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팀

국대 올스타 짜보기/서유럽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팀

토르난테 2021. 7. 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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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별칭: 디 만샤프트

월드컵: 출전 19회, 우승 4회

유로: 출전 12회, 우승 3회

컨페드컵: 출전 3회, 우승 1회

올림픽: 출전 9회, 은메달 1회

최다 출전 선수: 로타어 마테우스, 150 경기

최다 득점 선수: 미로슬라프 클로제, 71골

 


베스트 11

 

골키퍼

 

이름: 마누엘 노이어
출생년도: 1986년 3월 27일
신체조건: 키 193cm / 몸무게 92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2009~
A매치 기록: 113경기 111실점 / 46클린시트

 

바이에른 뮌헨과 분데스리가 역대 최고의 골키퍼이며 골키퍼로서의 기본적인 능력은 물론, 필드 플레이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넓은 커버 범위와 훌륭한 빌드업으로 스위퍼 키퍼의 시대를 열었던 장본인이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하며 분데스리가 10연패와 트레블 2회라는 대기록을 세운 노이어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월드컵과 유로에 각각 세 번씩 출전했으며 특히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스위퍼 키퍼가 무엇인지 세계에 널리 알리며 팀의 월드컵 우승에 공헌하며 대회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음은 물론 골키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도했다.

노이어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위대한 활약으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에 올랐으며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했다.

 

리베로

 

이름: 프란츠 베켄바우어
출생년도: 1945년 09월 11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5kg
포지션: 리베로,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65~1977
A매치 기록: 103경기 14골

 

부정할 수 없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수비 라인에서의 자유인을 넘어 전 경기장을 자유롭게 누비는 독일식 리베로의 시조로 서독 대표팀의 전성시대를 열었으며 그리고 당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바비 찰튼을 지워냈을 정도로 대인 마킹에도 능했다.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분데스리가 3연패와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끌었던 베켄바우어는 디 만샤프트 소속으로도 세 번의 월드컵과 두 번의 유로 본선에 출전해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준우승, 1970 멕시코 월드컵 3위, 1972 유로 우승, 1974 서독 월드컵 우승, 1976 유로 준우승이라는 위대한 성적을 세웠으며 출전한 대회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독일 선수로는 최초로 센츄리 클럽에 가입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던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야신을 상대로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하거나 바비 찰튼을 완벽하게 봉쇄하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월드컵 신인상에 올랐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준결승전에서 만난 이탈리아를 상대로 쇄골이 다치는 부상을 입으면서도 풀타임으로 경기를 마치며 철인의 풍모를 보여줬다.

이후 1970년대에 들어서 리베로로 출전한 1972 유로에서는 독일식 리베로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유로 우승을 이끌어 트레블을 이룬 크루이프를 밀어내고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팀의 우승에 크게 공헌했으나 크루이프에 밀려 월드컵 실버볼을 받았고 1976 유로에서는 팀의 결승행을 이끌었고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대단한 퍼포먼스로 복수의 언론으로부터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센터백

이름: 위르겐 콜러
출생년도: 1965년 10월 6일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4kg
포지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86~1998
A매치 기록: 105경기 2골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토퍼로 당대를 넘어 역대 최고급의 대인 마킹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압도적인 피지컬과 교묘한 심리전을 겸비하며 공격수들을 괴롭혔으며 본인이 인터뷰에서 직접 "나를 곤혹케 한 공격수는 내 경력을 통틀어 없었다."라고 밝혔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첫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위르겐 콜러는 칼하인츠 푀르스터의 후계자로 대표팀에 선발되었으며 유로 1988을 시작으로 월드컵과 유로에 각각 3회 선발되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상대 공격수를 지워내며 조국의 통일 선물로 월드컵 우승을 선물했으며 1992 UEFA 유로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나 1996 유로에서는 주전으로 활약에 예정되었으나 대회 도중 부상당해 낙마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팀의 침몰을 막지 못하고 아쉬운 은퇴를 했다.

역할을 고려하지 않았으면 마티아스 잠머가 우선적으로 선정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더블 리베로를 좋아하지 않는 내 성향상 당대 최강의 스토퍼 위르겐 콜러를 카이저를 호위하는 기사로 선정했다.

 

라이트백

이름: 베르티 포그츠
출생년도: 1946년 12월 30일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7kg

대표팀 활약 기간: 1967~1978
A매치 기록: 96경기 1골

 

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통하며 특히 크루이프마저 완전히 지워버린 발군의 대인 마킹 실력은 당대는 물론 역대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며 팬들로부터 마치 사냥개와 같다고 'Der Terrier'라고 불렸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분데스리가 5회 우승을 이끌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끈 베르디 포그츠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황금기를 누렸는데 3회의 월드컵과 2회의 유럽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으며 특히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크루이프를 완벽하게 봉쇄하며 숨은 공로자 역할을 했으며 1976 유로와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세 번의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레프트백

 

이름: 안드레아스 브레메
출생년도: 1960년 11월 9일
대표팀 포지션: 레프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리베로, 윙어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7kg

