우두와 투 톱을 이뤄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줬다. 감독들과의 불화로 국가대표팀에 꾸준히 소집되지는 못했지만 30대 후반인 2005년에도 소집된 이력이 있을 정도로 롱런했다.

감독들과의 불화로 국가대표팀에 꾸준히 소집되지 못했고 연습을 지독하게 안 하는 게으른 천재였던 호마리우는 여러 문제를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보여준 퍼포먼스가 너무나도 위대했음을 인정받아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레오디나스 다 실바
출생년도: 1913년 9월 6일
신체조건: 키 173m / 몸무게 75kg
포지션: 스트라이커,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1932~1946
A매치 기록: 19경기 21골

 

펠레 이전 브라질 축구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으로 정확한 위치 선정과 정교하면서도 강력한 왼발 슈팅 능력을 갖췄으며 고무인간이라 불렸을 정도로 훌륭한 탄력성을 겸비해 축구 역사상 최초로 바이시클 킥을 시도했으며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능해 인사이드 포워드로도 활약할 수 있었던 전천후 공격수였다. 

바스쿠 다 가마, 보타포구, 플라멩구에서 캄파오네투 카리오카를 각각 한 번씩 우승하며 카리오카의 왕으로 불렸던 레오니다스는 셀레상 유니폼을 입고도 맹활약했는데 특히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발군이었는데 그가 결장한 4강 이탈리아전에서 브라질은 패배를 당해 3위에 머물렀음에도 7골을 득점한 레오디나스의 활약은 대단해 결승에 오른 이탈리아와 헝가리의 선수들을 제치고 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레오디나스의 활약과 인기가 대단해 브라질의 초콜릿 제조업체인 렛타는 레오디나스의 허락하에 그의 별명인 검은 다이너마이트의 포르투갈어인 Diamante Negro라는 이름의 초콜릿을 발매했으며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와 함께 초기 브라질 축구계의 흑인들의 입지를 크게 올려준 선수로 상술한 활약들을 인정받아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5인 스쿼드 완성판

 

토르난테 선정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25인 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리저브 팀 11인

 

 

이름: 디다
출생년도: 1973년 10월 7일
신체조건: 키 196cm / 몸무게 85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95~2006
A매치 기록: 91경기 69실점 / 49클린시트

 

브라질과 밀란의 전설적인 골키퍼로 동물적인 반사신경과 압도적인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골문을 방어한다고 해서 넬슨 제독이라 불렸다.

AC 밀란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을 이뤄내고 2003 발롱도르 투표에서 13위에 랭크되었던 디다는 대표팀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는데 두 번의 컨페드컵과 1999 코파 아메리카에서 셀레상의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도 백업 멤버로 우승을 경험했으나 정작 주전으로 참가한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기대에 못 미쳤다.

줄리우 세자르와 고민했지만 클럽에서의 위상은 세자르가 근소하게 높아도 대표팀 활약을 반영하면 199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낸 디다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름: 치아구 시우바
출생년도: 1984년 9월 22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3kg
포지션: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2008~
A매치 기록: 107경기 7골

 

2010년대 최고의 센터백 중 하나로 특별한 약점이 없었으며 세련된 태클과 훌륭한 수비라인 조율로 후방에서 큰 영향력을 끼쳤다.

AC 밀란과 PSG, 첼시에서 모두 좋은 모습을 보이며 당대 유럽 무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군림한 치아구 시우바는 셀레상의 암흑기에도 굳건하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소수의 선수였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 4강을 이끌었으며 그가 빠진 경기에서 브라질은 독일에게 7-1로 대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이후에도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201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우승에 기여해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치아구 시우바는 대표팀 선수 호나우두로부터 "프란츠 베켄바우어의 족적을 따라가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름: 마우루 하모스
출생년도: 1930년 8월 30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6kg
포지션: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48~1965
A매치 기록: 28경기 0골

 

194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중반까지 롱런하며 명성을 누렸던 센터백으로 날카로운 태클과 뛰어난 제공권은 물론이고 우수한 수비 라인 지휘 능력으로 수비 라인의 리더로 팀의 수비를 이끌었다.

