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Top 11~20

국가의 영웅들/대한민국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Top 11~20

토르난테 2026. 1. 5.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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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6년 1월 4일 기준입니다.

 


20위 오연교

 


생년월일: 1960년 5월 25일
A매치 기록: 10경기 10실점
신체조건: 키 185cm
주 소속팀: 유공 코끼리 (現 제주 유나이티드)

1980년대 하반기 한국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각광받던 선수로 뛰어난 선방 능력과 공중볼 방어 능력을 바탕으로 김정남 감독의 신임을 받았다.

 

한양대학교를 졸업한 뒤, 김정남 감독의 권유로 유공에 입단해 전성기를 누린 오연교는 1984년에는 유공에서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88년에는 현대 호랑이에 입단해 다시 한 번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나 1990년에 은퇴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공중볼 경합에 능하다는 이유로 강력한 경쟁자인 조병득을 제치고 김정남 감독에 의해 주전 수문장으로 발탁된 오연교는 월드컵 본선 조별예선 2차전 불가리아와의 경기에서 펀칭 미스를 범하며 선취점을 허용하는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19위 김진현

 


생년월일: 1987년 7월 6일
A매치 기록: 16경기 19실점
신체조건: 키 193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세레소 오사카

2010년대와 20년대 일본 무대를 풍미한 골키퍼로 기복이 심하고 가끔씩 아쉬운 판단력을 보여주지만 큰 키에서 나오는 제공권 장악 능력이 우수하고 수비진들과의 끝없는 소통으로 위기 자체를 적게 오게 하는 방식의 수비를 선호하며 필드 플레이어에 버금가는 부드러운 발밑을 바탕으로 빌드업에서 강점을 보이는 골키퍼다.

2009년에 세레소 오사카에 입단해 현재까지 해외파 선수 최초의 원 클럽맨의 역사를 쓰고 있는 김진현은 비록 j리그 우승을 이뤄낸 적은 없지만 2017년에는 J리그에서 3위를 기록했고 J리그컵과 일왕배를 동시에 우승하며 커리어하이를 기록했고 2018년에는 J리그 우승팀 가와사키 프론탈레를 상대로 후지 제록스 슈퍼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대한민국 대표팀에서는 주로 세컨드나 서드 골키퍼로 나서는 김진현은 2015년에는 AFC 아시안컵에서 주전으로 나서며 조국의 결승행을 이끌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서브로 벤치에 대기했다.

 

18위 권순태

 


생년월일: 1984년 9월 11일
A매치 기록: 6경기 4실점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전북 현대

2010년대 K리그와 J리그에서 모두 훌륭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골키퍼로 키가 큰 편은 아니지만 높은 수준의 순발력에 기반한 슈퍼세이브가 강점이며 공격수와의 1vs1 상황에서는 몸을 아끼지 않고 과감하게 대쉬하여 막아내는 장면을 자주 보인다.

상주 상무 임대 시절을 포함해 전북 현대에서 10년간 활약하며 구단의 전성기를 이끈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인 권순태는 K리그 3회 우승 및 AFC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고 2014년부터 2016년까지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고 2016년에는 AFC 챔피언스 리그 베스트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가시마 앤틀러스로 이적해서는 2018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2016년에 이어 두 번째로 AFC 챔피언스 리그 베스트팀에 포함되었다.

다만 권순태는 K리그와 J리그, AFC 챔피언스리그에서의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대표팀에서는 중용받지 못했는데 그의 전성기에 코치로 재직한 김봉수 골키퍼 코치가 장신 골키퍼를 선호하는 분위기 때문에 나서지 못했고 선발되더라도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했다. 그리고 2018년 10월 3일 AFC 챔피언스 리그 4강 1차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과의 홈경기에서 주심 앞에서 임상협의 허벅지를 걷어차고 머리를 머리로 들이받는 한 이후로는 안그래도 소집될 확률이 낮았던 국가대표팀 소집명단에서 완전히 밀려난다.