활약 기간: 1984~1994
A매치 기록: 86경기 8골

 

1980년대 하반기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이자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세트피스 키커이자 양발잡이로 뛰어난 패싱력을 활용해 대표팀의 빌드업 시작점 역할을 했던 미래형 윙백이었으며 프리킥과 코너킥에 능해 팀의 공격을 지원했다.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경력의 시작과 끝을 보냈으며 바이에른 뮌헨과 인테르 밀란에서 전성기를 누린 브레메는 디 만샤프트 소속으로는 각각 세 번의 월드컵과 유로에 참가해 첫 메이저 대회인 1984 유로에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윙백임에도 우수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보여주며 호사가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페널티킥 결승골을 넣고 전 대회 결승전을 복수하며 월드컵 우승을 이루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1994 미국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을 떠났다.

브레메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과 유로 1984와 유로 1988에서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으며 특히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의 대단한 활약으로 수상이 불리한 윙백임에도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에 오르며 포디움에 들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로타어 마테우스
출생년도: 1961년 3월 21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리베로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1kg

대표팀 활약 기간: 1980~2000
A매치 기록: 150경기 23골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로 철인이라 불리는 신체 능력과 왕성한 활동량을 물론 대인 수비에서도 당대 수비형 미드필더들보다 한 차원 위에 있었으며 우수한 테크닉과 결정적인 순간에 한건하는 클러치 능력과 뛰어난 득점력까지 겸비하며 넓은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게임도 끝낼 수 있는 완벽한 선수였으며 다양한 포지션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과장 좀 해서 마테우스 이전에 언급한 미드필더들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완벽한 미드필더였다.

바이에른 뮌헨과 인테르 밀란에서 위대한 활약을 보여준 디 만샤프트 A 매치 최다 출전자 마테우스는 유로 1980을 시작으로 유로 2000까지 대표팀에 뽑혔으며 중도에 부상과 감독과의 불화와 같은 이유로 몇번 빠졌지만 다섯 번의 월드컵 출전과 네 번의 유럽 선수권 대회 출전을 이뤄냈다.

 

특히 1986 멕시코 월드컵 결승전에서 마라도나를 직접 마킹해 고전시킨 활약상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의 팀의 플레이메이커이자 1차 저지선인 동시에 주 득점원 역할까지 맡아 공수 양면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대회 우승, 월드컵 실버볼과 브론즈슈, 그리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상술한 활약으로 1990년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파울 브라이트너
출생년도: 1951년 09월 05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레프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대표팀 활약 기간: 1971~1982
A매치 기록: 48경기 10골

 

독일 축구의 천재 수비수이자 미드필더이며 풍운아로 레프트백 시절부터 이름을 날렸던 활약했던 뛰어난 수비 능력은 물론, 전략가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훌륭한 전술안과 탄탄한 기본기를 겸비했으며 상대방의 허를 찌르며 동료 공격수에게 골 찬스를 제공하는 킬패스와 골문을 직접 노리는 중거리 슈팅은 물론 왕성한 활동량까지 겸비해 그라운드의 넓은 범위에 영향력을 끼쳤던 공수겸장의 완벽한 선수였다.

바이에른 뮌헨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브라이트너는 독일 대표팀에서도 데뷔 대회인 유로 1972에서도 우승에 크게 기여해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도 뛰어난 활약으로 우승에 공헌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나 독일 축구 협회와의 불화로 라 리가로 이적하면서 오랜 기간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가 1980 유로가 끝난 뒤에나 복귀해 1982 스페인 월드컵에 참가해 팀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으나 결승전에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과 다르게 마무리를 좋게 하지는 못했다.

풀백 시절에는 1974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4위를 기록했으며 중앙 미드필더 시절에는 1981 발롱도르에서 2위에 올랐으며 포지선 경쟁자인 베른트 슈스터와는 사이가 다소 좋지 못했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칼하인츠 루메니게
출생년도: 1955년 09월 22일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양 측면 윙어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9kg

대표팀 활약 기간: 1951~1960
A매치 기록: 95경기 45골

 

198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피지컬 활용 능력과 드리블, 슈팅, 헤더 모두 우수했으며 공격수로서 결점이 없는 완벽한 공격수임과 동시에 우수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겸비한 완성형 선수였으며 독일의 펠레라 불리며 80년대 유럽 축구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당대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남기며 유럽의 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디 만샤프트에서도 세 번의 월드컵과 두 번의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도 우수한 활약상을 이어가며 별명값을 제대로 했는데 1980 UEFA 유로에서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팀의 우승에 기여하며 복수의 언론으로부터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부상을 달고 뛰었음에도 팀의 준우승을 이끌며 실버슈와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루메니게는 유로에서의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줘 1980년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월드컵에서도 두 번이나 결승 무대를 밟았던 당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려 일본의 인기 축구 만화 캡틴 츠바사에서는 루메니게를 모델로 만든 칼하인츠 슈나이더에게 최종 보스의 역할을 부여하기도 했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프리츠 발터
출생년도: 1920년 10월 31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3kg

대표팀 활약 기간: 1940~1958
A매치 기록: 61경기 33골

 