산투스의 전성기를 이끌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연패를 이끌어낸 하모스는 1950년대 셀레상에서는 백업 멤버로 1949 코파 아메리카와 1958 스웨덴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2 칠레 월드컵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활약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어냈다.

우리 시대의 Ramos가 스페인 대표팀과 레알 마드리드를 당대 최고의 팀으로 끌어올렸다면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활약했던 Ramos는 브라질 대표팀과 산투스를 세계 최고의 팀으로 끌어올렸다.

 

 

이름: 다니 아우베스
출생년도: 1983년 5월 6일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0kg
포지션: 라이트백, 라이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2006~
A매치 기록: 124경기 8골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트로피를 획득한 선수로 왕성한 활동량과 날카로운 공격력을 더해 오른쪽을 지배했으며 측면에서 엄청난 커버 능력과 플레이메이킹 능력으로 중원과 연계하며 우측 공격수를 지원하는데 능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두 번의 트레블을 이끈 아우베스는 셀레상에서는 마이콘에 밀려 오랜 기간 백업을 맡아 월드컵 활약은 다소 부진했지만 2007 코파 아메리카와 2019 코파 아메리카, 두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대회 MVP를 차지했다.

 

 

이름: 주니오르
출생년도: 1954년 6월 29일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9kg
포지션: 레프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79~1992
A매치 기록: 74경기 6골

 

1980년대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화려하면서도 빠른 드리블 돌파와 웬만한 공격형 미드필더 수준의 볼 컨트롤 능력과 측면에서 중앙으로 침투해 플레이메이킹을 하며 킬 패스를 뿌리며 팀 공격을 주도하면서도 비슷한 유형의 후배 마르셀루와는 다르게 수비적으로 빈틈이 없었다고 평가받았다.

플라멩구가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오르는 데 큰 공을 세운 주니오르는 대표팀에서도 세계 최고의 팀으로 수식되었던 팀에서 황금의 사중주를 보좌하며 활약했고 경기력도 뛰어났지만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모두 준결승 진출에도 실패하며 부진한 성적을 낸 아쉬움이 있다.

 

 

이름: 토니뉴 세레주
출생년도: 1955년 4월 21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5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77~1986
A매치 기록: 57경기 5골

 

198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왕성한 활동량과 강력하면서도 기술적인 완성도도 높은 명품 태클과 지능적인 인터셉트와 같은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물론 부드러운 볼 컨트롤과 넓은 시야를 활용한 창의적인 롱패스 실력과 기습적인 공격 가담까지 겸비한 완전체 미드필더로 공의 주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브라질과 이탈리아 무대를 누비며 월드클래스의 기량을 유지했던 세레주는 셀레상에서는 출중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음에도 다소 결과가 아쉬웠는데 지쿠, 파우캉, 소크라치스와 함께 중원 조합을 구성해 황금의 사중주라 불리며 기대를 모았으나 2차 리그에서 이탈리아에 패하며 탈락하는 아쉬움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름: 지르송
출생년도: 1941년 1월 11일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9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61~1972
A매치 기록: 70경기 14골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남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경기장 전체를 읽는 드넓은 시야와 예술과도 같은 볼 컨트롤은 물론 짧은 왼발 패스와 롱패스에 모두 능해 적절하게 템포를 조절하거나 골 찬스를 만들어내는 만능 플레이메이커였으며 왼발 기술이 좋아 팬들에게 황금의 왼발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대표팀 선배 지지와 마찬가지로 보타포구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대표팀에서도 1966 잉글랜드 월드컵과 1970 멕시코 월드컵에 참가해 후자의 대회에서 브라질 대표팀의 두뇌로 활동하며 중앙 미드필더에서 템포를 조절하며 팀의 예선과 본선 전승 우승에 기여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 MVP 투표에서 펠레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름: 자이르지뉴
출생년도: 1944년 12월 25일
신체조건: 키 173m / 몸무게 74kg
포지션: 라이트윙,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64~1982
A매치 기록: 81경기 33골

 

가린샤의 후계자로 불렸으며 1970년대를 수놓은 윙어다.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드리블 돌파와 정확한 오른발 슈팅, 그리고 화려한 발기술을 이용해 상대 수비의 압박을 따돌리는 능력도 지녔지만 크로스의 정확도가 나빠 클래식 윙어로 기용되진 못했다.

