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팀

국대 올스타 짜보기/남미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팀

토르난테 2021. 7. 12. 17:42
728x90
728x90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별칭: 라 알비셀레스테

월드컵: 출전 18회, 우승 3회

코파 아메리카: 출전 41회, 우승 15회

컨페드컵: 출전 3회, 우승 1회

올림픽: 출전 8회, 금메달 2회

최다 출전 선수: 리오넬 메시, 174경기

최다 득점 선수: 리오넬 메시, 102골

 


베스트 11

 

골키퍼

이름: 우발도 피욜
출생년도: 1950년 7월 21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0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74~1985
A매치 기록: 58경기 52실점 / 20 클린시트

 

남아메리카 역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엄청난 점프력과 빠른 반응속도와 훌륭한 상황 판단 능력을 바탕으로 한 전진 수비를 바탕으로 명성을 날렸다. 

리베르 플라테에서 전설적인 활약을 펼친 피욜은 대표팀에서도 라 알비셀레스테를 이끌고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우승을 이뤄내며 대회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며 이 활약상을 인정받아 1978 남미 올해의 선수 2위에 올랐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5등 안에 여섯 번 들었던 우발도 피욜은 2015년에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에서 선정한 아르헨티나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리베로

이름: 다니엘 파사레야
출생년도: 1953년 5월 25일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0kg
포지션: 리베로

대표팀 활약 기간: 1975~1986
A매치 기록: 70경기 22골

 

완벽한 수비 능력과 훌륭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 그리고 강력한 킥력을 활용해 득점과 찬스 메이킹마저 담당했으며 173cm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제공권 장악 능력이 오히려 강점에 속하는 만능 디펜더로 남미 축구 역사상 최고의 리베로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리버 플레이트와 피오렌티나에서 전설적인 활약을 펼치며 이름을 날린 파사레야는 라 알비셀레스테에서도 위대한 주장으로 이름을 남겼는데 다소 논란이 많은 대회지만 주장으로써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의 우승을 차지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할 예정이었지만 대회 직전 식중독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벤치로 내려가는 비극을 겪었지만 결과적으로 월드컵 2회 우승이라는 영예를 누렸다.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던 파사레야는 1976년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2015년에는 아르헨티나 축구협회 선정 아르헨티나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센터백

이름: 로베르토 페르푸모
출생년도: 1942년 10월 3일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5kg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64~1974
A매치 기록: 37경기

 

1960년대 남미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사령관이라 불릴 정도로 훌륭한 수비 라인 지휘 능력과 적절한 커버플레이, 그리고 수 많은 공격수를 좌절시킨 대인 수비 능력을 모두 겸비했다.

아르헨티나 대표로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과 1974년 서독 월드컵에 출전했다. 전자의 대회에선 8강에서 잉글랜드에게 석연치 않았던 판정으로 주장 라틴이 퇴장당하며 아쉽게 석패하기도 했다.

 

라이트백

이름: 하비에르 사네티
출생년도: 1973년 8월 10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포지션: 라이트백, 레프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94~2011
A매치 기록: 145경기 4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주장으로 평가받는 선수 중 하나로 공격 상황에서 크로스 능력은 아쉬웠지만 견고한 수비력과 강인한 체력과 빠른 주력을 활용해 공수를 오가며 훌륭한 활약을 펼쳤으며 수비형 미드필더와 메짤라, 레프트백도 볼 수 있었을 정도로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인테르의 트레블을 이끈 주장으로 그의 등번호 4번을 영구결번으로 만든 사네티는 대표팀에서도 센츄리 클럽에 가입했을 정도로 롱런했는데 1995년에 데뷔해 다섯 번에 코파 아메리카에 나가 2004년과 2007년에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과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비록 월드컵을 빛낼 정도의 활약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준 사네티는 2015년 아르헨티나 축구협회가 선정한 아르헨티나 대표팀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레프트백

이름: 실비오 마르솔리니
출생년도: 1940년 10월 4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0kg
포지션: 레프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60~1969
A매치 기록: 28경기 1골

 

1960년대 하반기 남미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유럽의 자친토 파케티에 대한 남미의 대답이라 불렸으며 왼쪽 사이드에서 오버래핑하며 저돌적인 돌파와 정확한 크로스를 올리며 상대를 위협했다.