비 오는 날에 특히 강했던 서독 대표팀 역대 최고의 주장, 나치 독일 시절에 데뷔해 서독 축구의 부흥을 이끈 다재다능한 인사이드 포워드로 훌륭한 리더십과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보여줬으며 특히 비 오는 날에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줘 비 오는 날을 '프리츠 발터의 날'이라고 불렀다.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원 클럽맨이자 구단의 전성기를 이끈 레전드였던 발터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무너진 디 만샤프트의 재건을 이끌었으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높게 평가받지 못했던 서독을 이끌고 결승에 진출해 조별 리그에서 자신을 8-3으로 이겼던 헝가리를 상대로 3-2 승리를 거두는, 일명 베른의 기적의 주인공으로 활약하며 독일 축구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다.

프리츠 발터의 활약은 독일 축구사에서 큰 영향을 끼쳤는데 프란츠 베켄바우어를 포함해 그의 활약을 본 많은 어린이들이 축구 선수를 꿈꿨고 그들이 결국 1970년대 디 만샤프트와 분데스리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우베 젤러
출생년도: 1936년 11월 5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6kg

대표팀 활약 기간: 1954~1970
A매치 기록: 72경기 43골

 

1960년대 독일 축구의 아이콘으로 범국민적인 사랑을 받아 우리들의 우베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공격수로서 결점이 없는 완벽한 공격수였는데 170cm의 단신임에도 헤딩에 매우 능했으며 양발을 모두 잘 썼으며 백 헤더와 백힐 패스, 바이시클 킥 등 고급적인 기술들을 실전에서 자유자재로 선보였으며 천둥과도 같은 강력한 슈팅으로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줬다. 여기에 스피드도 빨랐고 강력한 리더십마저 보유했다.

함부르크의 원 클럽맨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당대 최고의 클럽인 인테르와 레알 마드리드의 제안을 물리치고 독일 무대에 남아 전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디 만샤프트에서도 1958 스웨덴 월드컵부터 1970 멕시코 월드컵까지 네 번에 월드컵에 참가해 모두 주전으로 활약하며 모든 대회에서 득점을 기록했으며 특히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선 주장으로 디 만샤프트를 이끌고 결승에 진출하는데 크게 공헌했으며 젤러 본인의 활약상도 인정받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스트라이커

 

이름: 게르트 뮐러
출생년도:1945년 11월 03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7kg

대표팀 활약 기간: 1966~1974
A매치 기록: 62경기 68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하나로 빠른 스피드와 화려한 테크닉, 좋은 신체 조건까지 어느 것도 갖추지 못했으나 완벽한 축구 지능과 훌륭한 골감각과 위치 선정, 그리고 동료를 이용하는 영리한 플레이를 펼치며 득점은 물론 도움도 많이 기록했던 완성형 공격수였다.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유러피언 컵 3연패를 이끌었고 11번이나 득점왕에 올랐던 게르트 뮐러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자신의 첫 메이저 대회인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펠레나 자이르지뉴 같은 쟁쟁한 공격수들을 제치고 10골이나 넣으며 득점왕을 수상했으며 이때의 활약으로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유로 1972에서도 득점왕에 오르며 우승에 크게 공헌해 발롱도르 2위를 수상했으며 1974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결승전에서 미헬스와 크루이프의 네덜란드를 상대로 결승골을 기록하며 우승에 방점을 찍었다

월드컵과 유로를 모두 우승했으며 동시에 월드컵과 유로에서 득점왕에 오른 대단한 업적을 세운 게르트 뮐러는 유로와 월드컵을 모두 석권하며 화려하게 국가대표팀을 은퇴했으며 그가 떠난 뒤 독일 대표팀은 우수한 경기력에도 해결사의 부재로 유로 1976에서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며 그의 공백을 체감했다.

 

감독

헬무트 쇤

출생년도: 1915년 9월 15일

부임기간: 1964~1978

 

서독 축구의 전성기를 이끈 감독으로 축구에 대한 폭넓은 이해도와 상대의 전력과 아군의 전력을 잘 분석해 화려한 축구와 견고한 축구를 모두 구사할 수 있었던 명장이다.

유로 1972에서는 브라질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기술 축구로 유럽의 왕좌에 올랐으며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를 연상시키는 실리적인 축구로 화려한 토털 풋볼을 보여준 네덜란드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토르난테 선정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베스트 일레븐

 


25인 스쿼드 / 서브 14인

 

 

이름: 제프 마이어
출생년도: 1944년 02월 28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66~1979
A매치 기록: 95경기 73실점 / 43클린시트

 

20세기 독일 최고의 골키퍼이자 바이에른 뮌헨 역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안칭의 고양이라는 별명답게 날렵한 반사신경과 유연성을 자랑했다.

바이에른 뮌헨의 유러피언 컵 3연패를 이뤄내며 전성기를 이끈 핵심 선수로 디 만샤프트에서도 안정적인 활약을 펼치며 유로 1972 우승, 1974 서독 월드컵 우승, 그리고 유로 1976 준우승을 달성하며 메이저 대회 3회 연속 결승 진출에 성공했으며 마이어 본인도 1974 서독 월드컵에서 대회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다.