선배 가린샤의 뒤를 이어 보타포구에서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셀레상에서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전승 우승을 차지했던 셀레상의 주포로 활약했으며 본선에서 6경기 모두 출전해 7골을 넣었으며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1970 멕시코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월드컵 폭풍이라 불렸지만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이전 대회만큼의 퍼포먼스는 보여주지 못했다.

1974 서독 월드컵 이후 유럽 진출에 도전했으나 실패한 뒤 기량이 떨어져 오랜 기간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지만 1982년 체코슬로바키아와의 친선 경기에 11분간 출전한 것을 끝으로 국가대표팀을 은퇴했으며 은퇴 이후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토스탕
출생년도: 1947년 1월 25일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9kg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66~1972
A매치 기록: 54경기 32골

 

하얀 펠레라 불렸던 197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유럽의 크루이프에 대한 남미의 대답으로 평가받았으며 경기 흐름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완벽한 전술안과 경기장 전체를 망라하는 드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패스로 수많은 골 찬스를 만들었으며 상대 마킹맨을 농락하는 탈압박 능력과 화려한 드리블 실력을 겸비한 공격수였다.

크루제이루의 전국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토스탕은 셀레상에서도 1970 브라질 월드컵에서 활약했는데 왕이라 불린 펠레의 뒤를 이어 부왕이라는 칭호로 불리며 활약했는데 히벨리누, 자이르지뉴,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제르손 등 전설적인 선수가 다수 포진했음을 감안하면 토스탕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다. 당연히 은퇴한 뒤에는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그러나 망막박리라는 치명적인 안구 질환으로 인해 26세라는 어린 나이에 은퇴했는데 이는 브라질 축구계의 큰 손실이었으며 펠레에 이어 토스탕마저 은퇴한 브라질 대표팀은 1974 서독 월드컵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4위에 머문다.

 

 

이름: 네이마르
출생년도: 1992년 2월 5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8kg
포지션: 포워드, 레프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2010~
A매치 기록: 119경기 74골

 

당대 최고의 드리블 실력과 볼 컨트롤 실력은 물론 득점력과 왕성한 활동량을 통해 3선까지 내려가서 팀의 경기를 풀어주는 역할에 능통한 포워드다.

산투스에서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우승했고 바르셀로나에서 트레블을 이뤄냈으며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할 당시에는 역대 최고액 이적료를 기록했던 네이마르는 클럽에서의 활약에 비해 셀레상에서는 예선에서는 강력한 모습을 보였지만 본선에서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냈는데 물론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성적이 2014 브라질 월드컵 4강과 202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이라는 성적이다.

펠레에 이어 브라질 통산 득점 2위에 랭크된 네이마르는 메이저 대회에서의 대활약이 충족되어야만 브라질 명예의 전당 입성을 노릴 수 있을 것이다.

 

 

이름: 아데미르
출생년도: 1922년 11월 8일
신체조건: 키 176cm
포지션: 스트라이커, 레프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45~1953
A매치 기록: 39경기 32골

 

1940년대 하반기와 195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선수 생활을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시작했을 정도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공간 침투 능력과 치명적인 골 결정력을 겸비했다.

바스쿠 다 가마가 승리의 급행열차라 불리며 남미 최고의 클럽으로 명성을 떨쳤을 시절에 바스쿠 다 가마의 에이스였으며 대표팀에서도 셀레상의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며 대회 MVP를 수상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무려 9골이나 넣으며 팀을 우승 직전까지 올려놓았으나 마라카냥에서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와 고민했으나 아데미르는 도밍구스 다 기아, 레오니다스, 지지뉴와 함께 브라질 축구가 남미 축구 주류로 들어서는데 큰 역할을 한 네 명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기에 그를 선택했다.

 


*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시리즈의 선정 기준은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 50%와 선수 자체의 위상 50%를 합산해서 올스타 팀을 짭니다.

* 국가대표팀으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선수는 당연하게도 선정에서 제외합니다.

* 과거 다수의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선수들은 더 많은 활약을 한 국가대표팀으로 선정합니다. 고로 몬티와 오르시는 아르헨티나 대신 이탈리아로 선정되었습니다.

* 현역 선수들의 스탯은 2022년 8월 8일 기준입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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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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