보카 주니오스에서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이뤄낸 마르솔리니는 라 알비셀레스테에서도 그 우수한 기량을 유감없이 뽐냈는데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두 번의 월드컵과 한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했으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8강에서 탈락했으나 좋은 활약을 보여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6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결승에 진출했으나 상승세의 우루과이에게 패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루이스 몬티
출생년도: 1901년 5월 15일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3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중앙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24~1931
A매치 기록: 16경기 5골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으로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며 팀원들로부터 두 개의 날개란 뜻의 도블레 안초라 불렸으며 잔혹한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무너트리는 거친 플레이를 앞세워 상대팀에게는 도살자라 불렸다. 아르헨티나에서 이탈리아로 선박으로 오는 기간에 살이 찌자 혹독한 수준으로 다이어트를 하며 폼을 빠르게 찾았을 정도로 프로의식이 대단했다.

산 로렌소에서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이뤄내며 이름을 날린 몬티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소속으로도 1927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으며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은메달 및 1930 우루과이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되었다.

1931년 이후에는 이탈리아로 귀화해 유벤투스와 이탈리아 대표팀의 약진을 이끌었다.

 

오른쪽 메짤라

이름: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출생년도: 1926년 7월 4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80kg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外 모든 포지션

대표팀 활약 기간: 1947
A매치 기록: 6경기 6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축구 역사상 가장 다재다능한 선수로 60년대를 수놓은 명장 에레라의 말을 빌리면 "디 스테파노는 최고의 공격수이자 최고의 미드필더이며 훌륭한 수비수였다."라는 표현을 받았을 정도로 대단한 선수였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아돌프 페데르네라의 후계자로 두각을 나타내며 빠르게 입지를 다진 디 스테퍼노는 194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해 6골을 득점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대회 우승에 공헌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와 피파가 월드컵 개최 문제를 두고 갈등이 생기며 국제대회 참가를 거부하게 되자 디 스테파노는 아르헨티나를 떠난다.

비록 대표팀 경력은 짧았지만 당시 시대 상황에 의한 피해가 확실했으며 유일하게 나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였기에 이 명단에 선정했다.

 

왼쪽 메짤라

이름: 디에고 마라도나
출생년도: 1960년 10월 30일
신체조건: 키 165cm / 몸무게 70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77~1994
A매치 기록: 91경기 34골

 

"그때 공을 강타한 것은 나의 손이 아니라 신의 손이었다."

펠레, 메시와 함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손꼽히며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생각하는 아르헨티나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를 넘어 스포츠 스타이며 마라도나를 숭배하는 종교도 있을 정도로 자국에서 사랑을 받았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볼 컨트롤러이자 드리블러로 손꼽히며 현대 축구였다면 퇴장당했을 강력한 태클도 가볍게 무시했으며 오렌지도 축구공 마냥 가지고 놀 수 있었던 기막힌 볼 컨트롤 능력과 사방에 눈이 달려있다고 평가받는 압도적인 시야와 예측을 불허하는 창의적인 패스에서 나오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강력한 몸싸움 능력과 스테미너에 데드볼까지 능했던 완벽한 선수로 1979년, 즉 만 19세의 나이에 이미 펠레에 견줬던 화려한 선수였으며 여기에 라커룸을 아우르는 리더십마저 겸비했다.

나폴리에서 축구의 신이라 불리며 두 번의 스쿠테토를 따낸 마라도나는 라 알비셀레스테에서는 클럽 활약을 능가하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는데 네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 유니폼을 입었으며 특히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보여준 5골 5도움이라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단일 대회 역대 최고의 활약으로 평가받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무뎌진 대표팀을 이끌고도 팀을 결승에 올려놓으며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라이트윙

이름: 리오넬 메시
출생년도: 1987년 6월 24일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2kg
포지션: 포워드, 라이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2005~
A매치 기록: 174경기 102골

 

펠레, 마라도나와 함께 축구사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선수로 축구 역사상 최고라 불리는 드리블 돌파와 한 시즌에 리그에서만 50골을 득점한 경력이 있는 득점력부터 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스로 게임을 만들어가는 플레이메이커로서 자질 또한 일품이다.