 

 

이름: 올리버 칸
출생년도: 1969년 6월 15일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7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95~2006
A매치 기록: 86경기 95실점 / 29클린시트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골키퍼로 경이로운 선방 능력과 뛰어난 수비 라인 통솔, 그리고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상대 공격수와의 기싸움에 능한 골키퍼였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골키퍼로 명성을 날렸던 올리버 칸이지만 디 먄샤프트에서는 1994 미국 월드컵부터 1998 프랑스 월드컵까지 오랜 시간 일그너와 쾨프케에 눌려있었으나 이후 주전 자리를 차지해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다수의 멤버들이 부상과 부진으로 고생하는 팀을 이끌며 압도적인 활약을 펼쳐 결승에 진출했으며 그 공로로 골키퍼로는 최초로 월드컵 MVP인 골든볼을 수상했다.

한일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2002년에 발롱도르 3위를 받았는데 골키퍼로서는 유일하게 발롱도르 포디움에 두 번이나 들었지만 클린스만 감독이 부임한 뒤에는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이름: 마티아스 잠머
출생년도: 1967년 9월 5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포지션: 리베로,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86~1997
A매치 기록: 74경기 14골
(동독 대표팀 기록인 23경기 8골 합산)

 

마지막 리베로라 불리는 사나이로 스리백 시스템에서 오프사이드 트랩은 불가능하다는 세간의 편견을 깨며 스리 백 시스템에서도 오프사이드 트랩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축구 지능과 수비 조율 능력을 가진 선수였다.

도르트문트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잠머는 전성기는 짧지만 그 고점은 가히 베켄바우어 다음가는 선수였다고 평가받았으며 통일 이후 디 만샤프트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던 시기에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리베로로 활약한 1996 유로에서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녹슨 전차군단이라 조롱받았던 독일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나 이후 1998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큰 부상을 당해 은퇴하면서 독일 축구는 한동안 암흑기를 겪었다.

상술했던 유로 1996에서의 퍼포먼스로 클럽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어린 천재 호나우두를 제치고 발롱도르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름: 칼하인츠 푀르스터
출생년도: 1958년 7월 25일
신체조건: 키 178cm
포지션: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78~1986
A매치 기록: 81경기 2골

 

천사의 얼굴을 한 철의 정강이로 불릴 정도로 당대 최고의 대인 수비력을 지녔으며 198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스토퍼였다. 

슈투트가르트의 분데스리가 첫 우승을 이끌었던 레전드였으며 디 만샤프트에도 각각 두 번의 월드컵과 유로에서 맹활약했으며 1980 UEFA 유로 우승을 비롯한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6 멕시코 월드컵 결승 진출을 이끌어냈고 조별 리그에서 탈락한 1984년 UEFA 유로에서도 개인 활약은 뛰어나 팀 오브 더 토너먼트에 들었다.

프랑스의 저명한 언론사 옹즈 몽디알이 뽑은 올해의 스토퍼에 여섯 번이나 뽑혔으며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올해의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며 자타공인 당대 최고의 스토퍼로 이름을 날렸지만 월드컵 우승이 없는 부분은 다소 아쉬웠다.

 

 

이름: 필립 람
출생년도: 1983년 11월 11일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5kg
포지션: 라이트백, 레프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2004~2014
A매치 기록: 113경기 5골

 

펩 과르디올라로부터 펩이 가르친 선수 중 가장 축구를 잘 이해하는 선수라 평가받은 지능적인 라이트백으로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2010년대 디 만샤프트와 바이에른 뮌헨을 이끌었다. 훌륭한 축구 지능과 강철 같은 체력, 적절한 공격 가담을 겸비한 2010년대 최고의 라이트백이었다.

클럽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의 원 클럽맨이자 주장으로서 트레블을 이끌며 세계 최고의 라이트백이라 불렸던 람은 월드컵과 유로에 각각 3번의 대회에 출전했으며 첫 대회인 유로 2004를 제외한 모든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영예를 누렸으며 이 활약으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6위에 랭크되었다.

람의 활약도 대단했지만 그를 상회하는 임팩트를 보여준 베르디 포그츠의 존재로 인해 람을 서브에 둘 수밖에 없었던 점은 매우 아쉬웠다.

 

 

이름: 칼하인츠 슈넬링어
출생년도: 1939년 3월 31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리베로

대표팀 활약 기간: 1958~1971
A매치 기록: 47경기 1골

 

1960년대 유럽 정상급 수비수로 우수한 체력과 빠른 기동력을 활용한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며 상대의 공격을 틀어막아 폭스바겐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쾰른과 밀란에서 이름을 날렸던 슈넬링어는 1958 스웨덴 월드컵부터 1970 멕시코 월드컵까지 활약했으며 첫 번째 대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특히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선 뛰어난 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를 기록하게 된다.

대체로 우수한 활약을 보여줬지만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자주 심판을 속이며 비매너 플레이를 자주 벌여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 준결승전에서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동점골을 득점해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가자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이탈리아로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말라는 협박을 듣기도 했다.