 

17위 김황호

 


생년월일: 1954년 8월 15일
A매치 기록: 45경기 26실점
신체조건: 키 175cm
주 소속팀: 주택은행 축구단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대한민국 무대 톱클래스 골키퍼로 햇빛이 뜨거운 주간 경기에서는 모자를 착용하고 나왔으며 심리전에 능해 페널티킥 상황에서 상대편 키퍼를 눈빛으로 제압했다고 전해진다.

경희대학교 축구부에서 데뷔해 한국주택은행 축구단에서 활약한 김황호는 해군 축구단에서 군복무를 했는데 1978년과 1979년에는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한국주택은행 축구단에서 활약했으며 은퇴했다가 1984년 현대 호랑이의 창단멤버로 돌아왔다.

대한민국 대표팀 소속으로도 변호영의 홍콩행과 이세연의 은퇴 후에 김희진과 경쟁해 1군 일명 화랑 대표팀의 주전으로 차지해 1978 방콕 아시안게임 축구종목 금메달 및 1980 AFC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지역예선에도 참가했다.

 

16위 변호영

 


생년월일: 1945년 10월 19일
A매치 기록: 34경기 19실점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세이코

1970년대 초중반 대한민국 정상급 골키퍼로 전진수비를 즐겼던 라이벌 이세연과는 다르게 골문 안에서 수비라인을 지휘하거나 본인이 직접 안정적으로 선방하는 안정적인 골키퍼로 유명했다.

연세대학교 축구부를 거쳐 서울은행에서 데뷔한 변호영은 뛰어난 퍼포먼스로 1974년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선수 및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팀 2회 선정을 이뤄냈고 1975년,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두 번째로 해외이적의 주인공이  되었는데 홍콩의 세이코 SA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리며 1976년과 1977년에 리그 MVP를 수상했다.

 

대한민국 대표팀 소속으로도 이세연과 치열한 주전경쟁을 펼친 변호영은 1974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 주전으로 참가했다.

 

15위 서동명

 


생년월일: 1974년 5월 4일
A매치 기록: 22경기 16실점
신체조건: 키 196cm / 몸무게 95kg
주 소속팀: 울산 현대

K리그에서는 드문 거구의 골키퍼로 다른 정상급 골키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민첩하진 못했지만 공중볼 경합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전성기 시절에는 안정적인 선방으로 팀을 구해내기도 했다. 

울산 현대에서 데뷔해 최인영 골키퍼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한 서동명은 백업 골키퍼로 우승을 경험했으나 당대 아시아 최고의 골키퍼였던 김병지의 벽에 막혀 상무로 임대를 떠나기도 했고 신생 구단 전북으로 떠났다가 2002년에 다시 울산으로 돌아와 주전자리를 차지해 활약했는데 2003년에는 팀의 K리그 준우승을 이끌며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2005년에는 K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2006년에는 대한민국 슈퍼컵과 동아시아 챔피언들의 대회인 A3 챔피언스컵에서 우승을 이뤄내며 울산 현대를 대한민국 및 동아시아의 통합 챔피언으로 올렸다.

울산대 4학년이던 1995년 1월 31일, 칼스버그컵 콜롬비아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서동명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이운재를 제치고 선발로 출전했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김병지의 백업을 맡았다.

 

14위 최은성

 


생년월일: 1971년 4월 5일
A매치 기록: 1경기 1실점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대전 시티즌 (現 대전 하나 시티즌)

대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자기 관리의 화신이며 뛰어난 수비 조율과 안정적인 볼 캐칭을 겸비한 2000년대 한국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이었다.

 

실업리그의 국민은행 축구단과 상무에서 활약하다가 1997년 전력이 약한 대전에 입단해서 무려 16 시즌을 활약했는데 대전의 유일한 메이저 대회 우승컵인 2001년 FA컵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우수한 퍼포먼스와 하늘을 찌르는 충성심으로 인해 팬들로부터 "최은성이 대전이고 대전이 최은성이다."라는 응원을 받았으나 사장의 폭언으로 인해 대전을 떠난 이후에는 권순태가 상무로 떠난 전북에서 맹활약했다.