바르셀로나에서 트레블만 두 번을 이뤄냈으며 피치치상 8회 수상과 발롱도르 7회 수상이라는 대단한 업적을 세운 메시는 대표팀에서의 활약이 클럽팀에서의 활약에 못 미친다는 비판을 들었어도 라 알비셀레스테 저지를 입고 16년째 활약하고 있으며 네 번의 월드컵과 한 번의 올림픽, 그리고 여섯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했으며 국제대회에서 준우승만 통산 네 번을 경험했지만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서 4골 5도움을 기록하며 우승에 성공하며 국대 무관에서 탈출했다. 득점왕과 MVP는 덤, 그리고 2014 브라질 월드컵 골든볼을 수상했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최다 출전자와 최다 득점자에 동시에 올라선 메시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우승을 이끌었는데 개인적으로도 골든볼 수상, 7골 3도으로 실버슈 수상, 맨 오브 더 매치 5회 선정 등 대기록을 세웠으며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는 A매치 통산 100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레프트윙

이름: 마리오 켐페스
출생년도: 1954년 7월 15일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6kg
포지션: 포워드, 레프트 윙,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73~1982
A매치 기록: 43경기 20골

 

1970년대 하반기 남미 최고의 공격수로 투우사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왕성한 활동량과 저돌적인 드리블, 그리고 뛰어난 찬스 메이킹과 득점력을 모두 겸비한 미래형 공격수였다.

발렌시아에서 라리가 득점왕에 두 번이나 올랐으며 1980년에 UEFA 컵 위너스컵과 UEFA 슈퍼컵을 우승한 켐페스는 대표팀에서는 더 출중한 활약을 펼쳤는데 1974 서독 월드컵에 데뷔했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6골 2도움, 그리고 18회의 찬스 메이킹과 43번의 드리블 성공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우며 팀의 우승에 이끌며 득점왕과 골든볼까지 차지했다. 아르헨티나 월드컵이 판정 시비로 비판받았지만 그 누구도 켐페스의 훌륭한 활약만큼은 부정하지 못했을 정도로 존중받았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도 팀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펄스 나인

이름: 호세 마누엘 모레노
출생년도: 1916년 8월 3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2kg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36~1950
A매치 기록: 34경기 19골

 

1940년대 세계 최고의 선수로 리버 플레이트의 공격 조합으로 남미를 떨게 했던 라 마키나의 핵심적인 선수였다. 공격수로서 필요한 모든 것에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으며 마라도나 등장 이전까지는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았었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페데르네라, 라브루나와 함께 아르헨티나 피리미어 디비시온 6회 우승을 이뤄낸 모레노의 활약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이어지는데 라 알비셀레스테에서는 2차 세계 대전과 아르헨티나와 피파의 갈등으로 인해 월드컵에서 활약은 펼치지 못했지만 194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라 마키냐 멤버들을 지휘하며 전승 우승을 달성했으며 1942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준우승과 득점왕을 차지했고, 1947년에 국가대표에 복귀하여 디 스테파노와 함께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고 MVP를 차지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1940년대 유럽 축구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마비되었던 시절의 선수라서 국내나 유럽에서의 인지도는 낮은 편이지만 1964년에 남미 축구 전문가끼리의 토론에서 디 스테파노를 앞질렀으며 펠레와 무승부를 거두기도 했다.

 

감독

 

이름: 기예르모 스티발레

출생년도: 1905년 1월 17일

부임기간: 1939~1958, 1960

 

아르헨티나 대표팀 역사상 최장수 사령탑으로 무려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대표팀을 지휘했으며 대표팀 감독과 동시에 산 로렌소, 라싱 클루브, 에스투디안테스, 우라칸 등 아르헨티나 구단의 감독을 겸직하기도 했다.

기예르모 스타빌레는 라 알비셀레스테의 지휘봉을 잡았던 기간 동안 코파 아메리카 6회 우승 및 판아메리카 챔피언십 3회 우승을 이뤄냈으나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와 FIFA의 갈등으로 월드컵에는 황금 세대가 물러난 1958 스웨덴 월드컵에만 참가했다.