 

 

이름: 미하엘 발락
출생년도: 1976년 9월 26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8kg

대표팀 활약 기간: 1999~2010
A매치 기록: 98경기 42골

 

2000년대 상반기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만능 미드필더로 강력한 피지컬과 탄탄한 기본기, 뛰어난 축구 지능과 승부를 결정짓는 클러치 능력을 모두 겸비한 다재다능한 미드필더였다. 

레버쿠젠, 바이에른 뮌헨, 첼시에서 모두 좋은 활약을 펼쳤던 발락은 암흑기에 빠진 대표팀에서의 맹활약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유로 2000에서 데뷔해서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돌풍의 팀 대한민국을 상대로 팀을 결승에 진출시키는 결승골을 넣었지만 경고 누적으로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해 팀의 패배를 지켜본 아픈 경험이 있다. 2006 독일 월드컵과 유로 2008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맹활약했으나 각각 4강전과 결승전에서 아쉽게 패했다.

비록 우승은 이뤄내지 못했지만 발락의 활약은 대단했는데 유로 2000을 제외한 참가한 월드컵과 유로에서 모두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다. 독일 축구의 전성기 시절인 1970년대나 2010년대에 활약했으면 더 이름값이 높았을 선수라 생각한다.

 

 

이름: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출생년도: 1984년 8월 1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윙어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9kg

대표팀 활약 기간: 2004~2016
A매치 기록: 121경기 24골

 

윙어 시절에는 경기력은 좋지 않았지만 결정적인 득점으로 팀을 여러 번 구했으며 중앙 미드필더로 보직을 변경한 이후엔 드넓은 시야와 우수한 킥력을 활용해 우수한 중원 지휘 능력과 롱패스로 공격 활로를 여는데 능했으며 벼락같은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에 기여하기도 했으며 우수한 탈압박 능력으로 상대방의 압박을 무력화시키는데도 능해 팬들로부터 '푸스발 고트'라 불렸다.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팀의 트레블을 이끈 슈바인슈타이거는 디 만샤프트에서는 소속팀에서 부진하던 시절에도 굉장히 잘했는데 2006 독일 월드컵 3,4위전에서는 포르투갈을 상대로 멀티골을 기록했으며 유로 2008 8강전에서도 포르투갈을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하며 포르투갈 킬러로 명성을 날렸다.

중앙 미드필더로 보직을 변경한 이후에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팀의 4강 진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드림팀에 선정되었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뛰어난 중원 지휘 능력을 앞세워 우승의 방점을 찍었으며 그가 은퇴한 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디 만샤프트는 슈바인슈타이거와 필립 람, 그리고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공백을 느끼며 조별 리그 탈락이라는 대표팀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냈다. 그래서 토니 크로스가 선수 위상은 조금 더 높았어도 디 만샤프트에서는 슈바인슈타이거를 먼저 뽑을 수 밖에 없었다.

 

 

이름: 귄터 네처
출생년도: 1944년 9월 14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3kg

대표팀 활약 기간: 1965~1975
A매치 기록: 37경기 6골

 

볼프강 오베라트와 함께 1960년대 하반기와 197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독일 최고의 테너로 역사상 최고의 패스 마스터 중 하나로 손꼽혔을 정도로 패스를 잘해서 패스의 단위를 센티미터 단위로 조절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을 정도로 패싱력이 우수해 "센티미터 패서", "컴퓨터 패서"라 불렸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황금기를 이끄는데 기반을 다진 네처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오베라트와 치열하게 주전 경쟁을 했으며 유로 1972에서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는데 그의 뛰어나면서도 창의적인 패스는 람바참바 풋볼에서 중요한 요소였으며 결국 대회를 압도적으로 우승한 뒤 베켄바우어 다음으로 게르트 뮐러와 함께 발롱도르 공동 2위를 수상했다.

다만 월드컵에서는 라이벌 볼프강 오베라트에게 번번이 밀려 벤치 신세를 지며 아쉬운 활약상을 보여줬다.

 

 

이름: 볼프강 오베라트
출생년도: 1943년 9월 29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1kg

대표팀 활약 기간: 1963~1974
A매치 기록: 81경기 17골

 

귄터 네처와 함께 1960년대 하반기와 197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독일 최고의 테너로 뛰어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이고 왕성한 활동량과 우수한 기동력을 겸비했으며 유사시에는 수비에도 적극 가담했던 현대적인 미드필더였다.

쾰른의 원 클럽맨으로 분데스리가 개편 이후 첫 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한 오베라트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네처와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였으며 1966 월드컵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으며 1970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5위를 수상했다. 그러나 유로 1972 당시에는 기량이 떨어져 명단에서 제외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나 절치부심해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다시 주전 자리를 회복하며 특유의 왕성한 활동량으로 팀의 우승을 도왔다.

네처와 비교해서 테크닉은 다소 부족했다는 평가가 있는데 세 번의 월드컵에서 총 59개의 찬스 메이킹을 기록한 세련된 플레이메이커였다.