대한민국 대표팀에서는 이운재, 김병지와 세대가 겹치는 비운으로 고작 한 경기밖에 뛰지 못했지만 2002 한일 월드컵 서드 키퍼로 4강 신화를 경험했다. 히딩크는 넘버 3로 최은성을 뽑은 이유를 두고 "소속팀을 위해 헌신함을 높게 평가했다."라고 밝혔다.

 

 

13위 김용대

 


생년월일: 1979년 10월 11일
A매치 기록: 21경기 11실점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FC 서울

체격이 좋고 냉정하며 침착한 성격의 장신 골키퍼로 K리그에서 보여준 뛰어난 선방 능력을 인정받아 K리그 팬들로부터 K리그의 반 데사르와 같다고 용대사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K리그에서 오럤동안 정상급 골키퍼로 인정받았던 김용대는 군 복무 시절인 광주 상무 불사조를 제외한 부산 아이파크, 성남 일화, FC 서울, 그리고 울산 현대에서 모두 우승컵을 들어본 경험이 있었는데 2004년 FA컵과 2017년 FA컵에서는 대회 MVP를 수상했다. 그러나 대표팀과는 인연이 거의 없엇다.

특히 FC 서울에서 전성기를 보낸 김용대는 상암에 머무는 동안 K 리그 2회 우승 및 2015년 FA컵 우승을 이뤄냈고 리그 우승을 했던 2010년과 2012년에는 본인도 K리그 올스타 팀에 들었다. 그리고 2013년에는 팀을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다.

 

12위 김영광

 


생년월일: 1983년 6월 28일
A매치 기록: 17경기 15실점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7kg
주 소속팀: 울산 현대 호랑이

김병지와 이운재 세대의 후계자 중 한 명으로 각광받던 선수로 환상적인 반사신경과 적적한 위치 선정을 활용해 상대적으로 작은 키에도 뛰어난 선방 능력을 보여주며 패스 능력도 준수하다.

 

무려 556경기에 출전하며 K리그 역대 최다 출전 2위를 기록한 김영광은 전남 드래곤즈에서 데뷔했고 2006년 FA컵 우승을 이뤄냈고 울산 현대로 이적한 뒤에 전성기를 누리며 K리그 리그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2011년에는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그리고 2012년 AFC 챔피언스리그 무패 우승에 일조했다. 그 뒤에는 하부리그의 서울 이랜드와 성남 FC에서도 활약했다.

대표팀에서는 연령별 대표팀에서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A 대표팀에서는 중용받지 못한 김영광은 2006년 9월 이란전에 김상식과의 사인 미스 이후로 언론에게 과도한 비난을 받았으며 그대로 대표팀 주전 수문장 자리와는 멀어진다.

 

11위 김풍주

 


생년월일: 1964년 10월 1일
A매치 기록: 22경기 6실점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부산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19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190cm의 큰 키를 바탕으로 한 제공권 경합 능력에 강점을 보였고 안정감 있는 수비 라인 지휘와 과감한 캐칭 능력을 겸비한 골키퍼였다.

 

부산 대우 로얄즈에서 만 18세에 데뷔해 K리그 역대 최연소 골키퍼와 역대 최연소 클린시트 기록을 동시에 가졌음은 물론 13년간 부산의 원 클럽맨으로 헌신한 김풍주는 K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87년과 1991년에는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며 당대 K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다.


대한민국 대표팀에서는 1983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의 4강 신화를 이끌며 화려하게 커리어를 시작한 김풍주는 청소년 대표팀에서의 활약으로 만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대표팀에 부름을 받아 주전 경쟁을 했으나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조병득과 오연교에 비해 기량이 완숙하지 못해 밀려났고 이후 두 번의 월드컵에서도 부상으로 인해 최인영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린 비운의 골키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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