스타빌레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이끌고 남미 무대를 정복한 퍼포먼스를 인정받아 독일의 라디오 방송사 베를린브리츠가 선정한 1940년대 최고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토르난테 선정 아르헨티나 역대 베스트 일레븐

 


25인 스쿼드 / 서브 14인

 

이름: 아메리코 테소리에레
출생년도: 1899년 3월 18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5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20~1925
A매치 기록: 32경기 32실점

 

1920년대 전성기를 누린 골키퍼로 용기와 안정감을 겸비했으며 필드 플레이어와의 연계에도 신경을 쓰는 혁신적인 플레이로 이름을 날렸으며 국가대표로 나선 38경기에서 29경기를 주장으로 출전할 정도로 우수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어 보카 주니어스의 팬클럽인 세네이세스는 그를 두고 "우리는 범죄자조차 자리에 앉힐만한 훌륭한 골키퍼를 보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14개의 트로피를 올리며 전성기룰 누린 테소리에레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의 활약도 대단했는데 코파 아메리카 2회 우승과 3회 준우승을 이뤄내며 아르헨티나를 우루과이에 견줄 수 있는 남아메리카 최고의 축구 강국으로 성장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름: 세르히오 고이코체아
출생년도: 1963년 10월 17일
신체조건: 키 185cm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87~1994
A매치 기록: 44경기 38실점 / 16 클린시트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신데렐라처럼 이름을 날린 골키퍼로 엄청난 반응속도를 앞세워 3단 선방과 같은 명장면을 자주 보여줬으며 페널티킥 선방에 능했다.

1986 멕시코 월드컵 우승 골키퍼인 품피도의 백업이었으나 품피도가 부상당한 이후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엄청난 선방 능력으로 팀을 결승에 올려놓았으며 특히 승부차기에 매우 능해 유고슬라비아와 이탈리아를 상대로 선방을 기록했으며 1991년과 1993년에는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어냈다.

고이코에체아는 개인의 활약도 대단해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과 대회 최우수 골키퍼에 선정되었으며 1993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조국의 우승에 크게 기여하며 대회 MVP를 차지했다.

 

이름: 오스카 루게리
출생년도: 1962년 1월 26일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5kg
포지션: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83~1994
A매치 기록: 97경기 7골

 

아르헨티나의 양대 명문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 양 팀에서 모두 활약한 파이터형 수비수로 특히 공중볼 경합에 능해 큰 머리라 불렸다. 

보카 주니어스의 성골 유스였으나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해 보카 주니어스 팬들의 원망을 한 몸에 받기도 했으며 리버 플레이트에서는 1986년 리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콘티넨탈컵 트레블을 이뤄낸 루제리는 대표팀에서도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수바의 핵으로 우승에 기여했으며 1991년과 1993년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철벽과도 같은 수비로 우승을 차지했는데 특히 1991년에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름: 로베르토 아얄라
출생년도: 1973년 4월 14일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5kg
포지션: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94~2007
A매치 기록: 115경기 7골

 

2000년대 남미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키는 작았지만 용수철과 같은 점프력으로 이를 극복했으며 교활한 수비 지능과 태클로 악명을 날리며 팬들로부터 생쥐라 불렸다.

박쥐군단의 황금기를 지휘하며 라리가 2회 우승을 이끌어낸 아얄라는 대표팀에서도 센츄리 클럽에 가입했을 정도로 핵심 자원으로 활약했는데 코파 아메리카 4회 출전해서 2회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부터 2006 독일 월드컵까지 세 번의 월드컵에서 모두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으며 올림픽에서도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와일드카드로 참가해 금메달의 영예를 누렸다.

 

이름: 알베르토 타란티니
출생년도: 1955년 12월 3일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2kg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74~1982
A매치 기록: 61경기 1골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활약했던 수비수로 튀어나온 앞니에서 나온 외모 때문에 토끼라고 불렸지만 과격하고 거친 플레이를 자주 보였으며 저돌적인 오버래핑으로 이름을 날렸다.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에서 모두 활약했으며 특히 전자의 구단에서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에 공헌한 타란티니는 대표팀에서는 1978 월드컵에서 대표팀의 우승에 공헌했으며 이때의 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일레븐과 월드 사커지 선정 1978년 월드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1982년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9위에 랭크된 타란티니는 2015년에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에서 선정한 아르헨티나 올 타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이름: 페르난도 레돈도
출생년도: 1969년 6월 6일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5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92~1999
A매치 기록: 29경기 1골

 