 

 

이름: 헬무트 란
출생년도: 1929년 8월 16일
포지션: 라이트윙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6kg

대표팀 활약 기간: 1951~1960
A매치 기록: 40경기 21골

 

1950년대 서독을 상징하는 축구선수 중 한 명으로 뛰어난 돌파력과 벼락같은 슈팅을 겸비해 상대의 골문을 위협하던 아웃사이드 라이트였으며 뛰어난 슈팅력으로 에센의 대포라 불렸다.

로트바이트 에센의 독일 챔피언쉽 우승을 이뤄낸 헬무트 란은 대표팀에서는 더 잘했는데  1954 스위스 월드컵 결승전에서 멀티 골을 득점하며 우승에 가장 큰 공헌을 했으며 1958 월드컵에서도 여섯 골을 기록하며 팀을 준결승에 올려놓는 활약을 보여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를 기록하게 된다.

 

 

 

이름: 한스 셰퍼
출생년도: 1927년 10월 19일
포지션: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1kg

대표팀 활약 기간: 1952~1962
A매치 기록: 39경기 15골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 서독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민첩한 몸놀림과 빠른 스피드로 상대 수비수를 돌파하며 벼락같은 슈팅을 활용한 득점력을 보여주는 윙 포워드였으며 리더십도 훌륭해 소속팀 쾰른과 대표팀에서 주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FC 쾰른의 창단 멤버이자 원 클럽맨으로 1963-64 시즌 초대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었던 셰퍼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란, 발터 형제, 몰록 등과 함께 매직 마자르라고 불리던 헝가리를 꺾는 베른의 기적을 이끌어내 우승을 차지했으며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도 4위 자리를 차지했으며 프리츠 발터의 뒤를 이어 주장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름: 토마스 뮐러
출생년도: 1989년 9월 13일
포지션: 포워드, 라이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5kg

대표팀 활약 기간: 2010~
A매치 기록: 116경기 44골

 

2010년대 독일 축구의 아이콘으로 라움도이터라는 축구계의 신조어를 창안하게 했던 공간 활용의 달인이었으며 자신이 빈 공간으로 들어가 직접 득점을 하거나 동료들에게 좋은 공간을 제공해주며 골 찬스를 만드는 데에도 능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분데스리가 10연패와 두 번의 트레블을 이뤄낸 토마스 뮐러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세 번의 월드컵과 유럽 선수권 대회에 참가해 이름을 날렸는데 유로보다는 월드컵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2010 남아공 월드컵 득점왕과 신인상, 대회 베스트 일레븐을 모조리 휩쓸었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디 만샤프트의 월드컵 우승의 일등 공신으로 호평받으며 실버볼을 수상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발롱도르 5위에 올랐는데 일각에서는 리오넬 메시 대신 토마스 뮐러가 골든볼을 받아야 했다는 주장도 있었을 정도로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었다.

 

 

 

 

이름: 미로슬라프 클로제
출생년도: 1978년 6월 9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4kg

대표팀 활약 기간: 2001~2014
A매치 기록: 137경기 71골

 

2000년대와 2010년대 디 만샤프트를 대표했던 스트라이커로 우수한 점핑력을 활용한 뛰어난 헤더로 많은 골을 득점했으며 깔끔한 원터치 패스를 활용해 동료 공격수와의 유려한 연계 능력으로 분데스리가에서 도움왕만 두 번을 올려놨을 정도로 기회 창출에도 능했던 완성형 공격수였다.

전성기를 보낸 베르더 브레멘에서도 2005-06 시즌에는 득점왕, 도움왕, 분데스리가 MVP를 석권하는 활약을 보였지만 클로제의 진가는 디 만샤프트에서 발휘했는데 2002 한일 월드컵 때 무려 5골을 넣으며 화려하게 데뷔했으며 2006 독일 월드컵과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각각 5골과 4골을 넣으며 팀이 3위에 오르는데 공헌했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 4강전에서는 자신과 타이를 이루던 호나우두가 보는 앞에서 월드컵 개인 통산 16호 골을 득점하며 대회 우승에 기여했다.

월드컵 통산 최다 득점자와 독일 국적 A매치 통산 최다 득점자라는 두 가지의 상징성 때문에 선수 개인의 위상은 클린스만에게 밀리지만 클로제를 서브 멤버로 선정했다.


25인 스쿼드 완성판

 

토르난테 선정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25인 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리저브 팀 11인

 

 

이름: 하랄트 슈마허
출생년도: 1954년 3월 6일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8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79~1986
A매치 기록: 76경기 75실점 / 24클린시트

 

1980년대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거친 플레이를 즐겨했으며 폭발적인 반사신경과 막강한 팔 힘에서 나오는 멀리 던지기 능력을 바탕으로 활약했다.

쾰른에서 오랜 기간 활약하며 1976-77 시즌 더블 우승을 이뤄낸 슈마허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두 번의 월드컵과 유로에 참가해 1980 유로 우승과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6 멕시코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개인적으로도 1984 유로와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모두 올스타 팀에 들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실버볼을 수상했다.

 

 

이름: 빌리 슐츠
출생년도: 1938년 10월 4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4kg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59~1970
A매치 기록: 66경기 0골

 

서독 최초의 리베로로 후대의 베켄바우어나 잠머와는 달리 공격적인 부분보다는 수비적인 부분에서 더 돋보였던 선수로 냉철하면서도 재빠른 판단력을 바탕으로 완벽한 커버플레이와 센스 있는 수비력을 보여줬다.

함부르크에서 전성기를 누린 슐츠는 디 만샤프트에서 세 번의 월드컵에 출전해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빌리 슐츠 개인은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사람들로부터 월드컵 빌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름: 만프레트 칼츠
출생년도: 1953년 1월 6일
신체조건: 키 186cm
포지션: 라이트백, 리베로, 레프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75~1983
A매치 기록: 69경기 8골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선수로 역대 최고의 오른발 크로서로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크로스 실력을 보여 이를 두고 바나나 크로스라 불렸으며 실제로 함부르크와 디 만샤프트에서 칼츠의 크로스와 흐루베쉬의 헤딩은 중요한 공격 루트로 자리 잡았다.

함부르크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유러피언 컵과 분데스리가를 비롯한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이뤄내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4위까지 오른 칼츠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1976 유로에서 백업으로 시작해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잠시 리베로로 활약했으나 1980년대에는 라이트백으로 활약하며 유로 1980 우승과 1982 스페인 월드컵 결승 진출에 공헌했다.

 

 

이름: 한스페터 브리겔
출생년도: 1955년 10월 11일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9kg
포지션: 레프트백,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중앙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79~1986
A매치 기록: 72경기 4골

 

신체능력과 축구 지능을 겸비한 선수로 188cm의 89kg라는 거대한 체격은 물론 축구를 시작하기 전 육상에서도 큰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라 운동 능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이러한 우수한 피지컬을 앞세운 맨 마킹 능력이 뛰어났으며 공격적인 부분에서도 양발을 모두 잘 썼고 특히 중거리 슈팅이 대단했으며 축구 지능도 뛰어나 필드 내에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다.

엘라스 베로나에서 언더독으로 평가받던 팀을 세리에 A 우승으로 이뤄내 1985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와 발롱도르 8위에 올랐던 브리겔은 디 만샤프트에서도 각각 두 번의 유로와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특히 유로 1980에서 우승을 이뤄낸 공을 인정받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도 들었으며 이후 두 번의 월드컵에서도 각각 레프트백과 센터백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이름: 라이너 본호프
출생년도: 1952년 3월 29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2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레프트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72~1981
A매치 기록: 53경기 9골

 

1970년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우수한 대인 수비 능력은 물론이고 날카로운 중거리 슈팅에도 능했으며 우수한 축구 지능의 소유자로 사이드백과 센터백도 소화할 수 있었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분데스리가 3연패를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끈 본호프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황금기에 활약했으며  1972 유로부터 소집되어 백업 멤버로 우승을 경험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주전 멤버로 도약해 월드텁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6 유로에서도 결승에 진출하는데 공헌하며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었고 이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9위에 랭크되었다.

선수 자체로는 호어스트 시마니악에 살짝 밀리고 울리 슈틸리케와 비슷하지만 슈틸리케와 시마니악에 비해 대표팀 활약이 크게 앞서는 점을 고려해 리저브팀 멤버로 선정했다.

 

 

이름: 베른트 슈스터
출생년도: 1959년 12월 22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4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리베로

대표팀 활약 기간: 1979~1984
A매치 기록: 21경기 4골

 

1980년대 유럽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필드를 넓게 사용하며 창의적이면서 부드럽고 정교한 패스로 많은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뛰어난 볼 소유 능력과 탄탄한 기본기, 그리고 세련된 볼 컨트롤 능력과 상대의 수비 라인을 무너트리는 기습적인 쓰루패스와 1선 능력을 고루 겸비했으며 중거리 슛 능력도 대단한 완벽한 플레이메이커였다.

라 리가, 특히 바르셀로나에서 대단한 커리어를 이뤄내며 발롱도르 포디움에만 3번이나 들었던 슈스터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1980 유로에서도 루메니게와 함께 팀의 우승을 이끌면서 발롱도르 2위와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지만 이후 감독 유프 데어발과 대표팀에 복귀한 포지션 경쟁자 파울 브라이트너와의 불화로 대표팀을 떠났으며 데어발이 사임하고 베켄바우어가 감독으로 부임한 뒤 슈스터를 다시 부르려 했으나 에이전트인 아내를 통해 소집 대가로 거액의 돈을 요구하며 결국 복귀가 불발되었고 디 만샤프트에서의 영광은 후배 로타어 마테우스가 차지했다.

비록 대표팀 활약 기간이 짧지만 유로 1980에서의 퍼포먼스 덕분에 이 명단에 추가될 수 있었다.

 

 

이름: 토니 크로스
출생년도: 1990년 1월 4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2010~2021
A매치 기록: 106경기 17골

 

2010년대 유럽 축구계를 빛낸 중원의 마에스트로라 평가받으며 드넓은 시야와 날카로운 킬패스, 그리고 볼을 받기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면서 안정적인 패스로 팀의 점유율을 장악하는 데에도 능했으며 중거리 슈팅도 우수했다.