화려함과 견고함을 겸비한 90년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부드러운 볼 트래핑과 비단결 같은 패싱력을 겸했으며 몸을 사리지 않는 거친 슬라이딩 태클과 집요한 몸싸움과 지능적인 인터셉트 능력을 모두 겸비했으며 기습적인 전진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교란하는 능력마저 갖춘 만능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1999-2000 시즌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맹활약을 펼친 레돈도는 대표팀에서도 우수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라 알비셀레스테의 유니폼을 입고 1992년에 컨페드컵의 전신인 킹스 컵 우승을 이끌며 골든 볼을 받았으며 1993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에도 기여했으며 1994 미국 월드컵과 1995 킹스컵에서는 시메오네와의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며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으나 그러나 다니엘 파사레야 감독의 단발령에 거부하여 대표팀에서 물러나는 바람에 아르헨티나 대표팀 경력은 길지 않았다.

 

이름: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출생년도: 1984년 6월 8일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4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2003~2018
A매치 기록: 147경기 3골

 

2000년대 하반기와 201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거칠고 터프한 태클을 앞세운 강력한 대인 수비력과 상대의 패스 흐름을 우수하게 차단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중원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던 진공청소기였으며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이후로는 본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뿐만이 아니라 센터백으로도 훌륭한 활약을 보여줬다.

리버풀과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특히 후자의 클럽에서는 2014-15 시즌 트레블에 공을 세운 마스체라노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역대 누적 출전 2위를 기록했으며 라 알비셀레스테의 유니폼을 입고 두 번의 올림픽과 네 번의 월드컵, 그리고 다섯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했으며 특히 두 번의 올림픽에서는 모두 금메달을 땄고 2014 브라질 월드컵과 팀을 결승에 올려놓으며 맹활약했고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결승 진출만 네 번 이뤘지만 모두 준우승을 하며 메이저 국가대항전 준우승만 다섯 번을 기록한 비운의 선수다.

 

이름: 오스발도 아르딜레스
출생년도: 1952년 8월 3일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2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75~1982
A매치 기록: 51경기 8골

 

1970년대 하반기와 198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중앙 미드필더로 비단뱀이라 불리며 현란한 드리블과 볼 컨트롤을 보여줬으며 여기에 뛰어난 패싱력과 강한 체력, 그리고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영리한 움직임이 돋보였다.

토트넘 핫스퍼에서 팬들로부터 "그냥 포클랜드를 아르헨티나에게 줘버리고 그 대가로 오시 아르딜레스를 귀화시키자"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아르딜레스는 1975 코파 아메리카에서 데뷔한 아르딜레스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우승에 공을 세웠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도 팀은 2차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지만 아르딜레스는  엘 그라피코 선정 스페인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이름: 안토니오 사스트레
출생년도: 1911년 4월 27일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포워드,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33~1941
A매치 기록: 34경기 6골

 

1930년대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던 인사이드 포워드로 드리블과 패스에 능하며 이를 활용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으로 후대의 많은 아르헨티나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전해지며 하프백에서도 활약할 수 있었다.

자국 리그의 인데펜디엔테와 브라질 리그인 상파울루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사스트레는 대표팀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는데 라 알비셀레스테가 참가한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모두 주전으로 나와서 2회 우승과 1회 준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오마르 코르바타
출생년도: 1936년 3월 11일
신체조건: 키 165cm / 몸무게 62kg
포지션: 라이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56~1962
A매치 기록: 43경기 18골

 

브라질의 가린샤에 대한 아르헨티나의 대답이라 불렸던 코르바타는 상대 수비를 수월하게 따돌리는 드리블 스킬과 폭발적인 가속력을 겸비했으며 뛰어난 슈팅력과 볼 운반 능력도 겸비한 완성형 윙어였다.

라싱 클루브와 보카 주니오스에서 각각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2회 우승을 이뤄낸 코르바타는 대표팀에서는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했으며 특히 1957년 대회에서는 시보리, 마스치오, 안젤리요와 함께 더러운 얼굴을 한 천사들이라는 공격 조합을 결성해 상대팀의 수비 진영을 유린했다.