바이에른 뮌헨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각각 트레블과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이뤄낸 크로스의 활약은 디 만샤프트에서도 이어졌는데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에 공헌해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유로 2016에서도 준결승 진출에 공헌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되었다.

다만 다만 람과 슈바인슈타이거가 은퇴하고 본인이 중핵이 되어 도전했던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최악의 부진을 경험한 점을 고려해 슈바인슈타이거에 비해 클럽 커리어가 앞서는 부분에도 서브가 아닌 리저브에 이름을 올렸다.

 

 

이름: 토마스 헤슬러
출생년도: 1966년 5월 30일
신체조건: 키 166cm / 몸무게 67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중앙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88~2000
A매치 기록: 101경기 11골

 

1990년대 독일 축구계를 대표하는 테너로 166cm의 왜소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중앙과 측면, 최전방과 후방을 오가는 왕성한 활동량과 물 찬 제비와 같은 민첩한 움직임과 우아한 볼 컨트롤 능력은 물론 뛰어난 스루패스와 크로스를 활용해 골 찬스를 만들어내며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완벽하게 극복했다.

비록 클럽에서는 본인은 우수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음에도 단 한차례의 우승도 이뤄내지 못했지만 디 만샤프트에서는 클럽에서의 아쉬움을 완벽하게 씻어내며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했는데 1988 서울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냈으며 성인 대표팀에서도 핵심 선수가 되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1992 유로 준우승과 MVP, 1994 미국 월드컵 도움왕, 1996 유로 우승이라는 화려한 활약상을 보여줬으며 2000년에는 독일 대표팀에서 다섯 번째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이름: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출생년도: 1960년 4월 16일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4kg
포지션: 라이트윙, 레프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81~1990
A매치 기록: 73경기 18골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화려하면서도 매끄러운 드리블과 세밀하면서도 환상적인 볼 컨트롤과 상대의 허를 찌르는 킬패스와 유려한 탈압박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뛸 수 있었다.

쾰른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당대 최고의 라이트윙 중 하나로 이름을 날린 리트바르스키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1982년에 열린 UEFA U-21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득점왕을 달성하며 준우승을 거뒀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도움왕과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이뤄냈으며 이후 1980년대 독일의 모든 메이저대회를 주전과 서브를 오가며 참가했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주전 멤버로 올라서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이름: 위르겐 클린스만
출생년도: 1964년 7월 30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5kg
포지션: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87~1998
A매치 기록: 108경기 47골

 

1990년대를 풍미한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공격진영 전반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특히 환상적인 발리 슈팅이나 바이시클킥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능력이 뛰어나 사람들의 뇌리에 강력하게 새겨지기 좋은 스트라이커였다.

인테르 밀란에서 마테우스, 브레메와 함께 게르만 삼총사로 이름을 날렸던 클린스만은 디 만샤프트에서 1988 유로 3위와 서울 올림픽 동메달을 시작으로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팀의 우승을 도왔으며 1992 유로에서도 준우승을 이뤄냈고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실버슈를 수상했고 1996 유로에서도 우승에 기여했으나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팀의 부진을 막지 못하고 물러났다.

월드컵 통산 11골이나 넣었을 정도로 국제무대에 강했으며 1995년에는 발롱도르 2위에 랭크되었지만 고참 선수임에도 다른 고참 선수인 로타어 마테우스와 불화를 일으키는 문제를 범하기도 했다.

 

 

이름: 루디 푈러
출생년도: 1960년 4월 13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포지션: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82~1994
A매치 기록: 90경기 47골

 

1980년대 하반기 유럽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영리한 움직임과 매끄러운 볼 터치로 상대 수비를 제치고 페널티 박스에 침투해 머리와 양 발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득점하던 공격수였다.

베르더 브레멘과 AS 로마에서 전성기를 누렸고 마르세유에서 개편 이후 첫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낸 푈러는 대표팀에서 각각 세 번의 월드컵과 유로에 참가했으며 1984 UEFA 유로에서 팀은 조기 탈락했지만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 교체 출전해 팀의 흐름을 바꾸며 분전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레이카르트와의 다툼으로 퇴장당하기도 헸지만 준수한 활약으로 팀의 우승에 기여했으며 1994 미국 월드컵에서도 두 골을 추가해 개인 통산 월드컵 8골을 기록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칼하인츠 루메니게, 클라우스 알로프스 등과 투 톱을 이뤄 활약했으며 파트너에 따른 기복도 적은 스트라이커였다.

 


*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시리즈의 선정 기준은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 50%와 선수 자체의 위상 50%를 합산해서 올스타 팀을 짭니다.

* 국가대표팀으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선수는 당연하게도 선정에서 제외합니다.

* 과거 다수의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선수들은 더 많은 활약을 한 국가대표팀으로 선정합니다.

* 현역 선수들의 스탯은 2022년 8월 7일 기준입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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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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