 

이름: 라이문도 오르시
출생년도: 1901년 12월 2일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8kg
포지션: 레프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24~1928, 1936
A매치 기록: 13경기 3골

 

1920년대와 30년대 당시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빠른 스피드와 교묘한 드리블을 겸비해 상대 수비수를 속이며 크로스를 올려 공격수를 지원하는 능력과 왼발 슈팅으로 직접 마무리하는 능력 모두 훌륭했으며 중요한 경기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인디펜디엔테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오르시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소속으로 1927 코파 아메리카 우승 및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은메달을 이뤄냈다. 이후 유럽에서도 유벤투스와 이탈리아 대표팀의 약진을 이끈 뒤 1936년에 다시 남미로 돌아와 활약했다.

 

이름: 아돌포 페데르네라
출생년도: 1918년 11월 15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0kg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40~1946
A매치 기록: 21경기 7골

 

펄스 나인 역할을 하며 라 마키나의 5인 스위칭 플레이를 주도했던 인사이드 포워드로 공격진 전원을 지휘하는 플레이메이킹 능력과 높은 전술안을 활용한 경기 설계력을 자랑하며 엘 마에스트로라 불렸으며 이때의 활약으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의 우상이 되기도 했다. 

라 마키나를 지휘하며 리버 플레이트의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5회 우승을 이끌었던 페데르네라와 라 마키나의 활약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이어지는데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시대에 활약하던 축구선수라 월드컵 기록은 없지만 페데르네라는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46년 대회에서는 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이름: 마누엘 세오아네
출생년도: 1902년 3월 19일
신체조건: 키 160cm / 몸무게 80kg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56~1957
A매치 기록: 19경기 14골

 

1920년대 아르헨티나를 대표했던 공격수로 키가 작았지만 헤딩 스킬이 좋았고 볼 다루는 기술이 빼어났으며 정확한 양발 슈팅과 우수한 패스 센스를 가진 인사이드 포워드였으며 또한 체형 때문에 다소 느린 스피드를 보완하기 위해 다음 플레이를 예측하는 지능적인 플레이를 선호했다.

인디펜디엔테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리그 득점왕을 세 번이나 수상한 세오아네는 대표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특히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대회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대회  3회 우승은 물론이고 1925년 대회에서는 우승, 득점왕, MVP의 트레블을 이뤄냈으며 1927년 대회에서도 MVP에 올랐고 1929년에도 우승 멤버로 이름을 남기는 대단한 활약을 보여줬다.

 

이름: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출생년도: 1969년 2월 1일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3kg
포지션: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91~2002
A매치 기록: 77경기 54골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이자 1990년대를 대표하는 골 게터로 화려한 플레이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천둥 같은 슈팅력과 강력한 헤딩을 앞세워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줘 바티스투타라는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득점을 해낸다 하여 바티골이라 불렀다.

피오렌티나에서 특히 대단한 활약을 펼쳤던 바티스투타는 대표팀에서도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주며 맹활약했는데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두 번의 우승과 두 번의 득점왕을 이뤄냈으며 세 번의 월드컵에 참가해 월드컵 통산 10골을 득점했는데 이는 아르헨티나 국적 선수 중 월드컵 최다 득점 기록이다.

리오넬 메시 이전 아르헨티나 최다 득점자였던 바티스투타는 2015년 아르헨티나 축구협회 선정 아르헨티나 대표팀 올 타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25인 스쿼드 완성판

 

토르난테 선정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25인 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리저브 팀 11인

 

이름: 아마데오 카리조
출생년도: 1926년 6월 12일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6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66~1979
A매치 기록: 22경기

 

우발도 피욜과 함께 아르헨티나를 넘어 남아메리카 역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손에 꼽히는 선수이자 스위퍼 키퍼의 시조라고 불리는 사람 중 한 명으로 페널티 에어리어 바깥 지역까지 커버했으며 골킥을 전략적으로 이용한 선구자였다.

아르헨티나의 리버 플레이트에서 23년간 활약하며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을 이뤄낸 카리조는 대표팀에서는 로젤리오 도밍게스를 더 선호하는 기예르모 스타빌레 감독에 의해 소속팀만큼 빛을 보지 못했으며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한 것 이외에는 대표팀 운이 없던 선수였다.

그래도 카리조의 플레이는 소련의 레프 야신도 감탄하게 만들었으며 야신이 카리조에게 자신의 골키퍼 글러브 한쪽을 선물하며 그의 실력을 인정했다.

 

이름: 호세 살로몬
출생년도: 1916년 7월 9일
신체조건: 키 175cm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39~1946
A매치 기록: 44경기

 

1940년대 상반기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끈 수비수로 날카로운 태클과 강력한 정신력을 통한 뛰어난 대인 마킹 능력은 물론 수비라인을 지휘하는 능력에도 능했던 수비라인의 리더였다.

라싱 클루브에서 이름을 날린 살로몬은 대표팀에서도 주장이자 핵심 수비수로서 라 마키나라 불렸던 공격진의 뒤를 잘 받쳐주며 코파 아메리카 3회 우승과 1회 준우승을 이뤄내는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1946년에 절정의 기량을 누리던 살로몬은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자이르 다 호사의 살인태클로 인해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살로몬은 오랜 기간 재활해야 하는 부상을 당해 대표팀을 떠났으며 그렇지 않아도 월드컵 개최 문제로 사이가 벌어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관계는 살로몬의 부상을 기점으로 더욱 심해지기에 이른다.

 

이름: 페드로 델라차
출생년도: 1926년 7월 9일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8kg
포지션: 센터백, 라이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53~1958
A매치 기록: 35경기 0골

 

1950년대 아르헨티나를 상징하는 센터백으로 강인한 정신력과 견고한 대인 수비로 이름을 날렸으며 센터백은 물론 라이트백도 막힘없이 소화했고 리더십이 뛰어나 주장으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라싱 클루브에서 전성기를 누린 델라차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전 센터백이자 주장으로 활약하며 1955 코파 아메리카와 1957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었는데 특히 1957 코파 아메리카 우승팀은 더러운 얼굴의 천사들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후세에도 회자되었고 1958 스웨덴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이름: 카를로스 소사
출생년도: 1919년 7월 21일
신체조건: 키 174cm
포지션: 라이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42~1946
A매치 기록: 12경기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측면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로 우수한 지구력에서 나오는 넓은 활동 반경과 빠른 스피드와 적절한 수비 위치를 선점해 상대 공격수를 한 박자 빠르게 막아냈으며 우수한 축구 지능과 날카로운 롱패스 실력으로 인해 주 포지션인 라이트백은 물론 라이트 하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보카 주니오스에서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연패를 이끈 소사는 1945년과 1946년에 열린 코파 아메리카에서 하프백으로 출전해 팀의 코파 아메리카 2연패를 이끌었다.

 

이름:네스트로 로시
출생년도: 1925년 5월 10일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5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중앙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46~1961
A매치 기록: 26경기

 

1940년대와 5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던 선수로 당시로서는 굉장히 큰 키인 185cm라는 거대한 피지컬에서 나오는 태클과 몸싸움 능력으로 상대 공격수들을 무자비하게 찍어 눌렀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편대 중 하나인 라 마키나의 뒤를 받쳐주며 수비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볼 배급을 하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이뤄낸 로시는 라 알비셀레스테의 유니폼을 입고도 우수한 성과를 냈는데 1947년에는 호세 마누엘 모레노,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노르베르트 멘데스의 뒤를 받히며 우승을 이뤄냈다,

이후 콜롬비아로 떠나서는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하다가 리버 플레이트로 다시 돌아온 이후에는 195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더러운 얼굴의 천사들이라 불렸던 오마르 시보리, 오마르 코르바타, 움베르토 마스치오와 같은 후배 공격수들의 뒤를 받혀주며 재차 우승했으며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이름: 디에고 시메오네
출생년도: 1970년 4월 28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88~2002
A매치 기록: 106경기 11골

 

현세대 젊은 팬들에게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보스로 유명한 시메오네지만 현역 시절에는 거친 몸싸움과 지능적인 반칙, 뛰어난 리더십과 헤딩을 활용한 득점력까지 모두 겸비한 수비형 미드필더였으며 팬들로부터 엘 촐로, 즉 목동이라고 불렸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라치오에서 모두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운 시메오네는 대표팀에서도 빛나는 활약은 계속 이어졌는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슈퍼스타 베컴을 도발해 퇴장시킨 것 이외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두 번이나 우승했으며 킹스 컵에서도 레돈도와 함께 압도적인 중원 장악을 보여주며 우승에 기여했다.

시메오네는 마라도나와 파사레야도 이루지 못했던 아르헨티나 대표팀 최초로 센츄리 클럽에 이름을 남겼다.

 

이름: 카를로스 페우셀레
출생년도: 1908년 9월 13일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2kg
포지션: 라이트윙,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28~1940
A매치 기록: 59경기 12골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남미를 풍미했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테크니컬한 드리블 실력과 대포 같은 중거리 슈팅을 겸비한 우수한 측면 공격수였다.

그 시대 남미 역대 최고 이적료인 1000만 페소에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해 활약했던 페우셀레는 라 알비셀레스테 군단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1929년과 1937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으며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서도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이뤄냈다.

 

이름: 엔리케 가르시아
출생년도: 1912년 11월 20일
신체조건: 키 169cm
포지션: 레프트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35~1943
A매치 기록: 35경기 9골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윙 중 한 명으로 현란한 볼 컨트롤 능력과 테크니컬한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를 벗겨낸 뒤 중거리 슈팅을 날려 득점하던 선수였다.

로사리오 센트럴과 라싱 클루브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나서서 1937년 대회와 1941년 대회에서 우승에 기여했으며 1942년 대회에서도 준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저널리스트 단테 판제리는그를 두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웃사이드 레프트였으며 펠릭스 로스타우가 팀에는 더 나았지만 엔리코 가르시아는 필드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라고 평가했다.

 

이름: 앙헬 라브루나
출생년도: 1918년 9월 28일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4kg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42~1958
A매치 기록: 37경기 17골

 

1940년대를 수놓은 라 마키나의 일원으로 빠른 스피드로 수비라인을 돌파하거나 팀원들과의 우수한 연계 플레이로 상대 수비를 교란한 뒤 정확한 슈팅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즐겼으며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도 대표팀에 뽑혔을 정도로 자기 관리 능력도 우수했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모레노, 페데르네라와 함께 라 마키나라 불렸던 공격 조합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9회 우승을 이뤄낸 라브루나는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이어가며 라 알비셀레스테의 유니폼을 입고 1946년과 1955년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도 1958 스웨덴 월드컵 스쿼드에 포함되어 활약했다.

 

이름: 오마르 시보리
출생년도: 1935년 10월 2일
신체조건: 키 163cm / 몸무게 59kg
포지션: 포워드, 레프트윙,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56~1957
A매치 기록: 19경기 9골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기 세계 최고의 판타지스타 중 한 명으로 뛰어난 볼 컨트롤과 드리블로 수비진을 교란했으며 매서운 왼발 슈팅으로 직접 득점하기도 했으나 규율과 규칙을 싫어하고 브라질 선수들과 사이가 나빠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리버 플레이트에서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연패를 달성했고 유벤투스에서는 존 찰스, 보니페르티와 함께 마법의 삼총사를 구성해 스쿠테토를 세 번이나 들었던 시보리는 아르헨티나에서 머물던 시절 대표팀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펼쳤는데 1957년에는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며 대회 MVP를 석권했는데 이때 시보리와 아르헨티나 대표팀 선수들은 팬들로부터 더러운 얼굴의 천사들이라 불렸다.

 

이름: 루이스 아르티메
출생년도: 1938년 12월 2일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3kg
포지션: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61~1967
A매치 기록: 25경기 24골

 

1960년대 남미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맹수라 불렸을 만큼 동물적인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강력한 몸싸움과 빠른 스피드, 용수철 같은 점프력을 겸비했으며 재빠른 반응속도를 활용한 라인 브레이킹과 반 박자 빠른 슈팅에 능한 득점기계였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우루과이에서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나시오날에서는 1971년 리그는 물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모두 우승하며 3관왕을 이뤄냈던 아르티메는 국가대표팀에서도 1966 잉글랜드 월드컵 8강과 1967년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5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에 올랐다.

 


*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시리즈의 선정 기준은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 50%와 선수 자체의 위상 50%를 합산해서 올스타 팀을 짭니다.

* 국가대표팀으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선수는 당연하게도 선정에서 제외합니다.

* 두 개 이상의 대표팀에서 활약한 선수도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한해 활약이 뛰어나면 선정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선정하지 않았던 루이스 몬티,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라이문도 오르시를 추가했습니다.

* 현역 선수들의 스탯은 2023년 5월 6일 기준입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